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동생,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로의 맘을 몰라 티격대격하는 형제지간을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그려냈습니다. 신작 <우리 집 괴물 친구들>의 출간을 기념해, 박효미 작가님과 사계절출판사가 인터뷰 자리! 게재를 허락해주신 사계절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엉뚱한 상상력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빛나게 한다
<우리 집 괴물 친구들>로 돌아온 동화작가 박효미

 

사계절 : 오랜만에 선보이는 저학년 동화입니다. <펭귄이랑 받아쓰기>이후 3년 만인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박효미 : 처음 책을 내는 것처럼 두근거립니다. 저학년 동화는 그 어떤 장르보다 현실과 환상을 거침없이 오갈 수 있지요. 아이들의 심리도 날것 그대로, 솔직합니다. 환상을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이미 깎이고 다듬어진 어른의 시각이 개입한다면 어설픈 이야기, 진짜가 아닌 흉내 내는 이야기가 되고 말지요. 꼭 줄타기 같아요.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다 자칫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게다는 저는 이미 어른이잖아요.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실패하고 말지요. 개인적으로 저학년 동화의 완성도는 이 줄타기에 있다고 봅니다. 실패하면 독자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겠죠. 쩝, 유치하군! 이제 막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마친 느낌입니다. 그래도 쓰고, 고쳐 쓰고, 교정보는 내내 아주 아주 즐거웠습니다. 

 

사계절 : <우리 집 괴물 친구들>을 보면 형과 동생의 관계가 무척이나 생생하고 사실적입니다. 작품을 구상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박효미 : 저는 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랐고, 제가 낳은 아이들은 오누이입니다. 또 주변에서 남매, 형제를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게 형제지간이었습니다. 남동생의 형 ‘따라 하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더군요. 만나면 싸워대는 누나와 남동생보다 형을 껌딱지처럼 쫓아다니는 남동생이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지요. 그런 생각이 작품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사계절 : <우리 집 괴물 친구들>에 나오는 괴물 이비야, 툴툴지아, 누툴피피는 동생 종민이의 또 다른 자아로 비쳐집니다. 이름도 독특하고 생김새도 괴이한, 정말 말 그대로 ‘괴물’인데 이런 괴물들은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박효미 : 이비야, 툴툴지아, 누툴피피. 실제 우리 집 아이들이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썼던 유아어입니다. 저도 따라해 보았는데, 입에 척척 달라붙더라구요. 참 재미있어요. 이것 말고도 아직도 기억나는 유아어들이 또 있습니다. 유아어들 중엔 어떤 물건에 붙여진 이름도 있어요. 이름이 지어지고 불리는 순간, 그것은 생명력을 갖습니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그것이 정말로 살아 있다고 생각하며 놀이를 합니다. 무척 흥미롭습니다. 문득, 저는 이미 너무 큰 어른이 되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고 함께 놀고 때로 의지하고 싶습니다.

 

사계절 : 작품 속에 나오는 엄마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엄마 상인 것 같아요. 종민이 말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형 편만 든다거나 무조건 공부하라 하고, 혼내고 다그치는 역할로 나오는데요.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다면.

 

박효미 : 어른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 교육상 가장 좋지 않은 게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도 엄마인데, 일관성 있게 산다는 게 어디 쉬운가요? 엄마가 늘 아이들 교육에만 신경 쓰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엄마도 자기 인생을 살아야죠. 그러다 보면 종민이 엄마처럼 되기 십상이지요. 저는 우리 시대에 가장 흔한 엄마를 솔직하게 그렸을 뿐입니다.

 

사계절 : 강연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시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시잖아요, 실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요. 요즘 아이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박효미 : 몇 년 전에 비해 아이들은 더 바빠진 것 같아요. 확실히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고. 그렇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가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꿍꿍이가 많은 아이, 안 듣는 척하지만 다 듣고 있는 아이, 센 척하지만 속으로 생각이 많은 아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아이들이 조금만 더 심심했으면 좋겠어요. 휴대폰에서, 컴퓨터에서, 공부에서 조금만 멀어져 뒹굴뒹굴, 심심해 심심해를 외치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훨씬 더 행복할 거예요.  

 

사계절 : 훗날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요?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쓰고 싶으신지 궁금하네요.

 

박효미 : 20년, 30년 후에 읽어도 괜찮은 이야기, 오래 전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제가 쓴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뛰는 생명력을 갖는 거죠. 제가 쓴 작품 중에 한두 작품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전 아주 행복한 작가겠죠.

 

지금까지 쓴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휴대폰과 게임을 즐기는 아이가 문득, 책 앞머리 한두 장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끝까지 읽어 버렸다면, 그리하여 옆 친구에게도 빌려주고, 소개해준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기호 3번 안석뽕>은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한 재래시장 떡집 아들의 선거운동을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어느 초등학교 교정에서라도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꾸밈 없는 아이들의 모습, 싱그러운 에너지와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스스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 아이들을 무한히 신뢰하는 작가, 창비 좋은 어린이책 역대급 재미를 보장하는 맛깔스런 데뷔작 <기호 3번 안석뽕>의 진형민 작가를 만났다.

 

(기획:창비 / 사진:창비 / 인터뷰:알라딘 이승혜 / 2013-03-21) 

 

대안학교, 어린이 서점, 방송국, 출판사 다양한 일터와 경력을 거쳐 동화를 처음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안학교에서는 우리말과 글이라고 부르는데 국어과 교과가 되겠죠. 이 말과 글 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 중심에서 글쓰기 작업들을 하게 됐었어요. 대안학교 교사를 하기 전에는 어린이 서점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 여러 가지 삶의 과정 속에서 계속 아이들 책이 제 주변에 있었고요. 그런 것들을 누리는 사람에서 그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어떤 중요한 계기 하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부터 건너건너 지금까지 오면서 글을 쓰는 일, 일을 해야 하는 형태가 글인 것, 그리고 그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것 그런 것들이 계속 공통적으로 주변에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야금야금 쌓여서 어느 순간에 넘치는 지점이 요즈음이 아닐까… 쓰고 싶은 욕구와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같이 넘쳤던 바로 그 지점이 바로 운 좋게 요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호 3번 안석뽕>은 어디서부터 출발하게 된 작품인지요?

 

저희가 한동안 선거 국면을 많이 지나왔잖아요? 선거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며 제가 한참 책을 쓰고 있을 때의 국회의원 선거며,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근처의 학교에서는 또 아이들 선거며,  이러저러한 선거 과정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상을 하게 됐었고요. 처음에는 사실 각기 다른 2개의 단편이었어요.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선거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재래시장 문제를 다룬 이야기였는데 그 두 이야기가 어느 순간 같이 넘나들면서 뛰어 노는 어떤 시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단편 A의 아이들하고 단편 B의 아이들을 서로 만나게 해줬고, 그게 자연스럽게 좀 이어졌던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졌을까 궁금했었는데, 애초에 두 단편이 따로 존재했었던 거였네요.

 

알고 보니 한 동네 아이들이었던 거죠. (웃음)

 

<기호 3번 안석뽕>은 일러스트 보는 재미도 굉장합니다. 이야기하고도 정말 잘 어울렸고요. 작가님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만세를 불렀죠(웃음). 그림을 그려주신 한지선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정말 언젠가 이 감사함을 꼭 전해드려야 할텐데요. 글 작업이랑 그림 작업이 한 텍스트에 있긴 하지만 참 서로 다른 것 같아요. 백마디 말이 함축적으로 한 컷에 담겨지는데 그 느낌이 이런 거구나 했어요. 저도 사실은 책을 처음 내봤기 때문에 그림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무게와 역할이 이런 거구나, 정답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지요.

 

<기호 3번 안석뽕>을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제 의도보다도 아이들이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사실 가장 궁금한 지점이에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썼어요’, ‘여기서 주제는 뭐예요’, 주입식으로 아이들에게 얘기하기는 좀 난감한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제가 정한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사실 의도하는 바가 아니고요. 그런데 어쨌든 쓰는 사람 입장에서 제가 늘 관심 있는 것은 이런 것 같아요. 아주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지점들에 대해서 ‘정말 당연해?’ 이렇게 물어봐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수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소외되는 상태와 구조에 대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소외되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도록 한번씩 쿡쿡 찔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요. 그게 대단히 어떤 큰 결과를 가져오고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지만 의무로 삼았다기보다 굉장히 즐겁게 한 것 같아요.

 

교사로 일하셨던 대안학교에서의 반장 선거, 회장 선거의 풍경은 어떠한지요? 일반 학교와는 조금은 다른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대안학교에서는 이제 ‘모둠’이라고 하는데 그 모둠에서 대표를 뽑아요. 대부분의 과정은 다 비슷하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훨씬 더 주체적으로 참여하게끔 어른들은 뒤로 많이 빠져주죠. 공약을 발표하는 정견의 장도 있고, 비밀 투표의 과정도 있고요. 잔치처럼 그렇게 해요. 수업 안하고 그런 걸 하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그러면 일반 학교에서의 선거 풍경은 책(<기호 3번 안석뽕>)에 나와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요?

 

모든 학교가 다 똑같이 이렇게 하진 않겠지만 취재를 통해서, 대체로 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풍경들을 모아 쓴 것이라 보편적인 부분들은 있을 거예요.

 

초등학교 선거처럼 재래시장 풍경도 취재를 거쳐 나온 모습들인지요?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떡집도 저희 동네 재래시장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 집에서 떡을 얼마나 많이 사먹었는지 몰라요. 떡을 만드시는 동안 ‘제가 여기 앉아서 떡 만드시는 걸 보겠습니다’ 하면서 사진 찍고 취재하고 인터뷰도 하고 했죠. 오히려 더 디테일한 것들을 많이 못 실었죠. 빼면서 아깝기는 했지만 아깝다고 다 쓰자니 너무 넘치는 것 같고… 취재했던 것들을 다 써먹지 못해서 가슴이 좀 아팠죠(웃음). 제가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활자로 된 자료만 가지고 뭔가 근사하게 만드는 능력이 없어서 발로 뛰지 않으면 해결 안 되는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제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런 취재들이 제 작업에서는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정들어 슈퍼’ 딸 백발마녀가 바퀴벌레 군단으로 ‘피마트’를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셨는데요(웃음).

 

그렇게 지저분한 건 다 제 상상입니다(웃음).


<기호 3번 안석뽕>에서도 그렇고 반장이나 회장이라는 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성적 좋은 아이들이 반장을 도맡아 하고, 부모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반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세요?

 

부모님이 지원을 잘 해줘서 아이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역할을 아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되면 암암리에 좀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도 있고 같이 굴러가는 것 같아요. 드러나는 현상은 엇비슷한데, 사실은 스스로 사교육 시장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같이 따라가게 되는데요. 나 혼자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기가 어렵죠. 나는 됐어, 그렇게 쿨하게 놓아버리면 좋겠지만 그게 내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의 문제하고 연동이 됐을 때는 좀 더 고민스러워지는 지점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되는 분위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부모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지점도 아니고 사실은 존재하는 어떤 현상이기는 한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있죠.

 

석뽕이는 직접 선거에 뛰어 들고 나서 회장이라는 것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 특정한 소수 집단의 아이들이 취득하는 어떤 지위라기 보다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는데요.

 

기호 1번이나 2번 같은 경우 그렇게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반장 선거에 나가고 반장이 되고 반장이라는 이름값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습적으로 익숙해진 녀석들이라면요. 기호 3번 무리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사전 정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말 그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반장이라는 게 뭘까 고민하고 찾아가게 된 그런 아이들인데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건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역할들을 찾아가야 되는 게 아닐까? 과연 반장이라 함은 남들 앞에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그 약속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무게감을 자기가 어떻게 어깨에 안고 갈 것인가였어요. 실제로 아이들을 그냥 탁 풀어놓으면 이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찾아나가기 이전에 이미 프레임이 다 짜여 있고 자발적으로 해낼 수 있는 기회들이 생략됐기 때문에 기호 1번과 2번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그 아이들도 스스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 거야 라는 믿음은 있죠.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을 거예요.

 

재래시장 인근에 생기는 대형마트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뉴스를 통해서도 자주 접하고 또 실제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요.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처음 단편에 담고 장편으로 발전시키셨던 이유에, 아이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지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아니었다는 점, 또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죠. 사실은 아이들도 사회의 구성원이잖아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기 부모의 문제고 친척들의 문제고, 이웃들의 문제고 곧 자기들의 문제가 될 것이고요. 그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새로 시작해야 될 어떤 과제나 공부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 함께 가야 되는 그런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들하고 같이 나눌 것인가 하는 방식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이 되지만, 분명한 건 어릴 때부터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거죠. 나로부터 시작해서 가족, 이웃, 사회, 국가, 세계… 점점 동심원들이 넓어지면서 아이들의 관심의 영역도 넓어질 텐데, 그 크기에 맞추어서 계속 같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기호 3번 안석뽕> 출간 이후로는 글쓰기와 관련해 어떤 작업이나 구상을 하고 계세요?

 

지금 작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은 여전히 비슷한 지점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서 ‘이런 고민도 필요해’ 라던가 ‘아. 맞아 이런 것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인데’ 라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미처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얘기를 건네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 구조의 문제,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있죠.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거꾸로 동화 쓰는 일이 작가님 본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세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치죠(웃음). 직장에 다닐 때나 바깥 일을 할 때에는 어쨌든 꾸준히 들고 나고 하면서 에너지를 밖으로도 쓰고 안으로도 쓰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랬는데 이제 줄창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까 왠지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길게 가려면 제 안에서 에너지를 배분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은 좀 들어요.

 

이번 작품을 완성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과정을 6개월 밟고 나서 같은 기수 동기들이랑 후속 모임들을 계속 했었어요. 엄기호씨라고 그분이 쓰신 책을 보니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동료’와 ‘아지트’라고 하셨는데 정말 요즘에는 특히 글을 쓰면서는 정말 그렇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혼자 고립되어서 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쓰는 작업은 혼자서 개인적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만 그것들을 작품으로 외화시켜내는 과정에서는 동료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자기를 성장시켜내는 동력을 자기 안에서 혼자 가져오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 후속 모임에서 동기들이랑 같이 계속 습작을 했었어요. 한때 막 불타올라서 할 때는 저희가 붙인 이름이 ‘스파르타 시즌’이었어요(웃음). 거의 일주일에 단편 하나씩 들고 와서 합평하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같이 쓰기도 하고 전래동화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를 가져와서 다시 쓰기도 하는 그런 작업들을 했고요. 그 와중에 썼던 두 개의 단편들을 가지고 장편 <기호 3번 안석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합평을 하는 친구들의 힘이 컸죠. 언제나 어디에서나 늘 마음껏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럴 수 있는 공간이나 사람을 찾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하고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모였었고, 같은 선생님들 밑에서 수업을 들으며 합평을 했던 기본적인 토대들이 그런 작업들을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아요. <기호 3번 안석뽕>이 책으로 나왔다고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친구들 반응은 마치 제가 뱃속에 아이를 가졌다가 출산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 얘가 걔구나’ 하면서 기뻐해주더라고요. 제가 느끼는 것과 가장 비슷한 감회를 느껴주는 사람들은 바로 그 친구들이에요.

 

아이들에게는 어떤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책을 골고루 읽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들 독서 목록 제일 앞에 놓였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요?

 

제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철학이 빈곤하여 참 부끄럽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으로 두고두고 남기 위해서는 어쨌든 나의 철학이 더 깊어질 필요가 있겠구나. 계속 이끌어왔던 자기 색깔, 철학이 있고 역사에 대한 자기 관점이 있고 사회에 대한 의식이 있고 뚜렷하게 이끌어온 사상이나 그런 자기 체계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거칠게가 아니라 이야기다운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 때는, 그러니까 제 어린 시절이 그렇게 유복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얻지는 못했었어요. 철학, 세계사, 사회사 이런 것들은 나중에 대학에 가서 굉장히 건조한 방식으로 배웠었죠. 그런데 어린 시절에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건조하지 않고 풍요롭게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뒹굴면서 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예술적 경험을 통해서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책도 그 중에 한 부분이 될 수 있겠고요. 재미가 있다는 건 같지만 얕은 재미와 깊은 재미는 좀 다를 것 같거든요. 깊은 재미가 있는 책들이, 더더군다나 요즘 같이 험난한 세상을 살 때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에게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기호 3번 안석뽕>의 독자 분들께 특별히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요?

 

책이 아이들 가까이에 늘 있는 시스템이면 참 좋겠어요. 지금은 아이들 손에 책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현실인데 그게 부모가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아이가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서로 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이 아이들 가까이에 있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이나 개개인의 변화를 논하기 전에 아이들 가까이 책을 놓게끔 만드는 그런 정책적인 것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글을 쓰는 사람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해낼 수 있고 아이들도 더 이상 책 읽기를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 많은 것들을 감수하면서 해야만 하는 그런 어려운 작업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독서라 할지라도 진짜 재미와 의미를 알아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사실 있잖아요. 책 읽기의 과정 속에서도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곁에 있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시스템, 정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고민하는 주체는 아이들이 되기 어려우니까 아이들 주변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어른들이 그런 고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제 책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다 같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고민들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같이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기호 3번안석뽕>이 개인적으로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요?

 

얼마 전에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일본의 교육학자가 쓴 책인데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세 사람의 어른이 필요하대요. 그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삼촌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각자의 방식이 좀 다르긴 하지만 기존 사회에서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가치와 도덕들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면, 삼촌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거예요. 부모들이 사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도덕이나 가치를 전달한다면, 이 삼촌은 그 가치를 의심하게 하고 그 가치에 저항하게 하고 그 도덕체계를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역할들을 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부모가 주는 가치체계만을 가지고 어떤 의심이나 고민 없이 그냥 자라나는 것보다 이런 삼촌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더불어 자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삼촌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 사이에서는 틈이 생기잖아요. 그 틈이 생겼을 때 비로소 아이들에게 생각의 여지가 생기고, 또 그게 때로는 되게 혼란스럽고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는 거죠. 부모가 답습해주는 것들을 그냥 받아 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예전이랑 다르게 그 삼촌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거대한 부모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 그런 조직은 굉장히 거대해지고 학교도 그렇고 사교육 시장도 마찬가지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한가지 방식 한가지 지향점 외에는 균형감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나같이 삐딱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바로 그 삼촌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사실은 <기호 3번 안석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새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렇고 당분간은 삼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삼촌이 적대적이거나 모순된 관계는 또 아니고 서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삼촌? 이 책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ㅓㅎㅀ 2016-05-3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해요!!!!

하늘 2016-05-3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________________________랑해요!!!!
 

 

열살 무렵의 어린이날 난생 처음 스니커즈를 신어본 한 꼬마가, 스니커즈의 인디언 핑크색과 예쁜 생김새에 매료되었던 소녀가 시와 동화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분주한 직장생활을 뒤로한 어느 봄날, 신나게 써내려간 자신의 이야기가 동화 속 마법처럼 데뷔작이 되었다.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저학년 부문 대상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의 김유 작가를 3월의 이른 아침에 만났다. 볼로냐 여행을 하루 앞둔 작가는 사랑스러운 '스니커즈 발견가' 구구의 탄생 비화를 아낌 없이 공개해주었다.

 

(기획:창비 / 사진:창비 / 인터뷰:알라딘 이승혜 / 2013-03-21) 

 

 

어린이 책 만드시는 일을 하다가 동화 작가가 되신 과정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어요?

 

제가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라지는 못했어요. 그 동안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문예창작과에 진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어린 시절에 동심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동화책을 읽으면서 그 동심이 살아나는 것 같은 거예요. 어린 시절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다시 끌어올 수 있고 결국은 이게 다시 사는 셈이 되더라고요. 한 10년 전쯤, 그때부터 동화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지금까지 갖고 왔어요.

 

본격적으로 동화를 읽었던 그 대학 시절에는 어떤 작품을 제일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인데요. 동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책을 교과서처럼 봐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삐삐 롱스타킹>도 제 어린 시절을 연상하면서 푹 빠져서 본 책이고요. 그런데 저는 삐삐하고는 다른 아이였어요. 삐삐처럼 활발하거나 씩씩하지 못했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그런 모습의 제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마법의 설탕 두 조각>, <학교에 간 사자> 같은 좋은 책도 대학 시절에 처음 읽었어요. 동화책 중에 좋은 책이 참 많구나 했었죠.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어떻게 구상하신 작품인지요?

 

구상은 좀 오래 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없고, 현실적으로 시간도 부족하고… 그래도 계속 구상하고 메모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게 된 건 회사를 그만두고 난 작년 봄이었어요. 몇 달 사이에 이 작품을 정말 신나게 썼죠. 제가 가장 잘 아는 얘기부터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썼던 습작이나 단편동화에서는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만큼 저를 드러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 아는 얘기를 써보자는 게 이 작품의 출발점이었고요. 그래서 더 즐겁게 썼던 것 같아요.

 

주인공 구구가 저와 가장 닮은 점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게 됐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구구하고는 성격이 많이 달랐어요. 구구랑은 다르게 정말 소극적이었고, 호기심은 많았지만 표현을 잘 못했어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참 안타깝게 느껴지죠. 그래서 구구한테는 신나는 일만 생기도록 쓴 것 같아요. 구구가 작품 속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자로 활약하는데 이건 제가 원했던 저의 모습, 마음속에 그렸던 모습들을 구구한테 옮겨서 표현한 것 같아요.

 

스니커즈를 좋아하시냐고 물어보는 건 너무 당연한 질문일까요?(웃음)

 

좋아해요! 신발, 우선은 신발 자체를 참 좋아하고요. 일반 운동화는 어쩐지 어감도 뭉툭하고 투박하기도 한 것 같은데... 그런데 스니커즈는 참 멋지지 않나요?(웃음) 이름도 그렇고 여러가지 모양이나 색깔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스니커즈라는 이름도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온 거고, 그래서 어쩐지 스니커즈를 신으면 되게 신나고 사뿐사뿐 날아갈 것 같잖아요.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선물, 정말 기뻤던 선물을 받았던 게 바로 스니커즈였어요. 제가 살던 동네에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부모님들이 다 외출을 하셔야 할 때면 제가 잠깐씩 가서 그집 아기를 돌봐주곤 했었거든요. 아이 아버지께서 저한테 보답으로 어린이날 선물을 사주신 거예요. 당시에 흔하던 그런 하얀 운동화가 아니라 인디언 핑크 색에 앞코는 얄쌍하고 끈 대신 찍찍이가 달린 굉장히 예쁜 신발이었어요. 스니커즈, 처음 신어보는 모양의 스니커즈였어요. 그 시절에는 굉장히 비싼 신발이기도 했고요. 그때 그 스니커즈를 신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도 평범한 아이구나.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 신발을 신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요. 그때가 아홉 살 아니면 열살, 구구랑 비슷한 나이였어요.

 

그때 그 스니커즈를 선물 받은 꼬마가 이런 멋진 동화작가가 됐다는 걸 아저씨도 알게 되신다면 정말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외로웃 이웃을 위한 잔치’에 초대를 받은 구구와 키다리 아저씨가 본인들이 왜 외로운 이웃으로 불리는 건지 의아해하는 대목이 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한데요.

 

구구는 엄마 아빠를 한 순간에 잃고 고아가 됐어요.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 고아원에 보내야 된다, 의논을 하는데요. 어떤 결핍이 있는 사람을 봤을 때, 저 사람은 외롭다라는 규정을 우리가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요. 키다리 아저씨는 혼자 살면서 많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특별한 벌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 사람은 분명히 외로운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사실 그들은 전혀 외롭지 않은데 타인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걸 반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키다리 아저씨랑 구구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구구 친구들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요. 구구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따뜻한 마음씨, 친구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친구를 사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아요. 구구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만날 수 있다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구구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아이고,  키다리 아저씨랑 몽돌이를 뺀 나머지 또래 친구들을 한 사람씩 보면은... ‘에이뿔따구’는 엄마 아빠가 다 있어요. ‘떡진머리’는 엄마하고만 사는 아이죠. 다양한 환경에서 각각 살아가는 아이들인데 다 나름의 결핍이 있어요. 부모님이 계신 아이조차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모이면 아주 어려운 일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거죠.

 

키다리 아저씨가 만든 노래 중에 ‘기분이 아주 좋으면 노래를 부르고 기분이 아주아주 좋으면 시를 쓴다’는 가사가 있어요.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땐 어떻게 하세요?

 

제가 노래를 좋아는 하는데 잘 하지는 못하거든요. 음치 박치여서 절대 노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고요(웃음). 시는 좋아해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도 처음에는 시 공부를 먼저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동화로 옮겼는데 시하고 동화는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시적 상상이 동화로 왔을 때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시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대목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에서는 힘든 상황이나 아픈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자고 강조를 하셨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일찍부터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사는 것 같아요. 제가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에서 ‘우리동네에는 100명이나 있다’는 좀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모두 왕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자기 의사나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안타깝거든요.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면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는데 그걸 어른들이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울고 싶고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많이 놓일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다면 좀 더 삶이 풍요로워지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하신 부분이 있다면요?

 

캐릭터를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캐릭터가 선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주인공 구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인데, 이 아이가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포인트로 잡았어요. 구성이나 결말을 정해 놓고 쓰진 않았는데 쓰다 보니까 구구가 가는 대로 이야기도 같이 따라 흘러갔어요.

 

아동복지시설에서 문학예술 강사로 활동하셨을 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르쳐주셨는지.

 

문학예술 강사직이 우리나라에는 10년 전부터 있었더라고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arte) 곳에서 하는 사업인데 문학 수업은 최근 한 2년 사이에 자리를 잡았어요. 저는 파주 쪽에 있는 지역 아동 센터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게 됐어요. 부유하고 풍요롭게 사는 친구들도 많지만 어려운 친구들도 참 많잖아요. 여전히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는 걸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을 만나면서 느끼게 됐는데요.

 

제가 맡은 수업이 4, 5,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3학년 친구들도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책을 읽고 같이 써보는 게 기본 목표였지만 막상 그렇게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책을 읽고 쓰게 하는 것에만 집착을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울툴불퉁하게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고, 또 의자 밑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아이도 있고, 막 웃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밉다 혹은 왜 저러지가 아니라 제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저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는 그런 걸 깨닫고 많이 배우기도 했죠.

 

그래서 어려운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읽었을 때 마음에 와 닿을 만한 그런 그림책들을 골라 가지고 가서, 만날 때마다 그 한 권을 같이 읽는 것에 의미를 두었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기뻤어요. 저 역시 이 수업으로 인해서 어떤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었죠.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어린이들 만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직접 쓰신 책을 읽어주신다면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어요!

 

안 그래도 친구들한테 책을 보내줬어요. 그 중에 한 아이가 ‘딱 쌤이 쓴 거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해줬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제 목소리와 저라는 사람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제 실제 모습하고 다르게 책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건 가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다른 어떤 칭찬보다 기뻤어요.

 

작가님의 일상에서 활력소가 되어주는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랑 둘이서 함께 지내는 언니요. 언니도 문학을 전공했고 동시를 쓰고 있어요. 저희가 딸만 다섯인데 언니가 넷째, 제가 다섯째고요.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거나, 다른 대상에 대해서 의견을 많이 주고 받는 편이에요. 언니는 동시를 쓰고 저는 동화를 쓰니까 서로의 작품을 제일 처음 읽는 독자가 돼서, 날카롭게 지적을 해주기도 하고요. 지적을 받을 때면 화도 났다가 내가 고민을 더 해야 하는구나 자극도 받고요. 언니가 저의 멘토이자 가장 큰 자극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동화를 써나가고 싶으신지 계획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의 독자가 되어주실 분들께도 인사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선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제 동화에는 유머도 있고 반짝이는 상상력도 있고 넌센스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다 같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는 게 목표고요. <어린 왕자>처럼 거듭해서 읽게 되는 작품, 처음 봤을 때 못 봤던 걸 두 번째 읽었을 때 새롭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어린 왕자>가 두고 두고 보고 싶은 책인 것처럼 우리 구구도 그렇게 사랑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분들한테요.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구구라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구구는 자신보다 더 외로운 상황에 놓인 친구들, 이웃을 따뜻하게 같이 안아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가요. 건강하고 밝은 이야기니까 많은 분들이 보시고 같이 힘을 내고 구구를 응원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쓰면서 그 동안의 제 아픔이나 상처들이 많이 치유되기도 했어요. 이 책을 출발점 삼아, 저도 앞으로 구구랑 같이 씩씩하게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집 2013-03-3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니커즈로 꿈을 키울 수 있다니... 우리 아이들도 구구를 만나면 멋진 꿈을 꿀 것 같아요.

둘리 2013-03-3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이 인터뷰에서도 느껴지네요
진짜 자신이 드러나는 글을 쓴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구구처럼 요즘 아이들도 따뜻하고 솔직한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헬로우맘 2013-04-02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따뜻하고 재밌는 이야기 많이 써주세요. 구구가 스니커즈 발견가가 된 다음에 모험담도 책으로 만나볼수 있기를 바래요~

나나맘 2013-04-0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삶이 담긴 책이라서 그렇게 가슴에 와닿았군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그냥 울컥했어요.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나요?

유머를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운 책, 다정한 책입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체스턴 2013-04-04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네요.

또구구 2013-04-05 0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국 영행 중에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인류 최고의 동화는 삐삐롱 스타킹이다. 이에 버금가는 동화가 나와 기쁘다.
 

제2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다락방 명탐정>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재미있는 판타지 추리동화다. 탐정 흉내내길 좋아하는 초등학생 건이가 다락방에 차린 허름한 탐정 사무소, 첫 번째 의뢰인은 다름 아닌 도깨비! '아이들이 도깨비와 친해지게 만들자'라는 애초의 취지에 맞게,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 도깨비의 습성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본격 탐정물을 표방하는 만큼, 사건의 실마리를 추리해나가는 묘미 또한 일품이다.

 

전직 신문기자이면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두 아들을 둔 엄마이자, 이제 막 데뷔한 새내기 동화작가. 성완 작가가 문단에 첫 발을 내딛는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이 판타지와 추리물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들려주었다. 때로는 심술궂기도 하지만 사람을 잘 믿어서 속기도 잘하고, 어리버리하면서도 참 착해서 좋다는 도깨비 이야기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기획 : 비룡소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3-02-26)

 

 

 

축하드립니다. 비룡소 문학상 공모전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된 소감이 어떠세요? 

 

어린이 문학을 접한 세월이 길지 않아서 크게 기대는 못하고 응모를 했었어요. 그랬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쁩니다. 기쁘고, 감사하죠. 운이 좋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 문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세월은 또 길었는데 그 고집스러움하고 운이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 문학을 접한 세월이 길지 않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동화를 쓰기 시작하셨는지요?

 

글을 계속 쓰고 싶었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글을 썼어요. 그러다 기자가 됐고 일이 재미는 있는데 내 세계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좋았지만 약간 허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어요. 그만둘거면 해보고 싶은 글을 다시 해보자라는 마음이 있었구요. 그러던 중에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동화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많이 컸어요. 이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고 그래요.

 

<다락방 명탐정>을 읽을 나이는 지났네요.

 

5학년 아들이 책하고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데(웃음) 읽기에 괜찮았던 것 같아요. 고학년이라도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아이들한테는 좀 쉬운 책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도깨비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나요? 아니면 추리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주인공을 찾다가 도깨비를 선택하셨던 건지요?

 

재작년에 처음 동화 글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겨레 아동문학작가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고, 거기서 같은 기수끼리 스터디그룹을 짰는데요. 제 글에 대해서 '취지는 좋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그런 평이 있었죠. 합평을 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 재미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어요. 오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동안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걸 좀 내려놓고 나도 재미있는 걸 써보자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읽는 책을 좀 봤어요. 우리 아들들은 딱 평균치거든요. 한 아이는 게임을 아주 좋아하고, 다른 아이는 운동을 아주 좋아하고. 걔네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나 봤더니 읽는 책 중에 외국 판타지와 외국 추리가 많더라고요. 그러면 그 두개를 섞지 뭐, 이런 생각을 했고요. 판타지 추리를 하는데, 우리 아들들 같은 경우 너무 외국 동화에 치우쳐 있으니까 우리 정서를 담은 작품을 해보자는 식으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다락방 명탐정>을 쓰시기 전에 도깨비 공부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많이 찾아서 보는 편인데요. 이분은 어쩌면 그렇게 박학다식할까 했던 대문호님께서 예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도 모든 걸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 분야에 대해서 그때그때 공부를 하고 또 다 까먹는다' 그말에 위로를 받으면서 저도 그렇게 연명하는...(웃음)

 

우리 관념 속에 있는 통상적으로 알려진 도깨비는 뿔이 달리고 도깨비 팬티 같은 것도 한장 입고 있는 그런 모습인데요. 알아보다 보니까 그런 도깨비의 모습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더라구요. '오니'라고 하는 일본 도깨비의 영향을요. 우리나라 도깨비 중에는 뿔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다고 해요. 사실 이 작품을 하면서 겁도 났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도깨비하고 많이 달라서 '그게 어떻게 도깨비냐, 이름만 도깨비다'라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아이들이 그냥 도깨비를 박물관에 있는 도깨비로 느끼지 않고 우리 옆에 있는 도깨비로 느끼게 하되, 우리나라 도깨비들이 갖고 있는 품성이나 정서는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들이 갖고 있는 품성, 사람을 잘 믿어서 속기도 하고 어리버리하기도 한데 참 착한 그런 도깨비들의 정서를 훼손하지 않으면 스토리가 약간 변형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도깨비가 아이들하고 친해지는 게 이 이야기를 만드는 취지와 더 부합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죠.

 

<다락방 명탐정>에서처럼 구미호가 정말 도깨비를 무서워한다는 게 정말인가요? 도깨비가 구미호의 천적이라는 게 유명한 사실인지 작가님의 설정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예요. 메밀묵을 비롯해서 음식을 좋아하는 건 전해져온 이야기고요. 제가 도깨비의 습성을 약간 변형을 하는 건 오히려 도깨비들 이야기를 계승하는 것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도깨비랑 구미호는 원래 전혀 다른 두 이야기에 각각 나오지만, 우리나라 판타지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걔네들이 서로 교류할 수도 있는 것이고...(웃음)

 

그러고보니 흥부네 박을 주먹코 도깨비가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도 말씀하신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옛날에는 도깨비 이야기를 할머니가 들려주시면 호랑이가 정말 산에서 내려올까봐 불안하고 그랬잖아요. 그시절에는 판타지 얘기에 묘미가 있고 재미가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게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했겠지만 어느 순간 단절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지금 우리집으로 올까봐 겁나고 혹은 우리집으로 올까봐 기다려지고... 그런 것은 외국 캐릭터들에 많이 밀린 것 아닌가 싶어요. 제 아들들도 요정하고, 몬스터 이런 것들하고 더 친하거든요. 우리 도깨비도 우리 아이들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도깨비들이 가진 여러 특징 중에서 작가님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점을 하나만 꼽아주세요.

 

도깨비도 그렇고 구미호도 그렇고 우리나라 캐릭터들은 참 착해요. 본성이 사악하지 않은 게 가장 좋은 점 같아요. 성격이 좀 심술궂다거나 심통도 부리고 화도 부리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참 착한 것 같아요. 서양 캐릭터가 더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악구도가 분명하고 악의 캐릭터가 너무 선명한 그런 것보다 우리나라 캐릭터들의 선함이 저는 좋더라구요.

 

<다락방 명탐정>에 나오는 주먹코, 꺽다리, 외눈이, 번개버리.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네 도깨비들 중에서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네 도깨비 캐릭터가 가진 모습의 한 부분씩은 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거든요. 소심한 것도 내 안에 있고, 아들 둘을 키우다보면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하는 것, 머리가 나쁜 것은 주먹코를 닮은 것 같고요(웃음).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쪼개서 만든 느낌이기 때문에 이 도깨비들이 다 아이들하고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건이가 탐정 사무소를 차리자마자 첫 의뢰인인 도깨비가 사는 마을로 가게 되는데요. 주인공이 도깨비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게 예상 밖이었어요.

 

도깨비를 만났을 때 무서워할까 반가워할까 고민했을 때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반가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경계심이 적으니까. 구미호를 두려워했던 건 구미호가 자기를 헤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요.

 

'번쩍따리~ 반짝따리~ 따리따리 쨍쨍~!' '보글퐁~ 쿨럭퐁~ 들락날락 걀걀~!'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흔들면서 외우는 주문이 재밌습니다.

 

주문을 외웠을 때 그 주문의 효과와 관계 있는, 연상될 수 있는 단어를 쓰되 아이들이 입으로 소리내서 읽었을 때 입에 붙는 말이었으면 좋겠다하고 주문을 만들었습니다.

 

도깨비 일행이 거적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던 중에, 도깨비방망이에서 뚝딱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도깨비가 초코 아이크림을 만들어준다는 게 부럽기도 하면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작품 속 어떤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드셨나요?

 

아이들을 신나게 해주고 마음을 열어주고 해방감을 준다는 점에서 방금 꼽으신 그 장면을 들 수 있겠고요. 가장 고민했던 건 범인에 대한 해결 방안이었어요. 범인을 곧바로 용서를 할 것이냐 벌을 줄 것이냐 고민하는 대목에서 아이들이 한번 되새김질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해방감을 주고 저도 날 수 있었던 건 그 거적을 타고 날아가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말에 가서는 모든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된 덕분에 산뜻한 기분으로 독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까지, 장편동화 한 편을 쓰기까지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요?

 

제가 재미있었던 것 같았어요. 아이들한테 어떤 단서를 남겨줄까? 예전에 습작을 할 때는 뭔가 유익한 걸 해보자 하는 무게감에 눌려 있었다면 <다락방 명탐정>은 제가 추리하는 재미를 느끼고 만들면서 썼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추리와 판타지가 유난히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추리는 그림이 딱딱 맞춰지는 퍼즐 같은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특성 중의 하나가 참여인 것 같거든요. 생각에 참여하든가 공감대로 참여를 하던가 자기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을 때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추리물에서 자기도 같이 범인을 생각해보고 그런 재미가 아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이거야 하고 알려주는 것하고는 다르죠.

 

판타지는 그냥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자아이 여자아이 장르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현실과 판타지를 정말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어른들은 재는 게 많아지잖아요, 현실감도 생기는데 아이들은 판타지 세계로 들어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요. 현실에서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는데 그것을 외부로, 무한대로 확장시켜줄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판타지인 거죠.

 

"'글을 제법 쓰네.'라는 칭찬 한 마디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작가 소개글에 씌어 있습니다. 칭찬을 해주셨던 분이 누구셨는지, 어떤 글로 칭찬 받았었는지 기억나세요?

 

제가 되게 평범한 아이였어요. 잘하는 건 없고. 어느날 학교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글짓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너 이거 갖고 가서 어머니한테 읽어드려라 그러셔서 집에 가지고 갔죠. 장면도 생생해요. 어머니 앞에서 제가 또박또박 읽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어? 제법 쓰네?' 그러셨어요. 어머니가 글을 좀 쓰셨거든요. 소싯적에 시를 쓰셨어요. 어머니한테 착하다는 것 말고 재능을 칭찬 받은 건 그게 처음이었어요. 제 작가 소개글에 이 얘기가 들어갔으면 했던 게요, 아이들은 그런 작은 자기 재능에 대한 칭찬 그 아무것도 아닌 걸 평생 가슴에 간직하기고 하고 그것 때문에 자기 투자를 해보기도 하고 노력도 해보고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는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내가 어머니한테 재능으로 칭찬을 받았네하는 그런 게 있었죠.

 

앞으로도 동화를 계속 써나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다른 분야의 글을 써보실 계획도 있으세요?

 

젊었을 때는 성인 문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 자기에게 맞는 그릇이 있고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범했던 우가 있는데 제가 좋아했던 작가를 따라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나도 저렇게 썼으면 좋겠다라는. 내 색깔을 찾기보다는 당시에 주목받거나 아니면 제가 읽고 감동 받았던 책의 작가를 그냥 동경하고요. 어떻게 보면 <다락방 명탐정>의 주제는 제가 저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내 재주를 보기보다는 남의 재주만 너무 동경하는 것이라는 주제요. 아동부터 청소년, 또 그림책. 이 안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커 가야 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요. 저도 배우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고민하면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쓰고 싶습니다.

 

예비 동화작가분들께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이제 막 동화작가로 데뷔를 하셨는데 작가님이 앞서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해 들려주신다면, 습작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벗이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어떤 그룹이건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건 배울 수 있는 학교나 기관이건 글을 쓸 때는 자극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안 쓴다고 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추궁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면 끝없이 안 쓰게 될 수도 있는데요. 서로 자극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랑 좋은 말만 해주는 게 아니라 나쁜 말도 듣는다면 서로 도움이 되겠죠. 저 같은 경우도 니 글 재미없다는 그 말 한마디에 오기가 생겨서 해봤던 것처럼, 같이 가는 글벗이 있는 것이 그런 면에서 참 좋은 것 같고요. 당대에 히트치는 작품도 중요하겠지만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물론 저도 존경하지만 나만의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색깔을 찾아가는 게 저한테도 숙제이고요. 자기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 색깔을 자기가 정확히 모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걸 이렇게 저렇게 여러가지로 해보다 보면 다른 누군가가 내 색깔을 발견해줄 수도 있고, 내가 내 색깔을 찾을 수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작가님 자신은 어떤 사람,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락방 명탐정>이 비룡소 문학상에 당선 되고 나서 저도 저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어요. 저한테 굉장히 아이같은 면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성장하면서 여러가지 굴곡이 있었을텐데, 그 굴곡에서 나는 심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는 그런 어떤 강박이요. 그런 색깔을 가지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어요. 굉장히 무겁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겁게 세상을 진단하고. 물론 그런 것들의 가치를 모르겠다는 건 아니고요. 두 가지를 새롭게 깨달은 것 같아요. 나보다 훨씬 더 무겁게 풀어낼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그것 하나랑 저의 성향 안에도 굉장히 밝고 유쾌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거. 어떤 면에서는 동화를 쓰게 된 데 감사한 게 제 본성에 있었던 걸 다시 깨우쳐준 게 동화였던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단정지을 수 없는 것 같아요.

 

2013년에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여쭤볼게요.

 

아까 착하다는 칭찬 외에 다른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게 착한 게 아니라 착한 척하면서 살아온 세월이었어요. 신문사를 그만둘 때 제가 울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참 재미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는데 그걸 육아 때문에 그만두게 됐으니까요. 다시 꿈을 가질 때 제 마음은 이제 남은 건 착한 컴플렉스에서 좀 벗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자라는 것이었어요. 동화를 쓰는 건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길게 보면 내가 행복한 글쓰기를 하고 내가 행복한 글쓰기를 할 때 애들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우리 책 중에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에피소드 같이 끝나는 이야기들 말고, 해프닝이나 이런 게 아니라 '그래서?'라고 물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 뒤가 자꾸 궁금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요. 단기적으로는 시리즈를 작업해보고 싶고요. 외국 판타지랑 다르게 악역이 없는 판타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다락방 명탐정>에서는 어떻게 하다 보니 구미호가 악역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요. 시리즈를 통해 구미호를 해명할 기회를 마련해보고 싶기도 해요.

 

끝으로 <다락방 명탐정>의 어린이 독자를 비롯해 새학기를 맞는 아이들에게 인사 부탁 드립니다.

 

저도 아들이 둘이고, 아들이 방학을 할 때의 표정과 개학을 앞뒀을 때의 표정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있는데요. 새학기에 아이들이 즐겁게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빈 말인지 알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말만 던지는게 참 미안하고 조심스러워요. 지금 아이들은 여건이 많이 달라져서 우리 어렸을 때처럼 놀 수 있는 상황이 별로 없고 어깨가 많이 무겁다는 것을 알지만 틈새틈새 찾아보면 여전히 참 잘 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책에서 놀았으면 좋겠어요. 놀이를 통해서 성장도 하겠지만 놀이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고 배울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 안에서 잘 놀기도 하면서 공부만이 아니라 자기의 길, 자기의 색깔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다락방 명탐정>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새학기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시간 가게>의 주인공 윤아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초등학생들의 현실적인 자화상이다. 입시 지옥에 갇힌 초등학생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스케치하던 이야기는 '시간을 파는 가게'라는 신비한 공간을 거치며 시간과 기억, 양심, 자유, 행복에 대한 깊고 넓은 성찰로 나아간다. 초등학생 독서 지도 교사를 시작으로 대학원, 어린이책 작가교실까지. 짧지 않은 기간에 동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해온 신인 작가의 탄탄한 데뷔작. 사회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거창한 의도나 목표를 숨겨 놓지는 않았다. 세상에 발표한 첫 번째 장편동화 <시간 가게>가 '아이들의 작은 소리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길 희망하며, 어른들에게는 아이들 가장 가까이에서 건널목이 되어달라고 당부하는 이나영 작가와의 만남을 소개한다.

 

(기획 : 문학동네어린이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3-01-18 카페 꼼마 1호점) 

 

 

먼저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처음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제가 문학동네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는데요. 먼저 출간된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수상작들이 좋았거든요. 사실 첫 책이고 습작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는데 얼떨떨했죠. 막상 시작을 하니까 더 부담이 되더라고요.

 

습작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하셨는데, 동화를 처음 쓰기 시작하신 건 언제였나요?


첫 전공은 생물학이었어요. 성인이 돼서 다시 동화를 본격적으로 접한 건 졸업도 결혼도 하고 난 뒤였고, 그게 벌써 15년 전? 우리 아이가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니까요. 그때부터 책에 관심 갖고 아이들 독서 지도도 시작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간 게 2008년, 동화라는 걸 쓰게 된 거죠. 그러다가 한 3년 반 전쯤에는 어린이책 작가 교실이라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배웠고, <시간 가게>는 제가 처음 쓴 장편이에요.


만나 뵙기 전에는 <시간 가게>의 소재는 어디에서 얻으셨을까 궁금했었는데요. 중학생이 된 아이가 있다고 하시니까 실제 경험이 아무래도...


네, 저희 아이가 제 작품을 제일 처음 읽어주는 독자 겸 선생님이에요. 습작 기간부터 쓴 글들을 쭉 읽어줬는데, 엄마가 잘 쓰는 말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시간 가게>의 디테일한 부분들, 예를 들면 피구 시합 장면 같은 것들은 상상해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아이한테 물어보고 쓴 것들이에요.


처음 쓴 장편,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리셨는지요?


어린이책 작가교실을 다닐 때 쓴 30매짜리 단편이 시작이었어요. 그때는 아이가 시간을 사고 기억을 주는 이야기를 30매 안에 쓰려니까 그냥 몇 번 팔다가 끝나버리는 거예요. 30매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버리기로 한 다음, 마냥 신나서 써내려간 것 같아요. 원고를 끝내고 보니 378매가 나오더라구요. 아, 나도 되는구나 했었고 이후로 계속 수정 작업을 했고요. 씨앗부터 생각하면 4년 정도인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탄생한 <시간 가게>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자기 혼자 볼 때는요, 정말 잘 쓴 것 같아요. 물론 기존에 나와 있는 훌륭한 책들도 많지만 내 작품도 좋은 작품이야 이런 게 있었는데요. 편집자분께서 제 책이 나온다고 말씀해주시니까요... 휴. '좋지?' '오래 기다렸는데 어때?' 주변에서 물어보실 때마다 정말 숨고 싶었어요.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욕 먹으면 어떡하나했죠. 지금도 창피하고...(웃음)


그렇게 걱정하셨다지만 칭찬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시간 가게>를 읽었던 분들의 감상 중에서 맘에 드셨던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이들이 재밌어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제가 위안 삼는 건 주변의 몇몇 아이들이 아무 말 안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저한테 와서 재밌다고 해주니까 그게 진짜려니 믿고는 있어요(웃음). 어른들한테는 입시 광풍을 다루는 지점이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지금 많은 분들이 윤아 엄마처럼 살거나 사는 것을 동경하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해주시더라구요. 공감을 하시는 것 같아요.


집필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으셨다면요? 판타지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지점이나 시시각각 미세하게 바뀌는 윤아의 심리 묘사에도 많은 공을 들이신 것 같습니다.

 

쓰면서 윤아한테 몰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시간 가게'의 어떤 장치라든가 시간과 기억을 바꾸는 부분도 당연히 이야기의 구축이라는 면에서 공을 들였는데요. 제가 가장 많이 가슴에 안고 있었던 건 이 주인공 아이의 심리묘사였던 것 같아요. 더구나 1인칭을 썼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다가 윤아와 자기를 동일시 할 수도 있는건데, 혹시라도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거나 어?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질문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작가 약력에서 독서 지도 선생님으로 활동하셨다는 소개를 읽었습니다.

 

이제 정규 수업으로는 안 하고 있는데요. 그게 벌써 10년 전이고 그때는 제가 동화작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면, 독서 지도를 하며 아이들을 만났던 게 동화 작가 데뷔라는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오게 한 자양분이었어요. 그래서 고맙고요. 수업은 도서관에서 했어요. 방과 후에 선택을 해서 오는 곳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사교육인 거죠. 학원은 아니지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하게 만났는데 수업 시작 시간이 4시였어요. 1학년 아이들은 1시나 2시에 수업이 끝나는데 끝나면 또 방과후 수업이 있어요. 제 수업까지 이어서 들으면 5시가 되죠. 그리고 5시에 또 다른 학원에 가야 하고요. 어느날은 1학년짜리 아이가 수업에 들어와서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너무 피곤하니까 자는 거예요. 학원을 특히 많이 다니는 아이였는데 집에서 푸는 학습지 말고도 여섯 개, 일곱 개나 되는 학원에 다니더라고요. 다른 아이들한테서도 종종 그런 모습을 봤거든요. 너무 고단하죠, 벌써부터 삶이.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구나, 엄마 아빠한테 끌려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시간 가게>가 바로 그 아이들 얘기죠.

 

시간을 사기 위해서는 행복했던 기억을 팔아야 하고, 그 기억은 진실된 것이어야 하잖아요. 윤아가 떠올린 기억이 진실이라는 판정을 받아서 성공적으로 기억이 사라지고, 또 그 댓가로 시간을 얻게 되는 그 순간은 누가 봐도 범상치가 않아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주고요. 책 속에서 윤아는 이 순간을 '가슴에서 훅 하고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묘사를 했네요.

 

기억이 보통 머리에 있다, 뇌에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물론 뇌는 기억을 관장하는 곳이 맞는데 저는 어쨌든 간에 기억이든 무엇이든 그게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생물학적으로는 뇌일지 몰라도, 정말 그 어떤 따스한 기억 이런 것들은 우리가 '가슴에 간직할게'라는 말을 쓰기도 하듯이요.

 

작가님이 본 요즘 아이들, 초등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심사평에서도 그 부분을 짚어주셨는데요, 관계 맺기와 몸을 쓰는 놀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 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과거에는 물질적으로 더 어려웠거든요. 그런 문제 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 그때를 추억 안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분명한 건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하고 뛰어놀았던 거, 다방구 했던 거, 얼음땡 했던 거, 오징어하면서 몸 부딪히고 옷 잡아당겼던 게 좋았거든요. 요즘 아이들은 먹고 사는 덴 문제 없을지 모르지만 공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데요. 이 아이들이 저만큼 컸을 때, 제가 놀이를 떠올리고 친구를 떠올리는 것처럼 뭔가 남아 있어야 할텐데...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우려스러워요. 친구끼리도 밖에서는 서로 잘 안 만나고, 집에서는 주로 스마트폰.컴퓨터만 들여다보고.

 

그리고 또 입시 준비에 시달리는 아이들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는데, 아이 키우시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세요?

 

만약에 아이가 난 저걸 정말 배우고 싶어요, 한다면 학원에 보내야겠죠. 그런데 이 책 주인공처럼 보험 설계하듯이 계획해가지고 1학년 때는 뭘 배워야 하고 2학년 때는 뭘 배워야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아빠의 요구만 받아들인다면 언젠가 터져버리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때가 중학교 가서일 수도 고등학교 가서일 수도 있고요. 잘못된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시간 가게>는 이런 현실의 입시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요. 이런 현실을 바로잡는데 미약하게나마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못합니다(웃음). 내가 이 책으로 세상을 바꿔야지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그렇게 될 수 있으면 감사한건데...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쓴 이야기고, 앞으로도 제가 아이들을 대변한다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을 거예요. 대변하고 위로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내가 어른이야 너희들보다 오래 살았어라는 훈계 같죠. 저는 다만 아이들의 작은 소리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맞겠네요.

 

시간 사는 법을 터득한 윤아가 시험지를 베껴 올백을 맞는 첫 에피소드를 지나면,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긴장감이 더욱 상승하는데요. 같은 반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는 윤아가 라이벌이면서 교우 관계도 원만한 수영이를 곤경에 빠뜨리게 할 절도 사건을 꾸미잖아요. 그런데 결국 수영이는 다른 친구들의 어떤 오해도 사지 않는 허무한 결말. 이때 윤아의 외로움이 더욱 부각이 됐고요.

 

여느 작가분들은 작품에 자신이 전혀 투영되지 않았다고도 하시는데, 그건 굉장한 스킬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반대였어요. 윤아는 국제중을 위해서 공부하는 아이고, 공부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아이인데 저도 어렸을 때 이 아이처럼 아둥바둥했거든요. 늘 2등만 하다보니 이기고 싶은 욕망이 강했고요. <시간 가게>를 쓰면서 공부도 공부지만 윤아한테 친구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 사이의 관계 문제도 이번 작품에 나타내고 싶었어요.

 

결국 결말에 가서는 엄마가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자문하는 윤아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나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되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아이들이 깨닫고 필요성을 느껴도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게, 사실 아이들 시간의 주인은 부모님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하시는 건 아이들을 위해서이긴 하지만요. 아이들을 위해 짜준 시간표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렇게 책 속 결말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분명히 존재하는데요.

 

크게 바뀌거나 당장 바뀌는 건 어려울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다거나 눈을 감고 안 보려고 한다면... 상황이 좋지 않아도 우리가 변화에 대한 기대는 할 수 있잖아요. 책이 무언가를 당장 바꿀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럼 너는 왜 쓰니, 달라질 게 없다면서?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죠? 전 아이들이 윤아처럼 '엄마, 난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만 해도 고마울 것 같긴 해요. 읽고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엄청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고마울 것 같긴 해요. 정신 차리라고 하시는 엄마도 계시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책을 읽자마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된 아이일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알고는 가자는 거죠. 아이들도 다 알잖아요. 엄마들은 아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거든요. 엄마 아빠가 로또를 사고, 엄마 아빠가 어떤 소주를 마시는지까지요.

 

지금을 산다는 게 뭘까라고 했을 때 '지금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라는 건 참 추상적이에요. 누가 저에게 '행복이 뭐예요'라고 물어본다면 지금 이 순간 '알자'라는 게 제 대답이에요. 내 마음이 내는 소리를 알려고 하고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알려고 노력하는 거요. 우리 사회는 지금 들어주지 않잖아요. 약자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는데 그게 가정에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으니까요. 부모님은 아이 말을 듣지 않으려고 차단해버리고.

 

<시간 가게> 발표 이후에 갖고 계신 고민이나 앞으로 쓰고 싶은 동화의 방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예전에 선배 작가님들이 두 번째 작품이 고민 된다, 세 번째 작품이 고민 된다 그런 말씀들을 하시면 저는 '아, 나도 저런 고민 한번 해봤으면'(웃음) 했었는데 저도 이제 두 번째 작품을 쓰고 있어요. 과감하게 쓰고 싶어요.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을.

 

<시간 가게>에서 1등이 되길 강요받는 윤아나 윤아를 뒷바라지 하는 엄마나 그리고 현실의 우리도 다들 힘들잖아요. 모두가 화이팅할 수 있는 응원의 한마디 부탁 드릴게요.

 

김려령 선생님의 <그 사람을 본 적 있나요?>를 정말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참 좋아하는 책인데 왜 이렇게 좋은지 생각해봤더니, 그 책에 나오는 '건널목 아저씨'요. 그 캐릭터 같은 존재가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 같아요. 나의 건널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힘들 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 그 책을 너무 홍보하는 것 같지만(웃음), 아이들에게 건널목 같은 존재가 돼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어른들은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웃음).

 

<시간 가게>을 읽으셨거나 관심을 갖고 계신 알라딘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인사해주세요!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확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확보된 시간에 <시간 가게>를 읽어주신다면 더 좋겠어요(웃음). 모든 아이들이 윤아처럼 사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 책을 보시고 불편해하는 부모님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자전거도 내리막길에서 가속도가 막 붙어버리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고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과감하게 자전거에서 내려주는 것도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책에도 쓴 것처럼 <시간 가게>를 읽고 지금 나에 대해 10분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wado2 2013-02-13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whdirquf 2013-02-14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너굴 2013-02-17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ㅎㅎ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만화(웹툰)로 콜라보레이션을 해보고 싶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