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동화작가 류호선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4월의 좋은 어린이 책, <세상에서 제일 작은 거인 먼클 트록 1>의 추천글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거인 먼클 트록>. 거인은 거인인데, 세상에서 제일 작은 거인이라니? 작품은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먼클 트록>은 분화구 속에 살고 있는 거인의 이야기이다. 다람쥐 꼬치와 애벌레 튀김, 진흙 수프를 좋아하고 도마뱀 사탕과 지렁이 껌, 거미줄 솜사탕 같은 간식을 즐겨 먹는 거인들의 나라가 우르릉 산 분화구 속 깊은 곳에 존재한다. 눈 주위와 콧구멍에 시커멓게 칠하는 화장을 아름답다 여기고, 얼굴에 난 사마귀가 많을수록 멋져 보이는,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멋과 맛이 전부 반대인 거인들의 나라. 그곳에 '먼클 트록'이 살고 있다.

 

먼클 트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인처럼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다. 작고 힘없고 연약해서 거인들의 나라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거인이 바로 '먼클 트록'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히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고 성적도 나쁘고, 선생님마저 먼클 트록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거인 먼클 트록은 자신의 보잘것없는 외모를 불평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동분서주한다.

 

다른 거인들은 거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소인, 즉 인간들을 무서워하며 숨어 다니기에 바쁘지만 먼클 트록은 그런 소인들을 궁금해한다. 몰래 분화구를 빠져나와 거인 최초로 소인들이 사는 마을로 간 먼클 트록. 그것은 먼클 트록이 소인만큼 작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 본 소인들의 외모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털도 없고 사마귀도 없고 뻐드렁니도 아니고 눈도 튀어나오지도 않은, 이상하게 생긴 작고 위험한 괴물들이다. 먼클 트록은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또래의 소녀 에밀리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거인 먼클 트록과 소인 에밀리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마법이니, 괴물이니, 하는 이야기는 왠지 먼 나라 이야기 같아서 큰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먼클 트록>을 읽으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큼이나 이상한 나라에 빨려든 것 같은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먼클 트록>은 진짜로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혹은 내가 본 적이 있는 그런 친구의 이야기 같다. 왜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면 알 것이다. 먼클 트록의 매력 아닌 매력을. 그리고 혹시라도 외모에 불만이 있는 친구들이 먼클 트록의 이야기를 만난다면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2권이 곧 출간된다고 한다. '먼클 트록'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류호선(초등학교 교사,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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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 교사 백승용 님이 써주신 4월의 좋은 어린이 책,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의 추천글입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을 신기하고 흥미로운 동물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동물들의 생활 모습은 놀라움으로 가득합니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물들의 재주는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틀에 박히지 않는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 백승용(서울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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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나무꾼? 동화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눈에 익을 이름, 또는 좋아하는 이름. 지은이나 옮긴이란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다면, 주저 없이 그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 책 기획실.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담은 어린이 책 번역과 논픽션 집필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멋진 독서 체험을 선사해온 햇살과나무꾼이, 2012년 봄 또 한 권의 새로운 책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를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험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기만의 생존법을 가진, 신기한 재주를 가진 동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지난 20여 년 간 어린이 책과 함께 걸어온 햇살과나무꾼의 치열하고도 즐거운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인터뷰이 : 햇살과나무꾼 박정선 실장님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7)

 

알라딘 : 알라딘에서 햇살과나무꾼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니 집필과 번역을 합쳐 400종 가까이 됩니다. 올해로 기획실이 설립된 지 얼마나 됐는지요?

 

햇살과나무꾼 : 실제로는 92년부터 내부에서 준비를 시작해 사업자등록증을 낸 건 94년이구요, 첫 책이 나온 게 93년이던가요?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지금까지 작업한 책이  전집이 1천종 정도 단행본이 3~4백권 정도되는 것 같아요. 구성원은 총 7명입니다.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란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햇살과나무꾼 : 대표이신 강무홍 주간님이 지은 이름이에요. 사람들은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데 햇살이 비치면 덥지 않냐 물으시기도 하는데, 나무하는 계절은 겨울이니까요. 처음에 강무홍 주간님이랑 저랑 같이 시작을 했거든요. 회사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던 그 때 그런 모습이 떠올랐대요.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모습이 이미지로 떠올라서 햇살과나무꾼이 되었죠. 나무꾼이 나무를 떼서 따뜻한 겨울을 나듯이, 저희가 기획.집필한 책들이 어린이의 마음에도 따뜻하게 전파됐으면 좋겠다는 해석을 이후에 저희가 붙이긴 했어요.

 

알라딘 : 20여 년이면 활동 초기와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작업 방식의 변화도 클 것 같습니다.

 

햇살과나무꾼 : 엄청나게 변했죠. 1990년대 초반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것이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었고요. 서점에서도 어린이 코너를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어린이 책의 위상도 그랬지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고. 어린이를 위한 무언가를 따로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적을 때였어요. 지금은 교육 열풍에다가 어린이의 인권, 어린이도 보호받아야 한다, 애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윽박지르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이 많이 있지만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는 어린이란 개념 자체가 척박했고, 지금은 과잉이죠. 너무 과잉이 되어서 부모가 자기 일, 자기 존재까지 잊은 채 어린이들만 위하는 게 지나치다 싶죠.


강무홍 대표님과 제가 둘 다 운동권 출신이에요. 공장에 있다가 사회에 나와보니까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옛날 운동권들은 웬만큼 일어를 할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번역을 한번 해보자 했는데, 출판사에서 정해준 번역만 하는 건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기왕 번역하는 거 재밌는 책을 하자는 것과, 우리가 운동에 청춘을 바쳤는데 내가 바친 청춘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이후에 사는 것은 참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 했을 때 사회과학을 연구할까? 아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 결국은 인간해방이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인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 어린이라고 하는 코드를 잡고, 이어서 어린이 책을 중점적으로 파고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번역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요. 원서 사기도 힘들고, 해외여행 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아마존에서 클릭 한번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혹시 미국에 아는 사람 있어? 일본에 아는 사람 있어?' 수소문해서 국제전화로 어렵게 책을 구해야 하는 시절이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을 골라서 번역자가,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찾아가 이 책 내보면 어떨까요, 제안하는 것이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죠. 그리고 영어 책이든 불어책이든 무조건 일어 번역서를 가지고 우리말로 옮겼어요. 저희도 일어를 했듯이, 일어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일어본을 번역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고요. 원본을 소중히 해야한다 그런 개념보다는 비용 절감을 중요하는 게 과거의 풍토였죠. 지금이야 저희가 조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옛날에는 '기획? 어린이책을? 어린이책을 뭐하러 그렇게 공들여서? 그것도 외국의 저작권료까지 물어가면서?' 하는 반응들. 너희는 곧 망할거다, 쓸데 없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다가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현지, 동시 출간되는 책도 많고, 출간되기 전에도 원고가 검토되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 그러니까 소공자 소공녀 그런 것들 있잖아요? 흔히 말하는 세계명작, 아직도 그걸 읽고 있었던 때였어요. 당시 해외 현대어린이문학이라고 하는 건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각각의 계층들, 특히나 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그런 사람들이 주체가 된 문학의 모습이었는데요. 사회제도 이런 것들도 많이 발전되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들이 일천한 상태였던 거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보니 굳이 현재 영국에서 나오고 있는, 이제 막 출판되고 있는 좋은 어린이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죠. 또 그런 책들은 로열티를 꼭 냈어야 하거든요. 뭐하러 그렇게 큰 돈을 들이느냐라는 거였죠. 다른 나라 아이들과 같이 발맞춰서 커나가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옛날에 내가 읽었던 책을 읽고 있으니 이게 뭐가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햇살과나무꾼이 유명 작품들을 다 독식했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당시에는 그런 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경쟁자가 없었어요. 이제는 출판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저희는 뒤로 한발 물러나 있고, 미국이나 일본에서 뜨는 작품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경쟁자들도 많고 하니까요. 저희는 이제 묻혀 있는 좋은 작품을 찾는 데 주력을 하고 있죠.

 

알라딘 : 오늘의 햇살과나무꾼을 만든 중요한 순간, 어떤 도약의 시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햇살과나무꾼의 첫 발걸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이거예요. 그러니까 햇살과나무꾼이 좀 알려지기 시작하고 사회 분위기도 바뀌고 단행본 시장에서 좋은 책을 고르려고 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 엄마들이 등장한 것, 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단체의 등장, 좋은 책을 찾는 하나의 바로미터로서 옮긴이도 보게 되고 작가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부터죠. 초기에는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사람 이름을 써야지, 햇살과나무꾼 옮김이 뭐냐. 지금은 곰돌이co. 같은 이름도 있고, 이런 이름들을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웬 햇살과 나무꾼 옮김? 항의 들어온다는 거예요. 신뢰성, 공신력 다 문제가 되어서 안된다는 거죠. 당시에 작가 이름 대신 '편집부 옮김'이 들어가는 어린이 책이 많았다는 건 참 아이러니 하죠. 그래서 '햇살과나무꾼 옮김'을 써도 될 만큼 저희가 알려지고 옮긴이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던 것, 그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다음으로는 번역 인세를 받기 시작한 시점. 그전까지는 번역료가 다 매절이었는데 인세를 받는다는 건 본격적으로 '번역 기획'을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인세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좀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만부는 넘어가줘야 손익분기가 나오는 게 되니까. 초반에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이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너무 소모적으로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매절한 원고에 대해서는 출판사가 돈을 주고 산 거니까 관여하기가 힘들고. 내 자식을 팔아버린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인세가 1%라도 걸려 있으면, 출판사에서 그 책을 바꿀 때 꼭 얘기를 해주시고.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못 팔리면 못 팔린대로 우리가 인세를 적게 받는 것으로 책임을 질 수 있으니까요. 또 많이 팔리면 많이 팔리는대로 계속 인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굉장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된 기점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으로 저희가 집필을 하기 시작한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어요.


알라딘 : 이쯤에서 햇살과나무꾼에서 새롭게 펴낸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햇살과나무꾼 : 동물 이야기, 식물 이야기 이런 책들이 사실 넘쳐나죠. 다큐멘터리들도 많고요. 생태계에서 왜 아주 신기한 것들이 많잖아요. 어! 와! 얘네들이 어떻게 저렇게 사나, 저 해달 좀 봐봐 진짜 귀엽다! 이런 감상이 하나 있고, 또 학교에서 '포유류는 어떻습니다' 하고 배우는 것이 하나.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따로인 것은 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동물의 생태를 보는 건 이런 것들이 단순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잖아요. 어린이들은 지적 호기심이 굉장히 왕성한 존재들이거든요. 그렇다면은 동물들의 신기한 모습들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거기에서 무언가를 끌어내주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 열매가 엉뚱한 데서 맺힌다거나, 그냥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갑자기 '그래서 말이죠' 하고 결론을 딱 꺼내놓는 것은 별로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린 두 가지를 합쳐 놓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 다음에 나올 책은 거꾸로 살아가는 동물들한테 배우는 생태계인데요. 우리가 흔히 낙타들한테는 다 혹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혹이 없는 낙타 얘기를 하는 거죠. 또 포유류는 전부 새끼를 낳는다고 알고 있는데, 알을 낳는 포유류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냥 포유동물이란?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리고 세 번째 권은 식물. 특이하게 살아가는 식물들을 통해 배우는 생태계 이야기입니다. 신기한 생태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고, 그 생태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그런 것들이 재미있게 지식을 습득하는 하나의 안내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을 한 거죠.

 

알라딘 : 신기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는 책 속 동물을 하나 소개해주시면 좋겠어요. 스스로 떼죽음을 당하는 노르웨이레밍 얘기를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너무 불쌍하기도 했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어린이 책에서 이런 잔인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신 분도 있죠. 한 동물만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진 않은데요. 불가사리가 자기 위장을 꺼내서 먹는 것도 재미있고... 해달이 물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돌에 딱딱 부딪쳐 전복 같은 것들 껍질을 까먹잖아요. 해달이 어떻게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지도 책에 나오지만, 그 해달의 생태를 아는 것도 중요한데 이 생물들이 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마다 생태계라고 하는 것에 엮여 있고, 먹이그물 먹이사슬에 얽혀 있고. 해달의 가죽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자꾸 잡아가니까 해달이 많이 사라지고, 해달이 먹는 해초숲까지 사라지게 된 거예요. 해달이 없으니까 해달이 까먹었던 성게들이 갑자기 증식을 해버린 거죠. 그래서 성게가 해초들을 막 끊어버려서 숲이 사라지게 되는 것. 그렇게 해서 한마디로 인간이 생태계를 깨뜨리는 거죠. 그런 것들까지도 이 책에 같이 포괄하고 싶었어요.

 

요즘 어린이 논픽션에 아쉬운 게 있다면 이건 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요.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인간의 시각으로 '아... 동물이 잡아가요,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같은 식의 의인화를 하는 것들요. 인간의 감정을 넣어서 하는. 그런데 자연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고, 그렇게 잡아먹는 것도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너무 인간의 감정으로만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 사실 가죽을 벗기는 나쁜 놈들은 따로 있는데. 좋은 다큐멘터리라도 너무 감정이 실려 있거나, 그런 나레이션이 들어가 있는 건 싫거든요. 요즘은 워낙 퓨전의 시대이긴 하지만.

 

문학을 읽는 내 감정의 상태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흥미로울 때의 내 뇌의 상태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다큐는 다큐의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논픽션에는 논픽션의 문법이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탐구하고, 사고하는 훈련을 해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의 방식은 적당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저 어린이 책이라는 이유로, 이야기의 허울을 씌워서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햇살과나무꾼에서 쓰는 책들은 되게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친절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처럼 꾸며져 있지 않아요. 다만 독자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이야기처럼 쉽게 씌여져 있어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거기 숨어 있는 사실과 본질 때문인 것. 그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된 거야? 하면서 야 이거 진짜 재미있네! 하는 것 있잖아요. 정보가 정말로 잘 배열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저 자신도 그런 논픽션이 좋아요. 인문적 방식으로 자연과학을 알려주려고 하는 책보다는요.

 

알라딘 : 다시 번역 이야기로 돌아가서, 번역할 작품을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이 있으시다면. 사실 판매량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으실 것 같거든요.

 

햇살과나무꾼 : 저희가 고르는 기준이라고 하는 건, 낼 건지 말 건지가 아니라 일단 기획서를 쓸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것인데. 선택의 순간에 던지는 질문은 '이 책 꼭 우리가 해야 돼?'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과감히 포기를 해요. 계속해서 생각하는 건 보이지 않는 햇살과나무꾼의 독자들이에요. 그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고르려고 애를 써요. 정말 안 팔릴 것 같지만 정말 좋은, 그런 책이 있다면 선택을 해요. 그리고 출판사를 찾는 거죠.

 

번역서는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결과와 판매 동향을 알고 난 뒤에 가져와서 할 수 있고, 새로운 출판사가 단 기간에 종수를 늘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요, 번역 자체의 고유의 기능은 사실 정말로 세계 유수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한다, 그런 문화의 선구자적 느낌이라고 할까요? 진짜 문화의 벵가드로서의 그런 역할. 우리도 한국의 고유한 것,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어필을 하듯이, 외국의 그런 것들을 번역해서 들여오면 되잖아요. 퓨전이나 세계화도 좋지만. 진짜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을 만날 때 정말 기쁘거든요. 독자들이 아 이 책은 정말 독특하다, 햇살같다, 그런 애기를 들을 때.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좋은 작품들을 골라서 번역을 하려고 애를 쓰죠. 기왕이면 그 책들이 다 잘 팔리면 참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지만. 번역을 하면서도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업무라는 것도 잊고,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책들을, 이런 책들만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알라딘 : 혼자 하는 번역과 햇살과나무꾼처럼 여럿이 하는 번역, 무엇이 다를까요.

 

햇살과나무꾼 : 일단 기획성, 혼자서 어떤 책을 기획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내부 시스템을 갖춘 회사 조직이나, 출판사와의 오랜 관계나 노하우 같은 것들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으니까. 똑같은 책도 어느 출판사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데요. 단지 잘 팔리고, 못 팔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잘 팔린다는 건 그러니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는다는 것이잖아요. 사계절이면 사계절, 비룡소면 비룡소, 출판사마다 자기 독자군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 독자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도 실패를 많이 하죠. 이 책은 차라리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훨씬 잘 될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책들이 있어요. 그렇게 책이 독자를 찾아가게 해주는 것, 이런 것들은 개인이 하기에 조금 힘이 들 수 있죠.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아무리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일단 한국말도 잘 해야 하고요. 저희 작업의 경우엔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특수성이 있잖아요. 어린이 소설과 논픽션, 그림책 이 세 가지가 다 번역의 문법이 달라요. 동화 번역을 잘 한다고 해서 어린이 논픽션 번역까지 자동으로 잘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림책 번역? 그거 진짜 쉽지 않아요. 그림책 중에서도 영유아 그림책 번역, 진짜 어렵거든요. 영어로 보면 쉬워요. 이 쉬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까, 그게 정말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런 여러 장르를 다 번역을 해낼 정도가 되려면,많은 연차가 쌓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번역을 주 업으로 하면서 혼자 쌓아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햇살과나무꾼은 회사니까 선배들이 가르쳐줄 수 있고. 저희는 최소 3년차는 넘어야 혼자서 해볼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어떤 분들은 저희를 프리랜서 모임으로 알고 계시기도 하는데 일반 회사와 같이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거예요. 인턴 기간은 1년이에요.

 

알라딘 : 좋은 어린이 책 번역, 나쁜 어린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햇살과나무꾼 : 일단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별도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먼저 기본, 보편을 지키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어린이 책으로서 더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보는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번역의 기본은 '원작을 살리는 번역'이에요. 원작자가 누구든 간에, 그 번역자의 필체가 그 여러 책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가끔씩 봐요. 이건 누구 번역 같다, 생각이 드는 번역은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해요. 번역자는 뒤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원작자의 문체, 문체라고 하는 건 그 작가 고유한 것이잖아요. 그것이 비록 한국말로 옮겨지더라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번역자의 할 일이고 기본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린이 책이라는 명명 하에, 이 부분은 좀 재미없는데 애들이 이해하기 쉽게 좀 고쳐보자, 한 두줄 정도는 빼자는 건 안 될 일이죠.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원본 대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살짝 문장이나 단어를 뺀 번역들을 보게 되는데요. 이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문학이라고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짝살짝 빼고 또는 자기 문체로 바꾸어버리면, 원작의 향기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데. 아무리 어린이 책이라고 하더라도 원작자가 지루하고 따분한 몇 행을 써 놓았으면 번역에도 그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빼야할 문제는 아니다. 일반 성인물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요새 번역 가지고 말들이 많잖아요. 뭐 의역이니, 직역이니. 이런 말들이 많은데 도대체 의역이라고 하는 게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도대체 누가 번역자한테 의역할 권한을 주었는가하는 문제. 그걸 번역의 개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고요. 어떤 어린이 책은 긴 문장을 탁탁탁탁 끊어놓죠. 그렇게 되면 문체가 달라져요. 탁탁탁탁 아주 경쾌한 문체가 되어버리거든요. 원작자는 그렇게 안 썼는데 그렇게 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라딘 : 엄격하게, 최선을 다해 원작자의 문체를 살린다는 번역을 번역다운 번역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필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글쓰기는, 논픽션에 요구되는 미덕일텐데요. 집필하는 책에 일관되게 담고자 하는 햇살과나무꾼만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요.

 

햇살과나무꾼 :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뭔가라고 물으면 결국 가치관일 것 같아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것은 다 한 가지 분야를 다룬 책이 수십 종이잖아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어떤 관점에서 정보를 독자한테 전달할 것이냐. 위인전, 역사에선 특히 사관이 중요하겠구요. 생짜 그대로 훈계하듯이 이건 옳지 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말고. 또 설익은 좌파의 느낌이 너무 내거나 너무 국수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 말고요.

 

일단은 좋은 가치관에서 정보를 취합해야 하겠고요. 두 번째로는 아이들한테 열려 있는 집필, 독자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어린이 책 집필을 하고 싶어요. 어떤 책은 정말로 교과서 내용, 사실 자체를 그대로 나열해 쓰는 데 그치기도 하잖아요. 그 반대편에 똑같은 정보를 주더라도 단순히 그 정보를 달달 외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들이 있죠. 읽었던 사실들은 혹시 기억이 안 날 수 있지만, 읽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 순서대로 따라 읽으면서 사고 훈련이 되는 그런 책들을 쓰고 싶죠.

 

사실은 저희가 이제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동화는 번역을 하면서 왜 논핀션은 집필을 하느냐. 문화나 정서나 이런 것들은 전세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데, 정보나 이런 것들은 쉽지 않거든요. 우리가 무엇을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생각하게 할 것인가. 한국에 현재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부각시켜서 전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필요성 때문에 논픽션은 번역이 아닌 집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이세움에서 나온 <세상을 바꾼 말 한마디>라는 책이 있어요.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겠다 - 스피노자'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책을 써보자해서 시작하게 됐는데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게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아니죠. 내 머릿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재취합하는 것들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잘못된 책들을 베끼고 베끼고 또 베끼는 경우도 생기는 거죠. 명언 취합을 하다보니 스피노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대요. 아무리 찾아도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거예요. 수소문해서 스피노자 연구자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왜 한국에서 스피노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회자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도 안중근 의사가 한 말로 많이 알고 계시잖아요. 그냥 안중근 의사가 어떤 책에서 보고 글귀가 좋아서 그 얘기를 쓴 거래요. 이런 비슷한 경우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자료 조사하다보니 전부 다 거짓말인 거예요. 정말 그래서 저희가 우리끼리 이 책은 불편한 진실이다(웃음). 이 책이 사실이면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책 속의 글들이 틀린 거잖아요.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든지, 지구가 멸망하면 이런 것들은 에피소드로 만들어내기 좋잖아요. 특히 어린이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좋은 말이고. 일본은 자료가 굉장히 많고 잘 관리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식으로 잘못된 자료를 잘못 담은 책들도 꽤 많거든요. 조사를 해봤더니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을 번역해서 출판, 이걸 또 다른 곳에서 보고 자료로 취합하면서 틀린 것들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거죠.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독자분들의 신뢰가 두터운데,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햇살과나무꾼 : 앞서 말씀드린 저희가 번역서를 선택하는 기준 같은 것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한번은 어떤 독자분께 이 책은 햇살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 독자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에서 의뢰하셨을 때 저희 답지 않은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이 책은 번역을 못하겠습니다 하고 사양을 하기도 하고요. 의뢰 받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지 더 철저하게 보게 됐어요. 몇몇 출판사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알라딘 : 어린이 책 번역을 막 시작하신 분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조언을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햇살과나무꾼 :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햇살과나무꾼 번역학교를 하면서 했던 얘기인데, 번역이 혼자서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번역을 많이 해봐야 하겠죠. 좋은 번역서를 많이 봐야되겠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번역을 잘 하는 건 기본인데, 그 번역가의 소신이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서 경쟁력. 경쟁력은 어차피 자신이 키울 수 밖에 없어요. 이 책도 괜찮고, 저 책도 괜찮겠다 해서는 경쟁력이 없는 거예요. 자기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때 좋은 번역이 나오거든요. 그림도 그래요. 화가분들하고 작업을 예로 들면요. 화가가 마음에 들어한 원고에는 그림도 잘 나와요. 그런데 그냥 직업상 의뢰가 들어와서 그냥 했다, 좋은 그림이 나오지 못하죠. 번역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는 청소년 성장소설이 잘 맞는다, 하면 그 분야에서 출판된 책과 원서를 섭렵한 다음에 번역할 책을 고른다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번역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처음에 하기 쉬운 시행착오들이 칼데콧 상을 받았다, 그런 작품들 있잖아요. 미국에 사는 내 동생이 뭐 미국에서 요새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들 한다 했다면 그 책들에는 관심을 가지면 안 돼요. 관심을 아예 꺼야 돼요. 그런 작품들은 누군가가 이미 계약을 했을 거예요(웃음).

 

알라딘 : 이건 참 실용적인 팁이네요!

 

햇살과나무꾼 : 그런 책들보다는 나만의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 게 현실적이겠죠. 묻혀 있는 책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그런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른다면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처음부터 번역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난항을 겪겠죠. 그런데 번역은 정말 처음부터 잘 할 수 없어요. 그건 확실해요. 정말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해요.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앞으로 십 년 후 햇살과나무꾼의 모습을 그려보신다면요?

 

햇살과나무꾼 : 이십 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면서 자부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저희가 떼부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좋은 책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을, 변함없이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유가 된다면 번역 작가 양성이 꿈이에요. 논픽션 작가 양성도 그렇고, 같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지금 당장은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후에는 어린이도서관이라든지 좋은 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본은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좋은 책을 우리가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것, 그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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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광 2017-11-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신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독자가 햇살과 나무꾼이라는 이름을 믿고 사는 책을 만드시니 그 자부심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필요한 어린이 책 많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는 캡슐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작고 소심한 동동이가 선택한 상대는 '고약한 왈가닥', '여자 깡패', 시도때도 없이 오빠를 못살게 구는 얄미운 여동생 묘묘!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동동이의 영혼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빠의 몸.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소개팅까지 대신 치러야 하는 동동이 앞에는, 마법처럼 '영혼이 훌쩍 자라는' 놀라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3월 오후,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의 김소민 작가를 만났다. 아이들을 끔찍히 좋아하고, 그만큼 떡볶이를 좋아하고, PC방 나들이가 취미인 동화작가. 해사한 웃음이 매력적인 김소민 작가가 아이처럼 밝고 꾸밈 없는 말로 자신의 두 번째 동화책을 이야기한다.

 

(사진 : 비룡소 홍보기획부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08)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과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작가들이 책이나 영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데, 이 소재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처음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은 저학년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써야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배려나 이해 같은 것들이었거든요. 제가 놀이터 같은 데 자주 가서 아이들이랑 자주 어울리고 관찰도 하는데요. 애들이 잘 놀다가도 갑자기 얼토당토 않게 싸우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이해'를 말하면 전혀 못 알아들어요. 이 아이들이 엄마를 이해하거나 친구를 이해하거나 강아지를 이해하려면... 애들은 강아지도 잘 때리거든요(웃음). 어떻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이해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영혼을 바꾸는 걸 떠올리게 됐어요. 영혼을 바꾸면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알아듣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시작했던 거고요.

 

캡슐 마녀라는 건, 한 2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사랑의 리퀘스트란 프로그램을 제가 보고 있었거든요. 때마침 제가 많이 아팠었고요. 약을 먹고 골골거리고 있는데 TV에 나온 아픈 아이를 보는 순간, 그애처럼 약봉지를 들고 있던 저에게 강한 연대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면서 뭔가 이 캡슐 속에서 마녀가 튀어나오면 좋겠다! 여기서 시작해 어떤 영상들이 쭉 떠오르고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이해를 하는 것, 서로 배려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차례차례 정해놓은 순서대로라기보다 짬짬이 메모해두었던 것들, 그 생각들을 불려나가게 됐어요. 영혼을 바꾸는 것에 대해선 정작 제가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써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동동이랑 묘묘 또래 아이들하고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궁금해요, 그 애들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딱 초등학교 1학년. 요새 입학철이잖아요, 두근두근할 거잖아요. 처음 학교에 가는 게 얼마나 좋을까. 저도 입학식에 가 있고 싶어요. 입학할 나이가 되어 보고 싶어요,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는 그 첫 느낌을 갖고 싶어요.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 보면, 예전 그 경험을 다시 한번 새로 하게 되는 거라고 말씀들 하시더라구요.

 

저도 빨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봐야겠군요!(웃음)

 

많은 동화에 작가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에서 역시 작가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찾아볼 수 있나요?

 

저랑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애들은 책을 보면 딱 제가 묘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하하. 제가 태권도를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거든요. 정말. 아침에 태권도학원에 가면 저녁까지 집에 안 오고, 사범님네 집에 가서 밥까지 먹을 정도로 항상 사범님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고. 특히 도복을 너무 좋아해서 맨날 입고 돌아다녔어요. 저희 오빠는 또 정말 착하거든요. 제가 아기였을 때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오빠는 저랑 다섯 살 차이가 났고 이름이 민기였거든요. '민기야, 소민이 좀 보고 있어' 엄마가 말씀하고 밖에 나가셨는데, 정말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오빠가 꼼짝 안하고 앉아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대요. 그렇게 순둥이거든요. 착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런 오빠가 누굴 때린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저는 묘묘처럼... 아주 묘묘랑 똑같이 악랄하게 오빠를 괴롭히진 않았지만(웃음) 태권도를 좋아하는 건 정말 묘묘랑 꼭 닮았어요. 밥을 안 먹어도 태권도 연습은 열심히 했지요.

 

너무 착한 오빠라 동동이랑 묘묘처럼 싸울 일이 실제로는 거의 없었겠어요. 그럼 혹시 아버님은 약사...(웃음)

 

틀리셨구요(웃음), 약국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게 저한테 좀 있나봐요. 약국에 가면 맛있어 보이는 이상한 게 너무나 많고. 어른들이 바카스를 마시는 그런 모습이 왠지...(웃음)

 

왈가닥 캐릭터를 좋아해서 그런지 묘묘한데 눈길이 많이 갔는데, 조역이다보니 출연 분량이 너무 적어서 드려보는 질문이에요. 아빠 몸 속으로 들어간 동동이가 영혼이 바뀌자마자 얄미운 동생 묘묘를 야단치잖아요. 그동안은 기 한번 못 펴고 살다가... 아빠 호통에 깜짝 놀란 묘묘가 대성통곡을 하는 그 장면은 그대로 끝이 나는데요. 그 후에 아빠가 사과하는 장면, 묘묘의 마음을 풀어주는 대목이 이야기 전개상 필요하진 않지만, 현실에서라면 이렇게 자기 속을 뒤집어놓은 부모님을 순순히 용서해주는 아이들은 없을 것 같거든요.

 

저도 사실 생각은 했었거든요. 뭔가 화해하고 넘어가야되지 않나, 그랬는데요. 아이들은 제가 생각할 때 어른들처럼 담아두지 않는 것 같아요. 너그러워요. 직접 낳아서 키워본 적이 없어 잘 알진 못하겠지만. 놀이터에서 싸울 때는 엄청나게 싸우지만, 또 다음날이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정말 철이 없는 것 같은데도 또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보살필 줄 아는 그런 것들. 책속에서도 영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직전, 동동이가 묘묘를 보면서 측은해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부분에서 말씀하신 화해의 느낌까지 다 녹여서 전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으로 아빠로 변신한 동동이를 기다리고 있는 게 민숙자 아줌마와의 소개팅인데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동이가 엄마가 생기는 건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게 바로 '엄마 냄새'잖아요. 엄마를 끌어 안았을 때 나는 향기를 동동이 친구들은 우유 냄새라고도 하고 장미꽃 화장품 냄새라고도 했어요. 작가님은 엄마 냄새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세요?

 

이야기 마지막 아빠 결혼식에서 동동이도 새 엄마 품에 안겨서 비누 냄새를 맡잖아요. 아주 연한 비누 냄새, 비누 냄새인데 약간 반찬 냄새도 섞인. 저는 지금도 엄마를 잘 껴안는데요, 엄마를 좋아해서요. 지금도 이 다음에도 엄마를 생각할 때도 엄마 냄새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제 단편 '새우젓 냄새'도 냄새에 집착하는 이야기인데요(웃음). 엄마 냄새, 저에게는 약간 반찬 냄새가 섞인 아이보리 비누 냄새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지갑 속에 끼워져 있던 낡은 연애편지 한장으로 동동이를 낳아주신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셨잖아요. 연애편지가 나중에도 한번 더 나오지만, 아주 예쁜 글이었거든요. 두 편지 모두 다. 그래서 김소민 작가님은 연애편지를 엄청나게 많이 써 본 고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애편지를... 진짜 연애편지는 써 본 적이 없어요.

 

앗 그게 정말이세요?

 

왜나하면 제가 쓴 편지를 친구가 읽게 된다면 그 후로는 그 친구를 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 정도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요. 연애편지를 남자에게 쓰게 된다면, 그 편지를 끝으로 다시는 못 만나게 될 지도 몰라요. 책속에 쓴 건 투영, 연애편지를 쓰고 싶은 욕망의 투영이라고나 할까. 하하.

 

민숙자 아줌마한테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동이 뒷모습이 너무 좋았는데, 작가님이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은 어떤 페이지에 있을지 궁금해요.

 

캡슐 마녀한테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래서 이 그림. 처음 화가분이 그려주신 걸 보고 진짜 빵 터졌고, 아이들도 재밌어할 것 같았거든요. 이 대목에서 뭔가 상쾌해하지 않을까, 게임 레벨도 20단계나 올라가 있고, 캡슐도 두개나 더 주고 가고. 헉! 이러면서 신나하지 않을까. 이 장면 보면서 막 신나했으면 좋겠다. 기대를 많이 품고 있어요.

 

 

 

아이들과 자주 만나시는 건, 동화 쓰시는 것하고도 연결이 되나요?

 

동화를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아이들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요. 틀에 갇혀 있지도 않고, 선입관도 없고, 너그럽고. 우리 어른들은 안 그렇잖아요.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된 아이들은 자연하고 더 가까워서 자연을 알고 지내는 것에서는 어른들의 선배가 아닌가 싶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도 얘네들은 하느님 부처님 같은 대답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럼 전 깜짝 놀라면서 애들은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아요.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데 가서 놀다가 아이들 고민 같은 걸 듣게 되면, 또 나름 일리가 있는 말들이고요. 아이들은 말썽만 피우는 게 아니라 각자 다 분명한 입장이 있더라구요.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제가 모르는 게 생기면 또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좀 귀찮아하긴 하지만(웃음).

 

아이들이 너그럽다는 것,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미워하면 정말 미워하잖아요. 아이들은 그냥 살짝만 미워하고 금방 또 받아주고. 그런데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른들의 미움을 학습하는 것 같아요. 왕따 문제 같은 것들도 너무 가슴 아프고.

 

동동이가 캡슐을 먹기 전에, 육체와 영혼 중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의 정의를 내려야 할지 헷갈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육체와 영혼,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진정한 존재의 주인은? 단호하게 영혼이요. 아이들이 어리지만 끌려다니기만 하지 말고, 그 너그러움 그대로 개개인만의 영혼을 가진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캡슐 복용 전 주의사항에 나오는 성분 소개를 보면, 보름달 늑대의 욕심 25%, 살모사의 교활함 12%, 산양의 순진함 8%... 그리고 나머지는 비밀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비밀을 공개해주실 수는 없나요?

 

아 그건 영업 비밀이라서 안 되는데... 캡슐 마녀한테 허락을 받아야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두 영혼 중에서 한 영혼이 불쑥 커 버리면 약 효과가 끝나버린다는 것도 주의사항 중 하나죠. 캡슐 마녀가 이렇게 약을 제조한 이유가 따로 있겠지요?

 

작품은 항상 끝을 맺어야 하구요, 이왕이면 그 끝에서 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것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당장 아이들한테 시급한 문제는 성장이잖아요. 육체의 성장만큼 중요하게 가슴도 자라주어야 하는데.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서 처음부터 정했던 목표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영혼이 자란다는 게 뭐지?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궁금해하길 바라기도 했어요.

 

수리수리 약국에는 두 사람의 영혼을 바꿔주는 캡슐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병,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병,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병 등등을 고치는 다양한 약이 있는데요, 작가님이 처방 받고 싶은 또 다른 캡슐이 있다면요?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부끄러움을 잘 안타는 그런 캡슐이 필요해요!

 

마녀 할머니처럼 유능한 약사가 된다면 고쳐주고 싶은 사람들의 병이 있나요?

 

일단 현대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병은 다 고쳐주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도 많이 아프셨거든요. 갱년기 증상에 젊어서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고단한 몸,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병이 왔는데 한꺼번에, 관절부터 시작해서 안 아프신 데가 없는데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았어요. 호흡 곤란도 몇 시간씩 오는데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으로서 많이 고통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의 모든 병을 다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의 몸을 갖게 된 동동이가 발도 커지고 털도 나고 방귀소리도 엄청 커져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신체적인 변화 외에 어른과 아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요?

 

비근한 예가 되겠지만 고정관념 같은 것들 있잖아요. 어른들은 보통 한 사람을 낙인 찍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절대 뒤도 안 돌아보잖아요. 어른들은 이렇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정말 다양하게 보더라구요. 이면을 보는 건 아이들이 아닌가 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아이와 어른이 똑같은 게임을 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웃음)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바보와 아이들만이 진짜 답을 알고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어른들은 고정되어 있는 면이 많지만, 아이들은 변화무쌍한 생각들을 할 수 있고... 그런 생각의 차이가 가장 크지 않을까요?

 

동동이가 민숙자 아줌마와의 첫 데이트를 앞두고 코치를 받을 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른다는 말에 아빠가 이렇게 대답해요. '상대방을 좋아하고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이 사랑이다'. 나중에 동동이가 쓰게 되는 편지글에 나오는 '평생 당신을 걱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같은 프로포즈도 너무 근사하고.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말과 행동을 몇 가지 더 알고 계시면 들어보고 싶어요.

 

하하. 그걸 알면 제가 벌써 결혼을 했을텐데... 선물 공세? 떡볶이 사주기!(웃음). 사실 동동이가 어떻게 보면 연애의 고수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요. 기본적인 데이트 원칙은 다 알고 있잖아요. 먹을 거 사주고, 차 태워주고, 같이 놀고. 아이의 눈으로 조금 엉뚱한 판단을 해서 그렇지만.

 

연애의 고수답게 택시 타고 드라이브하는 장면도 꽤 로맨틱하거든요. 민숙자 아줌마는 동의할 수 없으시겠지만! 동동이가 딱 만원어치만 드라이브를 시켜달라고 기사님께 부탁하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드리는 질문! 지금 제가 만원을 드리면 어디로 떠나고 싶으세요? 추천해주실 만한 택시 드라이브 코스가 있으세요?

 

여기(신사동)서 만원어치면 한 사당까지 갈 수 있으려나요? 그럼 사당 떡볶이 집에? 사당동 조스 떡볶이!

 

 

 

아빠가 된 동동이가 묘묘 머리를 감겨 주다가 같이 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아빠도 이렇게 울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 순간이 바로 영혼이 자란 순간이었던 거죠? 영혼이 자란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으로 쓰신 것 같아요. 작가님도 이렇게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 경험,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한번 꼽아주셨으면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님이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영혼이 크게 자랐다고 생각되는 멋진 사람, 작가님이 꼽는 '영혼의 키다리'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번 소개시켜 주세요.

 

'영혼의 키다리'라. 게임을 하다 레벨이 올라가는 건 많이 봤는데 말이죠...(웃음) 아,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아이가 한명 있었어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엄마랑 둘이서 같이 사는 아이이였는데, 엄마가 매일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하신대요. 어느 날 또 엄마가 잔소리를 하셨는데 그게 불쌍했다고 했어요, 엄마의 잔소리가. 평소에는 그냥 엄마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그랬는데, 그날은 똑같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꼭 나를 보며 우는 것처럼 보였었다고. 듣고 나서 한동안 멍했어요. 저도 사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아주 최근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걔는 너무 빨리 성숙한 건지, 가슴도 짠하고 벌써 그런 감정을 느낄 나이는 아닌데. 그래서 그 친구가 요새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영혼이 급속도로 성장한 사람이 아닐까...

 

책 띠지에 너무 크게 써 있어요. 수상고료가 천만원!(웃음) 실례지만 주변에서 상금을 어떻게 쓸 계획인지 많이들 물어보지 않으세요?

 

이미 술값으로 많이 나갔구요, 계속 물어 뜯기고 있구요... 만신창이가 돼 가는 것 같아요(웃음).

 

애들 게임비도 좀 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물론 이미 한턱 냈죠! PC방 가서 초코파이도 사주구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두 번째 문학상 수상이세요. (김소민 작가의 첫 번째 책은, 2011년 5월 출간된 '제5회 소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실험용 너구리 깨끔이>)

 

처음 상을 탔을 때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정말 상을 주시긴 했는데 제가 계속 쓸 수 있는 깜냥이 있을까? 자문도 많이 하고 자학도 많이 하게 되고 또 잘 써야 하는데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첫 작품을 쓰면서는 너무 많이 힘이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읽고 영향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작은 책이지만. 이 책을 좋아하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있을텐데 내가 그래서 함부로 쓰면 안 될텐데 하는 걱정이 많았고요. 주제도 들어가야 하고, 뭔가 도움이 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해, 이런 생각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 가 있었는데요. 이번에 쓸 때는 TV에서 본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던 것, 거기 하나 더해서 힘든 아이들이 읽었을 때 재밌다, 신난다 기분이 한껏 좋아졌으면! 그런 바람이 컸어요.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에 작은 여운이 남아 주면 충분하다고. 정말 재미있게 써보고 싶다, 애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다, 이런 생각 하나만 가지고 썼더니 오히려 저도 더 행복했던 것 같고, 또 아이들도 그래서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는데.

 

아 지금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아주아주 잘 나가고 있어서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작가님이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을 뽑는 심사위원이라면 어떤 작품에 마음이 가실 것 같으세요?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제가 나름대로 보기에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이에요.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어떤 글은 정말 진심으로 썼다는 게 느껴지고요. 어떤 작품에는 쓴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것저것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제 마음에 딱 와 닿는 이야기, 인물, 대화, 문장들이 있는 작품이라면 수상작으로 뽑고 싶을 것 같아요.

 

수리수리 약국이 워낙 발랄하고 즐거운 동화책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왠지 앞으로 슬픈 이야기도 쓰실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거든요.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사실은 제가 아직 캡슐 마녀의 마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웃음) 일단 가장 큰 것은, 이제 두 번째 작품까지 내고 나니까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구요. 독자가 한명 두명 늘어난다는 건 좋게든 나쁘게든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하나둘 생긴다는 것이니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책읽기인데요. 쉬운 그림책을 쉽게 쉽게 보다가 글밥이 갑자기 확 많아진 책을 접하게 되는 시기의 아이들, 이 아이들이 이 때 재밌는 책을 못 만나게 된다면? 한 10살부터 계산해서 90년 정도는 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거, 그 좋은 책을 평생 못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한테 아,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신나는 거구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캡슐 마녀의 다음 이야기도 쓰고 싶고요.

 

 

속편도 꼭 써주세요! 그리고 제가 동화 작가로서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여쭤보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해주신 애기로 짐작해보자면 PC방이랑 놀이터...(웃음), 그리고 또 작가님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캡슐 마녀를 쓰기 직전까지 지방에서 작은 레스토랑 사업을 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지방에서 요양도 할 겸 내려갔어요. 굉장히 바쁘게 지냈던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도 많이 건강해지고 할 즈음에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구요. 그렇게 정신 없이 살다가 저도 캡슐 마녀를 만나서 아주 행복해졌어요. 그리고 일상은 짐작하셨듯이 PC방, 놀이터, 떡볶이집...(웃음) 틈틈이 여행도 다니고요. 본과를 졸업하고 나서 법대에 편입을 하면서 아동 인권,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상담소든 인터넷이든 어떤 곳이든 장소와 역할에 상관 없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존중해줄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봐야겠다하고 있어요. 지나온 제 삶의 여러가지 경험들이, 아이들이 신나게 살아가는 데 힌트를 줄 수도 있으니까.

 

올해 이루고 싶은 소망 같은 것 있으세요, 2012년에.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많은 아이들한테 재미있었다는 얘기, 신났다는 얘기 많이 듣고 싶구요. 그리고 늘 주위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더 늦기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는데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게 될 알라딘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 드릴게요. 또 같이 PC방에 다니는 친구들한테도 인사해주세요!

 

알라딘 독자분들께는요. 저도 마음이 많이 어두웠던 적이 있고 힘들어도 보고 아파도 보고 그랬는데, 어쨌든 좀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처신을 가볍게 하자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가볍게 살 수 있으니까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을 읽고 잠깐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질 수 있다면 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PC방 절친들이 사실은 제 정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전혀 모르고, 얘기해줘도 믿지도 않고요! 에이 무슨 이모가 이러면서. 백수인줄 알고 있어요. 그 친구들한테는 이모한테 좀 예의를 좀 갖춰라...(웃음) 이모한테 반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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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사랑은 걱정하는 마음
    from 엄마는 독서중 2012-03-19 04:07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 어른인 내가 봐도 재밌다, 그래서 두 번이나 읽었다.^^내가 재밌다고 소문냈더니, 초등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려고 차례를 기다린다. 저학년에게 좋은 책 카테고리에 넣었지만 고학년들이 더 좋아한다. 이해의 폭이 더 넓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작가님의 미모와 인터뷰도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 http://blog.aladin.co.kr/tenam/5482391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정소담 2012-03-1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들이 너그럽다'는 말이 여운이 남네요~ 좋은 인터뷰 기사 잘 봤습니다 ^^
 

동화작가 유은실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3월의 좋은 어린이 책, <나랑 화장실 갈 사람?>의 추천글입니다.

 

위로가 된다. 나만 으스스한 화장실에 공포를 느끼며 1학년을 보낸 게 아니었다. 선진국 프랑스도 학교 앞마당 한쪽 구석 어두컴컴한 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지는 밖에서 떼어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큰일을 볼 건지, 작은 일을 볼 건지 들켜버린다. 문은 위에서 아래까지 다 가려주질 않는다. 염탐꾼의 머리통은 안쪽을 들여다보려고 곡예를 한다.

 

「나랑 화장실 갈 사람?」의 주인공 폴린은 화장실이 무서워서 배가 곧 터질 풍선처럼 느껴져도 꾹 참는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팀'을 결성한다. 여자아이 넷이 화장실 팀 깃발을 들고 가는 그림에 '걸작들의 행진'이란 제목을 달아주고 싶다. 수지 모건스턴이 아이들 뒤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는 것 같다. 이 장난꾸러기 할머니 작가를 어찌할 것인가.

 

폴린에게 무서운 화장실이 공포라면 「야호」의 주인공 요나에겐 읽기 수업이 공포다. 「빵점쟁이 자크」의 자크는 수학이 공포다. 왜 1에 0을 곱하면 0이고, 8에 0을 곱해도 0인지 당최 모르겠다. 「엄마 따로 아빠 따로」의 윌리엄에게는 화장실 문제나 책 읽기, 수학 점수보다 좀 더 복잡한 고민이 있다. 엄마 아빠가 따로 사는 것이다.

 

수지 모건스턴은 학교라는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아이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 것처럼 짠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저들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기특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엉뚱하고 사랑스럽다.

 

공포와 어려움이 해결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윌리엄은 이야기 끝까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문제 속에 머물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 그냥 문제 속에 머물러있다.  작가가 "힘들지?". "괜찮아.", "한 번 웃자."하고 아이들을 다독이며 가는 듯하다. 다독다독 숨결을 따라가다 빵빵 터진다. 역시 수지 모건스턴이다. - 유은실(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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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빛 2012-03-0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화장실 같이 가서, 심지어 같은 칸에 함께 들어가기도 했는데. ^^; 그때 생각이 절로 나네요~. 아이들 특유의 귀엽고 순진함이 묻어나는 동화 같아요. ^^

딸기꼬치 2012-03-05 16:40   좋아요 0 | URL
저도 저도! 초등학교 다니는 숙녀라면 같은 칸에 함께 들어가는 건 기본이죠ㅎ 유은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빵빵 터지는 엉뚱하고 귀여운 동화책이에요~

2012-03-31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2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3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3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