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명문화하지 못한 새해 숨은 목표가 하나 더 있으니, 그건 1시 이전 취침이었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1시 이전 취침,을 잘 지켜본 적이 없다. 물론 반대급부로 아침잠이 많아 특히 수면이 부족했던 날은 완전 걸인의 형상으로 출근할 때도 있다. 내가 퇴사 충동을 느꼈던 열에 일곱 정도는 (열번이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침 출근 시간이었다.
명문화하지 못했던 이유는 지키지 못할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렇고. 날마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데, 오늘은 서재, 아니 정확히는 메피님 때문이다. ㅋㅋ 혼자 서재 조별이벤트에 전략을 막 짜고 있었는데, -_- 결국은 무전략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요상한 결론을 얻었다. (괜찮아요 메피님 경제만 살리면 돼요)
이렇게 서재 때문에 하얀 밤을 보내는 날이 점점 늘어나지만, 나는 이 서재를 결코 버릴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청춘의 문장들에 나오는 부분으로 대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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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반 다인이나 똑똑한 에코와 톨킨을 제외하면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 어떤 애잔함 같은 것을 차마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 그런 소설을 가리켜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고 말했다. 식탁에 앉아서 쓰는 소설이라는 뜻인데,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 듯 하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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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쓰지 못하니 '키친테이블노블'을 쓰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방에 있는 침대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기대어 서재에 페이퍼를 쓰고 있으니 룸베드페이퍼,정도는 쓰고 있는 셈이다. (원래는 베드페이퍼라고만 썼는데 제목이 너무 옐로우서재리즘틱해서 -_- 말이 안되는 거 알지만 앞에 룸을 붙였다)
다른 사람도 다 그럴 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여기에 뭔가를 써내려간다는 일을 통해 분명 위로 받고 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내기도 하고,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표현하기도 하고, 일상에 즐거움과 새로움을 부여하기도 하면서. 그러니 나처럼 소설을 쓸 깜냥이 턱없이 부족한 범인에게, 이 서재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그저 읽어주고 있을 뿐인 당신도. ^^
1시 이전 취침,이라는 목표는 아무래도 그냥 기억속에서 흩어져버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