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멜라'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의 상징적 이름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륜이라거나 바람을 피는 다른 여자를 의미하진 않는다. 레오에게 파멜라는 에미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의 애인이었다. 숱한 이메일을 에미랑 나누었지만 그는 보스턴으로 건너가 파멜라 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와 연인이 된다.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앞으로 파멜라와 함께 살지도 모를 날들을 생각한다. 레오는 에미랑 '우리 사귀자' 라고 한 적도 없고, '나는 사실 너를 사랑해' 라고 한 적도 없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애정하는 마음을 가득 안은채로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던 거다. 에미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 보스턴 체류 시절, 레오는 파멜라를 만났다. 레오는 에미에게 파멜라라는 애인이 있음을 알린다. 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들은 '그러면 안되는' 관계에 있지 않다. 레오는 싱글 파멜라도 싱글, 싱글인 남녀가 사귀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사귀어도 된다. 되는데,
어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응?, 되지, 되고말고, 마음대로 하렴, 막 이렇게 되나. 응 그래 너 애인 있어도 되지, 니 애인이지, 이렇게 에미도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응? 그게 그렇게 되냐 이말이다. 나랑 이렇게 이런 시간을 보내고 어떻게 파멜라랑 살지,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또 내가 거기에 끼어들 수는 없어? 그러니까, 응 그래,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니? 뭐 이런 거 물어보고 그럴 수는 있지만, 실상 내 마음은, 너는 내 남자인데 이새끼야..뭐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그걸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또 '레오가 파멜라랑 헤어지게 해주세요' 빌 수도 없다. 그건 좀 .. 비열하잖아. 누군가의 불행을 바란다는 건. 그렇지만, 그건 할 수 있다.
레오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를.
레오가, 레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레오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레오는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에미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 방법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고, 파멜라랑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실상 자기가 계속 함께 했었던 건 에미라는 걸 깨닫는다. 아주 늦게 깨달은 셈이다. 바보가 따로 없다. 에미는 처음부터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그 방향으로 가는데 레오는 계속 휘청거렸어. 세상 똥멍청이가 따로 없지.. 어쨌든, 내가 이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다시,
파멜라는 다른 여자의 상징이라는 거다. 다.른.여.자.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녀는 단지 현실속에서 나와는 다른 어쩌면 나보다 더 큰 매력을 가진 여자. 파멜라는 그런 상징의 이름인 것이다. 그런 파멜라에 대하여, 나는 어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와 나는 레오와 에미 얘기를 같이 읽었고, 그렇기 때문에 파멜라가 가진 상징에 대해 알고, 파멜라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가 있어. 브라보! 역시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야기 나눌 것이 많아. 게다가 내 의식의 흐름을 잘 따라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우리는 나의 찌질함에 대해 얘기하다가 파멜라 얘기까지 가게됐고, 나는 에미가 되어서, 레오 옆에 파멜라가 없었으면 좋겠고, 그렇지만 파멜라가 떠나버렸으니, 파멜라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주자, 파멜라에게는 누가 어울릴까? 이런 얘기를 길게 길게 나누었던 것이다!! 자, 그와 나눈 대화다.
우리는 결국 파멜라에게 멜라니를 붙여주었다. 파멜라가 모르는 게 함정.....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파멜라에게 멜라니라니. 아, 나 너무 현명한 것 같아. 아놀드, 숀, 죤, 붙이다가 앗!! 하고 멜라니 똭- !! 크-
내 귀에 캔디~♬
파멜라에게 멜라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지난주말에 불국사에 가고 있는데 우리집에 올 예정이었던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 이모 방에 있는 책갈피 가져가도 돼? 묻는 거였다.
-무슨 책갈피?
-이모 책에 붙이는 거
-아, 포스트잇 말하는 거구나!
-응.
-타미 그거 어디있는지 알어?
-응! 이모 화장대에!
-응, 가져가도 돼. 근데 타미야, 이모가 쓰고 어디 다른데 뒀을지도 모르니까 만약에 타미 갔는데 없으면 나중에 이모가 사줄게.
-응.
주말에 돌아와보니 내가 쓰는 포스트잇 플래그는 책장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화장대에 있지 않아 가져가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조카에게 전화했다.
-타미야, 너 못가져갔지?
-아니 가져갔는데?
-어디에서?
-화장대에서!
음. 아마 내가 평소 쓰던 것보다 큰 걸 가져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 여동생과 통화를 하는데, 여동생이 깔깔 웃으며, 쟤는 별 걸 다 자랑한다면서, 학원친구들 만났는데 포스트잇 플래그 보여주면서 "이거 우리 이모꺼야~" 이러면서 자랑을 했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또 사줄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이모꺼라면 다 좋아하는 듯. 우리 이모가 연필 사다줬어~ 하는 것도 엄청 자랑하고. 그냥 이모이모 자랑자랑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 애정이가 뿜뿜한다. 엊그제는 여동생에게 전화했는데 옆에서 타미가 누구냐고 묻는 거다. 제엄마랑 싸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엄마, (전화)누구야?
-우리 언니.
-우리 이모거든!
-우리 언니거든!
이러면서 싸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이 귀요미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너희들 모두의 것이란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날 가지렴 얘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다음주에 갈 때 포스트잇 사가야지.
파멜라가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보냈어요. 그사이에 내가 공간을
떠나 누구 곁에 있었을까요? 에미 당신 곁에 있었어요. 내가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에서는 누구랑 살았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살았어요. 언제나, 오로지 당신과 함께 였어요.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환상에 등장하는 하나의 얼굴 또한 당신
얼굴이었어요. - 일곱 번째 파도, p.334-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