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강무홍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도서관의 기적>의 추천글입니다. 

온양의 한 작은 마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학교도서관이 있다. 마을에 하나뿐인 초등학교 도서관으로, 후배 작가가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서관은 아이들과 엄마 아빠 들이 함께 이용하는 일종의 마을 도서관으로, 학교가 끝나도 문을 닫지 않는다. 밤 9시까지 마을의 갈 곳 없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작은 마을의 도서관은 밤이 깊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따금 그곳에서 쉬어갈 아이들과 어른들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 책 <도서관의 기적>에 나오는 도서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등대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도서관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책을 찾고,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사연을 나눈다. 10년 전 아빠와 이혼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엄마와 둘이서 살고 있는 주인공 여자아이 시오리도 그 중 하나다.

시오리는 책과 도서관을 좋아한다. 어느 날 도서관의 점자 책갈피에서 손으로 읽은 글귀처럼, 책이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책의 숲과 같은 곳인 도서관에서, 시오리는 이정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일부러 길을 벗어나 헤매고 다니다 생각지도 못한 책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시오리는 마치 "내가 여행가이며 지도에도 없는 마을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시오리가 책과 도서관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시오리가 그토록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도서관에 책이 많아서가 아니다. 시오리의 말에 따르면, 책도 있지만, 도서관에서는 갖가지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이고 만남이다. 그 만남에서 시오리는 인생을 보고 배우고, 타인과 함께 뭔가를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체득해 나간다. 이 책의 앞 권인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가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았다면, 그 뒤 권인 이 책 <도서관의 기적>에서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도서관 사람들과 함께 풀어가는 과정을 추리 형식으로 담았다. 곧 책벌레인 주인공 시오리와 책 박사들인 사서 미야코 언니와 아마노 선생님이 '책탐정'이 되어, 사고로 다쳐서 의기소침해진 아주머니의 조카가 읽고 싶어하는 책, 어린시절 친구와 함께 읽었던 책을 애타게 찾고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단서를 가지고 저마다 절실하게 찾고 있는 책을 추적해 나가는 형식이다. 덕분에 한없이 조용하고 정적일 것 같은 도서관 이야기는, 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누군가 간절히 찾고 있는 책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아연 긴장감을 띠게 된다, 더불어 그 추리의 끝에는 책을 찾고 있던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어린 시오리가 책에서, 도서관에서 '만남'을 통해 성숙해 가는 지점이다.

시오리는 도서관 어린이책 책꽂이로 발걸음을 옮기며 상상한다. '오늘은 또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10년 만에 만난 아빠가 보내준 자작 소설책 표지를 보며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옛이야기를 떠올린다.

"어느 곳에 아주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고, 그 나무의 잎사귀 하나하나에는 저마다 특별한 말로 이야기가 쓰여 있다. 그곳은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이며 우리는 모두 이야기와 함께 살아간다."

그 이야기는 책 속에, 책의 숲인 도서관에, 그리고 그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 속에 있다. 그래서 <도서관의 기적>은,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고 책을 통한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더욱 반가운 책이 아닐까. 1권 <맑은 날에는 도서관에 가자>에서 도서관의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자연스럽게 도서관 이용법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면, <도서관의 기적>은 추리의 재미와 더불어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강무홍(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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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0-05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달 전문가가 선택한 책을 사고 리뷰를 쓰고 적립금을 받는 재미~~~~~ 를 저는 알지요.^^
기다렸어요, 10월은 어떤 책일지... 세 권 다 TTB광고에 올린 책이라 놀랐어요.

2011-10-05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5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꼬치 2011-10-05 14:21   좋아요 0 | URL
이달의 어린이 책 기다리시는 분이 계시다니 정말 기쁜데요?^^ 올 가을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순오기님 좋은 리뷰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2011-10-06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기획자 주진우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싫어요!>의 추천글입니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한 버스 안에서 백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체포당한다. 이 사건은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미국 최고 법원까지 올라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낸다.

이 책은 로자 파크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버스 사건이 일어났던 순간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그날과 그 후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단숨에 읽힌다. 사건 이후 체포와 주위 사람들의 도움, KKK단을 비롯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과 협박 속에 거의 모든 흑인이 참여했던 기적 같은 승차 거부 운동, 그리고 마침내 이뤄 낸 승리의 과정이 박진감 있게 그려졌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사건의 극화와 인물의 영웅화에 있지 않다. 로자 파크스의 삶과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담담히 풀어내는 데 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로자의 거부가 한순간에 발휘된 용기가 아니라, 평소 삶의 태도에서 나온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백인 버스 운전사의 협박에 "싫어요!"라고 했던 그녀의 대답은 그녀의 삶 전체이다.

로자는 역사 속 숱한 영웅들과는 조금 다르다. 로자는 정치가도 군인도 아니었고 학자나 성직자도 아니었다. 평생 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던 재봉사였다. 직업만 평범했던 것이 아니었다. 성격도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특별히 영웅적이지도,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할 때,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을 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날 버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저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백인들의 횡포를 언제나 묵묵히 참아내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다른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속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위인전이나 영웅전을 읽으며 우리는 보통 사람들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굳센 용기와 불굴의 의지, 사람들을 사로잡는 강렬한 힘을 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지만, 실제로 그런 삶은 나와는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가슴 뛰게 했던 영웅들과는 다르게, 자긍심이나 인간에 대한 존중감과 같은 감동을 안겨 준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로자가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을 삶의 태도로 지켜 나가는 조용하지만 당당한 사람이다. 역사는 어떤 영웅의 위대한 행위로 한 번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중감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믿고 지켜 나가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전해 간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 준다.

우리는 흔히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미국에서 흑인 차별 문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뒤로도 100년 동안이나 더 흑인들은 인종 차별에 시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에서처럼 승차 거부 운동이 일어나기에 이르렀으며, 긴 싸움 끝에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승차 거부 운동을 벌인지 53년 뒤에, 그리고 로자 파크스가 죽은 지 3년 뒤에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해 내면서 또 다른 역사적 전환을 이뤄 냈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차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미국 사회만의 일도, 흑인 차별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끈질긴 편견과 그에 따른 차별은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로자 파크스의 행동은 미국 흑인의 권리를 얻기 위한 비폭력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평화가 비폭력을 뜻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평화는 단지 폭력을 행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이다. 평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인간 존엄성을 당당하게 실현하는 일인 것이다. 그날 로자가 무서운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버스 자리에 꿋꿋이 앉아 있었듯이.

자신의 삶뿐 아니라 함께 사는 이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이 책,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 주진우(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기획자, 전 평화박물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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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임정희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자석 강아지 봅>의 추천글입니다. 

아기 강아지 봅은 자석처럼 끌어당겨요. 숟가락, 옷핀 같은 게 척척 달라붙지요. 어떻게 끌어 당기냐고요? 마술이라도 부렸냐고요? 아니랍니다. 아기 강아지 봅은 매력 덩어리거든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 용감한 영웅이기도 해요. 웃음도 끌어당기고 친구도 끌어당기고 인기도 끌어당겨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분도 매력 덩어리 봅에게 끌려 찰싹 달라붙을지 몰라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맘때의 순수함으로 '어디까지라도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일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신작이 오랜만에 나왔다. <책 먹는 여우>와 <게으른 고양이의 결심>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라선 그녀가 이번에는 '강아지'라는 친근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또 한번 아이들의 마음에 기쁨을 선물한다. 동생에 대한 질투가 우애로 바뀌는 유머 가득한 이야기! 책을 덮는 순간 아이의 마음에는 웃음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도 가득 넘쳐나리라 확신한다. - 임정희(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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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의 그림책은 한국에서 기획되어 한국에서 초판이 출간된다. 낯선 나라의 신비로운 일러스트레이터가 한국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무척이나 이색적인 작품 활동과 출판 과정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를 그림책 작가로 데뷔시키는 역할을 한 번역가 이지원 씨, 그리고 애정어린 노력으로 그녀의 책을 만든 출판사들. 열정적인 한국의 조력자들을 통해 차츰 차츰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의 작품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구조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일러스트, 한없이 자유로운 상상력과 그 안에 탄탄히 자리잡고 있는 논리, 다름의 무한한 가능성이 마법처럼 그림책 위에 펼쳐진다. 그리고 2011년 봄이 시작될 무렵, 국내작가 김희경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공동작업한 <마음의 집>의 볼로냐 라가찌 상을 수상은,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그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신작 <여자아이의 왕국>과 함께 한국의 독자들을 찾은, 한국이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2011년 9월 23일 알라딘 독자들에게 건넨 이야기들.

(통역 : 설재인 / 사진 : 창비, 알라딘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승혜)

 

 

알라딘 I 한국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을로 접어든 것 같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을을 맞는 기분이 어떤지.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가을이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인데 한 번은 5월, 다른 한 번은 12월이었다. 먼저 5월에는 한국에 머무는 내내 비가 왔었고, 12월에는 너무 추웠다는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시원한 공기와 산뜻한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고, 모든 게 초록색이라서 너무 예쁘다. 폴란드에서는 이미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알라딘 I 초경을 시작한 날부터 여자아이는 자기 왕국의 주인이 된다는 비유를 담고 있는 신작, <여자아이의 왕국>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비밀스럽고도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월경을 끝내는 시기가 나에게 오면서, 월경을 할 수 있었던 기간 자체에 대해 그리움이 쌓이게 되었다. 월경을 겪던 그 기간을 책에 함축적으로 담고 싶었다. 내게 월경이 있었던 시간은 40년 정도다." 

알라딘 I <여자아이의 왕국>의 모티브가 된 초경을 한국에서는 사춘기의 시작과도 연결 짓곤 하는데 자신의 사춘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이켜본다면.

"내가 열살 때 초경이 왔다. 초경, 월경이라는 건 나에게는 아프고 고통스럽기만한 순간들이었다. 어떤 기쁨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 나도 이제 여자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그냥 아이로 남고만 싶었다. 사춘기라고 하는 기간에 가슴이 자라고 월경을 해야하고, 그렇게 여자가 되는 준비를 하는 과정. 그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아팠다. 정신적으로는 아이인데, 몸만 속도를 앞질러 자라는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열살 아이의 생각으로는. 어깨가 잔뜩 굽은 자세로 걷게 되고, 자신 있게 가슴을 펴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랬던 만큼 그 시간은, 사춘기라는 시간은 행복하지 않았다. 여자가 된다는 준비 기간이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춘기는 내게 아팠던 기간으로 기억된다."

알라딘 I 한글의 간결한 논리성에 매료되어 <생각하는 ㄱㄴㄷ>과 같은 한글 그림책을 작업하기도 했는데, 한글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와 내가 생각하는 한글의 매력이란.  

"한국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논장 출판사에서 나온 <생각하는 ㄱㄴㄷ>을 준비하면서부터이다. 논장에서 처음 제의를 주셨을 때는 내가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글을 하나도 모르고 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써 본 적도 없는데. 이런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위한 한글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렇지만 출판사에서는 이런 나를 믿어주었고, 굉장히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그렇게 출판사의 도움으로 한글을 처음 보게 되었다. 한글이 가진 뜻을 전혀 모르다보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다 더 폭넓은 해석을 가지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한글이란, 굉장히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짜여진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건축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조각처럼 정확히 맞춰지는 그런 느낌이 굉장히 아름답게 여겨졌다."  

           

알라딘 I <반이나 차 있을까? 반밖에 없을까>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두 사람이 한 가지 사실을 바라보지만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내용의 상대주의의 개념을 자주 다뤄왔다. 다리미 자국, 발자국, 연필이 온갖 형태로 변신하는, <문제가 생겼어요>-<학교 가는 길>-<생각 연필>로 이어지는 상상 그림책 시리즈도 이 개념의 발전 내지 변형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주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상대주의는 내가 굉장히 즐겨 쓰는 개념이다. 모든 것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노느냐, 하나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마음의 집>에 등장하는 '마음' 또한 그 중의 하나다. <문제가 생겼어요>란 작품에서는 다리미 자국이 배가 되었다가 다시 섬으로 바뀌며 계속 변화를 거듭한다. 다리미 자국이란 것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가능성을 나는 계속해서 그림책을 통해 말하려 한다. 테마는 항상 하나(상대주의)에서 시작하지만, 나오는 책은 제각각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띤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것이 내 작품 활동의 목표이고 과제이다. 상대주의 개념이 가장 이상적으로 드러나 있는 나의 작품으로는 <시간의 네 방향>을 꼽고 싶다. 그리고 나의 모든 책에 이 개념이 적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여자아이의 왕국>도 마찬가지다." 

 

알라딘 I 네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을 직접 만들면서 그림책 창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작품을 알고 있는지. 

"나의 가족에게, 새로운 책이 나오는 날은 항상 새로운 기념일 같은 날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 책을 펼쳐 보고, 각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와 예쁘다! 감탄하고 신기해한다. 마치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그래서 새로운 책, 제일 최근에 출간된 <여자아이의 왕국>이 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책일 것 같다. (웃음)"

알라딘 I 아이들은 태어나서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 부모님 또는 어른들이 권해주는 책을 읽게 마련인데,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읽힐 책을 선택했는지.  

"내가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구입하던 시기의 폴란드는 굉장히 암흑기였다. 지금도 폴란드 그림책 시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때에는 거의 시장이 없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책방에 가더라도 언제나 다른 부모들과 똑같은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양이 워낙 적고, 공급이 잘 되지 않았고, 수요가 아무리 많더라도 부모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 전에는 달랐다. 내가 태어났던 해가 1960년, 어린 아이였던 내가 항상 일러스트레이션을 보고 자랐던 시기가 1970년대였다. 이때가 바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성기였다. 이 전성기는 1980년대까지만 지속되었다. 이후로는 공급이 되어도, 자유롭게 살 수 없었다. 나 자신은 그렇게 항상 예쁘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볼 수 있었는데 정작 나의 아이들에게는 공급조차 되지 않았다. 언젠가 두 시간이 넘도록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책을 구해 아이들에게 읽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나의 아이들과 똑같은 세대의 학생들은 어렸을 때 읽은 책이 모두 같다. 그 정도로 그림책 공급이 극단적으로 제한돼 있었다. 그림책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예쁜 일러스트레이션 하나라도 더 찾아내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이란 매체를 아이들 곁에 항상 가까이 하려고 애를 썼다." 

알라딘 I 대학에서 그림책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우선 강의는 그림책 작업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작가로서 글과 그림을 함께 담긴 책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강의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글과 그림 자체가 워낙 스스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형태이다 보니,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는 것,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글과 그림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을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강조하는 편이다."

알라딘 I <마음의 집>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가 '마음의 집은 가끔 주인이 바뀌곤 한단다'라는 문장이었다. 이렇게 바뀌는 마음의 주인들 가운데, 나의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주인이 있다면. 

"마음의 주인은 항상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나의 두 번째 남편이다. 처음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 내 마음의 주인은 첫 번째 남편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뭔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났고,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들이 생기면서 나는 그를 떠나게 되었다. 첫 번째 남편이 떠나고 난 내 마음의 빈 자리에는 나 자신이 들어왔다. 내 스스로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었다. 결혼을 두 번 하고 새로 태어난 나 자신이. 그 시기가 굉장히 힘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혼할 당시 이미 나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 이제는 나의 주인이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 I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를 좋아하는 알라딘의 독자분들께 전하는 마지막 인사. 

"우선 너무나도 저를 사랑해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 내가 낯선 문화권에서 온 낯선 사람,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신뢰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점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그림책이 세계를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림책을 좀 더 사랑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그림책을 통해서, 그림책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살기 좋은 상태로 만들 수 있도록 그림책을 더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탁자 위에 놓인 <마음의 집>에 눈길을 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책 자체가 항상 기쁘다. 그리고 내 첫 번째 남편이 한국어를 모른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마음의 집>은 내 첫 남편에 관한 책이기도 하니까. (웃음) 폴란드에서는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았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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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mingel 2011-09-27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은 사람과 책(그리고 그림)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o^

딸기꼬치 2011-09-29 02:52   좋아요 0 | URL
예, 정말로 좋은 향기를 가진 분이셨어요. <두 사람>이라는 책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
 

엄마학교 대표 서형숙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9월의 좋은 어린이 책, <슈퍼걸스>의 추천글입니다 

지혜로운 엄마와 딸들을 위한 책

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 알다가도 모를 게 아이고, 그 속입니다. 때론 ‘이 아이가 정말 내 속에서 나온 아이 많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하긴 내 마음도 잘 모를 때가 많지요. 심사숙고하여 결정했는데도 후회하고 낭패를 보곤 하죠.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 마음도 깊이 들여다보아야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하물며 나와 근 30년, 세대 차이까지 나는 아이들 속을 어찌 알겠어요? 속속들이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더라도 아이들을 이해하긴 더욱 버겁지요. 아이는 아이인데….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엄마들은 당장 공부, 앞날 걱정에 정작 아이들이 요즈음 관심거리와 고민을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 나름대로 또래들끼리 고뇌하는 것들이 널려 있는데 말입니다.

바로 이 책, 아이 일기장 들여다보듯 아이들의 일상과 속내를 시시콜콜 살필 수 있네요. 어려운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고 직접 부딪혀 보는 아이들의 생활을 낱낱이 읽을 수 있어요.

‘적을 알면 백전백승! 아이를 알면 집안의 평화가 이어집니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녀들은, 속마음을 모르기에 피곤할 정도로 남의 눈치를 살피는 여자아이들과 달리 운동이나 놀이를 한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남자들을 보며 남녀의 차이를 알아갑니다. 자매간의 갈등을 딛고 일어서며, 용기와 끈기로 친구들과 화해하려고 스스로 생각하고 풀어내죠. 상처받았다고 미리 포기하거나 마음을 닫지 않아요. 또 오해는 오래 묵히지 않고 바로 바로 풀어요. 참으로 똘똘한 아이들이군요.

이 글을 읽으며 나 역시 ‘한 사람’으로 더욱 지혜롭게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 서형숙(엄마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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