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쓴 소녀의 일기를 따라가는 가슴 뭉클하고 찡한 여정
사이공이 함락되던 날, 서울에는 사월 초파일 연꽃등이 거리마다 불을 밝히던 그때였다. 시클로와 야자나무, 그린 파파야, 아오자이, 파월 장병이었던 친척오빠에게 들었던 사이공의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뉴스에서 대통령궁이 무너지고 폭탄과 연기에 휩싸인 거리를 사람들이 마구 달아나는 걸 보며 괜스레 마음이 슬퍼졌다.
바로 그 즈음 이 책의 주인공인 열 살짜리 소녀 ‘하’도 피난 배를 타고 사이공을 떠난다. 전쟁터로 나가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들, 마당에 심은 파파야 나무, 뗏(설날)이면 설탕 옷 입힌 연밥과 쫀득쫀득 찰떡을 먹으며 화려한 용춤을 구경하던 유년의 따스했던 기억을 뒤로 한 채.
시처럼 쓴 일기에 드러난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건, 어쩌면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소녀들이 오버랩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녀는 길고도 험한 나날을 거쳐 마침내 자유의 땅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사이공을 거쳐 난민촌이 있던 괌, 그리고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고비 고비마다 소녀를 견디고, 당당히 맞서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때때로 평화로운 앨라배마보다 전쟁 중인 사이공에서 살고 싶었던 때가 있다.’고 할 만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얼굴이 납작해서 ‘팬케이크’라고 놀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미래를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가게 하는 힘은 바로 가족들이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지혜롭고 용기 있는 해답을 주는 엄마, 든든하게 어린 여동생을 보호해 주는 오빠들, 친절한 이웃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 자신이 지닌 삶에 대한 유머와 긍정의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나는 너무나도 당차고 야무지고, 그러면서도 천진함을 잃지 않는 ‘하’를 우리 앞에 보여 준 작가 탕하 라이를 꼭 만나보고 싶어졌다. 마음속에 그린 파파야 나무처럼 큰 희망을 품고 살아온 그 어린 소녀가 바로 작가 자신일 테니까. - 이규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