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기호 3번 안석뽕>은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한 재래시장 떡집 아들의 선거운동을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어느 초등학교 교정에서라도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꾸밈 없는 아이들의 모습, 싱그러운 에너지와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스스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 아이들을 무한히 신뢰하는 작가, 창비 좋은 어린이책 역대급 재미를 보장하는 맛깔스런 데뷔작 <기호 3번 안석뽕>의 진형민 작가를 만났다.
(기획:창비 / 사진:창비 / 인터뷰:알라딘 이승혜 / 2013-03-21)
대안학교, 어린이 서점, 방송국, 출판사 다양한 일터와 경력을 거쳐 동화를 처음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안학교에서는 우리말과 글이라고 부르는데 국어과 교과가 되겠죠. 이 말과 글 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 중심에서 글쓰기 작업들을 하게 됐었어요. 대안학교 교사를 하기 전에는 어린이 서점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 여러 가지 삶의 과정 속에서 계속 아이들 책이 제 주변에 있었고요. 그런 것들을 누리는 사람에서 그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어떤 중요한 계기 하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부터 건너건너 지금까지 오면서 글을 쓰는 일, 일을 해야 하는 형태가 글인 것, 그리고 그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것 그런 것들이 계속 공통적으로 주변에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야금야금 쌓여서 어느 순간에 넘치는 지점이 요즈음이 아닐까… 쓰고 싶은 욕구와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같이 넘쳤던 바로 그 지점이 바로 운 좋게 요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호 3번 안석뽕>은 어디서부터 출발하게 된 작품인지요?
저희가 한동안 선거 국면을 많이 지나왔잖아요? 선거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며 제가 한참 책을 쓰고 있을 때의 국회의원 선거며,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근처의 학교에서는 또 아이들 선거며, 이러저러한 선거 과정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상을 하게 됐었고요. 처음에는 사실 각기 다른 2개의 단편이었어요.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선거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재래시장 문제를 다룬 이야기였는데 그 두 이야기가 어느 순간 같이 넘나들면서 뛰어 노는 어떤 시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단편 A의 아이들하고 단편 B의 아이들을 서로 만나게 해줬고, 그게 자연스럽게 좀 이어졌던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졌을까 궁금했었는데, 애초에 두 단편이 따로 존재했었던 거였네요.
알고 보니 한 동네 아이들이었던 거죠. (웃음)
<기호 3번 안석뽕>은 일러스트 보는 재미도 굉장합니다. 이야기하고도 정말 잘 어울렸고요. 작가님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만세를 불렀죠(웃음). 그림을 그려주신 한지선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정말 언젠가 이 감사함을 꼭 전해드려야 할텐데요. 글 작업이랑 그림 작업이 한 텍스트에 있긴 하지만 참 서로 다른 것 같아요. 백마디 말이 함축적으로 한 컷에 담겨지는데 그 느낌이 이런 거구나 했어요. 저도 사실은 책을 처음 내봤기 때문에 그림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무게와 역할이 이런 거구나, 정답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지요.
<기호 3번 안석뽕>을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제 의도보다도 아이들이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사실 가장 궁금한 지점이에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썼어요’, ‘여기서 주제는 뭐예요’, 주입식으로 아이들에게 얘기하기는 좀 난감한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제가 정한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사실 의도하는 바가 아니고요. 그런데 어쨌든 쓰는 사람 입장에서 제가 늘 관심 있는 것은 이런 것 같아요. 아주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지점들에 대해서 ‘정말 당연해?’ 이렇게 물어봐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수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소외되는 상태와 구조에 대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소외되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도록 한번씩 쿡쿡 찔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요. 그게 대단히 어떤 큰 결과를 가져오고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지만 의무로 삼았다기보다 굉장히 즐겁게 한 것 같아요.
교사로 일하셨던 대안학교에서의 반장 선거, 회장 선거의 풍경은 어떠한지요? 일반 학교와는 조금은 다른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대안학교에서는 이제 ‘모둠’이라고 하는데 그 모둠에서 대표를 뽑아요. 대부분의 과정은 다 비슷하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훨씬 더 주체적으로 참여하게끔 어른들은 뒤로 많이 빠져주죠. 공약을 발표하는 정견의 장도 있고, 비밀 투표의 과정도 있고요. 잔치처럼 그렇게 해요. 수업 안하고 그런 걸 하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그러면 일반 학교에서의 선거 풍경은 책(<기호 3번 안석뽕>)에 나와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요?
모든 학교가 다 똑같이 이렇게 하진 않겠지만 취재를 통해서, 대체로 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풍경들을 모아 쓴 것이라 보편적인 부분들은 있을 거예요.
초등학교 선거처럼 재래시장 풍경도 취재를 거쳐 나온 모습들인지요?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떡집도 저희 동네 재래시장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 집에서 떡을 얼마나 많이 사먹었는지 몰라요. 떡을 만드시는 동안 ‘제가 여기 앉아서 떡 만드시는 걸 보겠습니다’ 하면서 사진 찍고 취재하고 인터뷰도 하고 했죠. 오히려 더 디테일한 것들을 많이 못 실었죠. 빼면서 아깝기는 했지만 아깝다고 다 쓰자니 너무 넘치는 것 같고… 취재했던 것들을 다 써먹지 못해서 가슴이 좀 아팠죠(웃음). 제가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활자로 된 자료만 가지고 뭔가 근사하게 만드는 능력이 없어서 발로 뛰지 않으면 해결 안 되는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제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런 취재들이 제 작업에서는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정들어 슈퍼’ 딸 백발마녀가 바퀴벌레 군단으로 ‘피마트’를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셨는데요(웃음).
그렇게 지저분한 건 다 제 상상입니다(웃음).
<기호 3번 안석뽕>에서도 그렇고 반장이나 회장이라는 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성적 좋은 아이들이 반장을 도맡아 하고, 부모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반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세요?
부모님이 지원을 잘 해줘서 아이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역할을 아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되면 암암리에 좀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도 있고 같이 굴러가는 것 같아요. 드러나는 현상은 엇비슷한데, 사실은 스스로 사교육 시장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같이 따라가게 되는데요. 나 혼자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기가 어렵죠. 나는 됐어, 그렇게 쿨하게 놓아버리면 좋겠지만 그게 내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의 문제하고 연동이 됐을 때는 좀 더 고민스러워지는 지점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되는 분위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부모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지점도 아니고 사실은 존재하는 어떤 현상이기는 한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있죠.
석뽕이는 직접 선거에 뛰어 들고 나서 회장이라는 것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 특정한 소수 집단의 아이들이 취득하는 어떤 지위라기 보다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는데요.
기호 1번이나 2번 같은 경우 그렇게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반장 선거에 나가고 반장이 되고 반장이라는 이름값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습적으로 익숙해진 녀석들이라면요. 기호 3번 무리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사전 정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말 그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반장이라는 게 뭘까 고민하고 찾아가게 된 그런 아이들인데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건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역할들을 찾아가야 되는 게 아닐까? 과연 반장이라 함은 남들 앞에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그 약속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무게감을 자기가 어떻게 어깨에 안고 갈 것인가였어요. 실제로 아이들을 그냥 탁 풀어놓으면 이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찾아나가기 이전에 이미 프레임이 다 짜여 있고 자발적으로 해낼 수 있는 기회들이 생략됐기 때문에 기호 1번과 2번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그 아이들도 스스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 거야 라는 믿음은 있죠.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을 거예요.
재래시장 인근에 생기는 대형마트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뉴스를 통해서도 자주 접하고 또 실제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요.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처음 단편에 담고 장편으로 발전시키셨던 이유에, 아이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지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아니었다는 점, 또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죠. 사실은 아이들도 사회의 구성원이잖아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기 부모의 문제고 친척들의 문제고, 이웃들의 문제고 곧 자기들의 문제가 될 것이고요. 그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새로 시작해야 될 어떤 과제나 공부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 함께 가야 되는 그런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들하고 같이 나눌 것인가 하는 방식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이 되지만, 분명한 건 어릴 때부터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거죠. 나로부터 시작해서 가족, 이웃, 사회, 국가, 세계… 점점 동심원들이 넓어지면서 아이들의 관심의 영역도 넓어질 텐데, 그 크기에 맞추어서 계속 같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기호 3번 안석뽕> 출간 이후로는 글쓰기와 관련해 어떤 작업이나 구상을 하고 계세요?
지금 작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은 여전히 비슷한 지점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서 ‘이런 고민도 필요해’ 라던가 ‘아. 맞아 이런 것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인데’ 라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미처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얘기를 건네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 구조의 문제,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있죠.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거꾸로 동화 쓰는 일이 작가님 본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세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치죠(웃음). 직장에 다닐 때나 바깥 일을 할 때에는 어쨌든 꾸준히 들고 나고 하면서 에너지를 밖으로도 쓰고 안으로도 쓰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랬는데 이제 줄창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까 왠지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길게 가려면 제 안에서 에너지를 배분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은 좀 들어요.
이번 작품을 완성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과정을 6개월 밟고 나서 같은 기수 동기들이랑 후속 모임들을 계속 했었어요. 엄기호씨라고 그분이 쓰신 책을 보니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동료’와 ‘아지트’라고 하셨는데 정말 요즘에는 특히 글을 쓰면서는 정말 그렇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혼자 고립되어서 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쓰는 작업은 혼자서 개인적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만 그것들을 작품으로 외화시켜내는 과정에서는 동료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자기를 성장시켜내는 동력을 자기 안에서 혼자 가져오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 후속 모임에서 동기들이랑 같이 계속 습작을 했었어요. 한때 막 불타올라서 할 때는 저희가 붙인 이름이 ‘스파르타 시즌’이었어요(웃음). 거의 일주일에 단편 하나씩 들고 와서 합평하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같이 쓰기도 하고 전래동화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를 가져와서 다시 쓰기도 하는 그런 작업들을 했고요. 그 와중에 썼던 두 개의 단편들을 가지고 장편 <기호 3번 안석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합평을 하는 친구들의 힘이 컸죠. 언제나 어디에서나 늘 마음껏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럴 수 있는 공간이나 사람을 찾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하고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모였었고, 같은 선생님들 밑에서 수업을 들으며 합평을 했던 기본적인 토대들이 그런 작업들을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아요. <기호 3번 안석뽕>이 책으로 나왔다고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친구들 반응은 마치 제가 뱃속에 아이를 가졌다가 출산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 얘가 걔구나’ 하면서 기뻐해주더라고요. 제가 느끼는 것과 가장 비슷한 감회를 느껴주는 사람들은 바로 그 친구들이에요.
아이들에게는 어떤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책을 골고루 읽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들 독서 목록 제일 앞에 놓였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요?
제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철학이 빈곤하여 참 부끄럽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으로 두고두고 남기 위해서는 어쨌든 나의 철학이 더 깊어질 필요가 있겠구나. 계속 이끌어왔던 자기 색깔, 철학이 있고 역사에 대한 자기 관점이 있고 사회에 대한 의식이 있고 뚜렷하게 이끌어온 사상이나 그런 자기 체계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거칠게가 아니라 이야기다운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 때는, 그러니까 제 어린 시절이 그렇게 유복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얻지는 못했었어요. 철학, 세계사, 사회사 이런 것들은 나중에 대학에 가서 굉장히 건조한 방식으로 배웠었죠. 그런데 어린 시절에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건조하지 않고 풍요롭게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뒹굴면서 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예술적 경험을 통해서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책도 그 중에 한 부분이 될 수 있겠고요. 재미가 있다는 건 같지만 얕은 재미와 깊은 재미는 좀 다를 것 같거든요. 깊은 재미가 있는 책들이, 더더군다나 요즘 같이 험난한 세상을 살 때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에게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기호 3번 안석뽕>의 독자 분들께 특별히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요?
책이 아이들 가까이에 늘 있는 시스템이면 참 좋겠어요. 지금은 아이들 손에 책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현실인데 그게 부모가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아이가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서로 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이 아이들 가까이에 있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이나 개개인의 변화를 논하기 전에 아이들 가까이 책을 놓게끔 만드는 그런 정책적인 것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글을 쓰는 사람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해낼 수 있고 아이들도 더 이상 책 읽기를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 많은 것들을 감수하면서 해야만 하는 그런 어려운 작업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독서라 할지라도 진짜 재미와 의미를 알아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사실 있잖아요. 책 읽기의 과정 속에서도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곁에 있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시스템, 정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고민하는 주체는 아이들이 되기 어려우니까 아이들 주변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어른들이 그런 고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제 책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다 같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고민들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같이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기호 3번안석뽕>이 개인적으로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요?
얼마 전에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일본의 교육학자가 쓴 책인데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세 사람의 어른이 필요하대요. 그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삼촌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각자의 방식이 좀 다르긴 하지만 기존 사회에서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가치와 도덕들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면, 삼촌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거예요. 부모들이 사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도덕이나 가치를 전달한다면, 이 삼촌은 그 가치를 의심하게 하고 그 가치에 저항하게 하고 그 도덕체계를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역할들을 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부모가 주는 가치체계만을 가지고 어떤 의심이나 고민 없이 그냥 자라나는 것보다 이런 삼촌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더불어 자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삼촌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 사이에서는 틈이 생기잖아요. 그 틈이 생겼을 때 비로소 아이들에게 생각의 여지가 생기고, 또 그게 때로는 되게 혼란스럽고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는 거죠. 부모가 답습해주는 것들을 그냥 받아 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예전이랑 다르게 그 삼촌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거대한 부모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 그런 조직은 굉장히 거대해지고 학교도 그렇고 사교육 시장도 마찬가지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한가지 방식 한가지 지향점 외에는 균형감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나같이 삐딱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바로 그 삼촌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사실은 <기호 3번 안석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새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렇고 당분간은 삼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삼촌이 적대적이거나 모순된 관계는 또 아니고 서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삼촌? 이 책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