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의 죽음은] 사고였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다며 어머니 마리야와 친족을 수도원으로 보내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심지어 드미트리가 살해당했다는 가짜 정보를 전했다는 이유로우글리치 교회의 종에도 유죄를 선고했다. 가엾은 좋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루에서 내려져 12회나 채찍질을 당하고 혀를 뽑힌 뒤 한쪽 귀(종을 매달기 위해 튀어나온 부분)가 잘려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현대의 우리가 보기엔 난센스의 극치지만,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특히 교회 종에 깊은 애착을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종은 그대로 기념비가 되는 동시에 인간과 똑같이 처벌 대상이 되기도 했다(참고로 이 무고한 종은 300 년 후, 우글리치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 P19
18세기 러시아는 여제의 시대였으며, 예카테리나 2세는 로마노프왕조 최후이자 최고로 위대한 여제였다. 그녀는 표트르 대제의 친딸 엘리자베타보다 훨씬 표트르를 닮은 절대군주였다. 그래서 표트르와 마찬가지로 후세에서는 그녀를 ‘대제‘라고 부른다. 독일에서 속옷만 조금 채운 짐가방을 들고 러시아 땅을 밟은 소녀는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며 끈기 있게 싸워 33세의 나이에 마침내 제국 최고의 자리에 앉았다. 이국의 여제는 한시도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았다. - P121
니콜라이 일가가 모두 살해당했다는 수군거림이 국내외에 널리 퍼진1920년경, 역시 러시아의 주특기랄까, "사실은 살아 있었다"라며 왕가의 생존자가 등장했다. 니콜라이는 아니었다. 황후도 아니었다. 베를린 정신병원에 기억상실로 수용되어 있던 젊은 여자가 자신이 바로 17세 때 처형을 피해 도망친 아나스타시야라고 나선 것이다.
또 신기한 우연의 일치가 남아 있다. 로마노프 왕조의 시조인 미하일이 차르로 선택받은 장소는 이파티예프수도원이었고, 마지막 황제니콜라이의 살해 현장이 된 곳도 마찬가지로 이파티예프라는 이름을가진 남자의 집이었다.
한국대표 선수단의 장비까지 재일코리안의 기부로 충당되었던 런던올림픽(1948)과 헬싱키올림픽(1952)을 거쳐, 이윽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개최국이 된 한국. 그것은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시대가 열림과 동시에, 하나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 P348
(1936년 올림픽 후) 손기정은 경찰로부터 "앞으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손기정은 조선에서 있을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본래 영웅으로 대했어야 할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처우였다. 손기정은 일본에 유학하려 했지만, 일본의 대학도 요주의 인물인 손기정을 받아들이는 데 난색을 표했다. 메이지대에서만은 권태하와 정상희가 보증인이 되어서 입학할 수 있었다. 다만 육상 경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 P372
알라딘이 이 포스팅을 싫어합니다. 암요.이 두 드라마 시리즈가 잡아먹은 독서 시간이 얼만데요. 브러쉬업 라이프https://youtu.be/0tbNN-0Rr-w포커 페이스https://youtu.be/FcOU1ExLdCQ내 도끼 자루 다 썩어서 새로 맞추는 중이에요.
배설물의 크기로 거대한 몸을 묘사하는 북유럽 신화에 지증왕 부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연제부인은 속옷이 엑스라지여서 픽업되는 거 아니었나?
[런던탑] 성벽 안에서 참수된 사람은 왕비 7명 뿐이다. 다른 사형수는 런던탑에서 성 밖으로 끌어내 벽 바로 옆에 있는 타워힐에서 공개 처형했다. - P12
런던탑의 마지막 수용자는 놀랍게도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나치의 거물 로돌프 헤스다. - P13
<악마학>은 오싹한 구석이 있다. 국왕(제임스1세)이 직접 저술했다는 데서 오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임스는 악마가 악녀나 요술사를 조종해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지 열거하고, 그들에게는 가차 없는 심판과 벌을 내려 파멸해야 한다고 격한 어조로 기술했다. 물론 행동으로도 옮겼다. 왕비 등 모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됐을 때, 하녀가 마법을 건 것을 간파하고(?) 그녀를 고문해 자백시키고 공범인 ‘마녀‘도 30명 이상 체포해 화형에 처했다. 영국 왕이 된 후에는 마녀 단속법을 강화해 마법 사용 시의 형벌을 기존의 종신형에서 사형으로 바꾸었다. 마녀사냥은 더욱 거세졌다. - P88
예감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예감은 마음의 늪에서 샘솟는 기포와 같다. 경종이다. 교양인 루이16세가 흄이 쓴 <영국사>, 그중에서도 찰스1세의 실정과 처형을 다룬 부분에 매료돼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 P100
[빅토리아가] 왕관을 쓰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와 실질적인 절연이었다. 권력욕이 강한 자신의 시종(애인이었던 듯하다)과 손잡고 여왕이 될 딸을 지배할 작정으로 이것저것 명령하면서 빅토리아가 다 클 때 까지 같은 방에서 취침을 함께 했던 어머니와 앞뒤 다지지 않고 바로 거리를 뒀다. 그리고 분명한 자립을 선언했다. - P188
의자의 ‘다리‘라고 말하는 것조차 품위 없고 부끄러운 짓이라고 여기면서, 창녀의 수는 런던에만 8만 명, 여섯 집 중 한 집이 매춘관(1857년 통계)이었다. 부부간에도 속옷을 입은 채 잠자리르 하면서 아카데미 회화에는 올누드가 넘쳐났고, 부유층 옆에서 빈민들이 굶어 죽어 갔다. - P211
[에드워드 7세는] 죽을 때 까지 애인은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막 공식 정부이자 가장 사랑한 상대는 앨리스 케펠. 그녀의 증손이 현 찰스3세의 애인이었다가 재혼 상대가 된 커밀라 볼스다. -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