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은, 싱글 혹은 과부 여성이 늘어났고 이들은 경제활동을 해야 했다. 12~13세기 도시의 수공업계나 상업계는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여성의 참여 없이는 수공업과 상업의 성장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여성에 대한 태도는 언제나 모순된 것이었다. -p.183~184



나는 어릴 때부터 돈을 벌고 싶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서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도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윤선생 영어교실에서 전화로 영업하는 일을 하기도 했고 베이직 청바지의 전단지 돌리는 일을 했다.


그 돈을 받아서 뭐했느냐 하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은 온 가족 먹을 햄버거를 사왔고, 그 외에는 그냥 용돈에 보태 썼다. 어린 만큼 오래 일하지도 못하고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이었지만 일한 후에 돈을 받는 건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대학때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까페에서 일하기도 했고 편의점 사장님의 와이프가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기도 했다. 편의점에 간혹 들르던 일식집 매니저는 하루는 나를 불러 돈까스를 주면서 자기네 집에서 일하면 어떻겠냐, 돈 더 주겠다, 나오기 미안하면 내가 잘 얘기해주겠다, 하는 말도 들었다. 편의점 슈퍼바이저는 편의점 사장님에게 나 돈도 올려주고 명함도 파주라고 했고, 또다른 슈퍼바이저는 손님이 천원짜리 사러 오면 만원짜리 파는 사람이라고 잘 데리고 있으라고 했다. 결국 편의점 사장은 내게 대학 졸업후 편의점을 맡아 하지 않겠냐 물었고,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너무 싫어했다. 


놀랍게도 학사 경고 받았던 나는 나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래봬도 첫 직장에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갔다. 물론 교수님 추천으로 면접 볼 기회를 얻은 거였고 면접 보면 뽑히는 건 뭐 나한텐 일도 아녀 ㅋㅋㅋ 면접만 보면 나는 뽑힌다. 어쩔 수가 음슴. 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게 직장생활 하다가 2,3개월 쉬고 지금 직장으로 들어와서 여태 일하고 있다. 나는 인생에서 돈 버는 걸 쉬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물론, 나같은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돈 버는거에 환장해서 돈 돈 거리면서 돈 버는 내게 '시집가라'는 말은 너무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내가 이렇게 돈 벌었는데, 그 돈 가지고 혼수를 장만하라고? 그러면 그 돈 다 어디가? 없어지잖아? 도대체 억울해서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했지만, 나는 남들도 왜 다 그렇게 사는지, 정말 억울하지 않은지 묻고 싶었다. 난 진짜 억울했거든. 내가 매일 출퇴근하면서 돈 버는데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세탁기 사고 냉장고 사고 티비 사고 남자랑 살라고? 나는 남자를 정말 좋아하는 여자사람이었지만 남자랑 살기는 싫었다. 내 인생에 남자랑 알콩달콩 사는 그런 그림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남자를 정말 좋아했지만, 돈은 더 좋아했다. 나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남자가 아니라 돈이었고, 나는 어떻게 하면 남자를 만나 사랑할까 하는 생각은, 남자를 좋아해도 한 적이 없고, 어떻게 하면 이걸 돈으로 연결시킬까 하는 생각은 수시로 했다. 어떻게 돈을 더 벌지? 어떻게 이걸 돈으로 연결시키지? 하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 한 거에 비해 돈을 버는 수단이래봤자 딸랑 직장생활 하나인데, 그건 왜 때문이냐면, 내가 이렇게하나 저렇게하나,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제일 마음 편해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고 앞으로 더 늙어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계속 벌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회사의 퇴사도 생각하고 있지만 퇴사 후에도 나는 어떻게든 돈을 벌것이다.  나는 돈을 버는게 너무 좋고 내가 번 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책도 사고 술도 마시고 조카들 맛있는 것도 사주는 게 너무 좋다. 행복하다. 역시 이래서 돈을 벌어야 해, 라는 생각을 수천번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싱글을 선택할 것이고, 다시 태어나도 돈을 버는 삶을 택할 것이다. 사실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없어서 등록금도 못내고 그런것도 아니었는데(다 엄마의 노력이었다) 나는 왜이렇게 돈을 좋아하는지, 돈 버는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내가 돈 버는 싱글 여성이라는 것이 진짜 자지러지게 좋다. 개만족이다. 물론, 앞으로 나를 책임지는 것도 나 밖에 없다는 것이  때로는 걱정스럽지만, 그런데 나는 또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 면접 보면 다 붙어버리는 인상에 돈을 벌겠다는 의욕 뿜뿜한 사람인데, 뭐, 왜. 난 다 잘 해낼 것이다. 난 세상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내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났다면 심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으면서, 마녀사냥 부분을 읽으면서 했다. 사실 돈 버는 싱글 여성을 미워하는 건 지금이라고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나는 그것은 경제력을 가진 자유로운 여성에 대한 질투와 시기 혹은 열등감과 분노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마녀사냥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거기에 더해 착취가 가능한 약한 대상으로 보였던 것이기도 하다. 


12-17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던 마녀사냥은 여성을 통제하고 종속시키려는 매커니즘의 하나였다. 농민이든 장인이든. 경제적 성적 독립성을 갖고 있는 여성은 등장하고 있던 부르주아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p.187



경제력과 독립성을 가진 여자가 세상에 굴복할 일이 뭐가 있담. 이미 천하무적인데. 나는 여자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남자를 옆에 두는 게 아니라 돈을 옆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독립성 가지고 있지 경제력 가지고 있지, 그러면 더 필요한 게 뭐야? 그러니 이런 여자가 뭐 어디 누구한테 벌벌 기기를 하겠나 아쉬운 소리를 하겠나. 그런 여자가 꼴보기 싫고 그런 여자로 하여금 말을 듣게 하려면 거대한 미움과 폭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혼자인 저 여자의 돈을 뺏자, 저 여자 기를 꺾자, 고문해버렸!!



마녀사냥이 전반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단순히 새로운 자본주의 세력에 직면하면서 쇠퇴한 구질서가 낳은 것이거나 시대를 초월한 남성 가학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여성의 반란에 대해 새로운 남성 지배 계급이 내놓은 반응으로 보인다. '쫓겨난' 가난한 여성, 즉, 생계수단과 기술을 박탈당한 이들은, 박탈한 이들에게 맞서 싸웠다. -p.188



지켜줄 사람이 없이 혼자이니 돈 빼앗기 좋았던 위치에 있었던 싱글 여자들. 그 여자들을 고문하면서 마녀라는 자백을 받아내려고 했지만, 마녀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부르짖어도 자백할 때까지 그들을 고문하고, 만약 거기서 힘들어서 내가 마녀 맞다, 라고 자백하면 또 마녀라서 죽이고. 그러니까 죽이려고 잡아갔고 자본을 축적하려고 잡아갔다. 혼자 돈을 버는 여자들을. 내가 이 때 태어났으면, 죽었겠구나. 돌 맞았겠구나.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겠구나. 내가 아주 꼴보기 싫었겠구나, 나를 멸하고 싶었겠구나. 나는 처형된 수십만 명의 마녀중 하나가 되었겠구나.




마녀로 처형된 이의 수는 수십만에서 천만까지 어림의 폭의 크다. 이런 처형은 관료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역사가들은 이 세기들 동안 화형을 당한 남녀의 숫자를 살피는 일에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아 왔다. 서독 페미니스트들은 마녀로 화형당한 이의 수가 나치 독일 아래서 사망한 유대인 수와 거의 같다고, 즉 6백만에 달한다는 연구를 내 놓는다. 역사학자 쇼르만(Gerhard Schormann)은 마녀를 죽이는 것은 '전쟁 때문에 일어난 일을 제외하면,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규모의 집단 살인'이라고 했다. (Der Spiegel, no, 43, 1984) -p.192



전쟁때문에 일어난 일을 제외하면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규모의 집단 살인이, 경제력 있는 싱글 여성들에게 행해졌다. 하- 진짜 좆같은 세상이었다. 좆같은 세상인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돈을 벌것이고 돈을 버는 나에 대해 글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돈을 버는 이야기를 쓰는 것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잘 못번다), 아주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것처럼, 내가, 여기에서, 돈을 벌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같은 처지의 여성들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경제력과 독립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여성들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니까. 아오- 진짜 킹콩처럼 가슴을 두드리고 싶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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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5-28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싱글로 벌어서 버는 거에 맞춰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시녀이야기>에서 여성 계좌부터 뺏는거, 진짜 열받았어요.

다락방 2024-05-28 12:33   좋아요 2 | URL
맞아요 건수하 님. 시녀이야기에서 경제력 먼저 뺏어버리죠.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시녀이야기, p.313>

미미 2024-05-28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일을 다시 하게 된 여러 이유 중에 다락방님의 이런 글이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돈 버는 거 너무 좋아요!! 특히 내가 번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것ㅋㅋㅋㅋㅋㅋ 저도 대학 다니기 전부터 전단지도 돌리고 맥도날드에서도 알바하고 결혼 전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일을 (다만 한 군데 오래 못 있고 여러 직장을 전전한 당시 전형적인 ENFP)했거든요.

결혼 후에는 고작 몇 년 일했었는데 그동안에 자존감이 뚝 떨어지더군요. 거기에는 자기 밥벌이를 스스로 하고 말고에서 비롯되는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작용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다락방님 글 읽고 결혼보다 일을 택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길!! 쿵쿵!! >.<

다락방 2024-05-28 12:36   좋아요 2 | URL
경제력이 자존감하고 이어지는 건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자존감이 높아지는 여성을 사회는 꼴보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저 여자들의 돈을 빼앗아서 우리 배를 불리고 저 여자들의 존재도 지워버리자! 그렇게 마녀사냥이 이루어진거겠죠. 저 때 태어났으면 나는 나 스스로 잘났다는 이유로 고문과 죽임을 당했겠구나 싶더라고요. 정말이지 여자에겐 너무 가혹한 세상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미미 님, 돈 열심히 벌고 즐겁고 씩씩하게 살아갑시다!!

햇살과함께 2024-05-2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사냥 부분 정말...빡치며 읽었던...
저는 돈 벌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벌어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다락방 2024-05-29 15:17   좋아요 1 | URL
어제는 마녀사냥 읽으면서 빡치고 오늘은 인도의 신부 지참금 살인을 보고 빡칩니다. 어휴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