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읽기 시작한 뇌과학 책들이 어렵지 않아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몇달 전부터 끌고 있던 챈들러 작품집 하권도 완독했고요. 그의 말년작에는 애잔할정도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말로 탐정이 나와서 측은지심도 느꼈습니다. 전자책 캐시백으로 읽은 <암컷들>은 넘치는 예시에 어지러웠지만 '여성다움'이란 편견은 쓰레기통에나 던져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교양고전독서>는 좀 쉽게 가볼까 싶어서 읽었는데 이 책이 고전 독서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저자는 따끔하게 얘기하더군요. 책은 자상한 문장으로 쓰였지만 선생님의 깐깐한 톤이 지배적이라 아주 재미있는 독서는 아니었고요. 이제부턴 읽고 몇줄이라도 기록을 남겨야지 요즘 북플에 예전 독서한 책이라고 올라오는 것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계속 놀라는 중입니다. 맞다. 그래서 뇌과학, 기억력 쪽 책을 읽기 시작했네요. <오토라는 남자> 영화에 나오는 책이라 읽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기대 이상으로 기괴발랄난리부르스심오문학 올인원이라 재독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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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01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치는 예시 ㅋㅋㅋ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저도 다시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불가코프는 왜 동물들에게 말을 하게 했는가.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02 15:12   좋아요 1 | URL
말 많은 사람들 만으로는 부족한가봐요. 개도 고양이도 다 할 말 참지 않고 쏟아내자!!!

단발머리 2023-10-01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he Brain> 저 안 읽었는데 표지 친근한 거 무슨 일일까요? 혹시 그 사정을 아시면 제게 좀 알려주시고요.
이 중에서 저는 <하비비>를 제일 먼저 도전하고 싶어요. 만화이고.... 에..... 성경과 코란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02 15:16   좋아요 0 | URL
하비비는 기독교인에겐 너무 쎈 이야기 아닐까 싶은데요? 근데 또 이게 미국백남 작가 작품이라 단발님의 관심사 중 하나인 “오리엔탈리즘”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을 거에요. 해주셈.

더 브레인 책은 알라딘 메인 화면에 많이 올라왔었어요. 저도 거기에 낚인…

호시우행 2023-10-02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쁜 목록표는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우고 싶네요. 알려주세요.

유부만두 2023-10-02 15:11   좋아요 0 | URL
북플의 독보적 칸에서 읽은 책 등록하고 히스토리 보기 화면을 캡쳐했어요. ^^

새파랑 2023-10-02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9월에 엄청 많이 읽으셨네요~!! 겹치는 책이 하나도 없다는... 10 월도 화이팅입니다~!!

유부만두 2023-10-02 20:58   좋아요 1 | URL
네, 10월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 새파랑님도 화이팅! 입니다.
 

10년전 읽었다는데 기억이 안나;;; ㅠ ㅠ

http://bookple.aladin.co.kr/~r/feed/69768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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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의 저자이기도 한 뇌과학자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을 읽었다. 전에 읽은 뇌과학 책들이 뇌의 작동 방식을 중심으로 그 무한한 가능성을 찬미했다면 이번 책은 제목에서 보듯이 '기억력'이라는 하나의 측면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이면의 '망각'을 새롭게 바라보라 청한다. 


잘 잊는 편이다. 나이 들수록 그렇고 (위험한 수준이라는 냉장고에 핸드폰 두기를 한 적도 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 시간 알람이나 일정 알림을 자주 이용한다. 그리고 노환이신 부모님들을 뵈면서 기억력과 치매에 대한 걱정이 늘어간다. 


기억은 망각이 적절하게 일어나야 의미 있다는 저자의 설명에 납득되었다. 자잘하게 많은 외부 정보를 마냥 쌓아만 둘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지금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데 에너지를 많이 써야하고 힘겨워진다. 지워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도 제대로 잊어야 하는 것이다. 


치매는 뇌에 쌓이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찌꺼기 탓이라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숙면을 취하는 것이다. 밤에 제대로 잘 자고 건강한 식습관, 운동, 비타민 D 섭취를 하라고 권한다. 기억력은 신체의 노화와 마찬가지로 결국 잃을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집중력과 반복을 통한 장기 기억은 그 양이 무한대로 늘어갈 수 있다고 한다. 집중을 할 땐 온 몸의 신경을 이용하는 방법을 권한다. 보고 읽고 듣고 말해보고 스스로 질문도 하면서 반복. 기억해 낼 수 없는 '사소한' 것들에 너무 짜증을 내는 대신 간단히 검색해서 스트레스를 낮추라고. 검색 엔진을 사용한다고 해서 내 기억력이 더 빠르게 퇴화하지는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때 접한 집안 어르신의 치매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저자의 경험처럼 가까운 가족을 몰라보고 화를 내는 그 분에게 가족들은 그저 따뜻한 손길과 보살핌을 주어야 한다고. 기억은 못하더라도 그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좌절하고 만다. 마음이 부서지는 것이다. 


<기억의 뇌과학>은 나에게 욕심이나 요행을 바라지 말라고, 조급하거나 겁을 먹지도 말라고. 조금만 느긋하게 노화나 망각을 받아들이고 내일 보다 젊은 오늘, 나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라고 말해준다. 공쟝쟝님의 말씀대로 ('공자님의 말씀'으로 읽힌다면, 당신은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얼렁 낮잠/밤잠을 챙기시길.) 따뜻한 위로의 뇌과학 책이다. 그래 괜찮다. 한대접 부쳐놓았던 녹두전을 빼놓고 시댁에 가서 차례상에 못올렸지만, 아이들이 오늘 아점으로 먹고 있으니 나는 아직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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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9-30 1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만 궁금증과 두려움이 빛의 속도로 밀려오네요 ㅋㅋㅋㅋㅋㅋ 전 일평생 수면에 진심인 사람인지라 그 점은 반갑고요. 녹두전은….
맛있겠네요! 🤤🤤🤤

유부만두 2023-10-01 08:09   좋아요 0 | URL
바로 그럴 때 이 책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건망증과 치매에 대한 설명을 공포를 빼고 해주거든요. 하지만 마냥 희망에 찬 이야기는 아니에요. 인간은 모두 늙고 죽을테니까요. 그런데 전 오늘도 새벽에 깨서 이리 방황하고 있습니다. ... 녹두전은 억울하게도 맛있습니다.

moonnight 2023-09-30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려워요 치매ㅠㅠ 저도 읽고 위로받아야겠어요ㅠㅠ 유부만두님 표 녹두전 맛있겠어요@_@;;;

유부만두 2023-10-01 08:10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차근차근 다정하지만 너무 무르지 않게 뇌와 기억력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추천요. 그리고 녹두전 .... 맛있어요. 한끼에 다 끝나버린 나의 노동이죠....
 

연휴를 한글날까지 즐기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세상엔 멋진 팔자를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아줌마도 있고. 어쩌겠나.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크흐, 멋지네. 나 지금 시댁에서 귀환해서 맥주 마시는 중) 그래, 남편님아, 너를 택하고 나는 지금 이 운명으로 들어섰어. 그리고 요즘엔 남편 만큼 정보라님도 안톤 허님도 좋아졌어. 그래서 이 책.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 활동 시작은 아홉 살 때였다고 했다. 그 아홉살 꼬마의 심정을 내가 너무나 잘 알겠기에 눈물이 났다. 그 아이는 (그리고 미래의 독자는) 지금 여기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세계로 도망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은 ...

"들여다보면 볼수록 러시아와 폴란드 작가들 중에는 광기와 천재적 창조력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사람 혹은 그 양쪽 모두를 당당하고 편안하게 손에 쥐고 세상에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거침없는 상상과 표현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도 저렇게 창의적으로 제정신 아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어린 시절과 겹치는 정 작가의 경험과, 불타는 러시아 소설을 향한 애정을 안다. 그래서 명절에 시댁에서 몰래 몰래 읽던 이 글에 (시댁에 갈 때 읽을 책 두 권 챙겨가는 아줌마 여기 있습니다) 토란 만큼 굵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명절이란 그간 밀린 친척들의 소식과 정치 뉴우스를 듣는 시간.  


"산다는 것의 무서움을 알려고 하지 않는 놈들 중에는 사기꾼 부류가 있으며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아주 많다." 


그렇다. 그런 놈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정보라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강한 열망의 작가들과 그 이야기를 읽고자 주먹 불끈 쥔 독자들이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투쟁. 그렇다. 나는 이번 명절도 살아냈다. 집에 왔다. 설날 까지 또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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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9-29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명절도 살아냈다.... ㅠㅠㅠㅠ

..........에 제가 기립박수 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유부만두님!
이제 집으로 돌아오셨다니 너무 반갑고 다행입니다. 푸욱 쉬시구요!!
내일은 매일글쓰기8일차임을 알려드립니다^^

유부만두 2023-09-30 08:18   좋아요 1 | URL
시댁에 가는 건 숙제 같아서 매년 무게가 더해집니다. 나중에 제 아이들도 이러겠죠. 지금도 자기들 방에서 나오질 않아요. ㅋ
자, 오늘은 8일차 입니다. 벌써 일주일을 채웠네요. 많은 분들은 이미 매일 리뷰나 책 이야기를 쓰고 계십니다만 전 컴 앞에 앉으려면 각오가!!!! 으얏!! 기합이!!! 필요합니다!
(더하기 카페인도요) 단발님도 명절 잘 지내고 계시나요?

단발머리 2023-10-01 21:53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친정 식구들이랑 식사해서요 ㅋㅋㅋㅋㅋㅋ지금 재활용 마치고 막 앉았어요.
일단 오늘의 일정은 끝났고요. 내일은 다시 놀리, 놀리, 놀놀놀놀놀놀놀놀놀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9-29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아 첫째줄 저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진짜 연휴 시작!

유부만두 2023-09-30 08:18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명절 전에 시험 문제 던지고 연휴에 들어가신 자냥선생님!

moonnight 2023-09-3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습니다. 유부만두님^^ 시댁에서 (무사히) 귀환해서 마시는 맥주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3-10-01 08: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남은 연휴 책이랑 영화를 즐겨보렵니다! 문님께서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 그래픽 노블 <하비비>를 도서관에서 만나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다. 동네 슈퍼에서 1+1 세일 중이던 파스타 소스를 둘 샀고 2+1 탄산수도 여섯 개나 챙겼기 때문이다. 카톡으로 들어온 '상호대차 신청 도서가 준비되었습니다' 메세지는 내가 건널목을 건너기 직전에 받았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만났을 땐, 내일 올걸 그랬지. 이렇게 두껍고 무거운 책일줄은 몰랐지. 그런데 알았어야지. 그 유명한 <담요>의 작가의 책인데. 



<담요>가 기독교 안에서 살아내며 성장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면 <하비비>는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과 (이방인이) 경전과 계급, 온갖 굴레를 살아내면서 물/생명/글/잉크를, 결국 이야기와 구원을 추구하는 이야기다. ... 라고 쓰고보니 과연 그랬나? 싶다. 



초반부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페르세폴리스>가 연상되는 여성 잔혹사로 시작한다. 주인공 여성 도돌라는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다 그곳에서 버려진 어린 흑인 아이(잠)을 데리고 사막으로 도망친다. 도돌리가 겨우 열두 살, 잠(후에 하비비)은 세 살 때의 일이다. 표지의 두 사람이 바로 이들이다. 이 두사람은 모자로 보기에도, 연인이 되기에도 매우 불안한 관계다. (성경과의 의도적인 병렬구조는 마리아-예수 모자관계를 연상시킨다. 피에타의 두 인물이 얼마나 애절한지 떠올려본다) 도돌라는 하비비를 돌보며 살아가다 납치되어 할렘에 갇히고 강제로 임신 출산을 겪는다. 하지만 어린 도돌라와 성인 도돌라가 함께 교차하며 등장해서 함/잠/하비비 등 여러 이름의 아기/소년/남자 등으로 복잡하며 불리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갸가 갸라는 건 조금 더 읽어야 나온다. (이거 스포일러가 되어버렸군요)


두 사람의 기구한 운명과 인연 보다도 이들을 둘러싼 환경/문화/적들을 풀어내고 그려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이들은 코란 경전의 글자들로 하나씩, 그림 같이 보이는 그 문자들의 틀로 보호도 받고 그 안에 갇히기도 한다. 성경과 코란의 차이점을 짚어낼 때마다 세계는 멀티버스로 갈라지는 것도 같다. 노아의 아내는 방주에 탔는가. 노아의 아들 함은 왜 저주를 받았는가 (받은 건 맞대?), 아브라함이 바치려던 '아들'은 이스마엘인가 이삭인가, 그리고 ... 무엇보다 시초에 있었던 말씀 혹은 잉크 한 방울. 


마지막 장면도 그닥 희망적이지 않고 묵직하게 의무감을 안겨준다. 그러니까, 살자. 살아보자. 날자, 날자꾸나.


대상화가 되어 자기 자신을 잃고 살았던 도돌라는 결국 하비비가 필요했으니 아들이 있어야 하는 어머니/여성인 건가. 명절에 제사 모실 아들이 필요한건가. 이런 식으로 여성은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구나.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미국인 백인 남성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불편하다. 여성과 타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의식을 벗으려 애쓰고 있는데 과연 그 작업에 성공했는가.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폭력의 기운에 그는 얼마만큼 협조하고 있는가. 여성은 끝까지 주체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슬람 문화에 대한 '너그러운' 저자의 시선은 오리엔탈리즘과 어떻게 다른데? 


복잡한 내 마음을 흔들 정도로 그림은 역동적이다. 등장 인물들이 도망가고 쫓고, 추락하고 폭발하는 장면 장면들은 흑백으로 정지된 컷안의 그림이 아니라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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