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기획자 주진우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싫어요!>의 추천글입니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한 버스 안에서 백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체포당한다. 이 사건은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미국 최고 법원까지 올라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낸다.
이 책은 로자 파크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버스 사건이 일어났던 순간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그날과 그 후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단숨에 읽힌다. 사건 이후 체포와 주위 사람들의 도움, KKK단을 비롯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과 협박 속에 거의 모든 흑인이 참여했던 기적 같은 승차 거부 운동, 그리고 마침내 이뤄 낸 승리의 과정이 박진감 있게 그려졌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사건의 극화와 인물의 영웅화에 있지 않다. 로자 파크스의 삶과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담담히 풀어내는 데 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로자의 거부가 한순간에 발휘된 용기가 아니라, 평소 삶의 태도에서 나온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백인 버스 운전사의 협박에 "싫어요!"라고 했던 그녀의 대답은 그녀의 삶 전체이다.
로자는 역사 속 숱한 영웅들과는 조금 다르다. 로자는 정치가도 군인도 아니었고 학자나 성직자도 아니었다. 평생 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던 재봉사였다. 직업만 평범했던 것이 아니었다. 성격도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특별히 영웅적이지도,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할 때,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을 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날 버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저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백인들의 횡포를 언제나 묵묵히 참아내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다른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속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위인전이나 영웅전을 읽으며 우리는 보통 사람들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굳센 용기와 불굴의 의지, 사람들을 사로잡는 강렬한 힘을 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지만, 실제로 그런 삶은 나와는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가슴 뛰게 했던 영웅들과는 다르게, 자긍심이나 인간에 대한 존중감과 같은 감동을 안겨 준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로자가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을 삶의 태도로 지켜 나가는 조용하지만 당당한 사람이다. 역사는 어떤 영웅의 위대한 행위로 한 번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중감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믿고 지켜 나가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전해 간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 준다.
우리는 흔히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미국에서 흑인 차별 문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뒤로도 100년 동안이나 더 흑인들은 인종 차별에 시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에서처럼 승차 거부 운동이 일어나기에 이르렀으며, 긴 싸움 끝에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승차 거부 운동을 벌인지 53년 뒤에, 그리고 로자 파크스가 죽은 지 3년 뒤에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해 내면서 또 다른 역사적 전환을 이뤄 냈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차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미국 사회만의 일도, 흑인 차별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끈질긴 편견과 그에 따른 차별은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로자 파크스의 행동은 미국 흑인의 권리를 얻기 위한 비폭력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평화가 비폭력을 뜻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평화는 단지 폭력을 행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이다. 평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인간 존엄성을 당당하게 실현하는 일인 것이다. 그날 로자가 무서운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버스 자리에 꿋꿋이 앉아 있었듯이.
자신의 삶뿐 아니라 함께 사는 이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이 책,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 주진우(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기획자, 전 평화박물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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