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짜리 위조지폐 석 장이 손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지폐라 그걸 사용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리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조지폐이므로 사용하지 않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아닌가? 내가 너무 순진한가? 그렇다면 나의 경우로만 한정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내 손에 들어온 5만 원 권 석장이 위조지폐인 걸 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모른다. 두 눈 딱 감고 빨리 다 써버려?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신고조차 귀찮아서 폐기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신고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신고하는 선에서 끝낼 것 같다.

톨스토이의 <위조 쿠폰>이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시작은 평범하다. 어느 저녁.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자신의 방에서 귀찮은 서류를 정리 중이다. 그때 아들이 노크하며 들어온다. 아들의 이름은 ‘미티아’로 김나지움 5학년이자 열다섯 살 소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인 소년. 아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이 1일입니다.” 말한다. 용돈을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달 1일, 3루블의 용돈을 주고 있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언짢은 얼굴로 지폐용 지갑에서 2루블 50코페이카짜리 쿠폰을 찾아서 꺼내고, 동전용 지갑에서 은화 50코페이카를 세어서 건네준다. 그런데 소년은 말이 없다. 건넨 돈도 받지 않는다. 다음 달 용돈까지 미리 달라는 말만 할 뿐이다.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묻는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오늘까지 갚아야 한다는 아들. 갚지 않으면 자기의 명예가 떨어진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한심한 작태에 화를 내며 채찍으로 때리기 전에 당장 방에서 나가라면서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

3루블을 받고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채 방에서 쫓겨난 미티아는 분노가 치솟는다. 그깟 3루블 좀 미리 주면 안 되나? 다른 친구들은 용돈을 더 많이 받는데! 그런 와중에 돈을 빌린 친구로부터 편지가 온다. 내게 빌려간 6루블을 갚으라고 벌써 세 번이나 부탁했건만 너는 여태 어물쩍어물쩍 넘어가기만 한다. 네가 그 돈을 갚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친구가 너를 경멸하느냐 존대하느냐가 정해질 것이다. 정직한 이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지..... 미티아는 다급한 마음에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엄마도 오늘은 돈이 없다면서 내일이면 생길 테니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티아는 오늘 당장 돈이 필요한데 내일이면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내고 집을 나선다. 전당포에 시계를 맡길까? 아버지로부터 받은 3루블과 시계를 갖고 친구 마힌을 찾아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힌은 미티아와 마찬가지로 중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인데도 콧수염을 길렀고 이미 카드 도박을 했고, 여자들도 경험해보았으며, 언제나 돈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약간 불량한 학생이다. 미티아가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으니 마힌은 그게 무슨 고민거리나 되느냐며 쿠폰을 위조할 것을 종용한다.



“더 나은 방법이 뭔데?”
마힌이 쿠폰을 손에 들고 말했다.
“아주 간단해. 2루블 50코페이카 앞에 1을 덧붙이는 거야. 그럼 12루블 50코페이카가 되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1000루블 표에다가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처리한 적이 있지.”
“믿기지 않는데?”
마힌은 펜을 쥐고 왼손가락 하나로 쿠폰을 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나쁜 짓이잖아.”
“무슨 어리석은 말이야.”



그렇게 위조 쿠폰을 완성한 마힌은 미티아와 함께 사진 용품을 파는 상점으로 향한다. 때마침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넣을 사진액자가 필요하다나. 상점에 가니 선량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액자 하나를 고르고는 위조 쿠폰을 내밀고 잔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이 여주인은 지독한 근시이다. 액자 가격은 1루블 20코페이카인데 아이들이 12루블이나 되는 큰돈을 주니 여주인은 잔돈은 없느냐며 묻는다. 그러나 마힌과 미티아는 없다면서 빨리 거스름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결국 여주인은 액자를 포장한 후 10루블짜리 지폐 한 장, 20코페이카 동전 여섯 개와 5코페이카 동전 두 개를 꺼내준다. 상점을 나온 마힌은 미티아에게 10루블짜리 지폐를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진다. 미티아는 엉겁결에 생긴 10루블로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날까? 그렇다면 톨스토이가 아닐 것이다. 잠시 아내에게 가게를 맡겼던 상점주인이 돌아와 판매 대금을 파악하기 시작하는데, 상점주인은 쿠폰을 보자마자 위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바보! 멍청한 여편네! 욕을 퍼부으며 험담을 멈추지 못한다. 아내의 마음에는 그동안 남편에게 당해온 일들이 떠올라 분노가 치민다. 저놈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떠오르자 그런 마음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이 손해를 상점주인은 어떻게 처리할까? 간단했다. 손쉬웠다. 땔감을 가지고 온 농부에게 그 위조 쿠폰으로 값을 치른 것이다. 마힌과 미티아가 만든 12루블짜리 위조 쿠폰은 이렇게 상점주인의 아내 손에서 남편 손을 거쳐 땔감을 팔러 온 농부의 손으로 옮겨간다. 

땔감을 팔러 다니는 농부 이반은 처음에는 쿠폰을 받기가 꺼려져 주저하면서 돈으로 달라고 부탁하지만 상점주인은 돈이 없다면서 한사코 쿠폰으로 값을 지불한다. 망설이던 이반도 상점주인이 “명망가처럼” 보이기 때문에 쿠폰을 받는 데 동의한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상점의 여주인도 남편에게 항의할 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날 감쪽같이 속여서 난 미처 몰랐어요. 중학생들이었어요. 한 아이는 잘생겼고 정말 품위 있게 보였다니까요.” 그 말을 듣자 남편은 더 욕을 퍼부었다. “난 쿠폰을 받을 때는 거기에 적힌 액수를 보고 확인해. 그런데 당신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주제에 꽃미남처럼 생긴 그놈들의 얼굴만 보고 있었던 거야.” 

인간은 그럴듯한 외모에 잘 속는다. 사기꾼은 그래서 번드르르하게 차려입고 위장한다. 좋은 시계, 명품 가방, 브랜드 옷, 구두, 자동차, 번듯한 직업, 신분증…. 지금도 대다수 사기꾼들은 그렇게 자기를 위장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혹해서 투자를 하고 돈을 갖다 바치며 더 큰 재산을 노리다가 패가망신한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저 시대에도 역시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혹해 쉽게 속는다. 아주 잘생긴 소년, 품위 있게 보이는 그 소년은 위조 쿠폰을 만들었고, 명망가처럼 보이는 신사는 위조 쿠폰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어리숙한 농부를 속인다..... 농부 이반은 땔감을 다 팔고 집으로 가던 중, 너무나 추워 몸이나 녹이고자 들어간 선술집에서 이 쿠폰으로 계산을 하는데, 아뿔싸! 선술집 주인은 위조 쿠폰이라며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그때도 이반은 이렇게 항변한다. “그 쿠폰은 진짜예요. 신사분이 준 거예요.” 오, 이런 어쩌면 좋은가. 그 상점 주인은 정말 신사인가?!

좋은 방법이 있다. 대질심문을 하면 된다. 이반은 경찰들과 함께 상점을 찾아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한다. 상점주인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가 정말 신사였다면 이때라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자신도 위조쿠폰인 줄 몰랐다고, 착각했노라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그는 신사가 아니었다. 신사였다면 애초에 위조 쿠폰을 어리숙한 농부에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상점을 찾아온 경찰과 이반에게 딱 잡아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아주 놀란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당신 미쳤나 보군. 이 사람 처음 봐요.” 이반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입니다. 당신의 임종 때를 생각하십시오.” 한 술 더 떠 예브게니는 상점 일꾼 바실리를 앞세운다.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땔감은 늘 상점에서 산다고 증언하도록 미리 손을 써둔 터였다. 그 대가로 그에게 5루블이란 돈까지 주면서..... 바실리는 상점 주인이 일러준 대로 땔감을 농부에게 산 적도 없을뿐더러 농부 이반은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한다.

이 억울한 남자 이반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반은 분노를 참지 못해 없는 돈에 변호사까지 써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애쓴다. 그러나 법은 이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선량한 신사분인 예브게니와 그의 충실한 일꾼이자 하수인 바실리의 증언에 더 무게를 실어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추악한 짓을 해서 괴로웠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진술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법정에서도 위증을 하고, 바실리에게도 위증을 하도록 또 종용한다. 이때도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위증의 대가로 10루블을 건넨다. 그나마 양심이 있었는지 예브게니는 이반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소송취하 비용 5루블을 자신이 내준다. 덕분에(?) 이반은 비방혐의로 3개월간 감옥에 갇힐 처지였다가 풀려난다. 중학생들이 시작한 위조쿠폰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이후 바실리와 이반에게 일어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조 쿠폰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바실리도 가진 자들이 도덕률을 어기며 산다고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그들만의 법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더 엄밀히 말해 그 사건에 관련된 거짓 증언을 하고서도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또다시 10루블을 벌어들이게 되자, 바실리는 자신이 모르는 어떤 도덕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살았고, 그런 삶을 지속해 나갔다. 


위조 쿠폰으로 인해 불행을 당하면서부터 이반 미로노프는 오랫동안 술을 마구 퍼마셨는데 전 재산을 술로 탕진할 지경이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술 마시는 데 써버릴지도 모를 옷가지, 말의 멍에 등 모든 것을 감추어버렸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이반 미로노프는 그를 능욕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형제들의 소유를 빼앗아가는, 그곳에 사는 부자들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 



단지 바실리와 이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위조 쿠폰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자들의 마음속에는 속았다는 분노와 함께 이 세계는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는, 정의롭게 살아봤자 손해만 본다는 그릇된 생각이 싹트면서 거대한 악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톨스토이는 위조된 쿠폰이 저마다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끝까지 파고든다. 정의가, 윤리가,  도덕이, 양심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분개하면서 마음이 영혼이 무너지면 인간은 얼마나 한없이 망가지는지, 시궁창으로 떨어지는지 끝까지 보여준다. 




내가 톨스토이의 <위조 쿠폰>을 읽은 까닭은 지난 금요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돈 L'Argent>(1983)을 보기 위해서였다. <돈>은 <위조 쿠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브레송의 <돈>은 시작부터 톨스토이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 김나지움 중학생들이 파리의 고등학생 소년들로 바뀌었고 장작을 팔던 이반은 중유를 배달하는 이봉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 얼개는 비슷하다. 브레송은 “출발점이 된 작품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p.413) 브레송은 톨스토이의 아름다운 단편들 중 하나인 <위조 쿠폰>은 그에게 단순한 출발점 이상의 것을 주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악, 마지막에 솟아오르는 선이라는 개념”(같은 책, p.416)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액수의 가짜 돈으로 인해 악이 거대한 눈사태처럼 미친 듯이 밀려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은 톨스토이나 브레송이나 마찬가지이다. 단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브레송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먼저 선(善)이 솟아오른다. 소설은 3분의 2가 종교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톨스토이 원작을 감탄하면서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등등 종교적으로 결론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톨스토이구나, 에이... 잘 나가다가, 하고 좀 김이 빠졌는데 브레송의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달라진다. 브레송의 영화에선 속죄나 구원 같은 생각은 작품 끝에 가서야 등장하는데 그 마저도 정말 그것이 속죄이며 구원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비정하게 더없이 비참하게 끝난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톨스토이보다는 브레송의 시선에 더 동의한달까.



“사회가 그를 버린 거죠. 이봉이 그렇게 여러 사람을 죽인 건 절망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돈은 가증스런 가짜 신입니다.”  -로베르 브레송, <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p.415



“아,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거예요. 대체 어쩌시려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면, 당신의 영혼은 더욱더 파멸로 치닫게 될 거예요… 아, 아!”  -레프 톨스토이, <위조쿠폰>




위조된 지폐를 들여다 보고 있는 상점의 여주인......... 



이 지폐는 위조지폐입니다! 이봉(이반)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간다......



마힌과 미티아(브레송의 영화 속에서는 물론 다른 이름) 이 못된 놈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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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4-2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소설에서 이반이란.. 우리나라에서 돌쇠 같은 그런 인물인 건가요..? 어째 이반은 늘.. 그래.. ㅋㅋ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톨스토이가 저런 작품도 썼구나! 잠자냥님 덕에 공부했다!
15만 원이라면 참 애매한 금액이네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적절한 금액 같아요. 어떤 이에게는 요긴한 돈이지만 큰 액수라고는 하기 어렵고.. 써버리고 써버리고 폭탄 넘기고 넘기고 결국 이반이 폭탄을.. -o-;;
영화 보기 전에 예습도 철저한 공부냥...

잠자냥 2026-04-21 15:31   좋아요 1 | URL
이반은 ㅋㅋㅋ 러시아/슬라브계에서 가장 흔하고 인기 있는 이름이라고 하네요. 울 나라 김서방 이서방 같은 느낌? ㅋㅋㅋ 성경 ‘요한‘의 러시아식 이름이라고.... 근데 요즘엔 인기가 덜해서 주로 30대 이후 세대에서 많은 이름이라고.

<위조 쿠폰> 소설 자체로도 잘 쓴 작품 같아요. 결말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건 좀 제 취향이 아니지만 ㅋ
처음에 이 리뷰 쓸 때 10만원짜리 위조 지폐 석 장이라고 썼었는데...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돈이라 ㅋㅋㅋ 아무도 고민하지 않을 거 같아서 5만원짜리 석 장으로 바꿨더니
너무 하찮은지 아무도 고민하지 않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고 보면 더 재미나잖아요? 아닌가 김빠지기도 하나?!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22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네요.
저 중국 청도에 갔을 때, 현금으로 지불하면 상점 주인들이 꼭 저렇게 공중에 대고 확인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받은 낡은 돈을 저도 상점에서 지불했는데, 이 돈은 못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어쩌라고.. 나도 받은건데... 제 눈앞에서 제가 준 돈을 바로바로 위조지폐인가 확인하는 장면이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만큼 위조지폐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오늘 잠자냥 님의 이 글을 읽고 나비효과 생각이 나네요. 영화 [나비효과]요, 이 모든 일은 내 선택 때문이다, 라고 생각해서 자꾸만 시간을 돌려 선택을 바꾸던 남자가, 결국에는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결정을 하는... 갑자기 그 영화 생각이 납니다.

잠자냥 2026-04-22 13:23   좋아요 1 | URL
헐 위조지폐 경험자 다락방 ㅋㅋㅋ
 

종일 비가 내린 어제, 목요일. 연차를 내고 하루 쉬었다. 비가 내러 출근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 시간을 내서 봐도 되기는 하지만 하필 어제 내가 꼭 보려던 영화 두 편을 함께 상영하기에, 하루에 몰아볼 심산으로 휴가를 냈던 것이다. 오전에는 고양이들과 뒹굴뒹굴 부둥부둥. <남성 판타지>를 두 시간쯤 읽고(900쪽 돌파!), 집안 청소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비가 내려 한산한 평일 오후 정동은 나름 운치 있었다.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브레송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일찌감치 예매해둔, 외따로 떨어진 자리에 착석. 불이 꺼지고, 아트시네마 특유의 음악이 흐르는 순간..... 삶이 별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싶어진다.




첫 번째 영화는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1966). 전에 본 영화이기는 하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지금의 나이에 보면 또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올까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브레송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단순한 플롯(그러나 심오한)과 극적이지 않은 전개로 펼쳐진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느 당나귀의 일생이다. 그러나 어제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낌 감정은 지독하게 참혹하다는 것. 커다란 눈망울의 어린 당나귀가 어느 집에 팔려온다. ‘마리’라는 소녀의 집이다. 이 어린 당나귀를 끌어안고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마리와 또 다른 소년 ‘자크’. 마리와 자크는 소꿉동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당나귀와 함께 여름 한철 즐겁게 보낸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자크는 내년에 또 오겠다면서 차에 올라타고 손을 흔들며 사라져간다. 그 순간 카메라는 마당의 나무벤치에 자크가 새겨둔 ‘마리♡자크’라는 낙서를 보여준다. 내년에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마리와 자크의 풋사랑도, 곧 덧없이 희미해지리라......

시간이 흘러 당나귀도 마리도 훌쩍 자랐다. 성년기의 그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리의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발타자르도 마찬가지이다. 마리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를 쓴 채 빚에 허덕이며 가세가 나날이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청년이 되어 다시 나타난 마리의 첫사랑 자크는 마리의 아버지로부터 문전박대당하고 쫓겨난다. 보아하니 부유한 자크 네 집의 땅을 대신 관리해주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들 간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돌아서는 자크. 그는 여전히 마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리의 귀에 들려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의 무게에 비하면 공허하기만 하다. 

딸과 아내를 돌보기보다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 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한 마리의 아버지는 저놈의 당나귀처럼 우스꽝스러운 걸 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 또한 우습게 보는 것이라면서 발타자르를 내다 팔아버린다. 왜 애꿎은 동물에게 분풀이를 하는가. 인간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리석다. 이때부터 발타자르의 삶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마리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주인을 만나기는커녕 거의 날마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수레를 끄는 그런 당나귀의 삶. 한데 가혹하다 못해 이리도 가혹할 수가. 

발타자르는 이번엔 빵집에 팔려 가는데 이 빵집의 아들, 제라르는 망나니 중에도 천하의 개망나니라 불량패거리와 함께 못된 짓을 일삼는 놈이다. 그래도 아들놈이라고 정신 좀 차리게 할 요량인지 그놈의 애비 애미는 아들에게 당나귀를 이용해 마을 곳곳에 빵을 배달하고 돈을 받아오는 일을 시킨다. 그런데 발타자르도 사람 보는 눈은 있는지 제라르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때 이 제라르란 놈이 하는 짓이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발타자르의 꼬리에 매다는 것이 아닌가! 엉덩이에 불이 붙으니 그 고통에 발타자르는 화들짝 놀라 달리기 시작한다. 분노가 치미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제라르란 놈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들 중 가장 악한 자이다. 발타자르에게 수시로 못된 짓을 일삼는 것으로도 모자라 발타자르의 첫 주인인 ‘마리’에게도 가장 나쁜 짓을 하는 놈이다. 애초부터 마리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훔쳐보던 제라르는 마리가 발타자르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당나귀를 이용해 마리를 유혹한다. 여러 차례 마리에게 거부당하면서도 결국 마리를 손아귀에 넣는 것에 성공하는데, 이때부터 마리의 삶 또한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당나귀 발타자르>는 비단 순진무구하고 무해한 동물 당나귀 발타자르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하고 연약한 소녀 마리의 삶이 어떻게 주변 인간들에 의해 망가지고 처참해지는지를, 그 두 가련한 생명체의 안타까운 삶을 극도로 건조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마리 역을 맡은 소녀는 <사랑의 사막><독을 품은 뱀>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외손녀이다.



브레송은 <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에서 <당나귀 발타자르>는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도식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당나귀의 일생은 인간과 똑같은 단계를 따라가는 것이다. 유년기에는 애정의 손길이, 성년기에는 노동이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는 재능 혹은 타고난 재주, 그리고 죽음을 앞둔 신비스러운 시기. 이렇게 그려지는 당나귀의 삶. 당나귀의 여정은 저마다 인간의 한 악덕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거쳐 가고 발타자르는 그 악덕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죽는다. 마리의 아버지는 명예욕과 아집 때문에, 제라르는 욕정 때문에, 그 후의 주인 아르놀드는 탐식(알코올) 때문에, 또 그 후의 주인은 탐욕 때문에 발타자르를 착취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브레송이 말했듯이 마리는 또 다른 당나귀이다. 당나귀와 평행으로 나아가는, 결국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고통당하는 인물로 인색한 인간에게 발타자르가 귀리조차 얻어먹지 못하듯이 마리도 그로부터 음식을 얻지 못하고 단지 잼 한 병을 가져다가 먹을 뿐이다. 잼 한 병으로 욕정의 대상이 되고..... 브레송은 마리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를 버리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발타자르의 삶뿐만이 아니라 마리의 삶도 너무나 처연해서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발타자르가 인간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듯이 남자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는 마리의 삶.





브레송의 영화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당나귀 발타자르>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이 깃들어있다. 물론 이 영화는 브레송이 10년에서 12년에 걸쳐 생각한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백치>를 읽기 전부터 구상은 어느 정도 마쳤으나, 브레송은 어느 날 <백치>를 다시 읽으면서 놀라운 구절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백치가 동물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 사람들이 백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동물을 통해서 삶을 보게 된다는 더없이 멋진 생각에서 <당나귀 발타자르>는 더욱 깊이 있는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그럴 때 나를 사로잡곤 하던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기억납니다. 난 울고 싶었죠. 모든 게 날 놀라게 만들고 나에게 불안을 안겼어요. 그때 날 끔찍하게 짓누른 느낌은 바로 모든 게 나에게 낯설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 암흑을 완전히 벗어나던 순간도 기억납니다. 바젤에서 도착해서 스위스에 첫발을 디딘 날, 저녁이었어요. 시장에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났지요. 그 당나귀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겼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속이 갑자기 환해졌죠.” -도스토옙스키, <백치>


이어서 본 <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1977)는 브레송 후기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암울한 작품으로 꼽힌다. 극도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에 자살을 모방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18세 미만 관람이 금지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인공 샤를은 사랑은 물론 정치 집회, 종교 모임, 정신분석 등을 전전하지만 끝내 자기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마약에 중독된 친구에게 돈을 건네 자신의 살해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무얼해도 허무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샤를이 결국 친구들의 권유로 정신과의사를 만나러 가는데, 거기서 자신은 우울증이 아니라고,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인상 깊다.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 아닐까.... 남들처럼 그냥 눈 감고 쉽게 살면 되는데, 그걸 못하면 마음이 병들기 쉽지 않을까. 브레송은 이 작품에서 “경박한 낙관주의, 돈만 있으면 다 잘된다는 믿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두고 미친 듯이 날뛰는 사람들의 힘의 우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샤를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상태, 죽음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을까.....



<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1977)



극장을 나와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흐르던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0번 2악장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도 없구나 싶어진다. 샤를, 너도 이런 데서 삶의 이유를 찾아보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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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10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잠자냥 님 개멋짐.

저는 이 페이퍼 읽으면서 아니 에르노 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잠자냥 님에게서 아니 에르노를 봅니다. 아니 에르노를 느낍니다. 이게 잠자냥 님이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잠자냥 님은 스스로 되게 빛나는 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스스로 별이 된 사람. 그것이 바로 잠자냥 이다!! 하여간 아니 에르노 생각이 났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잠자냥 님이 싫어할지도 모르지만요.

당나귀와 여성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네요. 그런데 그건 지금도 그런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성의 삶은 당나귀의 삶과 다르지 않죠. 당나귀의 삶도 예전과 다르지 않고요. 몇해전에 여행프로그램 봤는데, 여전히 얼음을 당나귀를 통해 나르더라고요. 인간들 먹을 얼음을 나르라고 당나귀가 태어난건가, 라는 생각을 그 때도 했고, 그래서 그 때 뭔가 동물권 관련된 책을 사서 꽂아뒀던 것 같습니다. 여자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바로 오늘 본 기사에서도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신고했는데 무혐의로 가해자가 풀려나자 스무살된 피해자 여성이 자살했어요. 핸드폰에는 그녀가 성폭행 후 괴로워서 친구에게 남긴 문자도 있었는데, 나중에야 경찰은 ‘그녀가 핸드폰을 보여주지 않아 그건 몰랐다‘고 했고요. 동물과 여성의 삶은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작 남자를 죽인 여자에 대해서는 부모도 사과하라고 세상이 난리인데요.

인류가 더 살아간다면, 훗날에는 동물과 여자를 남자와 같이 대우할 날이 올까요?

잠자냥 2026-04-11 13:2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푸하 미쳐 웬 아니 에르노 ㅋㅋㅋㅋㅋㅋ 이 인간 술 마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랑스 영화 자막 없이 보지 못하는 아니 에르노 ㅋㅋㅋㅋㅋ
아니 웬르노….🤣🤣🤣 진심 빵 터졌다!

독서괭 2026-04-11 18:28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잠자냥님 개멋짐22222222

잠자냥 2026-04-12 17:16   좋아요 1 | URL
너희둘 개웃김…..🤣

독서괭 2026-04-11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판타지 두시간 읽고
청소하고
브레송 회고전 보고
슈베르트 듣고

너무 지적이고 부지런한 휴가다…..
그나저나 당나귀 눈이 너무 처연해보이네요 ㅜㅜ

잠자냥 2026-04-12 17:17   좋아요 1 | URL
응 나 부지런해….😹

당나귀 발타자르는 울음소리가 더 처량합니다….😭
 

최근 한국문학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 시작은 정영문의 데뷔작인 《겨우 존재하는 인간》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 소문으로만 전해졌던 명작 중의 하나였다. 몇 해 전 복간된 덕분에 나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좋았다. 내가 이 작품을 좋게 읽은 까닭은 아마도 한국문학이면서도 한국문학스럽지만은 않은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정영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 볼 생각이다). 

번역 문장이 아닌 한국어로 쓰인 글을 읽을 때의 즐거움도 오랜만에 느꼈기에, 내친김에 다른 한국문학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펼쳐든 책이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이다. 내가 한국 현대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ex 다락방) 잘 안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애란은 드문드문 읽어온 작가이기는 하다. 첫 작품집인  《달려라 아비》부터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에 이어 이번에 읽은 것까지 네 권은 읽었다. 김애란의 팬인가 싶기도 할 텐데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애란을 읽게 된 것은 그 무렵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웃들이 김애란 책, 한 번만 읽고 감상평 좀 남겨달라고 해서였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를 읽고서 잘 쓰는 것 같기는 한데 내 취향은 아니라고 했다.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그때부터 그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김애란의 작품을 ‘구질문학’이라고 명명했었다.

나는 그 가난함과 구질함을 어디서 느꼈던가. 《달려라 아비》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은 많이 사라졌지만 《침이 고인다》 또한 여전히 ‘엄마’와 ‘가난한 삶’ 그리고 비루한 ‘서울 상경 살이’가 거의 모든 단편의 주제이자 소재였다. 《침이 고인다》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방’을 얻기 위한 20대의 남루한 투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어떻든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다. 그 ‘방’은 비가 오면 물이 콸콸 들어오는 반지하의 방이기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온 후배에게 속절없이 침범당한 작은 원룸이기도 하고, 신림동의 고시원이기도 하고, 옥탑방이기도 하고, 다 큰 남매가 한 공간에서 같이 자고 먹고 해야 하는 원룸이기도 하고, 노량진 학원가의 학사촌이기도 하다. 

그런 김애란의 인물들은 《바깥은 여름》에서 드디어 자기 집을 가진 이들이 된다. 널찍하고 화려한 집도 아니지만 《침이 고인다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청춘들이 어느덧 ‘자기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낡고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집’을 소유하고는 20대의 삶이 아닌 30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도 낳고, 그 아이로 인해 생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자식 때문에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도,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도 그때보다는 어른이 되었구나, 자라고 있구나, 그럼으로써 삶이 던져주는 무게를 조금 더 묵직하게 느끼는구나 싶어졌다. 그런 변화가 조금은 반가웠던 기억도 난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기 시작하고 조금 놀랐던 점은 가난과 구질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더 성장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부유한 자들이 모여서 여는 ‘홈 파티’(<홈 파티>)에 초대를 받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숲속 작은 집>). 하긴 《달려라 아비》를 쓸 때보다 작가 자신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가 창조한 인물들 또한 20대에서 30대를 거쳐, 40대로 나이 들면서 생활도 조금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삶이 조금씩은 달라졌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나감에 따라 경제적 생활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빈곤하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답답해졌다. 아니 마음의 빈곤함, 가난함은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한숨이 나왔던 것일까. 

초대받은 ‘홈 파티’ 자리에서도, 해외여행을 떠나서도 계급과 돈의 위력을 줄곧 실감하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의 가난함은 <좋은 이웃>에서 절정에 달한다. 서울에서 전세살이 중인 어느 40대 부부는 늘 관심사가 자가 소유의 집, 그것도 아파트이다. 남편은 새로 들어온 신입이 ‘나보다 부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회사에서도 동료들을 단지 부(富), 집을 소유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방문 학습지 교사였다가 독서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의 관심사 또한 온통 자기 집의 소유 여부이긴 마찬가지이다. 평소 자신이 특별히 ‘아끼던’ 학생 ‘시우’(그러나 뭐랄까 가난해 보이기 때문에 연민하면서 계급적 우월감을 느끼던 대상)가 어느 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황해한다. 자기 마음의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목도하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겁기만 하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하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자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낡은 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과연 ‘반짝이는 세계’로 가는 것일까? 시우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생각하다가 아내는 이런 쪼잔한 후회까지 하기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 원 더 올려 받을걸…….” 급기야 시우의 수업을 그만둘까 생각까지 한다. 시우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우네 이사 소식을 들은 남편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자가래?” 남편의 이 노골적인 질문에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별말 아닌데 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노라 말한다. 그러나 본인도 알고, 읽는 나도 안다. 그 수치심은 바로 마음의 빈곤함/가난함 때문 아닐까. 그토록 아끼고 예뻐하던 학생 시우가 자기보다 낡고 허름한 집에 살 때는 괜찮던 것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니 왠지 배가 아프다. 시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열패감, 열등감에 휩싸여 수업을 그만둘까까지 생각하는 너무나 가난한 마음.

이렇게 사사건건 나와 타인의 삶을 주로 부와 계급으로 비교 평가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든 단편에서 등장한다. 여행을 떠나 에어비앤비로 빌린 집에서조차 “모국에서의 오랜 관성 탓인지 집주인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자꾸 환하게 웃게”되고, 부유하고 풍족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하기도 한다(<숲속 작은 집>). 이혼한 아내가 새로 만나는 듯한 남자의 인스타를 염탐하면서 그의 사진에서는 “생활의 흔적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좋은 신발과 가방을 찍어도 은연중 드러나기 마련인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 계급의 표지”(<이물감>)를 찾아보려 애쓰는 한심하고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이 남자 ‘기태’는 그-‘최 대표’의 안색과 표정에서 ‘내장의 관상’까지 본다. 여기서 말하는 내장의 관상이란 ‘기태’가 “거래처의 고위 간부나 임원을 접대하며 종종 봐온 낯빛”이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라나.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라고 한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며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다.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이물감>), 인스타에 올라간 타인의 사진을 보면서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에서 계급 표지를 찾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장의 관상 운운하는 장면에선 실소를 떠나 뭐랄까 불쾌한 기분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단편 속 인물은 도배사가 자기 집을 방문했을 “남의 집에 자주 다니는 업자들은 대충 살림만 봐도 그 집 분위기며 사정을 안다던데, 지금 저 여자에게 우리 집은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기도 한다(<빗방울처럼>). 

이런 장면, 묘사, 문장들을 내내 읽다 보니 문득 정말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치졸하기도 한 존재라 잠시나마 그런 비루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안녕이라 그랬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관심사는 돈과 계급, 아파트이다. 그들은 거의 전부가 부유함과 가난함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기 또한 그렇게 평가받으리라고 단정 짓고, 그러면서 내면으로 끊임없이 이런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기를 쓴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니 경악스럽다 못해 진저리가 쳐친다. 대다수 한국인이 돈에 환장했고, 부유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서울에 자가 아파트, 빌딩 갖는 게 꿈이라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침이 고인다》의 어느 단편에서인가 “서울이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구절이 있다. “멀리서 보니 한없이 가난해 보이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와 신림동 고시촌을 “지나가는” 수많은 젊은 청춘, 사회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학원 강사”와 같은 이른바 “지식인의 막장 직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의 고단한 삶이 그려지는데 이런 고단한 삶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단편의 문장처럼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데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노라니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 인간이 자신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스스로 이렇게 자멸해도 되는 건가,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이렇게 한없이 낮아져도 되는 건가 싶어졌다. 

원룸을 벗어나 방 두 칸짜리 빌라로 이사를 가고 낡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살게 되고, 또 언젠가는 서울의 자가 아파트에 입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재산의 규모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또 누군가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을 시기하는 치졸한 마음이라면, 그래서 내 삶이 한없이 비루해지는 마음이라면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 서울의 자가 아파트를 갖게 될지언정, 해외로 여행을 다닐지언정 나에게는 여전히 그 마음만큼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문학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같이 다 그럴까? 서울 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이 정말 하나같이 다 그럴까? 드물지도 모르겠지만 타인의 재산에, 나의 재산 불리기에 관심 없는 이들도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런 문학을 읽고 싶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덮으니, 언젠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 느낀 당혹감, 그러니까 서울에서,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이 다 이렇게 너무 계산적이고 날카롭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불쾌함과 씁쓸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의 대다수 한국문학은 주변을 관찰하고 그 일상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가는 자들의 숭고함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고전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에서 인간은 세계에 번번이 패배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지고 말지언정 결국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려고 애를 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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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4-0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그런 문학을 읽고 싶어요😭 잠자냥님 정말 내 마음같은 이 리뷰 너무 좋아요

잠자냥 2026-04-08 12:03   좋아요 1 | URL
그래도 망고 님은 세계문학 많이 읽잖아요?!
최근에 읽은 <이선 프롬>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같은 그런 명작... 캬
세계에 패배할지언정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자들! 캬.....

망고 2026-04-08 12:09   좋아요 1 | URL
그니까 저 잘하고 있는 거죠?😁(셀프 쓰담쓰담)

잠자냥 2026-04-08 12:16   좋아요 0 | URL
🫳

잠자냥 2026-04-08 12:17   좋아요 0 | URL
😺

케이 2026-04-0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애란 책은 두권 읽었네요. <달려라 아비> 와 <두근두근 내 인생> 이요. 달려라 아비는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내 나이가 거의 비슷할 때 읽어서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공용 화장실에서 슬리퍼 세워놓아달라고 쪽지 쓰는거랑 공용 세탁기 쓰는 장면이 생각나요. 김애란 작가가 인천 출신이라 더 공감이 갔던 거 같기도 해요.
저도 몇 년전 강남의 완전 부잣집으로 시집간 절친을 보며 뭔지 질투를 느낀 적이 있어요. 그런 제 자신에게 조금 놀랐어요. 근데 그 친구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보니 또 강남 노른자 땅에서 가정주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친구네도 부자인데 정작 본인은 전혀 부자라고 생각 안하고 살더라고요. 오히려 말하는 것만 들어선 걔가 저보다 더 가난하단 생각 들때도 많아요.
근데 전 정말 남의 집이 십억이다 삼십억이다 이래도 부러운 생각이 전혀 안들어요. 주식으로 몇 억 벌었다. 이런 것도 하나도 안 부러워요. 누군가는 저를 자기 기만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는데 정말로 아무 생각이 안들어요.
부자라고 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이 다 비켜가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모든 사람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지독한 불행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생각해요. 또 돈으로 못하는 게 세상엔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고요.
이상하게 잠자냥님 이번 리뷰 읽고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가 생각났어요. 겨우 겨우 산 외투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참 불쌍하지만 그 소설은 그래도 끝까지 남루하지만은 않잖아요. 심지어 한번씩 웃기기까지 하고. 역시 명작은 명작이네요. ㅋㅋㅋㅋ
저는 3월 달에 결혼 이후 최고로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어떤 하루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도 경험했답니다. 그 날 하루 정말 아무 기억이 없어요 ㅋㅋㅋ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잠자냥 2026-04-08 12:27   좋아요 1 | URL
김애란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는 당시 20대들이 좀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거 같아요. 제게 그 책을 읽어봐 달라고 했던 친구들도 그 무렵 주로 지방에서 상경해서 신림동에서 살기 시작한 20대들이었고요. 제가 잘 공감 못 했더니 그 친구들이 “애초부터 서울 살아서 그렇다”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이 가난하면 결국 가난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면 그 마음이 풍요로워질 일이 있을까요.... 한국은 그냥 좀 비교가 디폴트인 사회 같기도 하고...

많이 아프셨군요!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면 진짜 다 무쓸모 아닙니까!

stella.K 2026-04-0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잠자냥님 이 글 우리나라 소설가들이 읽어보면 좋겠네요. 저는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읽고 너무 심하다 싶어 그 다음부턴 안 읽고 있습니다. 그 구질구질함이 예전에 신경숙의 작품이 좀 그래서 별로던데. 정영문의 소설이 좋군요. 저도 함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6-04-08 12:35   좋아요 0 | URL
물론 그렇지 않은 현대 한국 작가들도 있겠지요. 근데 좀 젊은 작가들의 (김애란은 이제 젊지도 않지만) 일단 폭로 고발 끝!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건 좀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퀴어든 젠더든 정치적으로 올바른 감각의/그런 소재만 쓰려고 하는 것도 좀 질리고..... 정영문은 좀 결이 다른 것 같기는 한데...... 호불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건수하 2026-04-08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지, 장판, 싱크대, 이불..... 아 숨막혀요. 남의 사진에서 정말 그런 거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 주변에서도 보고, 또 그걸 다른 사람에게까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예민한, 예리한 사람인데 그 예리함 좀 다른데 쓰지 그러나 아쉬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 생각보다 많은 걸까나요? 이 책 읽고서 더 열심히 보는 사람도 있을지.

김애란은 저도 몇 권 읽고서 나이가 비슷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쓸 수 있구나- 이상의 느낌은 안 들어서 요즘은 안 읽고 있어요. 이 리뷰 읽고 나니 <불필요한 여자>의 좋은 점이 새록새록 느껴집니다.,

잠자냥 2026-04-08 14:16   좋아요 0 | URL
우아 진짜 그런 사람 있을 거 같기는 했지만 진짜 있을 줄이야.. 벽지 장판 이불? 이런 거에서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진짜 그 예민함/예리함을 다른 데 쓰라고! 수하 님이 아는 그 사람도 내장의 관상까지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이 벽지 장판 이불/ 내장의 관상 이런 걸 말할 정도면 작가 자체가 그런 사람일 거 같아서;;; 왠지 더 싫었어요! 이런 걸 끊임없이 의식? 캐치하고 산다고??? 오마이갓 이런 심정.

건수하 2026-04-08 14:19   좋아요 0 | URL
내장의 관상이라니... 이 표현 너무 이상해요. 그리고 제가 아는 그 사람은 자기가 본 것, 느낀 것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대단해서 (본인이 잘못 보거나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더 싫었어요. 엄청 꼰대이기도 했구요 ㅋㅋ

당연히 작가도 그런 사람이겠죠... 그래서 저도 이 글 읽고 김애란 작가 급 안좋아지기 시작...

잠자냥 2026-04-08 14:20   좋아요 1 | URL
미안하다 애란아…..😂

건수하 2026-04-08 14: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많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괜찮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6-04-08 15:21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을 안읽었고 김애란 작가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데 작가 자체가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마도 어쩌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봤기 때문에, 그 점을 반드시 지적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김애란은 데뷔 당시부터 굉장히 화제였는데, 저는 두 권 인가 읽어보았지만 딱히 찾아 읽게 되는 작가는 아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작가, 그런데 나는 아님. 이렇게 되어버린... 하핫.

그리고 저 역시, 문학은 단순히 고발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너무 고발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그렇고 말이지요. 고발 그 이상의 것을 저는 문학에서 원하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6-04-08 15:22   좋아요 0 | URL
오해해서 미안하다 애란아…😹

건수하 2026-04-08 15:25   좋아요 0 | URL
음음 그럼 진실은 알 수 없으니 김애란 작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기로.....

잠자냥 2026-04-08 16:02   좋아요 0 | URL
보류한다 애란아.... (난 아님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08 16:04   좋아요 0 | URL
오해해서 미안하다면서요.....

다락방 2026-04-08 16:04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분들이 왜이러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08 16:10   좋아요 0 | URL
/아니 그건 건수하 버전....
전 그냥 제가 의심한 대로 확신하고 살려고요... ㅋㅋㅋㅋㅋㅋ 초기 단편집부터 느꼈던 지점인데 이게 단순히 관찰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08 16:11   좋아요 1 | URL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제 버전이라고요? ㅋㅋㅋㅋ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자기 촉을 믿을 수 밖에...

독서괭 2026-04-11 09:52   좋아요 0 | URL
🤣🤣🤣 댓글들 넘 재미지네요!!

바람돌이 2026-04-09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애란 작가의 글은 2개,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안녕이라 그랬어 읽었어요. 워낙 많은 분들이 읽어서 읽었던 거였는데 좀 많이 우울했었어요. 한국사회에 마음이 우울하고 가난한 사람 정말 많습니다. 나이 불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 가난한걸 몰라요.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같다고 생각하고, 자기 처럼 살아서 돈을 불리지 못하는 사람은 안타까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무능력자 이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안녕이라 그랬어 읽으면서 그런 마음들이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장면들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멀쩡해보이는 마음이 이면이잖아요. 아는 사람의 그런 면을 볼 때 화들짝 놀랐던 것처럼 이 책 보면서는 내 마음 속에 그런거 있지 않나 막 살피기도 했거든요. ㅎㅎ

슬쩍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장바구니에 넣어갑니다. 호불호가 강하다지만 잠자냥님이라면 왠지 믿음이.... ^^

잠자냥 2026-04-10 21:05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마음들을 작품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각성&환기시키는 부분도 있었을 거 같아요. <겨우 존재하는 인간> 바람돌이 님에게도 좋은 작품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독서괭 2026-04-11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을 열심히 읽어왔지만 거짓말이 별로여서 이 책도 별로 읽을 생각이 없네요. 저는 김애란 첨 읽었을 때 어쩜 이렇게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콕 집어 잘 묘사하나 싶어 빠졌었어요.
문학은 고발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저도 예전보다 한국문학에 손이 잘 안 가는데 그게 그래서인지.. 올리브키터리지 생각하면 차이가 더 느껴지긴 하네요!

잠자냥 2026-04-12 17:19   좋아요 1 | URL
그곳에서도 도서관을 찾은 지적인 그대여~ 열심히 읽고 얼른 글도 쓰시오. 🥳
 


2026년 상반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의 <남성 판티자>가 아닌가 싶다. 파시즘이 탄생해 나치즘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고찰한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비단 파시즘, 나치즘뿐만이 아니라 남성 정체성에 대한 뛰어난 분석서로 파시즘 동조 집단과 그들의 여성혐오 성향까지 파헤친다. 문화비평, 영화 이론, 페미니즘,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젠더 이론, 독문학, 독일 역사학 등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셀과 극우파, 극우 남성성이 대두되는 요즘 더 깊이 연구해 볼 텍스트라 생각된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일단 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말에서부터 꽂혔다. 그러니까 이런 문장.


아버지는 동프로이센 농장주의 혼외자로 태어나 친척 아주머니 손에 길러졌다. 그런 까닭에 번듯한 가정을 몹시도 중시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철도 공무원이었다. 당신 말마따나 한 인간이기 전에 몸과 마음을 다한 철도 공무원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척 훌륭한 파시스트였다. 자식들 잘되라는 좋은 마음으로 평소에 매타작을 혹독하고도 넉넉하게 베풀곤 하셨다. 나는 훗날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파시즘 교육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양가적이었다. 맞아 싸다고 여기면서도 어쨌든 달래셨다. 그것이 파시즘 교육의 두 번째 단계였다. (p.6)


자신의 아버지를 파시스트라 말할 수 있는, 그리고 자기의 가정에서 처음으로 파시즘 교육을 받았노라 증언, 고백하는 이 구절, 통찰에서 이 책은 이미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남성 판타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활동하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젊은 군인 남성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자유군단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해산되지만 그중 일부는 나치 돌격대나 친위대로 흡수돼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책을 담당한다(예컨대 회스 같은 인물). 그들의 회고록, 일기, 문학 작품, 소설 등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어제 읽기 시작한 ‘제1장 남자와 여자’에서는 자유군단 소속이었던 7명의 군인들의 회고록을 살펴본다. 그런데 너무 신랄하게 냉소적으로 까고 있어서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웃음이 빵빵 터졌다. 마치 케이트 밀렛이 <성 정치학>에서 헨리 밀러나 노먼 메일러 냉소적으로 까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레토라는 군인은 회고록에서 아내에 대해 이렇게 쓴다. 



(...) 아내는 특유의 개성과 빼어난 취향을 한껏 발휘하여 집 안을 장식했다. 역시 괴테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은 화가 티슈바인의 후손다웠다. (...)



저자는 바로 이렇게 분석한다. 

“사교생활을 무척 사랑했다.” 외에는 없다. 나머지는 그녀가 고급스러웠다는 내용의 반복이다. 남편으로서는 기분이 좋다. 사교계에서의 남편도 덩달아서 높은 대접을 받으니까. 아내는 “빼어난 취향”을 지녔다. 하지만 조상에게서 물려받았으니 부분적으로는 아내 개인의 덕이다. 괴테와 티슈바인이라는 이름을 끌어다가 죽은 아내를 수식했다. 로스바흐가 두 번째 아내를 칭찬하려고 실러와 하인리히 게오르크를 끌어온 것과 똑같다. 
레토와 아내 사이에는 실체적인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아내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장황하게 칭찬하는 걸 보면 더욱 심증이 간다. 아내만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친아들 두 명 역시 전사한 후에야 넉넉한 칭찬을 듣는다. 이렇다 보니 레토가 한 문장 이상을 할애해서 친인척을 길게 칭찬하면 독자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 (p.37)



매우 냉소적이고 신랄하다. 아 진짜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문장에서도 빵 터지지 않을 수 업다. 


(...). 그러나 아내는 이름도 없고 날짜도 없고 역사에도 남지 않는다. 그녀에게 초혼에서 얻은 딸과 아들 쌍둥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20페이지 후에 어쩌다가 잠깐 언급된다. 첫 친아들이 태어나자 레토는 이런 문장을 쓴다. “.... 내 쪽 아들 뤼디거의 세례식에서.” 그나마 아들은 굳이 자기아들이라고 강조하는 성의를 보였다. 딸이 태어났을 때에는 “가족”에 1923년 11월에... (...) 딸 하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내가 죽는다. 레토는 장문의 추도사를 쓴다. 죽음 이후에야 말문이 터졌다. 회고록에서 아내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은 대목이다. 자못 처절한 추도의 글이다. (p.36)



“죽음 이후에야 말문이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적인 아내 상에는 뭔가 다른 것이 은밀하게 섞여 숨어 있다. 니묄러의 경우가 그랬듯 여성의 옆을 오라비가 지키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눈길을 끈다. 남자 형제가 곁을 지켜주는 누이들은 특별히 보장된 신붓감이다. 오라비와 뱃놀이를 가고 청년 단체에 참석하는 아가씨들이라면 숫처녀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회스는 아내가 “오빠와 함께” 길을 “찾았다”고 강조한다. 행여 남자 경험이 있는 여자, 즉 “걸레”라고 오해받을까봐 미리 방어하는 듯하다. 숫처녀에게 무슨 말씀을! 그 점이 중요하다. (p.30)


이렇게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 남성 일곱 명의 결혼을 남편의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런 특징을 찾아낸다. 아내들은 이름이 없다는 것! 스쳐 지나가는 인물까지도 이름을 상세히 기록하는 이들이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회고록에서 아내들은 대개 부차적인 인물이다. 아내는 신분을 상징해주거나 자녀를 낳아주는 사람. 혹은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지켜보는 인물일 뿐이다. 게다가 여성이 언급된 부분에서 발견되는 특이함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주의를 끈 것은 기묘하게도 양면적인 정서. 이들 텍스트는 강렬한 관심과 냉정한 무관심 공격성과 숭배, 증오, 공포, 소외와 욕망 상이에서 갈팡질팡”(p.55) 한다고. 

아내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까닭을 저자는 잠시 후에 이렇게 해석한다. 



소설이나 회고록에 등장하는 어떤 여성에게 이름은 있지만 오라버니의 보증, 뼈대 있는 가문의 성씨, 누이나 친구의 소개가 없다면 예외 없이 "창녀"라고 봐도 좋다. 혹은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 남성의 아내 자격에 못 미치는 여자다. 아내 이름을 숨기는 것은 그래서 강력한 술책인 셈이다. (p.123)



저자는 특별히 군인 남성의 언어를 분석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백색 테러”를 구성하는 본질에는 군인 남성의 언어가 들어 있다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군인 남성들의 언어가 어떤 식으로 “발화”되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그치는 문제의식이 아니다. 내가 집요하게 탐구하려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군인 남성이 외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도록 언어가 작동하고 있는지, 혹은 언어가 작동하는 육체적 장소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육체와 맺는 관계, 그리고 타인의 육체와 맺는 관계가 확장 발전된 것이 바로 인간 육체와 외부 객관 세계가 맺는 관계다. 외부 세계가 맺는 관계가 다시 언어적인 방식이 되어 육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말하고 대상물에 대해 말하고 대상물과 맺는 관계를 말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파시즘적 언어”는 어떤 식으로 관계들을 말할까? 왜 그렇게 말할까? 이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p.54~55)




압도적 두께! 압도적인 하찮미를 자랑하는 지만지 책과 함께 비교해보았다....




집에 있는 비슷한 벽돌책들과 비교. <남성 판타지> 원서는 1280쪽이고, 한국어판은 1464쪽이다.... 




<정치 사상사>를 능가하는 책이 드디어(?) 나타났다.....! (앗, <일탈> 포스트잇 안 떼었네?!)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ㅋㅋ 책 읽는데 책 너머에서 자꾸 쪼물락쪼물락...!



뭐하냥...? 넌 뭘 그리 맨날 읽냥??? 나보다 이게 더 좋냥...?



결국 꾸벅꾸벅 조는 한나.......




한편 옆에서는....... 3호 망태형아, 망태오빠가 숙면 중.... 




궁금해서 한번 비교해보았다...! (읽는 중이라 책 커버는 분리) 헐.... 내 고양이 몸뚱아리만 하다!


ㅋㅋㅋㅋㅋ 이거 손에 들고 읽다가 조는 바람에 책 떨어뜨리면.....! 3호 사망각......! 




아 그나저나 요즘 녀석들한테 인기... 아니 묘기(猫) 너무 많은 잠자냥 침대에 똑바로 누울 수가 없다...

이놈의 묘기란. 😹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오랜만에 손목 나가는 무게의 즐거움. (엥?) 어젯밤 손에 들고 읽다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읽다가 결국 앉아 읽었어..! 헐.





어제는 1장의 134쪽인가 “총잡이 빨갱이 년, 거세하는 여자”까지 읽었다. 흥미진진하다. 락방이도 얼른 시작해라.



더불어 아래 책도 같이 읽으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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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3-3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벽돌들 다 읽으셨어요? 정치사상사 저 책도 엄청난데요?ㄷㄷㄷㄷㄷㄷ
한나가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 졸면서도 책 읽는 학구파네요ㅋㅋㅋㅋㅋ나중에 스무살 되면 대학도 꼭 보내주세요^^
냥이들이 잠자냥님이랑 같이 자고 싶어하는 구나... 울 망고는 나랑 잘 놀다가도 잠은 엄마랑 잤는데... 잠자냥님은 냥이들한테 믿음직한 집사인가봐요. 부럽당

잠자냥 2026-03-31 12:52   좋아요 1 | URL
설마 다 읽었을 리가요... ;;; 하하하하!
<일탈>만 완독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한나는 제가 책 읽을 때 꼭 제 배 위에서 꾹꾹이&그릉그릉&북라이트 깨물기& 책 가름끈 뜯어 먹기가 취미입니다.

3호는 제 머리맡 지박령이고, 원래는 2호가 제 다리 근처에서 자고는 했는데요, 2호 고양이별로 떠난 후로 나타난 푸코&한나가 제 침대에서 자려고 기를 쓰더라고요(집사2가 부러워하면서 질투 ㅋㅋㅋㅋㅋㅋ). 근데 푸코는 망태형아 때문에 잘 못 오고 대신 6호 막냉이가 요즘 부쩍 저한테 들이댑니다.

제 묘기의 비법은.... 집사2왈 “역시 밥 주는 사람이 최고구나!” ㅋㅋㅋㅋ

망고 2026-03-31 12:57   좋아요 1 | URL
역시 밥이었구나! 망고놈도 밥이 최고였긴 했죠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3-31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잠자냥 님께 이 책의 땡투를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백수에겐 다소 부담되는 책값이긴 하지만, 질러버리겠어요. 안그래도 땡투를 드리고 싶어서 이 책에 대해 뭐라도 좀 써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후훗.

잠자냥 2026-03-31 15:5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사실 제가 책 한 권 다 읽기 전에는 100자평이든 리뷰든 페이퍼든 뭔가를 잘 끼적이지는 않거든요. 근데 이건 다락방 님이 어제 책 사겠다는 말을 듣고는 아! 이 인간 땡투하고 싶어할 텐데! 뭐라도 일단 쓰자! 해서 땡투받을 욕심, 아니 땡투받을 결심에 쓴 페이퍼입니다. 책값도 비싼데 말이죠? ㅋㅋㅋㅋㅋㅋ (이 책 한 권 사고 나니 주문마일리지 6천 얼마 들어옴 ㅋㅋㅋㅋ) 암튼 다락방 덕분에 600원인가요? 잠자냥 부자 되겠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3-31 16:03   좋아요 1 | URL
이 댓글 쓰자마자 질렀습니다. 부자되십쇼, 잠자냥 님! 차곡차곡 돈 쌓아서 순대 사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3-3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치즘과 동성애] 책 왜이렇게 갖고싶죠... 미쳐버려..

잠자냥 2026-03-31 16:33   좋아요 0 | URL
<남성 판타지>에도 나치즘과 동성애 관련 장이 있어요(남성동맹/남성연대). 일단 이것부터 읽고! 그리고 <나치즘과 동성애> 간혹 중고에 올라오기도 하더라고요. 아무튼 <남성 판타지> <파시즘의 대중심리> <나치즘과 동성애> 거의 같은 맥락으로 아뢰오~

건수하 2026-03-31 23:45   좋아요 0 | URL
어 그럼 저렇게 비싸고 두꺼운 남성 판타지 말고 다른 거 두 개 중 하나를 읽으면 되겠…. 근데 남성 판타지가 재밌을 것 같네요. 하지만 너무 두꺼워….. 😭

잠자냥 2026-04-01 12:26   좋아요 1 | URL
그 두 권도 가격 만만치 않고 두께도 두꺼운데...! 크림스파게티 토마토스파게티 두 개나 먹지 말고~ 로제스파게티로 가시죠! ㅋㅋㅋㅋㅋ <파시즘의 대중심리>도 고전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성 판타지>가 좀 더 많은 것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요.

건수하 2026-04-01 14:12   좋아요 0 | URL
크… 이런 영업이라니… 사게 되면 잠자냥님께 땡투할게요!

잠자냥 2026-04-01 14:13   좋아요 1 | URL
땡투 모아 로제파스타 사 먹을게요.....
아 난 로제 안 좋아하지;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01 22:46   좋아요 0 | URL
저도 로제는 별로…. 크림도 별로 ^^

coolcat329 2026-03-3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사셨군요! 저도 사고 싶었는데 가격보고 일단 보류했답니다. 😢 문장이 진짜 의미심장하면서 웃기네요 ㅋㅋ
근데 저 사진보며 지만지 책이 어디 있지? 한참 찾았어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3-31 17:03   좋아요 1 | URL
지만지 책 어디 있나 찾으셨다고 해서 빵터졌습니다.
책값이 참 무시무시하죠? 읽다 졸리면 목침 같은 베개로 사용가능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6-03-31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한나 얼굴보다 더 두꺼운 벽돌책.
3호 몸뚱이만한 벽돌책.
와….책보고 놀라다가
그래도 한나 귀여워.^^

잠자냥 2026-04-01 12:23   좋아요 1 | URL
한나....귀엽죠? 요즘의 한나는... 말 안 듣는 일곱살 같아요! ㅋㅋㅋㅋㅋ

포스트잇 2026-03-3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치사상사가 얇아보이다니. 판타스틱합니다!

잠자냥 2026-04-01 12:26   좋아요 1 | URL
정치사상사를 능가하는 두께의 책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ㅋ

단발머리 2026-04-0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따라서 밑의 책들까지 쭉쭉 읽으면 파시즘 단번에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만 두께가.... 허걱!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얇아보이는 이상한 효과가 있네요.
한나 푸코 예뻐요~~ 냥이들도 책을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01 12:28   좋아요 1 | URL
그쵸! <남성 판타지> 읽고 나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도 거뜬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효과!
한나 푸코는 책보다 책 가름끈을 좋아합니다... 다 뜯어 놓고 있음;;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0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땡투 내일 또 들어갈거에요 ㅋㅋ

잠자냥 2026-04-02 15:12   좋아요 0 | URL
엥? 결국 <나치즘과 동성애> 샀구나! ㅋㅋㅋㅋ
그만 사고 읽어!
암튼 땡큐입니다.

다락방 2026-04-02 16:01   좋아요 1 | URL
아뇨 ㅋㅋㅋ 남성판타지 선물용 구입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 또 살 예정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잠자냥 님 갑부될 예정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02 16:04   좋아요 0 | URL
다락방은 위만 큰 게 아니라... 손큰 백수 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6-04-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마어마한 책이네요. 조는 한나는 귀엽고요!
저는 3호의 등을 어루만지고 싶네요.

잠자냥 2026-04-03 10:57   좋아요 0 | URL
읽어도 왜 줄어들지 않죠? ㅋㅋㅋㅋ
망태형아 3호는 어제 푸코 쥐잡듯이 쫓다가 저한테 엄청 혼나고 냥무룩했답니다... ㅎ

독서괭 2026-04-06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파시즘을 다루는군요! 몰랐어요. 시작부터 흥미롭네요. 하지만 잠자냥을 사랑하는 냥이들아 도망가… 벽돌책 읽는 여잔 위험하다구 ㅋㅋㅋ 아무리 잠자냥이라도 책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한나 공부는 아닌가보군요. 벌써 졸다니 ㅋㅋ 한나랑 3호 귀엽

잠자냥 2026-04-06 15:11   좋아요 1 | URL
어젠 3호가 이 벽돌을 베개 삼아 자다가.... 너무 높았는지 금방 머리를 침대로 살포시 내려놓음... ㅋㅋㅋㅋㅋ
아직은 이 책 떨어뜨린 적 없다니까! ㅋㅋㅋ 580쪽 돌파! (그런데 놀라운 건 아직 전체의 40% ㅋㅋㅋㅋㅋ)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읽고 얻은 뜻밖의 수확은 톨스토이다. 이 책에는 손더스가 말하고 내가 격하게 동의하는 바, ‘70년에 걸친 러시아의 믿을 수 없는 예술 르네상스(고골, 투르게네프, 체호프,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오스트롭스키, 튜체프,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다수가 활동하던 시대) 시기’에 쓰인 러시아의 단편 7편 전문이 실려 있다. 거의 읽어본 작품들인데 한 가지, 오잉?! 내가 이걸 안 읽었다고? 읽었는데 잊었나? 이럴 수가!! 했던 작품이 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톨스토이의 <단지 알료샤>라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기 전, 제목만 읽었을 때는 ‘단지’를 ‘오직’, ‘오로지’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단지(但只). ‘Only, Alyosha’와 같은 의미로. 그런데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곧 여기서 말하는 단지란 ‘항아리(Pot)’를 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짧은 단편인데도 전문을 읽다가 울컥했다. 이 작품을 내가 왜 여태 몰랐지? 안 읽었을까 싶은 충격. 이래서 내가 톨스토이를 아예 내려놓지를 못하지 싶었다. 다른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최근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2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항아리 알료샤>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알료샤 고르쇼크 Алёша Горшо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르쇼크горшок’가 러시아어로 단지, 항아리를 뜻한다. 열린책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도 <알료샤 항아리>라는 단편으로 실려 있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내가 왜 이 이야기에 단번에 빠져들었는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글을 쓰기 전 한 번 더 읽어볼 요량으로 민음사판 <항아리 알료샤>를 펼쳤다(<밀리의 서재>에 있기에). 톨스토이의 단편이 대게 그렇듯이 이야기 자체는 참으로 단순하다. 단지 알료샤, 그러니까 항아리 알료샤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바보나 마찬가지로 톨스토이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순박한 바보의 전형이다. 그가 항아리 알료샤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꽤 단순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우유 항아리를 마을의 부제(副祭)에게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알료샤가 넘어지면서 항아리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를 때렸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그를 ‘항아리’라며 놀리기 시작한다. 항아리 알료시카- 

작고 마른 아이로 코가 큰 알료샤는 이때부터 항아리 알료샤라 불리며 마을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된다. 글을 몰랐고 글을 배울 시간도 없는 알료샤. 그럼에도 그의 미덕이라면 묵묵히 일을 잘한다는 것.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여섯 살에 이미 누이와 함께 방목장에서 양과 소를 지켰고, 좀 더 자란 후에는 방목장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말들을 관리한다. 열두 살부터는 밭을 갈고 마차를 몰았다. 힘은 없지만 수완이 좋은 알료샤. 알료샤가 열아홉 살 되던 해에는 그의 형이 병사로 징집되는 바람에 형이 일하던 상인의 집에서 형을 대신해 허드렛일 하는 하인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이 상인의 집에서도 약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알료샤를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료샤의 아버지는 이 녀석은 찍소리도 하지 않고 일을 잘한다고 장담했고, 상인은 떨떠름하지만 그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처음에 상인의 가족은 알료샤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한 티가 나고, 옷도 못 입고, 태도도 정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너’라고 부르는 이 바보 같은 소년, 아니 청년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곧 다들 그에게 익숙해진다. 그는 형보다 훨씬 더 쓸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찍소리 하지 않으면서 소처럼 묵묵히 일한다. 그래서 집에서처럼 상인의 집에서도 모든 일거리가 알료샤에게 주어진다. 그가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일이 그에게 떨어진다. 주인의 아내도, 주인의 어머니도, 주인의 딸도, 주인의 아들도, 점원도, 여자 요리사도 모두가 그를 여기저기로 보내 이런저런 일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알료샤는 찍소리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해낸다.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바보처럼,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은 무엇이나 순종적으로 하는 항아리 알료샤의 생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까? 그저 이렇게 묵묵히 살다가 묵묵히 죽어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인가? 싶은데 그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한다. 이 순간을 톨스토이는 이렇게 덤덤히 쓴다.


“알료샤는 상인의 집에서 일 년 육 개월을 그렇게 산다. 그리고 두 번째 해 하반기에 접어든 그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렇게 알료샤는 1년 반을 살았는데 갑자기 두 번째 해 하반기에 그의 평생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 일어났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사랑이구나....’ 했다. 그의 평생 일어난 적이 없던 일,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 수 있을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열아홉에 상인의 집에 들어와 하인처럼 일하는 청년에게 갑자기 일화천금이 주어질 리도 없고, 그가 갑자기 똑똑해지는 일은 더 불가능할 것이다. 일 년 반이 지났으면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이리라. 그런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사건이란 사랑,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일이 아니고서야 또 무엇이 가능하랴.

이윽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 

그 사건이란 그가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필요 때문에 생기는 관계 외에도 대단히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즉 부츠를 손질하거나 장에서 산 물건을 나르거나 말을 마차에 매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가 아니라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놀라움 속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식모를 통해서 우스치니야를 알게 됐다. 우스츄샤는 고아였고 젊었고 알료샤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했다. 그녀는 알료샤를 동정하게 됐고, 알료샤는 다른 사람이 그를, 그 자신을, 그의 도움이 아닌 그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서로의 필요 때문에 생기는 관계 외에도 대단히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놀라움 속에서 알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그에게 스며든다. 사랑이 스며든다는 표현은 이 우직한 항아리 알료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그가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도 웃음을 터뜨린다.”라고 쓸 뿐이다. 이 감정이 어찌나 새롭고 이상야릇했던지 알료샤는 처음에는 두려울 정도이다. “그래도 그는 기뻤고, 우스치니야가 꿰매 준 바지를 보았을 때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짓는다. 일할 때나 걸어갈 때 종종 우스치니야를 떠올린다. 우스치니야는 그에게 자기 운명을, 자신의 사연을, 온갖 사연을 들려준다. 그녀는 말하기를 좋아했고, 그는 그녀의 말을 듣는 게 즐겁다. 함께 웃고 자기의 숨겨진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듣기를 즐기는 두 사람. 사랑이다. 소박하지만 단순하고 그래서 깨끗한 사랑.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가? 그렇다면 이 소설은 별다른 매력 없이 잊혔을 것이다. 내게 이토록 인상 깊게 다가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료샤와 우스치니야 둘 사이에는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하지만 그건 둘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알료샤의 아버지도, 상인도 이 항아리 단지가, 묵묵하게 일 잘하는 항아리 단지 알료샤가 하녀인 우스치니야와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알료샤의 아버지는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 생각도 안 했다니. 결혼하고 싶어 했잖느냐. 때가 되면 내가 결혼시켜 줄 거다. 도시의 행실 나쁜 여자 말고 참한 여자를 골라 결혼을 시킬 거란 말이다.
 아버지는 많은 말을 했다. 알료샤는 서서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말을 마치자 알료샤는 빙그레 웃었다.
 “좋아, 그만둬도 괜찮아.”
 “아무렴, 그렇고말고.”
  아버지가 떠나고 우스치니야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아버지와 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문 뒤에 서서 듣고 있었다.)
 “우리 일은 글렀어. 뜻대로 안 될 것 같아. 들었지? 아버지가 화가 나서 못 하게 해.”
 그녀는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말없이 흐느꼈다.
 알료샤는 혀를 찼다.
 “어떻게 거역하겠어.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이런 바보! 멍청이! 답답이! 아버지의 단 한마디에 포기하고 마는 알료샤, 심지어 그렇게 쉽게 단념하는 알료샤의 모습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종적으로 따르는 이야기를 문 뒤에서 우스치니야는 다 듣고 있다... 이렇게 가슴 아플 수가!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화가 나서 결혼을 못하게 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알료샤는 혀를 찰뿐이다. “어떻게 거역하겠어.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정말 바보 같은 놈이로군, 쯧, 나조차도 혀를 차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러나......


 저녁에 상인의 아내가 그를 불러 창의 덧문을 닫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때, 아버지의 말을 따를 거지? 바보 같은 생각은 버린 거냐?”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알료샤가 말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중 <단지 알료샤>



<착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이 부분을 읽던 순간, 나는 저 문장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한 문장에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을 수가 있을까. 알료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알료샤, 항아리 알료샤. 누가 하라는 대로 묵묵히 살아가는 알료샤, 그래서 결혼조차 아버지가 하지 말라면 쉽게 포기하고 그러곤 웃지만....... 결국 울지 않을 수 없는 알료샤. 저 눈물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러나 알료샤 자신도 그 눈물의 모든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알료샤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다시 묵묵히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일해주면서 살아갈까? 그 후 알료샤의 인생은 짧게 끝난다. 그는 어느 날 지붕 위에 눈을 치우다가 떨어져 다치고 며칠 앓다가 죽는다. 죽기 전 우스치니야와 나누는 말도 항아리 알료사, 그답다. 그래서 매우 함축적이다.


“어떡해, 정말로 죽는 거야?” 우스치니야가 물었다.
“그러면 어때? 우리가 언제까지나 계속 살겠어? 언젠가는 죽어야 해.” 알료샤는 늘 그랬듯이 빠르게 말했다. “날 가엾게 여겨 줘서 고마워, 우스츄샤. 아버지가 결혼을 막은 게 더 잘된 일이야. 결혼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을 거야. 이제 다 괜찮아.”

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달라고 청했을 뿐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했다
그는 무언가에 놀라더니 몸을 쭉 뻗고 죽었다.


오직 한 번 사랑했으나 함께 살 수 없었던 여인, 결혼할 수 없었던 여인, 그 여인에게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어야 한다며, 자신을 가엾게 여겨 줘서 고맙다고, 결혼해봤자 아무 소용없었을 것이라면서 이제 다 괜찮다고 체념과 단념 속에 죽어가는 알료샤. 그는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한다. 무엇에 놀랐을까? 조지 손더스는 이 작품을 다 말하지 않는 것, 생략의 묘미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작품이라 칭송한다. 그러면서 “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달라고 청했을 뿐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했다. 그는 무언가에 놀라더니 몸을 쭉 뻗고 죽었다.”라는 문장 뒤에 이런저런 가능한 이야기들을 이어서 써본다. 그러나 그 무엇도 저 두 문장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저 위의 문장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이다. 이 문장 후에 알료샤의 심정을, 왜 우는지 구구절절 설명한다면 이 작품의 심오하고도 미묘한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알료샤가 사랑을 포기한 후 웃다 눈물짓는 모습도, 체념 속에 다 죽어가면서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놀랐다가 숨을 거두는 모습도 문장으로 그 까닭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정을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저마다 자기의 사정과 생의 경험에 비추어 헤아리고 반추해보지 않을까? 톨스토이도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으리라. 인생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생에 순종하고 살았다고 해서 그가 어리석기만 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포기했다고 해서 그의 마음속을 비추던 한줄기 빛마저 완전히 잊고 살아갔을까? 그렇게 비천한 자기의 생에도 가끔 빛이 있던 때가 있노라고 그래서 놀라움 속에 죽어간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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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6-03-0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드니 열정에 내 모든 것을 맡기는 이야기보다 이런 이야기...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용기를 내고 행동하고 내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체호프의 <애수> 라는 작품도 내 슬픔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결국 말한테 슬픈 마음을 털어놓잖아요. 러시아 소설은 아무 것도 못하는 이야기가 많네요. 작년에 읽은 <연기>도 그렇고.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결국 아무 것도 못했다를 문학으로 쓰는 게 훨씬 어려울 것 같아요.
전 오늘 아침부터 들어간 회의에서 못난 모습 보여서 좀 우울하게 시작했어요.
잠자냥님은 봄기운 느끼며 무탈한 하루 보내시길.

잠자냥 2026-03-05 12:53   좋아요 0 | URL
케이 님 말씀처럼 러시아 문학 작품에서는 이렇게 결국 세계에 굴복(?)하는, 운명에 순응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애수>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그런데 역시 케이 님 말씀처럼 용기를 내서 행동하고 결국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겠습니까. 해도 안 되는 일도 있고,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죠. 그래도 살아가는 게 인간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걸 다 꿰뚫어 보고 깊이 있게 써 내려가는 러시아문학을 좋아할 수밖에 없고요.

점심때 맛있는 거 드시고 우울함을 날려버리셨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6-03-08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너무 좋습니다. 제가 읽었더라도 정말 좋았을 작품인 것 같습니다. 잠자냥 님의 인상깊은 구절 얘기에는 조용필의 노래 가사도 떠올랐어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ㅠㅠ

잠자냥 2026-03-09 12:26   좋아요 0 | URL
악 조용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3-09 13:17   좋아요 0 | URL
내 나이 어쩔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3-13 0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루어진 사랑 얘기엔 관심 없는 잠자냥.. 비극 좋아하는 잠자냥! ㅎㅎ
함축적으로 한두문장에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게 제일 어려움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잠자냥 2026-03-13 09:55   좋아요 1 | URL
여행이나 해 괭.. 왜 거기서도 북플을....ㅋㅋㅋㅋ

독서괭 2026-03-16 00:41   좋아요 1 | URL
북플은 해야죠 인터넷만 된다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