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와 <형제>의 작가 위화의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를 읽다가 지난 여름 이후에 나온 중국 관련서 가운데 관심도서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제목은 위화의 책 부제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에서 가져왔다. 그 열 개의 단어 가운데 하나가 '독서'여서 책을 펼쳐들었지만 서문부터 인상적이어서 자칫 내리 읽을까 우려된다. 올해 나온 책 가운데 화제작은 단연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1>(한길사, 2012)이지만, 시리즈 도서인 까닭에 리스트에서는 빼고 다섯 권만 골랐다. 위화의 책 중국어판은 대륙에서는 출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타이완에서 출간됐고, 번역으론 한국어판 외에 영어판과 불어판 등이 나와 있는 상태다. 이 역시 오늘의 중국을 말해주는 사례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이 중국에 거하라- ‘중국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탐구
거자오광 지음, 이원석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9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30원(1%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중국에게 묻다- 21세기 초강대국의 DNA
이광재.김태만.장바오윈 지음 / 학고재 / 2012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중국인의 초상- 떠오르는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자젠잉 지음, 김명숙 옮김 / 돌베개 / 2012년 8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달 책&(410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잡은 건 '사회적 비만'이다. 비만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책들에 주목해보았다.

 

 

 

책&(12년 9월호) 사회적 비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이다. 활동하기에 좋은 풍성한 계절이란 뜻일 테지만, ‘살찐다’는 말의 느낌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과체중과 비만이 개인 건강의 문제를 넘어서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어서다. 어떤 근거에서 ‘사회적 비만’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처방이 가능하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몇 권의 책을 통해 ‘늘어진 뱃살’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생각해보자.


기본적인 길잡이가 돼줄만한 책은 비만 문제를 연구해온 영양학자 베리 팝킨의 <세계는 뚱뚱하다>(시공사, 2009)이다. 제목은 저명한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세계는 평평하다’의 이면이 바로 ‘세계는 뚱뚱하다’라는 암시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16억 명 남짓한 사람들이 과체중과 비만 상태이며, 2억 3천만 명이 당뇨병을, 15억 명이 고혈압을 앓고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비만 인구가 1억 명 이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영양실조 인구가 8억 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과 비교해보아도 비만 인구 증가 속도는 확연히 눈에 띈다.


비만인구의 급속한 증가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뚱뚱해지는 건 당연히 우리를 과체중으로 만드는 유전자와 음식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의 변화는 수천 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기에 현대인을 비만으로 이끈 변화의 주된 요인은 음식일 수밖에 없다. 콜라와 같은 고칼로리의 당분음료, 패스트푸드의 슈퍼사이즈화가 가져온 대형화된 식사량, 고당분과 고지방 음식 섭취가 비만이라는 유행병의 주원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음식을 먹고 마시며 육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책에는 쌀과 채소를 주식으로 삼던 한국에서도 1995년 WTO 가입 이후 서구 식품과 레스토랑이 유입되면서 비만이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만의 세계화에 우리도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비만은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유행병이지만 그 진원지는 역시나 미국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이노세 히지리의 <미국인은 왜 뚱뚱한가?>(작은책방, 2012)는 미국이 어째서 국민의 3분의 1이 비만이고 나머지 3분의 1이 비만 예비군인 ‘비만대국’이 됐는지 자세히 살핀다. 미국인들이 급속하게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우선 경제격차다. 비만이 ‘사치병’으로 간주되는 문화권도 있지만 미국에서 비만은 빈곤층의 표식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경우 값싸면서 칼로리가 높은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에 의존하게 되고 이러한 식생활이 자연스레 비만을 가져온다. 게다가 미국은 국토가 넓기에 자동차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고 그만큼 운동이나 신체활동은 줄어든다. 즉 식사의 고열량화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생활패턴이 미국형 비만이 만들어지는 환경이다. 

 

 


문제는 그런 환경이 세계화와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만율이 높은 나라들은 모두 미국과 지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이다. 멕시코를 비롯해 영국과 호주, 캐나다 등이 모두 비만율 상위권 국가들이다. 미국과는 다른 식생활을 갖고 있어서 비만국가에서 열외인 것으로 보였던 프랑스까지도 미국식 패스트푸드문화가 확산되면서 포식국가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지금 세계를 덮친 비만화의 물결에서 제외된 지역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단언한다. WHO의 예상으론 2015년이 되면 과체중 인구가 23억 명, 비만인구가 7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테러와의 전쟁’보다 더 시급한 것이 ‘비만과의 전쟁’이라는 얘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비만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 이상 ‘배부른 소리’로 간주될 수 없다. 굶주림과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잉 열량으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요된 비만>(거름, 2012)의 저자들은 사회적 비만을 일컬어 “굶주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 세상의 또 다른 질병”으로 규정한다. 처방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저소득층이 질적으로 더 좋은 식품을 먹도록 지원하고, 몸에 해로운 식품의 판매는 규제하며 지방과 설탕, 소금이 과다하게 함유된 제품의 광고는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 등이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된다. 더불어 신체활동을 장려할 수 있도록 도시 중심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물론 거대 식품회사들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에 맞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 개혁이 필요하다. ‘비만의 사회학’이 ‘식품정치’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코리브르, 2001)과 <식품주식회사>(따비, 2010), 그리고 매리언 네슬의 <식품정치>(고려대출판부, 2011) 등이 사회적 비만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줄 책들이다. 죽도록 다이어트를 해도 절대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12. 09.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에는 유난히 탐나는 책들이 많이 출간돼 주머니가 훌쭉한데, 송준의 평전 <시인 백석>(흰당나귀, 2012)이 결정타를 한방 먹인다. 주머니를 아예 탈탈 털어야 할 참이다. 저자가 백석 시에 꽂혀 온갖 자료를 섭렵한 결과라고 하는데, 일단 세 권짜리의 방대한 분량이 눈길을 끈다. 자신감의 표출이리라. 출판사명도 '흰당니귀'인 걸 보면 아예 이 평전과 새 시 전집을 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기존의 문학동네판과 실천문학사판 전집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참기 어려운 유혹이다. 일단 리스트로라도 만들어놓는다...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백석 번역시 전집 1-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외 지음, 송준 엮음, 백석 옮김 / 흰당나귀 / 2013년 1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13년 01월 22일에 저장
품절
시인 백석 1-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송준 지음 / 흰당나귀 / 2012년 9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품절
시인 백석 2- 만인의 연인, 쓸쓸한 영혼
송준 지음 / 흰당나귀 / 2012년 9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품절
시인 백석 3- 산골로 가자, 세상을 업고
송준 지음 / 흰당나귀 / 2012년 9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2년 09월 12일에 저장
품절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러시아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빅토르 펠레빈(1962- )의 <P세대>(문학동네, 2012)가 번역돼 나왔다. 몇달 전에 나온 <오몬 라>(고즈윈, 2012)에 이어서 연이은 출간이다. 작가 소개에는 "현재 시인 옙투센코와 함께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라고 하는데, 이 '젊은 작가'도 어느새 50줄에 들어서긴 했다. 국내에는 <공포의 헬멧>(문학동네, 2006)과 <벌레처럼(원제: 벌레들의 삶)>(책세상, 1998)이 더 번역돼 있는데, <벌레처럼>은 절판된 상태다.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어떤 작가와 묶으면 좋을까 궁리해보다가 보리스 아쿠닌(1956- )을 떠올렸다(한번씩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별로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단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작가다. 이들 작가들에 대한 소개는 <나는 현대 러시아 작가다>(경희대 출판문화원, 2012)를 참고할 수 있다. 일종의 '작가사전'이다. 아래가 펠레빈이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P세대 (무선)
빅토르 펠레빈 지음, 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09월 11일에 저장

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11,800원 → 10,620원(10%할인) / 마일리지 5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09월 11일에 저장

공포의 헬멧-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빅토르 펠레빈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09월 11일에 저장

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형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2년 09월 11일에 저장
구판절판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이번 달 '사람과 책'에서 '로쟈, 고전과 만나다' 꼭지를 옮겨놓는다. 원고를 쓰느라 지난 8월에 다시 읽은 고전이 오웰의 <1984>였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문학동네판으로 읽으면서 다른 주요 번역본들로 참고했다. 자투리 독후감은 지난주 한겨레 칼럼에 쓰기도 했지만, 얘깃거리들은 더 많이 남아 있다. 전기적 내용과 관련하여 참고한 평전은 박홍규 교수의 <조지 오웰>(이학사, 2003)인데, 최근에 나온 고세훈 교수의 <조지 오웰>(한길사, 2012)를 방안에 두고도 못 찾아서 참고하지 못했다. 평전으로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왜 오웰이 중요한가>도 주문해놓은 터여서 나중에 같이 읽어보고 싶다.

 

 

 

사람과 책(12년 9월호) 감시사회, 그 '오래된 미래'

 

‘<동물농장>의 작가’, 아마도 조지 오웰(1903-1950)이란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려줄 만한 별칭이다. 국내에서는 <1984>와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오웰의 대표작인 만큼 이상할 건 없지만, 오직 ‘<동물농장>의 작가’로서만 기억된다면 오웰로서는 좀 억울할 법하다. 그리고 실상이 그랬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두 ‘우화적’ 소설이 한국에서는 ‘반공소설’로 읽히고 또 권장됐기 때문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임한 작가의 운명 치고는 다소 고약했다고 할까. 


국내에서 나온 첫 평전 <조지 오웰>(이학사, 2003)을 쓴 박홍규 교수에 따르면, <동물농장>(1945)이 세계 최초로 번역된 건 놀랍게도 한국어판(1948)을 통해서였다. 우리와는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고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미국의 해외정보국이 ‘반공 투쟁’의 일환으로 작품의 소개를 주선했기 때문이다. 오웰이 예술적 목적과 정치적 목적을 결합시키려고 한 이 ‘정치소설’만큼 정치적으로 이용된 작품도 드물다. 미국 정부로서는 이 ‘반스탈린적 풍자소설’이 반공주의 계몽과 계도에 유용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아이러니컬한 것은 바로 그런 정치성 때문에 정작 영국에서는 출간에 애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소련은 영국과 함께 독일에 맞서 싸우고 있었기에 출판사들은 스탈린식 사회주의에 대한 이 풍자소설의 출간을 꺼렸다. 한편 미국에서는 ‘동물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오해받아서 역시나 출간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1944년에 탈고한 <동물농장>은 우여곡절 끝에 1945년 8월에야 출간됐고 이듬해 나온 미국판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웰은 비로소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마지막 작품 <1984>를 집필할 수 있는 생활의 여유도 갖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지병인 폐결핵이 점차 악화돼 가던 참이었다. 1948년에 탈고했기에 제목을 <1984>라고 붙인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49년에 출간돼 20세기 디스토피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는다.    

 

 


따지고 보면 <1984> 또한 우리와는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1984년 1월 1일 아침에 전 세계 안방에 방송된 위성예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백남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중학생이었던 당시 ‘오웰’이란 이름을 처음 접하고 서점에 가서 막 나온 <1984>를 구입해 읽은 기억이 있다. 1984년에 읽은 첫 책이 <1984>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오랫동안 오웰과 인연이 없었다.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한 ‘반공문학’ 작가란 평판 때문에 80년대 대학가에서도 오웰은 널리 읽히지 않았고, 강한 정치성 때문에 문학적으로 대단치 않은 작가로 폄하됐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위건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2010) 같은 그의 르포르타주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 같은 에세이집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부터다. 박홍규 교수의 평전에서 “특히 그의 수많은 에세이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 에세이는 영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를 철저히 비판한 것이기에 대부분 소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사뭇 대조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반공주의자 오웰’에서 ‘사회주의자 오웰’로 작가의 이미지가 이동했다고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정치성과 문학성을 결합시키려는 오웰의 시도는 문학과 예술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재평가됐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1946)에서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고 적었다. 정치적 편향이 미학적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일반적 통념과는 정반대로 그러한 편향성이야말로 진정성을 희생시키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 오웰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적 입장이란 무엇인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자신이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영국 북부노동자들의 생활을 취재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7)뿐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 대한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1938)에도 관철된다. 그가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했다가 좌익 내부의 분열을 목격하고 얻은 결론은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해선 ‘소련 신화’의 파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동물농장>의 집필 의도였고 <1984>는 그 연장선상에서 쓰인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란 글에서 로렌스 멀킨은 “소설로서 <1984>는 특별히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보다는 우화에 가깝고, 우화보다는 차라리 판타지에 가깝다.”고 평했다(윌리엄 랭어 편,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푸른역사). 이러한 평가는 한편으론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한 작품이 치르는 대가이기도 한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사회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주제는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도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성취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은 과연 오늘의 현실과는 무관한 ‘판타지’에 불과한가? 민간인사찰이 무단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는 빅브라더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감시사회보다 과연 얼마나 나은 사회인가? 아니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구조를 들여다본다면 과연 오늘날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1984>에서 세계는 핵전쟁 이후에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초대형 국가로 분할돼 항구적인 전쟁상태에 놓여 있다. 이들 국가 중 두 나라가 연합한다고 해도 다른 한 나라를 정복할 수 없기에 세력 판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이들 국가의 기본적인 특징은 계급사회라는 것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속해 있는 오세아니아에서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절대적 존재로 당을 대신하는 빅브라더가 있고, 그 아래로는 인구의 2퍼센트 미만인 내부당원이 있다. 그리고 그 밑을 국가의 손발 역할을 하는 외부당원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 관료기구가 전체의 15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전체 인구의 85퍼센트는 ‘노동자’라 불리는 하층계급으로서 소위 ‘벙어리 대중’이다.


그러한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지배권력인 당이 감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수의 당원들이다. “노동자들은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둬도 그들은 몇 대가 지나도록, 몇 세기가 지나도록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것도 파악할 힘이 없이 일하고 자식을 키우며 죽어가는 것이다.” 반면에 “당원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사상경찰의 시선 안에서 살아간다.”

 

‘진리부’라는 행정관청에서 역사변조를 담당하는 공무원 윈스턴은 외부당원이며, 따라서 그러한 감시하에 놓인다. 그는 당이 강요하는 변조된 진실 너머 역사적 진실이 따로 있다고 믿고 반역을 꾀하지만 체포돼 고문을 받고서 ‘치유된다’. 윈스턴은 너무도 허술하게 반역을 기도하지만 당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응징된다. 그가 끔찍한 고문상황에 처하게 되자 연인이었던 줄리아마저 배신하고 결국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러한 음울한 결말이 집필 당시 건강이 악화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오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지식인 계급에 대한 작가 불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윈스턴은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오웰을 닮았다. 그는 ‘빅브라더 타도’를 은밀히 결심한 이후에 자신이 죽은 목숨이고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은 줄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생전에 뭐 하나 바꿔놓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러나 여기저기서 소규모의 저항이 일어나 사람들이 조금씩 떼를 이루고, 점차 불어나 후세에 기록을 몇 가지라도 남기게 되면 우리가 죽은 뒤 다음 세대에서는 수행할 수 있을 테지.”

 

그렇듯 ‘미래는 노동자들의 것’이라는 게 윈스턴의 신념이었다. 과연 오늘날 계급화된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노동하는 다수는 ‘벙어리 대중’인가 아니면 ‘미래의 주인’인가. 그런 질문이 아직 유효하다면 오웰의 <1984>는 ‘오래된 미래’이다.

 

12. 09. 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