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미술 -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
주디 시카고 &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지음, 박상미 옮김 / 아트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그리스 신화에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이 나온다. 그녀들의 이름은 무사이(Mousai). 문학, 음악, 역사 등에 능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뮤즈(Muse)는 무사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미술관(Museum)은 본래 무사이가 머무는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사이 중에 미술에 능숙한 여신이 없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여성은 미술의 세계에 동참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여성이 드물었고,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다고 해도 누드화를 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남성들은 누드화 그리는 여성이 정숙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정작 그들은 여성 누드화를 마음껏 그렸고 누드화 감상을 즐겼다. 그렇다 보니 미술사에 여성은 없었다. 남성 미술은 미술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높이 인정받았지만, 여성 미술은 낮게 평가받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의 어느 지점에서든 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르네상스에 활동한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는 성공한 여성 화가였다. 그녀는 스페인 왕비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안젤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은 초상화 분야에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화가이다.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단체인 로열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 창립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유명한 여성이다.

 

 

 

 

 

    

 

진정한 여성 미술 태동은 70년대부터다. 여성 미술가들이 모여 젠더구조와 여성 문제를 의식해 단체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페미니즘 미술사가 조명받았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페미니즘 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1979년 그녀가 제작한 디너파티(The Dinner Party)는 페미니즘 미술사, 아니 현재를 포함한 미술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대한 삼각형 식탁 위에 클리토리스 모양의 서른아홉 개의 접시가 놓여 있다. 이 만찬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페니스를 과시하는 남성은 디너파티의 초대 제외 대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디너파티가 단지 외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관객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까지 시카고를 비난했다. 하지만 시카고는 미술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 남성 중심의 사고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남성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Edward Lucie-Smith)와 함께 남성 중심 미술사가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여성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발굴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 훌륭한 작업성과는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이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이 책의 100자평에 따르면 책 내용이 오래된 것’(정확히 표현하면 오래전 글’)이라서 요즘 시대와 안 맞는다고 했다. 원서는 1998년에 발표되었고, 12년이 지나서야 번역본이 나왔다(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다). 100자평 작성자는 이 책에 크게 실망했는지 별점 두 개를 부여했다. 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페미니즘 미술은 오래됐고,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 미술은 7, 80년대에 반짝 유행한 철 지난 예술사조가 아니다. 페미니즘 미술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의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퀴어(Queer) 문제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표현을 시도한다. 흑인 페미니즘 미술, 레즈비언 미술은 페미니즘 미술 2세대에 속한다. 국내에선 페미니즘 미술 2세대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다. 고맙게도 시카고와 루시-스미스는 신세대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활동도 충실하게 소개했다.

 

책 본문 전체를 루시-스미스가 집필했고, 본문 옆에 있는 곁다리 글모두 시카고가 썼다. 시카고의 글이 부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의 곁다리를 무시해선 안 된다. 사실 이 책에서 곁다리가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카고는 남성 미술가 또는 남성 미술 비평가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페미니즘 미술의 가치를 재차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피부색, 민족에 관계없이 미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여성을 부당하게 재현하는 남성 중심의 미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주장에 불편한 형님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 미술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미술이 아니다. 남자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미술’이라고 생각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눈치를 챈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표현의 원본은 벨 훅스(Bell hooks)의 저서 제목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 2017)이다. 시카고는 여성과 미술서문에서 벨 훅스가 제안한 대항적 시선(oppositional gaze)’이라는 개념을 빌려 미술 현장에 팽배해 있는 남성 중심 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페미니즘 미술은 남녀, 성 소수자 모두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는 미술적 사회운동이다. 남성 · 이성애 중심의 미술은 여성 · 성 소수자들의 창작 기회를 제한한다. 특히 성 소수자 예술가는 여성 예술가보다 많이 대접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카고와 루시-스미스의 글쓰기는 공통으로 여성 미술에 주목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가끔 서로를 밀당(밀고 당기는)’한다. 루시-스미스는 여성만이 여성 미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표방하는 방식이 페미니즘 미술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는 루시-스미스도 남성 미술비평가처럼 여성 미술을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디스한다. 두 사람 말이 옳다. 우리나라에 나혜석, 천경자 같은 독보적인 여성 예술가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협동 정신으로 무장한 단체 행동주의 성격의 페미니즘 미술이 주목받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 같은 행동하는 페미니즘 미술 단체가 나올 수 있을까? 남성 고유의 시각을 넘어서는 여성 예술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녀들의 도전을 남성 혐오로 격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대안적 이해의 틀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미술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이 넓혀질 수 있다. 페미니즘 미술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Trivia

 

 

 

  

 

* 시카고는 서문에 미국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저서 <역사는 왜 중요한가> 문장을 인용했다. 아마도 이 책은 1997년에 나온 <Why History Matters>일 것이다. 그런데 번역본에는 이 책이 ‘1977에 발표했다고 잘못 소개했다. 역자는 원서명을 역사는 왜 중요한가라고 옮겼는데, 책 주제의 특성상 역사는 왜 문제인가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책은 왜 여성사인가?(푸른역사, 2006)로 번역되었다.

 

 

* 40쪽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70쪽 밀레의 이삭줍기도판이 원본과 다른 좌우 반전형태로 나왔다. 미술 관련 분야 책을 주로 만드는 출판사답지 않은 실수이다.

 

 

* 98쪽 영국 출신의 예술가 수 코우(Sue Coe)의 출생연도를 ‘1651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고치면 ‘1951이다.

 

 

 

 

 

* 146쪽에 이브 엔슬러(Eve Ensler)<보지 되찾기>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보지 되찾기>는 여성 성기에 관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풀어낸 연극 작품이며 원제는 <The Vagina Monologues>, ‘버자이너 모놀로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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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5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6 13:11   좋아요 1 | URL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제대하고 직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여성은 다시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전시에 동원된 여성의 노동력은 애국심으로 포장되었어요. 그래서 여성의 노동력이 남성 노동력만큼 인정받지 못했어요.

sprenown 2017-12-0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쭈~욱 밀고 가세요. 재능을 버리지 마시고, 길게 보세요! 훌륭합니다.^^.

cyrus 2017-12-06 13:13   좋아요 1 | URL
항상 저를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좋은 소리만 들으면서 성장하는 것보다 가끔은 쓴소리도 듣고,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

2017-12-0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0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뭘 알아야 쓴소리를 하지요. 그냥 아마추어 입장에서 cyrus님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 글솜씨에 그저 감탄할 뿐이지요.^^..

cyrus 2017-12-06 13:56   좋아요 1 | URL
무조건 많이 알고 있어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저도 아마추어예요. 전문가들이 확인한 지식을 이용하고 편집해요. 이 과정에서 지식을 잘못 사용할 수 있고, 엉뚱한 내용이 전달될 수 있어요. 비판하기의 시작은 의문과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거나 미심 쩍으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
 

 

 

데생(dessin), 드로잉(drawing), 그리고 소묘. 이 세 가지 용어는 모두 같은 뜻이다. 화가의 성향과 관계없이 소묘는 창작하면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필수과정이다. 즉 그림을 그리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 조르조 바사리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한명출판사, 2000)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소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회화, 조각, 건축 이 세 가지 분야의 공통분모로 소묘를 꼽았으며, 소묘에 예술가의 감정 등 본질적인 것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바사리의 표현에 따르면 소묘라는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매가 회화와 조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소묘가 아버지일까?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가? 바사리는 회화와 조각의 아름다움을 여성으로 비유했다. 그의 말 속에는 여성을 배제한 남성 중심 미술이라는 편협성이 깔렸다. 애초에 여성을 ‘(능동적) 창작자가 아닌 ‘(수동적) 창작 소재로 설정하고 있다. 남성 중심 미술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성은 그림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여성 화가들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남성 중심 미술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다뤄 보기로 하고, 본 주제로 들어가도록 하자. 흔히 소묘를 연습용 그림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소묘를 아버지라고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화가 지망생은 소묘의 가치를 알아본 바사리의 말을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소묘 훈련을 시킨다. 소묘를 그리는 일은 그림(출품작)’이라는 실전을 위한 연습이다.

 

 

 

 

 

 

 

 

 

 

 

 

 

 

 

 

*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시공아트, 2012)

 

 

 

거장들은 소묘 그리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소묘에서 그림 한 점이 탄생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소묘는 창작의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연구 대상이며 완성된 작품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다. 대충 그린 듯한 소묘도 컬렉터들이 노려볼만한 수집품이며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한다.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고야, 달리(CK북스, 2014)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와토, 호퍼(CK북스, 2014)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렘브란트(CK북스, 2014)

    

 

 

소묘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인지 국내에서는 화가의 소묘집이 잘 나오지 않는다. 소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용 책은 많다. 요즘 나오고 있는 드로잉북은 일반 독자가 소묘를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스케치북이다. 소묘를 볼 수 있는책이 그리 많지 않다. 2014년에 세계 거장의 드로잉 컨셉북이라는 이름을 단 소묘집 세 권이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와토, 호퍼, 고야, 달리, 렘브란트로 구성되었다.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는 프랑스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고,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정말 특이한 조합이다. 귀족풍 느낌이 물씬 드는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rococo) 양식과 무심하면서도 서늘한 호퍼의 화풍에 특별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고야, 달리는 꽤 괜찮은 조합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같은 스페인 출신 인데다가 개성 넘치는 그로테스크(grotesque)를 구현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 함순용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필자가 고야와 달리에 관심이 많아서 공공도서관에 소장된 고야, 달리를 볼 수 있었다. 도판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시원시원한 판형이다. 도판에 대한 세부 설명은 없다. 마음 편하게 소묘를 감상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화가가 소묘를 통해 무얼 나타내려고 했는지 이해하려면 화가의 삶을 소개한 관련 도서를 참고해야 한다. 특히 고야, 달리에 고야의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에 포함된 작품의 소묘 몇 점이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이 판화집의 제작 배경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고야의 판화를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는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등이 있다. 참고로,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로스 카프리초스에 수록된 모든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고야, 영혼의 거울같은 경우, 판화집 일부만 소개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의 도판 상태다. 적지 않은 작품을 보통 판형의 책 한 권에 모두 담으려는 바람에 도판의 선명함이 사라졌다. 한 점도 누락하지 않고, 스케치북만한 판형으로 만들어진 로스 카프리초스완전판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야, 달리에 소묘 감상을 방해하는 몇 개의 오식이 보인다. 4카프리코스카프리초스의 오식이다. 50쪽에 앙다르시아의 개가 나오는데, 정확하게 고치면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이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이 공동 제작한 전위영화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달리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페테리코 카르시아 로사라고 표현하는 건 문제 있다.

 

 

 

 

 

 

 

내가 아는 로사는 절대로 남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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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7:03   좋아요 1 | URL
저는 소묘 실력이 형편 없어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어요.. ㅎㅎㅎ

sprenown 2017-12-0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미술평론 하세요 신춘문예 곧 있어요^^.

cyrus 2017-12-04 14:42   좋아요 0 | URL
저는 제 글쓰기를 딜레탕트(아마추어), 스노브(지적 허영)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얼핏 보면 깊이 있어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책을 참고해서 내 입맛에 맞는 내용을 조잡하게 편집하는 거예요. 비평 수준의 글을 쓸 능력이 없어요. ^^

sprenown 2017-12-0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예요.. 님은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요..본격적으로 좀더 준비하시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이 좁은 알라딘 서재에서만 활동하기에는 아까운것 같아요.^^

cyrus 2017-12-04 16:03   좋아요 0 | URL
제가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하는데 투자해야 할 시간이 부족해요. ^^;;

sprenown 2017-12-04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직장생활하면서 시간내기는 좀 힘들것 같습니다만, 길게 보고 준비하는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덕업일치‘를 이루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cyrus 2017-12-05 11:11   좋아요 0 | URL
‘덕업일치’를 실천하신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그 분들은 의지가 강해요. ^^
 

 

 

고야(Goya)는 궁정화가라는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혹자는 권력에 빌붙어 그림을 그리는 고야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사실 고야는 다소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생계를 위해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귀족들과 어울리면서 사냥을 즐겼다. 그렇지만 고야는 스페인에 유입된 계몽주의에 경도된 일루스트라도(Ilustrado, 스페인어로 학식 있는’, ‘계몽주의를 뜻한다)’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고야의 이중성을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고야가 활동했던 스페인의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는 어중간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능한 왕족들은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했으며 민중을 짓누르는 종교의 힘은 막강했다. 불안정한 상황을 틈타 프랑스군은 스페인 국경을 무단 침범했다. 일루스트라도는 처음에 프랑스군의 스페인 입성을 환영했으나 스페인 민중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프랑스군의 호전적 행보에 실망했다. 나폴레옹(Napoleon)은 자신의 친형을 스페인 왕으로 즉위시켰다. 스페인 사람으로서 자존심에 상처 입은 일루스트라도는 프랑스 지지를 철회했지만, 고야는 스페인 왕관을 쓴 프랑스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 츠베탕 토도로프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아모르문디, 2017)

* 함순용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 웬디 버드, 새라 메이콕 그림 디스 이즈 고야(어젠다, 2016)

* 로제 마리, 라이너 하겐 고야(마로니에북스, 2010)

* 줄리아노 세라피니 고야 : 혼란의 역사를 기록하다(마로니에북스, 2009)

* 파올라 라펠리 고야 : 검은 관능의 시선(마로니에북스, 2009)

* 엘케 폰 라치프스키 프란시스코 데 고야(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새러 시먼스 고야(한길아트, 2001)

* 자닌 바티클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시공사, 1997)

 

 

 

고야의 성격을 분석한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의 견해는 고야의 이중성을 위한 변명이 된다. 토도로프는 고야를 공적 예술과 사적 예술을 철저히 분리하는 데 성공한 화가로 평가했다.

 

 

고야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자신의 창작 행위를 둘로 나누고 공적인 예술과 사적인 예술 사이의 분리를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고야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양분(兩分)의 세계였다. 그는 한쪽 삶에서는 계속해서 사회에서 용인되는 규범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작품으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삶에서는 대중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탐색을 이어 갔다. [1]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고야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상적 세계(스페인 궁정, 귀족들의 모임, 민중의 축제)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어둡고 모순된 본능(판화집 변덕들(Los Caprichos), 전쟁의 참화들, ‘검은 그림’)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화가가 공적 예술과 사적 예술 사이의 분리를 시도하는 일이 고야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분의 세계속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는 고야 말고도 또 있다.

   

 

 

 

 

 

 

 

 

 

 

 

 

 

 

 

 

 

 

 

 

 

 

 

 

 

 

 

 

 

 

 

 

 

 

 

 

 

 

 

 

 

 

 

 

 

 

 

 

 

 

 

 

 

 

 

 

 

 

 

* 프란체스카 데볼리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르네상스의 천재(마로니에북스, 2008)

* 루차 아퀴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예경, 2008)

* 엔리카 크리스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신화가 된 르네상스 맨(마로니에북스, 2007)

* 프랑크 죌너 레오나르도 다 빈치(마로니에북스, 2006)

* 토마스 다비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영혼의 표정을 그린 화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알레산드로 베초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시공사, 1999)

* 박경성 엮음 레오나르도(서문당, 1992)

* 찰스 니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고즈윈, 2007)

* 마틴 켐프 레오나르도(을유문화사, 2006)

* 마이클 화이트 최초의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사이언스북스, 2003)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밀라노의 왕족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 공작의 전속 화가이자 군사 기술자로 활동했다. 공작의 후원에 힘입은 레오나르도는 뛰어난 걸작을 남겼고,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뛰어난 재능에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레오나르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인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탐구 작업을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그가 쓴 일명 거울 문자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쓰인 뒤집힌 문자다. 이 문자를 제대로 보려면 거울이 있어야 한다.

 

 

 

 

 

 

 

 

 

 

 

 

 

 

 

 

 

 

* 장 폴 리히터 엮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루비박스, 2014)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로 알려진 공책, 그리고 습작 용도로 사용된 스케치북은 레오나르도가 꽁꽁 숨겨두었던 사적 예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자료이다. 모나리자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공적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공책과 스케치북은 레오나르도 개인의 지적 탐구심이 허용된 사적 예술의 결과물이다.

 

 

 

 

 

 

 

 

 

 

 

 

 

 

 

 

 

*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아모르문디, 2011)

 

 

 

레오나르도는 인간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법칙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인체 구조를 탐구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획일적인 법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스케치북에는 그로테스크한 얼굴로 알려진 그림들이 남아 있다. 레오나르도는 얼굴의 형태를 일부러 왜곡시켜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를 표현했다.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특징으로 주걱턱, 매부리코, 축 늘어진 피부 등이 있다.

 

 

 

 

 

 

레오나르도는 이 습작을 바탕으로 인간의 추함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지만, 성 히에로니무스는 해부학적 특성이 잘 반영된 걸작이다. 이 작품이 2012년에 국내에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 직접 눈앞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늙은 성인의 표정은 모나리자의 미소만큼이나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그림 속 성자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고행의 길에 오른 성자들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마치 그들이 편하게 살아가는 현실 도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묘사한 성자는 지쳐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성자의 얼굴에 생긴 주름은 외롭고도 처절한 고행이 지속한 세월의 흔적이다. 우리는 이 성자의 표정에서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은 고행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느낄 수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에 구현된 레오나르도식 그로테스크는 관람객이 체험하고 느낄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을 구체화[2]시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고야. 확실히 그들은 자유자재로 양분의 세계를 드나들면서 독창적인 예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각자 자신만의 그로테스크를 연출하여 희극적인 것과 고통스러운 것이 혼합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그림에는 희극과 비극으로 명확히 나누어져 있거나 때론 공존하고 있다. 서로 대립적 위치에 있는 이중 세계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니 종종 성격과 신념이 배치되는 행동을 했고, 사적 세계를 철저히 숨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고야는 귀족들과 함께 사냥을 즐기면서도 민중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다. 말년에 궁정화가 일을 그만두고 귀머거리의 집에 은거했다. 레오나르도는 새장에 갇힌 새를 풀어줄 정도로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했으면서도 전쟁에 활용될 수 있는 대량 살상 무기를 구상했다. 우리는 이들의 이중생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들과 다른 길을 혼자 외롭게 걸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에 손가락질해야 할까. 두 거장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삶과 예술을 충분히 이해한 독자들의 몫이다.

 

 

 

 

 

[1] 츠베탕 토도로프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290

[2]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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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0:53   좋아요 0 | URL
소묘도 경매품이 되고,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없는 화가들은 자신들이 남긴 어쭙잖은 소묘가 엄청난 금액으로 매겨진 것을 보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해요.

sprenown 2017-12-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사가나 미술펑론가 수준이네요!

cyrus 2017-12-03 10:53   좋아요 0 | URL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ㅎㅎㅎ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류재화 옮김 / 아모르문디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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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그림과 사진 중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은 단연 그림과 사진이다. 고야(Goya)의 판화 작품 전쟁의 참화들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렬하게 전쟁의 참혹상을 보여주는 까닭이기도 하다. 참상의 한복판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하여 우리의 뇌는 분노로 대응한다. 그러나 그것이 시신경을 자극할 때 우리는 관음증적인 쾌감의 유혹에 사로잡힌다. 남의 고통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틀림없이 윤리적 문제를 동반하는 일이지만, 때때로 그것은 자극적인 이미지로 변환되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시대를 경고했다. 그녀의 경고는 현실로 굳어졌다.

 

폭력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전쟁의 참화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쟁의 참화들은 절대로 편하게 볼 수 없는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폭력과 광기가 어둠의 무게로 덧칠해져 있는 절망적인 보고서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ga y Gasset)는 고야를 괴물이라고 평가했다. 가세트의 평가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고야가 잔혹한 도상을 그리는 일을 즐기는 악취미를 가졌다고 오해할 수 있다. 고야는 괴물이 아니다. 고야의 판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야말로 괴물이다. 판화 속 인물들은 이성이 벗겨진 상태다. 전쟁의 만행과 학살은 이성 뒤에 가려진 인간의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고야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을 괴물로 보고 이를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낸 최초의 화가였다.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는 고야의 그림 속에서 사상을 추출한다. 그림에서 사람과 사물은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빛은 어디에서 나와 어디를 비추며, 인물의 표정이나 팔다리 그리고 몸의 자세는 어떤가에 사실 많은 것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관심이나 성격 그리고 문제의식까지 배어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림 속에 배어 있는 화가의 흔적, 즉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게 고야의 그림에서 보아야 할 고야의 사상이다. 토도로프는 고야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사상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고야, 계몽주의 그늘에서(아모르문디, 2017)는 계몽주의 시대를 진실 된 눈으로 바라보고 그린 사상가로서의 고야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책이다. 따라서 고야를 '붓을 쥔 사상가'라 할 수 있겠다.

 

고야는 일찍 실력을 인정받아 꽤 젊은 나이에 왕가의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전속 궁정화가가 됐다. 고야가 궁정화가로 활동하는 동안 유럽의 구체제에 반대하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순탄한 삶을 살았지만,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혁명의 이상에 끌려 있던 고야에게 불행이 닥쳤다. 그는 원인 모를 병으로 청력을 잃어 귀머거리가 됐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고야는 귀머거리의 집으로 알려진 저택에서 어두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귀머거리가 된 이후로 고야가 광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그를 미치광이로 규정할 수 없다. 또 검은색이 지배한 고야의 그림이 단지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예술혼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다. 고야의 귀가 닫히는 순간, 그의 눈과 정신은 더 총명해졌다. 그렇게 고야는 다시 태어났다. 그는 혁명의 열기와 전쟁의 포화가 휘몰아치던 격변의 스페인 사회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냈다. 고야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 민중을 유린하는 상황과 그에 맞서 대항하는 민중의 처절한 저항 의지를 전쟁의 참화들에 담아냈다. 전쟁터 한가운데서 그는 인간의 정신 속에 숨어있는 광기를 목격했다. ‘전쟁의 희생자는 당연히 스페인 민중이다. 하지만 전쟁의 참화들은 전쟁의 희생자에 처한 고통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켜 적군의 추악한 행동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다. 고야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진실을 묘사했다. 고야가 목격한 전쟁의 진실은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말과 부합된다.

 

 

왜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는가? 우리는 서로 굳게 결속되어 있다. 같은 별에 사는 이웃이고 한 배를 탄 선원이다. 새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해 문명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문명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1]

 

 

고야는 건강하고도 합리적 이성을 예찬하는 계몽주의에 열광했다. 고야와 자유주의자들은 부패한 권력과 무지몽매한 종교를 반대했으며 계몽주의 사상의 진원지인 프랑스를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헛된 희망이었다. 프랑스의 스페인 침략은 건강한 이성을 믿었던 스페인 자유주의자들이 좌절할만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고야는 스페인 전역에 드리운 계몽주의의 그늘을 확인했다. 계몽주의의 그늘 속에 스페인과 프랑스, 두 문명은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그늘이기도 하고, 고야가 그리고자 했던 전쟁의 진실이었다.

 

보기 불편하더라도 전쟁의 참화들은 인간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이다. 고야는 자신이 목격한 진실이 여전히 세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진다. 폭력을 부추기는 광기에 조종당한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뼛속 깊이 증오할 수 있는가?. 그림에서 시선을 돌려도 그 이미지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뇌리에 남아 다시금 느끼게 하고 또 돌아보게 한다. 도대체 이것이 인간인가?

 

 

 

 

[1]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206~207

 

 

 

 

 

 

Trivia

 

 

 

미술관은 모든 사물을 벽의 쇠시리에 걸어 변형시킴으로써 미적인 관조의 대상으로 삼는데, 하물며 뒤샹의 <소변기>까지 그렇게 했다. (140)

 

 

저자의 실수인가 아니면 번역가의 실수인가? 현대미술을 언급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소변기로 보다니 유감스럽다. 이 작품에도 이름이 있다. 소변기의 이름은 (Fontai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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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02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소변기를 보면 자동적으로 똥캔이 연상되더군요..ㅎㅎ

cyrus 2017-12-02 16:34   좋아요 1 | URL
피에르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 그것도 정말 충격적인 현대미술 작품이죠. 똥이 담긴 캔 한 개가 엄청 비싸다고 합니다... ㅎㅎㅎ

페크pek0501 2017-12-02 1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책에서 모든 게 다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저런 비슷한 예를 든 걸 본 적이 있어요. 이를 테면 소변기도 무조건 소변기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면 샘으로도 볼 수 있다, 가 될 것 같아요.(이건 제 해석이에요.ㅋ)

cyrus 2017-12-02 16:36   좋아요 0 | URL
정확한 해석입니다. 뒤샹이 전시회에 소변기를 출품한 의도를 잘 이해했습니다. ^^

2017-12-0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2 16:42   좋아요 1 | URL
네, 손탁 언니의 경고는 틀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전쟁뿐만 아니라 재난 사고 소식에도 무감각해졌어요. 재난 사고 소식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무(無) 사고’ 세상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세상에 근접하려면 재난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반성과 추모 없이 그냥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게 희극을 갈망하는 것 같아요. 무조건 비극을 부정해요.
 
잠에 취한 미술사 - 달콤한 잠에 빠진 예술가들
백종옥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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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 인간이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낮 동안 고단하게 활동한 신체를 쉬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학습능력을 높이는 데는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뇌는 낮에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수면 중에도 풀기를 계속한다. 8시간 자면 문제가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한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꿈은 창조적 힘을 발휘할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꿈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

 

달콤한 잠에 빠진 예술가들이라는 부제를 단 잠에 취한 미술사는 바로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은 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잠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자료를 폭넓게 수집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미술이 서양미술에 치중되어 있지만, 잠과 꿈의 세계를 다채롭게 표현한 작품들이 수록됐다.

 

 

 

 

 

 

저자는 몰타 공화국의 고대 도시에 발견한 조각상 잠자는 여인을 잠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의 시조로 본다. 세계 최고(最古)의 조각상이라 할 수 있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풍요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하나의 상징이듯이 잠자는 여인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인간의 꿈과 소망을 표현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책의 1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묘사된 잠에 주목하고, 그것을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아리아드네(Ariadne)는 적국인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에게 반한 비운의 공주이다. 그녀는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s)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낙소스 섬에 잠든 아리아드네를 혼자 남겨둔 채 아테네로 돌아간다. 테세우스가 탄 배가 섬을 떠나는 줄 모르고 잠에 빠진 아리아드네의 모습은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사랑에 배신당한 여성의 상심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프시케(Psyche)와 에로스(Eros) 이야기는 신의 사랑과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게 대비시키는 그림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프시케가 잠든 에로스 곁에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도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프시케는 매일 밤 찾아와서 새벽과 함께 사라지는 남편의 얼굴이 궁금했다. 에로스의 얼굴을 너무도 보고 싶은 나머지, 프시케는 잠든 에로스의 얼굴에 등불을 비춘다. 프시케의 실수로 잠에서 깨어난 에로스는 그녀의 행동에 실망하여 멀리 떠나게 된다. 에로스와 함께 지낸 나날은 달콤하고 행복한 꿈이었으나 사소한 실수 하나로 악몽으로 변한다.

 

 

 

 

 

 

 

2부에는 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나온다. 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꿈이 미래를 예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인들은 꿈이 신의 계시이거나 성령의 영감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Freud)는 꿈이란 인간 내면의 무의식에 자리한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헨리 푸젤리(Henry Fuseli)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당한 뒤 꿈을 꿨다. 그 꿈을 그린 작품이 바로 악몽이다. 이 그림에서 화가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악마는 배신한 여인에 대한 성적 욕구와 공격성을 동시에 지닌 푸젤리의 모습이다. 말은 성적으로 흥분된 화가의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세계를 회화에 도입하고, 회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을 탐구했다. 달리는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달리는 자신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꿈과 환상의 세계를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이른바 편집증적 비평을 이용해 기괴한 상상과 환각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다. 꿈속 이미지는 기묘하고 행동은 통제되지 않는다. 꿈을 꾸지 않는 상태를 기준으로 보면 꿈은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에 가깝다. 꿈의 비논리성은 달리뿐만 초현실주의자들이 선호한 소재였다.

 

3부는 일상적인 잠을 표현한 작품들, 즉 그림의 해석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보기 편안한 그림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눈을 감는 순간 뇌에 커다한 변화가 생긴다. 뇌의 네 가지 영역 중 하나인 후두엽은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일을 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인간이 받아들이는 시각정보를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눈을 감는 이 단순한 행동 하나가 뇌에게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창조적 영감과 꿈의 연관성을 허튼소리로 치부한다. 꿈이 언제나 영감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잠은 바쁜 일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재충전 시간이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꿈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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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을 과식했는지 오후되니 졸리군요.. 창조적 영감님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늘어지게 한숨 푹 잤으면.. ^^

cyrus 2017-11-14 19:26   좋아요 0 | URL
이제 날씨가 슬슬 추워지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요.. ^^;;

2017-11-14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4 19:28   좋아요 0 | URL
다음날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전날 밤에 잠이 안 와요. 군 생활했을 때 선잠자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