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12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이라 디아나 마초니 지음, 정미희 옮김 / 해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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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Klassiker)예술가’, ‘대가’, ‘고전등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해외 축구 중계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를 모를 리가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를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간의 축구 경기를 뜻한다. 그런데 현지 독일인은 데어 클라시커의 의미를 모를뿐더러 잘 쓰지도 않는다. 사실, 두 팀이 치열하게 맞붙은 역사가 길지 않다. 독일 축구팬들은 두 팀의 맞대결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국내 축구팬과 몇몇 언론들만 독일인이 모르는 단어를 쓰고 있다.

 

<클라시커 50>은 주제에 적합한 인물 50명 또는 지식 50가지를 선정, 연대기 방식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간결한 요약정리,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참고 자료 및 관련 정보 등이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2%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 표기,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 · 탈자는 이 시리즈의 감점 요인이다. 그리고 시리즈가 나온 지 십 년 넘었다.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는 고인(故人)이 있다. 출판사는 수정할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난 뒤에 책을 인쇄해야 한다.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위대한 여성예술가 50인의 삶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가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남성 중심의 예술사에 가려지거나 부당하게 잊혀진 50인의 삶과 예술 정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이 책이 페미니즘적인 규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예술가의 삶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은 페미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작부터 이 책은 페미니즘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밑장을 빼는 건 아니다. 저자들은 게릴라걸스(Guerilla Girls)의 도발적인 질문을 인용했는데, 앞에서 보여준 밑장 빼기식 입장과 상반된 내용이다.

 

 

 

 

국제적인 전시회의 일정을 보면 새롭게 발견했거나 다시 평가된 여성예술가들이 예술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여성예술가들은 선배 여성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들의 역사를 유추해 보기도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분노하는 여성 화가들의 폭발적인 힘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7)

 

 

 

게릴라걸스는 1985년 미국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집단이다. 이들은 고릴라 가면을 뒤집어쓰고 하는 퍼포먼스, 강의, 출판,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게릴라걸스는 앵그르(Ingres)의 누드화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문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게릴라걸스의 질문은 서양미술사 책에서 여성 예술가들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향한 분노의 목소리다.

 

 

 

 

 

 

이 책에 선정된 50인의 여성예술가 대다수가 유럽, 미국 중심 백인이라는 사실이 아쉽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만이 유일한 유색 인종 여성 예술가다. 동양, 아프리카 대륙의 여성예술가가 단 한 명도 없다. 이 책 소개와 무관한 내용을 덧붙인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가 상이 터너 상(Turner Prize)’이다. 올해 터너 상 수상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의 여성 미술가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로 결정되었다. 그녀는 1980년대 영국 흑인 미술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여전히 잔존하는 식민주의 역사와 인종 차별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녀가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영국 출신의 젊은 백인 미술가에게 주어진 터너 상의 전통이 깨져버렸다. 미술계의 최신 동향이 반영된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개정판이 나온다면 히미드는 ‘50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50에 포함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생존 인물로 나와 있는데, 그녀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십 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50에 선정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50번째 여성 예술가로 소개된 독일 출신의 레베카 호른(Rebecca Horn)1944년생이다. 셔먼은 1954년에 태어났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02년에 셔먼은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그녀가 이 책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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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2-30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올해는 사이러스 님 때문에 알라딘에서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이곳에 올인하여 주십시오. 데이트 따윈 하지 마시고... 데이트 할 시간에 글 써서 올리셔야죠.. ㅋㅋㅋㅋ 농담이고요...

cyrus 2017-12-30 11:29   좋아요 0 | URL
헉.. 새해 인사 대신 저주인가요? ㅎㅎㅎ

저는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내 입맛대로 끄적거리는거리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곰발님의 글과 댓글을 볼 때마다 피식하면서 웃게 됩니다. 곰발님의 말장난을 좋아하거든요. 내년에도 날카롭고 유쾌한 글 써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표맥(漂麥) 2017-12-3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과 곰발님 글 읽는 재미로 알라딘에 붙어(?) 있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cyrus 2017-12-30 11:34   좋아요 0 | URL
같이 붙어서 이 추운 겨울을 지내보아요... ㅎㅎㅎ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니데이 2017-12-3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내일을 지나고 나면 새해가 되니까요.
올해도 좋은 이야기와 인사 나누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엔 더 좋은 일들,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7-12-31 15:46   좋아요 1 | URL
2017년 마지막 하루가 몇 시간 밖에 안 남았군요. 내년에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저나 서니데이님이나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 꼭 좋은 결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18-01-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를 못 나눈 것 같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시면 저는 열심히 읽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리뷰는 이미 읽었고 이제야 댓글을 씁니다.)

cyrus 2018-01-02 23:3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님. 요즘 북플에도 관태기를 느껴서 그런지 새해 인사를 잘 안하게 되네요. 새해 인사 없이도 제가 알고 지내는 모든 분들 복 많이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제 글을 열심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의 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패싱하면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없어도 ‘사이러스 패싱‘은 가능합니다. ^^

AgalmA 2018-01-0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신디 셔먼이 없다니! 유색인종에 대한 지점도 잘 지적하셨네요. 온갖 구별짓기로 소외를 만드는 째째한 세상!
cyrus님 작년에도 덕분에 재미나고 유용한 정보들 많이 알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2018년은 어떤 흥미로운 걸 찾아다니실지 기대가 되네요.
건강히^^/

cyrus 2018-01-04 10:32   좋아요 1 | URL
저는 ‘알쓸신잡’ 콘셉트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쓸모없는 정보만 찾아 다녀야겠어요.. ㅎㅎㅎ

AgalmA 2018-01-04 10:39   좋아요 1 | URL
제가 그런 글, 정보들을 좋아하니까요ㅋㅋ 계속 진행하셔도 환영입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전업 작가가 되려면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적어도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시사를 담고 있다. 울프가 말한 ‘방’이란 예술가로서의 창조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울프는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여 경제적 자립과 독립적 공간의 확보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길 바랐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06)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16)

 

 

 

그렇다면 여성이 화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기본적으로 그림 그리는 작업실, 물감, 화구(畫具)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준비 요건을 모두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든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맞물려 여성 예술가들의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으리라 기대한다면 갈 길이 아득히 멀다. 여성 예술가들은 갖가지 오해와 편견을 받는다. 또 가사와 양육으로 지속적인 예술 활동이 불가능하다.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 (해냄, 2003)

*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 (아트북스, 2006)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아트북스, 2017)

 

 

 

예나 지금이나 예술계에도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 있다. 오늘날에 널리 알려진 여성 예술가들은 외부의 유리 천장뿐만 아니라 내면의 유리 천장까지 뚫으면서 예술가로서의 신념과 내면의 힘을 스스로 길렀다. 하지만 현실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야망이 넘쳤고, 예술가가 지녀야 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끝내 재능의 날개를 펼치지 못한 채 요절한 여성 예술가도 있다. 그림을 그리려고 파리로 건너온 러시아의 젊은 화가 마리 바슈키르체프(Marie Bashkirtseff)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바슈키르체프는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러시아 귀족의 딸이었다. 열아홉 살의 바슈키르체프는 그나마 여학생 입학을 받아준 줄리앙 아카데미(Académie Julian)에 등록하기 위해 파리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파리 생활은 혈혈단신으로 시작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파리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리려는 바슈키르체프가 못마땅했다. 여학생이 내야 할 줄리앙 아카데미의 등록금은 남학생 등록금보다 두 배나 높았고, 또 해부학 강의를 들으려면 수강료를 내야만 했다. 이렇듯 19세기 여성이 마주해야 할 예술계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도 많았다. 전문 화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술학교에 등록한 여학생의 수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파리의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바슈키르체프에게 미술을 가르쳐준 사람이 로자 보뇌르(Rosa Bonheur)이다. 보뇌르는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다. 1865년에 보뇌르는 여성 미술가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여성의 미술계 진입 상황이 썩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교육을 받는 여성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미세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감지한 바슈키르체프는 ‘여성 화가의 작업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881년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 화가들의 염원을 담은 『작업실 안에서』를 제작했다. 바슈키르체프의 이 그림 속에 미술을 공부하는 열여섯 명의 여학생들을 그렸다. 물론, 이 그림에 바슈키르체프 본인의 모습도 있다. 그림 속에 화가를 찾아보시라. 힌트는 바슈키르체프의 ‘자화상’이다.

 

 

 

 

 

 

 

 

 

『작업실 안에서』는 여성 화가가 처한 열악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 ‘화가의 작업실’은 남성 화가들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호모 소셜(Homo social)’의 장소로 묘사되었다. ‘화가의 작업실’을 주제로 한 쿠르베(Courbet)와 프레데릭 바지유(Frédéric Bazille)의 그림을 보라. 남성 화가의 개인 작업실은 넓고 쾌적하다. 작업실에는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가 직접 사들인 동료 화가의 그림들도 걸려 있다. 여성보다 경제적 지위가 높고, 그림 그리는 재능을 가진 남성은 화가가 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화가들은 남성의 경제적 지위에 의존해야만 미술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또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여성 화가들은 좁은 작업실에 모여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쿠르베의 그림 중앙에 서 있는 누드모델은 ‘남성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Muse)’인 동시에 그림 내부 또는 그림 외부에 있는 남성 감상자들을 위한 성적 대상화가 된다. 그림 오른쪽에 부유해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있으나 그녀도 감상자일 뿐이다. 그녀는 남성 감상자 무리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상태다. 벌거벗은 누드모델과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무척 대조된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하층 여성(공장에 일하는 여성, 매춘부 등)들은 '투 잡(two job)'으로 누드모델 일을 했다. 쿠르베의 그림 속에 있는 두 여성은 19세기 프랑스 여성 인구의 극심한 빈부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 메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책과함께, 2012)  

 

   

 

바슈키르체프는 열세 살 때부터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일기를 썼다. 그녀는 일기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고, ‘여성’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굴레에 속박되어 살아가면서 느낀 심정을 기록했다. 그녀 사후에 공개된 일기가 워낙 유명해지는 바람에 그녀는 ‘화가’보다는 ‘작가’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메릴린 옐롬(Marilyn Yalom) 《아내의 역사》(책과함께, 2012)에 바슈키르체프를 ‘작가’로 소개했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의 딸 줄리 마네(Julie Manet)도 바슈키르체프의 일기를 즐겨 읽었다. 줄리 마네는 자신의 일기에 바슈키르체프를 ‘호기심 많은 여성’, ‘마음이 유연하고 머리가 좋은 여성’,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녀의 적극적인 사교성과 비범한 능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있었다. 특히 ‘여성 혐오’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는 바슈키르체프 같은 여자는 ‘번화가에서 공개적으로 엉덩이를 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드가 선생,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코 찡긋) 성격이 착했던 줄리 마네는 드가를 ‘친절한 어른’으로 생각했다(실제로 드가는 베르트 모리소와 그의 딸을 무척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본 드가는…‥ 그냥 한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보기엔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친구로 지내라면 조금 힘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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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8 08:38   좋아요 1 | URL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하나는 말씀하신, 예술가가 죽고난 후에 재평가받는 것, 또 하나는 생전에 인정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예술가. 다 빈치나 피카소처럼 천재 예술가는 살아있을 때 명성을 얻었도 죽어서도 본좌급 명성을 얻고 있죠.

서니데이 2017-12-27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추웠는데 내일까지는 추운 날이 될 것 같아요.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7-12-28 08:40   좋아요 0 | URL
추운 날씨 때문에 오히려 퇴근길이 출근길보다 두렵습니다.. ^^;;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 주은정 옮김 / 아트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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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관심을 가지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되지 않은 습관이다. 자화상은 그냥 화가 개인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화가로서의 나라는 고유명사를 그리는 것이다. 얼굴에는 한 사람의 삶의 발자취, 감정과 욕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반성이며 성찰이다. 사실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것은 미술의 역할이 아니라 철학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자화상은 자기의 눈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창구다.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붓으로 대답한다.

 

누구나 와 타자의 외면 및 내면세계,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붓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서양에서 여성이 미술의 세계에 동참한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 미술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미술가들은 눈부신 재능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하고, 연인이거나 경쟁 상대 격인 남성 미술가들의 그늘에 가려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아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Holofernes)의 목을 자르는 이스라엘의 여성 영웅 유디트(Judith)를 그리며 남성의 우월성에 반기를 드는 도발적인 그림을 남겼다. 아르테미시아는 남자 미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오랫동안 남성중심주의의 미술사에서는 잊혀 왔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자신의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페미니즘 미술의 씨앗을 뿌렸다. 생전에 서른 번 넘은 수술을 받은 프리다는 다양한 고통의 표정을 간직한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여성 자화상속 여성의 이미지를 탐구한 책이다. 남성 우월적 시선에 대한 통시적 분석과 비판을 담은 이 책은 미술사의 조역이었던 여성을 공동 주역의 위치로 격상시킨다는 점에서 확실히 페미니즘적이다.

 

 

여성은 자신을 남성과 동등한 전문가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남성은 그들을 미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보았고 여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중략) 미술가란 무엇인가? 만약 그 답이 그저 미술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여성 미술가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된 역사에 의해 미술가는 항상 남성으로 전제되며 여성 미술가는 예외적인 영재에 해당한다. [1]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은 남성중심주의 미술사 속에서 상실되고 매몰되어왔던 여성 이야기의 재발견이라는 커다란 페미니즘의 틀 안에서 출발한다. 페미니즘 미술 영역 중의 하나가 저평가받고 알려지지 않은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항변, 남성 못지않은 위대한 창조성 등을 재발견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여성 자화상은 14세기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유명한 여성에 대하여>[2]에 실린 삽화다. 이 삽화에 마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성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이 있다. 여성 미술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여성 미술가들은 자신의 미적 감각을 과시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기 묘사 방식을 선호했다. 17세기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은 이전 세기 자화상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분위기가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모습을 회화로 의인화하는 소재로 선택, 자화상을 제작했다. 아르테미시아 이전에 남성 미술가들은 여성을 남성 미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조력자뮤즈(Muse)로 형상화했다. 아르테미시아는 고전적 · 남성적 여성 형상 방식을 거부하고 여성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했다.

 

 

 

 

 

 

 

18세기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여성 미술가들이 활동했다.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 앙겔리카 카우프만(Angelika Kaufmann)[3],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Elisabeth Vigee-Lebrun) 등이 대표적인 전문 화가들이다. 비제르브룅은 루벤스(Rubens)의 초상화를 의도적으로 모방하여 자화상을 그렸다. 루벤스의 초상화 속 여성은 다분히 남성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그녀의 자세, 그리고 남성 감상자를 향해 요염하게 바라보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남성 감상자를 만족스럽게 하는 클리셰이다. 하지만 자화상 속 비제르브룅은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남성 감상자를 바라본다. 그녀의 한 손에 들고 있는 붓과 팔레트는 비제르브룅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만약 남성 감상자가 자화상을 보면서 그림 속 여성의 미모가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자화상을 제대로 보지 않은 무지한 감상이며 여성 미술가에게는 실례가 되는 발언이다. 루벤스의 여성은 코르셋(corset)을 착용한 상태다. 코르셋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의복이다. 비제르브룅은 코르셋이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녀는 코르셋이 만드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불쾌하게 여겼고 항상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 또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누드화라면 으레 20대의 늘씬한 모습만을 연상하는 남성들에게 질리언 멜링(Giliian Melling)나와 나의 아기(1992년 작)는 확실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자화상이다. 임신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 축 처진 가슴을 드러낸 그녀의 그림 앞에서 남성 관람객들은 일반 누드화를 대하는 감상을 전혀 할 수 없다. 이 그림에는 미술에 대한 경험, ‘여성의 정체성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 그림에 남성이 즐겨 사용하는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여성 자화상의 매력은 여성 미술가의 내면과 이미지로 형상화된 목소리를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화상 속 여성 미술가들은 남성 감상자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한다. 이 그림에 네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성은 없어.” 여성 자화상의 매력은 남성 감상자의 모습을 똑바로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기도 한다. 거울은 성찰의 은유적 대상이다. 거울은 분명 외모를 비추지만 우리는 거울 안에 비친 제 모습으로부터 내면을 찾으려고 한다. 남성 감상자는 거울이 된 여성 자화상을 바라보면서 내면에 들어앉아 있는 남성성의 문제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을 통해 남성은 여성을 전시하고, 품평하고, 눈요기 대상으로 묘사한 남성 미술가의 그림을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여성 자화상은 남성 감상자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여성의 눈으로 그림을 보는 것도 예술 이해의 기본이다.

 

 

 

 

 

[1] 서문, 34

[2]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임옥희 역, 나무와숲)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있다.

[3] 안젤리카 카우프만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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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21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평론지에 실릴만한 글 이네요. 칭찬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cyrus 2017-12-22 11:43   좋아요 0 | URL
저는 미술을 아는 것을 즐기는 딜레탕트입니다. 사실 요즘 국내 화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라요. 저한텐 미술평론을 쓸 수 있는 수준이 없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도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사이러스 님 글은 글을 완성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글입니다.
자료 찾고 인용하고 그러닌 게 사실 글쓰기의 팔 할은 소비되는 것 같거든요..
항상 정성스러운 글들이라 아껴 읽게 됩니다.

cyrus 2017-12-22 11:45   좋아요 0 | URL
아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이런 글, 하루 공개하고 나면 잊혀질 건데요. 리뷰를 당장은 보지 않겠지만, 누군가가 책을 검색하다가 제 글을 보겠죠. 리뷰라는 게 그런 겁니다.. ㅎㅎㅎ 다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알라딘 서재에 활동하는 분들 모두 나름 글 한 편을 정성스럽게 씁니다. ^^

sprenown 2017-12-2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은 잘 모르는데 프리다 칼로 얘기가 나오니 트로츠키가 생각나네요ㅎㅎ

cyrus 2017-12-22 11:46   좋아요 0 | URL
네. 두 사람의 인연도 꽤 유명하죠. ^^

AgalmA 2017-12-2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cyrus 님이 별 다섯 개 줄 정도면 신뢰 확보구만요 :)

cyrus 2017-12-22 11:48   좋아요 0 | URL
별 네 개, 다섯 개 수준의 책입니다. 화가의 자화상을 주제로 한 책은 있어도 여성 화가의 자화상과 그 그림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책은 없었어요. ^^

수이 2017-12-2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거 계속 사고싶었는데 미루었는데 사야지!

cyrus 2017-12-22 11:50   좋아요 0 | URL
이 책의 ‘20세기 여성 미술가’를 소개한 내용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독창적인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
 
사진, 말 없는 시
유병용 지음 / 사진예술사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사진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화가였다. 애초에 사진과 미술은 한 몸이었다. 카메라로 실물과 똑같은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화가들은 손에 쥔 붓을 내려놓았다. 심심해진 화가들은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이후 사실적 묘사를 포기하는 현대미술이 등장했다. 아울러 기록의 도구로만 머물 것 같았던 사진도 점차 예술적 표현을 시도했다. 사진과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설치 사진, 회화적 사진, 연출 사진, 합성사진 등은 사진 매체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미래에 이미지를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이 문맹자라고 했다. 예전에는 글씨로 정보가 전달되었다면, 미래에는 정보전달의 도구가 사진과 같은 시각 이미지로 점점 바뀐다는 의미다. 벤야민의 예언은 정확했다.

 

미술과 문학은 전통적으로 유대가 깊다. 상대 장르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교유(交遊)도 많았다. 그러나 사진과 문학의 관계의 끈은 느슨한 편이다. 유병용사진, 말 없는 시는 사진과 문학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상징적인 사진집이다. 많은 사람은 시를 통해 삶의 영양분을 얻는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때, 시 한 구절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 장의 사진도 그 어떤 이야기보다 울림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사진과 시의 만남은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배가시키는 행복한 결합이다.

 

 

 

 

 

 

 

사진을 너무 쉽게 찍으면 감동이 떨어진다. 사진작가는 대상물에서 감동해야 사진 속에 특별한 메시지가 형상화된다. 사진의 빛의 예술이다. 사진작가는 빛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 빛은 시간이므로 사진은 시간과 싸우며 획득되는 장르다. 사진작가는 빛과 시간이 합일되는 지점에서 셔터를 누른다. 유병용의 사진에는 빛과 시간이 빚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상에 대한 정성 없이는 그 찰나의 흔적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유병용은 일상 곳곳에서 수많은 눈길과 손길, 발자국이 닿은 사물 및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사진 속 일상의 오브제들은 삶의 매 순간들이 지나칠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준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업을 생활사진이라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에 잡힌 한순간 한 공간도 운명적인 인연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평범하다. 그러나 사진에서 선뜻 눈을 떼지 못하고 사진에 덧붙여 둔 글에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상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병용의 사진은 무언 시(無言 詩)’. 무언 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단어다. 그렇지만 그의 사진에는 분명 말 없는 시가 있다. ‘말이 있는 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다. ‘말 있는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같은 시를 보아도 읽을 때의 감정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학창 시절에 시를 해석하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시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을 억누른다. 이들은 시에 들어있는 의 보편적인 해석에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말 없는 시공부할 때 보는 시가 아니다. 그래서 사진집에 있는 시는 순수문학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 시는 작가가 원하는 해석으로 감상할 필요가 없다. 무언 시는 읽는 독자 스스로 마음에 깊은 감동이 되어야 가치가 있다. 무언 시에는 예술성을 부여받은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가 생활하면서 쓰는 평범한 말이 있다. 무언 시는 사진과 만나면 죽은 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시가 된다.

 

사진과 시의 만남은 우리 독자들의 시각적 환경을 풍요롭게 한다. 사진은 독자의 눈을 정화해주고, 시는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진, 말 없는 시는 보고 즐기면 된다. 좋은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유병용의 사진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진솔하게 담아 우리 가까이에 끌어다 주고 있다. 사진 한 장, 글 한 줄에 이끌려 읽다 보면 때론 지루해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였던지 새삼스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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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4 17:24   좋아요 0 | URL
아직 멀었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보는 법에 대해 공부해야겠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1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살아 있는 사진이 된다는 말이군요 ㅎㅎㅎ

cyrus 2017-12-14 17:26   좋아요 0 | URL
사진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 ‘이름’이 있듯이 사진 작품에도 이름이 있어요. ^^
 

 

 

위대한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지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만 알려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을 먼저 닦고 거친 스승의 식견은 그 자체로 제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드물지 않다. 청출어람(靑出於藍).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공자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았던 제자 안회(顔回)를 총애하였다. 예술에서도 청출어람의 예를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화가 겸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서 미술 수련을 받았다. 도제 생활 6년 이상을 한 제자는 스승의 그림 작업에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로키오는 도제 생활 6년도 채 안 된 다빈치에게 자신의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다빈치는 그림 왼쪽에 있는 천사를 그렸다. 어린 제자의 훌륭한 그림 솜씨에 감탄한[1] 베로키오는 천부적인 재능 앞에 좌절했고,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 오광수,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 발터 니그 조르주 루오(분도출판사, 2013)

* 임식순 루오(서문당, 1992)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관계는 보는 이에겐 애틋하다. 모로는 제자들의 재능과 개성을 존중하는 스승이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제자들의 실력을 파악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매우 즐겁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나는 여러분이 밟고 지나가는 다리다.”  [2]

 

 

모로는 매주 일요일에 제자들을 만나 예술에 관한 토론을 했다. 토론 모임에 참석한 제자들 중 한 명이 조르주 루오였다. 그는 그 당시 스승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스승의 인품에 감탄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가르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는 인정이 많았으며, 그가 갖고 있던 생명과 뉘앙스에 대한 섬세한 경의는 우리를 얼마나 감동시켰던가.”  [3]

 

 

젊은 루오는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아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모로는 제자의 심정을 이해했으며 루오에게 그림을 급하게 그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모로는 루오가 추구하게 될 예술적 성향을 간파했다. 그는 루오가 우울하면서 검소한 분위기가 감도는 종교적 예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루오는 종교적 심성을 담은 그림을 남겼다. 모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업실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모로 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루오가 임명되었다. 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받는 월급이 적었지만, 루오는 금전적 혜택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스승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미술관을 관리하는 데 힘썼다. 루오에게 모로는 스승 이상의 존재였다. 루오는 모로를 좋은 아버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하게 대했다. 모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대담한 묘사를 선보여 야수주의(Fauvisme)를 탄생시켰다.

 

 

 

 

 

 

 

 

 

 

 

 

 

 

 

 

 

 

 

 

 

 

 

 

 

 

 

 

 

 

 

 

* 알렉상드르 라피에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민음사, 2001)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해냄, 2003)

*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 이명옥 센세이션-세상을 뒤흔든 천재들(웅진지식하우스, 2007)

 

 

 

 

제자의 앞길을 가로 막은 나쁜 스승이 있다.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화가의 친딸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화가의 딸은 열일곱 살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그녀는 벌써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촉망받던 인재였다. 그런데 타시는 아르테미시아를 강간했다. 그는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그녀와의 결혼을 원했다. 하지만 타시의 제안은 자신의 강간죄를 덮기 위한 비열한 꼼수였다. 타시는 자신이 내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타시를 고발했다. 딸의 순결은 가문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였다. 아버지는 타시를 강간죄가 아닌 명예훼손죄로 고발했다. 세상은 아르테미시아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녀를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심지어 타시는 그녀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7개월 동안 진행된 소송 끝에 강간죄가 입증돼 타시는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타시가 받은 죗값은 고작 1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 타시에게 그림을 주문한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판을 승리로 이끈 아르테미시아였지만, 남은 건 상처였다. 모진 고문과 수모는 그녀가 가진 재능의 날개를 꺾이게 만들었다. 아르테미시아는 불행을 딛고, 붓을 다시 쥐었다.

 

 

 

 

 

 

그녀의 대표작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화가의 개성이 충만한 걸작이다.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Judith)는 적장의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쥔 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는 팜 파탈(femme fatale)’에 가까웠으며 치명적 매력으로 적장을 유혹해 그를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존재였다. 아르테미시아는 남성적 범주에 속한 유디트를 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의식을 담은 아르테미시아를 그렸고, 유디트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현했다.

 

 

 

 

 

 

 

 

 

 

 

 

 

 

 

 

 

 

 

 

*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동녘, 2017)

 

 

 

스승은 제자들 중 한 두 사람을 선택해 총애했다. 자신의 지식이 왜곡되지 않고 순수하게 애제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집착한 스승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최악의 스승은 제자의 재능을 죽일 뿐만 아니라 제자의 인생마저 망가뜨린다. 중국 명나라 말기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진정한 스승이 되려면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제자와 함께 공부한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려면 스승은 새로운 것을 배울 줄 알아야 하며 제자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또 스승은 제자의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 제자는 스승의 인도(引導)를 믿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제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스승. 그 모습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언급한 스승의 파레시아(Parrhesia)’[4]라고 할 수 있겠다.

 

 

 

 

 

 

[1]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베로키오가 소년 다 빈치의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에 화가 났다고 썼다.

 

[2] 오광수,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10~11

    

[3] 같은 책, 10~11

 

[4] 미셸 푸코 진실과 담론(동녘, 2017)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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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6 17:13   좋아요 0 | URL
미술사에 ‘나쁜 스승-좋은 제자’ 조합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스승’은 제자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제자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스승입니다.

sprenown 2017-12-0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스러워 하시니 더이상 칭찬과 감탄의 댓글은 달지 않을 게요.^^. ㅎ. 안목과 식견이 있으신 분들의 비판적 댓글을 기대합니다.^^..

cyrus 2017-12-06 17:16   좋아요 0 | URL
제가 매일 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라서 부담스러우면 ‘좋아요’ 안 눌러고 되고, 댓글 달지 않아도 됩니다. 평소에 관심 가질 만한 주제의 글이 아니라면 ‘패싱’해도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있어선 안 되지만, ‘사이러스 패싱’은 괜찮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12-06 17:34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패싱‘ 완전 우껴요.
사실 저도 ‘좋아요‘를 좀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좋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잘 읽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요번 ‘비회원 좋아요‘ 사건으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
.
.
애니웨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전 ‘좋아요‘에 인색하진 않을렵니다~ㅅ!

cyrus 2017-12-07 10:01   좋아요 0 | URL
To. 양철나무꾼님 / 저도 ‘글 잘 읽었습니다.’, ‘글 한 편 쓰느라 고생했어요.’, 이런 의미로 ‘좋아요’를 눌러요. 제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분의 글에는 무조건 ‘좋아요’를 눌러요. ‘좋아요’를 받은 만큼 ‘좋아요’로 돌려주는 식이죠. ^^

sprenown 2017-12-06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왜이러세요...댓글은 달지 않더라도(못하더라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꼼꼼히 끝까지 읽고, ‘좋아요‘는 누를 거예요.ㅎㅎ

cyrus 2017-12-06 17:2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편한 대로 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0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항상 느끼지만 꼼꼼한 자료와 종합해서 내놓는 글은 참 좋군요. 아르테미시아 사연을 듣고 그림을 다시 보니 확실히 달라보이네요. 유디트를 그린 다른 남성 작가들과의 차별성이 느껴집니다..

cyrus 2017-12-07 09:55   좋아요 0 | URL
원래 카라바조의 그림과 비교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습니다. 사실 검색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

psyche 2017-12-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림이 달라보여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봐요.

cyrus 2017-12-07 09:57   좋아요 0 | URL
화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그림이 좋아요. 화가의 삶만 안다면 그림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그림은 어렵지 않고, 공감하기 쉬워요. ^^

yamoo 2017-12-0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디트에 관한 그림이 좀 있는 걸로 압니다. 그중에서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가 가장 유명하죠. 저도 미술사 관계된 책에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는 읽었습니다. 명화는 그에 얽힌 신화나 이면의 이야기를 읽고 보는 게 그림 이해에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