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마네(Manet)「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에 출품했을 때 이 작품은 ‘역겨운 졸작’으로 평가받았다. 살롱이 외면한 그림은 낙선전에 전시되었다. 그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일상의 광경에 뻔뻔하게 끼어든 옷 벗은 여인에게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마네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나중에 인상파를 형성하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자 그는 새로운 예술의 지도자적 존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회화 방식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의 시대를 지켜본 증인들이 있었다. 보들레르(Baudelaire)에밀 졸라(Emile Zola). 그들은 인상주의 미술에서 ‘현대성의 출현’을 감지했다.

 

 

 

 

 

 

 

 

 

 

 

 

 

 

 

 

 

 

 

 

*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은행나무, 2014)

* 보들레르 《화장 예찬》 (평사리, 2014)

*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 (인문서재, 2013)

 

 

 

보들레르의 비평문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1863년에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이 발표된 1863년은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을 선보인 역사적인 해이다. 언뜻 비평문 제목만 봐서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가 누군지 짐작하기 힘들다. 보들레르의 후광을 입은 마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마네가 아니다. 콩스탕탱 기스(Constantin Guys)[1]라는 신문 삽화가를 가리킨다.

 

기스는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 화가로 보기 어렵다. 그는 종군기자로 활동하여 그리스 독립전쟁, 크리미아 전쟁 현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기스는 전쟁 삽화뿐만 아니라 제2제정기 파리 사회 풍속을 소재로 한 삽화들도 그렸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제2제정기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으로 세련된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보들레르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를 통해 기스의 그림들을 옹호하면서 ‘현대성’의 의미를 주장했다. 보들레르가 말하는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현시대의 유행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들레르는 기스를 ‘관찰자’, ‘소요객(flâneur, 플라뇌르)’, ‘풍속화가’, ‘현상(現狀)의 화가’라고 부른다. 번역하기 까다로운 프랑스어 ‘플라뇌르’는 한량, 산책자를 모두 합친 말인데, 주로 ‘산책자’로 번역된다.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서는 ‘소요객’으로 번역되었다. 말 그대로 소요객은 마음대로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익명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기스는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의 익명성을 존중한 보들레르는 자신의 비평문에 기스를 ‘G.씨’라고 썼다.

 

기스를 옹호한 보들레르의 비평문은 마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헌인가? 그렇다. 마네는 동시대의 삶을 그대로 묘사한 ‘현대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본 것, 즉 시대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마네의 시도는 벌거벗은 여신이나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그리던 고전주의 화풍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이 충실히 반영된 마네의 그림을 호평했다.

 

 

 

 

 

 

 

 

 

 

 

 

 

 

 

 

 

 

* 에밀 졸라 《예술에 대한 글쓰기》 (지만지, 2012)

 

 

 

졸라는 보들레르보다 마네를 열렬하게 지지한 사람이다. 그가 쓴 『나의 살롱』이라는 비평문집에 ‘마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마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전기 『마네』까지 쓸 정도로 마네의 진면목을 세상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졸라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추도문을 쓰기도 했다. 졸라가 폴 세잔(Paul Cézanne)을 옹호했다가 나중에 그와 사이가 멀어진 작가로 알려졌으나 마네와 졸라와의 친밀한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나의 살롱』, 『마네』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완역본은 아니지만, 마네의 예술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비평 선집이다.

 

졸라는 그림의 주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분석하는 비평을 반대했다. 보수적인 살롱 심사위원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그 속에 교훈을 읽을 수 있는 그림들을 선호했다. 살롱 심사위원이 보고 싶은 교훈은 ‘그림의 주제’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화가들은 ‘옛 것’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화와 전설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았다. 그런데 졸라는 옛 것을 답습하는 틀에 박힌 그림과 그것을 감상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졸라는 환상적이면서도 과장된 신화와 전설이 아닌 ‘진실한 삶의 현장’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작은 기교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아부성 주제들, 교훈적이거나 대중과 친밀해지려는 의도가 농후한 작품들, 어느 유명인의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적 과장이나 또는 지나치게 미화된 몽상 등과 같은 작품들을 가장 경멸한다. 반면 나는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독창적이고 힘찬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나의 살롱』 ‘예술의 시점’ 편, 56쪽)

 

 

졸라가 말하는 ‘개성 있는 작품들’이란 동시대 삶의 진실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은 그림들이다. 마네와 인상파 화가들은 일상생활 범위 안에서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즐겨 그렸다. 인상파 화가들은 동시대인들의 평범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특별한 주제나 의미를 찾는다는 건 난센스이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여성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즐겨 그린 베트르 모리조(Berthe Morisot)는 보들레르와 졸라의 예술관 모두에 부합하는 화가이다. 보들레르의 '현대성'과 졸라의 '세상의 진실'이라는 예술적 관점에서 모리조의 그림을 본다면 개성이 넘치고 정감이 가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모리조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현대성, 즉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는 동시대 여성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또 그녀는 그림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여성의 가사 노동에 주목했다. 마네, 모네(Monet)가 새롭게 변모하는 ‘도시의 세련미’를 발견했듯이 모리조는 남성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하지 못한 ‘일상의 소박미’를 발견했다.

 

 

 

 

 

 

 

 

 

 

 

 

 

 

 

 

 

모리조는 대단한 일이 아닌 것들도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실한 삶의 현장’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아주 사소한 일상, 어머니가 잠자는 아기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도 그림의 소재가 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사랑스러운 ‘삶의 진실’이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상주의 연인들》을 쓴 제프리 마이어스는 인상파 그림, 특히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상파가 지향하는 예술관인 ‘현대성’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모리조를 과소평가했다. 보들레르와 졸라가 눈여겨본 인상파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모리조가 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하는 화가인지 알 수 있다.

 

 

 

 

 

[1] 어떤 책에서는 ‘콩스탕탱 기’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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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01-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나나>를 너무 어려서 읽어서 줄거리만 따라가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미술사에서 세잔과 얽혀서 소개되거나 에밀 졸라를 이야기한 글들 보면 정치의식이 특별했던 작가인가보네요. 늘 좋은 글 배우며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8-01-19 17:34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제 글에 배울 게 1도 없습니다. 그냥 ‘이런 내용이 있구나’하고 보셨으면 합니다. 졸라가 유태인 드레퓌스의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

2018-01-1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9 17:37   좋아요 0 | URL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삶의 교훈이 틀린 말이 아니에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깐도리 2018-01-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나나를 읽었는데, 그 이후 에밀졸라의 생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었어요...

cyrus 2018-01-20 19:35   좋아요 0 | URL
졸라의 생애를 다룬 전기나 평전이 있을 텐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서 아쉬워요. 졸라와 작가들(모파상, 위스망스)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어요.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메리 커샛(Mary Cassatt)은 인상주의 미술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여성화가다. 모리조는 마네(Manet)의 제자였다. 그녀는 최초의 인상주의 회화 전시회에 참여한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커샛은 미국 출신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건너온 커샛은 드가(De Gas)와 친하게 지내면서 인상주의 미술을 수용했다. 드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커샛은 다섯 차례나 인상주의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두 사람의 작품 대부분은 여성의 개인적 일상생활을 담고 있으며 모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 (해냄, 2003)

 

 

 

 

모리조와 커셋은 남성 중심의 화단 속에서 전업 화가로 살아 왔다. 그 당시에는 공립 미술학교에 여성들이 입학할 수도 없었을 만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론가와 동료 화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모리조는 아버지의 격려 속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었지만, 커샛은 자신을 에워싸는 비웃음과 편견 속에서 어렵사리 미술의 세계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커샛도 모리조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족들은 그녀가 화가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다. 커샛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누드 드로잉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교수들은 여학생들의 모사 작업에만 관심을 가졌다. 미국 미술학교의 제한적인 수업에 불만을 품은 커샛은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파리로 이주했다.

 

모리조와 커샛은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이 재조명한 화가들이다. 그녀들은 생전에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았지만, 사후에 잊히고 말았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여성 화가였음에도 그녀들은 오랫동안 비주류 화가로 분류되었다. 남성 중심의 화단은 두 사람의 작품을 ‘과소평가’했고, 기록의 권력을 가진 남성 미술사가들은 그녀들을 화단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주변적 인물’ 정도로 간주했다.

 

그런데 19, 20세기 여성 미술가의 업적을 연구한 시모나 바르톨레나는 모리조와 커샛을 ‘남성화가 및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한 피해자’로 바라보는 관점에 이견을 드러냈다.

 

 

 

 

 

 

 

 

 

 

 

 

 

 

 

* 시모나 바르톨레나 《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 (마로니에북스, 2009)

 

 

아마도 여성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도 몰라도 인상주의자들에게 냉혹했던 비평가들조차 여류화가들에게 신랄하게 혹평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류화가들이 피해자였다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벗어난다. (72쪽)

 

 

 

이 문장의 원문을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번역문이 페미니즘 미술사가의 작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생전에 과소평가를 받았거나 사후에 잊힌 여성화가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의 일차적인 활동 목표이다. 남성 미술가들에게 차별받고 외면당한 여성 미술가의 피해의식을 보상받기 위해 여성 미술가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 평론가들이 ‘여성에 대한 예의’ 때문에 모리조와 카셋에게 혹평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여성 화가를 과소평가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여성 화가는 혹독한 비난을 감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남성 평론가들의 생각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다. 모리조와 커셋의 작품을 칭찬한 남성 평론가들(살롱 심사위원)은 그녀들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들은 모리조와 커셋을 ‘여성화가’가 아닌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으로 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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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cyrus 2018-01-12 13:09   좋아요 1 | URL
그들이 웃고, 싸우고, 질투하면서 지내는 모습을 살펴보면 마치 드라마 한 편 보는 것 같습니다. ^^
 

 

 

지난달부터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삶과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상주의 미술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큰 흐름을 톺아보면서 ‘주제 서평’을 쓸 계획을 세웠다.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이 글이 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주제 서평이 되지 싶다. 이 글의 주제이자 주인공은 베르트 모리조다. 오늘날 인상주의는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술사조 중 하나가 되었다.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태동과 흐름을 친절하게 설명한 책들이 많다. 또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한 책들도 있다. 그런데 이 책 중에 베르트 모리조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이 별로 없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인상주의 미술 관련 책 중에 베르트 모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선별했다.

 

 

 

 

 

 

 

 

 

 

 

 

 

 

 

 

 

 

 

 

 

 

 

 

 

 

 

 

 

 

 

* 김광우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미술문화, 2017)

* 루이 피에라르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 (글항아리, 2009)

* 스테파노 추피 《마네 : 전통에 반기를 든 근대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 자비에르 질 네레 《에두아르 마네》 (마로니에북스, 2006)

* 프랑수아즈 카생 《마네 : 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시공사, 1998)

 

 

 

마네(Manet)와 모리조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상주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나 글을 보게 되면 마네의 이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비록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 그룹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모리조 역시 마네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이다. 마네를 빼놓고 인상주의 미술에 접근한다는 것은 근대미술의 시작점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리조를 만나기 전에 인상주의 화가들이 왜 자신들과 거리를 둔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치켜세우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모리조는 마네의 친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결혼하여 외동딸 줄리 마네(Julie-Manet)를 낳았다. 줄리 마네는 어렸을 때부터 인상주의 화가와 문인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녀를 따뜻하게 보살펴준 사람들이 드가(Edgar De Gas), 르누아르(Renoir),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Mallarme) 등이다. 특히 말라르메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리의 대부(代父)가 되어 그녀를 친자식같이 보살폈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은 1893년부터 1899년까지 기록된 줄리의 일기를 선별하여 편집한 책이다. 아버지 외젠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후에 줄리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삼촌인 마네는 줄리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기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열다섯 살의 줄리가 쓴 일기를 보면 어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심리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모리조 역시 1895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줄리는 어머니의 부재에서 느껴지는 슬픈 감정들을 일기에 꾹꾹 담았다.

 

의외로 이 책의 독자 평점이 낮다. 물론, 나도 이 책에 ‘별 세 개’를 주었다. 수수하고 담백한 문체가 이 책의 특징이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리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줄리도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고, 모리조와 르누아르에게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 줄리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어머니가 남긴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감정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이 책에 모리조의 그림 도판이 많아서 좋다. 모리조의 그림 대부분은 외젠 마네와 줄리를 묘사한 것들이 많다. 줄리의 모습을 담은 모리조의 그림들을 보면 가슴 뭉클하다. 유일한 혈육인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시선이 느껴진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인상주의 연인들》 ‘마네-모리조’, ‘드가-메리 커샛’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마네와 모리조를 단순히 ‘스승과 제자’ 관계로 보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이 과감하다. 제프리 마이어스(Jeffrey Meyers)는 모리조가 언니 에드마에게 보낸 편지와 마네가 그린 초상화를 근거로 모리조가 마네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랑했다고 주장한다.

 

 

 

 

 

 

마네의 화실에 드나들었던 두 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모리조와 에바 곤살레스(Eva Gonzalez)다. 마네는 두 사람에게 미술을 가르쳤는데 모리조는 그림 그리는 에바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마네의 부인을 험담하기도 했다. 저자는 모리조가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마네로부터 인정받길 원했으며 그의 영향력 안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모리조는 마네와 더욱 가까이 지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네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 ‘충고’가 바로 마네의 동생과 결혼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제프리 마이어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모리조의 편지 구절을 근거로 마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분석한 주장들이 과대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점은 모리조의 그림에 대한 저자의 품평이다.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가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모리조는 부르주아 계급의 일상생활, 특히 가족을 주제로 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화가의 가족 또는 지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역사적 맥락’,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를 왜 찾아야하는가? 제프리 마이어스의 심미안은 인상주의 미술과 동떨어져 있다. 그가 역사적 맥락, 서사적 의미가 결여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면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고전주의 역사화를 추천하겠다.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

* [절판]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리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해냄, 2003)

 

 

 

페미니즘 평론가들이 모리조를 과대평가를 한다는 의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술관에서 여성의 지위가 미약한 원인과 여성 미술가가 남성 미술가에 비해 경력을 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남성 미술가들만 주목하고 여성 미술가들을 소외하는 미술 평론계에 반발하기 위해 나선 것이 페미니즘 미술이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회화 그룹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지킨 화가이다. 그런 그녀를 과소평가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남성 중심 사회 속에 권위를 떨친 미술 평론가들 아닌가?

 

 

 

 

 

 

Trivia

 

 

 

 

 

 

 

 

 

 

 

 

 

 

 

 

존 리월드(John Rewald)인상주의의 역사(까치, 2006)는 인상주의 미술에 관한 책의 고전이다. 줄리 마네는 이 책에 있는 모리조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알려주었으며 존 리월드는 개정판에 줄리의 의견을 반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정진국 씨는 베르트 모리조의 둘째 언니 에드마를 동생이라고 잘못 썼다. 베르트 모리조는 모리조 집안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진국 씨는 2009년에 나온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를 번역했다. 이 책에서는 에드마를 언니라고 올바르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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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2 10:05   좋아요 0 | URL
책마다 이름 표기명이 달라요. 어떤 책은 ‘모리소’라고 하거든요. ^^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예술가의 삶과 진실 6
아르망 푸로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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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마네는 이 그림을 죽을 때까지 자기 화실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그림 왼쪽에 있는 여인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이 이름을 꼭 기억해두시라. 그녀는 인상주의 화가 그룹의 당당한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르망 푸로(Armand Fourreau)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글항아리, 2009)는 남성 중심의 19세기에 여성이란 장벽을 이겨내고 예술혼을 불태워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로 거듭난 베르트 모리조의 인생과 예술을 정리한 평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모리조의 가족들을 만나 육성 증언을 채집했고, 공개된 적이 없는 모리조의 습작을 발굴하여 소개했다.

     

모리조는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증손녀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음악과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녀의 둘째 언니 에드마 모리조(Edma Morisot)도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다. 자매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 공부를 했다. 자매는 화가가 지녀야 할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다. 특히 베르트의 마음에는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자매는 조제프 기샤르(Joseph Guichard),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의 제자가 되었으나 베르트는 스승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낭만주의 회화를 선호한 기샤르는 자연을 묘사하는 그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코로는 정확한 묘사를 강조했다. 베르트는 스승의 그림을 모사하거나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자신의 열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리조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작을 모사하던 중 마네를 만나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하면서 자주 마네의 작품 모델이 되기도 했다. 마네는 인상주의 회화 그룹의 전시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화가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모리조는 마네 주변에 모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그녀는 1874년 제1회부터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까지 그림을 출품했다. 인상주의 전시회보다 살롱 전에 더 관심이 있었던 마네는 모리조가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모리조는 마네의 충고를 거절했고 오히려 그에게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만약 그녀가 마네의 설득을 받아들였다면 인상주의 회화 그룹은 남성 화가들의 모임이 되었을 것이다.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의 부록은 인상주의 회화 그룹을 열렬히 지지한 미술평론가 테오도르 뒤레(Theodore Duret)의 글이다. 이 글은 <인상주의 화가의 역사>에 수록된 베르트 모리조편을 완역한 것이다. 뒤레는 모리조, 모네(Monet), 시슬레(Sisley), 르누아르(Renoir), 피사로(Pissarro)충분한 독창성을 발전시킨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이라고 평가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딸 리 마네(Julie-Manet)의 성장 과정을 그림에 담았다. 그녀가 즐겨 그린 그림의 주제는 가족이다. 모리조의 그림들은 남녀 역할이 비교적 엄격했던 시대 속에 살아간 여성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모리조는 살롱 전에 여섯 번이나 입선할 정도로 쟁쟁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그녀의 존재감은 잊혔다.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에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모리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엉뚱하게도 마네가 있다. 마네는 인상주의 회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는 인상주의 전시회에 단 한 번도 그림을 출품한 적이 없었으므로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남성 중심의 평가는 모리조의 실력을 외면했다. 모리조는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동참했으나 여성화가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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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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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Manet)모네(Monet). 둘 다 익숙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이름과 직업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사각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 붙여진 별명 중 하나가 ‘아네모네(아! 얼굴이 네모네.)’다. 경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사각형 얼굴 사람을 만나면 ‘마! 네모네’[1]라고 말할 것이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이다. 실제로 어떤 평론가가 이 두 사람의 성(誠)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마네와 모네의 관계를 소재로 그린 풍자만화도 있었다. 만화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2]

 

 

“마네가 있음으로 해서 모네가 가능했다.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얼핏 보면 마네와 모네에게 찬사를 보내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두 사람 모두 돌려 까고 조롱하는 말이다. 전통으로부터 조금씩 탈피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은 인상주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그림은 철저한 실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네와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들이 왜 유명한지 알고 싶으면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미술문화, 2017)을 펼치면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마네와 모네를 내세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탄생과 종말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역사적인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네는 근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화가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거부했다. 마네와 친분이 있는 동료 화가들은 ‘프랑스의 국선 전시회’인 살롱 전에 불만을 품었다. 그 당시 살롱 전을 거치지 않은 화가는 부와 명예를 누리기 어려웠다. 살롱 전은 전통 회화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심사위원의 독선과 아집으로 폐단이 너무 컸다. 살롱 전에 분노한 마네의 동료 화가들은 ‘새로운 회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모네를 주축으로 한 서른 명의 화가들로 구성된 ‘무명공동협회’가 탄생했다. 그들은 살롱 전이 외면한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이다. 마네는 처음부터 인상주의 미술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끝까지 살롱 전을 고집했다.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인상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벨라스케스(Velázquez), 고야(Goya) 등 고전 미술과 현대적인 주제(당대의 생활상,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 등)를 이용한 근대미술을 잇는 가교 구실에 충실했다. 이 책에 전통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한 마네의 습작들을 볼 수 있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습작이라고 해서 간과해선 안 된다. 마네의 습작은 그가 얼마나 고전미술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마네는 고전 미술을 효과적으로 응용할 줄 알았고, 충실한 연구 끝에 탄생한 그림이 바로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다. 두 그림이 공개되자 마네는 파리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대중과 비평가들은 마네를 조롱했다. 마네의 그림에는 ‘하얀 피부의 비너스’는 없었다. 마네는 비너스 대신에 벌거벗은 ‘파리의 여인’을 그렸다. 마네의 그림은 현세적이다. 그는 현실을 솔직하게, 그리고 전통을 넘어서기 위해 대담하게 그렸다. 마네는 자신을 지지한 보들레르(Baudelaire)의 ‘현대 화가론’에 공감했고 자신이 사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는 ‘현대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의 예술론은 모네와 세잔(Cezanne) 등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화가들은 마네를 높이 평가했다.

 

마네가 파리의 도회적인 분위기에 관심 있었다면 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과 색채에 관심이 많았다. 모네는 자신이 자연을 관찰한 것을 충실하게 그림으로 재현했다.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그들의 정신적 · 예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네는 동료 화가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살롱 전에 그림을 출품했다. 이러한 결정을 이유로 모네를 ‘전통으로 회귀한 변절자’로 볼 수 없다. 모네는 마네의 재정적 도움을 받을 정도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개인전’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인상주의 모임이 와해하였어도 모네는 르누아르(Renoir), 드가(De Gas) 등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화가들과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말년의 모네는 자신만의 붓질로 변화무쌍한 자연을 짧은 시간 안에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말년의 모네가 그린 그림들은 원근법과 형태마저 사라진 추상적 화풍에 가깝다. 모네의 강렬한 색채와 붓질은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전환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언 마네와 모네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삶과 미술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을 만나게 된다. 비록 이 책에서는 ‘조연’으로 언급되지만, 그들도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마네와 모네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마네와 모네가 근대미술에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따라서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은 마네와 모네가 어떻게 인상주의 미술의 형성 과정에 근대적 계기를 제공했는가를 알려주는 충실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네와 모네를 혼동하지 말자.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있게 해준 두 사람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자.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Trivia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는 마네의 절친한 친구이며 강베타(Gambetta) 내각 정부의 문화 미술부 장관에 역임했다. 269쪽에 교육부 장관을 지낸 프루스트는 구절이 나오는데 저자가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1] ‘마!’는 ‘인마’를 뜻하는 경남 사투리. 상대방의 신체 약점을 가지고 놀리거나 비하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이 글에 나온 ‘아! 네모네’, ‘마! 네모네’는 언어유희를 이용한 개그일 뿐이며 애초에 사각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언급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2]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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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1-0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일러스님-인사가 늦었네요.^^
사일러스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제게 도끼같은 역할을 해 주시는 귀한 분입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cyrus 2018-01-04 16:57   좋아요 1 | URL
도끼라뇨.. 과찬입니다... ㅎㅎㅎ 저는 도끼보다는 채찍이 되고 싶습니다... ^^;;
제가 새해 인사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꿀꿀이님에게 새해 인사를 하지 못했네요. 꿀꿀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2018-01-04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4 16:58   좋아요 0 | URL
사진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인상주의 그림들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이하라 2018-01-0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올해도 깊이있는 리뷰들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4 17:04   좋아요 0 | URL
제 글에 기대감을 갖지 마세요. 재미없는 주제의 글이라면 안 보면 되고, 대충 봐도 됩니다.. ^^

카스피 2018-01-0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일러스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며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5 14: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