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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 - 2부 2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지 6>권의 전반부는 전권에 이어 용정이 배경이다.
특히 서희와 길상의 마음의 엇갈림, 길상의 서희로부터의 도피(회령에 있는 옥이엄마와의 공공연한 관계 맺음), 서희의 분노,
그리고 마침내 서희가 길상에게 회령에 같이 가자고 한 후 옥이엄마를 만나겠다고 선언한 뒤, 다시 용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마차사고를 계기로 길상이 도피행각을 접고 서희에게 안착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운데, 그놈의 신분이 뭐라고.. 신분제 다 무너져가는 마당에도 그것 때문에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모습이 하 답답하다. 하지만 서희의 성장배경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 독자들은.. 서희가 왜 그 모냥(?)인지, 그 보수적 관념을 내던져 버리지 못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서희의 드높은 긍지(랄까 자존심)는 하인과 혼인하여 뒷말을 듣는 걸 용납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서희로서는 어느새 집안을 떠받치고 있는 소문난 인재 길상을 혼인으로 묶어두는 편을 택하고자 한다(그 속에 길상을 남에게 줄 수 없는 강한 소유욕도 있을 터다). 그러고서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이를 계기로 자신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자들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 또 서희라는 인간이다. 아, 서희가 빨리 평사리로 돌아가 조준구를 밟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밟겠지?)
<토지 6>권의 후반부는 다시 평사리 이야기다! 평사리, 궁금했다.
이번에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은 구천이, 아니 환이다. 환이는 과거 동학당으로 활동했고 일제에 굽히지 않은 채 숨어 지내는 동학도들을 찾아 규합하여, 의병인 듯 의병 아닌 의병 같은~ 조직을 꾸렸다. 앞으로 잘 나서지 않으면서 사실 모든 걸 지시하고 결정하는 숨은 지도자인 듯하다. 환이를 따라다니는 강쇠는 술을 끊임없이 들이부으면서도 멀쩡한 환이를 보며 "참 장부다~" 어쩌고 감탄하지만, 나는 들으면서 "그냥 미친놈이여.." 했다. 괜히 배우려 하지 마라, 강쇠야. 니가 훨씬 괜찮은 놈이야..
환이는 첫 등장 때부터 약간 미친 듯한 구석이 있었지만(타고난 것 + 동학당 활동 + 아버지 처형의 결과인가?) 별당 아씨 죽고 나서 완전 돌아버린 듯하다. 물론 똑똑하고 냉철하지만, 너무 냉정한데다가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처럼 군다. 별당아씨가 그 꼴을 보면 참 좋아라 하겄다, 이눔아.. 참, "진달래꽃을 따다가 당신께 화전을 드리고 싶어요"라는 별당아씨의 말은 6권에서도 나온다. 4권에서 처음 나왔지만, 6권에서 더 처절하게 등장하는데, 아마 다락방님이 6권으로 기억하신 이유도 그 때문인 듯.
환이의 냉정함은 6권 막판에 아주 잘 드러난다. 넌 왜 쓸데없이 잘생겼냐. 그 고생을 했으면 좀 볼품없어지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여전히 사람 홀리게 잘생긴 모양이다.
예전부터 등장은 했지만 6권 후반부에서 주요인물로 떠오른 재미있는 사람은 혜관 스님. 능청맞은 말솜씨도 재밌고, 그러면서도 따스한 정이 있어 좋아하게 된 인물이다. 백정 딸과 결혼한 관수네 집에 가서, 자꾸 스스로 백정 딸과 결혼했음을 신경쓰며 비꼬는 관수에게 한바탕 뭐라고 했다가, 이를 백정 무시하는 말로 오해한 진짜 백정이 소잡는 칼 들고 뛰쳐나오는 바람에 무진장 당황하는 장면은 진짜 웃겼다..ㅋ
계급이란, 신분이란 무엇인가.. 얼마전 읽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주인공도 거슬러 올라가면 백정의 후손인데, 백정의 딸, 손녀라고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나온다.
참참, 6권 후반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봉순이의 재등장! 봉순이 넘 궁금했는데,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진주에서 기생이 되었다. 타고난 재주에 미색까지 갖춰 한 양반 할배가 마련해준 집에서 살고 있는데, 형편이 그리 좋은 건 아닌 듯. 그 집에 물지게를 나르는 석이는 조준구 때문에 죽은 한조의 아들이다. 이 석이가 또 환이네 합류하게 되네? 아주 흥미진진.
지금 7권을 이미 듣고 있는데, 7권에서 기화(봉순이)는 서울로 가 좋은 자리를 잡고, 이어 혜관을 따라 용정에 가 드디어.. 서희와 재회한다! 서희와 재회장면이 뭉클했는데, 가기 전에 내내 서희도 보고싶지만 길상이에 대해 품었던 연정 때문에 싱숭생숭해 하던 봉순이지만 막상 만나 서희가 길상과 혼인했단 얘길 들으니 딱히 화가 나지 않는다. 서희 역시 봉순이에 대해 그냥 몸종이었던 아이일 뿐이라고 되뇌지만, 둘이서 마주하는 순간 둘은.. 어릴 적 연못가에서 이야기 나누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둘 사이에 끼어있던 남자도 잊고. 유년을 함께 보낸 시간이 형제자매를 만든다면 두 사람은 가족이라고..(오디오북으로 들어서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난다 ㅠㅠ)
아니 이렇게 재밌는데 내가 왜 내용을 기억을 못할까.. 음..
그러고보니 6권 전반은 쓸데없이 잘생긴 길상, 후반은 쓸데없이 잘생긴 환이가 중심이다. 쓸데없.. 지는 않나? 암튼, 두사람은, 특히나 환이는, 지금 무척 불행한데.. 이 불우한 미남들의 앞날은 어찌될지?
흥미진진 토지 듣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