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미술관 MOCA (Museum of Contemporary Art) 에서 인증하는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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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있던 약속은 태풍 때문에 취소되었다. 오전에 잠깐 이비인후과와 요가를 다녀오는데 바람이 너무 심한터라 도무지 오후의 일정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 우리 오늘 만남은 취소하는 게 좋겠다, 라고 친구에게 말을 거니 친구 역시 그게 좋겠다고 했다. 덕분에 토요일 오후가 내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 읽으며 여유로운 토요일을 보내야지, 그렇게 나는 시몬 베유의 책을 잡았다.

















그러나 다른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사는 집에서 가사노동이 뻔히 일어나고 있는 걸 알면서 과연 주말의 여유로운 독서는 가능할까? 만약 내가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모든 일들을 뒤로 미룬 채로 책 읽기에 집중하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려고 폼을 잡고 있는데, 엄마는 부엌에서 뚝딱뚝딱.. 엄마도 그저 누워있기만 하면 좋을텐데, 그러나 엄마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오전에 엄마 개인적인 약속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시장에 가 명절에 만들 음식의 재료들을 사오셨고, 이내 저녁에 먹을 반찬을 만들기에 분주하시다. 아아..차라리 모를걸, 차라리 집에 없을 걸, 그 편이 내가 편했을텐데...라며 책에 집중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엄마가 나를 부른다. 오이지를 만들건데 오이를 좀 짜달라는 거였다. 나는 내가 원했던 독서의 시간이 깨져버렸다는 아쉬움에 조금 화가 났지만, 그러나 가사노동을 엄마에게만 짐지울 순 없었다. 나가서 오이를 힘껏, 힘껏 짰다. 


눈 앞에 일거리가 뻔히 보이는데 오이를 다 짰으니 이제 방해 말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나는 빨래를 가지고 나가 세탁기를 돌렸고 다 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었다. 그 사이 엄마는 내가 먹을 저녁 반찬으로 소불고기를 만들고 동태찌기를 끓이고 있었다. 나는 텔레비젼 앞에 큰 상을 펴두고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고 소주잔과 수저를 준비했다. 앞접시도 있어야겠지. 그렇게 엄마랑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설거지를 했다. 배가 부르다며 소파에서 쉬는 엄마에게 따끈한 차를 우려주었다. 토요일밤은 그렇게 책을 읽을 겨를도 없이 후딱 지나가고 있었다.



나랑 같은 상황에 놓인 남자들은 어떨까, 를 잠깐 생각했다.

그들도 집에 있는 주말이면 본인이 예정한 대로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대신 가사노동을 함께 할까? 부엌에서 뚝딱이는 엄마(혹은 아내)의 소리들을 넘기지 못하고 나와 무언가 도울까? 엄마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세탁기를 돌릴까? 엄마가 저녁을 차려주면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할까? 고단한 엄마에게 따끈한 차를 내어드릴까? 아니면, 그들은, 계획했던 그대로, 자기 방에 콕 틀어박혀 책을 읽을까? 그리고서는 이번 주말은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했어, 라고 주말이 지난 뒤 출근해서는 동료들에게 말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속 남자가 생각났다. 밖에 나가 정의를 부르짖고 혁명을 외치지만, 집에서는 식탁 앞에 앉아 가만히 엄마나 여자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받아먹는 남자. 그들은 자기 안의 모순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줄 알까?






우다얀은 혁명을 원했지만 집에서는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식사 시간에 그가 하는 거라곤 자리에 앉아서 가우리나 어머니가 그 앞에 접시를 놓아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줌파 라히리, 저지대, 203쪽










애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이 경제학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p.30)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웠다. 각자 자기 몫의 외출을 하고, 나도 일찌감치 오후에 영화 <벌새>를 예매해둔 터다. 일전에 알라디너로부터 받은 커피와 케익 쿠폰도 사용할 겸, 나는 책을 들고 까페로 나갔다. 이번 여성주의책 같이읽기 도서는 <시몬베유의 나의 투쟁>이지만, 나는 시몬 베유의 다른 책도 사둔 터라, 일단 얇은 책을 꺼내 들고 나왔다. 시몬 베유의 책을 읽다보면 프랑스에 대해 궁금할 터, 몇 개월전에 읽었던 <유럽 낙태 여행>도 함께 가지고 갔다. 시몬 베유의 책을 읽다가 무언가 궁금해진다면, 그럴 때 유럽 낙태 여행도 읽어야지. 나는 그렇게 까페에 두 권의 책을 가지고 나갔고, 나란히 꺼내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해전에 남동생이 회사에 다니는 게 전망이 밝은 것 같지 않아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며 이것저것 생각해 '이건 어떨까' 하고 내게 의견을 구할 때면, 나는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하는 답들을 동생에게 들려주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생각하기에 전혀 도덕적이지 못한 일들, 설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어디 가서 '나 이렇게해서 돈 벌었어' 라고 말하기에 껄끄러운 일에 대해서도 '이건 어때?' 하고 묻길래, 정색을 하고 '그건 안돼' 라고 말했었다. 돈 버는 거 너무 중요하고 나 역시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러나 어디가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을 얼버무려야 한다면, 그 일을 하지마. 어디가서 누가 물었을 때 전혀 거리낌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해. 일에 있어서 도덕을 잃지 마. 돈을 설사 조금 덜 벌더라도, 윤리를 놓아서는 안돼. 돈을 벌 때 모럴을 꼭 가져가야 해, 그걸 염두에 두어야 해. 


내가 하는 말이 동생의 귀에 닿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동생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 조언 '탓'일까. 돈을 크게 벌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이것이 윤리적으로 한 점 부끄러운 게 없으니,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지 않을까, 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에 1950년대의 상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낙태수술의 80퍼센트 이상이 의사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행하여졌다는 것. 그러나 물론, 의사들도 낙태수술을 하기도 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수술 금지라는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산파, 간호사, 일반의나 산부인과의들이 은밀하게 수술을 했습니다. 대체로 인간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종교계에서 지은 의료 시설에서도 곤경에 빠진 여성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의나 병원 경비들은 병원으로 긴급히 실려 오는 여성들을 속속 보곤 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위생 상태가 끔찍하고 어떤 의료 교육도 받은 적 없이 가장 초보적인 방식으로 산파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은밀히 찾아가 임신중단 수술을 받고 나서 만신창이가 된 채였죠. 이 산파들은 때로는 인간적인 호의로, 대체로는 돈 때문에 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무척 고급스럽고 수술 비용이 비싼 병원에서도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중에는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음성적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죠. (p.72-73)




나는 이 부분에서 도덕을, 윤리를, 모럴을 떠올렸다.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음성적으로 수술하는 상황을 바라는 의사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않는 사람들. 나는 만약 내가 이런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었다면, 그것이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어떤 형태로든, 남동생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거에 취해서 도덕을 잊지 말라고, 윤리를 잃지 말라고. 어디가서 니가 하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상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랑 인연을 끊고 하던 일을 마저 하면서 임신 중단이 합법화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겠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윤리보다 돈이 더 앞서는 사람들이. 나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어디가서 부끄럽고 싶지 않다. 내가 버는 돈에 대해서는 출처를 분명히 밝힐 수 있기를 원한다. 어디 회사에 다니냐, 무슨 일을 하냐, 라고 상대가 물었을 때, 속이거나 거짓말을 해서 그 상황을 비켜가고 싶지는 않다. 말하기에 조금 꺼려지는 일 같은 걸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의사들과 대조되는 자리에, 바로 '343 선언' 속의 여자들이 있었다. 이 선언은 343인의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중단 경험을 공개한 걸 말한다. 여기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수아즈 사강, 카트린 드뇌브등이 포함된다.



이 선언은 무척이나 대담한 행동이었어요. 이 여성들은 임신중단을 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덧씌우는 오욕을 짊어짐으로써 사회에 맞섰습니다. 이들이 형법상으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해도,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결과란 무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이 선언은 아주 강력한 투쟁이자 도발적인 행위였습니다. 결국 이 행동은 소송을 진척시키고 정부로 하여금 1920년 악법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게끔 했지요. (p.74-75) 



낙태가 불법인 국가적 상황에서 '나도 낙태했다'고 밝히는 일은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 대한민국에서도 낙태가 불법이지만 그러나 많은 여자들이 낙태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 위선적인 상황에서, 그래서 낙태한 사실을 알고 오히려 그걸 여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1971년의 프랑스에서 여자들은 오욕을 감수하고 낙태했다고 선언을 한다. 


일전에 메갈리아가 한창 욕을 먹을 때, 많은 여성들이 '내가 메갈이다', '나도 메갈이다' 선언했더랬다. 메갈을 후려치려는 것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함으로써 여성 구분짓기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여자를 구분 짓지마, 후려치지마, 편가르지마. 분명 거기에는 메갈리아 사이트에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여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의 낙인찍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메갈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이 343 선언의 343명 모두가 '정말' 다 낙태를 했을까? 여기에는 분명 낙태를 한 사실은 없지만, 이 선언에 함께하고자, 임신중단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오욕을 뒤집어쓰는 여자들과 함께 하고자 기꺼이 나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랬다.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 343명의 지식인 여성이 자신의 낙태 경험을 잇달아 밝히며 투쟁에 힘을 실었다. 이 여성들의 선언은 1971년 [누벨 옵세르바퇴르]라는 진보 잡지의 표지를 차지하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제2의 성]의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이 선언에 함께했는데, 프랑스가 낙태권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자신은 사실 낙태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343선언에 동참한 여성들이 우파 정치인들에 의해 '창녀 343'으로 불리던 때였으므로, 경험이 없더라도 그 멸시를 나누어 갖겠다는 뜻에서 동참한 것이었다. (유럽 낙태 여행, p.32)









여성들간의 연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에서 시몬 베유는 여성 연대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물론 믿습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주요한 문제들 앞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연대를 만들어 냅니다. 직장 생활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서로 돕는 정신이란 무엇보다도 자연적으로 발휘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다.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늘 좋아합니다. 유럽 의회에는 여성 의원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이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정무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여성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위원회가 내놓는 법안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차별과 전통 때문일까요? 여성에게 남성과 다른 가치체계, 다른 우선순위, 다른 행동, 다른 관심시가 존재하기 때문일까요? 함께 어울려 살기에 여성들은 훨씬 더 용이합니다. (p.118-119)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시몬 베유는 멋지다.



시몬 베유는 90세가 되기 2주 전인 2017년 6월 30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아들 장은 7월 5일 공식 행사에서 "어머니께서 제 머리에 물을 끼얹은 것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했다. 베유가 아들의 여성혐오적 발언에 넌더리를 내며 그의 머리에 물병에 들어 있던 물을 부어버린 것이다. (p.139)



하하하하. 여성 혐오적 발언이라면 아들이라고 넘어갈 수 있으랴. 물을 끼얹어 버린 어머니 시몬 베유라니. 너무나 근사하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9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준비 운동 차원에서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를 읽었다. 자, 다음 주에는 본격적으로 미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빠샤!!

















그런데 주말이 다 가버린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나는 이제 자야한단 말인가...



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성에게 낙태는 비극이고,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P26

저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은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하곤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길러지던 방식과 다르게 그들을 길러냈습니다.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와 같이 용감하고, 열정과 헌신을 다할 줄 압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부디 신뢰합시다.- P53

여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협을 감수하며 문제를 해결할 때, 이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거나 다른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늘 그랬습니다. 여성들은 임신 중단을 하는 다른 여성을 도왔습니다. 때로는 도움에 금전적인 보답이 따르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가 순전히 연대에서 우러난 행동이었습니다. - P59

법조계에 여성들이 진입한 덕분에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쟁이 발전할 수 있었어요. 피임에 대한 논쟁도 떼어놓을 수 없지요. 1920년 피임 관련 법조항을 보면 정말 믿을 숙 없을 정도로 말이 안됩니다. 의사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여성에게 피임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어요. 월경주기를 계산하는 오기노 법이나 기초 체온 피임법 같은 것도요. - P65

오랫동안 이 문제를 교회와 전통의 영향이라 설명해 왔지만 저는 임신중단보다도 피임약의 발명이 남성들을 더 불안케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섦명하면 좋을까요? 모성의 역사에서 피임이란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할 때 아이를 낳는다‘ 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발상 이었던 겁니다. 피임약 덕분에 여성은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재생산을 결정하고, 심지어는 남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있어 역사상 큰 전회라 할 만 했어요. 오랜 과거부터 재생산을 주도하는 쪽은 남성이었는데 피임약의 등장으로 이 문제에서 단절된 거니까요. 많은 남성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했습니다. 박탈감을 느꼈고, 불안에 휩싸였어요. 피임약이 남성에게서 남성성을 앗아갔기 때문이죠! 이는 남성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 P66

당시 무척이나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했던 제 부처에서 두 명의 탁월한 여성 법률가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한 명은 최초의 여성 파리고등법원장인 미리암 에즈라티였고, 다른 한 명은 유능한 국가 고문이었던 콜레트 멤이었습니다. 우리 셋은 무척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셋의 입장은 같은 선상에서 만났습니다. 그건 바로 임신중단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이 오로지 여성 자신에게 돌아가야 하며, 임신중단 수술이 반드시 의사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기준을 충족하고, 실질적인 적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적합한 전략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처 간 긴밀한 협업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죠.- P84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들이 안도한다고 하더라도 임신중단 수술은 본디 심리적 외상을 유발합니다. - P89

임신중단 수술을 유대인 학살에 비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습니다. 남성으로 가득했던 회의장에는 위선이 넘쳐났습니다. 회의장에 있는 일부 남성들은 은밀하게 자신의 애인이나 지인이 임신중단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술소의 주소를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P93

베르나르 퐁은 농촌에서 의사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외젠 클로디우스-프티는 기독교적 인도주의 정신으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덕에 다른 의원들은 이 법안이 방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위선에 종지부를 찍고 실질적인 고통을 경감하는 조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P95

이렇게 부적절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역할극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면 당사자라고 해도 수치스럽게 여기리라고 생각합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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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9-09-1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석 같은 페이퍼다. 역시 내 친구! ♡

다락방 2019-09-11 14:14   좋아요 1 | URL
히히 고마워 ♡

단발머리 2019-09-13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석 같은 페이퍼에요 2.
전 이제야 봐서요.
숨겨져 있다가 이제서야 발견한 보석 같은 페이퍼에요!!

다락방 2019-09-16 09:45   좋아요 0 | URL
어릴적에 한 동네 사는 친구가 오래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거든요. 하루는 저의 엄마랑도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제 친구가 낳은 아이를 데리고 잠깐 놀러오셨더랬어요. 그 때 그 아이가 세 살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아이는 눈이 보석이야, 참 보석같아.˝

단발머리님 댓글 읽으니 그 날이 생각나요.
:)
 
















9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입니다.

사실... 따로 생각해두었던 책이...절판...인지라.... 신간 중에서 골라봤습니다.

우리 시몬 베유에 대해 이번 참에 확실하게 공부하고 갑시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으로는 일단 위의 두 권을 읽은 후에 나의 투쟁으로 가야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그건 또 나름 힘든 일일터라.. 두고보도록 하지요.


8월 도서는 잘 읽고 계십니까, 여러분? 저는 허랜드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 빨리 잘 따라오도록 해요.


9월도서 미리 알려드렸으니, 책 준비 미리미리 해두시고요.



자 함께 갑시다 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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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8-2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몬 베유 책, 기대만발입니다.
같이 가요, 뽜샤!!!

다락방 2019-08-26 22:10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기대만발 입니다. 일단 책을 사야하지만.. 사는 김에 시몬 베유 다 살까봐요! ㅋㅋ

수연 2019-08-2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 책은 도전 실패했어요. 9월에는 참여할게요 :)

다락방 2019-08-26 22:10   좋아요 0 | URL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 컴온!!

블랙겟타 2019-08-2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시몬베유의 책이네요.
이번엔 반드시 꼭! 9월달에 9월 책은 함께 읽도록 노력할께요. ( •̀ו́)

다락방 2019-08-27 14:02   좋아요 1 | URL
환영합니다, 빠샤!!!

공쟝쟝 2019-08-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인햇어요요

공쟝쟝 2019-08-3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의 투쟁말고 이민경씨 번역한거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다락방 2019-08-31 21:56   좋아요 1 | URL
저도 책 다 구입했어요. 이민경씨 번역부터 저도 읽어본 뒤에 나의 투쟁 들어갈까 합니다. 훗

비연 2019-08-3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시몬 베유는 이미 사 두었고 나의 투쟁도 바로 구입 들어가요~ 추석 때 이번엔 집에 있으니 쭈욱 읽어보리라..

다락방 2019-08-31 23:04   좋아요 0 | URL
우리 9월에는 시몬 베유를 읽어봅시다!!
 















지난 주말에는 창원에 친구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KTX 를 세시간가량 탈 예정이니 8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허랜드를 가져가자! 다짐했는데, 얼라리여, 집에서 나갈 시간인데 이 책이 어디있는지를 모르겠다. 아, 어딨지 어딨지 하며 이 책장 저 책장 둘러보고 지저분한 책상 위도 보고, 침대 헤드도 보았지만 보이지가 않아. 안되겠다, 다른 책 가져가자, 하고는 챙겼다가, 나가기전에 그래도 다시 한 번,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 하면서 둘러보고, 찾았다! 여기있다! 그렇게 허랜드를 들고 나는 슝- 나가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책장을 열어, 언제나 그랬듯이, 책날개의 작가소개를 가장 먼저 읽었다.



그리고...





1860 년에 태어난 작가라는 걸 몰랐다. 오래전에 태어난 사람이구나. 오래전이라면 지금보다 여성에게 여성성 강요가 더 심했을 때인데, 그 때도 이런 상상력과 이런 필력으로 글을 써냈다니. 친구들을 만나서도 얘기했지만, 언제나 여자들은 잘못된 걸 인지하고 그걸 바꾸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다만 그 목소리를 억누르는 목소리들이 더 크고 강했을 뿐.


철학자에, 의사에, 교수에, 판사에, 경찰에... 예부터 왜 남자들이 훨씬 더 많았을까. 나는 공부를 하는 능력,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그것을 발휘하는 능력이, 동등한 조건에서라면 여자나 남자나 크게 차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등한 조건에서라면 여자나 남자나 절반의 비율로 그 직업들을 차지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억압당하고 또 억압당해서 그 자리에 서기가 힘들었고, 설사 그 자리를 보란듯이 차지했다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직업을, 어느 위치에 있는 여자, 라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 여자의 다른 면을 드러내기.


기차 안에서 친구는 자신이 본 영화 <밤쉘>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계속 연구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쁜 배우로만 알려진 사람.



'샬롯 퍼킨스 길먼'의 작가소개를 보자.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강요된 성역할과 산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어떻게 닥터가 내린 처방이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고 지적활동을 하지말라'는 것일 수 있나. 어떻게 이런 처방을 내려, 어떻게. 지적인 사람이 지적활동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듣고 더 아파질 수밖에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 샬롯 퍼킨스 길먼은 그 처방으로 인해 '더' 아팠고, 결국 아내의 역할도 어머니의 역할도 내려놓기를 결심한다.



닥터의 처방이 '지적 활동을 하지말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당시에 '경제적 독립만이 여성에게 참된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 이 얼마나 용기 있고 지적인 여성인가.



창원에서 친구들과 대화 도중, 나는 이런 샬럿 퍼킨스 길먼에 대해 얘기했다. 전통적 성역할 강조, 지적활동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그중 한 친구가 얘기했다. 지금은 인연을 끊었지만, 자신과 알고 지내던 남자중에 한 명이 '가장 싫은 여자가 책 읽는 여자'라고 했다고. 그 때 너무 기겁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매우 놀랍다. 이런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랍다는 게 아니라, 지적활동하는 여자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 저런 남자라면 나도 이십대 중반이 이미 경험해본 적이 있다. 무려 나의 남자친구였는데, 그는 나에게 '너 책도 그만 읽고 신문도 그만 읽어'라고 말했다. 그걸 반드시 강요했다기 보다는 그 당시에 그는 나에게 웃으며 말하긴 했는데, 그가 그렇게 말한 동기는 내가 그에게 너무 말대꾸를 한다는 거였다. '너는 왜 지지를 않아?' 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데 그 때는 그 남자 좋다고 사귀었다. 게다가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잊지도 못했지.. 아아 나여.. 부끄러운 나의 과거는 웁니다.. 미안해, 과거의 나여.....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 회사 남자 임원도 내게 '넌 늘 책을 들고 다닌다' 면서 '책 읽는 여자는 아주 싫어'라고 내 앞에서 대놓고 말했다. 어쩌라고...


나는 내 친구들도 그리고 애인도 똑똑하기를 원한다. 그들이 지적활동을 활발히 하기를 원한다. 경제적 활동 역시 할 수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지적활동도 놓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누구나 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상대,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똑똑하기를 원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나는 '책읽는 남자가 제일 싫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사귀는 남자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책 읽는 남자라고 반드시 지적인 남자라거나 열린 사고의 소유자라거나,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절대로, 결코, 활발한 독서활동이 그가 더 나은 인간임을 보장하진 않아. 그렇지만, 지적활동을 하란 말이야, 지적활동을 해야 대화가 되는 거잖아. 아니, 연애상대에게 지적활동 하기를 거부하는 것, 심지어 연애상대가 아닌 이성에게 지적활동을 하지 말기를 원하는 것은, '너는 나의 대화 상대는 아니야'를 전제하는 거 아닌가. 그건 상대가 대화가 아닌 다른 상대이길 원하는 거잖아. 자신이 상대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드러내야 하고, 그러고 싶고, 상대는 그런 나에게 속하기만 해야 하는, 그저 성적 대상이기만을 원하는 거잖아. 어떻게 지적활동 하는 여자를 싫다고 말할 수 있지? 그 멍청함에 너무 부끄럽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얼마전에 썼던 페이퍼에서 내가 3년전 뉴욕에서 만났던 그 남자사람 생각이 난다. 책 많이 읽는 여자, 생각 많은 여자는 남자들이 싫어한다던... 그런 남자는 여자들도 싫어합니다...... 어우, 끔찍해..



샬롯 퍼킨스 길먼은, 결혼한 후에 힘들었으면서 치료도 받았으면서,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를 포기했으면서, 그런데 왜 '또' 결혼을 한걸까. 아마도 두번째 남편은 첫번째 남편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 때문에 결혼했겠지만, 이미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어떻게 굴러가는지 경험해본 사람이 어떻게 그 제도 속으로 또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시대적 배경 자체가 1900년이어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것 자체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 결혼해서 빡쳐서 이혼했는데 또 결혼으로 간 것은 .. 글쎄, 잘 모르겠다.




주말동안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한정식 집에 가 코스요리를 시켜먹고, 친구의 집에 가서는 2차로 와인과 과일을 먹었다. 이 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돈이 좋구나, 얘기했다. 우리 네 명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돈을 벌고 있었다. 우리 계속 돈 벌자, 돈 벌고 살면서 이렇게 좋은 시간을 계속해서 갖도록 하자, 고 반복해 얘기했다.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로 다정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다정해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맛있는 걸 먹고, 함께 오래된 노래를 듣고, 수다를 떠는 것. 이런 시간을 오래오래 가지고 싶다. 그러려면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지적활동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계속 탄탄해야 한다.





허랜드를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읽었다. 남자 세명이서 '여자들만 모여산다는 나라'에 도착했다. 그중 남자 하나는 그곳에 젊고 예쁜 여자들이 가득할거란 환상에 부풀어 있다.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그저 젊고 예뻐야 한다. 성적대상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그에게는 '여자'인 것.




그가 목소리를 낮춰 투덜댔다. "젊은 여자들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늙은 대령들 집단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냔 말이야."

우리는 이곳에 대한 논의나 추측을 할 때마다 늘 무의식적으로 젊은 여자들을 떠올렸었다.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p.42)



그렇다면, 젊은 여자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젊은 여자들에게는 할 수 있지만 늙은 여자들한테는 할 수 없는 말이란 무엇일까? 왜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 가면서 젊은 여자들에게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이게 다, 지적활동이 부족한 때문 아닌가?


이런 걸 지적하다니, 정말이지 샬롯 퍼킨스 길먼도 너무나 똑똑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지적활동이 활발한 때문입니다..




추상적으로 '여자' 하면 젊고 매력적일 거라 상상한다. 여자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 그런 시기를 지나가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 남자에게 소속되거나 아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이 건강한 여자들은 나이 든 사람들 같은데도 아주 팔팔했다. (p.42)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이미 얼마전에 읽었던 책, 《탈코르셋 선언》에도 언급되지 않던가.



‘늘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란 처절한 꾸밈노동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러한 여성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태어난 존재로 신비화함으로써 인위적 꾸밈노동의 모든 노력들-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화장술과 시술, 지속적 운동과 고강도 식이요법-과 사회적 압력들을 단번에 비가시화해 버립니다.이는 마르크스가 거론한 ‘상품의 물신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의 물신화 현상은 일종의 착시 현상입니다. 인간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마치 그러한 노력의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상품 자체가 가진 자연적·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교환가치를 발생시키는 독자적·독보적 존재물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P35








허랜드의 이 뒷부분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나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지적활동을 할것이다. 책읽는 내가 싫다면 싫어하라, 지적활동 하는 여자가 싫다면 싫어하라. 나는 그 따위 놈들에게 관심이 없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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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8-2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 앞부분에 지나가는 듯이 나오긴 하지만 제가 좀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 길을 걷다가 옷을 잘 입은 여자를 보고 얼굴이 보고 싶어 빨리 걸어 그 여자를 봤는데 나이가 오십은 더 된 것 같아 울었다 뭐 이런 장면이요. 진짜 어이없어서 웃었는데.. 웃고 있는 저 자신한테 충격 받았어요. 여자는 젊고 예뻐야 한다고 세뇌되었나봐요 ㅠㅠ 세월의 거품 영화랑 책 정말 좋아하는데, 저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네요. 여자의 존재가 저랬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그 땐 그랬더라도 지금은 그러면 안 돼.. 이 정도까지는 했어야 했는데...

다락방님이 소개해주셔서 저도 이 책 샀어요 ㅎㅎ 곧 읽을 거에요^^

다락방 2019-08-27 08:00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크-
이런 경험이 저라고 없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책을 읽다 그런 경험을 한 게 아니라 현실에서 그러기도 했는데요. 아니, 나이가 많은데 왜 저렇게 옷을 입었지? 나이가 많은데 왜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지? 등등요.. 하아-
저 역시 여자는 젊은 거에 세팅해두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꼬마요정 님이 샀다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탈코르셋 선언 일까요, 허랜드일까요? 무엇이 됐든 파바바박 깨어나는 독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빠샤!!
 

















"날 도와주신다고요? 어떻게요?"

내 목소리도 그만큼 나직하다.

그는 뭔가 알고 있는 걸까, 루크를 본 적이 있을까? 실종된 그를 찾은 걸까? 내게 다시 루크를 돌려줄 수 있나?

"어떻게 도와줄 거라 생각해요?"

여전히 숨소리나 다름없는 낮은 목소리. 다리 위로 미끄러져 올라오는 게 그의 손인가? 그는 장갑을 벗어던졌다.

"문은 잠겨 있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요. 그 사람 아이가 아니라는 건 절대로 발각되지 않을 거요."

그는 장막을 걷는다. 그의 얼굴 아랫부분은 하얀 가제 마스크로 가려져 있다. 한 쌍의 갈색 눈동자, 코 하나, 그리고 머리카락이 갈색인 머리 하나. 그의 손은 내 두 다리 사이에 있다. (p.106)



아이가 없어 대리모를 데리고 사는 대부분의 사령관들은 불임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모르는 채로 시녀들은 어쩌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고. 시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나이 제한이 있다. 사령관과 아이를 갖는 행위를 치르는 것도 임신 가능성이 높은 날 하루 이틀이고. 


오브프레드 역시 임신하지 못하고 있고 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녀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몸에 이상은 없는지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갔더니 닥터가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자신과의 섹스를 제안한다. 명목상 그가 하는 제안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너희들이 만나는 늙은이들 대부분이 불임인데 너네들이 겪는 고통을 보니 끔찍하다, 는 것. 그러니 자신이 기꺼이(!) 그 일을 함으로써 도와주겠다는 거다. 닥터는 그녀를 검진하면서 어떻게든, 어디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를 만질(?)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에 시녀는 고민해야 한다.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나. 



진심 어린, 진심 어린 동정의 목소리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동정이며 이 모든 일들을. 두 눈은 동정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지만, 한 손은 초조하고 성급하게 내 몸을 더듬고 있다.

"너무 위험해요. 그럴 수는 없어요."

죄의 대가는 사형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킬 때의 일이다. 그것도 증인 두 명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진료실에 도청 장치가 되어 있거나 문 뒤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내 몸을 훑던 그의 손이 뚝 움직임을 멈춘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 차트를 봤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당신 인생이니까."

"고맙습니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남겨야 한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여운을 흘려야 한다. 그는 느릿하게, 아쉽다는 듯이, 손을 치운다. 그의 입장에선 이걸로 끝이 아니다. 검사 결과를 위장할 수도 있고, 내가 암이나 불임이라고 보고해서 나를 '비여성'들과 함께 식민지로 추방시킬 수도 있다. 지금 듣고 본 일은 없었던 일로 쳐야하지만, 어쨌든 내가 맡게 된 이상 지금 우리 사이의 공기 중에는 그가 지닌 힘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떠돌고 있다. 그는 은근슬쩍 내 허벅지를 가볍게 툭툭 두들기더니 장막 뒤로 물러난다. (p.107-108)



닥터에겐 권력이 있다. 그녀의 목숨을 쥐고 흔들 권력, 그녀의 앞으로의 남은 날들을 쥐고 흔들 권력. 그에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아니라는 말을 하는데 조심해야 하고, 그의 기분을 건드리면 안된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것은 자신에 대한 테스트가 아닐까, 하는 것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내가 수락했다가 혹여라도 이것이 테스트라면, 그래서 자신이 불법에 관여하게 된거라면 역시 목숨을 잃을 테니까. 그런 선택의 기로 앞에서 이걸 선택해도 저걸 선택해도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선택 자체가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그리고 그것을 그녀의 '선택'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는걸까. 내가 비록 임신해야 하는 여자이지만, 그 역할을 수행해야 앞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닥터의 강간의 손쉬운 목표가 된다는 건 또 얼마나 큰 비극인가.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너랑 그럴 순 없어, 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은 또 비극 한덩어리를 더하고. 


어떻게든 그의 기분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러나 그녀가 범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 것을 드러내면서 그 시간을 간신히, 무사히 넘겼다고 하면, 그러면 결과적으로 잘됐다고 할 수 있을까?




"다음 달에 봅시다."

나는 장막 뒤에서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다. 손이 떨린다. 나는 왜 겁에 질린 걸까? 경계를 넘어서는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덥석 사람을 믿어 버린 것도 아니고, 위험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안전한데도.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건 선택 그 자체다. 탈출구, 구원의 길. (p.108)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자신의 앞날이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 이제 비로소 그 순간이 지나갔으니 안도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다. 닥터는 다음 달에 봅시다, 라고 말했다.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시녀는 이 병원에 방문해 이 닥터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지금 일어난 이 일은 그 때 또다시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제안이 반복되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봤겠지만,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진다. 본의 아니게 허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버려. 시녀는 지금은 아니라고 해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다음달에는 그리고 그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될까? 다음 달에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 그걸 알면서 지금 이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계속 공포는 그녀에게 들러붙어 다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집에 가서 사령관에게, '그 병원 닥터 이상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겠소'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디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어. 그저 묵묵히 그 선택 아닌 선택과 강요를, 압박을, 그 무거운 분위기를 혼자 견뎌내야 한다. 게다가 다음에 또 그것이 올 거라는 걸 각오해야 한다. 



그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 그녀에게는 어떤 권력도 없다는 것,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권력 자체가 그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면서 '내가 너를 임신시켜서 너를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닥터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성폭행에 이용하려고 하는 남자. 자신이 가진 힘을 알기 때문에 자비로운 척, 자선을 베푸는 척 강간에 다가갈 수 있는 남자. 




한 남자는 그녀의 위기의 순간을 이용해서 성폭행을 하고자 하고,

또 한 남자는 그전에 같은 일로 목숨을 잃은 시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지금 시녀에게 또 시키고 있다. 걸리면 죽는 건 그가 아니라 시녀니까.




선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두렵고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그녀가 사실은 선택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게 아닌가. 

아, 권력을 가진 놈들이 자상한 척 하고 배려하는 척 하는 게 진짜 너무 싫다. 그러면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려 하는 게 너무 싫어. 

애트우드가 1985년에 쓴 작품이 2019년인 지금에 읽어도 그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몹시 슬프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아무것도 변한 것 같지 않아 슬프다. 여전히 좆같은 놈들이 권력을 쥐고 앉아있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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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9-0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령관..반전이엇죠.. (나 또 뭘 기대한겨...!!!!) 전 모이라가 되게 안타까웠어요 ㅠㅠㅠ 힝 ㅠㅠㅠㅠㅠ 저는 어제 저녁 시녀이야기 다 읽고 덮으면서 외쳤어요!! 이거 뭐야 ㅠㅠㅠㅠ 뭐냐고오오오ㅠㅠㅠㅠㅠ 저 막 하얀 베일 올려붙이고 빨간 치마 아래 언니들이 총숨켜서 막 쏘는 그런 서사 기대했거등요..2/3까지 읽어도 그 믿음 놓지 않았는데 아뿔사......

다락방 2019-09-10 08:02   좋아요 0 | URL
빨간 치마 아래 언니들이 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좋은데요? 그건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다 쏴죽어 버렷!! 우당탕탕탕!! ㅋㅋㅋㅋㅋ

곧 다음 이야기도 나온다니 얼른 번역되어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추석 연휴에 시몬 베유를 시작할까 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