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연재되는 이진송 작가의 '아니 근데'를 가끔 읽는다. 

이번에는 "프메 인기몰이 이동욱부터 청담부부 정우성·이정재까지…‘아저씨 열풍’의 이면"

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2,30대 젊은 여성들이 40대 이상의 남성 배우를 좋아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기사 링크: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9231558005


그냥 ‘아재 열풍’이라 착각마라…# 무해함 # 헛물안켬 # 사리분별


이라고 첫줄에 써 있듯이, 과거 나이 많은 남성이 젊은 여성과 교제/결혼하면 능력 있다고 추켜세워지고,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나이 많은 남성들이 젊은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던 것과 최근의 아저씨 열풍은 결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즉 '무해한' 남성상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요즘 어린 여성들이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렌다면, ‘떼잉!’ 거기서부터 탈락입니다. 이는 결국 ‘무해한 남성상’에 대한 열망과도 통한다.

(...)

무해한 남성상의 인기에는 절박한 측면이 있다. 2022년의 이성애자 한국 여성에게 연애, 남성, 구애는 위험하고 두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

모르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 한 잔도 긴장하게 되고, 안전하게 이별하는 ‘꿀팁’을 공유하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이다. 아저씨 열풍은 이러한 맥락에서, 단순히 ‘나이 많은 남자’가 아니라,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춘 남자’를 안전하게 사랑하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  - 이진송 칼럼 중 


* 꼭 원문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주 재미있고 공감가는 글입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의 두번째 글, 백지연의 '불안에도 불구하고'는 이런 여성들의 불안을 분석한다. 김예란의 첫 글이 정동이론을 바탕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몸'들의 투쟁으로서 미투를 분석했다면, 백지연의 이 글은 이론보다 조금더 직관적으로 여성들의 불안을 설명하여 공감이 쉽다. 그렇다고 직관만 내세우는 엉성한 글은 물론 아니다. 현대 여성의 집단적 불안을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 '젠더간 권력차이'에 있으며, 이런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선택하는 도피는 결국 불안을 증폭시키게 될 뿐이므로, 여성들은 '미러링 전략' 등을 통해 싸우기를 택하였다는 전개를 통해, 싸우는 여성들의 정동을 논리적으로 지지하는 글이다.



가령 미디어는 ‘세상은 너희에게 이렇게 무서운 곳‘임을 알려주는 정보를 늘어놓으면서도, 동시에 여성이 느끼는 불안을 개인적 사연의 형식을 빌려 소비시킨다. 여성들은 언제나 당하고, 울다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런 이야기 구조 내에서 여성의 불안은 사회적인 실체를 가진 사실로 구성될 수 없다.
반면, ‘시스템‘은 남성의 불안 원인을 설명하는 단골 기제다. 예를 들어, 2015년 초반 즈음부터 온라인 공론장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여성혐오를 다룬 많은 기사들이,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이유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린다(백지연, 2017). 남성의 경제적 불안(문강형준, 2016.1.15), 결혼에 대한 불안(조한혜정, 2016.2.16), 여학생과 경쟁하는 남자 청소년의 불안(백승찬, 2015.8.12), 여성과 마찬가지로 약자인 남성의 불안(박권일, 2014.8.11)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기사들은 사실로서 확인해주었다. 이와 같은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은 엉성하지만, ‘여성혐오는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 ‘여성은 성격적으로 예민하다‘는 ‘문화적 전제 (Van Gorp, 2007)‘가 그 공백을 메워주면서, ‘불안‘이라고 이름 붙여진 감정을 대하는 사회의 방식에 개입한다. - P53


감히 확신하건대, 모든 여성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겪었던 불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기억은 개별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주요 에이전트인 미디어 (박동숙·이재원·정사강·강혜원 · 김해원, 2014)는 여성 집단이 불안의 기억을 축적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 p55


나 또한 감히 확신한다. 모든 여성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겪었던 불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옛날 교과서에 실렸던 글 중 이런 게 있었다(지금 찾아보니 계용묵 작가의 '구두'라는 수필이다). 화자는 남성인데, 어느날 밤 집으로 걸어간다. 그의 앞에는 한 젊은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방향이 같아 앞뒤로 걸어가던 중, 여성이 불안한 기색으로 힐끔거리기에 화자는 앞서가려고 빨리 걷고, 그러나 여성도 더 빨리 걷다가, 결국 골목으로 들어가 달아난다. 남성은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집에 간다.. 

대충 이런 스토리였던 듯. 문제는 이 글에 여성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공감같은 건 없이,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당함으로써 느끼는 억울함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니, 내 기억이 대충 맞다. 이 글은 계속 생각나면서 내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켰다. 


한국일보 기사: 왜 사회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구두'를 신는 법을 가르칠까 

                      기사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80410470004832


일전에 같이 일하던 남성이 억울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한손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던 여성이 가방인지 뭔지로 다리 부분을 가리더라는 것이다. 본인은 그 사람이 있는지 인식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억울할까? 그전에 수많은 불법촬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여성이 핸드폰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에 그렇게 불안을 느꼈겠는가? 

저런 수필이 교과서에 실리고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만 가르치니 이모양이 되었나 보다.. 요즘 교과서에는 여성작가의 글이 많이 실려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나 집단 간의 권력 차이와 이를 유발하고 유지하는 구조적인 조건이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의 주된 원인이다(Ohman, 2008;Barbalet, 2001; Flam, 1993; Kemper, 1978). 여성이 느끼는 불안은 젠더간 권력차이에서 발생하고, 남성중심적인 사회 구조가 이 원인을 존속시킨다는 뜻이다. 불안은 다양한 강도를 가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정도가 변하며 내면적이거나 환경적인 상황에 의해 구체적인 양상이 달라질 수 있지만(Spielberger, 1966), 남성과 여성의 권력의 차이가 지속적이고 안정화되어 있다면, 이를 고질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한국 여성들의 불안은 한국 사회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지속된다. - P56

궁극적으로 도피는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탓에(Bourne, 2010) 안타깝게도 도망의 결말은 언제나 비슷하다. - P59

더불어 미러링의 발화자들은 자신의 언어가 남성 청자에게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러링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원본이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고, 미러링(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중잣대와 이를 만든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보이는 것을 통해 젠더권력의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잡음 없이 받아들여졌느냐‘는 기준은 미러링의 성공적 수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잡음과 거부감의 유발이 미러링의 목적 달성을 돕는다.
미러링을 통해 표현된 언어의 원본은 ‘일간베스트‘ 뿐만 아니라 ‘디시인사이드‘, ‘오늘의 유머‘, ‘엠엘비파크‘ 등 온라인 공간의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생산되고 누적되어온 여성혐오 발언과 철저하게 대립쌍을 이루고 있다. 이 대립의 구조는 미러링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순간 그의 원본이 되는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함께 비판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짜여진 언어적 전략이다. 못마땅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러링을 수용하는 사람의 존재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성차별주의자로 만드는 구도인 것이다.
 - P72


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때만 해도 '여자 남자 편가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왜 여성혐오라는 말로 편가르기를 하냐'는 남성상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사람이었다. 미러링에 대해서도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같은 말로 되받아쳐봐야 나까지 수준낮은 인간이 되는 거 아니냐는, 약간 도덕군자 같은 마인드가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뒤 페미니즘을 자세히 접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가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글에서 백지연이 미러링의 의의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니 좋았다. 



여성들은 두려움에 얼어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불안과 함께 말하며, 불안을 없애기 위해 싸우기를 선택했다. 여성의 불안은 젠더 권력의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어디서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여성들의 싸우기는 계속될 것이다. - P74, 75


"서로 다른 수준의 관여도를 가진 여성들"(67쪽)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들이 자신의 관여도 수준에 따라 적절하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열리게 되었다는 점도 강조하는데, 공감가는 부분이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거나 '마녀D'처럼 연대활동을 하지 못해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 피해자에 대한 지지의 의사를 작은 목소리나마 표현하는 것, 주변 사람들과 이런 생각을 나누는 것도 싸움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제 읽기 시작하는 <디어 마이 네임>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원치 않는 법정 싸움에 나서야만 했고(가해자가 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해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를 인정하였음에도 판사가 구형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낮은 형을 선고하는 꼴을 봐야 했던 저자가, 몇 년 동안의 가명 사용을 그만두고 자기 이름을 찾아 쓴 책이다. 자신 같은 피해자가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책을 사 읽는 것 또한 싸움을 지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사생활을, 연애를, 과거를, 가족을 난자하는 불쾌하고 날 선 질문들, 내 이름을 물어보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나를 반라의 상태로 만들어놓은 이 남자를 위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시시콜콜 쓸데없는 사실들을 쌓아 올리고 있는 무의미한 질문들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육체적인 폭행 이후 나는 나를 공격하도록 설계된 질문에 공격을 당했습니다. 보세요, 그 여자가 사실이라고 하는 말들이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녀는 정신이 나갔어요. 사실상 알코올중독이고, 어쩌면 꼬시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 남자는 멀쩡한 운동선수고,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했고, 뭐라도 했겠죠. 그녀가 기억하는 병원 관련 일들은 사실과는 관련 없는 일이고, 그걸 왜 고려해야 합니까. 브록에겐 많은 게 걸려 있고, 그래서 그는 지금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고 던지는 질문들에 말입니다.  - 523쪽 (책 맨 뒤에 실린 피해자 진술서 중)


관련 기사 링크: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848102.html




 '법대로'가 만능의, 최선의 선택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사법 시스템을 이용해 싸우길 선택한다면, 그럼에도 당신이 피해자와 함께 싸우길 선택한다면, 

 혼자 싸우지 말자.

 혼자 싸우게 두지 말자.   -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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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9-26 15: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일보 젠더살롱은 꼭 챙겨보는 코너예요. 토요일마다 실려서 주말의 시작을 더 의미있게 만든답니다.
저는 이제야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는 사람으로써 아직 제 입장이 무어다 정리는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씩 발을 담그다보니 제가 남성 주류의 입장에 철저히 묻어가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심지어 여사친보다 남사친이 더 편했던 사람입니다.

독서괭 2022-09-27 15:07   좋아요 0 | URL
오 화가님은 젠더살롱을 챙겨보시는 분이군요! 저도 들어가 좀 훑어보니 글들이 좋아보이더라고요^^ 종종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도 아직 페미니즘 초보자로서 이론적인 입장이 정리된 건 아니지만, 화가님 말씀대로 ‘남성 주류의 입장에 철저히 묻어가던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은 저도 느낀 바입니다! 저도 한때 남자들이 편하다고 생각했어요ㅎ 중,고,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남자들은 다 어디갔는지 사라졌지만 ㅋ 지금 직장 동료들 중에는 좋은 분들이 많아서 잘 지내긴 하는데, 그래도 갈수록 여자들이 좋네요^^

단발머리 2022-09-26 1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생각이 참 묘하게 겹쳐집니다. 독서괭님 말씀처럼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러 여성들에게 ’각성‘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전 정희진선생님의 ’메갈은 일베에 맞선 유일한 당사자다‘라는 한겨레 신문 게재글, 게임업게의 여성 성우 퇴출과 관련된 글이 오래도록 인상깊었습니다. 솔직히 지난한 여성혐오의 역사 자체가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이걸 가시화하는 것 자체도 너무 어려울 일일테고. 이번의 신당역 사건 같은 불행한 경우가 반복되는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읽고 쓰고 말하는 것… 이외에 정치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작점이 어디가 될런지요.
저도 서둘러야겠어요. 좋은 글이라 천천히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2-09-27 15:10   좋아요 0 | URL
단발님, 이전에 여성혐오범죄라고 생각 못하고 그냥 ‘묻지마 범죄‘라고 퉁쳐졌던 것에 대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인식의 전환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좀 늦었지만요^^; 정희진 선생님께서 그런 말을 하셨군요. 메갈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신당역 사건도 여혐범죄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요 네 ㅠㅠ 구조적 차별이라는 게 얼마나 뿌리뽑기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네요.
단발님 천천히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달 안에 책 마무리를 목표로 달려보아욧^^

단발머리 2022-09-26 16: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네요, 그 글이요^^

공쟝쟝 2022-09-26 23:40   좋아요 2 | URL
이런 정희진 마니아! ㅋㅋㅋ >,<

독서괭 2022-09-27 15:11   좋아요 1 | URL
아 저 정희진선생님 글 읽어야 하는데.. 하는데... 여성주의책읽기 도서 읽기도 벅차네요 ㅠㅠ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지음, 강수정 옮김 / 코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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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료를 계속 받는다면 더 나은 유년기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야 더 나은 성년기를 만들 수 있어요.  - 457쪽 


지인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인데, 아마 추천이 없었다면 스스로 고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만족스런 독서였으니, 역시 믿을 만한 추천은 받아볼 가치가 있다. 

로리 고틀립은 심리치료사로, 이 책은 그의 실제 경험에 기초한다. 그러나 내담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섞기도 하였다고 하므로, 어느 정도는 픽션의 요소가 있다. 읽는 느낌도 약간 픽션 같다. 처음에는 미드 보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으면서도 그저 그 정도였는데, 뒤로 갈수록 감동이.. 놀라움이.. 오, 삶이란 무엇인가.. 그러면서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는 느낌이 든다. 

여기 등장하는 '환자'는 다섯이다.


1. 존: '스트레스 누적'을 호소. 잠을 잘 못 자고 아내와의 관계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 사람들에 대한 짜증을 표출하면서 '멍청이들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함.(16쪽) - 처음에는 진짜 또라이 같았다. 

2. 줄리: 서른세 살의 대학 교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암 진단을 받음.(49쪽)

3. 리타: 우울증으로 내원한 이혼 여성. '잘못된 선택들'이라고 믿는 것들과 제대로 살지 못한 인생에 대한 회한을 토로. 한 해동안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끝낼' 계획이라고 함. (224쪽)

4. 샬럿: 나이는 스물다섯. 지난 몇 달 동안 '불안'을 느꼈다고 호소. 최근에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함. 일이 '싫증'난다고 말함. 부모와의 관계가 어렵고, 사교 생활은 바쁘지만 진지하게 연애를 한 적은 없음. 긴장을 풀기 위해 밤마다 '와인 한두 잔'을 마신다고 함. (264쪽)

5. 로리(저자 본인): 뜻밖의 이별 후 내원한 40대 중반의 환자.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몇 번만 치료를 받을 생각'이라고 함.(27쪽) - 저자는 물론, 다른 심리치료사(웬델)에게 치료를 받는다.


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와 환경은 다양한데, 이런 다양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이사이에 자기 자신의 스토리(어떻게 심리치료사가 되었는지,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지:정자 기증, 심리치료를 받게 된 이유와 경과)를 함께 들려주면서 자칫 난삽해지기 쉬운 다양함을 잘 엮어냈다. 이 두꺼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굵은 줄기는,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정신의학 용어나 심리치료 용어들이 나오고 살아간다는 것의 불확실성, 거기서 오는 불안, 늘 어려운 관계맺기, 죽음이라는 질문 등 귀담아 들어둘 만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나를 가장 감동하게 한 것은 저자의 내담자들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었고, 그 자신이 스스로 내담자가 되어본 만큼, 의사와 환자로서 '그들'과 나를 경계짓지 않고 함께 깨달아가는 연대관계로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심리치료를 꼭 받아보고 싶어진다. 


나는 관계에서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그러니까 심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한다. 제아무리 최고의 관계라고 해도 가끔은 상처를 입고,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이따금 상처를 주게 되는데, 그건 우리가 사람이어서 그렇다면 이야기다. 우리는 연인이나 부모, 자녀, 친구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거나 받을 텐데, 상처 없는 친밀한 관계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정 어린 친밀한 관계의 좋은 점은 회복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심리 치료에서는 이 과정을 불화와 회복이라고 부른다.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 관계에서 불화를 겪더라도 그걸 엄청난 재앙처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서 불화가 회복되는 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불화를 감내하고, 그것이 관계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며, 어쨌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까지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 522,523쪽


회복탄력성,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싸우는 게 좋지 않다고만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싸우면서도 아이 앞에서는 아무 문제 없는 척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서로의 불만을 잘 이야기하고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며 결국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 물론 폭력이나 폭언이 난무하는 싸움은 안 보여주는 게 낫다! 


역시나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많이 끌었다. 샬럿은 부모가 적절히 이끌어주지 못해서 '너무 빨리 운전대를 잡아버린' 케이스다. 어느날 상담시간에, 샬럿은 과거에 본 광고 이야기를 하며 펑펑 운다. 그것은 엄마 개가 운전을 하고 있고, 뒷좌석에 앉은 아기 강아지가 잠이 들며, 이에 엄마 개가 차를 멈추고 따스한 눈으로 강아지를 바라보는데, 강아지가 깨서 찡찡대자 엄마 개가 한숨을 쉬며 다시 운전을 하는(이거 매우 공감된다), 귀엽고 재미난 광고다. 그런데 샬럿은 왜 펑펑 울었을까. 



사람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어렸을 때 표현에 제재를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아이가 '나 화났어'라고 말하면 부모들은 보통 이렇게 얘기한다. "정말? 그렇게 사소한 일에? 너무 예민하구나!" 또 아이가 슬프다고 하면 부모들은 말한다. "슬퍼하지 마. 어머, 저것 좀 봐, 풍선이네!" 그리고 아이가 무섭다고 하면 또 이렇게 말한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 아기처럼 굴지 마." 하지만 심원한 감정을 영원히 봉인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샬럿의 삶에는 운전석에 앉은 엄마 개가 없었다. 엄마는 우울감에 젖어 늦게까지 파티를 전전하며 술을 마셨고, 아빠는 출장으로 자주 집을 비웠다. (...) 그런 상황에서 샬럿은 너무 일찍 어른처럼 굴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테면 면허도 없이 삶의 운전대를 잡은 미성년 운전자였던 셈이다.   - 321, 322쪽 


마음이 아팠다. 그냥 보면 매일 와인 한두잔 마시는 정도라고 변명하면서(사실은 더 마심), 늘 정착할 생각이 없는 남자를 만나다가 상처받는 걸 반복하는 샬럿은 다소 한심한 인사로 보이지만,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연민과 함께 애정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 처음에 정말 별로였으나 나중엔 많이 좋아지는 인물은 존이다. 존 이야기는 자세히 하면 스포가 되므로 생략한다. 눈물 콧물 짜냈다는 건 안비밀ㅜㅜ 


저자 자신의 시련은 위에 쓴 것처럼 남친의 갑작스런 이별 통보였는데, 그것이 그동안 묻어두었던 수많은 불안들을 폭발시킨다. 처음 내담해서 저자는 심리치료사 웬델 앞에서 엄청나게 울고, 남친에 대한 험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심리치료사로서 일하는 저자 자신도, 중은 제머리 못 깎는다지, 자기가 상담받을 때는 보통 환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저자가 진솔하게 풀어놓는 경험담이 재미있다. 그러나 심리치료가 계속되자, 겉으로 드러난 이별 외에 깊은 내면에 존재하던 심리적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저자는 '행복'에 관한 책을 쓰기로 출판계약을 맺고 책을 쓰려고 붙들고 있으나 진도는 나가지 않고 너무너무 괴롭다. 또 저자는 진단명 불명의 증상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남친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웬델은 내가 그에게 털어놓은 관심사를 나열한다. 이별, 책, 나의 건강, 아버지의 건강, 아들의 성장, 내가 하는 얘기에는 전부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언제까지 살게 될까?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중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웬델에 따르면, 나도 내 환자처럼 나만의 대처 방식을 만들어냈다. 내가 내 손으로 인생을 망친다면, 그것이 일어나길 기다리지 않고 내가 직접 죽음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꼭 그걸 원한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그걸 선택하겠다는 것. 나무에 복수하기 위해 내가 앉아 있는 가지를 잘라버리는 것처럼. '맛 좀 봐라, 불확실성아!'

 통제력의 한 형태로서의 자기 파괴, 나는 이런 역설로서 내 마음을 감싸려 했다. 죽음이 일어나기 전에 죽음을 설계하는 것처럼, 끝이 빤한 관계를 지속한다면, 작가로서의 이력을 엉망으로 만든다면, 몸의 이상을 직시하는 대신 두려움 속에 숨어버린다면, 나는 살아 있는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지배하는 죽음을.  -365쪽 


또 저자에게는 "누군가 너에게 죄책감이라는 소포를 보냈다고 해서 네가 그걸 꼭 수령해야 하는 건 아니야."(415쪽)라고 말해주는 멋진 아버지가 있었지만(아 정말 너무 멋지지 않나?), 어머니와의 관계는 많은 딸들이 그렇듯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져 왔는데, 심리치료가 이 관계에도 조금은 진전을 가져다 준다.



(...) 우리는 오래된 패턴에 휘말렸는데, 엄마는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뭔가를 하길 원하고, 나는 그걸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고 싶어 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잭도 나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이라는 구실을 내세우며,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식을 통제하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엄마와 나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해도 가끔은 소름이 끼치도록 비슷할 때가 있다.

(...)

엄마의 전화 한통이 이 모든 걸 수면 위로 불러낼 줄 누가 알았을까. 모녀의 해묵은 짜증 밑에 엄마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영원히 머물러주길 원하는 염원이 있다는 걸?

'삶의 본질은 변화이고 사람들의 본질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라던 웬델의 말이 생각난다.  (...) 그런데 이 나이대에선 감정에도 노안이 오는 건지 모른다. 더 큰 그림을 보려면 멀찍이 물러서야 한다. 여전히 불평투성이더라도 지금 지닌 것을 잃게 되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 504~506쪽


로리 고틀립의 테드 강연도 있는 모양이다. 틈날 때 들어보고 싶다.

그런데, 서재 글에서 바로 영상 볼 수 있게 띄우는 방법 무엇인가요? 예전에 찾아봤더니 다락방님이 친절한 설명글을 올리신 적이 있던데, 다시 찾아보려니 안 찾아져요 ㅠㅠㅠ 


-> 친절하신 다락방님이 댓글로 알려주셔서 성공!!^^ 



심리 치료사의 침묵은 이제 진부한 영화적 클리셰가 되었지만, 침묵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기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릴 수 없다. 말을 하는 중에는 머릿속에 머물면서 감정과 안전하게 거리를 둘 수 있다. 침묵은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진공 속으로 쓰레기(말, 말, 더 많은 말들)를 던져 넣는 걸 그만두는 순간, 뭔가 중요한 것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침묵을 공유할 때, 그것은 환자 본인조차 존재하는지 몰랐던 생각과 감정의 금맥이 될 수 있다. - P251

비록 부모의 규칙에 갇혀 있지만 아이들은 사실상 한 가지 차원, 즉 감정적인 차원에서만은 완전히 자유롭다. 아이들은 최소한 한동안은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울거나 웃거나 떼쓸 수 있다. 꿈도 마음껏 꾸고 욕망을 표출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비슷한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 또한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데, 그건 이런 감정적 자유와의 접점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리 치료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한번 감정적으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 P367

가난한 집에서 자란 여자는 딸에게 새 구두나 장난감을 사줄 때마다 잔소리를 한다. "네가 얼마나 복 받은 아이인지 알기나 해?" 비판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그런가 하면 아들이 지망하는 명문 대학을 둘러보러 가지만 투어 내내 가이드와 학사 일정과 기숙사를 흠 잡아서 아들을 민망하게 만들고 입학 가능성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아버지도 있다.
부모들은 왜 이럴까? 자기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질투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들이 가진 기회. 부모가 제공하는 경제적, 감정적 안정. 자식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고, 자신에게는 과거만이 남았다는 사실.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모든 걸 자녀들은 갖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행운을 누리는 아이들에게 미움을 품게 되기도 한다. - P414

사과는 기만적일 수 있다. 사과가 내 기분 좋자고 하는 것인가, 상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것인가? 자신이 한 행동 때문인가, 아니면 나는 잘못한 게 없지만 상대가 잘못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인가? 그 사과는 누굴 위한 것인가? 용서는 더 어렵다. 심리 치료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억지 용서라는 표현이 있다. 이따금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상처를 가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한 부모, 집을 턴 강도, 아들을 죽은 폭력배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사람들은 선의를 갖고 충고하곤 한다. 용서할 수 없다면 분노에 사로잡혀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물론, 어떤 사람들은 용서를 하면 엄청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용서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 P415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생각이 짧거나 충분히 강하지 못하거나 동정심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말은, 용서를 하지 않고도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떨치고 앞으로 나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있는데, 특정 방식으로 느끼는 척하기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 P416

그래서 리타의 자녀들처럼 나도 엄마를 차단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나갔지만, 리타와 마주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내 고통이 아니라 우리 엄마의 아픔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지만 지금처럼 엄마가 겪어온 삶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부모(자신의 부모 말고)가 마음을 털어놓고 속살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각자의 상황이 어떻든 부모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 P499

"네." 그가 말한다. "나는 또라이처럼 굴죠." 그러다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인다. "이따금."

최근에 존과 나는 이따금이라는 말의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 말이 우리를 얼마나 공평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안락한 중간에 머물게 하는지에 대해. 그것은 흑백 사고를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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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2-09-23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독서괭님 글 보니 이 책 읽고 싶어지는데요!!!!

독서괭 2022-09-26 12:37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의외로 좋은 책이었습니다ㅎㅎ 누군가의 리뷰를 보니 원서가 더 좋다고 하네요!

mini74 2022-09-23 1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운전석에 앉은 엄마개가 없었다는 귀여운 문장이 이렇게 속상한 문장이 되다니ㅠㅠㅠ 어린시절에 대한 질투와 선망 정말 맞는거 같아요. 호강에 겨운 소리한다 네가 피난을 가봤냐 굶어봤냐. 울 엄마 레파토리 ㅠㅠ 그땐 듣기싫었는데 나이드니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이 책 읽어보고싶어요 독서괭님 *^^*

독서괭 2022-09-26 12:40   좋아요 1 | URL
운전석 엄마개 정말 슬프죠 ㅠㅠ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던 미성년자.. 이 이야기에서 샬럿은 자꾸 심리치료사인 저자에게 엄마 역할을 기대합니다. 더이상 운전석에 앉고 싶지 않은 거예요.
호강에 겨운 소리한다~ 이거 정말 예전 어르신들 레파토리^^;;; 지금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죠. 음.. 그걸 극복해야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미니님도 한번 읽어보셔요^^

기억의집 2022-09-23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하네요. 존의 뒷 이야기….

독서괭 2022-09-26 12:40   좋아요 1 | URL
기억님, 궁금하시죠? 읽어보시죠! ㅎㅎ

다락방 2022-09-26 1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서 원하는 영상을 찾아 <공유>를 누릅니다. 그러면 바로 주소 링크가 나올텐데요, 그 링크가 아닌, 링크 위의 <퍼가기>를 누르셔야 합니다. 그러면 iframe 소스가 나오고요, 그 소스 전체를 복사합니다.
그리고 알라딘 글쓰기 화면에서는 영상을 넣고 싶을 때 위쪽 상단의 <HTML> 를 체크하시고요, 복사해둔 유튭 소스를 넣고, <HTML>체크를 해제합니다. 그러면 영상이 똭!!!!!

독서괭 2022-09-26 12:42   좋아요 1 | URL
와와 다락방님 친절한 댓글 감사해요! 저 혼자는 절대 알 수 없는 복잡한 방법이 필요하군요. 예전 글에도 내가 친절하게 알려주겠다며 적어두셨던 것 같은데 ㅎㅎㅎ 혹시 특정 서재 내에서 그 서재지기가 쓴 글 중에 특정 글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나요? 최근 모르는 기능이 많다는 걸 깨닫고 혹시나 해서 여쭤봅니당!

다락방 2022-09-26 13:47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방법은 모르겠고요, 그런데 기억해야 할만한 글이라면 읽는 당시에 제목 왼쪽 옆에 별표시를 누르면 찜할 수는 있습니다. 나중에 내가 찜한 글 보기로 그 글을 찾아볼 수 있고요!

독서괭 2022-09-26 14:14   좋아요 1 | URL
앗!! 그런 방법이 있나요? 좋아요 누르는 것 밖에 몰랐는데.. 정말 제가 모르는 기능이 많군요.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네요.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2-09-26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은 심리치료책도 많이 보신다! 따수운 공감의 사람!

독서괭 2022-09-27 15:12   좋아요 1 | URL
많이 보지 않습니다 ㅋㅋㅋ 쟝쟝님 오해 금물~!^^

scott 2022-10-07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이달상 추카!

마음치료는
오늘
장바구니 탈퇄 터는 걸로 ^^

독서괭 2022-10-07 17:54   좋아요 2 | URL
앗 감사합니다, 스콧님! 요즘 몇달 당선 안 되니 잊어버리고 어제 책주문을 해버렸네요 ㅎㅎㅎ

이하라 2022-10-07 14: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2-10-07 17:54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10-07 16: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10월 책 구매는 4권까지 하시는걸로 ^^

독서괭 2022-10-07 17:54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ㅋㅋㅋ

mini74 2022-10-07 2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축하드려요 야옹 야옹 ㅎㅎ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독서괭 2022-10-17 17:31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미니님!! 저도 축하드려요^^ 늦었네요;;

그레이스 2022-10-07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2-10-17 17: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늦었네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10-10 18: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괭님 이달의당선 축하드려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애정이 샘솟게 만드는 책이군요.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 좋다는 것은 괭님을 그만큼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10월에도 즐독하시길^^*

독서괭 2022-10-17 17:33   좋아요 1 | URL
화가님 감사합니다~! 대댓이 넘 늦었네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애정! 그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나쁜 사람도 나오고 여러 사람이 나와도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잃지 않는 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존재의 취약성, 그로부터 빚어지는 고통과 슬픔이 정치윤리적 가치로 생성되고 전환될 수 있다면, 강함과 약함, 능동성과 수동성, 긍정성과 부정성, 기쁨과 슬픔처럼, 마치 대립 관계에 있는 듯이 설정되어 있었던 논리의 축이 흔들리게 된다. 나아가 만약 정동의 역능이 다수적이고 이질적이고 변화적인 것들의 결합과 선택으로서 개진되는 긍정화로의 변환 과정이라면, 이 원리에 따라 취약성 역시 능동의 강도로 고양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버틀러와 아흐메드의 논의에서 취약성과 고통이 오히려 강건하며 공존적인 정치윤리로 전화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29, 30쪽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의 첫번째 글, 김예란의 '행복을 향한 그녀들의 움직임: 디지털 페미니즘의 정동'에서는 버틀러와 사라 아메드(김예란은 '아흐메드'라고 표기했으나 알라딘에서는 아메드라고 쳐야 나오기 때문에 아메드로 표기함)의 정동이론을 가져와 미투운동의 의의를 해석한다. 위 인용문의 바로 앞에서 저자가 간단히 버틀러와 아메드의 논의를 요약해 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실 이해가 어렵다.

 존재는 취약하다 -> 그러나 그 취약성은 긍정화/능동성으로 고양될 수 있다 -> 이로써 공존을 위한 정치윤리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대체 이런 논리가 어떻게 나온 건지 <퀴어이론 산책하기>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정동이론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정동'의 의미에 대해서는 사유/느낌(감정)/정동을 모두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구별에 반대하는 견해(사라 아메드)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느낌(감정)과 구별은 어려워 보이고, 다만 그런 느낌(감정)을 보다 (능)동적인 상태로 이해한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이 정동이라는 걸 왜 탐구해야 하는가, 퀴어이론의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예를 보자.



(...) 이성애적 연애 관계였다 할지라도 여성 혐오에 기초한 이별 폭력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뒤섞일 때, 내가 이별에서 겪는 감정은 처음부터 기존의 권력 체계 안에서 매우 구조적으로 직조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를 둘러싼 권력 위계가 감정을 조건짓고 그 감정의 지향이 사람과의 관계, 나아가 내가 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 481쪽 

아메드는 '내게 이롭나 아니면 해롭나?'를 인지한다는 것엔 "사유와 가치평가"가 수반되고, 동시에 이러한 인지가 "몸에 의해 느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감각(느낌)/감정이 별개로 나뉘어져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느낌이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 '접촉'에는 접촉을 하는 사람(주체) 뿐 아니라 그 접촉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데 바탕이 되는 '역사'가 수반된다. (...)

어떤 대상을 보고 무섭다고 느낄 때를 생각해보자. 한편으로, 무언가가 무섭다는 인상은 과거사에 영향받는다. (...)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역사가 항상 본인이 직접 겪은 역사는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개와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라도 주변 어른들과 사회가 '개는 무섭다, 개는 문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주입할 경우 개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으로 개와 맞닥뜨렷을 때 '무섭다'는 느낌/감정이 올라오게 될 공산이 크다. (...) 다시 말해 우리가 직접 겪어 몸에 각인한 개인적 역사뿐 아니라, 그 개인의 탄생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개개인을 공기처럼 둘러싸고 있는 더 넓은 사회적 역사와 규범도 우리의 느낌과 감정을 조건 짓는 것이다. - 485~487쪽

따라서 감정은 주체나 대상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다.  - 489쪽


퀴어 정동 이론은 정동과 무관하다 생각되던 사안들에 정동이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하며, 어떤 정동이 그리고 어떤 식의 정동 표현이 기존의 규범에 영햡하여 규범의 생산과 강화에 일조하는지, 정동에 대한 긍정/부정의 가치 위계가 어떻게 지배 체제의 재생산에 이용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우리가 어떠한 인식틀을 통해 감정을 차별적으로 느끼는지, 달리 말해 어떠한 인식틀을 통해 감정이 차별적으로 생산되고 배치되는지를 탐구한다.  - 489쪽 



이 말인즉슨, 그저 사적인 것으로 보이는 나의 감정 역시 사회적 역사와 규범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것이므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의 가치 체계가 불평등할 경우 감정 역시 차별적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별살인이 자꾸만 일어나는 걸 지켜보면서, 스토킹이 구애로 포장되는 행태를 지켜보면서, 디지털성착취가 끊이지 않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감정은 어떻게 형성될까? 여자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에게 몸사진을 찍어 보내는 행위 밑에는,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여자는 성적 존재로서만 쓸모가 있다', '여자는 성적으로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이 사회의 메시지가 깔려 있지 않은가? 


이제 버틀러와 사라 아흐메드가 이 정동이론을 어떻게 펼쳐가는지 살펴보자. 퀴어이론 책에는 상당히 자세하게 나오지만, 나는 김예란의 글과 관련되어 보이는 부분 위주로 러프하게 요약했다.



[버틀러]


먼저 버틀러는 근대적 주체 개념을 해체한다. 왜냐하면, 근대적 주체는 책임을 자율성-독립성-행위성-선택의 연쇄로 묶어놓고,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는데, 이런 논리에 의해 "모든 맥락과 권력 위계들을 무시한 채 남자랑 단둘이 술 마시고 모텔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만한 나이의 여자가 따라갔으니 성폭력 아니고 화간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빠지는 식으로 바로 그 은폐된 권력 위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527쪽)기 때문이다. 

버틀러는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주체를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로 정의하며, 취약성을 이러한 주체의 실존적 조건으로 이론화한다(521쪽).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윤리적 폭력 비판』의 영문판 제목은Giving an Account of Oneself,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다. 자율성과 일관성이 근대적 주체에게 요구되는 기본 특성이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는 이 주체가 갖는 역량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보통 우리가 ‘행위성‘을 발현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내 의지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즉 방금 일어난 내 행동이 무슨 의도였고 어떤 의미인지를 내가 주저 없이 설명할 수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틀러는 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가 결코 완벽히 성공할 수 없으며 주체는 항상 박탈dispossession의 경험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내가 나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이유, 즉 나 자신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나를 초과하고 항상 이미 나보다 앞서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큰 틀로 작용하는 사회적 규범과의 관계 때문이다.  - 523쪽


그리고 버틀러가 주체가 조건지어지고 근본적으로 주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논증한 것은, 이를 근거로 '책임감'과 '윤리'를 내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우리의 취약성을 인정함으로써 나는 약해~ 암것도 못해~어쩔 수 없어~라는 결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더욱 연대해야 하고, 주체의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는 구조를 인식함으로써 누군가가 받는 고통이 나와 관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윤리의식을 갖자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틀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타자들에게 양도되어 있고 노출되어 있다는 이 취약성을 상대에게 선제공격을 날리고 보복 테러를 돌려줄 정당성의 근거로 이용하는 대신에 "윤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출처로 사유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상처 입힐 수 있다는 "불가피한 상호의존성"을 "전지구적 정치공동체의 토대로 삼는다면 우리는 어떤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 529쪽



[사라 아메드]



여자만 보면 분노 조절을 못 해서 욕설과 폭력을 내지른다는 남자들이 왜 마동석 앞에선 얌전한강아지가 될까?

(...)

감정의 이러한 차별적 할당과 편파적인 인식/인정은 이성과 감성을 가르는 이분법적 위계가 결코 중립적인 진실이 아님을 보여줄 뿐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기존의 권력 구도를 따라 생산되고 표출되는지, 나아가 어떻게 기존의 권력 구도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공고히 하는 동시에 그럼으로써 권력 구도 자체를 은폐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메드는 사회를 바꾸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건 이처럼 권력 관계에 감정이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542, 543쪽


맞다, 정말. 나는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다혈질이지만 뒤끝은 없다'는 식으로 포장해주는 걸 싫어하고, 소위 말하는 다혈질 성격의 사람도 안 좋아하는데, '화가 나는 것'과 '화를 표출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고 그걸 곧바로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 구도에서 위쪽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드물게 누가 봐도 갑인 사람에게도 막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나 그쯤 되면 정말로 분노조절장애라 할 법하고. 대체로 그 분노는 여성과 약자를 향한다. 권력 구도에서 위쪽을 차지할수록 화를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도 넓어진다. 다혈질이라는 말을 여성에게는 잘 쓰지 않는데, (나만 그런가? 여성에게 다혈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남성에게 붙이는 것에 비해 많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성이라고 화가 안 날까. 오히려 전형적인 여성 폄하 관념 중에 '여자는 감정적이다'가 있으니, 화도 더 벌컥벌컥 내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 일관적인 거 아닌가? 여성의 화를 히스테리, 신경질이라고 깎아내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은 화를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에게 화냈다가 어쩌려고, 살해당하면 어쩌려고? 결국 여성이 맘 놓고 화를 표출할 수 있는 상대는 아이들이다..(플러스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을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이 때문인데, 화표출을 잘 안 하는 편인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결국 얘네들은 이렇게 해도 나를 떠날 수 없고,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출근시간 다가오는데 유치원 안 가겠다고 소리지르며 누워 있으면 화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유.. ?;;) 

결국 의식의 흐름은 육아 하소연으로 흐르나. 그만 멈추고, 아메드 이론을 더 살펴보자.



『행복의 약속』에서는 ‘행복‘에 초점을 맞춰 이러한 정동의 경제를 다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아메드는 사회가 무엇을 ‘행복‘으로 규정하는지, 어떻게 ‘행복‘이 사회 규범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며 불평등·억압· 차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지를 탐구한다. 영어 단어 happy에는 ‘행복한'이란 뜻만 있는 게 아니라 (말, 생각, 행동 등이) 적절한 유의어(suitable)이란 뜻도 있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개념이 도덕적 위계와 범위를 결정하는 가치 개념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절해야만 행복하리라는 어떤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깔려 있는 셈이다. - 559 쪽


이런 의미에서, "불행할 자유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동 이방인들은 불행/행복 중 어느 한쪽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그 이분법적 분리 자체를 문제시하고 갈아엎는 사람들이고, 그 틈새에서 대안적인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아메드는 행복을 우리가 반드시 쟁취해야 할 궁극의 목표로 여기지 말고 그저 우리가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불행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과되고 강제되는 것들을 판단하여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정서적으로 피력하는 의사표시로 보자고 제안한다. "괴로워한다는 건, 좋다고 판단되어왔던 것들에 당신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행동할 역량을 고양시킬 수 있는 감수성이 될 수 있다. - 562쪽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 이 표현 참 마음에 든다. 부적절하다는 것은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 규범에서 벗어난 것을 말할 테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상에 맞지 않게 행동하며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아메드의 아래 글을 보면, 아메드는 고통을 쉽게 자기 것으로 차용한다거나, 고통조차 '적절한 가이드라인' 안에 있을 것을 요구하면서 고통의 진정성을 경쟁하는 걸 경계해야 하며(이 부분에 대해서도 <퀴어이론 산책하기>에 자세히 적혀 있다). 

, 우리는 '동류의식의 불가능성', '화해의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아메드의 글 재인용: 고통은 심지어 우리의 가장 절친한 타자들조차 느낄 수 없는 것으로 환기된다. 동류의식의 불가능성이 그 자체로 상처의 확증이다. 그러한 고통을 공감을 통해 공유할 수 없는 고통으로 불러내는 것은 단지 주의 깊게 경청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거주inhabitance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는 행동하자는 요청이자, 집단적 정치에 대한 요구이다. 이때 요구되는 집단정치는 우리가 화해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근거한 정치가 아니라 화해의 불가능성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에 기초한 정치, 혹은 우리가 서로와 더불어 살고 서로의 곁에 살아가지만 우리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정치이다. - P574


* <퀴어이론 산책하기> 중 정동이론 부분에 대한 밑줄 긋기 페이퍼: https://blog.aladin.co.kr/703039174/13326306


다시 디지털 페미니즘으로 돌아가보자.

'정동의 역능'이라는 측면에 미투운동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취약성을 능동성으로 전환하고, 지지와 연대를 구성하는 것! 이것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서 포스트잍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연대활동에서도, 최근 아마니 사망 사건에 분노해 일어난 시위(관련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2010130005969?did=NA)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동이론 자체가 그렇고, 김예란은 정동이론으로 최근의 미투운동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런 지지와 연대활동을 독려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자신에게 취약성을 부당하게 부여한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능동적 요소를 동시에 함축하게 된다. 왜냐하면 단지 그 취약하고 비참한 몸의 "드러남"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노출 혹은 고발의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약성이 규범에 대한 저항을 발현시키는 정치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취약한 몸들이 서로 뭉쳐 지지와 연대를 구성함으로써, 그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저항력을 구성하고 발휘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Athanasiou, 2016: Butler, 2016).  - 32쪽

(...)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은 결코 완료될 수 없으며, 그녀의 말은 열린 상처를 안고 행복을 향해 새롭게 움직이려는 의지의 발현으로서 존중되고 지지되어야 마땅하다. 비참으로부터 행복으로의 정동적 전환은 고통 아래에서 처절했던 자의 급전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며 그 결론이 미정의 것으로 열려 있기에 더욱 자유롭다.  - 38쪽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에서 두 꼭지를 먼저 골라 읽었는데, 썩 감흥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들 말씀하시는 이 첫 꼭지는 좋았는데, 특히나 정동이론? 이거 나 아는건데(이름만 아는 수준이지만)? 하는 마음이 있어 더 그랬다 ㅋㅋ 

다시 보다보니 버틀러와 아메드의 책도 궁금하긴 한데.. 검색해보니 버틀러 올해 책 한권이 나왔네? 개정판으로 번역을 많이 손봤다고 하는데, 어떨지. 그래도 왠지 <혐오 발언>이라니, <윤리적 폭력 비판>보다는 훨씬 쉬워보이지 않나? 음......

사라 아메드 책은 <행복의 약속>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두 권이 나와 있는데, 후자는 이론서는 아닌 것 같아서 읽기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정동이론>이란 책에도 사라 아메드가 들어가 있다. 저런 본격 이론서까지 읽을 생각은 차마 ㅋㅋ 


















자다 깨는 바람에 이 밤에 갑자기 글을.. 낼 너무 피곤하고 그럼 후회하겠지만 ㅠㅠ 

어느 정도는 쟝쟝님의 지적 냄새 풀풀 나는 글에 책임이 있다. 잠깐 북플 들어갔다 그 글을 보고 잠이 깨버림 ㅋ 아직 댓글을 못 달았는데 지금은 자야겠다. 이글이 정동이론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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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9-23 08: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쟝쟝이 좋아합니다! 지적인 냄새가 풀풀 여기서도 나는 군요!? ㅋㅋㅋㅋ 저의 감정적 (미친) 지적임에 비해 정제된 아름다운 지적임 입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나도 정동이론 궁금하니 퀴어이론 산책하기 사야겠어요~ 버틀러 이론은 아름답지 않나요? ㅋㅋㅋ 아름다워 ㅋㅋㅋ

독서괭 2022-09-23 16:09   좋아요 4 | URL
저의 지적 냄새는 모두 저 책 덕분이죠 뭐 ㅋㅋ 어려운 책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있어 보이는 것처럼요 ㅎㅎ
정동이론은 퀴어이론 산책하기의 매우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버틀러 이론 살펴보시기엔 괜찮을 듯요. 이 분은 퀴어이론가라서, 페미니즘이랑 결이 다르거나 동의하지 못하실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은 감안하셔요^^

공쟝쟝 2022-09-23 16:44   좋아요 3 | URL
매우 일부라고 하니까 더 사야할 것만 같다!!! 퀴어에 대해서는 못마땅하지 않아요! 되려 더 공부해야한다는 쪽이고!! 다만 대중화된 페미니즘에 어떤 라벨링을 하면서 혐오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못마땅해요! 분명 그런 (혐오적인 ㅋㅋ 나 조차도) 부분이 있겠지요. 저는 그래서 더 공부를 해야하겠다라고 마음 먹었는 데, 제 결론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열린 결말예여ㅋㅋㅋ 다만 지금은 메갈-워마드-터프로 이어지는 멸칭에 대해서는 매우 불편한 감정이 먼저 앞섭니다. 터져나오는 여성들의 (비언어적)언어를 분석하기도 전에 외국이론 가져온 것 처럼 느꼈어요, ㅋㅋㅋ 암튼 전 동의 못해도 잘 읽는 편입니다 ㅋㅋㅋ (비위가 강햌ㅋㅋ)

독서괭 2022-09-23 18:11   좋아요 2 | URL
ㅎㅎ 퀴어에 대해 쟝쟝님이 못마땅해 하실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다만 이 책에 ‘터프‘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와서요^^; 동의 못해도 잘 읽으시는 편이라면 걱정 없습니다! 좋은 이론서라고 생각해요.

단발머리 2022-09-23 0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의 첫번째 글, 김예란의 ‘행복을 향한 그녀들의 움직임. 저도 읽었거든요.
근데 어머나, 이런 고퀄의 페이퍼라니요! 역시 우리는 아는만큼 볼 수 있는가 봐요.
설거지 마저 하고 정제하고 앉아서 다시 댓글 달게요. 어려워보이는데 넘나 흥미롭습니다^^

독서괭 2022-09-23 16:11   좋아요 3 | URL
목 빼고 기다리는데 왜 안 돌아오시나요? ㅋㅋㅋ
저도 지난번 퀴어이론 책 읽을 떄는 정리가 어려워서 밑줄긋기만 해놨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으니 쪼오끔은 머릿속에 남을 듯 합니다. 단발님 글도 올라온 것 같은데 보러가야겠어요!

단발머리 2022-09-23 16:20   좋아요 4 | URL
저 이제 왔습니다 ㅋㅋㅋㅋ 죄송해요, 아침이었는데 오후네요 ㅠㅠㅠ
제가 천천히 꼼꼼히 읽었는데 참 어렵네요. 독서괭님은 쉽게 써주시려 노력하셨는데 제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다만 버틀러의 ˝불가피한 상호 의존성˝에 관심이 생기네요. 약간 희망적이라고 할까요?
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챕터가 <행복>이라서요. [행복의 약속]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정동이론 모를 때마다 독서괭님에게 물어볼게요. 넘나 행복한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9-23 16:26   좋아요 3 | URL
아니요,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제게 그런 걸 요구하시면 ㅋㅋㅋ 아니 되고요 ㅋㅋ
제 나름대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발췌하고 한 건데 사실 중간중간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것이므로.. 직접 읽으시는 게 나으리라 사료됩니다.
버틀러 이론은 뭔가 멋진데 .. 멋진데 잘 모르겠어! 그런 느낌이예요 ㅋㅋ

단발머리 2022-09-23 16:29   좋아요 4 | URL
헤헤헤. 근데 저, <퀴어이론 산책하기> 독서괭님이 밑줄이나 정리 페이퍼 올려주실 때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저자가 한국 사람이네요. 전, 당연히 외국 저자일거라 생각했어요. 흥해라, 페미니즘! 장하다, 코리아! 이런 느낌입니다.

독서괭 2022-09-23 18:12   좋아요 3 | URL
네 한국 사람이 쓴 거라, 번역에 의심을 품지 않고 시원하게 읽을 수 있어 더 좋았어요! ㅋㅋ

책읽는나무 2022-09-23 19:30   좋아요 3 | URL
저 이제 김예란 교수님편 다 읽었습니다. 만세~^^
다 읽고 다시 괭님 글 또 읽으니까 조금 이해가 갈 듯 합니다.
그래도 <퀴어이론 산책하기> 저 책은 사질 못했는데 정말 여러 번 인용하시는 분들 보면 아주 대단한 책이지 싶네요.
책도 책이지만 정동이론...모를 때마다 묻겠다는 단발님의 발언에 저두요!!! 하려고 했더니, 독서괭님의 단호한 답변!!
아니오,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
아....저 심각하게 글 읽고, 댓글들에서도 얻을 지식이 있나? 심각하게 읽다가...한참 있다가 혼자 빵 터졌네요.ㅋㅋㅋㅋ
정말....명쾌한 독서괭님!!ㅋㅋ
오늘 밤은 푹 주무셔요^^

독서괭 2022-09-26 12:44   좋아요 3 | URL
책나무님 만세~^^
퀴어이론~책은 두꺼워서 저도 정말 큰 맘 먹고 완독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이론(메인은 버틀러)을 다루는 해설서 치고는 읽기가 수월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자가 글을 잘 썼고요, 예시로 든 것들이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것들이라 이해가 잘 돼요!
음 제가 좀 단호합니다 ㅋㅋㅋ 거절 못하는 성격과 거리가 멀어요 ㅋㅋㅋ
우리 나머지 글도 힘내서 같이 읽어요!^^

다락방 2022-09-23 09: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학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까? 너무 고퀄의 페이퍼라서 제가 막 울것 같네요. 독서괭 님, 사랑합니다..

독서괭 2022-09-23 16:12   좋아요 4 | URL
우리 모두 나름대로 학자가 되십시다! ㅎㅎㅎ 저는 학자라기보다는 학생..이지만요;;
다락방님의 사랑,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ㅋㅋ 성덕된 느낌이닷 ㅋㅋ

거리의화가 2022-09-23 09: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탄성이 나오는 페이퍼입니다! 제가 1장 앞부분 읽으면서 이론이 부족하여 답답했던 부분들이 해소가 되었어요. 멋진 분들이 많아서 정말 알라딘 서재 오는 것이 행복합니다*^^* 정성스런 페이퍼 감사합니다 괭님.

독서괭 2022-09-23 16:13   좋아요 3 | URL
과찬 감사합니다 화가님~ 역시 책은 사서 소장해야 하는 것일까요? 퀴어이론 읽고 소장 중인 덕을 봤네요 ㅎㅎ 저도 덕분에 다시 보니 공부가 되었습니다^^

청아 2022-09-23 0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퀴어이론 산책하기> 꼭 읽어야겠네요! 사라 아메드의 책은 한 권 사두었어요 헷
이 글을 읽고 괭님도 페미니즘 연구자가 되실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행복, 선택,...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기본권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여성에게는 외부적으로 규정되어진 것임을 요즘 계속 깨닫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독서괭 2022-09-23 16:16   좋아요 2 | URL
ㅎㅎ 미미님, 퀴어이론 산책하기 제가 읽으면서 한창 홍보를 했었는데, 저자가 어려운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해보려고 많이 애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버틀러 이론에 대해 해석 오류까지 요목조목 짚어가며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버틀러 입문용으로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메드 책, <행복의 약속>사두셨나요? 미미님 감상이 기대됩니다^^

청아 2022-09-23 16:35   좋아요 2 | URL
아앗! 그 책 아니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요^^*

책읽는나무 2022-09-23 12: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쁜 괭님 자꾸 이렇게 계속 이뻐지시면 어찌합니까???
독서괭님은 뇌도 이뻐~♡
어렵다고 밀쳐뒀던 디지털책 다시 처음부터 정독해야겠습니다.
요즘 절반으로 줄였던 오천보를 오천보로 늘려 걸었더니 며칠 헤롱헤롱하고 이제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고 책 다시 읽고 괭님 글 다시 읽고 참고해야겠습니다.
정동이론!!!! 넘 반가운 단어에요^^

독서괭 2022-09-23 16:17   좋아요 4 | URL
이쁘다니 ㅋㅋㅋㅋㅋㅋ 이런 칭찬은 서재에서 처음이야 ㅋㅋㅋㅋ
책나무님 감사해요 ㅋㅋ 디지털 페미니즘 이 책, 이 첫 꼭지는 어려운데 제가 뒤쪽에 두개를 봤는데 그건 어렵지 않았어요. 관심가는 주제부터 먼저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오천보 열심히 걷고 열심히 읽으시는 부지런나무님 응원해요^^

난티나무 2022-09-23 1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어젯밤에 이 글 일등으로 보고 감동받은 느낌을 다른 분들이 댓글로 남겨주셨네요.^^
저 아직 1장 안 읽어서 ㅎㅎㅎ 독서괭님 글도 다시 찬찬히 읽고 1장 읽기에 참고할게요!!! 👍👍❤️

독서괭 2022-09-26 12:46   좋아요 2 | URL
난티나무님이 1등으로 봐주셨군요. 감사합니다 ㅎㅎ
이미 책 진도는 많이 나가신 것 같은데, 1장도 읽으셨나요? 참고가 되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건수하 2022-09-27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페이퍼 감사해요. 저번에 한 번 읽고, 1장 읽고 마지막 부분에 대충 이해가 되었다 생각하고 다시 와서 읽었는데... 다시 머리가 멍해지고 있어요 ^^;;
이론적 토대가 많이 부족하네요 흑흑...
그치만 ‘정동‘ 이란게 뭔지 처음에 좀 설명해주면 좋았을텐데...

<퀴어이론 산책하기> 담아뒀는데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일단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로 ^^


독서괭 2022-09-27 15:14   좋아요 2 | URL
오 재독까지 해주시다니 수하님 제가 영광이네요.
제가 많이 요약해놔서 더 이해가 어려우실 거예요. 원본(퀴어이론)을 읽은 저도 그냥 아스라하게 이런 건가 하고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ㅋㅋㅋ
김예란님은 글 분량 때문이겠지만 다들 이거 알쥬?하고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느낌이 있죠? ㅋㅋㅋ 그거 아닙니다 선생님 정동이론 이런 거 우린 몰라요! 하고 외치고 싶은 기분 -_-;;
 
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지 6>권의 전반부는 전권에 이어 용정이 배경이다. 

특히 서희와 길상의 마음의 엇갈림, 길상의 서희로부터의 도피(회령에 있는 옥이엄마와의 공공연한 관계 맺음), 서희의 분노,

그리고 마침내 서희가 길상에게 회령에 같이 가자고 한 후 옥이엄마를 만나겠다고 선언한 뒤, 다시 용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마차사고를 계기로 길상이 도피행각을 접고 서희에게 안착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운데, 그놈의 신분이 뭐라고.. 신분제 다 무너져가는 마당에도 그것 때문에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모습이 하 답답하다. 하지만 서희의 성장배경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 독자들은.. 서희가 왜 그 모냥(?)인지, 그 보수적 관념을 내던져 버리지 못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서희의 드높은 긍지(랄까 자존심)는 하인과 혼인하여 뒷말을 듣는 걸 용납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서희로서는 어느새 집안을 떠받치고 있는 소문난 인재 길상을 혼인으로 묶어두는 편을 택하고자 한다(그 속에 길상을 남에게 줄 수 없는 강한 소유욕도 있을 터다). 그러고서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이를 계기로 자신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자들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 또 서희라는 인간이다. 아, 서희가 빨리 평사리로 돌아가 조준구를 밟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밟겠지?) 


<토지 6>권의 후반부는 다시 평사리 이야기다! 평사리, 궁금했다.

이번에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은 구천이, 아니 환이다. 환이는 과거 동학당으로 활동했고 일제에 굽히지 않은 채 숨어 지내는 동학도들을 찾아 규합하여, 의병인 듯 의병 아닌 의병 같은~ 조직을 꾸렸다. 앞으로 잘 나서지 않으면서 사실 모든 걸 지시하고 결정하는 숨은 지도자인 듯하다. 환이를 따라다니는 강쇠는 술을 끊임없이 들이부으면서도 멀쩡한 환이를 보며 "참 장부다~" 어쩌고 감탄하지만, 나는 들으면서 "그냥 미친놈이여.." 했다. 괜히 배우려 하지 마라, 강쇠야. 니가 훨씬 괜찮은 놈이야.. 

환이는 첫 등장 때부터 약간 미친 듯한 구석이 있었지만(타고난 것 + 동학당 활동 + 아버지 처형의 결과인가?) 별당 아씨 죽고 나서 완전 돌아버린 듯하다. 물론 똑똑하고 냉철하지만, 너무 냉정한데다가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처럼 군다. 별당아씨가 그 꼴을 보면 참 좋아라 하겄다, 이눔아.. 참, "진달래꽃을 따다가 당신께 화전을 드리고 싶어요"라는 별당아씨의 말은 6권에서도 나온다. 4권에서 처음 나왔지만, 6권에서 더 처절하게 등장하는데, 아마 다락방님이 6권으로 기억하신 이유도 그 때문인 듯. 

환이의 냉정함은 6권 막판에 아주 잘 드러난다. 넌 왜 쓸데없이 잘생겼냐. 그 고생을 했으면 좀 볼품없어지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여전히 사람 홀리게 잘생긴 모양이다. 

예전부터 등장은 했지만 6권 후반부에서 주요인물로 떠오른 재미있는 사람은 혜관 스님. 능청맞은 말솜씨도 재밌고, 그러면서도 따스한 정이 있어 좋아하게 된 인물이다. 백정 딸과 결혼한 관수네 집에 가서, 자꾸 스스로 백정 딸과 결혼했음을 신경쓰며 비꼬는 관수에게 한바탕 뭐라고 했다가, 이를 백정 무시하는 말로 오해한 진짜 백정이 소잡는 칼 들고 뛰쳐나오는 바람에 무진장 당황하는 장면은 진짜 웃겼다..ㅋ 

계급이란, 신분이란 무엇인가.. 얼마전 읽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주인공도 거슬러 올라가면 백정의 후손인데, 백정의 딸, 손녀라고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나온다.  


참참, 6권 후반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봉순이의 재등장! 봉순이 넘 궁금했는데,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진주에서 기생이 되었다. 타고난 재주에 미색까지 갖춰 한 양반 할배가 마련해준 집에서 살고 있는데, 형편이 그리 좋은 건 아닌 듯. 그 집에 물지게를 나르는 석이는 조준구 때문에 죽은 한조의 아들이다. 이 석이가 또 환이네 합류하게 되네? 아주 흥미진진. 

지금 7권을 이미 듣고 있는데, 7권에서 기화(봉순이)는 서울로 가 좋은 자리를 잡고, 이어 혜관을 따라 용정에 가 드디어.. 서희와 재회한다! 서희와 재회장면이 뭉클했는데, 가기 전에 내내 서희도 보고싶지만 길상이에 대해 품었던 연정 때문에 싱숭생숭해 하던 봉순이지만 막상 만나 서희가 길상과 혼인했단 얘길 들으니 딱히 화가 나지 않는다. 서희 역시 봉순이에 대해 그냥 몸종이었던 아이일 뿐이라고 되뇌지만, 둘이서 마주하는 순간 둘은.. 어릴 적 연못가에서 이야기 나누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둘 사이에 끼어있던 남자도 잊고. 유년을 함께 보낸 시간이 형제자매를 만든다면 두 사람은 가족이라고..(오디오북으로 들어서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난다 ㅠㅠ)


아니 이렇게 재밌는데 내가 왜 내용을 기억을 못할까.. 음.. 

그러고보니 6권 전반은 쓸데없이 잘생긴 길상, 후반은 쓸데없이 잘생긴 환이가 중심이다. 쓸데없.. 지는 않나? 암튼, 두사람은, 특히나 환이는, 지금 무척 불행한데.. 이 불우한 미남들의 앞날은 어찌될지?

흥미진진 토지 듣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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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9-19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길상이와 환이가 잘생겼나 보군요?ㅋㅋㅋ
봉순이는 예쁘고....
그럼 서희는???
신분의 차이가 이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나오는군요.
북플친님들의 쏙쏙 올라오는 토지 이야기 읽다보면 아~~ 내년쯤엔 잃시찾과 토지를 읽어볼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독서괭 2022-09-19 19:04   좋아요 2 | URL
서희는 뭐 어마어마한 미인으로 나옵니다 ㅎㅎㅎ 세상이 급변하고 요동치고 있는데 뿌리깊이 박힌 신분사상을 사람들이 벗어나기가 쉽지 않네요~
책나무님도 내년에 도전하시는 겁니다~ 권수는 토지가 더 많지만 읽기는 더 쉬우실 듯요 ㅎㅎㅎ

새파랑 2022-09-19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대가 흘러도 잘생긴게 최고군요 ^^ 전 오디오북은 집중이 잘안되던데 독서괭님은 꾸준히 잘 듣고 계신거 같아요. 역시 집중력의 독서괭님 입니다~!!

독서괭 2022-09-21 17:56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그들은 잘생겼지만.. 불우하다니까요? ㅋㅋㅋㅋ 저도 집중해서 듣지는 못하고, 운전하며 듣느라고 막 사상 논쟁하고 그럴 때는 흘려듣기 하기도 합니다^^;;

다락방 2022-09-20 0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도 1권에 멈춰있는데 독서괭 님 진도 팍팍 나가시네요!! >.<

독서괭 2022-09-21 17:56   좋아요 1 | URL
제가 한번에 많이 듣지는 못하지만 딱 정해진 시간(퇴근길)에 꾸준히 듣고 있어서 느리게 꾸준히 가고 있습니다^^ 다락방님도 정해진 시간에 들어보세요! 흐름 끊기면 못 들으십니다 ㅎㅎ

scott 2022-09-28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토지 리뷰 읽으니
박경리 작가님 평전이 읽고 싶어 졌습니다 ^^

독서괭 2022-09-28 14:10   좋아요 1 | URL
박경리님 평전! 스콧님 리뷰를 읽고 싶습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지음, 강수정 옮김 / 코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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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로서의 경험담과 스스로가 내담자가 되어 심리치료를 받은 경험담을 픽션처럼 잘 버무려낸 책. 또라이 존, 시한부 줄리, 노답 샬럿, 심술쟁이 리타까지 다양한 내담자들의 변화를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저자가 이들에게 느끼는 애정을 독자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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