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반 아이가 연습장에 낙서를 했다가 담임선생님께 걸렸더랬다. 거기에는 학교는 개집이고 담임은 거지라고 적혀있었다. 담임은 아이를 불러내어 나 어제도 고기 먹었다며 내가 왜 거지냐고 하면서 무지막지하게 그 아이를 때렸다. 뺨이며 머리할 것 없이 한참을 때렸는데, 그것은 담임을 거지라고 말한 학생의 잘못을 고치기 위한 것일까? 역시 같은 선생님이었는데, 당시에 남자아이들하고 밤에 놀다가 학교에 알려졌던건지 기억은 희미한데, 담임은 그 아이를 불러내어 머리며 뺨을 수차례 때린 뒤에 흥분에 겨워 어쩌지를 못하고 가위를 가져와 반 아이들 앞에서 그 아이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냈다. 니가 머리 믿고 이러지? 예쁘니까 나가지? 이런 뉘앙스로 말을 하며 머리카락을 삐뚤빼뚤 잘라버린 거다. 16살 밖에 안된 아이니까 남자아이랑 놀다 잘못될까봐 선생님은 걱정스런 마음에 아이를 때리다 못해 머리를 자른걸까?


고등학교라고 별반 다를 바 없다. 나는 여고에 다녔는데, 수업시간에 존 아이를 불러내서는 작문과 문학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몽둥이로 그 아이를 미친듯이 팼다. 검도를 하는 쌤이었는데, 그 몽둥이로 머리를 그렇게나 때리더라. 다시는 수업시간에 졸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였을까?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의 매일까? 선생님이 제자를 때린 것이므로, 사랑이라고 받아들여야할까? 정말?



위에 적은 것 말고도 아주 많이 나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무지막지하게 맞는 걸 봐왔다. 아마 내 또래는 그런 걸 수시로 보았을 것이며 또 맞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이건 사랑의 매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다른 아이들 모두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나 선생이든 부모든 '잘못했으면 맞아야해' 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때리면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었나 보다. 그러나 더 자라고 나서야 나는 그것은 잘 되라는 믿음도 뭣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잘못을 했을 때 어른을 때리지 않고 아이들은 때리는 것. 그것은 상대가 내게 맞설 수 없는 약자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상대적 약자 앞에서 자신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것, 나는 그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선생님이 아이를 그렇게 때린 것은 그러므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또한, 이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가정으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이상한 정상 가족》의 저자 '김희경'은 가정에서 아이에게 훈육이란 이름으로 체벌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금지해야 하고, 그것을 법에도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전적으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사랑의 매라는 걸,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허락한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아동학대와 어떻게 구분 지을 것인가? 두 대 때리면 사랑의 매이고 세 대 때리면 아동학대일까? 멍이 들면 사랑의 매이고 죽으면 학대일까? 어떤 형식으로든 체벌을 허락하고 용인하는 순간, 그것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짓기는 힘들어진다. 모호한 경계에서 그 체벌은 학대로 이어진다. 실제로 아이에게 체벌을 하는 부모가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부모의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면 "나도 맞고 자랐는데?" 하고 반론을 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여기에는 맞고 자랐기 때문에, 즉 부모가 매를 들고 엄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자신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 우리 부모가 잘못됐다고 공격하는 것인가 하는 불편한 심리도 있을 수 있다. 흔히들 '사랑의 회초리'를 한국 부모의 전통적 교육방식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도 부모의 체벌을 감싸는 쪽에선 '사랑의 매Cane of Love'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한국 부모들만의 엄하고 눈물겨운 사랑표현이 전혀 아니다. '사랑의 매'라는 표현은 때리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어떤 폭력은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뜻인데, 이는 전적으로 매를 든 사람의 논리다. 맞는 아이들에겐 체벌의 이유가 사랑이든 분노든 다를 게 없다. (p.35)



가정 내 체벌금지를 법에 명시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들을 범법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정도로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체벌을 허용하는 사회는 아이들이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사회구성원의 자격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는 고통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바라본다. 아이도 개별적 인간이고 권리를 지닌 사람이라기보다 부모의 뜻대로 처분 가능한 소유물처럼 바라본다. 이 뿌리 깊은 부정적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 체벌금지 입법의 취지다. (p.54)




이 책을 읽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굳이 자극적인 묘사가 아니라도 있어왔던 아동학대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면 너무 힘들어서 책장을 넘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심호흡을 해야한다. 아이를 체벌하는 것을 가정에서도 금지해야 한다고 하는 것에 나는 처음부터 동의했는데,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이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나아가 국가랑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스웨덴의 사례를 가져오며 잘 보여준다. 스웨덴은 부모의 아이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나라인데,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은 아동학대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선 '가족' 이라는 견고한 울타리에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게끔 배타적은 성격을 띤다. 아내를 폭행할 때도 집안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고 아이를 학대할 때도 아이가 잘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해버리면, 심지어 경찰이 출동을 해도 그냥 돌아서게 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 남자 아빠와 여자 엄마로 구성되고 그 사이의 자녀로 구성된 바로 그 가족을 '정상'이라고 규정지어 버리는 순간, 그렇지 못한채 구성되어진 다른 가족은 자연스레 '비정상'이 되어버리고, 이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눔으로써 비정상에 대한 혐오가 커진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도 미혼모의 아이도 그리고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도 모두 다른 아이들의 혐오의 대상이 된다. 너희들은 '정상' 가족이 아니니까.




언젠가 누가 그런건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나랑 대화를 하던 사람중에 누군가가, 로또 당첨이 되면 아이들을 위한 곳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갈 곳 없는 아이들, 학대 받는 아이들, 그 어떤 아이들이라도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공간.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곳은 그런 곳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 역시 기꺼이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그런 공간을 '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전부 아이들을 위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어디를 가면 아이에게 좋다'가 아니라, 어디든 걱정없이 그냥 다녀도 될 수 있게 만들어놓는다면 되지 않겠는가. 필리핀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이를 낳기만 하고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 버리고 가는 아버지들이 이렇게나 수두룩한데, 나는 너무 이상적인 걸 바라고 있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난다.



미혼모가 혼자 이고생을 하는 동안 미혼부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에 따르면 파트너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절반가량의 미혼부들이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소식을 감춘다고 한다. 미혼부나 그들의 가족은 자녀에 대한 권리를 미혼모에게 쉽게 떠넘겨버리거나 부모 자녀관계를 부정해버린다. '가족 제도' 주변에 둘러쳐진 금 밖으로 한 발만 나가면 그 강력한 가족주의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출산에 동의한 미혼부조차 출산 후에는 소식을 끊거나 책임을 방기한다. 아무도 미혼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성관게는 임신,출산,육아까지 이어지는 고민을 안겨주지만 많은 경우 남성들에게 성관계는 그저 욕망일 뿐이다. (p.118-119)



보편적 공공보육의 비판자들은 과도한 공공보육이 가족생활을 갉아먹거나 어린이의 정상적 양육을 저해하고 가족 해체로 나아가게 될 거라고 비판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다시피 스웨덴은 보편적 공공보육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녀와 보내는 시가닝 줄기는커녕 되레 늘었다. 스웨덴의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300분이고, OECD 국가 평균은 47분이다. 한국은? 6분이다. (p.231)




문화 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사랑의 매, 아이들을 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성의 성기를 절단하고 꼬매버리는 할례까지. 그것이 그 나라의 '문화'라고 그저 넘길 수 있는 것일까? 어느 한 대상을 고통스럽게 하는데, 그것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어야 하는걸까? 아프고 죽는데, 그것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사랑의 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다 자기네 문화적 전통이라고 말해요. 그걸 문화적 특성, 종교적 가르침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야말로 체벌을 옹호하는 가장 끈질긴 논리죠. 스웨덴에서도 그랬어요." (p.204)




국가가 가정의 일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개인으로 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아이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약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개인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가족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사는 사람들이라, 한 아이를 보호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것, 육아에 스트레스 받지 않게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 그리고 스웨덴의 경우처럼,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어디든 좀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 이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설득력이 있다.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부터 얘기를 꺼내도 독박육아와 모성신화와 뿌리깊은 이 사회의 약자혐오가 만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들을 대통령이 읽었다면, 좋군, 하고 생각했다. 사실 대통령보다는 국회의원들이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고, 그리고 세상의 많은 부모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물론, 비혼인 사람들, 아이와 상관없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자를 한 개인으로 똑같이 존중하는 것, 그것은 그래야 마땅한 것이니까, 그런 마땅한 것들을 지키고 산다면 엉망진창 세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우리는 아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기본적으로 약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일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비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은 없다. 정상 가족이란 말이 이상한 이유다. 가족은 단지 가족일 뿐이다.






내 혈연이 아니더라도 세대를 이어 인류가 계속 존재하리라는 기대가 사라진다면, 개인의 삶은 유한해도 나보다 더 크고 지속되는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 모든 추구와 삶의 의미도 빛을 잃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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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2-02 12:14   좋아요 5 | URL
진심어린 체벌은 당하는 아이가 잘 안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진심어린 체벌이라 하면, ‘아 내가 잘못했고 그래서 나 잘되라고 때리는 거구나‘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것이 폭력을 인정하는, 다시 말해 ‘맞을짓을 했다면 맞아도 싸다‘를 인식시키는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자라서 다른 약자를 향해 ‘맞을 짓 하면 맞아야지!‘라는 사고를 자연스레 갖게 될거고요. 결국 폭력은 대물림되겠죠. 저는 아이가 사랑의 훈계를 알것이다, 라는 것 역시 때리는 사람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죠. 말씀하신 것 같은 욕설을 포함해 비하발언도 있을테고요, 성희롱은 여전히 교사로부터 당하는 학생들이 있고요. 이건 제가 리뷰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모두가 약자에 대한 혐오로부터 비롯됐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는 약자를 혐오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2018-02-0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2-02 12:44   좋아요 3 | URL
이 책에도 그런 사례가 나와요. 내가 ‘맞아서‘ 이렇게 잘되었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저자는 그 말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맞아서 잘된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큰 거라고. 개인의 역량이란 것은 다르니까 누군가는 같은 환경에 놓여졌을 때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상처를 받지만 극복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잘 극복해냈다고 해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일이 해도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때린 선생님을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것이 체벌의 긍정적인 효과라거나, 긍정적 체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득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붕붕툐툐 2018-02-02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우 공감합니다. 어떠한 폭력이든 폭력은 폭력일 뿐이며,폭력은 재생산되기 쉽죠.

다락방 2018-02-02 16:46   좋아요 2 | URL
네. 어떤 폭력이든 허용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른 폭력에 대해서 다 받아들이기 쉬워지죠. 그렇게 대물림 되고요.
 
















'파멜라'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의 상징적 이름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륜이라거나 바람을 피는 다른 여자를 의미하진 않는다. 레오에게 파멜라는 에미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의 애인이었다. 숱한 이메일을 에미랑 나누었지만 그는 보스턴으로 건너가 파멜라 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와 연인이 된다.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앞으로 파멜라와 함께 살지도 모를 날들을 생각한다. 레오는 에미랑 '우리 사귀자' 라고 한 적도 없고, '나는 사실 너를 사랑해' 라고 한 적도 없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애정하는 마음을 가득 안은채로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던 거다. 에미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 보스턴 체류 시절, 레오는 파멜라를 만났다. 레오는 에미에게 파멜라라는 애인이 있음을 알린다. 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들은 '그러면 안되는' 관계에 있지 않다. 레오는 싱글 파멜라도 싱글, 싱글인 남녀가 사귀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사귀어도 된다. 되는데,


어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응?, 되지, 되고말고, 마음대로 하렴, 막 이렇게 되나. 응 그래 너 애인 있어도 되지, 니 애인이지, 이렇게 에미도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응? 그게 그렇게 되냐 이말이다. 나랑 이렇게 이런 시간을 보내고 어떻게 파멜라랑 살지,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또 내가 거기에 끼어들 수는 없어? 그러니까, 응 그래,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니? 뭐 이런 거 물어보고 그럴 수는 있지만, 실상 내 마음은, 너는 내 남자인데 이새끼야..뭐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그걸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또 '레오가 파멜라랑 헤어지게 해주세요' 빌 수도 없다. 그건 좀 .. 비열하잖아. 누군가의 불행을 바란다는 건. 그렇지만, 그건 할 수 있다.



레오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를.

레오가, 레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레오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레오는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에미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 방법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고, 파멜라랑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실상 자기가 계속 함께 했었던 건 에미라는 걸 깨닫는다. 아주 늦게 깨달은 셈이다. 바보가 따로 없다. 에미는 처음부터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그 방향으로 가는데 레오는 계속 휘청거렸어. 세상 똥멍청이가 따로 없지.. 어쨌든, 내가 이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다시,



파멜라는 다른 여자의 상징이라는 거다. 다.른.여.자.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녀는 단지 현실속에서 나와는 다른 어쩌면 나보다 더 큰 매력을 가진 여자. 파멜라는 그런 상징의 이름인 것이다. 그런 파멜라에 대하여, 나는 어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와 나는 레오와 에미 얘기를 같이 읽었고, 그렇기 때문에 파멜라가 가진 상징에 대해 알고, 파멜라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가 있어. 브라보! 역시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야기 나눌 것이 많아. 게다가 내 의식의 흐름을 잘 따라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우리는 나의 찌질함에 대해 얘기하다가 파멜라 얘기까지 가게됐고, 나는 에미가 되어서, 레오 옆에 파멜라가 없었으면 좋겠고, 그렇지만 파멜라가 떠나버렸으니, 파멜라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주자, 파멜라에게는 누가 어울릴까? 이런 얘기를 길게 길게 나누었던 것이다!! 자, 그와 나눈 대화다.










우리는 결국 파멜라에게 멜라니를 붙여주었다. 파멜라가 모르는 게 함정.....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파멜라에게 멜라니라니. 아, 나 너무 현명한 것 같아. 아놀드, 숀, 죤, 붙이다가 앗!! 하고 멜라니 똭- !! 크-


내 귀에 캔디~♬

파멜라에게 멜라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지난주말에 불국사에 가고 있는데 우리집에 올 예정이었던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 이모 방에 있는 책갈피 가져가도 돼? 묻는 거였다.


-무슨 책갈피?

-이모 책에 붙이는 거

-아, 포스트잇 말하는 거구나!

-응.

-타미 그거 어디있는지 알어?

-응! 이모 화장대에!

-응, 가져가도 돼. 근데 타미야, 이모가 쓰고 어디 다른데 뒀을지도 모르니까 만약에 타미 갔는데 없으면 나중에 이모가 사줄게.

-응.



주말에 돌아와보니 내가 쓰는 포스트잇 플래그는 책장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화장대에 있지 않아 가져가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조카에게 전화했다.



-타미야, 너 못가져갔지?

-아니 가져갔는데?

-어디에서?

-화장대에서!



음. 아마 내가 평소 쓰던 것보다 큰 걸 가져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 여동생과 통화를 하는데, 여동생이 깔깔 웃으며, 쟤는 별 걸 다 자랑한다면서, 학원친구들 만났는데 포스트잇 플래그 보여주면서 "이거 우리 이모꺼야~" 이러면서 자랑을 했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또 사줄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이모꺼라면 다 좋아하는 듯. 우리 이모가 연필 사다줬어~ 하는 것도 엄청 자랑하고. 그냥 이모이모 자랑자랑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 애정이가 뿜뿜한다. 엊그제는 여동생에게 전화했는데 옆에서 타미가 누구냐고 묻는 거다. 제엄마랑 싸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엄마, (전화)누구야?

-우리 언니.

-우리 이모거든!

-우리 언니거든!


이러면서 싸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이 귀요미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너희들 모두의 것이란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날 가지렴 얘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다음주에 갈 때 포스트잇 사가야지.
















파멜라가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보냈어요. 그사이에 내가 공간을 떠나 누구 곁에 있었을까요? 에미 당신 곁에 있었어요. 내가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에서는 누구랑 살았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살았어요. 언제나, 오로지 당신과 함께 였어요.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환상에 등장하는 하나의 얼굴 또한 당신 얼굴이었어요. - 일곱 번째 파도, p.33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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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1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2-01 09:34   좋아요 0 | URL
왔어요? *^^*

책읽는나무 2018-02-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런 타미!!!
포스트 잇 조차 이모 것을 흠모하다니!!
그나저나 경주 다녀가셨었군요?

다락방 2018-02-01 10:37   좋아요 0 | URL
네 주말에 불국사 다녀왔어요. 다행히도 날씨가 좋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답니다. 후후
 
당신을 들여다보려 노력했더니 나를 들여다보게 됐어.



책을 잘 읽는 아이었다. 초등학생(사실 나는 국민학생 이었지만)때는 책을 글자도 틀리지 않고 잘 읽어서 선생님이 똑순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일어나서 책 읽게 시키면 나는 더듬거리지도 않았고 어려운 글자도 막힘없이 읽었으며 책장이 넘어가서 나오는 글자까지도 매끄럽게 읽어냈다. 발음도 좋았던 나는, 한마디로 똘똘함 그 자체였던 거다. 자, 내가 왜이렇게 잘난척을 하냐면,


이런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디 안가고 책을 읽다 좀 낯선 단어가 나오면 소리내어 읽어본다, 그 말이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역시 잘 읽는군' 이렇게 자뻑하곤 했는데, 아아, 나이들수록 그 자뻑은 점점 겸손함으로 바뀌어간다. 한 번에 매끄럽게 읽어낼 수 없는 단어가 점점 늘어나. 그러다 급기야, 아이슬란드 소설을 읽으면서!! 상태가 메롱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 나는 이런 본문을 한 번 소리내어 읽어본 것이다.


여러분,

같이 소리내어 읽어보자.





세번째 낯선 단어쯤에서부터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웃긴 소설이 아닌데 여기 소리내서 읽다가 혼자 웃어버렸다고 한다...... 뭐지. 위르다르프뢰트 비나르브레퀴르 라웅기흐리귀르 에스키피외루뒤르 위르다르클레튀르.....네.............................



네.......................



뭔가 눈알도 이렇게 @.@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책 좋아서 시리즈라니까 다 읽어보고 싶다. 시리즈는 몇 권이나 있는 것인가...

















앗!!!!!

무덤의 침묵은 무려 내가 읽은 거네??? 오만년 된 것 같은데???????? 오옷!!!!  목소리랑 저주받은 피랑 이거 시리즈인가 본데, 둘 다 읽어봐야겠다. 그러다가 또 위르다르프뢰트 비나르브레퀴르 라웅기흐리귀르 에스키피외루뒤르 위르다르클레튀르 이런거 나오면 소리내어 읽어봐야지. 하하하하하. 나는 조금 더 겸손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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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g 2018-01-31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소설을 읽으면 절로 겸손해는^^;;;;

다락방 2018-01-31 10:56   좋아요 1 | URL
독서가 이렇게나 좋습니다. 겸손을 알게해줘요! ㅎ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8-01-31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책으로 가면 이름과 지명이 익숙한 영미권, 프랑스, 독일이나 스페인어권하고도 많이 다른 것 같네요. 참고로 전 한번에 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1-31 14:46   좋아요 1 | URL
네. 너무 낯선 용어라서 지명에 대해서는 휘리릭 지나치며 읽게 되네요. 그나저나 한 번에 틀리지 않고 읽으셨다니...오, 맙소사! ㅎㅎㅎㅎㅎ

시이소오 2018-01-31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잘읽어부리고휘리릭~~

다락방 2018-01-31 14:46   좋아요 1 | URL
아........뭔가 분하다!! 어째서 나만, 나만 버벅댄것이지? 분하닷!!!!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8-01-31 16:52   좋아요 1 | URL
락방님을 글을 잘 읽었다는 아이슬란드식 표현이었어요. 저도 저렇게 길고도 이상한 발음의 고유명사는 처음일뿐더러 혀 엄청 꼬여요 ㅎ

다락방 2018-01-31 17:32   좋아요 1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그 뜻이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nine 2018-01-3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언어 전공으로 선택하여 평생 공부하시는 분도 계시는데요 뭐~ ^^
저는 그냥 눈으로 읽고 넘어가거나 처음 두 글자만 읽던가, 그렇게 넘어가요 ㅋㅋ

다락방 2018-01-31 14:47   좋아요 1 | URL
나인님, 안그래도 저도 그 생각했어요. 저 부분 읽다 혼자 웃으면서, 아니 근데 번역하시는 분은 이거 번역하시다 웃지 않으셨을까... 하고요.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쩐지 웃었을 것 같더라고요. 저도 저렇게 어려운 이름의 지명에 대해서는 눈으로 읽을 때는 대충 읽어요. ㅎㅎ

심술 2018-01-31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90년 전 중1이었는데 그때 2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글 ‘폴란드의 소녀‘가 생각나네요.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야라는 어려운 고유명사를 비롯해 혀 꼬이는 폴란드말 고유명사가 잔뜩 나왔었죠.

락방님도 1990년 중1이셨죠?

다락방 2018-01-31 14:48   좋아요 1 | URL
네?
왜...어째서......제가 90년에 중1일 거라고 생각하시죠?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답을 회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8-02-01 14:50   좋아요 0 | URL
ㅋㅋ

졔졔 2018-01-31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태백산맥을 보면서 꼭 한 대사씩 소리내어 읽었어요!(전라도 네이티브스피커)

다락방 2018-01-31 17:33   좋아요 2 | URL
맞아요, 맞아요! 저도 책에 사투리 나오면 꼭 소리내어 따라 읽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면서 내가 잘하는건가 싶고. 제가 사투리를 못해서 그냥 하라면 못하는데 쓰여진대로 읽는 건 할 수 있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장소] 2018-01-3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대출로만 읽으실 수있지 싶네요.
저도 좋아하는작가라 국내에 나온 책은 다 읽은 1인 ~
저체온증 넘 기뻤죠.. 가뭄에 단비 ..( 그치만 내리다 만..)

다락방 2018-01-31 17:33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그장소님? ㅠㅠ
대출 ㅠㅠ
그렇군요 ㅠㅠㅠ
책과 내가 만나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인가 봐요. 하아-

[그장소] 2018-01-31 19:56   좋아요 0 | URL
중고 책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영림카디널 블랙캣 시리즌 더이상 안나오는걸로 알거든요.
어디선가 아를렌두르 인드리다손 책을 계속 계약해주길 바랄 뿐예요. ^^

그렇게혜윰 2018-01-3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책을 잘 읽는 초1이었는데....이하생략.

다락방 2018-02-01 08:58   좋아요 0 | URL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ㅎㅎㅎㅎㅎ

독서괭 2018-02-0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문단은 레전드네요 ㅋㅋㅋㅋ 버벅버벅입니다 ㅋㅋ

다락방 2018-02-01 08:58   좋아요 0 | URL
버벅대는 스스로에게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압정 2018-02-0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웅기흐리귀르 라웅기흐리귀르 혀가 아주 꼬부랑 꼬부랑 .

다락방 2018-02-01 11:30   좋아요 0 | URL
해보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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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렌뒤르는 우연이란 삶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간악한 술책을 펴거나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연이란 비와 같아서,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바르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때로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을 형성하기도 했다. 우연이란 난데없이 등장했다. 예상치 못하게, 기이하게, 설명할 수 없게. (p.272)




영화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올랜도 블룸'은 자살을 결심하는데,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 핸드폰이 울린다. 그 전화를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누나가 그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에 올랜도 블룸은 자살하려던 걸 중단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다가 '커스틴 던스트'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오랜 시간 대화를 지치지도 않게, 매일 하게되고, 그러다가 그녀와 함께 뜨는 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그렇게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나간다.


어쩌면 올랜도 블룸에게는 자살하려는 생각이 그리 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만약 컸다면, 전화가 오는 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자살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필 그때 전화가 왔고, 결코 무시할 수 없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다는 거다. 이런 일들이 겹쳐 그는 자살하지 않았고, 그리고 소중한 인연도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니까 '나'라는 한 사람이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세상 바깥으로 걸어나가는 데는, 나 하나만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우린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고있고, 그 사람들로 인해서 절망하기도 하지만, 또 그 사람들 때문에 그 절망을 이겨내기도 한다. 에를렌뒤르는 이런 우연에 대해 말하고, 그 우연에 기댄다. 그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믿음을 받아들인다. 아이를 잃고 혹은 동생을 잃고 오랜 세월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을 위해, 에를렌뒤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들을 찾아야할까를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우연은 우연을 만나고 그 우연은 또 우연을 만들어내서, 결국은, 조금 늦긴 해도 간절한 마음에 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연은 그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억지수단이었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에를렌뒤르가 경찰로 있는 지역에서 한 여자가 자살한다. 자살에 한 점 의심도 없고 그렇게 그 일은 지나가는 듯 보였는데,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에를렌뒤르를 찾아와서는, 그 애가 자살할 애가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이미 끝난 일에 대해 에를렌뒤르는 한 번 개인적으로 조사해보기로 한다. 한 사람이 직장에서 자기의 보직에 맡은 바 일을 다할 때, 그것이 하나의 일만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를렌뒤르가 자살사건에 대해 혼자 조용히 조사하려고 하지만, 아직 30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의 소식을 모르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찾아와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를 묻는다. 30년전에 행방불명된 여대생은 또 어찌된일일까. 이 일들이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얽혀나간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일들이 조금씩 섞여서 각각의 사건에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은 죄책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살한 마리아는 평생을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큰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는 분명 죄를 저지른 터. 그가 그 돈을 차지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벌을 받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죽게 했다는 사실이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누가 그의 옆에서 계속해서 속삭이는 게 아니라도,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우디 앨런'의 영화 《매치 포인트》에서 남자는 부유한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는데, 아무도 모르는 채로 전망 좋은 부유한 아파트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끊임없이 자기가 죽인 여자의 유령을 본다. 내가 한 나쁜 짓은 내가 가장 잘 알것이다.



자살과 실종사건,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전부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에를렌뒤르를 포함한 그 가족의 각각의 상처. 에를렌뒤르가 어릴 적에 잃어버린 동생, 에를렌뒤르를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 전아내, 부모가 다정하게 함께 있는 걸 보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딸, 사랑하는 남자의 옆에 공식적으로 서고 싶었던 여자, 그리고 평생을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아버지까지. 이 책 속에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그에 섞인 상처들까지 조용하게 보여준다. 실종사건이 차가운 겨울에 일어났던 것처럼, 소설은 시종일관 서늘한 분위기이지만, 에를렌뒤르가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으려고 해서 결코 춥지가 않다. 결국, 조금 늦었지만, 간절한 마음이 바라는 곳에 닿았을 때는, 잠깐 울컥 하기도 했다.


우리가 자신의 상처에 집중하고 그걸 치유하는 데 애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잘 되는 건 아니다. 나만해도 내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엉엉 주저앉아 울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거침없이 나설 때가 있었으니까. 에를렌뒤르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최선이었고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지만, 자신의 상처에 맞닥뜨리는 일은 피해왔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종국에는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볼 생각을 한다. 이 조용하고 차분한 소설이, 추운 분위기를 계속 보여주면서도(얼음 얘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추웠다!), 결국 목도리 하나 두른 것 같은 느낌을 주고야 만다.




뜬금없이, 엘리자베스 타운도 다시 보고싶어졌다. 이 영화와 이 책은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가 계속계속 계속계속 이야기하던 장면들, 밤새 이야기하던 장면들을 보고싶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차갑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다.








우리는 비밀리에 만나기 시작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랑에 빠졌어요. 처음에는 그가 안됐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을 거예요. 그러다 같이 살고 싶어지자 레오노라에게 알려야 했죠. 저는 레오노라 모르게 그와 불륜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작당하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걸 밝히고 싶었어요. 저는 견딜 수가 …… 우리 사이를 비밀로 둘 수가 없었죠. 마그누스는 말하는 걸 미루고 싶어 했지만 제가 밀어붙였어요. 결국 그 사람이 레오노라에게 그 주말 싱그베들리르에서 진실을 말하기로 했죠.(p.325)

그는 그녀에게 평소보다 조금 많은 양의 수면제를 주었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다른 약물도 주었다.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환각제였다. 마리아는 그를 믿었기에 약을 먹었다. 그는 남편인데다가 의사였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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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겸손을 배우는 방법
    from 마지막 키스 2018-01-31 09:55 
    책을 잘 읽는 아이었다. 초등학생(사실 나는 국민학생 이었지만)때는 책을 글자도 틀리지 않고 잘 읽어서 선생님이 똑순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일어나서 책 읽게 시키면 나는 더듬거리지도 않았고 어려운 글자도 막힘없이 읽었으며 책장이 넘어가서 나오는 글자까지도 매끄럽게 읽어냈다. 발음도 좋았던 나는, 한마디로 똘똘함 그 자체였던 거다. 자, 내가 왜이렇게 잘난척을 하냐면,이런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디 안가고 책을 읽다 좀 낯선 단어가 나오면 소리내어 읽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아마도 6학년 쯤이었던 것 같은데, 학교 끝나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동네에 살았는데, 학원에서 우리 집으로 좀 더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바보골목 이라는 곳을 지나야 했다. 좁은 골목이었는데, 그 골목의 집에 바보가 살아서 사람들이 바보 골목이라고 불렀던 곳이었다. 환한 낮이었지만 그 골목엔 인적이 드물었는데,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 길을 걸으며 집에 가고 있는데, 저기 더 작은 골목 벽에 친구의 여동생이 기대어 서있었다. 친구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여동생과 더 차이 많이 나는 아주 어린 남동생이 있었는데, 당시에 그 여동생은 6-7살 정도로 기억한다. 이 어린아이가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거다. 나는 저 어린애가 왜 혼자서 저기에 기대어 서있지? 하고는 아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친구와 나도 친했고 그 가족 모두와도 아는 사이었다. "**아!" 하고 부르니 아이가 고개를 들고는 나를 봤다. 그리고는 "언니!" 하더라. (여기까지 쓰는데 또 울컥한다) 나는 "너 거기서 뭐해?" 하고 가까이 갔는데, 아이가 서있던 맞은편 벽에 당시에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오빠가 똑같이 기대어 있더라. 저 사람은 누구지, 하고는, 그런데 저 사람하고 이 아이가 볼 일은 무엇인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아이의 손을 잡고 '가자' 했다. 아니는 내 손을 잡고 나를 따라왔고, 나는 어쩐지 그 오빠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는 그냥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나는 아이랑 걸어가면서, 너 저기서 뭐했어, 했더니, 오빠가... 고기 준다고 따라오라 그래서.... 갔는데..... 천천히 아이는 말을 이어갔다. 바지를 벗으라고 했어... 라고 하는 거다. 아이는 그 어린 마음에 어쩐지 안될 것 같은 생각 때문인지 그걸 행동에 옮기지 않은 채 있었던 거고, 내가 그 참에 아이를 본것이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스무살이었고 아직 핸드폰을 쓰지 않았던 때였는데, 밤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는데 내가 지나치는 길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다. 옆은 공사현장이었고 어두웠다. 나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떤 일일지 짐작이 되어 누군가 어른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 도와달라 말할 생각으로 앞을 향해 뛰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뛰다가 저 여자에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뒤를 돌아 여자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웠다. 어쩌면 그 남자가 나까지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도망치는 것이었다. 달리면서 나는 내가 간다는 걸 알리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다.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도착해보니 남자는 없고 여자 혼자였다. 여자는 옷깃을 꽉 붙잡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물으며 밝은 곳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 여자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같은 반 이기도했다. 몇 년 후 친구와 까페에 들러 차를 마시려는데, 그 때 그 동창이 까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더라. 그 때 그 동창이 내게 말했다. 그 당시에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너였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정말 고마웠다고. 사실 그 일이 있은 후, 누구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혼자 떨면서 나는 그 다음날부터 얼마간 학교를 가지 못했다.




내가 직장인이었을 때, 이건 몇 년전의 일이다. 다른 부서에서 성추행이 있었다. 나보다 직급 높은 남자가 가해자였다. 그 남자가 그러는 것을 여러차례 들었는데 이번엔 더 정도가 심한 거였다고 했다. 나는 그 부서의 가장 직급 높은 여자에게 인터폰을 해서 '그것을 하지말라고 다같이 말해라'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본인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해야죠. 싫다고 확실하게 말하면 안해요' 이러는거다. 하는수없이 나는 그 부서로 내려가 직급있는 여직원들을 임원실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임원에게 가해자를 불러달라 했다. 임원은 아직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황. 나는 가해자가 들어오고나자, 이 사람들 앞에서 확실히 말하겠다, 한 번만 더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가만있지 않겠다, 일 그만두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는 내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내가 잘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가 계속 떨려나왔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내 자리에 돌아왔는데 그 후에도 계속 떨렸다. 손이, 몸이 떨렸다. 떨면서, 내가 왜 떠는지를 모르겠더라. 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떠는거지?






어제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를 뉴스룸에서 보았다. 평소에 그 시간에 집에 잘 있지도 않고 뉴스도 잘 보지 않는 요즘이었는데,  보게 됐다.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는 서지현 검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엄마, 저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서지현 검사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우리의 목소리가 떨려야 하는걸까. 오늘 아침에도 엄마는 '그 검사 정말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안다.



나는 이것말고도 무수히 많은 성추행과 성폭행의 경험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어쩔 수 없이 연인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몇 번이나 숨을 참아야 하는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안다.




우리는 당신이 그 자리에서 말하기까지 그 긴 시간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 말하는 그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용기를 끌어모아야 했을지 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어 고맙다.

서지현 검사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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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1-30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뉴스룸 봤는데, 이어폰으로 설거지하며 듣다가 울컥해서는 설거지를 멈쳤어요.
검사라는 자리에서도, 여자는 여자일 뿐이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고,
오히려 불이익을 받아왔던 걸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왔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하는데.......

다락방님의 오늘 글, 고마워요.

서지현 검사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
용기를 내 줘서 고맙다고 꼭 말하고 싶어요.

다락방 2018-01-30 10:45   좋아요 2 | URL
지금은 책에 쓰긴 했지만, 제가 이 공간에 제 성추행 피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죠. 그 때 그 글을 저녁에 적어두고는 밤에 한 숨도 못잤어요.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그 글을 감췄었어요. 저도 그 글을 쓴 이유가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를 말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말을 하는 게 왜그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까요. 저는 잠깐 공개했다 감췄는데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서지현 검사는 얼마나 많은 용기를 끌어모았을까요. 그리고 지금 또 얼마나 많은 말들에 시달릴까요. 떨리던 목소리가 내내 귀에 남아 있어요.


2018-01-3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3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공개 2018-01-3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지현 검사님과 다락방님께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 고마운 마음도 함께 보냅니다.
다른 모든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도 항상 지지하고 연대할 것을 약속합니다.

다락방 2018-01-30 11:04   좋아요 0 | URL
지난번 만남에서 jsshin 님이 하신 말씀도 생각났어요. 그 때 내가 더 잘했더라면 내 다음에 들어오는 여직원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했던 말이요. 왜, 가해자가 아닌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잘해야 한다고 계속 다짐하게 되는걸까요? 너무 속상합니다. 하아-

별이랑 2018-01-30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네요.
가해자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위로인것 같아요. 잘못한게 아닌데 청심환을 먹어도 멈출 수 없는 떨리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지...네, 우리는 알고 있죠. 공감합니다.

다락방 2018-01-30 11:11   좋아요 1 | URL
저도 어제부터 여러차례 계속 눈물이 나려고 해요. 잘못한 게 아닌 피해자가 계속 떨어야 되는 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일텐데요. 왜 잘못하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떨려야 할까요. 가해자들에게 벌을 주는 게 피해자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가해자에게 벌을 주어야 피해자가 ‘저 사람이 나쁜 거다‘라는 걸 알 수 있을테니까요. 그게 안되고 있어서 피해자들이 여전히 계속 아프고 힘든 것 같습니다. 세상이 좀 달라질 수 있을까요?

꿈꾸는섬 2018-01-3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울컥하게 돼요.
좋은 글 감사해요.
저도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

다락방 2018-01-30 14:05   좋아요 0 | URL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오기는 할까요. 언제나 더 나쁜 소식들이 터져나와서 끔찍해요.

비연 2018-01-3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지지를 보내고...
그래서 이 모든 악몽들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없어져야 해요. 그 때까지 끝없이 끝없이 애써야 한다고,
그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이제 얘기가 터져 나왔으니 밀어붙여야 한다고
부들부들 떨면서 결의를 다지게 되네요.

락방님의 글 너무 감사요. 그 결의가 바래지지 않도록 우리 서로 서로 공감하고 노력하고 얘기하고 그래요.

근데, 참 속상합니다. 이런 얘기를 피해자가 직접 방송에 나와서 애기하는 어려움을 겪을 때까지 놔두다니.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을. 그래야 이런 일들에 대한 인식이 깨이고 차츰이라도 없어질 것 같아요. 불끈.

다락방 2018-01-31 09:01   좋아요 0 | URL
법에 호소하고 그 법이 피해자의 얘기에 귀 기울여줬다면 피해자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얘기하는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텐데요. 너무나 가해자 위주의 판결들이라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비연님 말씀대로 참 속상하네요. 반드시 처벌을 내려서,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기 마련이라는 걸 반드시 알려서, 피해자를 위로하고 앞으로 일어날 범죄도 예방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머큐리 2018-01-3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지현검사가 중간에 사퇴하는 일 없도록 해야죠
피해입은 자가 조직을 떠나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요...
락방님과 같은 마음으로 지지하고 연대합니다

다락방 2018-01-31 09:03   좋아요 0 | URL
중간에 사퇴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들까, 저도 어제 하루종일 생각했어요. 이런 일에 있어서 사실 자기 조직을 떠나는 게 지키는 것보다는 덜어렵겠죠. 저도 서지현 검사가 중간에 사퇴하는 일 없이 잘 지켜내기를 바라고, 멀리서나마 힘을 보내고 싶어요. 제 힘이 닿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시이소오 2018-01-3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투입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힘입어 이땅에서도 미투 운동으로 활활 번지기를.

다락방 2018-01-31 09:05   좋아요 0 | URL
해시태그를 달고 문단내 성폭력과 공연예술계 성폭력, 오타쿠내 성폭력등이 SNS 에서 이미 활발하게 운동하고 있었고 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어요. 이제 검찰내 성폭력고발도 여기에 함께하게 되겠죠. 아무쪼록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이 힘들겠지요...

카스피 2018-01-3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저도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지지를 보냅니다^^

다락방 2018-01-31 09:06   좋아요 0 | URL
네!

2018-02-10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