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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녜 - 백년 전 북간도 이야기 ㅣ 보림 창작 그림책
문영미 글, 김진화 그림 / 보림 / 2012년 6월
평점 :
고 만 녜
발음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고만녜는 여자 아이를 고만 낳아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후남이, 끝녀, 종말이 등등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시대에 사셨던 할머니들의 이름은 다 고만고만하다. 고만녜는 나중에 개명을 해서 김신묵이 된다. 개명한 이름도 내가 듣기엔 썩 여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만녜 보단 귀하게 느껴진다.
여자들의 이름 따위는 함부로 지어지던 시대가 불과 100년 전이라는 사실에 놀랍다. 1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이런 이름으로 불리어졌겠구나 싶으니 우리네 할머니들이 평생 동안 그런 이름들로 불려지면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두 아이의 이름을 지어봐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마음에서 출발하고, 얼마나 신중해야 하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지 안다. 자녀의 이름을 대충 짓는 사람은 없다. 이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름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만녜와 김신묵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아담으로 하여금 만물의 이름을 짓도록 하는 게 이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동물에 대해서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당시 여자들의 이름은 개 이름 짓듯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신중함 없이 그렇게 지어졌던 것이다.
어디 비단 이름 뿐이겠는가! 그 당시 여자들의 위치란 것은 가축과 비등한 것 같아 보인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입 하나 덜기 위해서 얼른 시집 보내고, 시집 가서는 시댁식구들 눈치 보며 살고.....고만녜 할머니가 시집간 곳은 측간(화장실)도 없어서 어두워진 뒤 으슥한 곳에 일을 해결해야 했단다. 시월드에서 볼 일을 그렇게 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히 상상이 안 된다. 여자라고 배려 받았던 것은 하나도 없던 시대에 살았던 고만녜. 그 고만녜가 바로 문영미 작가의 할머니, 다시 보태자면 문성근 님의 할머니,즉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고만녜 할머니, 문익환 목사, 문성근 전 대표의 계보를 보면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에 고만녜는 겨우 3년만 공부하였지만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였으며, 독립 투사 문재린의 아내로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셨던 문익환 목사와 문성근 님을 키운 훌륭한 어머니와 할머니로 평생을 사셨단다. 30년을 배우고도 그렇게 못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고만녜 이야기는 배움의 년수와 인간성이 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증명해 준다.
지금의 아이들은 고만녜 이야기가 남의 일 같아 낯설고, 지금과는 너무 다른 여성의 처지 때문에 생경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 쓰여진 이야기들이 불과 100년 전의 일이라는 것과 고만녜 할머니 같은 할머니들이 계셨기에 지금 여성의 위치가 이 정도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남들과 똑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것, 개똥이가 아닌 지금의 내 이름으로 평생 불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언제나 색다른 그림책을 선보이는 보림의 그림책을 보면서 즐거웠다.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몸은 그림을 그리고, 얼굴 부분만 옛날 사진을 오려 붙이는 방식이 신선했고, 그 얼굴들이 다 다르다는 것이 놀라웠고, 100년 전 사람들의 실제 모습인 듯하여 반가웠다. 지금 사람들의 서구화된 얼굴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얼굴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아마 100년이 또 지난 후에 이런 그림책이 나온다면 후손들도 '그 때는 얼굴이 이렇게 생겼네' 하면서 신기해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