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와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 한참을 묵혀두었다가 읽었다. 표지 안에 담긴 보석을 하마터면 못 만날 뻔. 중요한 것에 표지랑 제목도 포함시키자.
주인공이나 화자의 직업이 작가거나 작가 본인이 반영된 소설은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가가 직접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프로필을 많이 반영한 모습으로 천연스레 살인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까칠한 전직 형사, 현 탐정 대니얼 호손과 함께. 이미 코넌 도일 재단에서 새로운 홈즈 시리즈 작가로 공식 인정까지 받은 작가 앤서니 호로위츠는 탐정 호손의 옆에서 21세기 왓슨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왓슨이 셜록 홈즈를 아무리 우러러보았다 한들, 헤이스팅스가 푸아로를 아무리 존경했다 한들 바로 그때 내가 호손을 사랑한 것에는 미치지 못했을 테고, 나는 그가 내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376)
재미있다. 중요한 건 살인이라고 제목부터 강조하듯이 중심은 살인 사건이다. 작가/화자는 중간 중간 사건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맨 마지막엔 그 복선 혹은 힌트가 언제 어디쯤에 놓였었는지, 독자가 혹시 알아차렸는지 확인시켜준다. 내가 놓쳤더라도 괜찮다. 작가가 (소설 안에서) 나보다 조금 더 헛발질을 했기에 홈즈형 호손을 상대로 무력해 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소설!이라고 계속 화자는 상기시키고 있다. 이거 소설입니다, 알죠? 작가가 정말 재밌게 잘 쓰지 않습니까? 내가 쓰고 있다고요. 독자님덜 여기서 손님이심. 함정이 여럿 있으니까 알아서 피하십쇼.
초반부터 홈즈 말고 호손은 작가 (존 아니고 토니 아니고 앤서니)호로위츠에게 사건 해결에, 그러니까 범죄 논픽션을 쓰면서 군살이나 뻔한 가짜 장식을 붙이지 말라고 화를 낸다. 사건과 그 세부사항에 집중하고 실마리를 찾으라고 작가에게 면박을 준다. 자신이 참고인들과 면담 할 땐 끼어들지 말라고 윽박을 지르고 개인적 친밀감은 차단한 채 수사의 진행 상황도 전부 공유하지는 않는다. 호손이 버럭할 땐 무서운 폭력성이, 편견이, 어쩌면 정의감이 보인다. 그리고 결국 그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낸다. 이 책이 증거잖아요? 사건 해결 했고 작가는 책을 냈고. 바바요, 군살 없이 딱떨어지는 진짜배기 범죄 소설.
재미있다. 왓슨보다 더 재치있는 말장난과 과장된 자기비하 아래 놓인 이야기 진행 솜씨는 얄밉도록 훌륭하다. 시체를 목격하고 피냄새에 정신을 놓아버렸다면서도 한 페이지 꽉 꽉 채워서 그 살벌한 난도질을 묘사해 놓아 나도 어떤 비린내를 맡았고요? 이렇게 쉽게 끌려가는 독자인 내가 추리에서 그를 앞질렀다는 건 큰 착각인 것이다. 호로위츠 선생, 당신이 이겼소.
재미있다. 중요한 건 살인이고 중요한 건 이야기 솜씨이다. 앤서니의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이제라도 읽어야겠다. 내가 져서(응?) 분한 마음과 책의 마무리에 조금 여유가 보여서 별 하나를 빼는 꼬장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