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다들 잘 지내셨죠?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요. 지난번에 글을 올렸을 때 땡스기빙 데이가 다가온다고 했던데..
어쨌든 넘지 못할 것 같은 첫 학기를 무사히 마쳤어요. 1월 3일부터 내과 의사 밑에서 3달 동안 실습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파사데나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라 운전 시간이 왕복 2시간이 넘게 줄었어요. 그래서 신나요.) 학교 수업은 1월 8일에 시작합니다. 실습이 왜 일주일 먼저 시작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 더 먼저 끝날테니까 그건 또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처음으로 의사를 프리셉터로 두고 실습을 하게 될 거라서 무척 긴장이 됩니다.
어제 제 프리셉터가 될 의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어떻게 하면 아주 정중하게 보내면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고민을 많이 한다고 글을 더 잘 쓰는 건 절대 아니라서 결국은 평범한 이메일을 보낸 것 같아요. 이러다 보면 실력이 조금씩 늘겠거니 생각합니다. 이 학교에 다니면서 생긴 느긋하게 마음먹기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12월 8일은 남편의 생일이라 우리 부부와 해든이 N군 이렇게 단출하게 파사데나에서 좀 유명하다는 식당에 미리 예약을 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느라 일을 그만둔 것이 10월이라 수입은 없지만 이런 날 기분을 안 내면 또 언제 내겠냐 싶어서 고급 식당에 예약을 했는데 정작 남편은 맨날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우리의 노후가 걱정된다고,,^^;; 암튼 거기서 먹은 음식들이 맛있는 것보다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사진을 찍었죠.ㅋㅋ
베이컨 포테이토 뭐 어쩌고 했던 애피타이저인데 시간이 좀 지났다고 이름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ㅠㅠ
이건 머시룸 어쩌고 애피타이저고요. 거품 같은 것은 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12월엔 식당이 너무 붐비는 때라서 웨이트리스나 웨이터들이 음식만 주고 사라지는.. -.-;
이건 생일 주인공인 남편이 주문한 필레미뇽인데 아주 맛있었다고 하네요. 고기 위의 저 덩어리 같은 것은 허브가 들어간 버터인데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컸던 듯요. 대체로 대부분의 메뉴가 다 느끼했던 것 같아요.
우리 해든이가 시킨 스파게티 미트볼인데 미트볼을 아주 작게 만들었더라고요. 식사 후에 왜 이걸 주문했냐고 하니까 이게 젤 저렴한 거라고,, 아 놔~~~ 우리 해든이가 참 이상한 게 돈 없다고 아이 앞에서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아이가 늘 그런 식이에요. 뭐든 필요 없다고 해서 뭘 사주지도 않고.. 하지만 얼마 전 해든이가 교정을 시작했는데 어마어마하게 비싼.. 이렇게 +, - 하는 것 같아요. 끙
이건 제가 주문한 sea bass, 한국어로는 농어라고 하는군요. 역시 저 옆에 야채 위에 이 집의 시그니처 거품 소스가 살짝 보이죠? ^^;; 농어구이는 썩 맛있지는 않았어요.
이건 N 군이 주문한 오리구이에요. 역시 느끼하더군요. 일산에서 먹던 오리구이가 그리웠어요. ㅠㅠ
남편의 생일이 지나면 새해가 다가온다고 느껴집니다. 2023년은 정말 저희 가족에게 절대 잊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었던 해라서 좋았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하지만 제 인생에 언제가 가장 기억이 남느냐고 물어본다면 2023년이었다고 할 것 같아요. 제 결혼보다, 아이들이 태어난 해보다 올해 굵직굵직한 일들이 아주 많이 있었거든요, 제 수술을 비롯해서 남편의 형이 죽었고, 같은 나이인 제가 아끼는 제 사촌 여동생이 갑작스럽게 죽었어요. ㅠㅠ 남편의 형도 뇌암(맞나요?)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4개월 후에 죽었는데 제 사촌 여동생은 1월에 유방암이 의심된다고 해서 생검을 하고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지난주 금요일에 죽었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남편의 형이 죽었을 때도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사촌 여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은 정말…. 어려서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어려선 그 아이와 함께 도넛도 만들어 먹고 했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는데… 내년은 내가 아는 모두 무탈하게 보내게 되기를 미리부터 소망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지난번에 예상했던 대로 3과목은 A+를 받게 되었는데 실습과목인데다가 가장 까다롭다는 교수님을 제 지도 교수님으로 둔 덕에 겨우 pass 할 정도의 성적을 받을 것 같아요. 그 과목만 아직 성적이 안 나왔거든요. fail을 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해서 마음은 무겁진 않지만 간당간당하게 그 수업을 pass 하게 될 것 같아 좀 속상하긴 합니다. 그 수업은 실습수업이라 85점을 받아야 pass거든요. 다정한 교수님을 만난 다른 학생들은 하기만 하면 거의 100점을 주시니 그것도 참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랬는데 반면에 쉬운 교수님을 만난 아이들보다 어려운 교수를 만난 저희 그룹이 성적은 안 좋아도 배운 건 훨씬 많은 것 같긴 해요. 이게 또 인생과 닮았죠?^^;;
내년 1월 24일에 white Coat Ceremony가 있을 예정이라 거기서 학생 대표로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비디오로 녹화를 해서 제출하라고 해서 영어 발음도 안 좋지만 제출을 했어요. 갈수록 배짱이 늘어가는 라로씨입니다.ㅎㅎㅎ
그런데 저와 다른 학생이 제출을 했는지 저희 둘 중에 투표로 한 명을 뽑을 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들이 제출한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려서 다른 학생들이 저희들의 비디오 스피치를 보고 투표를 하는 거예요. 평생 첨으로 유튜브에 제 영상이 올라가게 되었답니다.^^;;
학생은 3분 길이로 말씀을 하게 되었는데 어쨌든 투표 마감은 12월 22일이에요. 그러니까 내일이 마감인데 아 글쎄 A라는 학생이 저에게 같이 하자는 문자를 보내왔지 뭡미꽈.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데 투표는 제가 더 많이 받을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닐 텐데, 그러면 제가 투표를 많이 받지 못할까 봐 저를 배려해서 같이 하자고 한 것인지…. 암튼 그 학생의 문자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요, 하지만 저는 왜 A가 저에게 저런 문자를 보내고 저희 프로그램 담당인 S에게 왜 같이 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생각할수록 같이 하고 싶지도 않고, 아예 안 하고 싶어졌어요. ^^;;
그런데 A가 계속 문자를 보내는 거예요.
저는 저희 학교 프로그램의 2021년, 2022년, 그리고 2023년의 White Coat Ceremony를 유튜브로 찾아서 봤는데 학생 둘이서 말을 하는 건 못 봤기 때문에 A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정말 혼동스러웠어요. 그러고는 제 결론은 아마도 A가 너무 하고 싶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신이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선수를 치는 거라고요. (자뻑이 심한가요^^;;)
그래서 A에게 답을 보냈습니다.
남편이랑 다른 친한 과 친구들은 A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같이 하라고 해서 그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렇게 할 경우 저희의 스피치를 3분에서 2분으로 줄여서 해야 하고, 더구나 다시 녹화를 해서 보내야 하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에 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쩌면 제가 대표로 스피치를 할 수도 있지만, 젊은 친구인 A에게 그 기회를 주기로 맘먹었습니다. UCLA에서 대표로 말을 하고 싶긴 했지만(네 제 주제 파악을 잘 못하죠.ㅠㅠ), 오히려 젊은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도 같았고요. 저 잘했쥬? ㅎㅎㅎ
그리고 N군이 파사데나로 이사를 갔어요. 혼자 살게 되어서 남편이랑 저랑 N군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집 청소도 하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하고 새로운 식탁도 조립해서 서프라이즈를 시도했었는데 아이가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더 기뻐해서 아이보다 저희가 더 기뻤어요. 남이 아닌 자식이라 더 기뻤을지도 모르겠어요. ^^;; 하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을 몰래 기쁘게 해주는 건 오히려 해주는 사람에게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진리입니다.ㅎㅎㅎ
Your mom은 접니다.^^; N군이 이사를 갔을 때 저는 학기 중이라 제대로 못 도와줬거든요.ㅠㅠ 늦게라도 청소도 해주고 식탁도 들여놓고 해서 마음이 한결 가볍더라고요. 엉터리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모 모습을 하고 있;;;
N군의 부엌인데 정말 암것도 없이 썰렁하죠?ㅋㅋ 부엌이 좁고 길어서 마땅한 식탁 찾기도 힘들었어요.ㅠㅠ 아이키아에서 식탁을 사 왔어요.
이건 남편이 식탁을 조립한 후의 사진이에요. 바 스툴을 주문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한다고 하니까 N군은 당분간 서서 먹는;;; 일부러 높은 식탁을 산 이유는 부엌이 좁으니까 식탁에서 대강 음식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아이랜드처럼 사용하라고 샀는데 사이즈도 그렇고 높이도 그렇고 키 큰 N군이 사용하기 좋은 것 같아요.
저건 N군이 얼마 전에 산 기타에요. N군은 리드기타를 연주하고 해든이는 민트색 베이스 기타를 연주합니다. 언젠가 둘이 함께 연주했는데 보기만 해도 흐뭇하더군요. 나중에 H양이랑 사위 D군까지 합류하면 근사한 그룹이 탄생하지 않을까 혼자 김칫국을 마셔봅니다.ㅋㅋㅋ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엔 딸아이의 베이비 샤워를 했어요. 다들 멀리 사니까 줌으로 했는데 덕분에 딸아이 친구들도 만나고 딸아이의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만날 수 있었어요. 물론 하와이에 사는 형님이랑 조카며느리랑 시누이들도 만나게 되어 반갑더군요. 이제 제 첫 손녀가 태어나기 전에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될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제 첫 손녀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게 되겠죠! 할머니가 되기 전의 크리스마스, 뭔가 무지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
이 케이크는 딸아이의 시어머니가 베이비 샤워가 있던 날 준비해 주신 케이크라고 하는데 저런 옛날스럽게 생긴 케이크 넘 오랜만에 보지 않나요? >.< 그러니까 pre파리바게뜨 시절? ^^;;;
그러고 보니까 올해 또 다른 건 제가 2019년부터 써오던 5년 일기장을 올해 다 쓰게 되었네요. 2019년엔 익숙하지 않아서 일기를 쓴 날보다 안 쓴 날이 많았는데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더군요. 2023년도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는 매일 일기를 빠지지 않고 썼는데 11월부터 안 쓴 날이 가끔 보이고 final이 있기 2주 전부터는 안 쓴 날이 쓴 날보다 더 많네요. 그래도 어제 기억을 더듬어 한 줄이라도 기억하는 대로 썼습니다. 일기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알라딘에 들어오게 된 거고요.
저는 FNP라는 프로그램의 학생인데 요즘 PMHNP 프로그램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그런데 저희 학교에는 그 프로그램이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는데 UC 학교들이 post master's certificate program으로 만들어 놔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들을 수 있게 해놨어요. 처음에 저는 DNP 과정을 하려고 했는데 한 학기를 보낸 지금은 DNP보다 시급한 것이 PMHNP 프로그램을 이수해서 2가지 NP가 되는 것이 새로 생긴 목표입니다. DNP는 급하지 않으니까 NP로 직업을 구해서 일을 하다가 할 수도 있고 아니면 PMHNP의 DNP 프로그램으로 옮겨갈 수도 있고, 어쨌든 그런 경계에 서있다면 서있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인생의 경계는 확장이 되기도 하고 축소가 되기도 하고 그냥 그대로이기도 하니까요. 저도 처음엔 학교만이 답이고 학력이 높아지는 것만이 나를 더 잘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자꾸 생각이 바뀌네요.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전자책이 없어서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했던 은희경 작가의 <또 못 버린 물건들>의 전자책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바로 주문했습니다. 그 책과 함께 믿고 읽는 윌리엄 트레버의 <운명의 꼭두각시>도 주문했어요. 요즘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고 수세미를 짜고 있어서 책을 잘 읽지 못하고 있는데 얼렁 다 만들어서 빨리 책을 다시 손에 잡고 싶어요. 그리고 전자책이 나왔다면 <찰랑한 나날>과 <푸른색 루비콘>을 함께 주문했을 것 같은데 아직 전자책이 안 나온 따끈한 새 책들이라 많이 아쉬웠어요.
월요일에 같은 과에 있는 한국인 3명과 함께 알라딘 중고가게가 있는 곳 근처에서 고기를 먹고 알라딘 중고 가게가 있는 건물에서 빙수를 먹었는데 빙수를 다 먹고 제가 알라딘 중고에서 책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저를 원시인 보듯;;; 요즘 누가 책을 읽느냐며,,, ^^;; 가뜩이나 그 아이들보다 나이도 많은데 더 고인돌 취급;;; 그래도 책을 읽는 건 언제나 기쁨이죠, 누가 뭐라고 하든!!!^^
저와 제 옆에 앉은 검정 옷의 학생은 FNP 프로그램이고, 나머지 두 학생들은 AGACNP 프로그램의 학생들이에요. 저 두 사람 말고 한국인 두 명이 더 있는데 한 명은 엄마가 한국에서 오셨다고 해서 나오지 못했고, 다른 학생은 함께 하려고 했는데 그날 갑자기 일을 하게 되어 나오지 못했어요. 저와 회색 옷을 입은 학생만 20대가 넘어서 미국에 왔고 하얀색의 옷을 입은 학생은 여기서 태어나서 한국어를 잘 못해요. 그리고 검은색 옷을 입은 친구는 15살에 미국에 와서 그런가 한국어와 영어 둘 다 잘해서 대화가 잘 통해요. 점점 친구들의 나이가 어려지는 라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