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지켜보다 보면 차라리 그 사람이 빨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는 것 같다. 소년이 괴물에게 울부짖으며 숨겨왔던 진심을 말할 때 나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울고 말았다. 많이 안 알려진 것 같지만 정말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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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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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재밌는 책. 심심하기 짝이 없는 내 인생에도 죽어도 사랑할 수 없었던 두 남자와 나를 죽어도 사랑해 주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안되는 건 안되더라고. 하지만 키티야. 또 속는 건 아니잖아?! 나도 그 정도는 아니었어. 재밌는데 인간에 대한 통찰도 있다. 어리석지만 공감가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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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레베카 (개정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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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산 사람들을 쥐락 펴락하는 레베카. 이미 죽은 레베카도 감당하지 못하는 맥심이 나중엔 좀 불쌍했다. 다른 고전 추리 소설과 달리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결말에 짜릿했다. 힘든 육아 중에 며칠동안 이 책 읽으며 정말 즐거웠다. 다만, 난 [나의 사촌 레이첼]이 조금 더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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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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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게 좋다. 보통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페이지를 표시해두고 그 부분만 또 읽는 편인데, [더블린 사람들]은 어쩐지 전체를 한번 더 읽고 싶었다.
재독할만큼 좋아했던 책인데도 몇몇 소설은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하지만 실린 단편 중 제일 좋아했던 [이블린]은 다시 읽어도 내 기억과 내용이 일치했다. 워낙 짧은 소설이고 등장인물이 적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블린]을 처음 읽었을 때, 그녀가 영영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아 슬펐다. 젊은 그녀가 살아가야 할 길고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겐 뜻밖의 행운도 다정한 남자도 다신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지 못한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마흔이 되어보니 이블린은 프랭크를 따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갔으면 더 불행했을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왜냐하면 프랭크의 사랑이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고 또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블린이 지긋지긋하다고 한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람 마음만 믿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타국으로 무작정 떠날 순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프랭크가 이블린의 친아빠처럼 가정폭력을 일삼는 최악의 남자일 수도 있고 말이다.
이블린은 더블린에 주저앉음으로써 현재의 불행을 타파하진 못했지만, 현재보다 더 불행할지도 모를 미래에 자신을 내던지지는 않았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을 당시의 나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한 이블린이 답답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블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난 이블린이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떠나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랐지만, 제임스 조이스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 듯 허망하게 소설을 끝낸다.
사랑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끝나기 마련이다. 남녀가 사랑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역시 또 다른 모습의 끝아닌가.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사랑 이야기들이 전부 별다른 사건도 없이 시답잖게 끝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랑은 결국 끝이 난다는 사랑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대하여 내가 읽고 싶은 건 언제나 사랑이 끝으로 가는 이야기, 끝난 후의 이야기지 사랑이 꽃 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소설인 [죽은 사람들] 역시 좋을 수밖에. 이모인 모컨 자매가 해마다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댄스파티에 참석한 가브리엘과 작년이 올해 같고 내년도 올해 같을 그렇고 그런 더블린 사람들. 소설에서 내내 그들의 특별할 것 없는 행동과 대화만 계속 묘사되기에 대체 왜 제목이 [죽은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파티가 끝나고 호텔에 간 가브리엘의 아내 그레타가 어린 시절 자기 때문에 죽은 마이클 생각을 하며 남편 앞에서 흐느껴 울고 그제서야 난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죽은 사람들]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17살의 그레타와 마이클은 노래 부르며 같이 걸었고, 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고작 그런 소박한 시간만으로 그레타를 '죽도록' 사랑했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마이클. 그러다 정말로 죽어버린 가련한 마이클. 첫사랑이 죽는 이야기는 너무 반복돼서 좀 심드렁해질 법도 한데 어째서 읽을 때마다 울게 될까.
나도 그레타처럼 며칠 전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눈물을 철철 흘렸다. 누군가는 즐겁고 들떠서 맛있는 것이나 먹고 있을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남편은 백신을 맞고 드러누웠고, 이럴 때 곁에 있으면 좋았을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었다. 그렇게 밤 11시가 넘도록 안 자는 아기를 3시간 넘게 안고 서있자니 사무치게 고독하고 무릎과 허리 손목이 미치도록 아팠다.
모컨 자매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즐겁게 술 마시며 웃고 떠들었지만 다들 집으로 가선 가브리엘의 아내처럼 혹은 나처럼 죽은 이를 떠올리며 울다 잠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경험하고 마음속에 죽은 이 하나씩은 품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은 내가 언급한 [이블린]과 [죽은 사람들]외에 다른 소설들도 하나같이 음울하고 어두침침하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을 당시 나도 이 책처럼 우울했다. 내 앞에 예정된 미래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자살하면 엄마가 슬퍼할 테니 그럴 엄두까진 못 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이의 기억에서 나를 완전히 지우고 죄책감 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결혼 예물이었던 오래된 시계를 고치러 혼자 종로까지 갔다가 곧장 집으로 오기 서운하여 시계방과 가까운 종묘에 갔다. 8월의 무더운 날씨에 종묘는 마치 딴 세상처럼 고요했다. 종묘를 다 구경하도록 사진 찍으러 온 남자 한명밖에 못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꽤 넓은 종묘를 다 둘러보고 쉬는 중에 갖고 온 [더블린 사람들]을 펼쳤는데 때마침 [죽은 사람들]을 읽을 차례였다.
죽은 왕의 위패를 모셔놓은 종묘에서 [죽은 사람들]을 읽으며 혼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상황이 참 묘했다. [죽은 사람들]의 절반은 종묘에서 절반은 인천으로 오는 전철에서 다 읽었고, 마이클이 죽는 부분이 뒤에 있는 탓에 난 사람 많은 전철 안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처럼 사람이 가득한 1호선 인천행 열차였고 또 언제나 그랬듯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편히 울었다.
책을 다 읽고 집에 왔을 때 난 심각했던 감정적 위기를 그럭저럭 넘겼음을 느꼈다. 책 한 권 다 읽었다고 내 미래가 별안간 밝아지진 않았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에 내 곁에 책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책에 나의 시간이 덧입혀졌고, 어쩔 수 없이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힘든 시간을 지나 그 시절보단 행복하게 2022년을 맞이했다.


다들 새해에도 즐거운 독서하시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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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1-0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더블린 사람들 다시 읽고 싶어지게 하는 리뷰입니다. 케이 님 새해엔 육아 덜 힘들어지시고~ 책 읽고 글 쓸 시간 더 많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ㅎㅎㅎ 쌍둥이들도 건강하길 바라고요!

케이 2022-01-03 21:16   좋아요 1 | URL
어린 시절의 새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거 같아요. 근데 요즘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육아도 더 좋아지는 건 바라지도 않고 여기서 더 힘들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ㅜㅜ 휴. (이 댓글을 쓰는 와중에도 둘째가 안 자겠다고 아기 띠 안에서 발버둥 치네요.)
잠자냥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멋진 리뷰도 계속 부탁드릴게요~~~~
 
[eBook] 나의 사촌 레이첼 : 대프니 듀 모리에의 최고 걸작 국내 초역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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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사촌 레이첼] 은 편집이 끝내주는 영화 같다. 다른 소설이라면 꽤나 자세하게 설명하고 지나갔을 법한 과거의 사건, 인물 간 관계, 심지어 현재 상황까지도 생략하거나 아주 간단히 언급하며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된다. 때문에 짧지 않은 분량의 장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단 한시도 지루하거나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나 많은 내용을 생략해도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훨씬 재밌는 소설이 된다는 것에 놀랐다. 데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이 유독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 점 때문일 것이다. 누가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는 거.
주인공 레이첼은 모든 면에서 모호하다. 과거에 사치가 심했다는 소문은 사실인지, 첫 남편인 상갈레티는 왜 죽었는지, 언제나 그녀 곁을 지키는 레이날디와는 어떤 사이인지, 재혼한 남편 앰브로즈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독살한 것인지도 확실치 않아 독자는 오로지 1인칭 화자인 필립에만 의지하여 그녀를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려서 고아가 되고 삼촌 앰브로즈 손에 자란 25살의 순진한 청년 필립은 레이첼에게 푹 빠져 앰브로즈에게 물려받은 영지와 가문의 보석을 자발적으로 전부 레이첼에게 넘길 만큼 판단력이 흐려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그의 말을 100% 믿기도 어렵다.
또한 레이첼의 모국어가 이탈리아어인 탓에 필립은 레이날디와 그녀간 오가는 대화와 편지도 전혀 알아먹지 못하여 그가 알아내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토록 무력하고 맹한 필립을 레이첼이 정말로 사랑했는지 아니면 이용만 한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소설 중반까지 난 오로지 앰브로즈가 필립에게 보낸 편지에만 의존하여 레이첼을 판단했다. 앰브로즈가 필립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레이첼은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구석이 많은 여자다. 하지만 필립은 삼촌의 편지와 자기의 대부인 닉 켄들이 표한 우려까지 애써 무시하며 레이첼에게 사랑받기 위해 어리석을 정도로 온 힘을 다 쏟는다.
난 어린 필립이 불쌍했고 그래서 한 달 넘게 병상에 누워있느라 쇠약해진 그가 레이첼의 책상 서랍에서 맹독 성분의 금사슬나무 씨앗을 발견했을 땐, 꼭 그녀의 악행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그녀가 죗값을 치르길 바랐다. 심지어 난 소설 첫 장면에 나온 것처럼 레이첼이 교수형 당하는 결말을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은 내 짐작처럼 유치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필립은 레이첼에게 복수하기 위해 친구 루이즈와 레이첼의 죄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고자 하지만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대신 그녀가 애슐리 가문의 보석을 다시 은행에 반납했음을 알 수 있는 서류만 찾게 된다. 이쯤 되니 난 레이첼에 대해 점점 더 알 수 없었고 대체 앞으로 어떻게 그녀의 악행 혹은 선행이 밝혀질지 궁금하여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근데 바로 거기서 소설이 끝나버렸다.
비록 [나의 사촌 레이첼]은 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끝이 나지만 전혀 화가 나진 않았다. 하지만, 사고 가능성을 알면서도 레이첼의 산책을 말리지 않은 필립한테는 화가 났다. 난 그가 레이첼을 단죄할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며 레이첼 역시 그렇게 끝나면 안 되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녀에 대해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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