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 민음사tv 채널에서 같은 책관련 전시를 홍보하고 있더라. 소전서림의 <구보의 구보>






청담동에 있는 소전서림은 "도서관"이지만 유료이고 연회비 10만원에 매일3시간 이내 이용이며 그 이상은 회원도 시간당 6천원을 내야한다. 비회원의 하루 이용료는 5만원;;; 이런 이용규칙이 도서관이라는 개념과 어울리는가, 에 대해 개관시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이용객이 꽤 있는 것 같다. 


두 채널에서 소개하는 바로는 이번 전시는 박태원 작가의 <구보씨의 일일> 연재 9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고. 연재 당시 '바로 그' 이상이 그린 삽화를 살린 특별판도 나왔다. 


민음사tv에서는 전시장 밖 소전서림의 책장에 있는 책들도 소개해준다. 









어쩜 아는 책이 하나도 없어;;;;


우리집에 있는 구보 씨를 꺼내서 읽었다. 정말 몇십 년 전에 시험 공부로나 읽었던 소설이라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서 거의 모든 내용이 새롭다. 아마 예전에 일부만 발췌해서 읽었던 것 같다. 


소설 초반부터 나오는 "늙은 어머니"와 26살 먹은 아들에 헙, 하고 놀라고 말았다. 구보씨가 이렇게 젊었어? 나는 이 늙은 어머니가 밤에 잠 못 이루고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는거다. 작년 10월말 이후에 큰애의 귀가가 늦어지면 많이 불안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제 밥벌이 못하는 아들에게 장가를 가라는 망언은 하지 않는다. 뉘집 딸 고생 시키는 사태는 아직은 상상할 수 없다. 작년에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다음에 계속 쓸쓸해 보이기는 하지만, 원래 인생은 그런거 아닐까. 


구보가 쓸쓸하다며 하지만 옛인연이나 옛친구를 만나기는 불편해하며 거리를 쏘다니고 여자들이 예쁘네, 현명하네, 천하네 속으로 평가질을 하고, 다른 커플들이 어울리네 아니네, 하며 예전의 인연을 아쉬워하며 또 친구들의 바람 핀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방"에 간다. 심지어 어떤 여급을 찾아 다른 다방으로 귀찮게도 자리를 옮긴다. 구보는 낮에 집을 나섰는데 이미 한밤중이다. 그런데 이 다방이라는 장소가 찻집이라기보다 술집 그것도 전문 접대부를 고용해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술집, 어쩌면 룸살롱 같아 보인다. 여자의 외모를 평하고 여자가 처녀인지 아닌지 따져보는 이런 주인공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 소심한 이십대 문인의 하루는 생각보다 꽤 찌질하고 퇴폐적이고 재미도 없고 이미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새로울 것도 없다. 식민지 모더니즘이라고 줄치고 외웠는데. 구보씨, 이럴거면 집에 가. 마지막에 효심 어쩌고 그러지 말고. 이런 류의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홍상수 영화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소설의 북아트 전시회를 서울의 부자동네 청담동에서 한다니 재미있는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시회 내용 중 송승언 작가가 다시 쓴 <구보씨의 일일> 텍스트는 조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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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11-12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책 북펀딩에 참여할까말까 엄청 고민했었어요. 이상 삽화 들어간 책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요즘 압구정 청담 힘들어서 거의 안 가보는데 소전서림 전시 가보고 싶어요. ㅎㅎ

유부만두 2023-11-12 22:56   좋아요 1 | URL
북펀딩 했던 책이군요. 이상의 삽화가 궁금해요.

2023-11-22 0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2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파이 살인 사건> 영화 나왔다는데요????? 잠깐 기다려! 책 읽고 올게요! 

(코퍼필드, 너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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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s Prize for Fiction A Year of #ReadingWomen - Women's Prize for Fiction (womensprizeforfiction.co.uk)


소설 제목보다 작가 이름이 더 크게 들어간 이 책은 작년 여성소설상Women's Prize for Fiction 수상작이다. (링크에는 <햄닛>을 비롯한 28년간의 수상작 목록이 있다.) 제목은 붉은 머리칼 때문에 Copperhead로 불린 주인공의 별명이지만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재해석이라고 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지지리 고생하다 성공하는 인생.


모셔둔 묵직한 디킨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술술 잘 읽힌다. 클레어 키건의 얇지만 밀도 높은 책에서 신경써서 읽어야 하는 의미나 묘사와 달라서 두꺼운 책의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속도가 붙는다. 디킨스의 시대 어린이는 아무리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친 아버지와 돈이 없으면 고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 복지가 약한 현대에도 비슷하겠다. 초등 3학년 아이가 겪게 되는 학대에 가까운 취급(무능한 엄마는 어쩔)은 옛날이나 지금의 독자들 마음을 울린다. 데이비드 코퍼필드 주위에는 한줌의 은인들과 무리의 사기꾼들이 들끓는다. 어른이 된 화자는 어린 데이비드가 얼마나 쉬운 먹잇감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능청맞은 화자는 이미 당시의 유명 작가인 디킨스의 생애를 각색해서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내놓았다. 얼마전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주인공을 백인이 아닌 배우로 설정한 것이 특이해 보인다. 바로 이 소년의 성장담 + 권선징악 + 가문과 교육의 중요성이 현대 소설에서 그것도 "여성소설"에서 어떻게 구현됬을지 궁금하다.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지금 디킨스 700여쪽 남은 분량이 귀찮아 지려고 한다. 건너뛰고 코퍼헤드로 갈까 말까.



사실 이런 재해석 소설이나 영화는 출발점이 되는 옛소설들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꾸 미뤄놓게 된다. 스미스의 <온 뷰티>가 그렇다. 이 소설은 <하워즈 엔드>의 오마주 작품이라는데 포스터 소설 <모리스>를 읽고 별로였기에 선뜻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온 뷰티>의 번역본 소개글에는 포스터의 작품과 연결이 언급되지 않는게 의외이고 그래서일까, 별점도 박하다. 그래도 난 제이디 스미스의 소설을 읽고 싶다. 



읽을 책은 내 앞에 쌓여있고 설거지랑 빨래도 쌓여있고 흰머리는 올라오고 애 학원 등록도 해야하고 벌써 열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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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 한참을 묵혀두었다가 읽었다. 표지 안에 담긴 보석을 하마터면 못 만날 뻔. 중요한 것에 표지랑 제목도 포함시키자. 


주인공이나 화자의 직업이 작가거나 작가 본인이 반영된 소설은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가가 직접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프로필을 많이 반영한 모습으로 천연스레 살인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까칠한 전직 형사, 현 탐정 대니얼 호손과 함께. 이미 코넌 도일 재단에서 새로운 홈즈 시리즈 작가로 공식 인정까지 받은 작가 앤서니 호로위츠는 탐정 호손의 옆에서 21세기 왓슨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왓슨이 셜록 홈즈를 아무리 우러러보았다 한들, 헤이스팅스가 푸아로를 아무리 존경했다 한들 바로 그때 내가 호손을 사랑한 것에는 미치지 못했을 테고, 나는 그가 내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376)



재미있다. 중요한 건 살인이라고 제목부터 강조하듯이 중심은 살인 사건이다. 작가/화자는 중간 중간 사건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맨 마지막엔 그 복선 혹은 힌트가 언제 어디쯤에 놓였었는지, 독자가 혹시 알아차렸는지 확인시켜준다. 내가 놓쳤더라도 괜찮다. 작가가 (소설 안에서) 나보다 조금 더 헛발질을 했기에 홈즈형 호손을 상대로 무력해 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소설!이라고 계속 화자는 상기시키고 있다. 이거 소설입니다, 알죠? 작가가 정말 재밌게 잘 쓰지 않습니까? 내가 쓰고 있다고요. 독자님덜 여기서 손님이심. 함정이 여럿 있으니까 알아서 피하십쇼.


초반부터 홈즈 말고 호손은 작가 (존 아니고 토니 아니고 앤서니)호로위츠에게 사건 해결에, 그러니까 범죄 논픽션을 쓰면서 군살이나 뻔한 가짜 장식을 붙이지 말라고 화를 낸다. 사건과 그 세부사항에 집중하고 실마리를 찾으라고 작가에게 면박을 준다. 자신이 참고인들과 면담 할 땐 끼어들지 말라고 윽박을 지르고 개인적 친밀감은 차단한 채 수사의 진행 상황도 전부 공유하지는 않는다. 호손이 버럭할 땐 무서운 폭력성이, 편견이, 어쩌면 정의감이 보인다. 그리고 결국 그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낸다. 이 책이 증거잖아요? 사건 해결 했고 작가는 책을 냈고. 바바요, 군살 없이 딱떨어지는 진짜배기 범죄 소설.


재미있다. 왓슨보다 더 재치있는 말장난과 과장된 자기비하 아래 놓인 이야기 진행 솜씨는 얄밉도록 훌륭하다. 시체를 목격하고 피냄새에 정신을 놓아버렸다면서도 한 페이지 꽉 꽉 채워서 그 살벌한 난도질을 묘사해 놓아 나도 어떤 비린내를 맡았고요? 이렇게 쉽게 끌려가는 독자인 내가 추리에서 그를 앞질렀다는 건 큰 착각인 것이다. 호로위츠 선생, 당신이 이겼소. 


재미있다. 중요한 건 살인이고 중요한 건 이야기 솜씨이다. 앤서니의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이제라도 읽어야겠다. 내가 져서(응?) 분한 마음과 책의 마무리에 조금 여유가 보여서 별 하나를 빼는 꼬장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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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11-10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몇군데 웃음포인트가 ㅜㅜㅜ
”표지와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네?? ㅌ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자님덜 여기서 손님이심“…
“져서 분한 마음… 별 하나 빼는 꼬장을 부려본다“
포인트에서 웃었어요

유부만두 2023-11-11 10: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톤을 좀 더 과장해봤어요. 아주 능숙하게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문장에 과몰입하면서 따라가게 되거든요. 재밌습니다. 추천해요.

책읽는나무 2023-11-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와 제목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았는데 살인이 더 중요한 거였군요?ㅋㅋㅋ
이 책은 만두 님이 쓴 책인 줄 알고 읽는 느낌일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23-11-12 09:22   좋아요 1 | URL
어데예~ ㅎㅎㅎ
책 정말 재밌어요! 추천합니다.


psyche 2023-11-22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재미있겠다

유부만두 2023-11-22 09:09   좋아요 0 | URL
언니야 이거 이거 꼭 읽으세요. 이거 시리즈래.
언니야 이거 꼭 읽어!!!!!!! 나랑 손 잡고 수다 떨게!
 

십대 때 뫼르소에 동일시했던 화자와 뫼르소 같은 류의 인간을 비난하는 전직 형사 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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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10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 문장은 희진쌤 빙의...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1-10 16:39   좋아요 2 | URL
이 장면 읽으면서 을매나 놀랐게요?!?!

공쟝쟝 2023-11-12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은 카뮈 뺨 맞는 소리 ㅋㅋ

유부만두 2023-11-12 11:38   좋아요 0 | URL
소설 후반부에는 카뮈가 정말 글 잘쓴다, 라고 나와요.
뺨 때려 놓고 미안했나봐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