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해적판 서적을 찍어낼 수 있었던 시절에는 종종 ‘유명 외국 작품의 후속작’으로 둔갑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책은 원서명이 나와 있지 않다. 남이 쓴 글을 유명 작가가 쓴 것처럼 소개한다. 여기에 얼추 원작의 느낌이 나도록 그럴싸한 제목을 붙여놓는다. 출판사의 쌈마이한 수법들을 알아차리지 못해 책을 사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나 또한 그렇다.

 

 

 

 

 

 

 

 

 

 

 

 

 

 

 

 

 

《O 이야기》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에로티시즘 소설이다. 1954년 《O 이야기》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을 때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운 성애 묘사가 문제가 되어 찬사와 비난의 평을 동시에 받았다. 이 엄청난 반응을 예상했는지 작가는 폴린 레아주(Pauline Réage)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펴냈고,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O 이야기》가 발표된 지 40년이 지나서야 작가의 정체가 공개됐다. 《O 이야기》의 작가는 얀 데클로즈(Anne Desclos)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프랑스 문단을 주름잡은 장 폴랑(Jean Paulhan)의 비서로 일했다. 장 폴랑과 얀 데클로즈의 나이 차는 30살. 게다가 장 폴랑은 예순이 넘은 유부남이었다. 장 폴랑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은밀한 연인 사이로 지냈고, 이 비밀의 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이 바로 《O 이야기》다. 얀 데클로즈가 《O 이야기》를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장 폴랑이 ‘여성은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처럼 절대로 야한 소설을 쓸 수 없다’고 말하자, 그걸 들은 얀 데클로즈는 자신감 넘치는 남성 지식인에 도전하기 위해 ‘야한 소설’을 썼다. 결국은 장 폴랑의 말이 틀렸다. 《O 이야기》는 사드의 에로티시즘을 뛰어넘은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1967년에 《O 이야기》의 후속작 ‘Retour à Roissy(루아시의 귀환)’이 나왔다. 이 소설 역시 ‘폴린 레아주’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O 이야기》가 2012년에 정식 계약 완역본으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90년대에 해적판이 떠돌았다. 온라인 헌책방 웹사이트에 ‘O의 이야기’라고 검색하면, 비싼 가격의 해적판 몇 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나온 《O 이야기》가 1975년에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판매가는 3만 원이다. 그밖에 1989년 만남 출판사, 1990년 타임기획 출판사, 1995년 서원출판사에서 《O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정식 계약 절차를 밟지 않은 해적판으로 추정된다. 1975년에 제작된 폴린 레아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성인영화가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해적판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The Story Of O>는 <엠마뉴엘>, <차타레 부인의 사랑>을 만든 쥐스트 자캥(Just Jaeckin)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가 국내에 처음 개봉됐을 때 제목이 ‘르네의 사생활’로 변경되었다.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서 ‘《O 이야기》의 후속작’도 나왔다. 제목이 《르네의 연인》이다. 이 책의 역자는 90년대에 다작 번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정성호 씨다. 책 제목과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쌈마이한 느낌이다. 사실 책 뒤표지에는 전라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다. 이 책의 앞날개에 적힌 소개 내용을 보면 《르네의 연인》이 ‘《O 이야기》의 후속작’이라고 되어 있다. 원서 제목은 ‘Rene's club'이다. 책의 뒷날개에는 작가 약력이 적혀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로 이 책이 ‘《O 이야기》의 후속작’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르네의 연인》은 ‘《O 이야기》의 후속작’이 아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Retour à Roissy’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르네의 연인》의 주요 등장인물이 제임스 펨브로크와 로쟌느다. 전작 《O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소설에 ‘펨브로크(Pembroke)’라는 인물의 이름이 나온 걸로 봐서는 《르네의 연인》 줄거리는 1984년에 개봉된 에릭 로챠트(Eric Rochat)의 영화 <The Story Of O : Chapter 2>일 가능성이 있다. 이 영화는 쥐스트 자캥이 만든 영화의 후속편이다. 물론, 이 영화도 레아주의 소설을 기본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원작에서 독립된 영화 줄거리는 에릭 로챠트와 제프리 오 켈리(Jeffrey O’Kelly)가 썼다. 참고로, 이 영화의 음악 담당은 그 유명한 한스 짐머(Hans Zimmer)가 맡았다.

 

 

 

 

 

‘죠리 로레이’라는 작가가 쓴 《르네의 연인》 3, 4권도 있다. 물론, 이 책들도 역시 《르네의 연인》을 펴낸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당연히 레아주의 소설과 관련성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르네의 연인》은 1994년에 나온 단권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해에 두 권으로 분권 되어 나왔다. 그다음에 죠리 로레이의 《르네의 연인》 3, 4권이 출간되었다. 성인소설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르네의 연인》 전 4권을 헌책방에서 구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O 이야기》의 후속작’이라는 문구에 속아 비싼 돈을 내면서 책을 사지 않기를 권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정식으로 발행된 ‘《O 이야기》의 후속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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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1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재미난 비하인드 스토리네요..^^..ㅎㅎㅎ

cyrus 2017-02-16 13:53   좋아요 0 | URL
독자들이 몰라도 되는 잡다한 책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

잠자냥 2017-02-1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해적판만 나와 있는 줄 알았는데, 정식판도 있었군요.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cyrus 2017-02-16 17:09   좋아요 0 | URL
19금 딱지 붙은 책이 생각보다 잘 안 팔립니다. 저처럼 에로 취향을 선호하는 독자들만 구입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절판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책은 구입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카스피 2017-02-16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o의 이야기를 구매하고 본 기억이 나는데 갑작스레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이 어디있나 무척 궁금해 지네요^^;;

cyrus 2017-02-16 19:03   좋아요 0 | URL
옛날에 나온 책 말씀하시는거죠? 해적판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

카스피 2017-02-16 23:04   좋아요 0 | URL
ㅎㅎ아마 해적판일거에요.헌책방에서 구한것 같아요^^
19금 소설들 예전에는 헌책방에서도 꽤 많았는데 요샌 보기 힘든것 같네요^^;;;

이병훈 2017-11-03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책을 구매할수있는 방법이 있나요?

cyrus 2017-11-03 20:42   좋아요 0 | URL
《O 이야기》는 구매 가능하구요, ‘북코아‘를 검색해서 접속하면 《르네의 연인》을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와 심각한 경기침체로 세계증시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경제 위기가 가시화함에 따라 금융시장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자본주의 자체가 이제 끝장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서부터 금융 주도 글로벌 축적체제가 끝장나는 것 아니냐는 의견, 일시적 위기일 뿐 금융시장 자본주의는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의견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세계적 금융위기를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공황 이전의 자유 방임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 시대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났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서 ‘포스트자본주의’ 시대를 둘러싼 논쟁이 발생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경험하게 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에서 저자가 견지하고 있는 입장은 자본주의의 한계가 외면하기 어려운 역사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낸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이자 결과로 포스트자본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으로 저자는 명목화폐(정부의 법령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은 화폐)의 재생산을 과도하게 시장 기능에 맡긴 점, 빈곤층에게 대출을 권하는 경제의 금융화, 국가 간 경제 불균형, 시장경제와 정보화 경제의 양립성 여부 문제 등을 들었다. 저자는 이 신자유주의를 지탱해준 네 가지 요인이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는 국가 규제, 만성적 재정적자라는 한계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원칙으로 시장의 원리를 주장했다. 이를 위해 조세 및 통화제도 개혁, 정부 개입 최소화 등이 주창되었으며 그 결과 초국적 기업의 등장, 막강한 금융 자본의 지구화가 이루어졌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며 여기까지 이르게 된 20세기 자본주의의 흐름을 개괄한다. 특히 그가 주목한 이론이 러시아의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Nikolai D. Kondratiev)의 ‘장기파동설’이다. 경기는 장기적으로 상승(확장)과 하강(수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콘드라티예프는 성장과 침체가 5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큰 효용성이 없는 이론이다. 이런 이론의 맹점은 한없는 우연성과 논리구조의 허술함에 있다. 인간 본성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호황 · 불황의 반복은 끊임없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갈수록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포스트자본주의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위해 장기파동설을 살짝 빌려 쓴다. 비록 장기파동의 주기는 어긋났어도 저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경제순환의 관점에서 본다면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포스트자본주의 시나리오는 정보기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한다. 정보기술을 그 특징으로 하는 정보화 시대는 우리 모두의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었고, 자본주의를 촉진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에 이르렀다. 자본주의가 생산성에 기초한다면, 포스트자본주의는 정보화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형 경제다. 저자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이미 제시한 적 있는 지식정보화 사회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실천을 위해 구체적인 대응전략까지 밝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자가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포스트자본주의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자본주의가 끝장을 보고 있으니 이제 마르크스와 케인스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저자의 입장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드러커의 부활이 신자유주의 시대 금융시장 자본주의의 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는가. 정보기술은 권력의 분산과 경제적 자유의 제고를 가져왔지만, 오히려 하나의 시장으로서의 정보기술 자본주의는 시장 시스템의 오랜 병폐를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시장 지배력으로 정보기술을 독점하는 기업을 규제하는 대안으로 ‘공적 소유’를 제시한다. 세계의 인터넷과 IT산업을 독점해가고 있는 MS의 마케팅 전략을 보고 있노라면 독점을 억제하는 일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공공성, 공정성 그리고 경제적 효율성 기반 위에 가치창출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확대 발전해 갈 수 있는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들도 고려해야 한다.   

 

저자의 대안이 제대로 마련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신자유주의의 부작용 극복 방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나름의 판단과 실천을 위해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다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정정할 수 있는 대안을 현실적인 모델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중에게 비전을 주는 담론이 필요하다. 즉 포스트자본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어떤 정책적 내용으로 구체화할 수 있느냐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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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5 17:55   좋아요 1 | URL
대구에 서대구역이 개통되면 경제가 활성화될 거로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서대구역의 등장으로 지역경제가 좋아지면 지역민들의 소득 증가에 기여할거로 보는 건데, 한 마디로 말하면 트리클다운 효과를 노리는 거죠. 그런데 트리클 다운 효과는 이미 허황된 이론이라는 게 검증되었고, 정말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낭비한 셈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2-16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술발전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대화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예전엔 물리적인 거리나 지역의 한계로 그나마 보호되던 것들이 기술발전으로 갑자기 초국가자본에 노출되어 대응할 시간도 없이 한 순간에 부서지는 것 같아요. 어떤 시스템이든, 미래엔 생산과잉, 소득양극화, 분배 같은 것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기술혁명으로 쌓인 부를 어떻게 다수가 나눌 수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적은 노동, 좋은 pay를 구조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10%는 천국에, 나머지 90%는 지옥에 사는 SF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2-16 11:40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책의 저자는 기술발전을 통해 사회 분배, 공동 소유 등을 추진하는 등 상당히 급진적인 대안을 내세웁니다. 저도 t-guest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불평등, 분배, 기초소득에 대한 화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중의 이목만 집중되고, 논의와 현실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경제민주화’처럼 말이죠. 되든 안 되는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내세웠으면 한 번 찔러봐야하는데, 강력한 반대 여론에 굴복하거나 벌써부터 반대 여론이 두려워서 공약을 접게 됩니다.
 

 

 

 

지난 월요일에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책을 특별히 읽고 싶어서 주문한 게 아닙니다. 동생이 보고 싶은 책입니다. 책 제목이 《작은 아씨들》이었습니다. 메이자 루이 올콧이 쓴 유명한 소설이죠. 몇 주 전부터 동생이 갑자기 《작은 아씨들》이 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저도 사야 할 책이 몇 권 있어서 피땀 흘리면서 모은 책 구입비를 동생을 위해 써야 하는 상황이 불만스러웠습니다. 왜 제가 책을 살 때마다 동생이 책을 사달라고 조르는 걸까요? 동생이 고른 책이 저도 마음에 들어서 하는 수 없이 주문했습니다.

 

 

 

 

 

 

 

 

 

 

 

 

 

 

 

 

 

* 《작은 아씨들》 (공경희 역, 시공주니어, 2007년)

 

 

원래는 《작은 아씨들》 1부 번역본만 살려고 했었습니다. 저처럼 광적일 정도(?)로 독서를 하지 않는 동생의 독서 습관을 봐서는 2부를 읽을 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마침 알라딘 중고서점에 ‘시공 주니어’ 판본이 있는 걸 확인해서 그걸 살까 고민했습니다. 중고가가 괜찮아서 책 상태가 좋으면 그 책을 살 생각이었습니다만...

 

 

 

 

 

 

 

 

 

 

 

 

 

 

 

 

 

 

* 《작은 아씨들》 (유수아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년)

 

 

 

결국은 1부, 2부를 번역한 펭귄클래식 번역본을 주문했습니다. 제대로 된 《작은 아씨들》 완역본을 사서 읽고 싶은 마음에 책 두 권을 골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기로 찜해둔 책은 못 사고 말았습니다. 다음 기회에.

 

동생이 말하더군요. 굳이 2부까지 살 필요가 있냐면서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품 하나를 제대로 읽으려면 책이 완역본이어야 하고, 속편까지 읽어줘야 한다.” 저는 저의 독서관을 아주 자신 있게 어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될 줄이야...

 

 

 

 

 

오늘 오전에 올콧과 《작은 아씨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하던 차에 중대한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작은 아씨들》이 2부까지만 있는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속편이 4부까지 있었던 겁니다!

 

1부는 1868년에 발표되었고,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듬해에 2부 『Good Wives』(착한 아내들) 가 나왔습니다. 3부는 『Little Men: Life at Plumfield with Jo's Boys』(작은 신사들)이라는 제목으로 1871년에, 4부 『Jo's Boys and How They Turned Out』(조의 소년들)은 1886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사실 4부는 1부의 속편이라기보다는 3부의 속편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은 올콧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나왔습니다.

 

 

 

 

 

 

 

 

 

 

 

 

 

 

 

 

 

* 《작은 아씨들》 (박유경 역, 중원문화, 2012년)

* 《작은 아씨들》 (우진주 역, 동서문화사, 2014년)

 

 

3부와 4부는 다른 출판사가 번역했습니다. 중원문화 출판사는 3부까지 번역했고, 동서문화사는 1부부터 4부까지 모두 한 권에 담아 번역했습니다.

 

제가 카톡 메시지로 동생에게 《작은 아씨들》이 4부까지 나왔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동생은 우스갯소리로 작가가 작품을 4부까지 쓰는 어마어마한 노력을 ‘장삿속’이라고 하더군요. 하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1부와 2부가 연달아 독자들의 호응을 받게 돼서 올콧이 후속작을 써냈으니까요. 3부와 4부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동생이 나머지 후속작은 사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3부는 꼭 사서 읽고 싶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후속작까지 모조리 읽어야 제대로 작품을 읽은 듯한 만족감이 들어요. 후속 작을 읽지 않거나 사지 못하면 작품을 덜 읽은 것 같아요. 책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집착은 정말 무섭기만 합니다. 책에 눈이 멀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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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1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책을 자주 사줬던 모양입니다..^^..

cyrus 2017-02-15 14:35   좋아요 2 | URL
작년에도 여기 서재에 언급한 적 있었어요, 동생이 매달 회사에서 주는 독서 장려금으로 책을 사는데, 몇 번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주문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보답의 의미로 동생이 읽고 싶은 책을 사주곤 합니다. ^^

2017-02-15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5 17:31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이번 달은 2월이니까 2부까지 구입한 셈이군요. 제가 갑자기 서재 활동이 한 달 이상 뜸해지기 시작했으면 연예를 하고 있다거나 심각한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AgalmA 2017-02-15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넌지시 알려주기만 해도 낚이는 독서가의 비애ㅎㅎ; 그러나 그렇게 읽고 성장하는 것도 독서가의 힘^^

cyrus 2017-02-15 17: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실패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거죠. ^^


블랑코 2017-02-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4권은 읽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는데 가끔 장삿속으로 펴낸 속편 때문에 본편 이미지까지 망치는 경우가 있어서 읽기 꺼려질 때도 있더라고요.

cyrus 2017-02-15 17:35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렇지 않은데, 예전에는 원작의 속편으로 속인 번역본이 참 많았어요. 헌책방에서 유명 작가의 작품 속편이라는 문구가 적힌 책을 산 적이 있는데, 그 문구에 속아 넘어갔어요. ^^;;


transient-guest 2017-02-16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 그 기분...제가 모르면 또 누가 알겠습니까...ㅎㅎㅎㅎ

cyrus 2017-02-16 11:42   좋아요 0 | URL
어느 누구도 속편을 안 읽었거나 모를 경우, 내가 그걸 읽으면 처음으로 속편을 알게 된 유일한 독자가 된 (착각의) 기분이 들어요.. ㅎㅎㅎ

카스피 2017-02-1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작은 아씨들이 4부까지 나온것은 처음 알았네요.그나저나 동서에서 4부까지 나왔다니 다행이네요.제가 갖고 있는 반다인의 파일로 번스 시리즈(겨우 12권중에 11권이)는 출판사마다 제 각각 나와서 참 책장에 올려놔도 뽀대(?)가 나질 않아요ㅜ.ㅜ

cyrus 2017-02-17 09:28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시리즈를 모으고 싶은데, 출판사가 다르면 난감합니다. ^^;;
 

 

 

 

 

 

 

 

 

 

 

 

 

 

 

 

 

 

 

 

 

로버트 T. 캐롤의 《회의주의자 사전》(잎파랑이, 2007년)은 대체의학, 뉴에이지, UFO, 심령 등 400항목이 넘는 초자연적이고 초과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설명과 상식에 근거한 비판을 사전 형태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터넷사이트 ‘스켑딕(skepdic)’의 운영자로 여기에 올렸던 글을 선별해 《회의주의자 사전》을 펴냈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엄밀한 과학적 실험과 조사로 규명되지 않은 채 과학으로 행세하는 현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 사전》의 항목 중에 ‘속독’이 포함되어 있다. 혹시 속독법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책 675쪽을 보면 된다. 속독법을 어린이와 성인들을 위한 학습법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부분 이렇다. 속독법은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사람을 단시간만에 ‘책읽기 천재’로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한다. 속독법을 익히면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책을 빨리 읽으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정말 속독법 하나로 천재가 되려면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속독법의 효과에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소위 분당 1만 개의 단어를 읽는 사람들은 문장 하나하나 빨리 읽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훑어본다. 이들은 읽는 문장 속 단어와 표현을 이해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더 높다. 속독법을 배워도 어휘 독해력이 부족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보통 사람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빠르게 읽으면 분당 250~300개 단어 정도 속도로 읽을 수 있다. 이게 최대 속도다.

 

킴 피크라는 사람은 7천 권이 넘는 책을 전부 기억하면서 빨리 읽는 능력을 보유했다. 그런데 그는 선천적으로 좌우의 대뇌반구를 연결하는 뇌량(腦梁, 뇌들보)가 없다. 킴 피크처럼 뇌량 없는 사람은 실독증이 나타날 수 있다. 실독증은 시각 능력이 정상이어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증상이다. 킴 피크의 속독 능력은 정말 확률적으로 나오기 힘든 희귀한 사례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청어람미디어, 2001년)

 

 

다치바나 다카시는 독서를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책 읽는 자체를 즐거워하는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다른 하나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책을 읽는 ‘수단으로서의 독서’이다. 후자의 독서를 하려면 속독법을 활용해야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신문에 연재되는 서평 작성이나 취재 준비 그리고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 책을 빨리 읽는다. 그는 바쁜 상황 속에 책을 읽는 방법으로 속독 능력을 갖출 것을 강조하면서도 자신만의 속독법이 ‘대충 훑어본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책을 엄청 많이 읽고, 가장 똑똑하다던 다치바나 다카시도 속독을 ‘훑어보기’와 동일한 의미로 언급했다. 속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내가 알고 싶지 않거나 한두 번 봐도 모르는 내용을 만난다. 이럴 때 과감히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다. 비록 대충 넘긴 쪽수가 많더라도 책의 핵심 내용이나 가능한 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읽었다면, 책의 절반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게 바로 대충 훑어보는 속독법이다.

 

그런데 일부 다독가와 속독 학습법을 개발한 교육 전문가들은 속독이 천재들이 가진 남다른 습관이며 일반인도 속독법을 훈련하면 천재처럼 속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속독법이 잠재적인 천재성을 끄집어낸다는 말을 믿고, 꽤 적지 않은 수강료를 내면서 속독법을 배운다.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속독법 교육에 투자하는 건 돈 낭비다. 특히 ‘과학적’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으며 분당 1천 개 이상 단어를 읽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속독법이라고 과장 홍보하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좋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책과 담 쌓은 사람이 검증되지 않은 속독법에 돈을 쳐바르거나 그거 하나쯤 익혔다고 은근히 우월감을 과시하는 경우이다. ‘목적으로서의 독서’를 하는 사람은 정독을 선호한다. 속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정독의 가치를 낮게 본다. 심지어 정독하기에 적합한 책으로 문학 작품을 예로 들면서 문학 작품을 재미로 읽는 독자들을 한심한 존재로 여긴다. 여기서부터 지적 우월감이 드러내는 지점이다. 애서가의 지적 우월감은 책 읽는 사람들 간의 정서적 위화감을 만들어낸다. 책 읽는 권수나 독서 능력, 심지어 관심 있는 책의 분야마저 하나의 경쟁 대상이 되어 우열을 가리려고 한다. 천재들의 속독법대로 책을 읽었는데도 천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잘못은 독자의 책임이 아니다. 독서 자체를 좋아한다면, 그냥 완독하는 데 오래 걸리든 말든 속 편하게 책을 읽으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속독은 ‘속 편하게 읽는 독서’이다.

 

독서로 천재가 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책 읽는 척’하면 된다. 자신이 일 년에 책 1천 권을 독파했으며 오래전부터 알려진 온갖 독서법의 에센스만 가려 뽑아서 ‘천재 속독법’을 만든다. 어때요,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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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14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드는 책은 오래 읽어도, 여러 번 읽어도 새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방법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책을 읽는가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참, 박근혜 자서전 같은 경우에는 속독법으로 읽지 않으면 짜증이 납니다.

cyrus 2017-02-15 11:3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과감히 속독하거나 아예 책을 덮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ㅎㅎㅎ

코발트그린 2017-02-1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x하면 속독이 된다는 얘기들 참 달콤 하죠ㅎ

cyrus 2017-02-15 11:37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 그 말에 잘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의지가 부족해서 제대로 시도해본 적이 없어요. 제 생각인데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저절로 속독 능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생각하고 나서 속독하면 되니까요. ^^

qualia 2017-02-14 2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래엔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융합·진화하게 되면 새로운 형태의 진짜 속독이 나타나겠네요. 즉 온갖 정보와 지식을 순식간에 ‘업로드(Uploading)’하고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검색·인출하고 최적 지식으로 재가공해 여러 가지 문제 해결에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건 지금도 기업적 수준에서 인공지능 기술로 활용되고 있죠.

위 시나리오로 파악할 수 있는 점은, 속독이 이론과 실천의 측면에서 명실상부한 속독이 되려면 최소한 다음의 5가지 핵심 사항은 갖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⑴ 빠른 속도
⑵ 완벽한 저장/기억 능력
⑶ 저장 내용의 빠른 검색/인출 능력
⑷ 최적 지식 재구성 혹은 지식 융합 능력
⑸ 현실 문제 해결에의 활용 능력

현단계 인간적 수준에서 속독 개념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다시 말해 말뿐인 사기성 속독이 아닌 실용적 가치가 아주 큰 진정한 속독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위 핵심 조건들을 조금은 완화된 형태로나마 반드시 만족시켜야 된다고 봅니다. 위 조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속독의 가치나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즉 그런 속독에 귀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속독에 관심 있는 분들은 위 5가지 조건들을 자신의 능력에 비춰 조목조목 검토해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가벼운 소설이나 뉴스 기사, 한번 읽고 말 것들을 처리하는 속독이라면 위 5가지 요건들을 갖추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귀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속독을 익힌다면 그 속독 기술로써 가져올 ‘생산성’ 여부에 대해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해서 뭔가 상상력 깊고, 독창적이고, 심층적/분석적이고, 남한테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글을 쓰길 원하다면 시중의 속독 개념은 좀 아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7-02-15 11:43   좋아요 2 | URL
결국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쓰려면 정독할 수밖에 없군요. 인터넷이나 SNS의 글을 많이 접할수록 속독이라기보다는 훑어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처럼 A4 용지 한 장 채우는 글의 분량이 그리 많은 편 아닌데,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면 상당히 길게 느껴져요. 그래서 정독하지 않고, 대충 훑어보게 됩니다. 저도 북플로 글을 보면 정독과 훑어보기를 동시에 하는데,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가 많습니다.

AgalmA 2017-02-14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차니스트이자 게으름쟁이라 독서 천재는 달나라 얘기~
위에 quaila님 말씀이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람들이 단번에 지식을 주입받는 식의 기술 발전이 된다면 속독 얘기도 옛날에 그랬대가 되겠죠^^

cyrus 2017-02-15 11:47   좋아요 1 | URL
만약에 종이책이나 종이에 적힌 텍스트가 완전히 사라지는 미래 시대가 온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을 겁니다. 그러면 특별히 분량이 긴 텍스트를 빨리 읽을 수 있는 속독법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상상도 해봅니다. ^^

transient-guest 2017-02-16 0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서와 research를 다르게 보는데요. 요즘은 독서 = research를 같은 개념으로 상정하고 1만권을 읽었다는 둥, 3년 동안 3000권을 읽었다는 둥 하면서 장사를 하네요. 독서/자계강의업계에서 한 5년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현상 같아요. 자료조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독서라고 보기 어렵고, 당연히 책 한 권을 다 읽을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이 개념으로 모든 책을 대하고, 읽다 만 책은 ‘필요가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과감히 닫은 책‘이지만 그래도 ‘읽은 권수에‘는 포함시켜버리고 연간 천 권씩 읽었다고 하네요...사람마다,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만, 이런 건 좀 싫습니다.

cyrus 2017-02-16 11:45   좋아요 1 | URL
저는 제가 읽은 책 권수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제가 ‘읽은 책’들 중에는 ‘다 읽은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읽다가 만 책’도 포함되어 있어요. 책 한 권 한 권 빠짐없이 완독했으면 자랑할 만한 일이죠. 하지만 읽다만 책을 다 읽은 척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 -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으로 읽는 20억 년 생명 진화 이야기
김홍표 지음 / 궁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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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은 소화되다가 남은 찌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변의 절반은 세균 덩어리다. 또 대변의 구린내는 음식물이 썩어서 그럴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 세균들이 뿜어내는 냄새다. 이 세상에 약 10만 가지가 넘는 세균이 있다. 이 중에서 약 수백 종류의 세균은 우리 몸속에 살림을 차리고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아늑한 집이다. 소화관에 사는 장내 세균은 인체 내 세포의 개수보다도 많다. 이 세균은 수백만 년 동안 사람과 공생 관계를 이루며 진화해 마치 장기처럼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세균을 공생 세균이라 부른다.

 

몸에 이로운 세균들은 우리의 소화를 도와준다는 점에서 필요 불가결한 존재라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선 공생 세균이 없으면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가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장내 세균이 음식 중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세균은 비타민과 장 내 염증을 억제하는 화합물 등 인간이 생산하지 못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소화기관은 미생물과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음식물을 잘 소화하게끔 20억 년 동안 진화해왔다.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의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우리 몸의 소화기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진화의 유산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생물학 전문 용어가 등장해 중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되새겨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책은 진화와 소화기관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이 우유를 마셔서 소화할 수 있는 이 사소한 생리현상도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은 젖당 분해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젖을 뗌과 동시에 유아기의 소화 시스템을 버리게 돼 있어서 성인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한다. 인간이 젖소에서 얻는 우유를 새로운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진화하면서 이제는 대부분 인구가 평생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지게 된다.

 

입에서 나는 악취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원인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흔히 입 냄새라고 말하는 이 신체적 증상에도 병명이 있다. 생선 냄새 증후군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이 몸속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생기는 병이다. 소화가 덜 된 트리메틸아민은 땀이나 침, 내쉬는 숨, 소변 등으로 배출된다. 트리메틸아민 자체가 생선 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리면 몸 전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생선 냄새 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FMO3라는 효소이다. 그런데 간세포에 문제가 생기면 FMO3 효소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음식에서 주로 발생하는 트리메틸아민이 제대로 소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 돌연변이 효소는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된다. 이들의 양을 줄이려면 장내에 메탄 생성균의 수를 늘려야 한다. 메탄 생성균은 트리메틸아민을 메탄으로 환원시켜 에너지를 얻는다.

 

저자는 소화기관을 필요한 미생물을 종속 영양 생명체라고 말한다. 하나의 개체단위로 스스로 생장 증식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우리가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미생물은 몸속 물질과 거처를 받는 대신 숙주를 먹이고 보호한다. 평소에는 내 삶의 반려자이자 협력자이다가 내가 약해지면 나를 공격하기도 하는 것이 내 몸의 미생물이다. 우리 몸과 미생물 간의 미묘한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게 되고, 악화하면 병이 나타난다. 한 명의 인간이 도저히 살아낼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살아오며 진화를 거듭해온 미생물은 앞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종속 영양 생명체가 없었다면 지구상에는 진핵생물이 생겨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경쟁보다는 공생이 인류가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제일 나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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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3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3 19:09   좋아요 1 | URL
몸안에 있는 독소가 잘 배출되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저처럼 통풍 걸릴 수 있습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7-02-14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렸을때 장 수술을 할일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적이 있는데... 한 간호사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잘 먹고 잘 싸면 건강한거라고~ 특히 잘 싸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많이들 먹는데에만 치중한다면서.. 벌써 15여년전 일인데.. 최근 대장암이 늘어간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때가 생각이 났어요~

cyrus 2017-02-14 12:03   좋아요 0 | URL
첫 번째 비밀댓글을 남기신 분도 행복하자님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나이 들어보니까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했을 때와 매일 앙침 화장실에 갈 때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낭만인생 2017-02-14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쟁보다는 공생‘에 공감이 갑니다. 결국 몸도 사회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책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cyrus 2017-02-14 13:49   좋아요 0 | URL
책에 그림이나 사진이 많았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쉬웠을 겁니다. 내용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7-02-15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맞는 거군요..!

cyrus 2017-02-16 11:46   좋아요 0 | URL
냄새가 구리니까 피하는 게 당연하죠. ㅎㅎㅎ

나비종 2017-02-1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먹고 잘 싸는 법에 대한 책이로군요.ㅎㅎ 공생을 생각하니 서민 교수님의 기생충이 오버랩된다는. .^^;

cyrus 2017-02-16 11:48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나비종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생물학 책을 읽게 되면 결국 최종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 ‘공생’과 ‘조화’의 중요성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을 알기 위해 생물학을 공부하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