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클래식
홍승찬 지음 / 별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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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을까? 있다. 음악은 ‘귀로 듣는 도장(圖章)’이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의 도장’을 꾹 찍을 힘이 있다. 적절한 순간에 사용된 음악은 영화나 드라마의 분위기를 살린다. 영화와 드라마를 본 후의 감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석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장면과 함께 흐르는 음악은 그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음악을 제대로 들으라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음악을 즐길 줄 안다. 음악을 들으면 촉각처럼 바로 전율이 온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짜릿짜릿해지는 기분.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다.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반응은 웃음이나 울음과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음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냥 즐기고 마는 것과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영화를 예로 들면 한 번 볼 때는 즐겁지만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영화가 있고,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은 걸작도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귀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음악이 있고, 거기서 감동하여 반복적으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그 순수한 울림이 있는 음악이 바로 클래식이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펴낸 《오, 클래식》은 음악의 힘을 가진 클래식을 예찬한 책이다. 이 책에 클래식을 통해 사람과 환경이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글 속에 일반인들(클래식 입문자도 포함한다. 수년째 클래식 입문 단계에 머무는 나도 여기에 속한다)은 잘 모르는 음악 용어와 곡목이 언급된다. 어떤 클래식 입문서는 많이 알려져 진부한 레퍼토리에 되지도 않는 해설로 독자들을 가르치려 한다. 이런 책을 보고 나면 상당수 독자는 오히려 무시당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홍 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다. 당연히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을 음악 용어가 나오지만,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삭막한 교도소에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 ‘편지의 이중창’이 울려 퍼지는 장면은 압권이다. 삭막한 교도소의 운동장에 있던 모든 죄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몸은 갇혀 있어도 음악을 듣고 있던 죄수들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홍 교수는 이 영화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언급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의 힘’의 위력을 알려준다.

 

홍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는 예술론이 아니다. 삶의 정수가 들어있는 인생론이다. 홍 교수는 클래식 음악의 묘미를 ‘오래 묵은 장맛’으로 비유한다. 잘 익은 장맛은 구수한 감칠맛이 난다. 장맛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이 삭아 깊어지듯 이 클래식의 맛을 오래 즐긴 사람의 마음도 숙성된다. 클래식의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텁텁하거나 톡 쏘는 맛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즉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즈, 팝 음악 등 새로운 언어를 클래식 음악에 접목한 크로스오버 음악은 클래식 음악계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경박한 혼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흐나 베토벤이 음악을 만들던 시절이 아니다. 음악을 엄숙하게 듣는 시대는 한참 지나갔다. 인간의 온갖 경험과 감정 상태가 축적된 클래식을 많이 들으면 가슴을 울리는 절정의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그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다. 약간의 호기심과 노력으로 몇십 배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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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8-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일단 생각만 해도 숙면이 올 것 같은 분야지만-참 언젠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르에요.^^

cyrus 2017-08-09 12:23   좋아요 1 | URL
五車書님의 서재에 가면 클래식 음악 앨범, 관련 지식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도 있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

책한엄마 2017-08-09 12:28   좋아요 0 | URL
오거서님 덕분에 음악에 귀를 기울여요.전에 클래식 역사책 쓰신 세 권 책을 구입하고 고이 모셔놓고 있어요.그 책 제목도 ˝the classic˝이었던 것 같아요.

2017-08-08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9 12:27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살면서 클래식 연주회를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제가 집돌이라서 집에서 음악을 들어야 마음이 편해요. ^^;;
 
현대미술 강의 -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
조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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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현대미술 또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보고 또 봐도 알쏭달쏭한 게 현대미술이다. 사람들은 현대미술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거나 일상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미술의 기원에서 본다면 미술은 사람들의 일상과 가까이 있었으며 인간이 소망하는 꿈을 대신해 주는 소망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미술은 과거 사람들의 필요와 즐거움의 해소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수단이자 기호였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미술로 표현될 수 있고, ‘재현하는 기호가 된 모든 미술 작품은 우리가 보는 세계로 다시 해석될 수 있다.

 

미술의 역사는 19세기까지 대체로 두 흐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흘러왔다. 르네상스 고전주의처럼 옛 규범과의 완벽한 조화를 중시하는 형식 미술이 기본이라면 바로크, 낭만주의와 같이 개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감성 미술이 번갈아 지배 사조로 등극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획기적인 인식 전환이 일어나게 됐다. 화가들이 재현이라는 고전 미술의 전통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사실주의(realism)에서 모더니즘(modernism)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여기서부터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서막이 오른다. 현대미술 강의(글항아리, 2017)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올랭피아(1863)를 현대미술의 뿌리로 보고 있다.

 

오늘날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고 너무나 익숙해 있어 인상주의는 마치 서양회화의 전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상주의가 등장할 당시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생각이었고 도발적인 행위였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연의 한복판에서 쉬지 않고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그림은 빛의 기록이니만큼 그림 속에 칠해져 있는 색들은 모두 빛을 재현하고 있었다. 또한,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반사하는 빛의 색을 기록하려 했기 때문에 사물을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었고 사물이 반사하는 빛과 거기서 받은 인상을 그리고 칠했다. 따라서 인상주의가 이룬 모더니즘 미학은 재현을 중시하는 전통미술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이제 모더니즘 화가들이 그릴 수 있는 것은 형태가 아닌 선과 면이다. 모더니즘의 성과는 재현하는 기호가 완전히 사라진 순수미술의 등장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고전주의 미학은 산산이 깨져버린다. 산업화에 따른 사회 격변과 자본의 세계화, 잇따른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이성이 일군 고전미의 규범이 통째로 부정되고, 독창적 발상을 좇는 무한 경쟁이 미술의 본질을 형성했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서막이 오르면서 예술가들은 순수미술마저 거부하기 시작한다. 미술이 태동한 이래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그렸다. 나무, 바다, , 누드까지…‥. 그리고 한 단계 더 나가 그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추상미술까지 미술의 영역을 넓혔다. 더 이상 그려낼 대상이 없어졌다. 공장에서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내고 변기까지 미술품으로 등장했다. 다다이즘(dadaism), 팝 아트(pop art), 미니멀아트(minimal art)는 모더니즘의 반작용으로 형성된 반 예술 운동이다. 그렇지만 아방가르드 예술은 자신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모더니즘 미학에서 완전히 결별하는 데 실패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일상의 저 낮은 곳에 있는 변기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일상의 세계와는 분리된 고상한 그 무엇만이 예술이 될 수 있다(‘예술을 위한 예술’)는 모더니즘 미학에 항변했다. 그런데 뒤샹의 변기 작품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대형 미술관의 중심에 모셔졌다. 모더니즘을 거부하던 뒤샹의 변기 작품이 모더니즘 작가들의 홈그라운드(home ground)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의 중심에 서는 역설이 생겼다. 미술사가 핼 포스터(Hal Foster)가 지적한 대로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의 관례를 비판하는 데 성공했으나 제도 비판에 소극적이었다.

 

현대미술이 더 이상 기상천외한 미술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하던 터에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서막이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미술이라는 시각적 표현물이 실재의 삶과 사회 및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이러한 흐름은 회화나 조각은 물론 사진과 영상, 설치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재료, 즉 물질성은 중요하지 않다. 낱말, 사진, 쓰레기, 그리고 심지어 작가 자신의 신체마저 미술을 위한 재료가 된다.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거품이 빠져 신선함을 잃어버렸고, 변화가 멈춰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과거 현대미술의 주축인 모더니즘 미술을 파괴하지 못했고, 여전히 모더니즘의 아이디어를 잊지 못한다. ‘순수 미술의 죽음은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미적 가치의 파괴로 귀결된다. 이렇다 보니 현대미술은 더욱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오늘의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현대미술은 정답 없는 물음의 연속이다. 그래서 미술은 어렵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분야다.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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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7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8 08:06   좋아요 1 | URL
요즘에 나오는 미술은 과거를 조금씩 모방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과거에 시도했던 방식이 보여요. 그래서 고전을 비틀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

2020-02-0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2-01 17:50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metarkr님이 언급한 문장은 책에 있는 문장이 아니에요. 인상주의 미술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혁명적인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제가 쓴 문장입니다. ^^

2020-02-02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02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은 광고는 소비자의 마음을 훔친다.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 감성에 제대로 전달하는 광고는 소비자들의 뇌리에 남는다. 그런데 기괴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광고도 있다. 비록 짧은 광고이지만 임산부, 노약자, 심약자는 감상을 자제하기 바란다.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벌판에 정체불명의 아이가 달려오면서 등장한다. 영상 속에 흐르는 배경음악이 음산하다.

 

 

 

 

 

아이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가면을 썼다. 그런데 가면의 표정이…‥. (흠좀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 영상은 2000년 한화가 출시한 마이크로아이(MICROi) 휴대폰 광고. 가면을 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휴대폰을 의미한다. 이 광고가 무섭다는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방송 중단이 됐다고 카더라.

 

 

 

 

 

 

 

 

 

 

 

 

 

 

 

 

  

*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도서출판 자작, 2001)

    

 

 

광고에 나오는 아이의 모습은 영락없이 난쟁이. 밤중에 문제의 광고를 보면 난쟁이가 아이의 유령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이의 모습에서 연골이영양증 환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연골이영양증은 연골 성장의 결함으로 인해 사지가 짧아지는 유전병이다. 짤막한 사지, 지나치게 커 보이는 머리, 그리고 안장코는 난쟁이들에게 나타나는 신체적 특징이다.

 

 

 

 

 

 

 

 

 

 

 

 

 

 

 

 

 

 

 

 

 

 

 

 

 

 

 

 

 

 

 

 

 

 

 

 

 

 

 

 

 

 

 

 

 

 

* 자닌 바티클 벨라스케스 :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시공사, 1999)

* 노르베르트 볼프 벨라스케스(마로니에북스, 2007)

*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순례(창비, 2002)

* 나카노 교코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이봄, 2012)

* 나카노 교코 내 생애 마지막 그림(다산초당, 2016)

* 강상중 구원의 미술관(사계절, 2016)

    

 

 

난쟁이는 볼거리 집착의 희생양이었다. 어릿광대로 분장한 난쟁이가 묘기를 부리는 모습은 왕족, 귀족들에겐 박장대소하며 보는 색다른 오락이었다. 17세기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Philip )는 난쟁이들을 항상 곁에 두었다. 궁정에 지내는 난쟁이들은 왕세자나 공주의 놀이 상대였다. 왕의 전속 화가 벨라스케스(Velázquez)는 왕족 같은 권력층뿐만 아니라 비천한 신분의 난쟁이도 그림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난쟁이와 나란히 선 발타사르 카를로스는 궁정에서 일하는 난쟁이를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발타사르 카를로스(Baltasar Carlos)는 펠리페 4세의 왕세자다. 그림의 제작연도는 1632, 이때 왕세자의 나이는 세 살이었다. 왕세자와 난쟁이가 서 있는 구도가 대조적이다. 세 살짜리 왕세자와 난쟁이의 키가 얼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꼬마 왕세자의 위엄을 한층 돋보이려고 왕세자를 그림 정중앙에 서 있도록 했다. 난쟁이는 왕세자의 위치보다 좀 더 낮은 쪽에 서 있다. 왕세자와 난쟁이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위치는 신분 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죽음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닥쳐오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왕세자는 16살에 병을 앓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궁정 난쟁이 프란시스코 레스카노의 초상화는 육체적, 심리적 사실성을 동시에 재현(자닌 바티클, 89)’한 걸작이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레스카노의 얼굴이다. 레스카노는 약간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정면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레스카노는 바보 연기를 잘하는 어릿광대였을지도 모른다. 벨라스케스는 비천한 신분의 난쟁이를 존엄성 있게 묘사했다. 이 그림을 보면 레스카노는 육체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마음은 다 자란 성인보다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아트북스, 2016)

 

 

 

그는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뻗은 채 앉아 있다. 발은 남근을 상징한다. 앞으로 우뚝 솟은 한쪽 다리, 그리고 자신 있게 내민 발. 레스카노의 자세를 남근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궁정 난쟁이가 지녀야 할 긍지와 자부심이 없으면 저런 당당한 자세가 나올 수 없다. 만약 벨라스케스가 평범하게 앉아 있는 레스카노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 그림은 볼품 없고, 얼빠진 궁정 어릿광대의 초상화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왜소한 몸에 갇힌 사람들의 영혼(나카노 교코, 116)’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줄 알았다. 돈 세바스티안 데 모라의 눈빛은 관람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서경식은 그의 눈빛을 바라보면 난쟁이가 생전에 봤던 것들도 보인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낙일(落日)의 우울이 드리워진 스페인 궁정의 깊은 어둠(101)’이다. 강상중은 난쟁이가 수심이 가득하지만, 뭔가 깨달은 듯한 철학자와 같은 눈(28)’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펠리페 4세가 살았던 스페인 궁정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 명문가의 혈통을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행해진 근친혼이 유전병의 원인이 되었고, 펠리페 4세의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죽음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펠리페 프로스페로(Felipe Próspero) 왕세자는 방울이 달린 여자 옷을 입고 지내야 했다. 그 당시에 왕자가 입은 여자 옷은 죽음을 부르는 마귀를 막는 부적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스페로도 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족은 난쟁이의 묘기를 보면서 근심과 불안을 잊으려고 했다. 고귀한 유전병 환자들이 비천한 유전병 환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면서 위안으로 삼았던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벨라스케스와 궁정 난쟁이들은 무시무시한 운명 앞에 무력한 왕족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들이 궁정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같았을 것이다. 죽음은 넘나 무서운 것. 누구도 죽음을 비껴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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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7-07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쾌한 골짜기에 빠진것 같은데요....

만약 저 마이크로 아이의 얼굴 크기가 줄어들고 이목구비의 비율이 비장애 인간에 완전히 가까워서 유전병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렇게 구성된 얼굴의 색, 질감, 이목구비의 형태 자체가 불쾌한 골짜기에 이미 빠져 있어서 불쾌감을 유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7-08 10: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렸을 때 저 광고를 봤는데 불쾌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 광고를 잊지 못합니다. 문제의 광고가 1999년에 나왔다면 세기말적 분위기에 잘 어울렸을 겁니다. ^^;;

블랑코 2017-07-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납량특집이었던 걸까요. 대체 어떤 생각으로 기획한 건지 무섭습니다

cyrus 2017-07-08 10:0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뿐만 외국(특히 일본)에도 기괴한 광고가 나옵니다. 저런 광고를 보고 ‘약 빤 광고’라고도 합니다. ^^;;

꼬마요정 2017-07-0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펠리페4세의 아이들이 죽을 때 같이 있던 난쟁이들을 순장하거나 하지는 않았나봅니다. 권력자의 죽음에 희생된 이들이 너무 많아 가끔 저도 모르게 이런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네요.

고귀한 유전병 환자와 비천한 유전병 환자라... 표현이 참 맘 아픕니다만 정말 정확한 설명이네요.

cyrus 2017-07-08 10:06   좋아요 0 | URL
스페인 왕족들은 난쟁이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기들이 필요할 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과 같은 존재로 여겼어요.

2017-07-07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8 10:09   좋아요 1 | URL
난쟁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아직 성장기가 오지 않은 아들의 키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리고 남자 아이는 무조건 키가 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017-07-07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8 10:12   좋아요 1 | URL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가져온 것입니다. 글쓰기 기능 중에 ‘동영상 넣기’가 있어요. ^^

http://blog.aladin.co.kr/zigi/7378077 링크된 주소에 들어가면 동영상을 넣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적 봤던 미드 중에서 천재 컴퓨터 공학자지만 난쟁이를 주인공으로 한「맥케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나네요.. 당시 「맥가이버」는 재밌게 보면서도 「맥케이」는 그러지 못했던 것을 보면 마음의 문제라 생각되기도 하네요...

cyrus 2017-07-08 10:16   좋아요 1 | URL
맥케이, 처음 들어봤어요.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요, ‘맥케이’만 입력해도 나오지 않았어요. 더 찾아보니까 미드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마법사 맥케이’였습니다. MBC에 방송되었군요. ^^

겨울호랑이 2017-07-08 10:2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자료가 거의 없을 거예요.
 
가만히 가까이 - 배꼽에서 눈물까지, 디테일로 본 서양미술
유경희 지음 / 아트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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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사진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본다고 한다. 심리학 연구팀은 남녀 대상으로 다양한 사진과 그림을 보여주고, 그들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관찰했다. 이들의 시선이 공통으로 머문 곳은 눈과 손과 같은 신체 부위였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과 비교하면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얼굴 아랫부분이나 다른 신체 부위에 초점을 맞췄다. 연구팀은 여성이 타인의 시선을 마주치는 부담감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다른 쪽으로 시선이 향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림을 바라보는 남녀의 시선은 초점산점(散点)’에 비유할 수 있다. 초점은 사물의 중심 부분을 바라보는 하나의 고정된 시선이다. 초점의 반대말인 산점은 여러 곳으로 분산된 시선이다. 이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시점을 이동하면서 그림을 살펴본다. 마음에 드는 그림의 세부 묘사를 발견하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그림의 세부 묘사를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다. 가만히 가까이(아트북스, 2016)는 서양 미술 속 몸과 몸짓을 좀 더 세밀히 접하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그림을 느껴보는 취지로 쓰였다. 이 책에 나오는 글은 네이버에 연재한 몸으로 본 서양미술을 수정 · 정리한 것이다.

 

저자처럼 그림 속 몸을 꼼꼼하게 훑어보면 그 그림 전체가 새롭게 보인다. 따라서 디테일(detail)을 살펴보고 음미하는 것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사람마다 그림을 보는 시선의 흐름은 다르다. 그러나 색다르게 보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다면 눈이든, 코든, 입술이든, 그림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자가 천착하는 주제는 몸의 섬세한 매력이다. 미술에 재현된 몸 속에 절망과 웃음과 눈물을 지닌 하나하나의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렘브란트(Rembrandt)는 고통, 상처, 절망의 상황에서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자화상 제작을 통해 절망감에 휩싸인 세상에서 희망으로 상징되는 예술의 본질을 알아보려 시도했다. 자화상 속 화가의 눈은 인간적 체취와 고독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렘브란트의 눈빛이 무언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자신의 얼굴이 화가가 지녀야 할 자긍심이 남아있는 영혼의 얼굴이라고.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눈물을 주제로 한 글의 제목 액체로 된 포옹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그 그림을 보면 죽은 아이의 가슴팍에 묻고 흐느끼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세상의 슬픔을 끌어안으며 피눈물로 새긴 그림을 생각하면 4년 전 진도 바다 한가운데서 생긴 거대한 환부의 흉터가 생각난다. 콜비츠의 그림은 가라앉고, 녹슬어버린 환부의 흉터를 만져보라고 우리의 손길을 천천히 잡아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향한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애정 편력을 알고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남편에게 보내는 복수의 신호이며 새로운 삶의 길을 찾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책에 나오는 모든 그림을 오랫동안 관찰하면 그 속에 들어있는 예술가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 저자가 알려준 대로 그림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의 디테일에 다가서는 일은 자유로운 유희다. 독자는 거기서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자유롭게 그림을 매만지고 느껴볼 때 비로소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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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6 15:27   좋아요 0 | URL
이야기가 숨어 있는 그림에 매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림도 잘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

yamoo 2017-07-0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사이러스 님 리뷰를 보니, 약간은 나열식인거 같은데, 책의 내용은 볼만한가요? 별이 4개니, 저도 구경은 한 번 해 봐야 겠습니다~

cyrus 2017-07-06 15:29   좋아요 0 | URL
손, 눈, 입술, 가슴, 엉덩이, 털, 발, 신체 부위와 몸짓을 주제로 그림을 소개한 책입니다. 책의 판형은 크지 않습니다. ^^

나와같다면 2017-07-06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 <정체성>
자식의 죽음에 대한 절망을 이보다 더 처절하게 쓴 글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읽고 또 읽는다

˝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cyrus 2017-07-06 15:37   좋아요 0 | URL
케테 콜비츠도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픈 감정을 글로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참기 힘든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 전에 개장된 서울로 7017’에 엄청난 양의 신발 더미가 등장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신발 더미가 만든 장관에 놀라게 된다. 신발장 속에 잠들어 있던 녀석들이 주인을 찾는 듯 떼로 지어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발 더미의 정체는 설치미술가 황지해 씨가 만든 조형물이다. 이름은 슈즈트리(Shoes Tree)’. 황지해 씨는 신발 더미를 커다란 나무줄기로 형상화해서 도시 재생의 의미를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서울로 개장 소식을 듣고 찾은 시민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쓰레기 더미’, ‘흉물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슈즈트리 설치 기간 내내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진중권 교수는 슈즈트리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슈즈트리가 고급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도발적인 시도라고 주장했다.

     

, 여러분은 슈즈트리를 보고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슈즈트리는 미술 작품일까, 아니면 아까운 예산만 낭비한 흉물일까. 진 교수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슈즈트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진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슈즈트리는 고급스러운 기성 예술에 대한 인식을 부정하는 반 예술(anti-art)’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반 예술적 시도를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에 뒤샹은 하얀색 화장실 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출품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더럽고 냄새날 것 같은 변기를 처음 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지만 뒤샹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슈즈트리와 은 작가로부터 미술또는 예술이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기성품이다. 그래도 이것들은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슈즈트리와 의 창작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또 슈즈트리와 이 미술을 모욕한 심각한 흉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고, 보면 볼수록 머리 아프게 만든다. 사실 미술이라는 단어조차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1] 미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술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진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 2011)는 미술과 그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의 틈을 메꿔주는 책이다.

     

옛것에서 사람들은 향수(鄕愁)를 느낀다. 옛날에 만들어진 물건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고, 선호하는 미술 작품들은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를 그리워할수록 우리의 감각을 취하게 만드는 향수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 ~ 향수에 취한다! 향수에 완전히 취하면 옛것을 미화한다.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도 과거를 미화하고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미술 작품이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는 그 작품들을 명작이라고 칭송한다. 그런데 과거 미술에 대한 우리의 호의적인 반응은 착각(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저자는 오해라고 표현했다, 82)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작 중 일부는 세상에 처음 선보였을 때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몇 개 예를 들면,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올랭피아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에펠 탑(Eiffel Tower)이 있다. 비평가들은 올랭피아를 불쾌한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올랭피아를 옹호한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는 에펠 탑 건설을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졸라가 올랭피아와 에펠 탑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과 방식은 고정적이지 않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미술을 보는 눈이 결정되고, 시대가 달라지면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을 한 마디로 규정하고, 정의 내리기가 참 쉽지 않다.

     

예술이라는 단어는 18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예술의 의미는 천재적 개인의 독창적인 산물’(111)이었다. 21세기인 지금도 우리는 예술의 근대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미술 작품이 천재가 만들어낸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재와 미(). 이 두 가지 개념이 미술의 고급화 전략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술은 특별해야 하며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뒤샹, 피카소(Picasso), 앤디 워홀(Andy Warhol) 등은 고급 예술을 거부했고,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는 그것을 뿌리째 뽑으려고 했다. 이들은 미술뿐만 아니라 세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보려고 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를 읽는다고 해서 독자들이 동시대 미술의 난해함을 이해할 거로 믿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추상미술이 소수의 지식인만이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아는 주제로 전락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193쪽). 저자의 지적은 현대미술의 한계에 정곡을 찌른 분석이다. 현대미술은 과거 미술이 지향했던 것을 조금씩 따라 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작품이 세상에 가장 비싼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미술 작품이 특권층만 소유할 수 있는 기성품이 된다. 안타깝게도 미술을 고상한 취미로 인식하는 생각이 아직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반인도 공유할 수 있는 미술의 즐거움마저 잊힌다. 미술, 그것을 가까이하기에 너무 멀기만 하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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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8 08:29   좋아요 1 | URL
낚이셨군요. 글 제목을 다시 보세요. ‘짝퉁‘에 주의하세요. ㅎㅎㅎ

2017-06-07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8 08:3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술가가 활동하기에 힘든 곳입니다. 표현의 자유에 제약받죠, 그리고 기성예술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시도가 무시받습니다. 요즘은 붓과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는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들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슈즈 트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