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 작은도서관 관장 김은천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7월의 좋은 어린이 책, <순분 씨네 채소 가게>의 추천글입니다.
하루하루 바지런하고 정직하게, 정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
아이고, 그림이 알록달록 아기자기 참 다채롭기도 하네! 우리 생활과 너무나 친숙한 시장 풍경에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책 표지에 벌써 몇 명의 사람이 보이는지, 온갖 채소들도 눈길을 사로잡고,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은 우리를 이렇게 유혹하는 것 같아요. "그냥 지나가시게요? 와글와글 왁자지껄, 이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달콤, 구수, 매콤, 비릿한 이 냄새들은 또 어떻고요. 두리번두리번 물건 구경, 사람 구경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곳, 재래시장에 놀러오세요! 그 중에도 '순분씨네 채소가게' 문이 활짝 열려 있답니다."
하지만,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걸요? 순분씨네 채소 장수들 따라다니는 일, 그리 만만하지 않답니다. 이것 봐요. 첫 번째 장면은 어스름 새벽, 마지막 장면은 컴컴한 밤인 걸요. 새벽부터 밤까지 순분씨네 하루는 무척 길답니다. 게으름뱅이는 채소 장수 어림없겠어요. 새벽부터 농산물 도매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고, 손님들 오기 전에 물건 다듬어 진열하고, 한 편에서는 음식점에 채소 배달하고 골목에서 채소 팔기. 1대 채소장수 순분씨, 2대 채소장수 순분씨의 딸과 사위, 손녀 동이까지 온가족이 부지런히 움직인답니다. 순분씨네 가게에 찾아온 누구라도 함께 일을 거들게 될 거예요.
"입에 들어갈 거니까, 깨끗하고 좋은 걸로 팔아야지!" 순분씨네가 장사를 준비하는 마음이에요. 우리를 살리는 귀한 먹거리에는 농부, 엄마의 수고와 함께 채소 장수의 귀한 정성도 담겨 있었네요. 좋은 채소를 고르고 다듬고 진열하고 팔고 관리하고.. 기본을 지키는 정직한 노동이자 돈벌이가 반갑고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이 아닌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편법과 술수가 난무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만 되면 된다는 생각이 너무 당연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은 아닌지요. 정직한 노동의 가치는 오히려 외면되고 홀대되는 건 아닌지요. 대기업 프랜차이즈들만 살아남는 기형적인 사회에서 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작은 상인들을 지켜주어야 해요. 정말로요. 그래야 우리도 다함께 살아요.
순분씨네 이야기에는 네 식구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사는 사람, 파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마치 동네 사람은 다 나오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어디쯤 있을 거예요. 한 번 찾아보세요. 저녁 찬거리를 사러 와서 순분씨네 사장님과 흥정을 하고 있는지, 음식점에서 채소를 배달받고 있는지, 햇빛 시장 축제의 노래자랑을 구경 중인지, 순분씨네서 사온 호박으로 호박죽을 먹고 있는지... 한 가게의 이야기에 우리네 이웃들의 삶까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복닥복닥 서로 얽혀 살아가는 게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삶인 것 같아요. 반듯하고 깔끔하지 않아도 정이 넘치고 사람 사는 훈기가 느껴지는 곳, 그곳이 재래시장이랍니다. 저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꼬불꼬불 시장 길과 번화한 시내가 공존하는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어쩌다 여유있게 혼자 밥을 먹으러 갈 때, 경사진 좁은 골목길로 향하게 돼요. 쓰러져 가는 연탄 창고가 위태롭게 서 있는 골목길을 거닐면 왠지 마음도 편안하고 정겨워요.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갔다가 손으로 얼음을 꺼내 내 컵에 퐁당 빠뜨리는 국숫집 할머니 모습에 웃음 짓기도 하고요.
표지 그림을 다시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순분씨네 2대 사장님이 장사 중이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조금 다르게도 보이네요. 한 손에는 애호박 트로피를, 한 손에는 시금치 꽃다발을 든 메달리스트 같아요. 순하고 넉넉하고 당당한 모습이 참 멋지네요. 사람들이 다들 채소 장수를 주목하고 있어요. 제목 '순분씨네 채소가게'는 마치 커다란 응원 플랜카드처럼 보이고요. 시장 상인들을 대표해 순분씨네가 상을 받은 것 같아요. 하루하루 바지런하고 정직하게,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분들이 이번에는 진정 주인공이십니다.
당신들의 정직한 노동과 땀, 복닥복닥 정겨운 삶의 이야기가 담긴 <순분씨네 채소가게>, 이 책이 작은 힘이나마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은천(해오름 작은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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