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너무 예쁜 책을 만나고야 말았다. 민음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 컬렉션을 제대로(?) 내놓는 것 같다. <클라라와 태양> 책 받아보고 예뻐서(하드커버 장정)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 버전으로 이렇게 다시 줄줄이 내놓을 줄이야. 이번에 새로 나온 장정의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을 구판 책으로 다 읽어버린 나로서는 (심지어 갖고 있음 ㅠㅠ) 하, 정말 그림의 떡이면서도 뭔가 너무나 마음 아픈 그림의 떡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나를 보내지 마>만 살까 심히 고민 중이다(표지에 테이프 이미지 넣은 것도 신의 한 수..... ㅠㅠ) 그러다 보니 <녹턴>도 예쁘다. <클라라와 태양>, <나를 보내지 마>, <녹턴> 이렇게 세 권 나란히 있으면 정말 책꽂이가 아름다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남아 있는 나날>은 사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뼛속까지 집사인 '스티븐슨'의 삶이 너무나 답답했어..... 휴.


아무튼,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기꺼이 이 책을 지르시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추천하는 순은... <나를 보내지 마>-<클라라와 태양>-<녹턴>-<남아 있는 나날> 순이지만, 개인 감정을 제외하고 작품에 대한 전반적 평을 바탕으로 추천한다면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클라라와 태양> 순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클라라와 태양>은 요즘 절반쯤 읽었는데, 내게는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 중 <나를 보내지 마>와 함께 양대산맥을 이룰 작품인 것 같다. 완전 좋아... ㅠㅠ


암튼, 이 책 거리낌 없이 사실 수 있는 분들 부럽습니다.




댓글(34)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04-23 1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때문에 갖고 있는 책을 또 샀다.
책 덕후의 항목에 있었던 기억이...
보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1-04-23 10:29   좋아요 3 | URL
우리는 덕후니까 또 살까요?;;;;;

그레이스 2021-04-23 10:36   좋아요 2 | URL
;;;;;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 중입니다!

잠자냥 2021-04-23 10:38   좋아요 5 | URL
책이 낡지 않으셨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4-23 11:06   좋아요 5 | URL
그냥 전에 샀던 책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십시오^^
아님 산 기억을 지워버리면 됩니다^^

유부만두 2021-04-23 10: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아.....

잠자냥 2021-04-23 10:33   좋아요 2 | URL
진짜 괴롭죠?..... 저는 이제 <남아 있는 나날>마저도 이뻐 보입니다. -_-;

coolcat329 2021-04-23 12:52   좋아요 0 | URL
어머. 저는 <남아있는 나날>을 가장 좋아하는데 별로시군요..ㅠ

잠자냥 2021-04-23 13: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개인 취향이겠죠. 지금 읽으면 또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한 번 다시 사... 사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1-04-23 10: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정말 민음사 너무하네요. 이런 마케팅이라니. ㅠ.ㅠ

잠자냥 2021-04-23 10:51   좋아요 4 | URL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ㅠㅠ

새파랑 2021-04-23 1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클라라와 나를보내지마가 양대 산맥이라는데 동의합니다~!완전 사고싶은데 책이 다 있네요ㅜㅜ

잠자냥 2021-04-23 10:52   좋아요 4 | URL
하, 정말 기쁘게 이 책을 지를 분은 없는 것인가요. 다들 괴로워하면서 또 사는 것입니까?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4-23 11:0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기쁘게 지를 사람, 여기요~~
클라라와 태양은 선물로 받았고
나를 보내지 마
녹턴은 살 수 있겠어요
집에 없으니까요
야호^^

그레이스 2021-04-23 11:08   좋아요 7 | URL
합리적이유
완전 부럽....

페넬로페 2021-04-23 11:38   좋아요 4 | URL
집의 책장을 다시 보니 남아 있는 나날이 없어요~~아마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듯 해요 ㅎㅎ
합리적 이유 완벽하네요^^

잠자냥 2021-04-23 11:41   좋아요 6 | URL
오, 페넬로페 님 완전 부러워요! ㅋㅋㅋㅋㅋㅋㅋ
전 <녹턴>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나를 보내지 마>가 정확히 없어졌어요! 어디 갔지? 제 발로 나갔나?ㅋㅋㅋㅋㅋㅋ 사라진 게 몹시 기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04-23 1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괜히 봤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나중에 며느리한테 물려줄거다 하고 살까요 ? ㅎㅎ

잠자냥 2021-04-23 12:21   좋아요 4 | URL
하드커버라 물려주실 수 있을 겁니다. ㅋㅋㅋㅋㅋ

수이 2021-04-23 13:50   좋아요 0 | URL
며느리한테까지 ㅋㅋㅋㅋ 미니님 멋지다

coolcat329 2021-04-23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이 컬렉션보고 꾹 참으며 나는 이거 못 본거다...했는데!
잠자냥님 이렇게 보란듯이 대문짝만하게 올려주시네요.

저 위에 유부만두님의 신음소리가...들려옵니다...

잠자냥 2021-04-23 13: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렇게라도 하나로 모아놓고 보고 싶었어요............ 끄응. -_-

수이 2021-04-23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음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장바구니에 일단 담아놓았습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1-04-23 14:13   좋아요 1 | URL
오! 이것이 고수의 모습! ㅎ

Falstaff 2021-04-2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전 참 옷을 못 입습니다. 별로 관심도 없고요.
비슷한 이유로 책 표지나 장정 같은 디자인엔 전혀 유혹을 받지 않습지요.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이 페이퍼가 만일 낚시라면, 절대 안 물 겁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1-04-23 14:32   좋아요 2 | URL
전 옷에도 관심이 많아서 ㅋㅋㅋㅋㅋ 책 장정 유혹에도 참 잘 넘어가네요.
이런 껍데기 같은 인간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은 가즈오 이시구로 딱히 안 좋아하시니까 이 페이퍼는 더더욱 솔깃하지 않겠지요. ㅎㅎㅎ

Falstaff 2021-04-23 14:44   좋아요 2 | URL
윽. 들켰다!
잠자냥님 작두 타셔도 괜찮으실 듯 해요!!!!

잠자냥 2021-04-23 14:52   좋아요 2 | URL
저는 가즈오 이시구로 몇몇 작품은 무척 좋아하지만, 폴스타프 님의 ˝그 지적˝에도 동의하는 바이긴 합니다. ㅎㅎㅎ <남아 있는 나날>에서도 다른 의미로 *그런 시선*이 느껴저서 그 작품을 제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ㅎㅎㅎ

참, 전 무당 잠자냥이 아니라, 폴스타프 장학생일뿐 ㅋㅋㅋㅋㅋㅋㅋ

dollC 2021-04-23 15: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쁘게 지를 사람 추가요~ 표지가 바뀌면 다른 책 아닌가요?ㅎㅎ;; (이 와중에 폴스타프님 부럽네용. 전 옷에 관심도 없는데 왜때문일까요ㅜㅜ)

잠자냥 2021-04-23 16:00   좋아요 2 | URL
ㅋㅋㅋ 표지가 바뀌면 다른 책이라는 말 새겨듣겠습니다.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4-23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는 책을 그냥 막막 선물해버리세요. 누구에게든지요. 그러고 기억을 싹 지워버리는겁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시도해보세요. ^^
저는 표지 덕후이므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ㅠ.ㅠ

잠자냥 2021-04-23 16:0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집에 있는 책들은 낡아버려서리; 선물하기가 참 그렇네요. 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4-23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를 보내지 마> 너무 갖고 싶습니다.

다 읽은 책인데 사기도 거시키하고 참.
민음사가 간만에 리커버링으로 노났네요.

잠자냥 2021-04-24 00: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랑 똑같습니다! 전 살 거 같아요. ㅎㅎㅎ
 

미스터리 소설은 어릴 때 조금 읽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많이 읽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미스터리, 특히 누아르 영화는 좋아해서 종종 찾아보는 편인데, 그런 영화나 문학 작품 속 여성 이미지는 대개 팜파탈로 그려진다. 그들은 대부분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요부형 여자들로 거의 모든 범죄의 원흉이다. 한때는 레이먼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의 작품도 즐겨 읽었는데, 거기 나오는 여자들도 대부분 팜파탈로 남자들을 범죄로 몰아간다. 이런 작품들을 즐겨 읽고, 보던 시절에는 그저 재미에 방점을 두고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럼에도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다. 에, 또 여자 때문이야? 왜 범죄는 자기들이 저지르고 여자 탓이야? 못마땅한 마음이 든다.

사라 파레츠키는 그런 못마땅한 마음을 바탕으로 범죄소설에서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창조한다. 여성 사립탐정 ‘V. I. 워쇼스키’가 바로 그 인물이다. 파레츠키는 미스터리 소설 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십대 때부터 미스터리를 많이 읽고 자랐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친구가 레이먼드 챈들러를 알려준다. 빅슬립, 기나긴 이별 등 파레츠키는 챈들러를 통해 누아르 소설의 주요 요소를 접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런 작품 속에서 여성은 엉망진창으로 꼬여 가는 모든 일의 원흉이었고, 성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데도 능수능란하다.빅슬립의 ‘카멘 스턴우드’는 이런 팜파탈의 전형으로, 이 작품에서 일어난 살인 대부분은 카멘의 성적 매력 때문에 이성의 끈을 놓쳐버린 남자들이 저지른 것이다. 챈들러를 처음 접한 그 겨울, 파레츠키는 많은 시간을 ‘카멘’과 그 무렵 임신 중절 수술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룸메이트를 생각하면서 보낸다. 성적 능력을 이용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이는 이브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왜 여자는 항상 남자를 유혹하고 파멸로 몰아가는 존재로 그려지는가? 결혼하거나, 하지 않았거나 태아를 낙태하는 여성은 왜 죽어 마땅한가? 이런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남자들이 지어낸 이 모든 이야기는 나를 규정하고, 종잇장에 가두고, 삶의 변두리 한구석에 몰아넣으려 설계된 것’임을 깨닫는다.


그해 겨울 수많은 책과 대개의 영화와 셀 수 없는 광고가, 또 역사가, 가족이, 심지어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조차 넌지시, 내가 오로지 몸뚱이로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거듭거듭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내 몸뚱이를 이용해 착한 남자애들이 나쁜 짓들을 하게끔 조종하는 게 나의 천성이라는 이야기. 만약 남자를 꾀는 데 성공한다면, 몸뚱이로만 존재한다는 죄를 마땅히 처벌하는 의미로 임신을 하게 되리라는 이야기. 만약 임심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내게 내려진 응보를 회피하는 셈이니 죽어야만 한다는 이야기. 그 시절 영화와 소설에서는 젊은 여자가 낙태를 했다면 필시 죽어야만 했다. (《침묵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 105~106쪽)


파레츠키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성의 도덕성은 섹슈얼리티로 결정된다는 점을 여실히 깨닫게 되고, 문학과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을 뒤엎어 버리는 여성 주인공을 창조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는 첫 소설인 《제한 보상》을 쓰면서 집안의 천사나 괴물이 아니라 한 사람인 여성을 만들어 내고자 심혈을 기울인다. 그가 처음부터 고민하던 탐정 캐릭터의 한 측면은 ‘그녀의 섹슈얼리티와 소설 속에서 섹스가 차지하는 기능’으로, 파레츠키는 여성과 어린이를 고문하는 연쇄 살인범이나 여성과 어린이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강간범이 소설에서 매우 자극적인 역할을 하며 아주 큰 수입을 불러오는 상황에서도 섹스를 이용해 등장인물이나 독자를 착취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런 배경 아래 탄생한 ‘V. I. 워쇼스키’는 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도덕적인 사람이다. 파레츠키가 보기에 현대 미스터리물에서 직업이 있는 비혼 여성은 부도덕한 성욕을 지녔으며 결국 죽어야만 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나 파레츠키가 창조한 인물을 달랐다. V. I.는 때때로 감정에 휩쓸리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V. I.에게는 연인들이 생기지만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데 그녀의 섹슈얼리티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V. I.가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다. 남자들이 행동하고 움직이고 결정을 내리고 사랑에 빠지고 성을 경험하고 심지어 잘못 생각할 자유가 있듯 V. I. 역시 똑같은 자유를 가진 성인일 뿐이다. V. I.는 허세 부리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을 구하려고 들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작은 환경에서 상처를 붕대로 싸매고, 되도록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피려 노력한다. 이 얼마나 멋진 캐릭터인가?

파레츠키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고, 그런 캐릭터를 창조하기까지는 집안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로. 파레츠키는 부모님과 오빠 한 명, 남동생 셋으로 이뤄진 가족에서 유일한 딸로 자랐다. 이런 분위기는 단번에 파레츠키의 집안에서의 위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자신이 여러모로 풍요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하지만 ‘심각한 가정 폭력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침묵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을 읽는 내내 이 ‘심각한 가정 폭력’이란 주로 딸이었던 파레츠키에게 자행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드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사례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폭력이다. 파레츠키의 부모는 둘 다 고등 교육을 받았고, 박학다식했다. 연구과학자였던 파레츠키의 아버지는 독일어와 이디시어는 물론 그리스어도 읽을 줄 알았고, 어머니는 소설과 역사 분야를 폭넓고 깊게 읽었다고 한다. 교육과 지식에 대한 애착이 강해 돈을 빌려서까지 집에서 멀고 등록금이 비싼 학교에 형제들을 보냈다. 그런데! 그런데! 딸인 파레츠키에게는 대학 교육을 받고 싶다면 스스로 학비를 충당해야 한다고, 게다가 캔자스를 떠나는 건 전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파레츠키는 국비 장학생이었지만 이런 부모에게 하도 세뇌를 당해서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게 된 탓에 두 가지 제약을 다 순순히 받아들인다. 폭력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1968년 파레츠키가 시카고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곳이 일류 학교인 반면, 네 지성은 이류이니, 만일 실패하더라도 놀라지 말라.” 부모라는 인간이 딸에게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교육에 집착한 유대인 부모덕에 아들들은 다들 잘난 인물이 된 것 같은데, 그 아들들보다 더 유명한 작가가 된 딸에게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직도 네 지성은 이류이니 어쩌고 할까?

파레츠키의 어머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가족 중 유일한 여자아이인 탓에 아홉 살 때부터 파레츠키는 강제로 유년기를 포기하고 어린 남동생들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했다. 게다가 파레츠키가 살던 로렌스 시내에서 그들 가족은 몇 안 되는 유대인 가족 중 하나였다. 그들 가족이 이사 오면서 유대인 남자들 머릿수가 열 명을 채웠기에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런 ‘다름’은 파레츠키를 더 외롭게 만든다. 그들은 마을에서 ‘기린’과 같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쏠리게 만드는 별난 존재’- 성차별에 인종 차별까지 고스란히 받고 자란 파레츠키는 그런 부분에 민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받은 심리적 폭력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아버지는 파레츠키의 인생 초반 스무 해 동안 그의 거의 모든 면을 좌지우지한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심지어 어떤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까지 결정한다. 파레츠키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심리 치료를 통해서, 무엇보다도 70년대 여성 운동으로부터의 지지를 받고나서야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로 목소리를 얻었다고 회고한다.


1971년 겨울에 본격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되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무력함-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또한 가부장적인 역사학과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무력감-과 사회가 모든 여성에게 골고루 선사해 준 무력감에 분노하게 되었다. 그 겨울 나는 내 존재가 섹슈얼리티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했고, 정부, 교회, 그 밖에도 남성 권력의 여러 화신들이 내 몸을 통제하는 것을 거부했다. (108쪽)


파레츠키는 자신의 작품이 결국 ‘목소리와 힘’과 관련한 문제임을, 목소리나 힘 둘 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라는 문제에서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것을 끊임없이 상기한다. 그는 발언권이 없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알고 있었고,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무력한 이들의 고통을 인지하고 공감할 줄 알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시카고 탐정 ‘V. I. 워쇼스키’는 도시의 인종 분열만이 아니라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분열까지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함하는 캐릭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집안일에 대해서는 될 대로 되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아마도 ‘집안의 천사’는 어린 시절 파레츠키가 작가로서의 소명을 품지 못하게, 아니, 사실상 어떤 소명도 품지 못하게 했고 여전히 그의 머리 주위로 날아와서는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고 가정이나, 공익을 위한 의무에 투신하라고,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와 마찬가지로 집필 활동은 나중에 해도 된다’고 파레츠키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하는 여성인물만큼은 ‘집안의 천사’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리라.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에 실린 파레츠키의 단편 <세 점박이 포>에서도 ‘V. I. 워쇼스키’를 만날 수 있다. 짧은 이야기라 캐릭터의 모든 면면을 살펴볼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그 이야기 속 V. I.는 아침부터 달리며 몸을 단련한다. 몸매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운동에 방점을 두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해, 이웃이 물에 빠져서 거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물에 뛰어 들어가 그를 살리려고 갖은 애를 쓴다. 손놓고 ‘어머나, 어떡해 어떡해’ 외치고만 있지 않다. 그런 데다가 주인을 잃은 이웃의 개를 돌봐주는 따뜻한 면도 있다. 쓸데없이 외모를 치장하는 데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결국 죄를 뒤집어 쓴 사람의 억울함을 생각해 끝까지 파고들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야 만다. 챈들러가 창조한 ‘필립 말로’,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도 나름 개성 넘치고 멋있지만 파레츠키의 ‘V. I. 워쇼스키’도 그들 못지않게 개성적이고 강인하며 매력 넘치는 캐릭터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사라 파레츠키의 많은 책이 절판되어서 V. I. 워쇼스키를 더 생생히 만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침묵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쓰기에 관한 책이 아니라, 가부장과 극도로 성차별적인 집안에서 자라나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늘 억압받고 살아왔던 한 여성이 침묵에서 벗어나 발언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기나긴 길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격한 바가 어떻게 자기의 말을 빚어냈는지를 되짚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신이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어떻게 기울였는지를 그려나간다. 때문에 ‘침묵은 동의를 뜻하지 않는다. 침묵은 죽음을 뜻한다.’(185쪽)는 말도, ‘우리를 침묵시키고, 우리의 목소리와 소중한 자유를 빼앗으려는 세력에 맞서, 나의 말, 사포의 말, 또한 우리 헌법의 말, 한낱 숨결에 불과한 이 모든 말이 그저 묵묵히 버텨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끝내 승리를 거두는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218쪽)이라는 말도 아주 인상 깊게 남는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1-04-21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나라, 어느 시대가 안 그랬겠습니까마는 특히 유대인의 ‘여성 혐오‘는 강력했던 거 같아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도 이런 성과를 이뤄낸 작가가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침묵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도 읽어야겠지만, 그 세계를 파헤치기 위해서 <빅 슬립>도 읽어야겠어요.
이 좋은 리뷰에 대한 바른 이해 맞겠지요? ㅎㅎㅎㅎㅎ

잠자냥 2021-04-21 10:20   좋아요 1 | URL
아 증말, 파레츠키 아버지가 ˝네 지성은 이류˝ 운운하는 구절 읽을 때 제가 그 옆에 있었으면 그 입을 찰싹 때려주고 싶었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휴.... 암튼 그런 집안에서 자기가 틈틈이 번 돈에 장학금 보태서 대학 가고, 결국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글을 쓰게 된 작가에게 존경심이 듭니다.

참, 네 맞습니다. 챈들러나 대실 해밋 책을 읽어야 파레츠키가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어떤 점을 느꼈을지 알 수 있지요. <빅슬립>, <기나긴 이별>, <몰타의 매>는 게다가 하나같이 재미있습니다.

단발머리 2021-04-21 10:52   좋아요 0 | URL
이거 비밀인대요. 제가 <빅 슬립> 읽었다고 하네요. 이번 설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안 읽은 줄 알았는데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나머지 작품들도 부지런히 따라 읽어볼께요.

제가 체력은 약한데 주먹은 쎕니다. 파레츠키 아버지 제가 어퍼컷 날릴께요!!!

잠자냥 2021-04-21 10: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상하다 싶었어요. 제가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챈들러 이야기 읽은 것 같은데.... 으음. 그랬답니다. ㅋㅋㅋ 네네 비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4-21 10:55   좋아요 1 | URL
실은...... 저도 빅 슬립 단발머리님 서재에서 보았는데..... 하고 댓글 달려다가 조용히 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어젯밤에 읽은 구절들도 다 없어져요 그냥 증발하는 느낌 같아요;;;;; 뭐 다시 읽으면 되니까~ ^^

잠자냥 2021-04-21 11:34   좋아요 0 | URL
사실 원래 책은 잊으라고 읽는 겁니다. (응?)

수이 2021-04-21 11:36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너무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맹렬하게 읽고 격렬하게 잊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4-21 11:44   좋아요 1 | URL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읽었어요’의 목격담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아침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오늘 읽을거에요, 무언가를!! 격렬하게!!
 

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고, 책은 날로 쌓여가는데도 책은 또 사고 있다. 4월에 산 책들 소개. 그러나 4월은 아직 절반도 가지 않았고, 또 사려고 담아둔 책도 또 있다능.

    


이 박람강기 프로젝트는 작가들이 글을 어떻게 썼나에 초점을 맞춘 책들을 시리즈로 내고 있다. 예컨대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같은 책. 이 시리즈 지난번 출간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인데, 이것도 무척 흥미가 당긴다. 암튼 사라 파레츠키의 이 책은 나오자마자 닥치고 살 정도로 열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성 작가들이 팜므파탈 아니면 집 안의 천사로만 그려내던 소설 속 여성상을 바꾸기 위해 강인한 여성 탐정 ‘V. I. 워쇼스키’를 창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즐겨 읽었던 파레츠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슬립>을 읽으며 그의 여성 묘사에 화가 나서 “소설과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범죄 소설을 쓰겠다”고 맹세하고 그런 인물을 창조했다. 너무나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미스터리와 범죄소설을 쓰려는 여성들을 돕는 조직 ‘시스터스 인 크라임’을 설립하기도 했다. 진짜 너무 기대되는 책.



    
일본 배우 중에 단연 존재감 있는 이가 키키 키린아닐까. 마음 산책 이 말 시리즈는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종종 있어서 살까말까했는데, 지은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인 걸 보고 믿고 구매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인터뷰어로 나선 키키 키린 인터뷰집으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2008년부터 키키가 세상을 떠난 2018년 사이 나눈 여섯 번의 대담이 실려 있다. 두 사람의 깊이 있는 대화가 기대된다.




국내 초역작인 데다가 명성이 자자한데 읽지 않고 베길 수 있는가. ‘실존주의, 부조리, 마술적 사실주의가 녹아든 이탈리아 문학계의 기인이 쓴 20세기 환상문학의 고전’이라는 말이 한껏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소싯적인 십대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죄와 벌>. 언제고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는데, 이 문학동네 번역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드디어 이 책으로 다시 읽기 도전.   




4월 초에 사서 읽고 리뷰까지 마친 책. 극찬이 많아서 궁금했는데, 리뷰대회도 있어서 겸사겸사 읽었다. 극추천. 중고로 되팔면 2만원 넘게 받을 수 있지만, 책꽂이에 고이 모셔둠.




요즘 읽고 있는 책. 내용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의외의 전개에 처음엔 깜짝 놀랐다. 흥미진진하다. ‘여성의 삶과 인생관을 가장 우아하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시 버튼의 세 번째 장편. 런던과 뉴욕을 배경으로 삼십 년이라는 시차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 “여성들에게 바치는 나의 러브레터”라는 띠지 문구가 책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아, 여러분 이 책도 리뷰대회 있습니!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 인상 깊게 이야기해, 꼭 읽어봐야지 싶어서 메모해뒀는데(정작 이 책을 알게 해준 그 책이 뭔지 생각이 안남;), <피에 젖은 땅>에서도 또 쾨슬러가 언급되어서 드디어 구매. 혁명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동지를 지키고 헌신했던 이들이 혁명 이후 왜 서로를 의심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게 되었는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더불어 공산주의 정치제제에 대한 20세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게 프리모 레비는 쉽게 읽을 수 없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읽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달까. 그의 죽음도 그렇고. 이 책은 그래서 출간 당시 차마 사지 못했는데, 이번에 <피에 젖은 땅> 읽고 나니 자, 이제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의 자서전. 그에 대해서도 어떤 책을 읽다가 알게 되어 호기심이 생겼는데.... (역시 그 책은 기억이 안 난다;) 세계 지성사의 페이지들을 장식하고 있는 학자들에 견줄 만한 성취를 보였음에도 생전엔 이름을 떨치지 못했던 비코. 난 이렇게 약간 소외자 같은 인물에 관심이 좀 많다. 인류 문명 전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하고도 방대한 사유는 놀라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조차 영어, 프랑스어 등의 번역본을 통해서야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난해하다는 꼬리표가 언제나 따라붙었다고.




중남미 환상문학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중남미 작가 작품을 다양하게 읽지 못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인데(여태 이 작가 작품 하나도 안 읽음), 드디어 읽기로 결심. ‘바르가스 요사가 직접 꼽은 대표작’이자 ‘1950년대 뻬루 독재 정권하의 사회상을 나락으로 추락한 인물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골라봤다. 마술적&환상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게 중요함.


중고로 구매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 우아, 절판된 이 책이 알라딘 중고에 떠서 6천 원에 구매. 그런데 여러분, 이 책 어떤 출판사에서 작년에 판권 사갔다고 합니다. 곧 새 책 나올 듯요.


    


아껴둔 엔도 슈사쿠의 <침묵> 이제 드디어 읽으려고.




델핀 드 비강 작품은 아주 강렬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간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성장소설. 지적 조숙아 ‘루’와 홈리스 소녀 ‘노’ 두 소녀의 만남을 통해 찬란한 성장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고. 성장소설다운 애틋함과 묵직한 메시지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평.




앨리스 먼로의 유일한 장편 소설. 이 작품도 어떤 책에서 극찬해서 더 흥미가 생겼음(르 귄 여사 책이었나....?). 1940년대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에서 주인공 델 조던이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델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짐.
    



타임 패러독스 SF의 영원한 고전, 상대성 이론의 쌍둥이 역설을 소재로 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숨은 걸작, 25년만의 새 번역판.




순전히 사라 파레츠키 <세 점박이 포> 읽으려고 구매. 사라 파레츠키의 ‘V. I. 워쇼스키’가 활약하는 작품들은 <블랙 리스트>를 비롯해 다 절판임. 누가 좀 다시 내주시라~!




폴스타프 님이 ‘뜻과 내용은 별개로 하고 활자를 다 읽었다는데 의의를 두겠다’고 말한 이 작품. 그러나 르 귄 여사는 극찬한 이 작품.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이거 배지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선물용으로 샀는데, 나도 갖고 싶으네요.... 그냥 내가 가질까...?

내가 산 건 피너츠인데, 상품 이미지로는 둘리가 나오네... -_-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책읽기 2021-04-13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히히. 잠자냥님과는 당최 겹치는 책이 없는디 이번엔 우주만화 당첨!! ^^ 저도 르귄 언니 땀시 저 책 구매했는데, 폴스타프님 평을 보니, 일단 모셔만 놓을 확률이 높네요^^;;;

잠자냥 2021-04-13 12:24   좋아요 0 | URL
르 귄 님이 낚은 분이 또 여기 계셨군요. 저도 일단 읽을 책이 밀려서 잠시 모셔두기로....ㅋ

coolcat329 2021-04-13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제목에 ‘우주‘가 들어가면 심하게 거부감이 드네요 ㅋㅋ
타타르, 침묵은 저도 읽고 싶은 책이구요, 요사는 단 한 권 만 읽어봤지만 팬이 되고 싶었어요.

잠자냥 2021-04-13 12:25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도 우주~ 이런 거 좀 안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SF도 꽤 재미나더라고요.
단 한 권으로도 팬이 되고 싶어진 요사의 그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도 다음에 읽어보게요. ㅎㅎ

coolcat329 2021-04-13 12:34   좋아요 1 | URL
아 잠자냥님 읽으셨을거 같은데요, <새엄마 찬양>입니다. 발칙한 소설이죠 😆😆😆

잠자냥 2021-04-13 13:16   좋아요 0 | URL
요사는 이제 첫 도전입니다! 다음에 그 책도 읽어볼게요~

새파랑 2021-04-13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키키키린 예전에 나온 책 말고 새로 나왔나 보내요 ㅋ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ㅎㅎ 그리고 반가운 죄와벌~! 이런 글은 너무 재미있네요^^

잠자냥 2021-04-13 12:26   좋아요 2 | URL
네, 올해 4월에 나온 아주 따끈한 새 책입니다. 아마 이 책은 인터뷰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란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남들 책 산 이야기 정말 재밌죠? ㅎㅎ

미미 2021-04-13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지우개만이 아니라 배지가 있었네요!!!(그런 줄도 모르고 주문할때 떴는데 선택안함ㅠ)올려주신 책들 잠자냥님 리뷰 기대되요.😆
일단 저는 ‘패러독스‘에 끌려 <별을 위한 시간>담아갑니다.ㅎㅎ

잠자냥 2021-04-13 12:27   좋아요 3 | URL
지우개만 있었음 저도 선택 안했을 텐데 그 배지가 그만 너무나 매력적이라... ㅎ
네, 열심히 읽고 리뷰 남기겠습니다.

Falstaff 2021-04-13 1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고난 다음에 알았는데요, 쾨슬러는 (친한)이웃의 아내와 딸을 강간했거나 시도한 것이 나중에 들통나 문제가 된 인물이라고 그러더군요.
<우주만화>는 중고로 사시기 잘했습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4-13 13:17   좋아요 2 | URL
으이그 쓰레기인간이었군요. -.-

Conan 2021-04-13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만 읽는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입니다.....

잠자냥 2021-04-13 13:27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그 속도가 반대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syo 2021-04-13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빠르기는 한데,
사 놓은 거 안 읽고 자꾸 다른 거 빌려보고 하는 바람에 결국 안 읽고 쌓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잠자냥 2021-04-13 14:23   좋아요 1 | URL
syo님은 정말 읽는 속도 놀라움. 책을 눈으로 씹어드시는 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빨리 많이 읽는지 부럽사옵니다.

다락방 2021-04-13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이런 페이퍼 진짜 너무 좋고 싫어요. 막 또 장바구니 쓸어담고 그래야 되니까.. 후후
어제도 책 샀는데, 저도 컨페션 샀는데 아직 안왔어요.
리뷰대회는 아무거나 하나라도 참가해보고 싶지만 저 이번달 여성주의 책도 이제 막 시작한터라(글씨가 너무 작지 뭡니까!) 제가 도대체 뭘 읽고 쓰기나 할 수 있을지 ㅠㅠ
저 지우개는 너무 귀여워서 저도 혹했지만 쓸 일이 없기 때문에 패쓰했어요. 나름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입니다. 엣헴- (정말?)
죄와벌 저는 열린책들로 읽었는데 문동으로 다시 살까요? (대체 왜..)

그럼 이만.

잠자냥 2021-04-13 16:50   좋아요 0 | URL
너무 좋고 싫다는 말 거참 뭔지 알겠네....ㅋㅋㅋㅋㅋ
4월은 아직 많이 남았어요. 리뷰 대회 열심히 읽고 도전하세요~~
지우개는 조카 주지 ㅋㅋㅋㅋ
죄와벌은 사지 마요! 냉철한 이성 차려욧!!!!

stella.K 2021-04-1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맨 첫번째로 소개하신 책은 저도 읽고 싶네요.
정말 작품에서 남성이 여성을 그릴 때 어쩌면 개같이 그려 놓던지
화가 나더군요. 또 그건 생각 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특히 영화 <롤리타>를 보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뭐 이렇게 말하면 여성 작가도 남자들 제대로 알고 그리는 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서로 배울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작가가 참 멋있군요.

저도 <죄와벌>을 오래 전에 읽긴 했는데 지난 주 동서문화사 걸로 사 봤습니다.
일전에 박균호님이 책에서 번역자를 극찬을 하시길래 어떤가 싶어서.
마음으론 문동판을 사고 싶긴했습니다만.
암튼 잘 보고 갑니다.^^

잠자냥 2021-04-13 20:38   좋아요 0 | URL
넵! 첫 번째 책 기회되신다면 읽어보세요~ 저도 아직 읽기 전이라 뭐라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작가의 생각만큼은 극공감합니다.

<죄와 벌> 동서문화사 번역이 그렇게 좋군요! 궁금해지네요. ㅎㅎ
 

그 명성에 비해 토니 모리슨을 너무 늦게 읽기 시작했다. 아직 그의 작품을 다 읽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산문집이 출간되니, 마음이 갑자가 다급해져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잉크>에는 토니 모리슨의 여러 글들이 실려 있다. ‘에세이라고 하면 왠지 가벼운 산문 위주일 것 같다. 나 또한 얼마쯤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데 첫 장부터 조금 당황했다. 글도, 내용도 어투도, 주제도 하나 같이 모두 묵직하다. 이 책에는 소설가이자 영문학자, 편집자, 비평가로서 토니 모리슨의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에세이와 강연, 연설들이 묶여 있다. 그 주제도 다채로워서 문학은 물론 사회, 문화, 예술 문제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사유의 흔적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띠는 것은 인종’, ‘흑인’, ‘여성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출판편집자, 영문학 강사로 일하면서 마흔이라는 어찌 보면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한 토니 모리슨. 그는 끊임없이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학 작품을 세상에 선보여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때문에 그가 미국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기에 인종차별이나 젠더 갈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며, 아니 펼치기 전에 흑인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쓰여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100%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당신도 토니 모리슨의 사유의 깊이가 이토록 깊을 줄은 예상치 못했을 터이므로.

 

여러 글들이 인상 깊지만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잉크>는 토니 모리슨 작품의 창작 배경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토니 모리슨의 팬이라면, 그래서 그의 모든 작품을 섭렵한 이들이라면 이 책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토니 모리슨 정도의 작가에게조차 사람들은 무례하게 이렇게 묻는다. “언젠가 백인에 대해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흑인 작가라는 말이 끔찍하지 않으신가요?”(37) 등등. 다른 작가들에게는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이한 질문이다. 한편, 이 질문은 어느 여성 작가에게 언젠가 남성에 대해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니까?” “여성 작가라는 말이 끔찍하지 않으신가요?”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때로 이렇게 질문으로도 폭력을 가한다. 이런 불쾌한 질문에도 토니 모리슨은 진솔하게 답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는 동시에 가능한 한 책임지길 원했다.’ ‘문화적으로 특수한 동시에 인종에서 자유로운 세계를 빚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구 혹은 유럽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인종에서 자유롭거나 인종을 초월한다고 믿으며, 그렇게 믿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토니 모리슨이 보기에 진실은 우리 모두 인종화되어있을 뿐이다.

 

서구 혹은 유럽 작가들이 가진 자주권을 토니 모리슨 또한 원했기에 자신의 소설, 자신과 그 작품, 자기의 능력을 해방하는 방식으로 창작하고 싶었다. 토니 모리슨에게도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는 인종을 무시하거나 인종을 언급하지 않고 2차 세계대전이나 가족 사이의 갈등을 쓰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자기의 존재와 토니 모리슨 그 자신의 지성에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를 지워버리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 인종 갈등이나 화합에 대해 쓰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 또한 그렇게 하면 중심 위치에 있는 기존 생각에 무대 한복판을 내어줘야 할 수밖에 없고 주제는 언제나 영원히 인종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다. 상상력을 인종이 지우는 부담과 한계로부터 해방하는 동시에 그것의 중심 위치가 토니 모리슨이 주제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과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여기에서 일단 역사보다는 기억에 의존하고 기억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자전적이어서(자전적이고 싶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가 매우 인종화된 사회에서 글을 쓰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이런 사회에서 상상력은 절룩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하는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책임은 (시대가 어떻든) 세상을 바꾸는 일, 자신의 시대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그게 너무 야심에 차 보인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96)

 


여기서 말하는 기억이란 단순히 한 개인의 기억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역사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토니 모리슨은 흥미롭게도 과거가 미래보다 더 무한하다’(206) 말하는데, ‘시간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데이터 양의 측면에서는 분명히그렇다는 그의 주장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걸음 뒤로 갈수록 하나의 세상이, 또 하나의 세상이펼쳐진다. 과거는 무한한 것이다. 때문에 토니 모리슨은 도처의 흑인 예술에서 강렬하게 나타나는 신화적 특성을 글에 담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이야기 <빌러비드>는 실존 인물인 노예 마거릿 가너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1983년에 <빌러비드>를 처음 구상할 때 토니 모리슨은 역사와 복잡한 관계가 있었기에 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한다. 역사의 정보성 때문에 역사적 기록에 의존했던 그이지만, 그 기록 역사의 삭제와 부재, 침묵을 예리하게 의식했던 토니 모리슨은 삭제된 어떤 것에서 그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가너는 농장에서 탈출한 직후 아이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을 살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삶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죽이는 쪽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쪽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죽이지 못했고 노예폐지론자는 가너의 사건을 크게 문제 삼았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토니 모리슨을 괴롭힌다. ‘제 자식을 자신의 일부라고 할 수 없는 노예 여성, 너무 사랑해서 죽일 수 있는 여성,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더렵혀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용기, 자책, 자기 처벌, 자기 파괴를 상상할 수 있는가?’(207)

 

한편으로 <빌러비드>는 한 신문 스크랩과 함께 개략적 질문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그 질문의 핵심에는 여성 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자유-동일 권리, 접근권, 임금 등 이외에- 어떤 자유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무렵인 1980년대 초,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가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이었다. 많은 여성은 그 통제권이 아이를 낳을 선택과 이어진다고 확신했다.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이 결함이 아니며,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선택이 자유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시기이다. 여성 운동의 또 다른 측면은 여성이 여성을 지지하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여성의 관계를 남성과의 관계에 종속시키지 말자고 했으며 여성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보내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토니 모리슨은 여성의 중요한 우정<술라>에서 다룬다. 그러나 첫 번째 문제, 내 몸의 주인이 될 자유, 자유의 표식으로서 아이 없는 삶은 토니 모리슨을 깊이 사로잡았고, 여성 노예의 관점(여기서도 역사적 기록의 침묵, 논쟁에서 소수 집단이 주변화된 상황이 그의 주의를 끌고 탐구의 대상이 됨),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닌 아이를 갖는 것, 어머니로 불리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낳도록 요구당하는 것이 아니라(젠더, 노예 신분 때문에, 수익을 얻기 위해) 아이를 책임지기로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번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모가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미국 노예제도 아래에서 이런 주장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고 반정부적이었다. 또한 용인되지 않는 여성의 독립선언이었고 자유였다. 만일 이런 권리 주장이 영아 살해로 이어진다면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가져올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101). 이렇게 역사적 기록의 빈틈에서 토니 모리슨의 상상력이 더해져 <빌러비드>가 탄생한다.

 

그뿐만 아니다. 그의 첫 소설 ‘<가장 푸른 눈>1963년 한 인구집단이(토니 모리슨이 속한) 역사책과 문학에서 도매금으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데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창작된다. 토니 모리슨이 보기에 연민의 감정으로든 멸시의 감정으로든 예술적 검토 대상이 된 모든 인물 가운데 특히 부재가 두드러진 이들은 취약한 흑인 소녀였다. 그들은 문학 작품에 등장해도 그저 웃음거리, 동정의 대상, 이해의 노력이 결여된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가장 푸른 눈>에서는 인종주의를 개인적 사회적 정신이상의 원인, 후과 그리고 발현으로 보았고 <술라>에서는 인종적 맥락을 넣었을 때 놀라운 의미를 획득했던 젠더 문화, 정체성의 날조에 몰두했으며, <솔로몬의 노래>에서는 공동체와 개별성에 대한 로망에 대한 인종이 끼치는 영향을, <빌러비드>에서는 인종의 안경을 끼고 바라본 육체와 정신, 주체와 객체, 과거와 현재의 대립이 무너지고 매끄럽게 연결될 때 역사 서술의 가능성에 관심을 두었다. <재즈>에서는 인종적 가옥에 대한 대답으로 현대성을 발견하고자 했다.’(150)

 

나는 내가 누구이고 나의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아는 능력이 부족 내에서 혹은 가족, 국가, 인종, 성별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밀접하게 엮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명확성은 자아의 평가를 위해 필수적이고 다른 부족이나 문화와의 어떤 생산적 교류를 위해 필수적이다. (.....) 쓰고자 하는 갈망 심지어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은 흑인으로서 나의 자각, 흑인과 하는 경험, 심지어 흑인을 향한 경외심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질에서 온다. (45)

 

이렇듯 <보이지 않는 잉크>에서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고자 아주 자세하게 자기만의 창작 노트를 공개한다. 앞서 말했듯 그의 문학을 아끼고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 인해 그 세계를 한결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글을 쓰려는 그의 모든 시도가 결국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자기 존중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토니 모리슨의 석사 학위 논문은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가 다룬 소외된 이들 Virginia Woolf's and William Faulkner's treatment of the alienated>이다. 이 책에서도 그는 포크너로부터 받은 감동을 언급한다. 토니 모리슨이 포크너에게 깊이 감명한 이유는 이 나라에 대해 그리고 역사책에 나오지 않지만 예술을 통해 드러난 이 나라의 과거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니 모리슨은 때로 역사가 거부하는 일을 예술과 소설이 해낼 수 있다. 역사는 과거를 인간 중심으로 볼 수 있지만 아주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에서 종종 그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작가는 한 시대의 탐사를 통해 그 시대를 분명히 드러냈고 포크너는 그 탐사의 절정에 있었다.’(203) 말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제 저 포크너가 들어갈 자리에 토니 모리슨의 이름을 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모리슨은 끊임없이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기억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어 붙여 공통의 흑인 기억을 만들고자 애써왔다. 그 자신이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잉크를 알아본 독자였으며 행간에, 그리고 안팎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발굴해 상상력으로, 문학으로 재창조한 사람이다.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하기를 촉구하는 토니 모리슨 자신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 진솔한 기록들은 어떤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1-03-31 16: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솔로몬의 노래 재미나게 읽었어요!!!
근데 이 책은 안 읽을 거 같아요. 에세이엔 어째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잠자냥 2021-03-31 17:00   좋아요 4 | URL
네 폴스타프 님 낚으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리 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3-31 17:1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아 다행이다. 이번엔 옆구리 좀 남아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3-31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빌러비드> 읽기를 미루다가 어느 순간
토니 모리슨 작가의 모든 책들을 읽어
야지 싶어서 도전에 나섰던 기억이 나네
요.

이제는 모두 절판된 들녘 버전의 책들
을 구하느라 원정 뛴 생각이 나네요 :>

소설 중에서 아직 번역이 안된 책이
있더라구요.

잠자냥 2021-03-31 17:02   좋아요 3 | URL
<가장 푸른 눈> 그래서 구하셨습니까? ㅎㅎ
토니 모리슨 전작 읽을 만한 작가입죠. 그렇습니다. 암요. (그러면서 저도 아직 다 못 읽음 ㅋㅋ)

레삭매냐 2021-03-31 19:43   좋아요 2 | URL
네 바로 그 책 사러 수원까지 갔다 왔답니다.

유부만두 2021-03-31 20:10   좋아요 2 | URL
가장 푸른 눈, 개정판 나오겠죠?

전 위의 네 권 다 읽었어요!! 최애는 술라고요, 솔로몬의 노래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래도 최고는 역시 빌러비드... 맘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역시 최고에요.

잠자냥 2021-03-31 23:39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 님/ 네 <가장 푸른 눈>은 개정판 나오리라 믿습니다. 토니 모리슨 작품 많이 읽으셨네요. 저도 곧 다 읽겠습니다!

mini74 2021-03-31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빌러비드 밖엔 읽은게 없군요 ㅠㅠ잠자냥님 추천보고 도서관 예약 신청했는데 빨리 보고싶네요 *^^*

잠자냥 2021-03-31 18:23   좋아요 2 | URL
ㅎㅎ 어여 미니 님 손에 도착하기를~!

미미 2021-03-31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냥님 믿으니까 읽어보려구요! 일단 <소녀,여자,사람들>과 <초조한마음>이 급함ㅋㅋ

잠자냥 2021-03-31 23:39   좋아요 1 | URL
ㅎㅎ 요즘 읽고 싶은 책 너무 많아서 발동동 아닙니까!

다락방 2021-03-31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만년전에 재즈 읽었던 것 같아요. 역시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저는 이미 가지고 있는(!!) 빌러비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이 페이퍼를 읽으니 ‘사유가 깊다‘는 걸 저도 느껴보고 싶어져요. 저는 그런 여성 작가들에게 진짜 크게 감동하거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훗.

잠자냥 2021-03-31 23:40   좋아요 1 | URL
저도 빌러비드는 가지고만 있어요. 올해는 꼭 읽어야겠어요. 암튼 요즘 여성 작가들의 깊은 사유 속에 빠지는 일 너무나 행복합니다.

han22598 2021-04-01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 불운은 없다. 백인들이 있을 뿐이다˝ 빌러비드에 씌여진 글인데, 흑인들의 깊은 빡침의 표현인데...희한한게..소설 안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레 토로되는 느낌.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저는 토니 모리슨의 다른 작품들...아껴두고 천천히 읽고 싶더라고요.

잠자냥 2021-04-01 09:55   좋아요 1 | URL
아껴두고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도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2021-04-12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이딘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을 읽고 완전 반해서 집에 있는 고디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고 있다. 주로 단편들. 그이의 단편이 실린 책들도 대부분 절판 상태이다. 단편 <최고의 사파리 The Ultimate Safari>는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에 실려 있다. 고디머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왕은철 번역가가 ‘<최고의 사파리>를 중심으로 본 타자 재현의 문제-네이딘 고디머에 대한 애도를 겸하며’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이 작품을 좀 더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거짓의 날들》은 문체가 유려하고 서정적이었던 데 비해 <최고의 사파리>는 투박한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놀랐다. 그러나 곧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작품 화자는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날 밤 어머니는 가게에 간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모르겠다. 아버지도 어느 날 집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간 것이었다. 우리도 참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같은 신세였다. 우리에겐 총이 없었다. 정부가 늘 노상강도라 부르던 아버지의 적군은 사방을 마음대로 다녔으며 우리는 개에게 쫓기는 닭처럼 도망 다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는 식용유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가게에 갔다. 식용유를 맛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행복해했다.’

시작 부분을 이렇게 길게 소개하는 까닭은 이 길지 않은 문장에  작품의 주요 상황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나가 부재하는 아버지, 식용유조차 쉽게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식용유 한 병을 구하려고 가게에 간 뒤 돌아올 줄 모르는 엄마. 정부가 늘 노상강도라고 부르는 약탈꾼들의 존재, 남겨진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소녀의 엄마는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노상강도들이 세 번이나 마을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이제 마을에는 남은 것이 없다. 강도들이 불을 질러 소녀네 집 초가지붕은 무너져 내렸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지붕이 없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 그 약탈꾼들은 소녀의 집에 오지 않았다. 겁에 잔뜩 질려 아이들은 밤을 지새운다. 소녀의 오빠는 부러진 나무 조각을 한 손에 쥔 채로 다 타 버린 집 기둥에서 밤을 지새운다. 노상강도에게 들켰을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학교도, 교회도 모두 파괴되었으므로 소녀와 남동생, 그리고 오빠는 시간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는 채 어머니를 줄곧 기다린다. 그러나 끝내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아이들만 남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와서 손주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도 한 달 가까이 엄마를 기다리지만 엄마는 돌아올 줄 모른다. 할머니의 집도 사정은 형편없어서 굶주림이 날마다 이어진다. 할아버지에겐 전에 소와 양이 있었지만 그 또한 노상강도들이 모두 빼앗아갔다.

굶주림 속에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자 할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은 떠나게 되어 기쁘다. ‘어머니가 있지 않은 곳’, ‘항상 배가 고픈 곳에서’ ‘노상강도도 없고 음식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은 떠나고 싶었다. 집을 떠나 할머니가 목표로 삼은 ‘그곳’에 가려면 크루거 공원을 지나야만 한다. 아이들은 크루거 공원을 잘 알았다. ‘동물들만 사는 거대한 왕국, 코끼리, 사자, 자칼, 하이에나 하마, 악어, 모든 동물이 사는 곳’이다. 마을에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동물들이 이었는데, 노상강도들이 코끼리를 잡아 상아를 팔고, 사슴을 다 먹어 치웠다. 소녀는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지 동물의 왕국은 아니’라고. 크루거 공원을 잘 아는 이를 안내자 삼아 소녀의 가족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떠난다. 크루거 공원에서는 울타리를 돌아 더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 울타리를 손으로 만지는 순간 살이 타들어서 죽기 때문이다. 말이 ‘공원’이지, 소녀가 묘사하는 내용을 유추해 보면 크루거 공원은 ‘사파리Safari’임을 알 수 있다.

공원에서는 모닥불을 피울 수가 없다. 연기 때문에 그들이 공원에 있다는 사실이 탄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과 공원 관리인이 이들의 존재를 알면 그들을 돌려보낼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그들은 ‘동물들 사이에서 동물처럼’ 움직인다. 소녀는 이곳에서 코끼리, 수사슴, 멧돼지 등을 맞닥뜨린다. 동물들의 뒤를 쫓다가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동물들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물을 마신다. 소녀가 볼 때마다 동물들은 풀이나 나무나 뿌리를 먹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인간이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머니가 가져온 곡물 가루도 이미 다 떨어졌고, 소녀는 개코원숭이들이 먹는 음식이나 겨우 먹을 수 있다. 인간이면서도 이곳에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 마찬가지인 그들은 그렇다고 ‘동물처럼 행동하기’도 어렵다. 소녀는 날씨가 아주 더운 낮에는 누워서 잠든 사자들을 본다. 자신도 사자처럼 눕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누워 잠들면 사자에게 먹힐지도 모른다. 남동생은 점점 더 야위어 가고, 오빠는 어느새 말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여행은 지속되어 그들은 낮에도 밤에도 걷는다. 야영지에서 백인들이 요리하며 피우는 모닥불을 본다. 연기 냄새와 고기 냄새에 이끌려 일행 중 한 여인이 그들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자고 한다. 여인은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을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안내자는 크루거 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를 도우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리를 봐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이 본 건 단지 동물뿐’이라고. 크루거 공원을 지나는 동안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볼일을 보기 싫었는지 풀숲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일행들은 길을 떠나야 한다고 재촉하고, 할머니와 소녀와 오빠는 할아버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굶겨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결국 일행을 따라 길을 나선다. 할아버지는 어딘가에 남겨둔 채. 아빠와 엄마에 이어 할아버지마저 사라진 것이다.

드디어 소녀 앞에 저 멀리 아주 큰 천막이 보인다. 파랗고 하얀 천막이다. 소녀의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 진료소 수녀의 말에 따르면 아기들을 제외하면 그 수가 200명쯤이다. 각 가족에게는 집 대신 큰 자루나 종이 판지 등 찾을 수 있는 것들로 사방을 막은 작은 구역이 주어진다. 이 공간이 자신의 것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이다. 문도 창문도 지붕도 없지만 이 공간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도, 창문도 지붕도 없기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남의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일종의 사파리와도 같다. 진료소에서 나눠 준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배급을 받고, 옷을 얻어 입고 소녀와 오빠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남동생은 또래 아이들처럼 놀지 못한다. 할머니는 진료소를 찾아가고, 수녀는 남동생이 충분히 먹지 못해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전쟁 때문에,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크루거 공원에서 굶주렸기 때문에 남동생은 종일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 있거나 할머니한테 기대어 있기를 좋아한다.’

시간은 흐른다. 천막에서 얼마나 오래 생활했는지 소녀는 열한 살이 되었고, 동생은 세 살이 다 되어 간다. 동생은 여전히 몸집은 작지만 머리는 크다. 몸이 건강한 할머니는 일자리를 구했고, 소녀네 가족들은 굶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크루거 공원에서처럼 천막 안 공간도 비좁아 서로 가깝게 누워 있어야 할 만큼의 자리밖에 없다. 어느 날 백인들이 천막에 사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러 왔다. 그들은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한 백인 여자가 소녀네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백인 여자의 말을 알아들은 어떤 사람이 그 말을 통역해서 되물어 준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고 있나요?
이곳을 말하는 겁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이 천막에서 이 년하고 한 달 살았어요.
앞으로 바라는 것 있어요?
아무것도요. 여기에 있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요?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 좋은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기를 바랍니다.
고국으로, 모잠비크로 돌아가고 싶나요?
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이곳에 머물지 못할 텐데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는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할머니가 그 백인 여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백인 여자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최고의 사파리>,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389쪽)


이 짧은 단편에서 가장 압도적인 장면이 아닐까. 이 년 넘도록 천막 안에서 지내는 소녀의 가족. 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자루나 종이 판지 등으로 사방을 막아도, 문도, 창문도, 지붕도 없기에 누구라도 마음먹으면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백인이 ‘영화’를 찍는다면서 ‘비집고’ 들어와 자기들의 언어로 질문을 퍼붓는다. 그러고는 소녀네 가족을 향해 ‘미소’ 짓는다. 야생동물의 생활 터전에 마음대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염탐하고는 제멋대로 그 삶을 낭만화해 미소 짓거나 즐거워하는 사파리 관광객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크루거 공원을 지날 때 백인들의 음식 냄새에 이끌려 도움을 청하자고 했던 여인에게 안내자가 했던 말도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보여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그들. 크루거 공원에서 그들은 동물처럼 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동물보다 그 존재가 뚜렷하게 인식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동물은 타인의 눈에 보이는 존재여도, 이들은 결코 보여서는 안 된다. 할머니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집도 없다고 말하지만 소녀는 할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전쟁이 끝나고 노상강도도 없어지면 집에서 엄마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기에 다시 크루거 공원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는다. 소녀의 이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파리Safari'는 잘 알다시피 야생 동물을 놓아기르는 자연공원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차 안에서 구경하는 일을 뜻한다. 원래는 스와힐리어의 ‘여행’이라는 뜻으로, 사냥을 하기 위해 사냥감을 찾아 원정하는 일을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 <최고의 사파리 The Ultimate Safari>라는 제목은 작품 내용과 어우러져 무척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늘 ‘노상강도’라 부르던 아버지의 적군, 코끼리를 잡아 상아를 팔고, 사슴을 몽땅 먹어 치운, ‘노상강도’들은 그저 단순히 아프리카의 또 다른 종족들을 말하는 것일까? 만지는 순간 살이 타들어서 죽는 울타리를 크루거 공원에 친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 아프리카 땅에서 사냥은 누가 했으며 진짜 사냥감은 누구였을까. 한쪽에서는 그렇게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들에게 천막을 제공해주는 하얀 얼굴의 백인들이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난민의 삶을 영화로 만들겠다며 다정히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대며 미소 짓는 백인들도 있다. 차 안에 편히 앉아 유리창 너머로 사파리를 돌아보는 관광객이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난민의 삶을 담고 전시하는 백인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삶을 ‘사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아프리카에서 긴 ‘여행’을 할 것이 분명한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네이딘 고디머의 시선과 통찰력은 이렇게 짧은 작품에서도 빛이 난다. 그렇다고 고디머의 작품이 아프리카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단편 <발견>(《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에서는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해, 여자라면 환멸을 느끼게 된 남자가 홀로 바닷가 휴양지로 떠나 겪는 일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읽노라니 당연히 네이딘 고디머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절판된 책들도, 그리고 아직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그 많은 작품들도 속히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03-2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읽었어요. 옛날 옛적에요. ㅎㅎㅎ 그래서 기억 안 나요. 암튼, 저도 예전 제 글을 보면서 제가 나딘 고디머를 잠자냥님처럼 엄청 좋아햤더라고요. ㅋㅋ 암튼 <보호주의자> 주제넘게 추천합니닷! 읽으시고 멋진 글 써주세요. (근데 정말 우리 취향 비슷해요!!😅)

잠자냥 2021-03-29 21:45   좋아요 0 | URL
<보호주의자>는 현재 절판이라 구할 수가 없네요. 나중에 읽게 되면 꼭 리뷰 남기겠습니다.

다락방 2021-03-3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읽었다는 기억은 나거든요. 그래서 혹시 뭔가 써놓은게 있나 싶어 검색해봤더니, 2014년에 밑줄긋기 단 한 건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문장이 나딘 고디머의 것은 아닌듯 합니다.

잠자냥 님의 글로만 봐도 참 좋은 단편일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기억은 전혀 없을까요. 대체 책은 왜 읽는 걸까요... 하아-

잠자냥 2021-03-30 10:06   좋아요 0 | URL
단편은 금방 잊히긴 하죠. 제가 이 책 링크 하느라 옛 리뷰들 좀 찾아보니 다락방 님은 페이퍼를 몇 개 쓰셨더라고요. 그때 이 책에 실린 <아들의 죽음>을 인상 깊게 읽으셨나 봅니다. 물론 지금은 기억 못하시겠지만...*힐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30 12:06   좋아요 0 | URL
페이퍼도 썼어요, 제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독서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021-04-12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21-04-2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의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저 책 대학생 시절 밀란 쿤데라 단편 때문에 빌려 읽었던 책이네요. 원래 쿤데라 단편 제목이 [히치하이킹 게임] 인데 왜 이상한 제목을 갖다 붙였을까 의문스러웠던 기억만 나고 쿤데라 소설 외 다른 소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네요..십수년전 읽었던 책 표지를 보니 기분이 묘해요.

잠자냥 2021-04-21 09: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견딜 수 없는....> 이 책 제목 참 이상하죠. 단편 모음집의 단점이라면, 몇 년 지나면 그 안에 실린 단편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ㅎㅎ 하긴 요즘 저는 장편도 좀만 지나면 아주 강렬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희미해집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