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흥미로운 경험을 해왔는데, 내가 의견을 내놓으면 세상 사람들 중 일부가, 특히 남자들이, 내 의견은 틀렸고 자신들의 의견은 옳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내게 반응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의견은 망상이지만 자신들의 의견은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가끔 자신들이 사실뿐 아니라 나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의견을 사실로 착각하는 사람이 심지어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리는 아니다.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건 그가 세상에는 자신과 다른 경험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역시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 의식이라는 더없이 흥미롭고 심란한 현상은 남들의 머릿속에서도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p.240-241)


















'리베카 솔닛'의 s《The Mother Of All Questions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새해 읽기 시작한 첫 책이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시작한 책. 이 당시에 내 기분은 좋지 않았었는데, 리베카 솔닛의 지적인 문장들을 읽노라니 마음이 가만, 고요해지는 것이었다. 차분해지게 되었달까.


흥분에 대해 생각했다. 기쁨과 슬픔 혹은 분노,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 우리가 어떠한 말을 하는지 혹은 어떠한 글을 쓰는지 하는 것들을. 그럴 경우에 나는 후회할 말을 하거나 글을 쓴 적이 있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아,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말자, 거기에서 비켜나게 됐을 때, 그 때 하자'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정적이다'라는 말을 진짜 졸라 많이 들어가지고, 나 역시 그런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날까지 살아보고 숱한 남자들과 숱한 여자들을 만나보니까, 감정적인게 여자의 특징이 아니란 걸 확실히 알겠더라. 감정적인 건 모두 그랬고 이성적인것 역시 모두 그랬다. 다만, 타인의 일이냐 내 일이냐로 판가름나는 것이었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에는 '냉정해져라, 객관적이 되어라' 하고 한 발 물러서서 선비인 척 졸 조언(같은 잔소리)할 수 있지만, 자기 일이 되었을 때는 물어뜯어버리고 발악을 하는 거다. 특히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면 아주 남자들이 난리가 났다. '야, 논리 가져와서 대응해' 라고 말하는 그 말들과 글들에는, 논리나 이성이 있는게 아니라 '나 기분 나빠'만이 가득했다. 자기가 기분 나빠 빡치고 화나 가서 주절거리고서는, 자기들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이 논리로 무장한 줄 알더라. 논리 가져와는 개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가 난다는 것, 그래서 분노의 글을 쓴다는 것, 거기에는 가장 앞서 '감정'이 존재했다. 감정이 있는 게 나쁜 게 아니고, 그것이 틀린 게 아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감정이 작용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감정적이란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한다는 데 있었다. 인간에겐 감정이 있으니 그 감정이 작용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어쨌든, 나로 놓고보면, 나 역시 감정에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이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있을 때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가만 기다린다. 가만 기다리는 게 씅에 안찰때는, 그 시간이 지나가도록 도와줄 다른 것들을 찾는다. 그럴 때, 책이 도움이 된다. 특히나 지적인 사람의 글. 리베카 솔닛이 도움이 됐다. 나는 가만, 차분해질 수 있었다. 내 감정을 조금 가라앉혀야 했을 때, 리베카 솔닛의 지적인 글은 정말 큰 도움이 된거다. 새삼, 아, 똑똑한 여자들의 글은 얼마나 좋은가! 감탄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도.



나는 피임을 아주 잘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모나 고모가 되는 걸 좋아하지만 또한 고독을 사랑한다. 불행하고 불친절한 사람들 손에서 자랐기에, 그들의 양육방식을 되풀이하고 싶은 생각도, 내가 이따금 나를 낳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나에게 느낄지도 모르는 인간을 탄생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지구는 제1세계 인구를 지금보다 더 많이 부양할 수 없는 형편이고 미래는 몹시 불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쓰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내가 작업하는 방식대로라면 이것은 퍽 버거운 작업이다. 내가 아이를 절대로 갖지 말아야지 하고 원칙을 세운 건 아니었다. 상황이 달랐더라면 아이를 가졌을 수도 있고 만일 그랬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지금 좋은 것처럼. (p.17)



나 역시 내가 이모인 것에 큰 행복을 느낀다. 이모인 게 너무 좋아서, 내가 내 여동생을 이모로 만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다. 조카를 가진다는 게 이렇게 큰 기쁨인데, 내가 이 기쁨을 동생아, 너에게 주지 못했네, 하고 나 스스로 미안해하는 거다. 그런 한편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육아에 따른 그 모든것들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지 암담하다. 물론, 그일이 내게 실제로 닥친다면, 나는 어쩌면 최선을 다해 또 그 일을 잘해낼지도 모른다. 나처럼 좋은 날씨, 겨울의 냄새, 따뜻한 햇볕 같은 걸로도 충분히 행복할 이유를 찾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 과정에서 수만개의 기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행복할 이유를 잘도 찾아내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는 현재 지금은 지금으로 좋다. 지금의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베카 솔닛이 말한대로,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아마 거기에서는 또 거기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한 나에게 엄마는 '식구들 두고 어딜가냐'고 말하는 대신, '너 가고 싶은대로 가서 살아라, 너라면 어디서든 잘 살거다' 라고 해주셨더랬다. 엄마 말이 맞을 것이다.



행복에 대한 질문은 보통 우리가 행복한 삶이 어떤 모양인지를 안다고 가정한다. 행복은 종종 멋지고 사랑스러운 것들이-배우자, 자식, 사유재산, 에로틱한 경험-줄줄이 늘어선 결과로 묘사되지만, 잠깐만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저것들을 다 갖고도 여전히 비참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오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행복의 프리 사이즈 공식을 제공하지만, 그런 공식은 자주 그리고 철저히 실패한다. 그래도 세상은 우리에게 다시 그것을 떠안긴다. 그러고도 다시, 또다시. 그런 공식은 감옥이자 처벌이다. 그 상상력의 감옥은 세상이 제공한 처방을 정확하게 따랐는데도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처지에 많은 사람을 잡아 가둔다.
이 문제는 문학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 단 하나의 줄거리만을 들려준다. 그 줄거리를 좇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적잖은 수는 결국 나쁜 삶을 살게 되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행복한 결말을 가진 하나의 좋은 플롯만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삶이란 사실 우리 주변 사방에서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꽃을 피울 수-그리고 시들 수- 있다.
설령 그 익숙한 줄거리를 최선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라도 그 결과로 얻는 것이 행복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애정 어린 결혼 생활을 70년 동안 해왔다. 그녀는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의미 있고 긴 삶을 살았고, 자손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그녀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미래에 대한 근심이 워낙 깊은 나머지 울적한 세계관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행복 대신 얻은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우리에게는 더 나은 언어가 필요하다. 좋은 삶의 기준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더 중요하게 느겨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혹은 만족, 명예, 의미, 깊이, 몰입, 희망을 얻는 것. (p.20-21)



고미숙 쌤의 책,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를 몇 장 읽었다. 쌤의 사주에는 아이나 재물이 없고 공부만이 있다고 했다. 평생 공부하고 살거라고. 다른 사람이 공부하고 살 운명이라는데, 내가 왜 신나는지 모르겠다. 으앗, 공부하는 삶을 사는 여자사람이 여기에 있다! 하고 혼자 그 부분 읽는데 씐났다. 그러자 갑자기 사주를 보고 싶어졌다. 나도 사주보러 갔는데 쌤이 '락방 씨는 공부만 할 팔자예요' 라고 말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거다. 아하하하하. 나도 그렇게 공부만 하는 삶을 살고 싶어...그렇지만 그러기엔 내가 세상의 모든 속된 것들을 사랑하지. 돈, 술, 그리고 '어떤' 남자들... 내가 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본주의에 얼마나 철저히 물들어있는지를 깨달을 때마다 '아 나는 너무나 속되고 속되도다' 하고 자책하지만, 그래봤자 또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출근하는 직딩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 금요일에는 엄마랑 남동생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랑 와인을 먹었어. 엄마는 연신 '여기 비싸다 다신 오지 말자, 너무 비싸다' 하셨지만, '엄마, 내가 아니면 엄마가 여길 누구랑 와?' 했더니, 엄마가 '그건 그래' 라고 하셨다. 내가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사주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그것이 인생 최대 가치나 목표 같은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스테이크를 사주는 건, 내가 매일 아침 비루한 육신을 이끌고 출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닌가. 




지난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을 하는데, 지하철 표 끊는 곳에서 한 젊은 여자사람이 5-6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랑 함께 지하철을 타려고 표를 대고 개찰구를 지나고 있었다. 유모차도 끌고 있었다. 어휴, 저 외출 힘들겠구나, 했는데, 어린이대공원 가는 방향을 찾고 있더라. 혼자 서서 궁금해하고 있는데 내가 가서 그냥 이쪽이에요, 하고 방향을 알려줬다. 그랬더니 고맙다며 아이랑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데, 혼자서 유모차랑 아이를 다 케어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제가 아이손 잡고 갈까요' 물었더니, '아니예요, 얘는 무서워해서 제가 안고 가야해요' 하고는 아이를 번쩍 안아드는 거다. 에스컬레이터는 한 명만 서서 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고, 그냥 보기에도 아이를 안고 유모차까지 끌고 갈 순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유모차를 제가 가져갈게요' 하고는 유모차를 내가 끌고 에스컬레이터에 먼저 탔다. 그 분은 연신 뒤에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우릴 도와주시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유모차가 좀 커서..  밑에 있던 내가...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몰라 약간 당황했는데, 유모차에 깔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이렇게이렇게 해가지고 어쨌든 무사히 내려왔는데, 뒤에서 아이 어머님이 괜찮으시냐고 물으셨어 ㅋㅋㅋㅋㅋㅋ죄송해요 제가 경험이 미천하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다 내려오면서, '아니 혼자서 어떻게 여길 가려고 하셨어요' 물으니, '아이 내려놓고 다시 올라가서 가져오려고 했어요' 하시는 거다. 아이고 벅차기도 하지 ㅠㅠ 아이 엄마들 다니시기 넘나 힘들겠구먼 ㅠㅠ. 다 내려와서도 계속 "선생님 감사합니다" 인사하셨어. 힝 ㅠㅠ


그래도 여긴 에스컬레이터였지, 지난번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이었나, 거기서는 앞에 계단만 있는데 한 어머니가 아이손 붙잡고 유모차 한 손에 들고 올라가려 하시더라 ㅠㅠ. 유모차 제가 들어드릴게요, 하고 그 유모차 내가 들고 계단 올랐다. 아니, 이놈의 지하철역은 이렇게 계단 겁나 많으면 어떡하라는거야. 노인은 노인대로 힘들고 아이 엄마는 아이 엄마대로 힘들잖아 ㅠㅠ 이건 무슨 방법이 없나?



아무튼 나는 공부하는 삶을 살아야겠어...

리베카 솔닛을 읽고 또 고미숙을 읽으면서, 아, 나는 계속,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그 안에서 말을 내뱉기 보다는, 거기에서 비껴나있을 때, 그럴 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또한, 내 감정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리베카 솔닛을 읽으며 차분해지는 나를 보는 건, 정말 좋았어. 지적인 글을 읽는 건 정말 큰 기쁨이고요 ㅠㅠ






사랑은 끊임없는 타협, 끊임없는 대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절당하고 버려질 위험에 자신을 여는 것이다. 사랑은 얻을 순 있지만 강탈할 순 없다. 사랑은 내가 모조리 통제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상대에게도 권리와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협동하는 과정이고, 최선의 경우에 그 타협들이 즐거운 놀이가 되는 과정이다.(p.58)



위에 인용한 58쪽의 저 부분을 읽다가, 내가 그간 얼마나 사랑을 '잘'해왔었는지를 알게됐다. 나는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거절당하고 버려질 위험에 나를 열었다. 그랬었다.



그랬었고, 어쨌든,

자, 나는 지적인 글들을 읽는 사람이 될게.



우리는 스타크의 관점을 더 확장하여, 여성이 겪는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친밀한 파트너뿐 아니라 낯선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 정치인이나 국가가 가하는 공격까지-모두 강압적 통제로 봐도 좋을 것이다. 생식권에 대한 쉼 없는 공격은-낙태뿐 아니라 피임, 가족계획, 성교육에 대한 접근성까지 겨냥한다- 강압적 통제를 제도로 수행하려는 시도다. 폭력도 가끔 관여하지만, 강아브이 수단은 그밖에도 많다. 징벌적이고 여성의 권리를 부정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도 한 수단이다. 쉽게 눈치챌 수 있듯이, 태아를 품은 여성의 권리보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권리에 집중하는 척하는 버률은 사실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과 국가의 권리에 집중하는 법률이다. 역시 쉽게 눈치챌 수 있듯이, 피임과 낙태를 금지하려는 시도는 사실 여성의 자율성, 주체성, 섹스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 자기 몸을 통제할 권리, 어머니됨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짊어지지 않은 채 쾌락과 유대를 추구할 권리, 달리 말해 자기 방식대로 어머니됨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공격이다. (p,63)

이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에 따르면, 성폭행을 신고하는 여자들은 이타적 이유에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즉, 딴 사람에게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을 지지하기 위해 뒤이어 나설 때도 있다. 요컨대, 입을 여는 것은 종종 감정이입 행위다.
모리스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강간이 트라우마의 가장 흔하고 심각한 형태인데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연구는 대부분 전쟁 트라우마와 퇴역 군인을 대상으로 수행된다. PTST 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남자들을 연구해서 얻은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고통을 겪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침묵도 존재하고, 그 치묵이 여성을 더욱 침묵 시킨다는 것이다. 침묵은 침묵 위에 건설되고, 침묵의 도시는 이야기들과 전쟁을 벌인다. (P.69-70)

학대와 괴롭힘에 관한 한가지 심란한 특징은 사람들이 그런 범죄가 아니라 범죄에 대한 증언을 배신 행위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런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학대자는 종종 피학대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특권, 보호가 상호적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특권을 누린다. 제3자들은 종종 피해자를 가해자의 경력과 가정을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묘사함으로써 그런 상황을 강제한다. 폭행범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는 듯이. (p.74)

많은 공동체에는 그런 여자들이 갈 곳, 비밀 피난처, 여성 쉼터가 있다. 파트너의 폭력 때문에 제 집을 잃고 말 그대로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은 여자들이 그 속으로 사라진다. 많은 여자가 제 나라에서 난민으로 산다. 제 집과 삶에서 사라져서 비밀스런 장소에서 비밀스런 삶을 새로 얻는다. "매 맞는 여성 쉼터"라고 불렸던 은신처들은 1970년대부터 생겨났다. 지금은 북미와 영국에 수천곳이 있지만, 모든 가정폭력 피해자를 수용하지는 못한다. (p.78)

헤밍웨이가 F.스콧 피츠제럴드의 성기 크기에 대해서 했던 쓰레기 같은 소리는 딱할 뿐 아니라 그의 내면을 너무 투명하게 보여준다.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보다 훨신 성공한 작가였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보다 훨씬 낫다. 레고 블럭 같은 헤밍웨이의 문장에 비해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실크처럼 나긋하며, 피츠제럴드는 남성 인물뿐 아니라 데이지 뷰캐넌이나 니콜 드라이버 같은 여성인물에게도 자유자재로 감정이입할 줄 안다(『밤은 부드러워』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근친상간과 아동학대가 미치는 장지걱 영향을 탐구한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p.234-235)

만화 『딜버트』의 작가 스콧 애덤스Scott Adams 는 최근 우리가 가모장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섹스에 대한 접근성을 여자가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상대가 당신과 섹스하기를 원하지 않는한 당신은 그와 섹스할 수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 젠더 대명사를 빼고 말해보면 완벽하게 합리적인 소리로 들린다. 상대가 당신과 자기 샌드위치를 나눠 먹기를 원하지 않는한 당신은 그의 샌드위치를 먹을 수 없다. 이건 당연한 소리고, 억압이 아니다. 이런 건 다들 유치원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p.251)

(영화 《자이언트》에서)허드슨이 관계의 충격을 감당하는 모습을-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할 것 같고,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사랑하는 사람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는 모습을-지켜보노라면 절로 숙연해진다. 그리고 그는 그 연기를 잘해낸다. 크고 매끄러운 석판 같은 그 얼굴에 복잡한 감정들이 스치는 모습은 구름과 비바람이 초원을 스치는 모습 같다. "내가 당신과 결혼할 때 거만하고 불쾌한 여자였다는 건 당신도 알았죠." 레슬리는 또 한번 규칙을 깨고 남편과 그 동무들, 즉 텍사스 평원의 유력 브로커들과 선거 해결사들의 정치 토론에 참견한 다음 날 아침에 이렇게 말한다. 관계를 맺는 것, 결혼,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는 많고많으며, 사랑에서 빠져 나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도 얼마간 있지만, 사랑을 오랜 세월 지속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은 다투고, 화해하고, 참고, 적응하고, 자식을 낳는다. (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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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8-01-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이고 다정하며 친절하신 다락방님 사랑합니다 ^^ 다락방님의 공부하는 삶을 응원해요!

다락방 2018-01-08 14:52   좋아요 0 | URL
아웅 넘나 좋으네요.
사랑해주셔서, 사랑한다고 표현해주셔서 넘나 감사해요.
jsshin님 진짜 넘나 좋은분이십니다. ㅋㅋㅋㅋㅋ
우리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삶을 살아요! >.<

비연 2018-01-08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끊임없는 타협, 끊임없는 대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절당하고 버려질 위험에 자신을 여는 것이다. 사랑은 얻을 순 있지만 강탈할 순 없다. 사랑은 내가 모조리 통제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상대에게도 권리와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협동하는 과정이고, 최선의 경우에 그 타협들이 즐거운 놀이가 되는 과정이다.(p.58) ... 이 부분 저도 밑줄 쫘악... 그어 놓았네요 ^^

다락방 2018-01-08 14:53   좋아요 0 | URL
네, 사랑은 그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지속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면서 그걸 알게 됐죠. 사랑은 용기이며 실천인거예요. 우리가 이 책을 같이 읽고 또 같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니, 좋으네요, 비연님!
:)

나와같다면 2018-01-08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참 따뜻한 분인것 같아요

다락방 2018-01-08 23:44   좋아요 1 | URL
저는 쿨싴한 여자입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18-01-09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모차 끄는 여성분 도와주신 다락방님께 저도 감사하네요~ 인도는 울퉁불퉁하고 좁지(자전거도로로 다니고 싶은데 위험하죠..), 어디 좀 들어가보려 하면 턱이 걸리고 문은 무겁지, 엘레베이터 찾기는 힘들지, 백화점 유모차전용 엘레베이터에는 유모차 없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 유모차 끌고 화장실 가려면 장애인화장실 찾아가야 하지.. 휴.. 그렇습니다.

다락방 2018-01-10 08:11   좋아요 0 | URL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려면 아이를 낳아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대중교통 타고 다니는 아이엄마들 볼 때마다 너무 힘들어 보여요. 아이들이 진짜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데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잖아요. 제가 조카들이 있고 또 조카들과 외출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언제부턴가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아기 데리고 외출하는 엄마들이 말예요. ㅠㅠ
 

단편소설을 썼다. 한 여자가 나오고 한 남자가 나오는 글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고 오해를 풀어내고 있었다. 볕이 좋았고,빛이 좋았고, 빨래가 말라 남자는 개고 있었다. 그들은 오해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자도, 남자도 그랬다. 제목을 정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내려오다가, 마지막 말을 썼고, 마지막 말을 쓰면서, 제목은 <좋은 나라>로 해야지, 생각했다. 글을 다 썼고 제목을 쓰고 저장을 누르기 전에,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꿈이었다. 꿈에서 쓴 것이었다. 눈을 뜨고 너무 아쉬웠다. 현실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떤 이야기인지 잘은 기억안나지만, 내 소설이 그려내는 분위기는 눈에 선했다. 그 얘기를 내가 진짜로 쓴 거였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아쉬웠다. 잘 쓴 소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하나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아쉬웠다.


내가 이런 꿈을 꾼 건, 토요일에 영화 [패터슨]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은 틈틈이 노트에다가 시를 쓴다. 자신의 아내가 시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성냥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그는 운전일을 시작하기 전에 시를 쓰고, 집에서도 시를 쓰고, 점심을 먹고 나서도 시를 쓴다. 늘 노트와 펜을 가지고다니며 계속 시를 쓴다. 아내는 그런 그에게 '당신의 시는 매우 아름다우니 제발 부탁인데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들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일은 없다며 계속 미룬다. 그는 출판도 하지 않고 복사본도 만들지 않고, 단조로운 일상들 속에 틈틈이 계속 시를 쓴다. 늘 비슷한 시간대에 눈을 뜨고,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의 벗은 어깨에 입을 맞추고-때로는 입에, 때로는 등에- 씨리얼을 먹고 출근을 하고 운전 시작전 시를 쓰고, 운전을 하고, 아내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퇴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아내가 만든 저녁을 먹고, 함께 사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늘 가는 펍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고, 그렇게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그리고 또 비슷한 시간에 깨고... 


그런 시간 틈틈이 아내는 집에서 자신의 옷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꾸고, 커텐의 모양을 그리고,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남편에게 줄 저녁을 만들고, 컨트리 뮤직을 배우고 싶어서 기타를 주문하고, 주말 장터에 내다 팔 컵케익을 만들고, 배송온 기타로 연주와 노래를 연습하고, 남편의 시를 응원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입을 맞춘다.






이 일상들은 매일 반복되고 그래서 단조롭게 느껴진다. 영화가 처음에는 좀 졸립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특별할 것도 없어서 지루하다. 그러나 월요일이 화요일이 되고 수요일이 되고 그 일상이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그 일상은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같지 않은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예술을 곳곳에서 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빨래방에서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데도 랩을 연습하는 것처럼, 엄마랑 외출한 소녀가 시를 쓰는 것처럼, 아내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예술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패터슨에게 시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랩이 되고, 누군가에겐 기타가 되는 것들.


패터슨은 일터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고 조용히 퇴근한다. 매일 반복되는 퇴근길을 화면상으로 보던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좀 더 잘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내가 너무 내가 되어서 일상을 살아서, 일터에서도 나는 너무 나만의 기준이 있어서, 그래서 내가 그토록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닐까.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또다른 나와 분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 거다. 패터슨이 일을 할 때 그러하고 퇴근할 때 그러하는 것처럼, 내가 일터에서 조금 더 무심해져도 좋지 않을까. 내가 무심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무심해진다면, 그렇다면 나도 지금보다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패터슨은 아내와 사이가 좋다.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는 남편이 쓰는 시를 응원한다. 그를 격려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였다. 패터슨은 아내의 부탁에 '주말에 시를 복사하겠다' 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복사하지 않았고, 그의 시가 가득 적힌 노트를 개가 다 찢어놓는다. 이 일에 아내는 안타까워하고 패터슨을 위로한다. 그녀는 그동안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말했었지만, 이렇게 그가 그의 정성과 영혼이 들어간 시노트를 잃었음에도 '거봐, 내가 뭐랬어, 복사본을 만들어 두라고 했잖아!'라는 식의 원망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한 그의 앞에 다정하게 앉아서 혼자 있고 싶은지 물어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준다. 그들의 일상이 이렇게 서로가 하는 행위나 순간의 기분에 서로 소중히 대해줘서, 그래서 내가 꿈에서 단편 소설을 썼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패터슨이 노트를 복사하기 전에 잃은 것처럼, 나 역시 등록전에 잠에서 깨버린 걸지도. 내가 진짜 쓰지 않은 소설에 대해 등록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데, 노트를 가득 채운 패터슨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책을 읽었다.
















베켓 형사는 파트너인 엘리자베스를 소중히 생각하지만, 아내가 가장 소중하다. 그에겐 너무나 소중한 아내다. 



"괜찮은 거야?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물이 뜨거워서 그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

"샤워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의 목소리에 캐롤이 멈칫했다. 베켓은 바로 사과했다. "너무 힘들었던 하루여서 그래. 미안해. 화낼 생각은 아니었어.

"괜찮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침 식사를 준비해줄까?"

"10분 있다 먹을게."

"난 주방에 가 있을게."

베켓은 샤워를 끝냈다. 면도를 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거울로 얼굴 표정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런 뒤에 주방으로 가서 아내를 찾았다. 캐롤은 아름다웠다. 지난달보다 살이 약간 찌고, 주름이 조금 더 생겼으며, 지쳐 보였지만 말이다. 베켓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나한테 왔을까?" (p.402)



베켓이 얼마나 아내 캐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에게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왔는지 감사하는 부분. 그러나, 나에게 어떻게 이런 사람이 왔을까 감탄하는 베켓은 어떤 사람이었나. 순간순간 어떤 결정들을 내렸나.


사랑은 뭘까. 일상을 함께 하는데서 서로 위로를 받고 또 격려를 해줄 수 있다는 것, 함께 침대에 눕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당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고 말을 하는 것들은 그 순간순간 얼마나 소중한가. 내가 일을 하러 가고 또 그 일터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면, 그래서 해서는 안될짓을 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그래도 계속해서 사랑이라 불러야 하는걸까. 


어디에서 본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그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우리는 상대로 인해서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서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좋은 면들이 상대로 인해 발현되어야 하고,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 당신 역시 그렇게 되는 것.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내게 왔을까'를 온전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아, 구원의 길을 읽었더니 너무 힘들다.

지루할지도 모를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무리없이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구원의 길 때문에 너무 우울해 ㅠㅠ

책장 앞에서 뭔가 웃을 수 있는 다음 책을 골라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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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07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우울한 거 맞아요. 산뜻하고 샤방한 책은 아니라는... 좀 힘든... 웃을 수 있는 다음 책 기대요!

다락방 2018-01-07 20:57   좋아요 1 | URL
비연님이 이 책에 대해 쓰신 페이퍼를 이 책을 읽는 중에 읽었어요.
어휴..
기분이 너무 바닥이 돼요.

그나저나 우리 새해 읽는 책이 자꾸 겹쳐요. 리베카 솔닛, 존 하트!

비연 2018-01-07 22:03   좋아요 0 | URL
새해 읽은 책이 락방님과 겹친다니 .. 넘 좋아요 우힛.

hellas 2018-01-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우울한가요? 다음책으로 선정해뒀는데...

다락방 2018-01-08 08:32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이에요, 헬라스님. 여자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약한자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진 사람이고,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십니다. 결말을 읽기전까지 너무 우울하고 한없이 다운돼요. 그렇지만 읽는게 더 좋을 책입니다.

비공개 2018-01-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단편소설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저도 패터슨 봤는데.. 보다가 졸았는데.. ㅎ 나중에 트위터에서 패터슨에 관한 내용을 읽어보다가 패터슨이 파병군인이었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책상위에 해병이었을 때 사진이랑 훈장같은거 올려져있던 컷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PTSD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뉴저지는 미국에서도 폭력으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중 하나라고 해요. 그래서 이 단조롭다 못해 지루한 일상과 시를 쓰는 행위가 더욱 의미를 갖는 것 같다는 리뷰를 읽었는데 인상적이었네요.

다락방 2018-01-08 13: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그래도 영화에서 계속 사진 보여주길래, 저 사진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뭘까, 뭘까 했거든요.
그게 해병이었을 때의 사진과 훈장이군요.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그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야말로 일상을 유지해나가는 가장 단단한 받침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월요일을, 화요일을, 수요일을 맞을 수 있는 게아닌가 싶더라고요. 일상이 무너지는거야말로 너무 큰일이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그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나 좋더라고요.

다만, 그 부부의 삶이 다 좋긴한데, 약간 제 취향과 벗어난 것은...술을 안마시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저녁 메뉴도 너무 간소해... 좀 .. 과식과 과음을 한다면 더 좋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하하하핫

clavis 2018-01-1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동네책방에 다녀와서 헬페미가 되기 위한 첫째 책을 샀는데 오늘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인용하라고 이 문장을 만난 것 같아요 ˝우리에게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ㅡ카프카˝

다락방 2018-01-11 16:41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일상에 대해 그 중요성을 다시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클래비스님.
우리, 우리가 가진 일상을 견고하게 유지합시다.
틈틈이 좋은 친구들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면서 이렇듯 일상을 유지해요.
클래비스님, 일상에 알라딘이 있으니 좋지 않습니까!

clavis 2018-01-1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히히. 아직 이거 못읽고 있는데, 자꾸 다른 책 읽고 싶어져서 큰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상을 내리기로 했다. 만약 이 책을 완독한다면, 나는 내게 상을 줄것이야. 어떤 걸로? 이 책으로!!

















작년에도 이 책 좋다고 친구 f 에게도 들었고 y 에게도 들었는데, 며칠전 ㅅ 님 서재에서 또 본거다. 그래서 으음, 이걸 읽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레베카 솔닛 책에서 이 책이 또 나오는 거다!! 맙소사! 이건 읽어야 해!! 하는수없이, 이것을 읽겠다!! 라고 결심했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응?) 읽고 싶은 거 다 읽고 사나. 게다가 나는 사두고 안읽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어요. 홍홍. 형돈이가 랩을 한다 홍홍홍~


그래서 2018년에는 책을 안사기로 결심한 바, 있는 책만 읽기로 결심한 바, 사지 않겠어!! 다만, 제2의성 2권을 완독하는 날이면, 이 나폴리 시리즈를 내가 나한테 사주겠다!!! 내가 나한테 잘했다고 쓰담쓰담하며 선물하겠어!! 움화화핫. 기다려라, 나폴리, 보부아르 다 읽고 나가신다!! 언제?



알 수 음슴.


(시무룩)



Orz


2018년 되고나서 지금까지 아직 책을 한 권도 사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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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1-03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을 먼저 가불로 받아서 읽어버려요....ㅋㅋㅋ

근데 난 벌써 이틀 동안 네 권, 그것도 두 권씩 나눠서 샀어요!

다락방 2018-01-03 14:52   좋아요 0 | URL
안돼욧!!!
이미 신용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사버렸는데 가불로 책까지 사라뇨!! 안됩니닷!! ㅋㅋㅋㅋㅋ
이를 악물고 버텨보겠어욧. 뽜샤-

psyche 2018-01-03 16:11   좋아요 0 | URL
저 위 유부만두님의 조언이 너무 좋은데요? 상을 가불로 먼저 받아서 읽는거요 ㅎㅎ

다락방 2018-01-04 09:44   좋아요 0 | URL
아 글쎄 안된다고욧!!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분들이 왜 자꾸 나를 흔들흔들 유혹하신담? ㅋㅋㅋㅋㅋ

moonnight 2018-01-0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서 나폴리 4부작 얘기 들리는데 귀막고 있어요ㅜㅜ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ㅠㅠ 조만간 음주 후 주문할 것 같아요-_-

다락방 2018-01-03 14:55   좋아요 0 | URL
저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겠어요. 2018년 첫구매를 최대한 뒤로, 그래서 2019년으로 미뤄버리겠어욧! 아하하하하.

비공개 2018-01-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락방님도 저와 같은 결심을 하셨군요!! 하지만 저도 나폴리 4부작과 오정희 컬렉션을 장바구니에 단단히 매어두었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18-01-03 15:17   좋아요 0 | URL
우리 누가누가 더 늦게사나 내기내기 해보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8-01-0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년에는 책을 안사기로 결심한 .... 이 대목에서 으악. 락방님. 저를 버리고 이런 결심을. ㅜ
전.. 안 사기는 힘들것 같아서 (이미 어제 샀...;;;;) 한달에 2회로 제한 두던 걸 1회로 제한 걸까 하고 있슴다...
그나저나 저 나폴리 4부작. 보관함에 담아두고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평들이 좋아서... 팔랑귀 팔락팔락...

다락방 2018-01-04 08:50   좋아요 0 | URL
비연님은 이미 사셨군요. 음화화홧. 아직 안산 저는 승리자! (응?)
나폴리 4부작은 너무 다들 좋다고들 하셔가지고 제가 미쳐버리겠네요. 아하하하하.
팔랑귀 팔락팔락 저도 그러고 있어요.
아마도.. 올해... 사게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제2의성을 완독하지 않는다면, 제게 그런 상을 내리지 않겠어욧! (단호)

잠자냥 2018-01-0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까지 새해 들어서 책 안 사기 프로젝트; 성공하고 있습니다만..............
다락방 님 이 포스팅 보고 저 책을 보관함에 담아버렸.......
근데 저는 오늘 그만..... 현대문학 단편선 <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을 장바구니에 담아버렸군요.... -_-;

그래도 굿즈에 낚여서 책을 사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작심 삼일 성공 중;)

다락방 2018-01-04 08:51   좋아요 0 | URL
1월4일 오전 08:50 현재...
2018년 책 안사기 프로젝트 저도 성공중입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장바구니에 넣고 있긴한데 아직 결제는 안했습니다. 결제할 날이 오긴 오겠죠. 안오진 않을겁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미루고 미루고 미루겠습니다.
다 읽지도 못하면서 왜이렇게 사제끼는걸까요? ㅠㅠ 훌쩍 ㅠㅠ

책읽는나무 2018-01-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3일이고 내일은 4일이니 내일 바로 결재하시면 되시겠네요ㅋㅋ
저 책 저도 예전 하이드님 서재에선가? 책 재밌었단 페이퍼를 본 듯합니다^^

무튼,
2018년에도 화목한 가정 두루 평안하시고,
늘 다락방님의 행복한 독서생활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다락방 2018-01-04 09:45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 책에 대해서라면 누구든 다 좋다고 칭찬을 해서, 게다가 밑에 시이소오님처럼 ‘니가 너무 좋아할거다‘ 이렇게들 말씀해주셔서 제가 진짜 피할 수 없을 것 같네요. ㅎㅎ 그렇지만 미루고 또 미루어 결국은 2019년으로(!!) 미뤄보겠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설득력 없죠...)

2018년에도 알라딘 서재에서 자주 뵈어요, 책나무님!

시이소오 2018-01-03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리뷰를 꼭 써주셨으면 하는 책입니다. 다락방님이 너무너무 좋아하실거라 장담합니다. 아니면 장지질께요^^

다락방 2018-01-04 09:46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친구도 이 책 읽고 꼭 읽으라고 저한테 문자를 보내더라고요? 도대체 왜들 그러시는거에욧!! 뽐뿌질 하지 마시라구욧!!!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8-01-0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2부까지 읽었는데 재밌어요!! 3,4부도 어서 읽고 싶어요~~ 상을 가불로 라니 유부만두님 말씀에 무릎을 쳤네요 ㅋㅋㅋ

다락방 2018-01-04 09:47   좋아요 0 | URL
안된다고요, 글쎄!! 안돼요, 안돼!! ㅋㅋㅋㅋ 상을 가불로라니, 안돼욧. 저는 정말 굳건하게 결심합니다. 제2의성 을 완독하면, 그때, 바로 그때 제게 저 책을 허락하겠어욧!!!!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1-0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제2의 성>을 그렇게 놔두고는 오늘 나폴리 시리즈 1권을 턱하니~~ ㅋㅋㅋㅋ
그나저나 나도 레베카 솔닛 책 읽었는데, 이책 이야기가 나온단 말이예요?
난 뭐를 읽은....건가요?

다락방 2018-01-04 09:59   좋아요 0 | URL
두 번 언급됐다고 기억하는데 한 번 밖에 못찾았어요. 236페이지에서 잠깐 작가 이름 나오고요, 그 전에도 한 번 본 것 같거든요. 지금 휘리릭 넘기는데 그건 못찾겠네요. 어쨌든 ‘걸작‘을 쓴다고 되어있어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작가의 이름을 요즘에 자꾸 언급되어 봐서 아니까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알았던 것 같아요. 작년에 읽었다면 저도 몰랐을겁니다. 단발님은 저보다 훨씬 일찍 읽으셨잖아요. ㅎㅎㅎ

벌써 나폴리 시리즈 시작하셨다니. 아아, 역시 언제나 저보다 빠르신 분 ㅠㅠ
화이팅!!

2018-01-04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하하책이좋아 2018-01-0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 좋아요 ㅠㅠㅠㅠㅠ 2019년에 읽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ㅠㅠㅠ

다락방 2018-01-05 10:12   좋아요 0 | URL
그..그...그래요? (동공지진)

chaeg 2018-01-0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나폴리 4부작을 결제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8-01-05 10:13   좋아요 1 | URL
미룰겁니다.
미룰거예요.
그러나..곧......... 아아, 지고말았다, 지르고 말았다...라는 글을.... 올리게.......될것같죠? 으하하하핫

sinhye2 2018-01-1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리4부작 리뷰 보다가 우연히 다락방님 글 보고 너무 잼있으셔서 글남겨요 저도 사고 안읽은 책 많은데^^ 결심하신 거 꼭 이루 시길 바래요~ 그 때 나폴리 책 보셔서 리뷰 써주세요~^^

다락방 2018-01-12 13:52   좋아요 0 | URL
에헤헤헷 저 제2의성 안읽었는데 나폴리 1부는 벌써 사버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머그컵 받느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란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게요















내가 읽은 건 이 책의 구판이다. 

이 새로운 표지가 더 예쁘네..


어쨌든.



'앤 타일러'는 이 책에서 중년 부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좋았던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이 그들을 부부로 만들었으며, 그리고 지금도 마찬자기로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서로를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가족을 꾸려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망가져버렸다는 걸 깨닫는 장면도 나온다.


아내인 '매기'는 내가 너무 싫어하는 캐릭터다. 실제 주변에서도 너무나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캐릭터인데, 일단 그녀는 착하다. 착하고,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한다. 혹여라도 타인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르고, 어떻게든 나서서 도와주고자 한다. 그러니 실제로 어려움에 처한 타인에게는 그녀가 친절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 '좋은' 해결책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자주,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말들을 전하곤 한다. 이를테면,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에게 찾아가서, '그는 너를 그리워하고 있고 너의 냄새라도 맡으려고 니가 두고간 비눗갑을 책상 서랍에 보관해두고 있다'고 하는 거다. 며느리는 그 말에 감동해서 어떤 가능성을 품고 그 얘기를 들은 그 날, 시댁에 저녁을 먹기 위해 가는데, 헤어진 전남편은 비눗갑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맙소사, 피오나. 그렇다면 지금쯤 버렸겠지. 그렇지만 그게 당신한테 그렇게 중요하다면, 내가 기꺼이 하나……."

"하지만 당신은 그걸 간직하고 있댔어. 그 비누 냄새가 내 냄새랑 비슷하다구! 날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는 코에다 그 비눗갑을 갖다 대고는 했다고 그랬단 말이야!" (p.453)



그러니까 매사가 이런 식이다. 매기는 자신의 아들 '제시'가 '피오나'와 죽고 못사는 사이이며 지금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헤어진 후에 집에 그냥 끊긴 전화가 왔었는데, 그건 당연히 피오나가 한거라 생각하고 제시에게 말한다. '피오나가 전화했다'고. 그 말에 제시는 피오나에게 다시 전화했서 어쩐 일로 전화했냐 묻지만, 피오나는 자기는 전화한 적이 없다 말한다. 애초에 비눗갑 얘기를 하러 간 날, 그 날도 충동적으로 피오나를 찾아간건데, 자신이 차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방송에서 한 여자가 전화를 걸어, '예전엔 사랑때문에 결혼했지만 이젠 생활의 안정을 위해 재혼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 여자가 당연히 피오나일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피오나와 제시를 다시 연결해주고 싶어하는 거다. 막상 피오나는 그 라디오방송을 듣지도 않는다는데도, 자꾸만 '네가 그랬잖니' 라고 말하면서 그걸 자꾸만 사실로 만들려는 거다. 아니라는데도... 매기의 이런 성향을 알기 때문에 피오나는 매기에게 '그가 정말 그렇게, 그런 식으로 말했냐'고 재차 확인하는데, 그때마다 매기는 '꼭 그런식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런 뜻임에 틀림없다'고 자꾸만... 어휴.. 



그녀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불편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꾸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든 도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너무 자기만의 기준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끼어들지 않아도 제 앞가림 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그녀는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건 얼핏 보면 도움을 주는 것 같고 선한 것 같지만, 상대가 자기 스스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참.. 내가 오지라퍼여서 딱히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매기는 세상 제일 가는 오지라퍼인거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고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 틀림없다고 확신하며 다른 이의 삶에 끼어드는 모습이... 어휴..... 어찌나 피곤하던지..... 도움은, 내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주는 게 도움이지, 갑자기 끼어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도움이 아닌데... 읽으면서 오지라퍼가 되지는 말자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어 더 좋은 방향을 내가 가리키지는 말자고 새삼 결심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에게 좋은 걸 자기가 판단할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으니까. 



물론 피오나와 제시가 순전히 매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십대 시절,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임신을 했고 그걸 지우겠다고 하는데, '여자친구가 아이를 지우지 못하게 엄마가 좀 말려줘요'라고 말한 제시는, 그 우유부단함과 철없음이 본인의 것이었다. 그는 한 직장에 일년 이상 다니지도 못해 생활력도 없었는데, 그런 사람이 무슨 남편과 아빠로 살아가려고 했단 말인가. 그런 제시와 함께 사는 게 피곤한 일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닌가. 피오나와 제시가 만약 서로를 정말로 원했다면, 매기의 도움 없이도 그들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매기가 자꾸 끼어든 건 사실이지만, 매기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갈라서게된 건 아니다. 그들이 갈라선 건, 제시와 매기, 순전히 둘 만의 일인 것이다. 



매기의 남편 아이러는 아이고야...부양의 의무를 너무나 지고 있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픈 누나들과 아버지를 부양해야 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등록금을 내놓은 상태였는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해서 등록을 반 년 미루고 일 년 미루고...하다가 하는수없이 아버지가 하던 사진액자 상점을 물려받고 말았다. 그 가게를 맡아서 하는 것도 아이러의 일이지만, 가족들을 대신해 세상을 대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하지 못할거라는 것,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아버지 생각이었지만, 아이러는 '나는 매기랑 결혼할거야' 하고는, 결혼을 한다. 매기는 특유의 오지랖과 불행한 사람들을 세상에 섞여들게 하기 위해 시누이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데, 아, 삶이 너무 고단하게 느껴졌다. 매기의 삶도, 아이러의 삶도. 어쨌든 그들에게도 분명 설레는 시절이 있었고, 매기는 당시에 사귀는 남자가 있었음에도 아이러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살다보니 매기는 아이러가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인데도 사랑스럽게 보아주지 못하고 자꾸만 비난을 한다. 아이러 역시 매기의 단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다른 점들 때문에 그들은 함께산지 28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다툰다. 다투고 토라지고 실망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또 금세 자연스레 화해가 된다. 아마도 이게 함께 오래 살아온 힘이 아닐까 싶다.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에서도 함께 오래 산 부부의 어떤 힘 같은 게 느껴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이 모든 일들을 겪어낸 그들 부부가, 침대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장면이, 결국 함께산다는 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아이러, 우리는 나머지 여생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가죠?"

그녀가 카드 더미 하나를 무너뜨렸지만, 그는 이해심 많게도 그 카드들을 똑바로 놓지 않았다. 그 대신 한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자, 이리 와, 여보."

그는 매기를 자기 옆에다 앉혔다. 그녀를 꼭 안은 채 스페이드 네 개짜리를 다섯 개짜리 쪽으로 옮겼다. 매기는 머리를 남편의 가슴에 기대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러가 게임 중 재미있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카드를 이리저리 옮겨도 무방한 처음의 간단한 단계를 지나 지금은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져 이제야말로 정말 기술다운 기술과 판단력을 보여주어야 할 대였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일러이다 다시 서서히 평온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얼굴을 들어 아이러의 광대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침대 위의 자기 자리로 갔다. 내일 그들은 긴 자동차 여행을 해야 하고, 그녀는 출발하기 전에 잠을 푹 자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478-479)




그들은 서로 익숙해졌고, 남편이 혼자 즐기는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아내가 알고 있다. 남편은 혼자 즐기는 와중에도 아내를 안고, 아내는 이제 자러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러 간다. 이런 일상속에 녹아드는 자연스러움이 결국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떤 일들이 그들에게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겠지만, 그래도 밤에 이렇게 침대에서 서로 안아줄 수 있다면, 산다는 게 자못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산다는 게 자못 만족스럽게 느껴진다는 문구만 생각하노라면, 나는 《밀레니엄》의 이 구절이 생각난다.





한밤중에 잠이 깬 그녀는 침대 위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그가 열심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를 한동안 바라다보았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그녀에게도 묘한 느낌이 찾아왔다. 산다는 것이 자못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구판, 1권, p.290)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한 칠드런 액트도 한 번 짚고 넘어가자.



몸을 뒤척이자 축축하고 차가운 베개가 얼굴에 닿았다.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피오나는 베개를 옆으로 치우고 다른 베개 쪽으로 손을 뻗다가, 등 뒤 옆자리에 길게 누운 따뜻한 몸이 손에 닿자 흠칫 놀랐다. 피오나는 돌아누웠다. 남편이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모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에 그의 얼굴이 간신히 보였다.

잭이 말했다. "당신 자는 거 보고 있었어."

얼마 뒤, 한참이 지난 뒤, 그녀가 속삭였다. "고마워."

그리고 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잭은 아직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라고 그가 자신을 타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물론 그럴 거야."

그들은 어둑한 방에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침실 밖에서 빗물에 씻긴 거대한 도시가 부드러운 밤의 리듬 속으로 가라앉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불안하게 제자리를 찾아갈 때, 피오나는 남편에게 조용하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다정한 그 소년이 지녔던 삶의 열정과 그의 죽음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 (p.289)





어젯밤 《종이시계》를 다 읽고나서, 그 다음책은 뭐로 할까 하다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꺼내 두었었다. 그런데 출근길에 가져오자니 진짜 세상 두꺼워... 아, 다른 거 읽자, 하고 내 방 책장을 둘러보다가, 퍼뜩, 시이소오님이 새해 시작하셨다는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지하철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 너무 좋은 거다. 너무 좋아서, 읽어주고 싶었다. 이거, 당신한테 읽어주면 너무 좋을텐데....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어쨌든 너무 좋다. 나중에 조용히 다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쓰게 되겠지.


















여러가지로 우울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또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순간 그 책이 참 좋아서, 아,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구나, 생각했다. 지금 힘들고 우울한 것도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좋으네' 생각하고 있는 것도 나이다. 힘들고 우울한 감정과 좋구나 감탄하는 감정이 함께 찾아든다. 그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 있다. 




자, 새해 첫번째 책나눔.


제가 가진 《종이시계》는 구판입니다. 그렇지만 새 책이지요. 제가 읽었던 책인데 읽고 싶으신 분 댓글 달아주시면, 가장 먼저 댓글 달아주시는 분께 보내드리겠습니다. 택배비 안받고 선물로 드려요. ㅎㅎ



그럼 여러분 안녕.




"밤이었어, 수요일 밤. 나는 누군가 내 가슴에서 무거운 짐을 번쩍 들고 간 느낌이 들었어. 집에 가서 열두 시간 동안 줄곧 잠을 잤어. 목요일에 린다가 뉴저지에서 왔는데, 그래도 딸 구실을 한 거지. 사위하고 아이들도 왔어. 그런데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느낌이 계속 들더라고. 무엇인가 잊은 것이 있었어.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었어. 아주 초조했지.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하곤 했던 장난 같은 것이었는데, 너 기억 나니? 우리가 문간에 서서 손들을 문틀에 대고 밀며 앞으로 나아가면 손이 위로 붕 떴잖아. 마치 모든 압력이 나중에 반동적으로 작용하도록 축적 되었던 것처럼. 게다가 린다의 아이들은 고양이를 짓궂게 괴롭히기 시작했어. 그애들이 고양이에게 장난감 곰의 옷을 입혔는데도 린다는 알은체도 안 하더라구. 린다는 애들 버릇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어. 맥스와 나는 그것을 보고도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많이 참았지. 그 아이들이 올 때마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안했지만 방을 가로질러서 서로 눈을 찡긋해 보이곤 했어. 아무 말없이 그냥 어떤 표정만 교환하는 게 어떤 건지 너도 알지? 그런데 갑자기 눈을 찡긋해 보일 사람이 없는 거야.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정말 그이를 잃었음을 깨달았지." (p.82)




매기는 아이러와 결혼했을 때 그가 첫날밤 그녀를 바라보던 그 눈길로 항상 자신을 바라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는 레이스 달린 신부용 잠옷을 입고 아이러 앞에 서 있었고, 방 안에 빛이라고는 침대 옆에 있는, 얇은 갓을 씌운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뿐이었다. 그녀는 제일 윗 단추를 풀고, 그리고 두 번째 단추를 풀어서 잠옷이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발목 주위로 떨어지도록 했다. 아이러는 그녀의 눈 속을 깊이 응시했는데, 그는 마치 숨도 쉴 수 없는 듯했다. 매기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p.54-55)

"내가 첫 번째 임신을 했을 때는 이런 걸 배우는 과정이 없어서 죽도록 겁이 났단다. 이런 교습이 있었다면 난 정말 신바람이 나서 받았을 거야. 그리고 후에 제시를 낳아 안고 병원을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지. ‘가만있자, 병원 사람들이 제시와 나를 그냥 이렇게 내보내는 건가? 난 아기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는데! 이런 일에는 면허도 없나? 아이러와 난 초보자에 불과한데 어쩌나‘라고 말이야. 내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온갖 일에는 다 교습이라는 게 있잖니. 피아노 연주나 타이핑 같은 거 말이야. 오랫동안수학 공식을 푸는 법을 배우지만, 아마 하느님도 아실 거다. 일상 생활에서 그런 건 전혀 필요 없다는 걸.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떻니? 아니면 걸혼 같은 것도 마찬가지야. 차를 몰기 전에는 주 정부가 인가하는 도로 연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운전 같은 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남편과 함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새로 태어난 한 명의 인간을 키우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p.266)

매기는 거의 숨막힐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토록 완벽하게 포장되어 있을까! 하루 종일 앉아 연구해도 모를 사람들이었다(어쩌면 다른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어느 부부에게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처음으로 정사를 했던 때라든지, 아니면 그들 중 한 사람이 한밤중에 괜히 놀라 깨어났을 때 서로 나눈 대화라든지.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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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8-01-0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해에도 페미니즘과 함께 하는 즐거운 생활 기원드려요~~ㅎㅎ
왜 댓글이 없는지 모르겠으나 선물 주세요..^^;;

다락방 2018-01-02 11: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머큐리님, 반가워요.
네, 새해에도 페미니즘과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 활기찬 생활!
선물은 머큐리님께 드리겠습니다.
주소3종셋트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2018-01-0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1-02 16:28   좋아요 0 | URL
오케바리!!

시이소오 2018-01-0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다락방님이 좋으셨다니 저도 너무 좋네요. 제 대화명을 언급해주신것도 너무 신나구요. 새해부터 좋으네요^^

다락방 2018-01-02 13:44   좋아요 0 | URL
ㅎㅎ 새해부터 좋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그래서 책과 내가 만나는 것은 다 때가 있나 봅니다. 진작에 사두어도 읽지 못한 채로 있다가, 마침 언급된 김에 읽게 되었거든요. 언급됐다고 바로 다 읽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되었어요.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고 그렇게 그 책과 내가 만나는 운명이 되고....

말이 길었습니다. 자주 뵈어요!

단발머리 2018-01-02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을 읽고 나니까 유시민 작가님 이야기가 또 연결되서 생각나네요.


˝기쁜 일이 있을 때 저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기쁠 때는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느라 아예 책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나 슬플 때, 분할 때, 억울할 때,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책을 펼칩니다. 그런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 그것과 공존하는 방법, 그 무게를 견디는 방법을 책에서 찾습니다. (<표현의 기술>, 168쪽)


시이소오님과 다락방님 첫 책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라는 거죠? ㅎㅎㅎㅎㅎㅎ
좋으시겠다^^

다락방 2018-01-02 13:46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안그래도 오늘은 외로움에 대한 글을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무언가 똭- 생각났으면 좋겠는데 생각도 안나서, 친구에게 ‘외로움에 대해 내가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 골라줘‘ 라고 문자를 넣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답이 왔어요.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문태준, 빈집의 약속 중>


여러차례 읽었는데, 단발님이 인용해주신 유시민의 문장도 참 좋으네요. 속 시끄러울 때 책이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물론 책조차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고마워요. 좋은 문장이예요.


솔닛 책도 좋아요, 단발님 :)

비연 2018-01-0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저 페이퍼 쓰고 락방님 페이퍼 들어왔다가 깜놀요.
저도 이 책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를... 골랐는데. 꺄오.

다락방 2018-01-02 13:46   좋아요 1 | URL
아아, 비연님. 이 책 정말 좋습니다. 몇 장 안읽었는데 참 좋아요. 아, 현명한 선택이었다, 스스로 쓰담쓰담 하고 있어요. 비연님도 얼른 읽으시고 우리 감상 나누어요! >.<

2018-01-05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5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으로 행복한 12시, 김현주입니다] 바로가기 


해가 바뀌기 전에 많은 것들을 정리했는데, 또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위에 링크한 것 같은 소식들. EBS 에서 정오에 하는 라디오라는데, 저걸 들은 친구가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가 나온다며 보내준거다. 들어보면 12월 29일 2부 초반에 독서공감에서 한 부분을 읽어준다. 디제이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낭독에 힘이 실린다. 라디오에 소개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저걸 듣고 친구가 내게 바로 알려준 것도 너무나 고마웠다. 내 친구니까 가능한 게 아닌가. 저걸 들은 사람은 한 두명이 아닐텐데 '이걸 알려줘야지'라는 생각은 내 친구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 듣게 되어 너무 좋았다. 좋은 소식이었고,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런데, 내가 쓴 글 누가 읽어주니까...좀... 오글 거리긴 했어.... ㅋㅋㅋㅋㅋㅋ


















해가 바뀌기 전에는 나의 여행친구 D를 만나 영화를 보았고 술을 마셨다. 너무 맛없는 스테이크를 먹어서 좀 짜증났지만 ㅋㅋㅋ 그래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한 해동안 함께 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같이 강의 들으러 간 것도 너무 좋았고, 강의 들으러 가지 않을래? 물을 때 기꺼이 가겠다고 해준 것도 고맙다고. 무엇보다 나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 친구이다. 이 친구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아니라 동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마도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에 대해 얘기하다 나온 것 같은데, 친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니 좋았다. 또한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때, 우리가 프라하에 갔을 때, 일정은 짧았고 나는 속이 좀 안좋아서 한식을 먹고 싶어했다. 오후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프라하성을 가고 한식을 먹는 일정 두 개를 넣었는데, 초행길인 우리가 낯선 길을 걷다보니, 시간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이 걸리는 거다. 프라하성과 한식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 나는 밥을 먹고 싶기도 했지만, 프라하에 또 언제 온다고 프라하성을 안보나, 하며 두 가지 중에 뭘 선택하지 고민했는데, 사실 밥이 더 끌리긴 했다. 프라하에 갔다고 프라하성을 보란 법은 없지 않나.. 하면서. 내 여행이라는 것은 관광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러나 프라하에 처음 와보고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내 친구의 입장도 나랑 같으리란 법은 없었다. 아마도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라하성을 가자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친구는 프라하성을 가는 대신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세상 누가 프라하까지 가서 프라하성과 김치찌개중에 김치찌개 손을 들어줄까.... 백 명중에 한 명 있을까말까 한 그 경우가 바로 내 친구였다. 그때, 프라하성을 보자고 안하고 김치찌개를 선택해준 거 고마웠다고, 나 그때 한식이 절실했다고, 그렇게 말했다. 친구는 자기도 먹고 싶었다고, 가는 길이 몹시 좋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프라하성을 보지 못했지만, 유명하지 않은 곳의 한식집을 찾아가는 길, 그 골목골목이 너무 예뻐서 자꾸만 감탄했던 거다. 게다가 거긴 사람들도 없어서 걷기에도 좋았고. 그 길을 걷는동안에는 너무 좋아서, 나 여기에 와서 살까, 막 이렇게도 얘기했던 거다.


그래서 친구랑 그런 얘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일정대로 되지 않았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뀐 상황에 대해서 그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여행은 그런 사람들에게 적절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대부분의 것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여행지에서라면 달라진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대신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즐거워 하는 거다. 친구와 내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때도, 그런데 이런 게 좋잖아? 하며 좋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고마웠다. 그리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야 하지. 친구에게 고마웠다고 술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연말엔 회사에서도 일이 많았고 그와중에 사고를 치고 수습을 했다... 이때 멘탈이 잠깐 나갔다 들어왔는데, 이것에 대해 트윗을 하니 내 트윗을 본 소중한 친구 한 명이 따뜻한 핫초코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사고 친거 수습하느라 고생했다고 따뜻하게 마시라고. 내 주변에 왜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많지? 고마워라.



토요일에 영화 [두개의 사랑]을 보러 갔는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른 영화들의 예고편을 보게됐다. 그 중 하나가 [원더풀 라이프]의 예고였는데, 그 예고편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묻고 거기에 대해 답을 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나는 내 어린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을 하더라.


그 예고편을 보면서 자연스레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지? 하고. 그런데 별 고민없이 '지금'이라는 답이 나오는 거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30대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내 삶에서 20대는 들어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그 시절의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러나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때는 내 선택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들로 가득했던 것 같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책읽기는 계속 해오고 있는데, 책 읽기가 좀 더 깊어지고 글 쓰는 걸로 연결되는 것도 30대 부터 였던 것 같다. 그전에도 글은 꾸준히 썼었지만, 뭐랄까, 본격 글쓰기는 30대부터 라고 해야할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랬다.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사람들은 30대에 만난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나의 의지로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게 된 사람들. 나는 30대를 보내면서 더 나은 관계를 가졌고,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됐고, 더 나은 삶을 살게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은 거다. 30대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나에겐 가장 좋네, 라고 말할 수 있다니, 이런 자신이 또 너무 좋은 거다. 앞으로도 계속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지. 그래서 또다시 '너의 삶에 있어서 언제가 좋았어?'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30대부터 지금까지, 라는 답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2017년에 [제2의 성]을 완독하지 못한 나는, 2018년의 시작을 역시 [제2의 성]과 함께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만 하지 읽지는 않고 있어. 독서 뭘까? 자꾸 다른 책이 읽고싶어지는 나를 어쩌면 좋지?


그렇다면 일단 떡라면을 끓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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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8-01-0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18년의 시작을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로 했답니다.
작년 한 해 격조했네요. 다락방님도 올 한해 이상한 질문은 무시하시고,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고 건승하시고,
언제나 아름다우시기를 ^^

다락방 2018-01-02 08:16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게 뽐뿌받아 저 오늘 출근길부터 리베카 솔닛 책 시작했는데, 참 좋으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상한 질문은 무시하시고‘가 초반에 똭- 나오더라고요.
좋은 책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댓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새해에도 독서 뽐뿌 엄청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이소오 2018-01-02 08:53   좋아요 0 | URL
리베카 솔닛 뽐뿌질에 가담했다니 신명나는 답글입니다. 새해 첫 출근이시네요. 추운 날씨지만 상쾌하게 시작하시길^^

2018-01-01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8-01-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17년의 마지막과 2018년의 시작을 <오로지 먹는 생각>과 함께 합니다. 행복해요ㅎㅎ 이제는 너무 유명하신 다락방님. 알라딘에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해피 뉴 이어^^

다락방 2018-01-02 08:18   좋아요 0 | URL
저는 완전 더 유명해져도 계속 다정하겠습니다. (응?) ㅋㅋㅋㅋㅋ

고마워요, 문나잇님.
계속 읽고 계속 맛있는 것 드세요.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렇게 다정하게 만나요!
:)

독서괭 2018-01-01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라면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글 뭘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의 사적인 얘기가 어째서 재미있는 거지? 자꾸 다른 글도 읽고 싶어지는 나를 어쩌면 좋지?
합니다ㅋㅋ

다락방 2018-01-02 08:19   좋아요 0 | URL
떡라면 끓여 먹었어요. 물을 조금 더 많이 넣었어야 했는데 싱거울까봐 쫄았더니 짜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게 먹었어야 됐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좋긴요, 독서괭님. 자주 오시면 되지요. 자주 오셔서 열심히 읽고 이렇게 열심히 댓글 달아주세요. 우리 열심히 지내봅시다. 아하하핫.

스윗듀 2018-01-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다락방님의 원더풀 라이프를 조용히 응원하고 2018년에는 그 일부가 될 거에요 히히힛

다락방 2018-01-02 08:20   좋아요 1 | URL
스윗듀님은 어쩜 말도 이렇게 이쁘게 해요? 히히히히히.
그래요, 일부가 됩시다.
박정현의 [그 다음해] 노래 생각나네요. 일부가 되고 싶었다는. 후훗.
그러다 일부 아닌 하나가 되는..... (응?)

새해엔 더 자주 봐요, 스윗듀님!

카스피 2018-01-0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8-01-02 08:20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딩 2018-01-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쿨한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다락방 2018-01-02 09:35   좋아요 1 | URL
쿨하다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저인데요.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고맙습니다! ㅎㅎ

초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년에는 자주 뵈어요!

프레이야 2018-01-06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걸 이제 봐요. 축하해요. 저 영광의 책을 저도 읽었다는 거 영광이죠 ㅎㅎ 낭독녹음했지요 점자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들도 귀로 읽으실 거에요.

다락방 2018-01-09 08:24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이 낭독녹음하셨던 거 기억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헤헷.
저는 오늘 [고마워 영화]에서 읽었던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요.그 영화는 본 지 오래되어 내용은 잘 생각안나는데, 프레이야님이 그들에게 사랑 말고 다른 게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러니까 서로이면 너무나 충분한 것에 대해 글을 쓰셨잖아요. 그거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언젠가 글로도 정리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언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는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