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날씨가 흐렸다. 내가 사는 남가주에는 May gray and June gloom이라는 말이 있다. 5월 29일 아침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하늘을 보니까 말 그대로 May gray. 더구나 구름으로 꽉 찬 하늘을 올려다보니까 하늘이 구름을 덮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회색 이불.
그리고 곧 체리 시즌이 다가온다. 아직은 맛있는 체리가 없지만, 곧 통통하고 빵빵하면서 깨물면 달고 흥건한 과즙의 체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며칠 전에 코스트코에 가서 사 온 체리와 체리 크기의 우리 집 살구. 우리 집 뒤 과실나무 정원(?)에서는 사과도 나올 거고 그러면 시어머니가 열심히 사과잼을 만드시느라 바쁘실 거고, 오렌지도 살구 크기만 한 것이 열렸다고 한다. (정원에 가 본 게 10년은 되는 사람이라... 글구 다른 과일나무가 또 있는데 심지 않은 사람이라 잘 모름.) 레몬은 이미 너무 많이 열려서 길 가는 사람들 가져가라고 바구니에 담아서 우체통 위에 올려놓은지도 꽤 된다. (내가 아니고 시어머니가.. 아 놔~~.) 살구도 자꾸 커지고 그러면 언젠가 살구도 나눠먹게 되겠지.
작은 살구 때문에 생각난 아주 작은 난이다. 환자의 가족이 난의 나노사이즈라고 할만한 작은 보라색 난을 선물로 줬다.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모든 간호사에게. 아주 앙증맞아서 사진을 찍어봤는데 암튼 작다.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에게 애정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관 앞에 심은 꽃들이 제법 많이 자랐다. 작은 꽃들의 예쁜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아 즐겁다.
5월엔 내가 독보적 챌린지 1위로 마감이 될 것 같다. 대박! 많이 걷지는 않았어도 열심히 책을 읽고 밑줄 그은 것이 가져온 결과다. 6월엔 이미 여행도 잡혀 있어서 5월만큼 열심히 재밌게 책을 읽을 시간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5월에 읽고 있는 책 정희진의 <혼자서 본 영화>는 5월 31일 안으로 다 읽을 것 같은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아마도 6월이나 되어야 다 읽을 것 같다. 그리고 <동화 쓰는 법>은 5월에 다 읽을 수 있지만 너무 좋아서 일 년 내내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동네에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데 우리 옆집에도 심어져 있고, 우리가 사는 길에만 한 30그루가 넘게 심어져 있는데 이번에 이현의 <동화 쓰는 법>을 읽으면서 그 이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 나무가 가장 섹시한 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 나무가 아주 깔끔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한 해를 지나 봄까지 진한 분홍색의 꽃을 피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아마도 그래서 이현 작가는 배롱나무(영어로는 crape myrtle)가 가장 섹시한 나무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꽃 색은 하얀색부터 다양하게 있다고 한다.
예쁘면서도 어디서나 잘 자라는 배롱나무는 한국에서는 철원이 배롱나무가 필 수 있는 경계선이라고 하는데 여긴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한국도 철원이 마지노선이라니까 가을에 이 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길.
이 책을 다 읽었다. 얇은 책인 것 같고 활자도 큰 것 같다. 전자책이라 확실히 모르지만, 행간도 널찍하고 글자 크기도 그런 것을 보면 종이책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암튼, 이 책을 다 읽고 다큐를 봤다. NHK에서 하는 다큐인데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나는 책보다 솔직히 이 다큐가 더 현실감 있고 더 좋았다. 하세가와 박사의 책이 한국어로 2021년 7월에 나왔는데 11월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다큐를 보고 알았다. 옮긴이의 글을 읽으면 다큐의 내용을 적은 듯한 느낌이 드는데 옮긴이가 이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보니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시간상으로는 맞는 것 같다.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하세가와 박사의 와이프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하세가와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비창의 2악장을 쳐준다는 부분이었는데 다큐로 보고 더 감동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이가 80이 넘었고, 그녀의 손은 Arthritis (관절염)이 한창 진행이 되어 피아노 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고, 등도 아주 많이 굽어서 힘들어 보였다는 것. 그러니까 삶은 책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기 보다 현실감이 팍 느껴지면서 삶의 고달픔과 처연함이 보이고 들렸다. 노년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던 우리 모두는 같은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더 확연하게 다가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https://www3.nhk.or.jp/nhkworld/en/ondemand/video/4001348/
Sonata No. 8 in C Minor for Piano, Op. 13 "Pathétique": II. Adagio cantabile - Horowitz
어쨌든, 세상엔 내가 모르던 책이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은데, 새 책도 계속 나온다. 달라는 더 내려가서 이제 1230원 대가 되었다.ㅠㅠ 진작 살 것을. 장바구니에 있는 책이 썩거나 상하는 것도 아닌데 왜 조바심이 나고 빨리 사고 싶을까??ㅠㅠ 참아야 하느니라. 달라 올라가길 기다리자.
은희경의 <새의 선물>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평범한 문학동네 표지를 한 책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새로 예쁜 표지로 다시 장만을 하고 싶다. 세실님까지 좋다고 하니까 <작별인사>도 읽고 싶고,
그리고 <낙원>과 <노이즈>를 비롯한 21권이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현 작가의 책도 읽어보고 싶다. 책은 안 썩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