이전에 그랜트 헤프너 그림이 우리나라 책 표지에 등장해서 깜작 놀라 페이퍼를 썼더랬다. 물론 명화에 대한 책 표지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현대 미국 작가 그것도 그림 한 점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작품이 아닌 그림이 우리나라 책 표지를 장식해서 꽤 놀랐기에. 사실 그랜트 헤프너는 나만 알고 싶은 작가 중 하나였다.
그런데 현대문학에서 편내고 있는 시인선 시리즈에 내가 눈여겨 보는 젊은 신진작가의 그림이 떡~ 하니 표시그림으로 들어가 있었다. 하나도 아닌 여러 점이. 요즘 책 디자인 부서는 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도 꽤고 있는 듯해서 좀 놀라고 신선하다. 우리나라 책, 그것도 시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믿기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 미술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모를 것이다. 채지민 작가. 나도 2년 전에 처음 알았다. (물론 미술모임의 내 지인들도 모른다..ㅎㅎ) 젊은 신진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도록을 구입한 최초의 작가였다. 도록도 50여 페이지가 안됐는데 5만원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난 구입했다. 내 인생 최초다..ㅎㅎ 그만큼 채지민 작가의 작품은 뛰어났다. 현대문학 책표지 담당자도 아마 나와 같은 취향이었나 보다.
현대문학 핀 시인선 시리즈는 청년 작가 중 잘나가는 일부를 선별해서 책 표지 계약을 한듯한데, 그 의도가 매우 신선하다. 이런 기획 아주 좋다. 위 두 이미지 외에도 채지민 작가 작품이 두어 점 더 있지만 위 그림이 그의 대표작들 중 일부이기에 여기 가져와 봤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은 채지민 작가의 그림을 좋아할 듯하다. 주로 선명한 색면에 오브제들을 배치하는데 오브제들은 서로 따로 노는 듯 서로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져서 그림을 오래 보게 된다. 데페이즈망 기법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잘 녹여내어 공간의 초현실성을 잘 구현해 내기 때문인 듯하다.
(뉴스핌에 소개된 채지민 작가와 그의 작품)
위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책 표지 그림도 함께) 작가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강렬한 색채와 인위적인 공간의 배치가 돋보인다. 자세히 보면 색면이 만들어 내는 평면성과 입체감이 혼재한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좀 의아하다. 입체적이어야할 부분을 평면으로 처리하고 평면이어야 할 부분을 입체로 처리하여 시선을 분산시킨다. 이는 의도적으로 배치한 오브제로 인해 한결 두드러진다.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문다고 표현하는데, 어쨌거나 이 모든 구도가 작가의 철저한 의도와 계산에 따른 결과물이라니, 그의 치열한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 모든 작품이 매진되는 기록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컬렉터들과 평론가들이 그의 그림을 두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떠올리고 작가 자신도 호크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호크니를 동경한단다)고 했지만, 내가 채지민 작가의 작품을 보고 처음 비슷하다고 느낀 건 마그리트였다. 아마도 의미의 상징성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작가가 포토샵과 3D프로그램으로 작업하여 작품이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래도 유영국 화백처럼 손으로 대작을 그리는 작가를 보고 싶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채지민 작가의 작품들이 현대문학 시인선 책표지로 등장해 반갑다. 작가를 몰랐던 분들이라면 이 페이퍼를 통해 알았으면 한다. 구글에 채지민으로 검색하면 바로 이미지와 작가 정보를 알 수 있으니,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핫 한 작가 중 하나..^^
우리나라 책 표지 디자인이 나를 계속 놀라게 한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