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목표: 월 2권 이하 사기, 5권 이상 읽기. 

이번 달도 성공입니다(간신히). 

이번 달 산 책 2권은~ 


















어라 그러고보니 둘다 가볍다는 말이 제목에 들어가는 공통점이.. 내게 가벼움이 좀 필요한 시기였나?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는 유하 시집, 몇년 전 빨간책방을 열심히 들을 때, 시 특집을 하면서 이동진 작가가 몇 편을 낭독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시집을 찾아봤으나 절판되어 있던 것. 그런데 이번에 새로 나왔길래 덥썩. 사실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이동진 작가가 낭독했을 때만큼의 감동이 오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몇편의 시는 기억해두고 싶을 만큼 좋았다. 

<가벼운 마음>은 크리스티앙 보뱅, 요즘 서재에서 자주 눈에 띄는 작가의 소설이다. 잠자냥님 리뷰를 읽고 충동(!) 구매. 월 2권 사니 정하기가 어려워서 미루고 미루며 고민 중이었는데 단숨에 결정했다. 빠르게 읽고 리뷰를 썼다. 후회없는 선택이었으니.. 앞으로도 충동구매를 해볼까 싶다 ㅋㅋ

<드립백 산토스 디카페인>은 계속 구매하고 있는 드립백.

<본투리드 초저점도 삼색 볼펜>은 최근 일기를 쓰면서 펜이 좀 필요해서 샀는데, 아직 안 써봤다;; 



예외: 아이들 책
















글밥이 좀 있고 내용이 풍부한 책을 좋아하는 첫째를 위해 산 책들

<성냥팔이 소녀와 마법 반지>, <쫑긋 가족의 케이크 만들기>, <귀 큰 토끼의 고민 상담소>

첫째는 혼자 읽기 때문에 이제 내용 많은 책은 내가 읽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쫑긋 가족은 시리즈 1권 <쫑긋 가족을 소개합니다>를 재미있게 읽어서 2권을 구매한 것.

세권 다 재미있게 읽은 듯 하다. 

벌레 관찰을 좋아하는 첫째와 둘째를 위해 산 책은 <벌레 팬클럽>

벌레들의 놀라운 점들, 특징들을 귀여운 그림과 함께 보여주어 아이들이 흥미롭게 읽었다. 

귀신보다 벌레를 무서워하던 나도 애 낳고 나서는 애들 앞에서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여 조금은 극복한 듯?? (물론 제일 무서운 건 사람) 


읽은 책: 5권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화로, 그동안 안 읽고 있던 이 책을 읽었다. 아주 얇아서 금방 읽는다. 너무 좋다거나 취향이라거나 한 건 아닌데, 어쩐지 인상에 남는 작품이다. <부끄러움>을 읽어보고 싶어 찍어두었다. 리뷰를 남겼다. 

<토지8>- 오디오북 계속 듣고 있다. 리뷰를 썼다. 

<가벼운 마음>- 리뷰를 썼다. 2022 하반기 문학 원픽이 될 것 같다.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리뷰 써야 하는데, 내용이 촘촘해서 약간 엄두가 안 나고 있다.. 그래도 써야지. 

<포르노랜드> - 이것도 리뷰 써야 하는데, 내용이 다시 훑어보기 힘들어서 미루고 싶은 마음이.. 큼. 그래도 써야지.. 

이렇게 겨우겨우 5권을 채웠다. 휴. 

요즘 예전만큼 책읽기 속도가 안 나는데, 한가지 이유는 모닝 루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5:50경 일어나서 일기 쓰고, 업무 관련 공부나 영어공부를 좀 하고,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데, 이 모두를 할 수 있는 날이 많지는 않고(둘째의 방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하므로 애들과 함께 취침하여.. 쭉 잔다. 그전에는 애들 재우다 잘 때도 있었지만 일어나서 책 읽을 때도 있었고 이때 책 진도가 많이 나갔었는데, 그게 사라지니 책을 길게 읽을 시간이 없다. 짜투리 독서만 진행 중. 그래도 그나마 모아모아 이만큼 읽었으니 그만하면 됐다. 


10월 마지막 날 이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주말에 터진 참사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아 이제야 쓴다. 속속들이 밝혀지는 그날의 일들이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설레고 들떴을 그날의 청년들..(물론 청년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사망자들, 유족들, 목격자들, 출동했던 구급대원들, 소방대원들, 경찰관들.. 깊이 생각하면 괴로워서 일상을 위해 마음 한켠으로 밀어두게 된다. 내가 아이들과 평온하게 자고 있던 그 시간에 별로 멀지도 않은 이태원에서는... 내가 일상을 지속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일상이 파괴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분위기를 바꾸어, 11월에 읽을 책으로 준비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 뚜둥! 

11월 1일이 되자마자 독서대에 펼쳐놨는데, 독서대에 펼쳐지냐며 사진을 부탁한 공쟝쟝님! 그 독서대는 바로 알라딘 스누피 독서대입니다. 

서문 다 읽고 이제 1장 딱 펼쳐둔 상태. 올해 안에 다 읽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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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3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두 달이 남았으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다락방> 완독을 응원합니다.

독서괭 2022-11-03 16:00   좋아요 2 | URL
앗 이 빠른 댓글! 레삭매냐님 응원 감사합니다^^ 조금씩 꾸준히 읽어보려고요!

잠자냥 2022-11-03 16:01   좋아요 3 | URL
캬, 매냐 님보다 제가 1분 늦었네요.....ㅋ

잠자냥 2022-11-03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22 하반기 문학 원픽! ㅋ 뿌듯합니다요.
아니, 그나저나 5시 50분 기상 실화입니까?
근데 무엇보다 귀요미 둘째가 어떻게 방해하는지 궁금하네요;;; 귀여울 거 같은데......ㅋ

독서괭 2022-11-03 16:07   좋아요 2 | URL
제가 일어나 나가는 기척을 느끼는지 귀신같이 일어나서 쫓아나오기도 하고요.. 웬일로 안 일어나네 하면서 루틴 진행하고 있으면 방문 열고 우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ㅋㅋ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들어와서 우유달라고 하지요. ㅎㅎ
전 애들이랑 10시 전에 잠들기 때문에 5:50 기상해도 수면시간이 적지는 않습니다 ㅋㅋ

거리의화가 2022-11-03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짜투리 독서를 모아 모아 5권. 대단하신 거에요!
저도 같은 독서대는 아니지만 비슷한 모양의 독서대가 있어서 그걸 활용하려구요^^ㅎㅎㅎ
저 점도펜 써봤는데 나쁘지 않습니다ㅋㅋ

독서괭 2022-11-03 16:09   좋아요 2 | URL
오 화가님 펜 써보셨군요. 저도 지금 쓰는 펜 다 쓰면 써보려고요 ㅎㅎ
다미여 덕에 독서대 제대로 활용할 듯 합니다^^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아 5권이지만요 ㅎㅎ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11-03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빨리 일어나던 녀석이 사춘기가 시작되면 안 일어나서 또 문제가 되지요.
독서괭님 글 보면서 항상 추억을 떠올립니다.
새해목표 지키면서 책 열심히 읽고 일기와 글 쓰시는 독서괭님, 응원합니다^^

독서괭 2022-11-04 16:2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사춘기가 시작되면 안 일어나 문제.. 그러네요. 첫째는 지금도 깨우기 힘들 때가 종종 있어서, 엄마가 나 꺠우느라 예전에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며 반성하곤 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페넬로페님의 독서와 쓰기도 응원해요^^

햇살과함께 2022-11-03 17: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결심이 바위같이 단단한 분이신가요?!
잠자냥님 정도의 글빨!이 되어야 독서괭님을 유혹할 수 있다 ㅎㅎ
하반기 원픽이라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모닝 루틴까지. 다미여도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2-11-04 16:24   좋아요 3 | URL
책 적게 사는 걸로 알라딘 마을에서 굳은 의지의 표상이 되어버린 독서괭..
하지만 다른 일에서는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ㅋㅋㅋ
서재글들 보면서 유혹을 느낄 때가 많은데, 열심히 참고 있지요^^
햇살님, 응원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11-03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원 이상 사은품은 책 구매 권수에 포함해야 합니다~!!

역시 지킬건 지키는 독서괭님은 최고네요 ^^ 11월도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2-11-04 16:25   좋아요 2 | URL
에이 사은품은 책이 아니잖여요!! ㅋㅋ
이번달도 응원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새파랑님도 11월엔 더 많이 읽으시길요^^

다락방 2022-11-04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대가 다락방의 미친여자를 아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아요. ㅋㅋ
아 저도 꺼내야 하는데, 꺼내야 하는데.....(먼 산)

독서괭 2022-11-04 17:30   좋아요 1 | URL
좀 힘겨워보이지만 생각보다 안정적입니다 ㅎㅎ
다락방이 다락방을 멀리 하려 하시면 어쩝니까? 어서 꺼내서 따악 펼쳐두시죠^^

공쟝쟝 2022-11-04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갓생살지마… 괭님…. 혼자 살면서 갓생안하는 내가 모가돼….. …. ㅋㅋㅋㅋㅋㅋㅋ
(라고 말하는 저는 자기계발 하러 가는 지하철입니닼ㅋㅋㅋㅋ 쉿)
그리고 음… 혹시나 엄청 근사한 독서대 기대했던 내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독서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대가 뿔라질거 같은 비주얼엨ㅋㅋㅋㅋ 역시 다미여를 어떤 독서대가 소화하나 ㅋㅋ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갑니다아!ㅋㅋㅋ 내 친구 괭님은 사진도 독서대도 관대하신 관대하신 분!! ㅋㅋㅋ

독서괭 2022-11-07 15:08   좋아요 2 | URL
갓생 들어는 봤지만 뭔지 몰라서 찾아봤어요 ㅋㅋㅋ 덕분에 최신용어를 알게 됐다 ㅋㅋ 자기계발은 잘 하고 오셨나요?ㅎㅎ
엄청 근사한 독서대 ㅋㅋ 저 2단짜리 엄청 큰 독서대는 있긴 한데요, 거기엔 업무용 서류들이 올라가 있어서 독서용으로 쓰지 않습니다. 이쁘기도 스누피가 더 이쁨.. 독서대 안 뿌러져요. 스누피 보기보다 튼튼한 녀석이라구요 ㅋㅋ 그래도 써브웨이 사진보단 낫지유?

scott 2022-11-04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의 사랑스러운 막둥이
스누피가 꼬옥 안고 있는 우드 스톡 같은 모습 일거라 상상 합니다 ㅎㅎ

독서괭 2022-11-07 15:08   좋아요 2 | URL
우드 스톡! ㅋㅋㅋ 머리 뻗쳤을 때 생각하니 닮은 것 같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05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미여 때문에 독서대 하나 살까 (작년부터 하는 고민) 하다가 어차피 줄 치려면 자꾸 내려야 하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지금은 독서대 없이 읽고 있어요.
이달의 목표 성공 축하드려요. 5권 읽기 쉽지 않지요. 전 계획 세우고 잘 지키시는 분들을 항상 존경합니다!!!

독서괭 2022-11-07 15:09   좋아요 1 | URL
다미여 때문에 독서대까지 사시려고..! 어라, 저는 독서대에 놓고 줄 치는데요,, 가능합니다. (제가 줄을 대충 쳐서 그런지도.. 사진도 대충 찍고 줄도 대충 긋는 독서괭..)
축하 감사합니다^^ 존경은 민망하고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2-11-05 1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닝 루틴!!!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해져도 모닝 루틴 꼬박 지켜내는 괭님 존경합니다^^
둘째는 귀여워요ㅋㅋㅋ 애들은 왜 엄마가 곁에 없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일어날까요??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엄마가 다가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망가거나, 핸드폰 안본 척하고....ㅋㅋㅋ
괭님 애기들 사춘기가 되어도 이쁠 것 같아요.
독서대도 이쁘고, 책도 이쁘고, 다 예쁘네요^^

독서괭 2022-11-07 15:11   좋아요 2 | URL
어휴, 며칠 모닝루틴 제대로 못했습니다. 애들 감기로 잠 설치니 넘 피곤해서 ㅠ
둘째가 귀엽고.. 귀엽고.. 귀엽습니다 ㅋㅋ 우다다 뛰어오는 소리도.
사춘기 되면 도망간다니 서운하겠네요 ㅎㅎ 지금을 즐겨야지요. 예민 첫째께서 사춘기를 크게 앓지 않을지 조금 걱정입니다. ㅎ
책나무님 감사합니다^^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마녀 D의 사법연대기
D 지음, 김수정 외 감수 / 동녘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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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고작 한명의 비전문가가, 고착된 시스템을 바꿔나간다는 게 말이 될까? 말이 된다. 이 책이 그걸 입증한다. 성폭력/성착취 피해 당사자들에게도, 사법시스템 내에서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도 지침서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저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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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10-29 08: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다 읽으셨군요~ 한 명의 단단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요! 저도 응원합니다!

독서괭 2022-11-03 14:39   좋아요 1 | URL
햇살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탄 나오는 책이었어요. 함께 응원해요^^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맑고 청아한 웃음소리와 함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또르르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슴속에 들어온다. 철창에 갇힌 늑대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종달새가 된 뤼시처럼,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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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삶이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내가 그것을 잊으려는 찰나에 나를 만나러 온다. 그러니 무엇 하러 인생을 걱정하겠는가?    - 162쪽 



새벽에 깬 나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안을 걸어다닌다, 라고 쓰고 싶지만 사실이 아니다. 발바닥이 방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와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무게와 기척 어느 하나 고양이와 비슷하지 않다. 인간은 왜이리 소란스러운가. 인간과 함께 사는 고양이라면 그 점을 신기하고도 가련하게 생각할 법하다. 게다가 육신의 무게를 더 육중하게 만드는 마음이 있다.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등반객이라도 되는 것마냥 어깨에 등에 꽉꽉 채운 걱정과 불안, 다짐과 후회, 책임감과 죄책감들. 그 배낭을 메고 사뿐사뿐 걸으려 해봐야 헛수고다. 인간은 왜, 담벼락과 담벼락 사이를 뛰어넘는 고양이의 도약처럼 분침과 분침 사이를 퐁퐁퐁 뛰어 다니지 못하는가, 가벼운 마음으로. 


뤼시는 현대의 인간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이다. 그녀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다. 가정이 있고, 친구가 있고, 학교에 가고, 결혼을 하고, 일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일도 가벼운 도약 한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다. 


나는 뤼시가 극강의 ENFP가 아닐까 한다 ㅋㅋ 이 성향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인데, 완전히 반대인 ISTJ로 보이는 아버지는 어머니와 딸로 인해 미칠 지경이다. 나는 아버지 쪽에 더 가까운 인간으로서 이런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상상이 된다. 그러나 또한 극과 극은 끌리기도 하는 법. 자유로운 영혼을 동경하는 마음이 내 안에도 있다. 자유로운 영혼, 자연과의 교감, 하면 떠오르는 사람(작품)- <그리스인 조르바>를 참 좋아했지만, 여성혐오의 시선이 짙어서 거리낌없이 좋아하기가 꺼림칙했다. 이제 뤼시로 조르바를 대체한다. 뤼시를 동경하는 데는 거리낄 것이 없다. 늑대를 사랑하고, 단풍나무를 사랑하는 뤼시. 


심각한 상황에서도 곧잘 웃음을 터뜨리는 어머니. 뤼시 또한 "때로는 가장 깊은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감정에는 지울 수 없는 희극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115쪽)면서, 가벼운 마음의 계보를 이어간다. 결혼하겠다는 뜻을 알려온 뤼시에게 어머니가 보낸 편지는 놀랍다. "감방은 매력적이고 편안하다고 해도 여전히 감방일 뿐"이라며, "교도관도 없고 문도 없고 창살도 없고 자물쇠도 없지만, 감방은 그래도 감방이지."(97쪽)라고 하는 어머니.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부분이다.



그래도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기쁘다. 나는 그게 좋아. 아주 좋은 신호야. 우리가 너를 잘 키웠고,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니까. 내가 틀리면 좋겠지만,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 하여간 자식에게 좋은 길은 결코 부모를 위한 길이 아니지. 절대로 아니야.     - 98쪽 


아니 이런 대인배가... 내가 과연 내 자식들에게 훗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 내가 느낀 이 '대인배다'라는 감상을, 뤼시는 이렇게 적는다. 


내 어머니는 자식들이 무엇을 하든 언제나 기뻐했을 것이다. (...) 우리가 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녀 혼자만의 비밀로 남아 있을 뿐이다. 누가 됐건, 제아무리 남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를 비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그것이 엄마로서 그녀의 특권이며, 그 특권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배포다.   - 151쪽 



뤼시는 원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자란다. 서커스단에서 크면서 남들이 겪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게 되지만, 스스로도 틈만 나면 가출을 행해서 낯선 사람들과 사귄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대단하다. 아기 때부터 모든 걸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가져가 맛보려 하고, 커가면서 궁금한 게 수없이 많이 생긴다. 사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어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수준의 일까지도 해볼 수 있는 것이 아이들만의 특권이 아닌가.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런 특권이 없다. 위험하다거나 다른 사람이 싫어한다거나 하는 이유, 보다 솔직히는 '내가 귀찮아서' 못하게 한 수많은 일들. 어떤 아이들은 방치된 상태로 자유를 누리지만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회로부터 크게 혼이 난다. '노 키즈 존'까지 만드는 사회에서 뭘 바랄까. 


뤼시는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한다는, 어찌 보면 게으른 마인드에 입각해 결혼까지 한다. 뤼시는 로망을 사랑하지 않고, 로망은 뤼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빠져 있다.그걸 알기 때문에 후에 이별을 고할 때도 뤼시는 가볍게 그 과정을 통통 지나간다. 사랑에 빠진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자와 헤어질 때도.



그렇다. 때로는 가장 깊은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감정에는 지울 수 없는 희극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고, 모두 이기심과 연관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우는 것은 자기 자신 떄문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이 생각 자체는 그리 어리석지 않지만, 그런 생각 뒤에 슬픔이 따라온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 115, 116쪽 



이 소설은 뤼시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형성해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유년에 만난 늑대의 눈에서부터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뤼시의 기질은 스스로 '수호천사'라고 부르는 존재로 의인화되는데, 그가 주로 하는 일은 하품이며, 뤼시에게 "강력한 수면 욕구를 주어서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나를 떼어 놓는 것"(175쪽)이다. 잠시 기질과 어긋나는 길- 성공을 향해 사다리를 올라타는 일에 매진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수호천사의 부름에 따라 그녀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혼자 호텔에서 글을 쓴다. 그렇게 그녀는 성장하는데, 바로 어머니가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뤼시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가 되고 나서야 성장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품은 사랑, 우리를 충분히 안다고 믿는 사랑에서 벗어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들을 할 때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설사 그들에게 말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고, 그들이 던져준 사랑의 망토로 덮을 수 없으며, 우리 속에 머물러 우리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 177쪽 


뤼시의 가벼움은 경박함이 아니다. "카르페 디엠, 순간을 즐겨라"와 비슷하려나. "모든 건 처음부터 사라지며 소멸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절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 그 때문에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생각으로 나는 이 순간에도 노래 부를 수 있다."(154쪽)는 태도.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비극으로 만드는 인간의 모든 한계들을 인식하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삶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노닐듯 지나갈 수 있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다운 문장들이 내 속에서 뛰노는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인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지켜야 할 '거리두기'를 생각한다.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 성장한다는 것을 유념하도록.  



누구도 아닌 나의 신이여, 나에게 매일 일상의 노래를 주소서. 어릿광대이신 나의 신이여,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당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그걸로 이미 충분합니다. 아멘.   - 146쪽 



* 역시 믿고 읽는 자냥오별이었다 ㅋㅋㅋ 

나는 어머니의 말 이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만일 내가 더는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나에게 사라질 필요가 더는 없다는 뜻이다. 결혼은 여전히 여성이 보이지 않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P120

생각해 보면 아마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던져버린 이 생애 안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가장 위대한 기술은 거리두기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불타오르고, 너무 멀면 얼어붙는다. 정확한 지점을 찾아서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건 현실 속의 모든 배움처럼 비용을 치러야만 배울 수 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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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0-27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mbti가 ENFP와 ISTJ가 서로 극과 극이어서 힘들다구요??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는 INFP와 ESTJ거든요.
앞이 서로 바뀌어도 엄청 힘들거든요ㅜㅜ

독서괭 2022-10-28 17:55   좋아요 2 | URL
극과 극은 힘들기도 하지만 끌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MBTI 놀이(?)에 재미를 붙이다보니, 소설 읽으면서도 MBTI가 뭘까 생각하게 되네요 ㅋㅋ
책나무님도 배우자와 완전 반대시군요! 서로 다른 거 맞춰가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청아 2022-10-27 21: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괭님!! 저 엔프피인데ㅋㅋㅋㅋㅋ사랑스럽고 자유로운 뤼시 너무 좋았어요.
뤼시의 엄마가 진짜 대인배는 대인배죠. 아빠가 그렇게 독불장군처럼 굴어도 늘
웃어주고...그런데 삶의 철학은 또 이리 남다르니. (놀라운 결혼관)그런걸보면
뤼시엄마가 혈액형은 AB형이 아니었을까요? AB형이 타고난 철학자라고 하더라구요.^^*


독서괭 2022-10-28 17:56   좋아요 2 | URL
미미님 엔프피 ㅋㅋㅋ 사랑스럽고 자유로운 미미님이닷!
뤼시엄마 진짜 신기했어요. 본인이 자유로운 건 그럴 수 있는데, 아이를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자유롭게 풀어주는 거요. 현실에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은 캐릭터 같아요.
저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도 엔프피더라고요^^

새파랑 2022-10-27 22: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네요 ^^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다고 하시니 읽어보고 싶네요~!!

잠자냥 2022-10-27 23:46   좋아요 4 | URL
마지막 문장이라면 자냥오별?! 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2-10-28 06:05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ㅋ 믿고 보는 잠자냥님 별 다섯이죠 ㅋ

독서괭 2022-10-28 17:57   좋아요 4 | URL
역시 새파랑님 핵심을 알아보시는 능력이 훌륭하십니다 ㅎㅎㅎ
시적이고 잔잔해요. 새파랑님도 읽어보심 좋을 듯 합니다^^

잠자냥 2022-10-27 2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뤼시 ENFP설에서 빵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진짜 그럴 거 같기도. I로 시작하는 저는 뤼시 같은 딸래미나 배우자 있으면……..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0-28 17:58   좋아요 3 | URL
‘극강의‘ ENFP 라고 부연합니다 ㅋㅋ 저도 I로 시작해서요, 또 끝이 J인 사람들은 P의 즉흥성에 많이 당황할 듯.. 뤼시도 뤼시엄마도 좋지만 막상 내 가족이면 너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2-11-04 08:4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ESFP 입니다!!

독서괭 2022-11-04 16:22   좋아요 0 | URL
ㅋㅋ 한끗차이 다락방님!!

mini74 2022-10-30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런 비빌이라면 진짜 좋겠어요 한 백개쯤 갖고 싶은 비밀 ~ 믿고보는 자냥오별 ㅎㅎ 북플의 새로운 사자성어 인가요 자냥오별 !!!

독서괭 2022-11-03 14:4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런 비밀 갖고 싶습니다 ㅎㅎㅎ 자냥오별은 사랑입니다. 후회가 없어요! 미니님 추천 영상도 믿고 보는 쏘스입니다^^
 
토지 8 - 2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지 7, 8권에 걸쳐 흥미진진, 통쾌한 장면은 역시 서희의 지령을 받은 공노인이 임역관, 김환과 손잡고 조준구를 들었다 놨다 농락하는 부분이다. 공노인 이사람, 처음 월선이가 인삼장수 따라갔다고 했을 때 그 인삼장수로 월선이의 삼촌 되는 사람인데, 이때만해도 월선이 떠나 미친놈 된 용이 얘기로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지, 용정이 배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일 줄이야. 이곳저곳 떠돌며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공노인은 용정에 자리잡고 객주업을 하면서 거간일(중개업)을 하고 있는데, 능력도 좋지만 신망이 두터운 사람, 한마디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조준구를 상대할 때는 어찌나 능구렁이 같이 연기를 잘하는지ㅋㅋㅋ 서희를 위해 시작했지만 나중엔 자기가 성 함락하듯이 재미를 붙인다. 하지만 막상 조준구로부터 빼앗겼던 땅을 되찾고 조선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서희, 그리고 그를 떠나보낼 공노인은 왠지 마음이 허탈하다. 왜일까. 


그건 실은 중요한 건 땅보다 복수보다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공노인이 오랫동안 조선을 들락날락하다가 돌아와보니, 아끼는 조카딸 월선이는 오늘내일 하며 병세가 악화되어 있다. 죽을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월선은 공노인의 집으로 오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홍이와 함께 머문다. 사랑하는 양엄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홍이의 괴로움은 아버지 용이가 도통 용정에 오지 않아 배가된다. 참다 못한 홍이가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겨울철 벌목일을 하기 위해 산판으로 떠난 용이를 거기까지 찾아가며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협박까지 하지만, 그래도 용이는 산판 일 끝내고 가겠다고 할 뿐이다. 그제야 월선이 죽을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영팔이 용이에게 크게 화를 내고 홍이를 따라간다. 어떤 사람(영팔이나 방씨 부인, 홍이)은 용이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길상)은 알 것 같다 한다. 나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가기 전에는 월선은 죽지 않을 것이다. 일찍 가면 죽음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믿음. 

결국 용이는 산판 일을 마치고 월선에게 간다. 월선과 용이의 마지막 이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애절하고 슬퍼서, 눈물을 죽죽 흘리며 들었다. 용이 이 나쁜 놈. 용이를 참 많이 욕했지만, 그래도 월선이에 대한 사랑은 진짜였다. 그는 참 한결같고 미련한 인간이었다. 


서희는 어떤가. 서희와 길상의 결혼생활은 서로를 더욱 외롭게 만든 듯하다. 길상은 서희의 조선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모른 체 하다가, 독립운동가들과 만남을 갖기 시작하더니 결국 어느날 떠나버린다. 이들은 끝까지 서로에게 속내를 터놓지 못한다. 8권의 마지막에서 서희는 마침내 조선으로 떠난다. 떠나기 직전, 첫째 아들 환국이가 사라져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겨우 환국이를 찾아낸 서희에게, 여섯살 아이는 아버지 없이는 떠나지 않겠다며 소리지른다. 아버지는 곧 뒤따라 오실 거라고, 형님이 없으면 우리 윤국이는 어떡하지, 하고 아이를 달래며 목놓아 우는 서희를 보며, 길상이가 너무너무 미워졌다. 길상이가 최참판댁 머슴살이를 하게 된 것도, 서희와 결혼하게 된 것도 그에게는 족쇄였다는 걸 안다. 서희를 사랑하지만 그녀 곁에서는 그는 영영 자기 자신일 수 없어 괴로워했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일단 가정을 이루고 아이까지 낳았으면, 떠나더라도 충분한 설명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 환국이가 자기를 찾으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 상처를 주리라는 걸 알면서, 그냥 휙 떠나는 법이 어디 있나. 울음을 터뜨린 환국이를 안으며 서희는 "절대로 당신 용서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뇌까린다. 


<토지>를 이루는 큰 줄기 중 하나였던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서희와 길상이의 사랑은 제대로 꽃피워지지도 못한 채 바스라져 간다. 

사랑은 왜이리 어려운가. 이별은 또 왜이리 서러운가. 누군가를 떠나보낸 빈자리, 용이와 서희는 각자의 가슴속 빈자리를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이제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빈자리 

                             유하


미루나무 앙상한 가지 끝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그 자리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문득 방울새 앉았던 빈자리가

우주의 전부를 밝힐 듯

눈부시게 환합니다


실은, 지극한 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려온 

미루나무 가지의 마음과

단 한 번 내려앉을 그 지극함의 자리를 찾아

전 생애의 숲을 날아온 방울새의 마음이

한데 포개져

저물지 않는 한낮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미세한 떨림을 가진

미루나무 가지 하나 있어

어느 흐린 날, 그대 홀연히 앉았다 날아갔습니다

그대 앉았던 빈자리

이제 기다림도 슬픔도 없습니다

다만 명상처럼 환하고 환할 뿐입니다

먼 훗날 내 몸 사라진 뒤에도

 그 빈자리, 그대 앉았던 환한 기억으로

저 홀로 세상의 한낮을 이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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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6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 읽었을 때 용이와 월선의 사랑은 안타깝더니 지금은 용이놈 용서가 안되고요. 나쁜 놈 ㅠ.ㅠ
길상과 서희의 사랑은 왜 잘 안되는지 이해가 안되더니 지금은 너무 잘 이해가 잘돼서 안타깝습니다. ㅠ.ㅠ

독서괭 2022-10-27 19:57   좋아요 0 | URL
저도 10여년 전 읽었을 때보다 훨씬 여러가지가 보이고 느껴지는 듯합니다. 월선이 너무 불쌍해요 ㅠㅠ 길상과 서희는 고구마 먹는 듯하지만 저도 이해는 가더라고요.. 어휴.. ㅠㅠ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scott 2022-10-27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용이 길상이 전부 별루 ㅎㅎㅎㅎ

그저 서희의 인생이 불쌍하고
서희 집에서 죽도록 일하다 죽은 이들이 불쌍합니다 ㅠ.ㅠ

독서괭 2022-10-28 17:59   좋아요 2 | URL
스콧님, 저도 길상이도 점점 미워지더라고요 ㅠㅠ 불쌍하기도 하고요.
서희 집에서 죽도록 일하다 죽은 이들, 정말 서글프지요. 에효. 인생.. 인간.. 뭔가, 싶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