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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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준 - 모모

(<사랑 없이는>에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p.120~122)


이 리뷰의 제목은 235페이지 작가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김살로메 작가의 [라요하네의 우산]을 받아서 읽으며 다양한 인물을 그려내는 그분의 솜씨에 당혹한 느낌마저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소설집을 읽으며 가끔은 자상한 언니같고, 때로는 허물없는 친구같고, 때에 따라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주는 엄마 같지만 그분은 나와는 다른 실력의 뿌리가 깊은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살로메 작가의 창작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궁금해하며 다음엔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의 매일 직장인 일하듯 일천 글자 쓰기 한 것을 모아 산문집을 출간하셨다. 소설에서는 그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면 산문은 내가 아는 익숙한 작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살로메 작가의 산문은 때로 시 같기도 하고 때로 소설 같기도 하고, 전문칼럼 같기도 해서 읽을수록 어렵고 작가의 깊이에 감동하게 되었다.


처음 나를 사로잡았던 문장은 단연 작가의 말 첫 두 문장이었다.

거의 매일 일천 글자 쓰기를 했다. 직장인 일하듯 썼다. 

과장은커녕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저 두 문장을 읽으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멍했다. 더구나 육백여 편에 이르렀을 때 자기 복제의 동어 반복에서 오는 피로감이 두려워 일천 글자 쓰기를 중단했다는 것을 읽고 진중하고 거짓 없는 그녀가 떠올라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이 산문에는 그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문체가 간결하지만 그녀의 내면 풍경은 공감을 끌어낸다. 생각깊고, 누구에게든 최선을 다하며, 삶에 성실한 김 살로메 작가의 내면. 그런 척 하지 않은 진실한 내면.


리뷰를 쓰려고 다시 들춰보니 첫 번째 장의 제목과 같은 에세이 <봄비 또는 안개>에는 너무 좋아서 별표를 해놨다. 이 산문은 산문을 가장한 시처럼 읽혔다. 시처럼 읽혔다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이나 사진처럼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느끼게 하는 것. 바로 롤랑 바르트가 정의(?)한 푼크툼의 느낌인 것이다. 5부 5번째 산문 <사진에 대한 단상>에서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 읽기에 대한 그(롤랑 바르트)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책이다. 그 중 '스투디움'과 '푼크툼'에 대한 잔상이 떠나질 않는다. 누군가의 사진 한 컷은 객관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험의 산물이다. 특정 사진에 대해 떠오르는 공통된 심상, 작가의 의도 등을 스투디움이라 한다면 구경꾼 개별자의 폐부를 찔러대는 정서적 감흥을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평면적이며, 대중적이고 이해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입체적이며, 개별적이고 은밀해도 좋은 것이리라. 

단순히 보이는 것을 넘어선 푼크툼은 심연의 창고에서 꺼내는 숨은그림찾기와 같다. 옛날 사진 한 장을 꺼냈을 때, 오롯한 나만의 내면 풍경이 떠오르는 상태가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햇살 가득한 담벼락을 따라 번지던 웃음소리, 모래톱에서 내려다보던 사금파리 박힌 발등, 한 컷의 사진에서 우리는 따뜻한 듯 아린 푼크툼의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 p.234~235

저 사진은 작가가 보내준 이 책과 함께 받았다. 저 사진을 보낸 마음이 느껴져 이 사진을 보는데 코끝이 찡했다. 이 옛날 사진 한 장으로 오롯한 나만의 감정이 살아나듯 저 속에 있는 다른 이들도 그들만의 내면 풍경이 떠오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듯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에 실린 80편의 산문은 각각 독자에게 홀연한 깨달음처럼 묘연하지만 번뜩이는 아우라, 모멘텀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푼크툼의 세계이다.


에세이집을 여럿 읽었지만 마지막에 전문가(?)의 해설을 넣은 건 참신한데 요청을 받은 문학평론가이면서 한동대학교 김윤규 교수의 해설에는 김 살로메 작가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대신하고 싶다.


김살로메의 짧은 산문집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을 읽었다. 며칠이 걸렸다. 큰일 났다. (이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ㅎㅎㅎ) 그이는 나에게 이 글의 평론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좋을까. 그이는 알려진 소설가인데 산문집을 낸다. 그이는 자신의 무엇을 고백하려는 것일까. 산문이니까, 대놓고 고백하겠다고 했으니까, 그이는 자기 허리춤의 날선 단도를 살짝 보여주려는가. 혹시 검광을 못 보고 옷깃만 스치면 어쩌나. 낭패다. - P.273

멋지다. 그이는 이런 상태를 '이성보다 감성'이라고 했다. 수필은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 산책하는 오솔길이라고 했는데, 여인의 표정은 좀 새초롬해도 좋겠다. 그이의 산책길에 잔잔한 감성이 깔려 있으면 더욱 좋겠다. 더욱이 김살로메는 독자에게 같이 산책하자고 손을 잡아끈다. 우리도 공감하는 감성을 장착해야 될 모양이다. -p.274~275

이 단상들에는 지은이의 소망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막 소리 내어 욕구하지는 못하지만 그이는 분명히 남다른 감각과 체험을 가진 여성이 되고 싶어 한다. 그이의 정서는 프랑스 어디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고원을 걷고 있다. 지은이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자기 내면에서 오는 고백은 세계와의 충돌을 인식하지만 조화로운 공존을 시도한다. 이 단상집은 그런 소망을 보여주는 쨍한 유리창이다. 

요청에 의해 그랬겠지만, 이제 김살로메의 글이 허리띠를 풀었으면 좋겠다. 이번 단상집으로는 그이가 저장한 모든 생각과 이야기를 다 풀어놓지 못했다. 풀어 놓으면 그이는 아마 자신의 소망과 성취를 관조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강한 소망에 관조가 더해지면 그이가 하려던 이야기가 거의 다 나올 것이다. 분량과 간격부터 일단 자유로와져야겠다. 그게 김살로메다.- p.285

 

열정적인 끈기의 힘에 대해 연구한 [그릿]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이렇게 적는다.

연습은 어제보다 잘하려고 매일 단련하는 종류의 끈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특정 영역에 관심을 느끼고 발전시킨 다음에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난관을 극복하며 기술을 연습하고 숙달시켜야한다. (중략) 그릿은 현재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관심이 무엇이든, 이미 얼마나 탁월한 수준에 이르렀든 상관없이 그릿의 전형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로맹 롤랑은 이렇게 말했다.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성실히 끈기 있게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김살로메 작가는 그래서 그릿의 전형이며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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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5: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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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6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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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7-04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리뷰 쓰셨네요~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셔라^^
사진ㅎ 제 배가 은근 나와 보이는.
내일 잘 다녀 올게요.
언니의 빈자리 많이 느낄거예요.

라로 2018-07-06 12:54   좋아요 0 | URL
오~~~자기야말로 이런 칭찬을 해주니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아~~.^^
저 사진 자기는 정말 안 나왔어.ㅎㅎㅎㅎㅎ
우리가 찍은 단체 사진중 세실이 안 나온 사진이 없는데 저 사진이 유일한 듯?
카톡 사진 보니까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나도 보기 좋았어!!^^
2년후에 제주도에서 보자구!!

프레이야 2018-07-04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만큼이나 멋진 리뷰 읽다가 울컥해지는 건 뭐유. 저 사진까지 진짜 ㅠ 송정이었죠 5월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맞나 잘 모르겠지만 저기서 우리 용궁사까지 갔죠. 몇년도였죠? 사진 보니 보낸 분 마음도 라로 마음도 읽히고. 시간이 꽤 흘렀어요 그죠

라로 2018-07-06 12:57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세실님에 이어 프야님의 이런 칭찬이라니~~~!!ㅠㅠ
저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받고 저도 울컥했어요~~~~~!!!
소중했던 오공주와 보냈던 시간이....언제 또 그런 시간을 갖을 수 있겠죠!!^^
송정,,,,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사진을 찍은 우리는 기억이 났는데
어딘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났어요,,그래서 몇년도인지도 깜깜해요.
사진을 보내신 팜언니는 아시지 않을까요???
그래요,,,우리들의 좋았던 시절이 다시 돌아오리라 믿어요.^^

2018-07-04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7-06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책에, 멋진 리뷰에, 멋진 오공주 님들이라니...
이 리뷰와 댓글.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요.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라로 2018-07-11 13:27   좋아요 1 | URL
제가 남편과 여행을 하고 어제 돌아와서 이제야 답글을 달아요~~,
그런데 이렇게 과분한 댓글이라뇨~~.^^;
이런 댓글을 달아주시는 페크님도 아름답습니다!!^^

2018-07-07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1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8-07-07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웅, 사진 흐리기 전법
넘 감성적이에요
센스쟁이, 라로님~~

라로 2018-07-11 13:29   좋아요 0 | URL
보내주신 사진을 받고 많이 감동했어요.
언니가 저 사진을 보내시며 함께 보내시고 싶었던 메시지는 뭘까? 생각하면서요.ㅎㅎㅎㅎ
 
[eBook]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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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에 대한 좋을 평을 알라딘에서 많이 읽었지만, 책을 읽을 형편이 되지 않았는데 LAYLA 님의 리뷰를 읽고 꼭 읽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기회가 되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이 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고 나 자신에게 "너도 괜찮아!"라고 되뇌이며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나를 이 책으로 끌어들인 LAYLA 님의 리뷰 내용은 이렇다. 

서사보다 주인공들의 정서와 상처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서사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고,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우리 흔한 인간들의 상처와 말 못하는 마음들을 자신만의 나직한 단어들로 조용히 조용히 레이스처럼 뜨는 것이 아니었을지. 그리고 그 감정의 거미줄을 햇살에 비추어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난 4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 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더 오래 사실 수 있는데 좀 더 빨리 돌아가신 것은 내 잘못이라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의사의 선고를 들은 그 순간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는 하나둘씩 기억이 나 더 괴로운 나의 미친 짓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닌 罵倒.


누구에게도 말할 수없는 나만의 감옥에서 나는 매일 앞만 보며 지쳐갔다. 과거와의 절교를 선언한 사람처럼 과거는 돌아보지 않고 불투명한 미래만 붙들고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 내가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며 과거를 하나둘씩 꺼내보고 있었다. <쇼코의 미소>에 나오는 작품들에서 희미해진 가족의 모습을, 친구들의 모습을, 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쇼코의 미소>에 나오는 단편들이 거의 회상이라는 형식으로 펼쳐지기 때문이 아닐까? 다 지나간 일을 담담히 이야기해주는 등장인물들에게 공감을 하고, 아니 공감을 넘어 그 사람들의 신발을 내가 신은 것처럼 하나가 된 나.


소유가 쇼코를 집에 처음 데려온 날,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우리를 바라보며 웃던 엄마와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쇼코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멀리서 온 손님이라는 이유로 활짝 웃으며 반겨주던 그 모습이. 애정 표현에 서툴고 서로에게 웃어주는 일조차 어색해하던 가족이었기에 쇼코를 반갑게 맞이하던 할아버지와 엄마의 얼굴은 낮설고 우스꽝스럽게만 보였다. p.9(eBook page)

내 남편 될 사람을 처음 집에 데리고 갔을 때, 우리 가족의 모습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우리 가족뿐 아니라 외국인을 처음 자신의 집에서 맞이하게 되는 거의 모든 한국 부모들의 반응이 쇼코의 엄마와 할아버지처럼 그렇지 않았을까? 그 외국인이 하루를 묵던 한 달을 지내던.


이렇듯 내가 더욱 최은영 작가의 소설들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최은영 작가의 소설에는 외국인을 상대하는 한국인이 등장하거나 한국인의 외국에서의 생활이 배경을 이루기 때문인 것도 이유가 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다 지나갔지만, 나 역시 <씬짜오, 씬짜오>에서 처음 투이네 집을 방문했을 때 투이네 식구가 반갑게 맞아주던 일, 화자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처럼 나도 내 친구 미찌오와 마사애가 우리 부부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라고 남편이 좋아하는 일본 냉면을 해가지고 와서 파티를 했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흉내 내려고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기쁨의 순간들.

독일에서의 일은 이제 뿌연 유리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처럼 희미하다. 그런데도 처음 투이네 집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투이네 식구 모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던 일. 그 환대에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 어떤 조건도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따뜻한 기분과 우리 두 식구가 같은 공간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던 공기를 기억한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호의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고작 한 명의 타인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어른이 된 나로서는 그때의 일들이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p. 87

<씬짜오, 씬짜오>의 화자는 열세 살의 자신을 기억한다.

나는 예쁘지도 않았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하나없는 열세 살짜리 여자애였다. 중략.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 어른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컸다. p. 99

내 13살의 모습을 작가가 보고 글을 쓴 것 같은. 그 부분 뿐이 아니다. 나는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으며 가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봤다.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p.118

<쇼코의 미소>에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인간들의 상처와 말 못 하는 마음들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지 않고,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며 이어지기 때문에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면서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타인의 고통 앞에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고통에는 미움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녀의 인물들은 상처받지 않은 인물이 없고, 한 번의 상처로 끝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있기 때문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잃고 나서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 이모의 모습을.

엄마는 이모를 사랑했다.  p.125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소설처럼 모두가 세월호에 연루되거나, 베트남 전쟁에서 가족을 잃거나, 5.18 민주화 운동에 죽임을 당한 가족이 있거나,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이거나, 죽을병에 걸린 가족과 사는 것은 아니더라도.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므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p.145-146

작가의 말에 최은영 작가는 이렇게 쓴다.

십대와 이심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중략.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p.371-372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조차 내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 같다. 아니 그녀가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는 대상이 나라는 아이인 것 같았다. 내가 간호사가 되기로 한 계기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내 자신이 되고 싶었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고 싶어서이다. 아래의 비디오는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만든 비디오이다. 이 비디오를 보면서 소리를 내지 않지만 조용히 개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어떤 의견이나 주장도 없는 것이 최은영 작가의 소설과 닮았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자신만의 고통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이 소설을 다 읽었다고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 세상에는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 부끄러움, 분노, 좌절, 미움,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그래서 눈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면 상처 입고, 어리숙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당신이 다정히 웃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최은영 작가. 흘릴 필요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잃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작가의 글로 더 앞당겨 오면 좋겠다. 왜냐하면, 소설이란 결국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니까. 이런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나 또한, 당신 또한 점점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나 당신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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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1-31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원래 책 휘리릭 읽어버리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그렇게 못하겠더라구요. 단편 한개씩 천천히 아껴가면서 읽었어요. 제가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던 느낌을 라로님이 잘 표현해주셔서 기분이 뭉클해요.

라로 2018-01-31 10:02   좋아요 0 | URL
저도요. 사실 저는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인데도 이 소설은 소설같지 않고 실화 같더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기분이 뭉클해요.
 
소년과 개
Shiloh (Audio CD)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지음 / Listening Library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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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를 좋아하면서도 겁이 많아서 개 근처에 가지 못하고 무서워서 덜덜 떠는 편이다. 예전에 친정에서 여동생이 동물을 좋아해서 개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운 적이 있는데 나 때문에 고양이든 개든 묶어서 길러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미안한 일이지만 그 당시는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개를 싫어한 적은 없다. 오히려 개를 좋아한다. 여동생이 키우던 개 이후 개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우연히 래브라도를 살 기회가 있었다.( 이 것에 대한 페이퍼가 어디 있을텐데;;;) 그 작은 강아지를 집으로 가져 올때도 직접 안고 오지는 못하고 박스에 넣어서 가져와서는 손을 대기는 커녕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지 밤새도록 울어댔고 며칠 밤을 남편이 그 강아지와 함께 화장실에서 신문지를 깔고 잠을 자야 했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진저라고 지었다. 털 색이 생강 빛이었고 여자강아지라서. 하지만 그당시 우리 둘 다 학생이라 낮에 혼자 있게 된 강아지가 너무 울어대서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여러번 찾아왔고 한 번 진저를 데려간 이후로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한 뒤 시어머니와 막내 시누이가 우리가 살던 곳까지 13시간을 운전해서 와 진저를 데려가 진저는 그 이후로 시댁에서 자라게 되었다.

진저가 문제가 있는 개였기 때문에 시댁에서 기르기 많이 힘드셨을텐데도 시어머니는 진저를 순종학교(?)에 보내서 교육을 시키고 진저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감내하셨고 결국엔 진저의 무덤을 뒷마당에 있는 다른 개들 옆에 만드시면서 많이 슬퍼하셨다고 들었다. 진저 이후로는 개를 키우지 않으시고 동네에 있는 착한 개인 베일리를 매일 산책시켜 주신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은 개와 소년의 관계보다 소년의 행동으로 인해서 저드가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 짧은 순간을 작가는 얼마나 잘 표현을 했는지!! 저드, 야만적이고 비열한 인간이지만 그가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독자가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지 못해 저렇게 변했구나 하는 점. 마티가 샤일로를 정성들여 돌봐주는 것의 반에 반이라도 그의 부모가 그를 돌봐줬으면 그렇게 변하지는 않았을텐데.

심라학 이론 중에 심리학자 Mary Ainsworth의 4단계 애착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아이들의 어렸을 적 부모와의 관계 형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 형성뿐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마도 저드 트래비스는 어릴적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insecure-avoidant(불안정-회피)이거나 disorganized(회피)였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이렇듯 한 인간의 인격 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데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미 성인이 된 저드의 인격 형성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런 저드가 마티를 만나 변화하는 순간은 이 소설의 백미이다! 이 소설은 아이들도 읽어야 하지만 사실 어른들이 더 읽게 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를 갖고 태어난 인간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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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3 1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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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1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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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0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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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0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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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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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2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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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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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s Adventure 20종 세트 (Paperback 20권 + CD 20장) Arthur's Adventure 2
Marc Tolon Brown 지음 / Random House Books for Young Readers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의 크리스마스 장식물은 넛크래커입니다. 밤에 찍어서 그런지 좀 잘 안 나왔네요~~~~.
어제는 좀 속상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달리하니 그렇게 속상하진 않네요~~~. 변덕스러운 인간;;; ㅠㅠ 이런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저를 격려해준 시어머니를 비롯한 오공주, 북플 친구들,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남편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어제 해든이와 함께 본 Arthur의 주제가도 머릿속에 맴돌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는 데 도움이 되더군요. 뭐냐면~~~`believe in yourself`이부분요. 그렇죠? 자신을 믿는 게 시작이에요!! 뭐를 하든~~~~북플 친구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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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쉬님 사진 보여요?? 난 왜 안 보이지????

애쉬 2014-12-05 12:56   좋아요 0 | URL
네. 잘 보여요~ 사진이 한장이라면요. 넛크래커 3개. 3명. ....3마리???

라로 2014-12-05 13:34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는 안 보이네요~~~~암튼 넛 크래커 3 놈(?)ㅎㅎ 맞아요!!ㅋㅋㅋ

하늘바람 2014-12-05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장식 무지 많으시네요

라로 2014-12-05 17:38   좋아요 0 | URL
오너먼트만 해도 몇 백개가 될 것 같아요~~~
 
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어제부터 필받아서 읽기 시작한 마리여사의 책 [교양노트]를 끝내고 다시 집어든 마리여사의 [속담 인류학]. 걸걸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넘 웃겨 남편에게 읽어줬더니 이 남자 좀 이성적으로 나온다. 뭐 그러건 말건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
마리여사는 덩치가 좀 있는 편이었다는데 사실 사진에서 본 그녀의 손을 보고 덩치가 클 것 같다고 생각했던 예상이 맞았네. 얼굴은 조그맣고 그렇지만~~~ 현역 시절에 엄청 화려하게 하고 다니셨던 것 같은데,,, 참 오늘 남편이 내 옷차림을 보고 한마디 했다. 왜 `우아`한 스타일로 가려고 하냐고. 음~~~ 사실 오늘 내가 입은 앙고라 자켓은 정말 공주같긴 했다~~~~~ㅋㅎㅎㅎ(늘 삼천포,,, 저는 닉네임도 수시로 바꾸고 글이 자주 삼천포로 빠지는 뇨자입니다. 친구신청 하실 때 유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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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4-12-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누님^^; (왠지 마리님은 언니보다는 누님으로 불러야 할 듯 ;;;) 좋아해서 책은 다 사서 꽂아놨는데 이 책은 아직 못 읽었네요. 재미있겠어요. >.< 저도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라로 2014-12-02 13:58   좋아요 0 | URL
달밤님도 마리여사 책 다 갖고 계시는군요!! 이 책에서 미국, 부시 엄청 까요~~~^^;;; 읽어보세요~~~~추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