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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6년 만의 신작 동화 <그 꿈들>을 발표한 박기범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입니다. 낮은산 출판사에서 진행에 도움 주셨습니다.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4-08-29)

 

2003년 이라크로 들어가 그곳 아이들과 함께 전쟁을 겪으셨고 이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을 펴내셨습니다. <어린이와 평화 – 박기범 이라크 통신>(2005 출간)과 <그 꿈들>(2014 출간), 두 책에 담은 이야기와 형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씌어진 시기와도 상관 관계가 있을까요?

 

<어린이와 평화>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목전에 두고 그리로 떠날 때부터, 전쟁 속 그 안에서 지내면서 일기로 적어놓은 글들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일방적인 종전 선언이 있는 뒤에도 계속 그곳에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과 지내던 시간들, 한국으로 돌아와 단식과 평화순례를 하면서 써온 일기이자 일지들. 그러니 말하자면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현장 기록인 셈인데, 그 당시 쓴 기록들을 추리고 묶어 책이 되었습니다. 그 전쟁이 있고 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쓰게 된 <그 꿈들>은 동화입니다.

 

그 당시 제가 전쟁 속으로 들어간 것은 동화를 쓰고자 하거나 어떤 기록 같은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순진함이었는지, 어리석음이었는지, 그저 전쟁을 막아낼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었고, 그 전쟁으로 죽거나 다칠 그곳의 아이를 하나라도 더 보듬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겪고 돌아오게 되었고, 저는 동화작가였습니다. 그곳의 일들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일들에 감히 저는 엄두를 내지 못했고, 말문이 트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쓴다는 건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십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땅의 사람들은 더 아픈 수렁으로 들고 있었고, 그곳의 일들은 끝내 삼키지도 못하고 지우지도 못한 채 가슴에 걸려 있기만 했습니다. 어쩌면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힘겨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십 년이 되던 지난 해, 더는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고, 간신히 그곳의 이야기들을 써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 꿈들>에서 그때 당시 만났던 아이들을, 바로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신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작가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지금도 아이들은 바로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그러나 이미 십 년 하고도 일 년이 더 지났고, 내 기억 속의 아이들은 스물이 넘은 청년이 되었거나 아니면 청년이 되어보지 못한 채 어딘가에서 눈을 감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아이는 그 아이의 아버지처럼 자전거에 기름을 싣고 배달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 중에 또 어떤 아이는 제가 목수 일을 배운 것처럼 목수가 되어 그 무너진 자리들에서 집을 짓느라 망치질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아이는 총을 들고 어디론가 떠났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우리는 헤어질 때마다 눈물이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그곳의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언제라도 돌아갈 곳이 있는 이였고, 끝내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과 헤어지는 일은, 마치 그 아이들 앞에서 커다란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아있는 한 아이의 이름만큼은 이 작품에서 쓰지 못했습니다. 뉴바그다드 거리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세이프라는 이름의 아이.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하던 아이입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그 아이가 손을 놓지 않으며 하던 말이 있어요. 나도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나는 아이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곧 다시 올 거라는 기약 없는 말을 하기만 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끝내 이 작품에서 쓰지 못한 것은, 언젠가 오롯이 그 아이만을 그려낼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남겨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의 기록을 보다 보니 작가님의 어린 시절도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데요. 본인의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신다면요?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이나 사건 같은 것들이요.

 

 저는 유년의 기억을 자세하게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아니, 그 때뿐 아니라 그 어느 시절의 것도 좀처럼 잊지를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누군가는 부럽다고도 말을 하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많아 그리움이 많지만, 너무 많은 기억으로 너무도 쉽게 그것에 젖어 들곤 하는 것 같아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것들까지도 말이지요.

 

 저의 어린 시절은 서울의 변두리 골목을 뛰놀던 그저 그런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였고, 남들이 보기에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즐거웠던 시절입니다. 저는 말썽도 많았고, 아마 어른들 시선으로는 아주 밉상 짓도 많이 하였을 텐데, 저를 지켜준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저를 믿어주셨어요.

 

전쟁 포화 속에서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고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셨나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겁에 질린 눈동자를 보았고, 나를 더 걱정해주며 눈물짓는 그곳의 친구를 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눈동자로 몸을 비트는 어린 아이를 보았습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뛰노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폭격이 한참이던 때, 간신히 비자를 얻어 이라크 국경을 넘어 들어가던 때, 아마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가장 자유롭고 가벼웠습니다.

 

작가님의 이라크행은 필연적인 것이었는지요? 작가님이 속해 있던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에는 어떤 분들이이 어떻게 모여 이라크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단체들의 ‘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은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어졌다고 알고 있어요.


 ‘이라크평화팀(Iraq peace team)’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먼저 시작한 움직임이었습니다.  911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이어 이라크 전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을 때 ‘광야의 목소리’라는 비폭력평화운동 단체를 비롯해 국제평화운동가들이 공습이 예고되는 현장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방패(Human Shields)’라는 이름도 함께 등장했고요. 여기에 한국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Korea Iraq peace team)’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비자를 받을 수 없어 국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이에 뜻을 함께 하는 여러 개인들이 현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종교인도 있었고, 진보정당의 당원, 사회주의자, 여성주의자, 학생, 현장미술가, 언론인, 노동자, 의료인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 만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함께 한 것입니다. 이 대열에 얼띤 동화작가 하나도 함께 했던 것이구요.


저는 당시 한국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지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저 전운이 감도는 그곳 뉴스를 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을 뿐이었는데, 가까운 후배 하나가 벌써 그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나도 조그만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쟁이 예고되는 땅이라면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궁리가 먼저일 텐데, 자진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하였고,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맨몸으로 그 땅에 들어가 스스로 폭격의 우산이 되고 방패가 되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섣불리 짐작하기 어렵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날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괴롭기만 한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뜻을 같이 하고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이 큰 힘이 되어주셨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이라크전이 일어났을 때 국내에서 벌인 반전평화운동은 한국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일어난 국제주의 운동으로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알고 있어요. 꽤 오랜 기간 동안, 매우 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인 활동을 벌여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동화작가이기에, 많은 어린이들과 어린이 관련 단체의 사람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린이문학과 교육, 문화를 함께 가꾸고 고민하던 이들이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평화의 광장을 이루곤 하였고, 이라크 현지에서 수많은 이곳 아이들의 사진과 엽서를 전해 받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내며, 자기도 인간방패가 되어 이라크의 친구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함께 손잡아주고 있다고 말이지요. 저는 그 아이들의 사진들을 이라크 아이들의 교실에 붙여주었습니다.

 

목수학교에 들어가 한옥 짓는 일을 배우시고 현재 문화재보수기술자로 일하고 계시죠. 숭례문 복원공사와 석가탑 해체보수공사 현장에도 참여하셨고요. 목수 일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문제아> 서문을 쓴 손글씨의 주인이 작가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만 봐도 손재주가 많으실 것 같아요.

 

 책에 쓴 것처럼 저는 소질도 변변찮고 일머리도 그닥 마땅치가 않아요. 제가 한옥학교에 들어가 목수 일을 배우게 된 계기는 제 삶을 이끌어준 한 형님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전쟁터에서 돌아와 평화와 관련한 활동들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그 활동들에 대한 무력감이나 자괴감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을 수 있는 삶으로 내 삶부터 바꾸어내는 것, 무엇보다도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비로소 느껴가던 때였을 거예요. 완전한 자립까지는 아니어도 자본의 그물을 최소한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삶. 그런 것을 고민할 때 그 분이 제게 목수 일을 함께 할 것을 권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없지만 그 분은 제가 어떤 것으로 힘겨워하고 있는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형님이 자신과 함께 둘이서 집을 지으면서 살자고 이끌어주었습니다. 교사였으며 농사꾼으로 살았고, 목수이던 그 형님의 이름은 황시백입니다.

 

첫 동화집 <문제아>로 박기범 작가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요, 처음 발표한 1999년과 현재, 동화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15년이 지났으니 아주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게다가 저는 의도치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변화의 진폭이 적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사는 곳만 해도 <문제아>를 쓸 때만 해도 서울 바깥을 한 번도 벗어나보지 못한 서울내기이던 제가, 그 뒤로 남양주 수동의 골짜기 마을에서 살았고, 울진 바닷가 마을에서도 살았고, 양양의 설악산 자락에서도, 그리고 동강이 흐르는 영월에서도 지내다가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와 지내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 사이에 전쟁터에서 죽음을 건너온 시간이 있었고, 글을 쓰던 손으로 망치질과 끌질을 배우며 집 짓는 일터로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각시를 얻었고, 이제 두 달 뒤면 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동화를 쓰는 사람으로 변화라면, 이건 변화라기보다는 더욱 심해지고 깊어진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텐데, 저는 동화를 쓴다는 일이 더욱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모친께서 '서울 어머니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학생이셨고 작가님은 그곳에 자원 교사로 어머니들을 가르치던 시절의 일기가 <엄마와 나>(2004년 출간)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었는데요. 그 이후의 한 시절 또는 앞으로 쓸 일기를 묶어 책으로 펴낼 계획은 없으신지 기다리는 독자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그건 그 당시에 어머니와 함께 일기를 쓰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마음 같은 건 없었어요. 어머니와 함께 밤마다 일기를 쓰고, 살아온 이야기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 감동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해 ‘전태일문학상’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조그만 상이라도 받게 된다면 어머니에게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어머니의 일기장과 제 일기장을 함께 냈던 것인데, 그것이 큰 상을 받으면서 책이 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 뒤로도 저는 때마다 일기를 써오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들어가서도 그러했고, 단식을 하던 중에는 단식일기를, 목수학교에 다닐 때는 목수학교일기를, 그리고 목수 일을 하던 때에는 목수일기를 쓰면서 그 시간들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어떤 출판을 마음에 두고 일기를 쓰거나 했다면, 그처럼 솔직하게 쓰거나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일기를 쓰면서도 무언가를 자꾸 기획하거나 생각하고, 어떤 시선이나 독자를 의식해야 했을 테니, 그 자체로 그리 즐겁지 않은 글쓰기가 되었을 겁니다.

 

작가님 자신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염치입니다.
 
본 받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가 혹시 있으신지요?

 

권정생 할아버지. 그러나 감히 본 받고 싶어 한다거나 본 받으려 노력한다는 말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아요. 그저 할아버지를 늘 그리워할 뿐입니다. 글 쓰는 일로가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것으로.

 

작가님이 속해 있는 ‘글과 그림’ 동인에 대해서 소개 부탁 드립니다. <그 꿈들>, <미친 개>를 담고 계신 김종숙 화가님도 같은 ‘글과 그림’ 동인이시더라고요.

 

‘글과그림’은 이오덕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해온 이들 가운데 오래도록 그 뜻을 함께 해온 동무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모임의 이름처럼 글과 그림을 모아 달마다 한 번씩 동인지를 펴내온 것이 벌써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글도, 그림도 모두 그리움인 것을, 아마도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종숙 선생님과 인연이 닿은 것도 이 모임에서였습니다.

 

<그 꿈들>에서 김종숙 화가님과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라크에서 만난 실제 인물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그린 원화 작업을 하셨다고 보도자료에서 읽었습니다.

 

 전쟁이 시작하고 십 년이 되던 지난 해 여름, 저는 간신히 그 글을 썼습니다. 스케치북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듯 손으로 썼어요. 그렇게 두 권을 써서 한 권을 편집자 형에게, 또 한 권을 김종숙 선생님에게 보냈습니다. 김종숙 선생님은 그것을 받아 읽고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다 하였습니다. 저는 이라크 현지에서 찍어온 사진이며 동영상 같은 자료들과 제가 그 동안 수집해온 그곳 관련 자료들을 모아 김종숙 선생님께 보내었고, 김종숙 선생님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한 점 한 점 유화로 그려내었습니다. 일 년 만에 서른일곱 점의 유화 작품을 그려낸 김종숙 선생님의 에너지는 실로 불덩이 같았습니다. 작업을 하던 중간에 몇 차례 김종숙 선생님을 찾아뵐 때마다 지난 십 년의 시간들은 캔버스 안에서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었고, 캔버스가 늘어갈수록 그 조그만 방에서는 모래바람이 일고 포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때부터 김종숙 선생님의 그림들은 원화전시회를 꼭 가져서 독자들이 직접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8월 1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고,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는 속초에서, 9월 22일부터 25일까지는 상주에서, 그리고 계속 준비가 되는대로 다른 고장들에서도 전시회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작가님은 어떤 것에 가장 엄격하다고 생각하세요? 반대로 너그러워지는 대상이 있다면요?

 

내가 가장 엄격한 건 나 자신일 겁니다. 반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내가 과연 누구에게든 한 번이라도 너그러웠던 적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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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부터 작가생활을 시작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왕성하게 활동해온 소중애 작가가 또 한편의 신작 동화를 펴냈다. 짜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다. 짜증 내는 버릇을 고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반드시 해결해야만 밝고 긍정적인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단다. 인터뷰는 2014년 4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에 초등학교 교사로 동화작가로 아이들을 사랑하며 보낸 풍요로운 시간이 묻어난다.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4-04-25)

 

 

동화 <짜증방>의 출발점이라고 할까요, 작품을 구상하신 계기와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먼저 여쭤볼게요.


실제로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여자애의 얼굴을 사정없이 밀어 일그러뜨리는 남자아이를 봤어요. 여자애는 아프다고 소리치고 남자애 엄마는 사과하라고 소리쳤지요. 그러자 남자아이는 아주 가볍게 힘 안들이고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때 뿐만 아니었어요. 곳곳에서 아이들의 짜증을 봐왔어요.. 그 아이들의 짜증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지요.

 

이야기 초반 공항 식당에서의 대화 장면부터 시작해서 주인공 도도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말투, 감정 모두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이러한 리얼리티는 어떻게 확보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38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동화를 쓴 지도 3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눈에 잘 들어와요.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생긴 아이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비교적 기억을 잘 해요.  그 기억의 조각들이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동화를 읽기 전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책을 쓰신 의도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아이들이 짜증 부리는 버릇을 고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하셨는데, 막상 이야기 속에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방적인 설교가 나오지 않아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도도의 모습을 보면서 뜨끔한 어린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글을 써오셨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도 통하는 젊은 감각을 가지셨다고 느꼈습니다. <짜증방>을 쓰시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도도 같은 짜증이들은 남을 생각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요. 사회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행복하지 못하지요.  짜증을 털어버리면 사랑 받는 아이, 귀여운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짜증방’, 한번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제목인데요. 책 속에도 설명이 있지만 ‘짜증방’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인터뷰 지면을 빌어서 다시 한번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짜증 부리는 아이를 싫어하고 멀리해요. 짜증 부리는 아이를 보면 짜증이 나거든요.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들은 아이 곁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짜증이들은 그걸 몰라요. 곁에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말예요. 계속 짜증을 부려 벽을 쌓고 방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두죠. 그건 곧 자신을 가두는 것과 똑같은데 그걸 몰라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혼자가 되었을 때서야 후회하게 되지요.

 

짜증방은 아이들에게 들려주시는 이야기 같습니다. 아이들의 ‘짜증’과 관련해서 부모님들께 직접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짜증방 원고를 마감하고 중남미 배낭 여행을 떠났어요. 저는 거기에서 어른 짜증이를 만났어요. 날씨가 덥다. 음식이 짜다. 호텔 방이 작다. 등 하나에서 열 가지 못마땅한 짜증이었어요.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어요. 도도도 이모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른 짜증이로 자랄 것 아니겠어요? 짜증 부리는 버릇은 고쳐 주셔야 해요. 그래야 밝고 긍정적인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도도가 마귀할멈이라고 믿는 이모 할머니, 이 같은 비밀스러운 캐릭터나 개구리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 고전적이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주는 설정이 많습니다. 일러스트도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데요. 작품을 쓰시기 전에 원했던 모습과 완성된 이야기는 서로 많이 닮아 있나요?

 

글 속 도도는 처음보다 덜 지독한 아이로 바뀌었어요. 정말 정 떨어지는 지독한 짜증이로 그리다 보니 도도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도도는 자신의 짜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자신의 짜증이 주위 사람들에게 (특히 엄마)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잘 몰랐어요. 도도는 감정 표현 방법이 미숙했던 것이지 정말 나쁜 애는 아니거든요.

 

2014년의 한국 아동문단은 선생님께서 등단하신 1982년 즈음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많은 변화를 몸소 느끼시는지, 작품 활동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다양한 소재로 정말 재미있게 잘 써요. 감각이 젊어서 요즘 트랜드를 잘 알고 있지요. 젊은 작가들을 보면서 나도 더욱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하지요.

 

그 동안 우리 전래동화를 새롭게 쓴 작품들을 여러 편 발표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작업에 어떤 매력을 느끼시는지요? <짜증방> 같은 동화책을 더 많이 읽어보고 싶은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전래동화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배워야 할 덕목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전래 동화를 많이 읽히라고 학부모들에게 권하고 있어요. 세상에 알려 지지 않고 묻혀 있는 전래 동화를 찾아 발표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창작동화도 열심히 쓰고 있어요. 6월부터는 [소년] 잡지에 연재도 시작하고요.  저는 제 글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중애 작가님의 이름은 제가 어린 시절에도 읽었던 책에서도 여러 번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하시는 것이 반갑고 또 감사하기도 한데요. 끊임 없이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일단 제가 즐겁거나, 감동을 받았거나, 호기심이 발동해야 글을 씁니다. 세상에는 즐거운 일도 많고 감동 받을 일도 많습니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요. 그런 것들을 이야기로 엮는다는 것은 정말 신 나는 일이지요. 신나는 일은 무한한 에너지를 방출한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동화작가라는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축복 받은 일이면서도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을 것 같거든요. 기쁨과 고통이 동시에 따르는 이 두 가지 일을 어떻게 해오셨는지요.


초등학교 교사와 동화 작가는 축복처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을 잘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소재를 구했지요. 그랬다고 아이들이 언제나 즐겁고 사랑스럽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어요.  알잖아요,  가끔씩 뒤로 넘어갈 것 같은 것…ㅎㅎㅎ. 그럴 때 저는 동화작가로써 한발자국 물러 나 살펴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노력이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고 내 글을 풍요롭게 했지요. 그건 저에게나 아이들에게 참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는 요즘,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한 마디 부탁 드려도 될까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슬픈 사건 속에도 분명 어른 짜증이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 일을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소홀히 했던 짜증이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숙한 태도로 짜증을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분들께 눈물로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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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동생,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로의 맘을 몰라 티격대격하는 형제지간을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그려냈습니다. 신작 <우리 집 괴물 친구들>의 출간을 기념해, 박효미 작가님과 사계절출판사가 인터뷰 자리! 게재를 허락해주신 사계절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엉뚱한 상상력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빛나게 한다
<우리 집 괴물 친구들>로 돌아온 동화작가 박효미

 

사계절 : 오랜만에 선보이는 저학년 동화입니다. <펭귄이랑 받아쓰기>이후 3년 만인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박효미 : 처음 책을 내는 것처럼 두근거립니다. 저학년 동화는 그 어떤 장르보다 현실과 환상을 거침없이 오갈 수 있지요. 아이들의 심리도 날것 그대로, 솔직합니다. 환상을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이미 깎이고 다듬어진 어른의 시각이 개입한다면 어설픈 이야기, 진짜가 아닌 흉내 내는 이야기가 되고 말지요. 꼭 줄타기 같아요.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다 자칫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게다는 저는 이미 어른이잖아요.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실패하고 말지요. 개인적으로 저학년 동화의 완성도는 이 줄타기에 있다고 봅니다. 실패하면 독자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겠죠. 쩝, 유치하군! 이제 막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마친 느낌입니다. 그래도 쓰고, 고쳐 쓰고, 교정보는 내내 아주 아주 즐거웠습니다. 

 

사계절 : <우리 집 괴물 친구들>을 보면 형과 동생의 관계가 무척이나 생생하고 사실적입니다. 작품을 구상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박효미 : 저는 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랐고, 제가 낳은 아이들은 오누이입니다. 또 주변에서 남매, 형제를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게 형제지간이었습니다. 남동생의 형 ‘따라 하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더군요. 만나면 싸워대는 누나와 남동생보다 형을 껌딱지처럼 쫓아다니는 남동생이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지요. 그런 생각이 작품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사계절 : <우리 집 괴물 친구들>에 나오는 괴물 이비야, 툴툴지아, 누툴피피는 동생 종민이의 또 다른 자아로 비쳐집니다. 이름도 독특하고 생김새도 괴이한, 정말 말 그대로 ‘괴물’인데 이런 괴물들은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박효미 : 이비야, 툴툴지아, 누툴피피. 실제 우리 집 아이들이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썼던 유아어입니다. 저도 따라해 보았는데, 입에 척척 달라붙더라구요. 참 재미있어요. 이것 말고도 아직도 기억나는 유아어들이 또 있습니다. 유아어들 중엔 어떤 물건에 붙여진 이름도 있어요. 이름이 지어지고 불리는 순간, 그것은 생명력을 갖습니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그것이 정말로 살아 있다고 생각하며 놀이를 합니다. 무척 흥미롭습니다. 문득, 저는 이미 너무 큰 어른이 되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고 함께 놀고 때로 의지하고 싶습니다.

 

사계절 : 작품 속에 나오는 엄마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엄마 상인 것 같아요. 종민이 말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형 편만 든다거나 무조건 공부하라 하고, 혼내고 다그치는 역할로 나오는데요.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다면.

 

박효미 : 어른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 교육상 가장 좋지 않은 게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도 엄마인데, 일관성 있게 산다는 게 어디 쉬운가요? 엄마가 늘 아이들 교육에만 신경 쓰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엄마도 자기 인생을 살아야죠. 그러다 보면 종민이 엄마처럼 되기 십상이지요. 저는 우리 시대에 가장 흔한 엄마를 솔직하게 그렸을 뿐입니다.

 

사계절 : 강연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시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시잖아요, 실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요. 요즘 아이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박효미 : 몇 년 전에 비해 아이들은 더 바빠진 것 같아요. 확실히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고. 그렇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가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꿍꿍이가 많은 아이, 안 듣는 척하지만 다 듣고 있는 아이, 센 척하지만 속으로 생각이 많은 아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아이들이 조금만 더 심심했으면 좋겠어요. 휴대폰에서, 컴퓨터에서, 공부에서 조금만 멀어져 뒹굴뒹굴, 심심해 심심해를 외치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훨씬 더 행복할 거예요.  

 

사계절 : 훗날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요?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쓰고 싶으신지 궁금하네요.

 

박효미 : 20년, 30년 후에 읽어도 괜찮은 이야기, 오래 전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제가 쓴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뛰는 생명력을 갖는 거죠. 제가 쓴 작품 중에 한두 작품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전 아주 행복한 작가겠죠.

 

지금까지 쓴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휴대폰과 게임을 즐기는 아이가 문득, 책 앞머리 한두 장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끝까지 읽어 버렸다면, 그리하여 옆 친구에게도 빌려주고, 소개해준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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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기호 3번 안석뽕>은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한 재래시장 떡집 아들의 선거운동을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어느 초등학교 교정에서라도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꾸밈 없는 아이들의 모습, 싱그러운 에너지와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스스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 아이들을 무한히 신뢰하는 작가, 창비 좋은 어린이책 역대급 재미를 보장하는 맛깔스런 데뷔작 <기호 3번 안석뽕>의 진형민 작가를 만났다.

 

(기획:창비 / 사진:창비 / 인터뷰:알라딘 이승혜 / 2013-03-21) 

 

대안학교, 어린이 서점, 방송국, 출판사 다양한 일터와 경력을 거쳐 동화를 처음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안학교에서는 우리말과 글이라고 부르는데 국어과 교과가 되겠죠. 이 말과 글 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 중심에서 글쓰기 작업들을 하게 됐었어요. 대안학교 교사를 하기 전에는 어린이 서점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 여러 가지 삶의 과정 속에서 계속 아이들 책이 제 주변에 있었고요. 그런 것들을 누리는 사람에서 그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어떤 중요한 계기 하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부터 건너건너 지금까지 오면서 글을 쓰는 일, 일을 해야 하는 형태가 글인 것, 그리고 그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것 그런 것들이 계속 공통적으로 주변에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야금야금 쌓여서 어느 순간에 넘치는 지점이 요즈음이 아닐까… 쓰고 싶은 욕구와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같이 넘쳤던 바로 그 지점이 바로 운 좋게 요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호 3번 안석뽕>은 어디서부터 출발하게 된 작품인지요?

 

저희가 한동안 선거 국면을 많이 지나왔잖아요? 선거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며 제가 한참 책을 쓰고 있을 때의 국회의원 선거며,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근처의 학교에서는 또 아이들 선거며,  이러저러한 선거 과정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상을 하게 됐었고요. 처음에는 사실 각기 다른 2개의 단편이었어요.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선거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재래시장 문제를 다룬 이야기였는데 그 두 이야기가 어느 순간 같이 넘나들면서 뛰어 노는 어떤 시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단편 A의 아이들하고 단편 B의 아이들을 서로 만나게 해줬고, 그게 자연스럽게 좀 이어졌던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졌을까 궁금했었는데, 애초에 두 단편이 따로 존재했었던 거였네요.

 

알고 보니 한 동네 아이들이었던 거죠. (웃음)

 

<기호 3번 안석뽕>은 일러스트 보는 재미도 굉장합니다. 이야기하고도 정말 잘 어울렸고요. 작가님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만세를 불렀죠(웃음). 그림을 그려주신 한지선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정말 언젠가 이 감사함을 꼭 전해드려야 할텐데요. 글 작업이랑 그림 작업이 한 텍스트에 있긴 하지만 참 서로 다른 것 같아요. 백마디 말이 함축적으로 한 컷에 담겨지는데 그 느낌이 이런 거구나 했어요. 저도 사실은 책을 처음 내봤기 때문에 그림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무게와 역할이 이런 거구나, 정답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지요.

 

<기호 3번 안석뽕>을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제 의도보다도 아이들이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사실 가장 궁금한 지점이에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썼어요’, ‘여기서 주제는 뭐예요’, 주입식으로 아이들에게 얘기하기는 좀 난감한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제가 정한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사실 의도하는 바가 아니고요. 그런데 어쨌든 쓰는 사람 입장에서 제가 늘 관심 있는 것은 이런 것 같아요. 아주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지점들에 대해서 ‘정말 당연해?’ 이렇게 물어봐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수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소외되는 상태와 구조에 대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소외되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도록 한번씩 쿡쿡 찔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요. 그게 대단히 어떤 큰 결과를 가져오고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지만 의무로 삼았다기보다 굉장히 즐겁게 한 것 같아요.

 

교사로 일하셨던 대안학교에서의 반장 선거, 회장 선거의 풍경은 어떠한지요? 일반 학교와는 조금은 다른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대안학교에서는 이제 ‘모둠’이라고 하는데 그 모둠에서 대표를 뽑아요. 대부분의 과정은 다 비슷하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훨씬 더 주체적으로 참여하게끔 어른들은 뒤로 많이 빠져주죠. 공약을 발표하는 정견의 장도 있고, 비밀 투표의 과정도 있고요. 잔치처럼 그렇게 해요. 수업 안하고 그런 걸 하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그러면 일반 학교에서의 선거 풍경은 책(<기호 3번 안석뽕>)에 나와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요?

 

모든 학교가 다 똑같이 이렇게 하진 않겠지만 취재를 통해서, 대체로 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풍경들을 모아 쓴 것이라 보편적인 부분들은 있을 거예요.

 

초등학교 선거처럼 재래시장 풍경도 취재를 거쳐 나온 모습들인지요?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떡집도 저희 동네 재래시장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 집에서 떡을 얼마나 많이 사먹었는지 몰라요. 떡을 만드시는 동안 ‘제가 여기 앉아서 떡 만드시는 걸 보겠습니다’ 하면서 사진 찍고 취재하고 인터뷰도 하고 했죠. 오히려 더 디테일한 것들을 많이 못 실었죠. 빼면서 아깝기는 했지만 아깝다고 다 쓰자니 너무 넘치는 것 같고… 취재했던 것들을 다 써먹지 못해서 가슴이 좀 아팠죠(웃음). 제가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활자로 된 자료만 가지고 뭔가 근사하게 만드는 능력이 없어서 발로 뛰지 않으면 해결 안 되는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제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런 취재들이 제 작업에서는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정들어 슈퍼’ 딸 백발마녀가 바퀴벌레 군단으로 ‘피마트’를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셨는데요(웃음).

 

그렇게 지저분한 건 다 제 상상입니다(웃음).


<기호 3번 안석뽕>에서도 그렇고 반장이나 회장이라는 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성적 좋은 아이들이 반장을 도맡아 하고, 부모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반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세요?

 

부모님이 지원을 잘 해줘서 아이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역할을 아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되면 암암리에 좀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도 있고 같이 굴러가는 것 같아요. 드러나는 현상은 엇비슷한데, 사실은 스스로 사교육 시장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같이 따라가게 되는데요. 나 혼자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기가 어렵죠. 나는 됐어, 그렇게 쿨하게 놓아버리면 좋겠지만 그게 내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의 문제하고 연동이 됐을 때는 좀 더 고민스러워지는 지점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되는 분위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부모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지점도 아니고 사실은 존재하는 어떤 현상이기는 한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있죠.

 

석뽕이는 직접 선거에 뛰어 들고 나서 회장이라는 것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 특정한 소수 집단의 아이들이 취득하는 어떤 지위라기 보다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는데요.

 

기호 1번이나 2번 같은 경우 그렇게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반장 선거에 나가고 반장이 되고 반장이라는 이름값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습적으로 익숙해진 녀석들이라면요. 기호 3번 무리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사전 정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말 그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반장이라는 게 뭘까 고민하고 찾아가게 된 그런 아이들인데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건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역할들을 찾아가야 되는 게 아닐까? 과연 반장이라 함은 남들 앞에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그 약속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무게감을 자기가 어떻게 어깨에 안고 갈 것인가였어요. 실제로 아이들을 그냥 탁 풀어놓으면 이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찾아나가기 이전에 이미 프레임이 다 짜여 있고 자발적으로 해낼 수 있는 기회들이 생략됐기 때문에 기호 1번과 2번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그 아이들도 스스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 거야 라는 믿음은 있죠.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을 거예요.

 

재래시장 인근에 생기는 대형마트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뉴스를 통해서도 자주 접하고 또 실제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요.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처음 단편에 담고 장편으로 발전시키셨던 이유에, 아이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지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아니었다는 점, 또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죠. 사실은 아이들도 사회의 구성원이잖아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기 부모의 문제고 친척들의 문제고, 이웃들의 문제고 곧 자기들의 문제가 될 것이고요. 그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새로 시작해야 될 어떤 과제나 공부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 함께 가야 되는 그런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들하고 같이 나눌 것인가 하는 방식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이 되지만, 분명한 건 어릴 때부터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거죠. 나로부터 시작해서 가족, 이웃, 사회, 국가, 세계… 점점 동심원들이 넓어지면서 아이들의 관심의 영역도 넓어질 텐데, 그 크기에 맞추어서 계속 같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기호 3번 안석뽕> 출간 이후로는 글쓰기와 관련해 어떤 작업이나 구상을 하고 계세요?

 

지금 작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은 여전히 비슷한 지점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서 ‘이런 고민도 필요해’ 라던가 ‘아. 맞아 이런 것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인데’ 라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미처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얘기를 건네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 구조의 문제,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있죠.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거꾸로 동화 쓰는 일이 작가님 본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세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치죠(웃음). 직장에 다닐 때나 바깥 일을 할 때에는 어쨌든 꾸준히 들고 나고 하면서 에너지를 밖으로도 쓰고 안으로도 쓰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랬는데 이제 줄창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까 왠지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길게 가려면 제 안에서 에너지를 배분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은 좀 들어요.

 

이번 작품을 완성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과정을 6개월 밟고 나서 같은 기수 동기들이랑 후속 모임들을 계속 했었어요. 엄기호씨라고 그분이 쓰신 책을 보니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동료’와 ‘아지트’라고 하셨는데 정말 요즘에는 특히 글을 쓰면서는 정말 그렇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혼자 고립되어서 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쓰는 작업은 혼자서 개인적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만 그것들을 작품으로 외화시켜내는 과정에서는 동료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자기를 성장시켜내는 동력을 자기 안에서 혼자 가져오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 후속 모임에서 동기들이랑 같이 계속 습작을 했었어요. 한때 막 불타올라서 할 때는 저희가 붙인 이름이 ‘스파르타 시즌’이었어요(웃음). 거의 일주일에 단편 하나씩 들고 와서 합평하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같이 쓰기도 하고 전래동화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를 가져와서 다시 쓰기도 하는 그런 작업들을 했고요. 그 와중에 썼던 두 개의 단편들을 가지고 장편 <기호 3번 안석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합평을 하는 친구들의 힘이 컸죠. 언제나 어디에서나 늘 마음껏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럴 수 있는 공간이나 사람을 찾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하고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모였었고, 같은 선생님들 밑에서 수업을 들으며 합평을 했던 기본적인 토대들이 그런 작업들을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아요. <기호 3번 안석뽕>이 책으로 나왔다고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친구들 반응은 마치 제가 뱃속에 아이를 가졌다가 출산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 얘가 걔구나’ 하면서 기뻐해주더라고요. 제가 느끼는 것과 가장 비슷한 감회를 느껴주는 사람들은 바로 그 친구들이에요.

 

아이들에게는 어떤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책을 골고루 읽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들 독서 목록 제일 앞에 놓였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요?

 

제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철학이 빈곤하여 참 부끄럽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으로 두고두고 남기 위해서는 어쨌든 나의 철학이 더 깊어질 필요가 있겠구나. 계속 이끌어왔던 자기 색깔, 철학이 있고 역사에 대한 자기 관점이 있고 사회에 대한 의식이 있고 뚜렷하게 이끌어온 사상이나 그런 자기 체계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거칠게가 아니라 이야기다운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 때는, 그러니까 제 어린 시절이 그렇게 유복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얻지는 못했었어요. 철학, 세계사, 사회사 이런 것들은 나중에 대학에 가서 굉장히 건조한 방식으로 배웠었죠. 그런데 어린 시절에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건조하지 않고 풍요롭게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뒹굴면서 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예술적 경험을 통해서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책도 그 중에 한 부분이 될 수 있겠고요. 재미가 있다는 건 같지만 얕은 재미와 깊은 재미는 좀 다를 것 같거든요. 깊은 재미가 있는 책들이, 더더군다나 요즘 같이 험난한 세상을 살 때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에게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기호 3번 안석뽕>의 독자 분들께 특별히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요?

 

책이 아이들 가까이에 늘 있는 시스템이면 참 좋겠어요. 지금은 아이들 손에 책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현실인데 그게 부모가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아이가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서로 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이 아이들 가까이에 있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이나 개개인의 변화를 논하기 전에 아이들 가까이 책을 놓게끔 만드는 그런 정책적인 것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글을 쓰는 사람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해낼 수 있고 아이들도 더 이상 책 읽기를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 많은 것들을 감수하면서 해야만 하는 그런 어려운 작업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독서라 할지라도 진짜 재미와 의미를 알아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사실 있잖아요. 책 읽기의 과정 속에서도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곁에 있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시스템, 정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고민하는 주체는 아이들이 되기 어려우니까 아이들 주변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어른들이 그런 고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제 책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다 같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고민들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같이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기호 3번안석뽕>이 개인적으로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요?

 

얼마 전에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일본의 교육학자가 쓴 책인데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세 사람의 어른이 필요하대요. 그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삼촌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각자의 방식이 좀 다르긴 하지만 기존 사회에서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가치와 도덕들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면, 삼촌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거예요. 부모들이 사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도덕이나 가치를 전달한다면, 이 삼촌은 그 가치를 의심하게 하고 그 가치에 저항하게 하고 그 도덕체계를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역할들을 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부모가 주는 가치체계만을 가지고 어떤 의심이나 고민 없이 그냥 자라나는 것보다 이런 삼촌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더불어 자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삼촌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 사이에서는 틈이 생기잖아요. 그 틈이 생겼을 때 비로소 아이들에게 생각의 여지가 생기고, 또 그게 때로는 되게 혼란스럽고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는 거죠. 부모가 답습해주는 것들을 그냥 받아 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예전이랑 다르게 그 삼촌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거대한 부모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 그런 조직은 굉장히 거대해지고 학교도 그렇고 사교육 시장도 마찬가지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한가지 방식 한가지 지향점 외에는 균형감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나같이 삐딱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바로 그 삼촌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사실은 <기호 3번 안석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새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렇고 당분간은 삼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삼촌이 적대적이거나 모순된 관계는 또 아니고 서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삼촌? 이 책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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ㅓㅎㅀ 2016-05-3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해요!!!!

하늘 2016-05-3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________________________랑해요!!!!
 

 

열살 무렵의 어린이날 난생 처음 스니커즈를 신어본 한 꼬마가, 스니커즈의 인디언 핑크색과 예쁜 생김새에 매료되었던 소녀가 시와 동화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분주한 직장생활을 뒤로한 어느 봄날, 신나게 써내려간 자신의 이야기가 동화 속 마법처럼 데뷔작이 되었다.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저학년 부문 대상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의 김유 작가를 3월의 이른 아침에 만났다. 볼로냐 여행을 하루 앞둔 작가는 사랑스러운 '스니커즈 발견가' 구구의 탄생 비화를 아낌 없이 공개해주었다.

 

(기획:창비 / 사진:창비 / 인터뷰:알라딘 이승혜 / 2013-03-21) 

 

 

어린이 책 만드시는 일을 하다가 동화 작가가 되신 과정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어요?

 

제가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라지는 못했어요. 그 동안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문예창작과에 진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어린 시절에 동심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동화책을 읽으면서 그 동심이 살아나는 것 같은 거예요. 어린 시절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다시 끌어올 수 있고 결국은 이게 다시 사는 셈이 되더라고요. 한 10년 전쯤, 그때부터 동화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지금까지 갖고 왔어요.

 

본격적으로 동화를 읽었던 그 대학 시절에는 어떤 작품을 제일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인데요. 동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책을 교과서처럼 봐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삐삐 롱스타킹>도 제 어린 시절을 연상하면서 푹 빠져서 본 책이고요. 그런데 저는 삐삐하고는 다른 아이였어요. 삐삐처럼 활발하거나 씩씩하지 못했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그런 모습의 제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마법의 설탕 두 조각>, <학교에 간 사자> 같은 좋은 책도 대학 시절에 처음 읽었어요. 동화책 중에 좋은 책이 참 많구나 했었죠.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어떻게 구상하신 작품인지요?

 

구상은 좀 오래 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없고, 현실적으로 시간도 부족하고… 그래도 계속 구상하고 메모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게 된 건 회사를 그만두고 난 작년 봄이었어요. 몇 달 사이에 이 작품을 정말 신나게 썼죠. 제가 가장 잘 아는 얘기부터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썼던 습작이나 단편동화에서는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만큼 저를 드러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 아는 얘기를 써보자는 게 이 작품의 출발점이었고요. 그래서 더 즐겁게 썼던 것 같아요.

 

주인공 구구가 저와 가장 닮은 점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게 됐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구구하고는 성격이 많이 달랐어요. 구구랑은 다르게 정말 소극적이었고, 호기심은 많았지만 표현을 잘 못했어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참 안타깝게 느껴지죠. 그래서 구구한테는 신나는 일만 생기도록 쓴 것 같아요. 구구가 작품 속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자로 활약하는데 이건 제가 원했던 저의 모습, 마음속에 그렸던 모습들을 구구한테 옮겨서 표현한 것 같아요.

 

스니커즈를 좋아하시냐고 물어보는 건 너무 당연한 질문일까요?(웃음)

 

좋아해요! 신발, 우선은 신발 자체를 참 좋아하고요. 일반 운동화는 어쩐지 어감도 뭉툭하고 투박하기도 한 것 같은데... 그런데 스니커즈는 참 멋지지 않나요?(웃음) 이름도 그렇고 여러가지 모양이나 색깔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스니커즈라는 이름도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온 거고, 그래서 어쩐지 스니커즈를 신으면 되게 신나고 사뿐사뿐 날아갈 것 같잖아요.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선물, 정말 기뻤던 선물을 받았던 게 바로 스니커즈였어요. 제가 살던 동네에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부모님들이 다 외출을 하셔야 할 때면 제가 잠깐씩 가서 그집 아기를 돌봐주곤 했었거든요. 아이 아버지께서 저한테 보답으로 어린이날 선물을 사주신 거예요. 당시에 흔하던 그런 하얀 운동화가 아니라 인디언 핑크 색에 앞코는 얄쌍하고 끈 대신 찍찍이가 달린 굉장히 예쁜 신발이었어요. 스니커즈, 처음 신어보는 모양의 스니커즈였어요. 그 시절에는 굉장히 비싼 신발이기도 했고요. 그때 그 스니커즈를 신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도 평범한 아이구나.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 신발을 신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요. 그때가 아홉 살 아니면 열살, 구구랑 비슷한 나이였어요.

 

그때 그 스니커즈를 선물 받은 꼬마가 이런 멋진 동화작가가 됐다는 걸 아저씨도 알게 되신다면 정말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외로웃 이웃을 위한 잔치’에 초대를 받은 구구와 키다리 아저씨가 본인들이 왜 외로운 이웃으로 불리는 건지 의아해하는 대목이 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한데요.

 

구구는 엄마 아빠를 한 순간에 잃고 고아가 됐어요.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 고아원에 보내야 된다, 의논을 하는데요. 어떤 결핍이 있는 사람을 봤을 때, 저 사람은 외롭다라는 규정을 우리가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요. 키다리 아저씨는 혼자 살면서 많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특별한 벌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 사람은 분명히 외로운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사실 그들은 전혀 외롭지 않은데 타인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걸 반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키다리 아저씨랑 구구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구구 친구들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요. 구구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따뜻한 마음씨, 친구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친구를 사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아요. 구구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만날 수 있다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구구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아이고,  키다리 아저씨랑 몽돌이를 뺀 나머지 또래 친구들을 한 사람씩 보면은... ‘에이뿔따구’는 엄마 아빠가 다 있어요. ‘떡진머리’는 엄마하고만 사는 아이죠. 다양한 환경에서 각각 살아가는 아이들인데 다 나름의 결핍이 있어요. 부모님이 계신 아이조차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모이면 아주 어려운 일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거죠.

 

키다리 아저씨가 만든 노래 중에 ‘기분이 아주 좋으면 노래를 부르고 기분이 아주아주 좋으면 시를 쓴다’는 가사가 있어요.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땐 어떻게 하세요?

 

제가 노래를 좋아는 하는데 잘 하지는 못하거든요. 음치 박치여서 절대 노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고요(웃음). 시는 좋아해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도 처음에는 시 공부를 먼저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동화로 옮겼는데 시하고 동화는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시적 상상이 동화로 왔을 때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시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대목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에서는 힘든 상황이나 아픈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자고 강조를 하셨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일찍부터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사는 것 같아요. 제가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에서 ‘우리동네에는 100명이나 있다’는 좀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모두 왕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자기 의사나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안타깝거든요.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면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는데 그걸 어른들이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울고 싶고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많이 놓일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다면 좀 더 삶이 풍요로워지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하신 부분이 있다면요?

 

캐릭터를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캐릭터가 선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주인공 구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인데, 이 아이가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포인트로 잡았어요. 구성이나 결말을 정해 놓고 쓰진 않았는데 쓰다 보니까 구구가 가는 대로 이야기도 같이 따라 흘러갔어요.

 

아동복지시설에서 문학예술 강사로 활동하셨을 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르쳐주셨는지.

 

문학예술 강사직이 우리나라에는 10년 전부터 있었더라고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arte) 곳에서 하는 사업인데 문학 수업은 최근 한 2년 사이에 자리를 잡았어요. 저는 파주 쪽에 있는 지역 아동 센터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게 됐어요. 부유하고 풍요롭게 사는 친구들도 많지만 어려운 친구들도 참 많잖아요. 여전히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는 걸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을 만나면서 느끼게 됐는데요.

 

제가 맡은 수업이 4, 5,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3학년 친구들도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책을 읽고 같이 써보는 게 기본 목표였지만 막상 그렇게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책을 읽고 쓰게 하는 것에만 집착을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울툴불퉁하게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고, 또 의자 밑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아이도 있고, 막 웃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밉다 혹은 왜 저러지가 아니라 제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저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는 그런 걸 깨닫고 많이 배우기도 했죠.

 

그래서 어려운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읽었을 때 마음에 와 닿을 만한 그런 그림책들을 골라 가지고 가서, 만날 때마다 그 한 권을 같이 읽는 것에 의미를 두었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기뻤어요. 저 역시 이 수업으로 인해서 어떤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었죠.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어린이들 만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직접 쓰신 책을 읽어주신다면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어요!

 

안 그래도 친구들한테 책을 보내줬어요. 그 중에 한 아이가 ‘딱 쌤이 쓴 거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해줬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제 목소리와 저라는 사람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제 실제 모습하고 다르게 책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건 가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다른 어떤 칭찬보다 기뻤어요.

 

작가님의 일상에서 활력소가 되어주는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랑 둘이서 함께 지내는 언니요. 언니도 문학을 전공했고 동시를 쓰고 있어요. 저희가 딸만 다섯인데 언니가 넷째, 제가 다섯째고요.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거나, 다른 대상에 대해서 의견을 많이 주고 받는 편이에요. 언니는 동시를 쓰고 저는 동화를 쓰니까 서로의 작품을 제일 처음 읽는 독자가 돼서, 날카롭게 지적을 해주기도 하고요. 지적을 받을 때면 화도 났다가 내가 고민을 더 해야 하는구나 자극도 받고요. 언니가 저의 멘토이자 가장 큰 자극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동화를 써나가고 싶으신지 계획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의 독자가 되어주실 분들께도 인사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선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제 동화에는 유머도 있고 반짝이는 상상력도 있고 넌센스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다 같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는 게 목표고요. <어린 왕자>처럼 거듭해서 읽게 되는 작품, 처음 봤을 때 못 봤던 걸 두 번째 읽었을 때 새롭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어린 왕자>가 두고 두고 보고 싶은 책인 것처럼 우리 구구도 그렇게 사랑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분들한테요.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구구라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구구는 자신보다 더 외로운 상황에 놓인 친구들, 이웃을 따뜻하게 같이 안아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가요. 건강하고 밝은 이야기니까 많은 분들이 보시고 같이 힘을 내고 구구를 응원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쓰면서 그 동안의 제 아픔이나 상처들이 많이 치유되기도 했어요. 이 책을 출발점 삼아, 저도 앞으로 구구랑 같이 씩씩하게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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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2013-03-3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니커즈로 꿈을 키울 수 있다니... 우리 아이들도 구구를 만나면 멋진 꿈을 꿀 것 같아요.

둘리 2013-03-3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이 인터뷰에서도 느껴지네요
진짜 자신이 드러나는 글을 쓴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구구처럼 요즘 아이들도 따뜻하고 솔직한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헬로우맘 2013-04-02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따뜻하고 재밌는 이야기 많이 써주세요. 구구가 스니커즈 발견가가 된 다음에 모험담도 책으로 만나볼수 있기를 바래요~

나나맘 2013-04-0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삶이 담긴 책이라서 그렇게 가슴에 와닿았군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그냥 울컥했어요.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나요?

유머를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운 책, 다정한 책입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체스턴 2013-04-04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네요.

또구구 2013-04-05 0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국 영행 중에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인류 최고의 동화는 삐삐롱 스타킹이다. 이에 버금가는 동화가 나와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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