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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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책 선물쯤이야 흔한 일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정말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람이 보낸 선물이라 그 기쁨은 더 컸다. 선물을 보낸 이는 알라딘 서재의 거물이자, 여왕이자, 유명인사이자 셀럽(으응?)인 다락방 님이다. 다락방 님이 최근에 쓴 <에이미와 이저벨> 관련 글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흥미가 당긴다고 댓글을 달았는데, 덜컥 그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올리브 키터리지>를 기프티북으로 보내신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입소문은 들었으나 이상하게 흥미가 일지 않아 여태 읽기를 미뤘던 책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터라 선물 받은 기쁨은 더욱 컸다.

그 후로 나는 ‘알라딘 기프티북’의 유용함을 알게 되어, 다락방 님에게도 답례로 책 한 권을 보냈고, 카프카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최근 출간된 현대문학 세계문학단편선 <프란츠 카프카>를 한 권 보냈다. 친구 또한 기프티북의 간편함에 놀라며, 또 갖고 싶던 책을 선물 받은 행복감에 그날 하루를 기쁘게 보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까닭은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게는 때로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책으로도 얼마든지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지고, 또 그런 인연을 깊이 있게 가꿔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더욱이 최근 <사랑의 역사>를 읽고 나니 책 한 권으로 이루어진 인연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의 역사>에는 도무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제목만 읽고는 구구절절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어쩌면 흔한 러브스토리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읽기시작하자마자 조금 당황했다. 주인공은 ‘레오 거스키’라는 노인으로, 죽음을 앞둔 이 팔십대 노인이 독백처럼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던 내게는 참 뜻밖이다. 그런데 이 노인은 곧 자신의 소년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꺼낸다. 레오 거스키에게 ‘앨마 메러민스키’는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다. 레오와 앨마는 어린 시절 폴란드의 한 마을에 살았다. 레오가 서툴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모두가 앨마를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조금씩 자라났지만 곧 2차 대전이 일어나고, 나치의 위협이 심해질 무렵, 앨마는 먼저 미국으로 떠난다. 독일의 침공으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은 레오는 몇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 뒤늦게 앨마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아, 그래, 이 노인의 지극하고 절절한 사랑이야기인가 보구나 싶어질 때 또 다른 뜻밖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앨마’라는 이름의 열 네 살 소녀가 화자로 등장한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일까 궁금하다. 이, 앨마가 그 앨마인가? 그런데 보아하니 소녀의 이름은 ‘사랑의 역사’라는 책의 여주인공인 ‘앨마’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인 <사랑의 역사>는 책 속의 책인 ‘사랑의 역사’의 제목이기도 한 셈이다. 소녀는 엄마와 남동생과 살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빠는 아주 오래 전에 엄마에게 스페인어로 쓰인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책 앞에 이렇게 썼다. “샬럿, 나의 앨마에게 내가 글을 쓸 줄 알았다면 당신을 위해 이런 책을 썼을 거야. 사랑을 담아. 다비드”. 앨마 그녀는 누구였을까. 자기에게 이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앨마라는 사람이 소녀는 궁금하다. 엄마는 앨마가 모든 사람, 누군가가 사랑한 적 있는 모든 소녀, 모든 여자라고 말하곤 한다. 소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쩐지 앨마가 그냥 소설 속 인물이 아닌 것 같다. 작가가 직접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사랑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특정한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으리라.

한편 소녀 ‘앨마’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빠를 도무지 잊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새로운 사람을 찾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번역가인 엄마에게 신비로운 편지가 도착한다. ‘제이컵 마커스’라는 정체 모를 남자가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사랑의 역사’를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것이다. 앨마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와 엄마를 이어주면 어떨까 상상을 하다가 곧 작전을 짠다. ‘제이컵 마커스’라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낼 단서를 찾기 위해 그가 보낸 편지와 엄마가 번역한 책을 뒤지던 소녀는 점점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녀, 자신에게 이름을 준 ‘앨마 메러민스키’가 실존 인물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소녀는 엄마와 제이컵 마커스를 이어줄 수 있을까? 소녀에게 이름을 준 ‘사랑의 역사’ 속 앨마 메러민스키는 정말 실존 인물일까? 독자도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오 거스키’가 ‘사랑의 역사’를 쓴 작가가 아니겠느냐고, 그러니까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가 아니겠느냐고, 너무 쉬운 이야기잖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게 쉽사리 답을 주지 않는다. ‘사랑의 역사’를 쓴 작가는 ‘레오 거스키’가 아니라 ‘즈비 리트비노프’라는 이름의 무명작가로 그의 이력을 보면 1941년 폴란드에서 칠레로 도피했고 유일하게 출간한 책은 스페인어로 된 ‘사랑의 역사’ 그 한 권뿐이다. 레오 거스키는 폴란드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칠레에 간 적이 없다. 게다가 ‘사랑의 역사’의 서문은 ‘즈비 리트비노프’의 아내인 ‘로사’가 썼다. ‘앨마’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것이다. 리트비노프는 그토록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쓰면서 평생 ‘앨마’를 그리워한 것 같은데, 왜 결혼은 로사라는 여자랑 했을까? 앨마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작품은 이렇게 서로 전혀 관계없는 다양한 인물들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 한 권으로 맺어지게 된 인연을 따라가며 한 개인의 역사와 그 한 사람의 삶을 때로는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이 세계 역사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즈비 리트비노프’가 쓴 ‘사랑의 역사’는 그다지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책 속의 책인 ‘사랑의 역사’ 몇몇 구절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즈비 리트피노프의 ‘사랑의 역사’는 딱히 내가 좋아하는 류의 글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은 ‘초판본 이천 부 중에서 일부는 구매되어 읽혔고, 다수는 구매되어 읽히지 않았으며, 일부는 선물로 주어졌고, 일부는 서점 진열장에 놓인 채 바래가면서 파리들의 착륙장이 되었고, 상당수는 폐지 압축기에 들어가 아무도 읽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다른 책들과 함께 재생지 원료로 갈가리 찢’기는 역사를 이루며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최소 한 부는 누군가의 인생을, 한 사람 이상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적어도 소녀의 아빠 다비드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해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그 여자와 결혼해 딸의 이름을 책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짓지 않았는가. 어떤 이는 크게 주목하지 않아도 또 다른 이에게는 생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영향을 주는 책. 책이란 참 그렇게 놀라운 존재이다. <사랑의 역사>에서 나는 그런 인연의 힘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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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7-0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완전 행복하셨겠다는^^
<올리브 키터리지>는.. 개인적으로 정말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얼른 읽기를 강추합니다!!!

잠자냥 2020-07-07 15:0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하고 그랬어요. ㅎㅎ
<올리브 키터리지> 곧 읽겠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0-07-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기프티북이 있는줄 몰랐어요~~
알라딘 홈에 있나요?
책선물 받으셔서 정말 좋았겠어요^^

잠자냥 2020-07-07 16:09   좋아요 1 | URL
네, 저는 눈여겨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있더라고요.
선물할 책을 장바구니에 담으신 다음에 주문하기 바로 아래에 있는 ˝선택 상품 선물하기˝를 클릭하시면 기프티북 페이지로 연결되더라고요. 선물 받을 분의 정보는 핸드폰 번호/ 알라딘 서재 주소 / 이메일 / 카카오톡 이중 1개만 알고 있어도 가능해요. ^^

아니면 더 간단하게 특정 책 정보 페이지에서 장바구니 담기가 아니라 ˝선물하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다락방 2020-07-0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거든요. 소녀가 엄마와 사는건 기억나는데-소녀가 ‘덜 사랑해주세요‘ 라고 혼자 생각하던 장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런 내용인지는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기억도 안나는데.. 책은 뭐하러 읽는걸까요? 허무하네요... 니콜 크라우스의 다른 책을 아주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 않았는데... 책장 어딘가 뒤져보면 나올겁니다. 하하하하하. 독서인생 뭘까요? 물론, 책을 선물받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알라딘 서재의 거물이자, 여왕이자, 유명인사이자 셀럽(으응?)인 다락방 왔다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7-07 16:12   좋아요 0 | URL
네, 이 책 안 그래도 구간 정보 찾아보니 알라딘 서재의 거물이자 여왕이자, 유명인사이자 셀럽인 다락방 님 글이 보이더라고요. ㅋㅋㅋ 예전에는 민음사에서 나왔고요, 그 페이퍼를 보니 다락방 님은 분명 이 책을 읽으셨고, 니콜 크라우스의 다른 책인(최근 출간되 제목은 <위대한 집>), <그레이트 하우스>도 갖고 계실 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책은 원래 읽고 잊으라고 읽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7-07 16: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레이트 하우스를 ‘갖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0-07-07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거여유셀 다락방님 적확하다

잠자냥 2020-07-07 22: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이거 좋은데요! ㅋㅋㅋㅋㅋ
 
허랜드 SF... F.. C.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권진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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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작품임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를 최근에 읽었다. 읽기를 이제까지 미룬 까닭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허랜드’는 말 그대로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뜻한다. 제목만으로도 상상이 간다.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 그래서 폭력도 착취도 없는, 여자들만 사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작품이겠지. 남성의 지배도 받지 않고, 차별도 없는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유토피아 같은 세상. 조금은 예상 가능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알면서도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급진적이고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딱 길먼이 살았던 그 시대에 쓰였을 법한 작품이다. 그래서 명확한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그 한계 때문에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지는 못했다. 작품이 쓰였을 무렵을 생각한다면 그 의의만으로도 별 다섯을 주고도 남을 책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한계가 더 크게 마음에 걸렸다.

<허랜드>는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한 남자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그의 이름은 밴. 어느 날 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친구인 테리, 제프와 함께 미지의 땅을 탐험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리고 여행길에 오른다. 이 세 남자의 성격은 뚜렷하게 다른데, 테리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마초이고 그에 비해 제프는 세 사람 중 가장 섬세하고 이른바 여성스러운 면을 많이 지닌 의학도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사회학도 밴의 성향은 테리와 제프 그 중간쯤에 속한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에, 세 남자는 호기심이 잔뜩 일어난다. 그런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고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껏 기대에 부푼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노라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예상 가능한 남자들의 반응이 그려진다. 테리는 오직 여자, 여자들만 가득한 이상화된 여름 리조트 같은 곳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잔뜩 있고, 그 가운데서 마치 하렘의 술탄처럼 군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들만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발전이나 진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여자들은 늘 그래. 질서나 조직 같은 건 절대 기대할 수 없어.” “발명이나 진보를 기대해서는 안 돼. 아마 끔찍하게 원시적일 거야.” 등등 성차별적 발언을 쏟아낸다. 누군가는 그곳이 수녀원장 휘하의 수녀원 같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평화롭고 정다운 자매애 공동체’ 같은 곳. 그러나 테리는 남자가 없을 리가 없다며 남자들은 산 위에 살면서 여자들만 한쪽에 두는 것일 거라고, 그곳은 ‘일종의 국립 하렘’일 거라고 말한다. 이 테리라는 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인데, 솔직히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다수의 남자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드디어 도착한 미지의 땅, 허랜드. 이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젊은 여성 셋과 마주친 그들은 속임수를 써서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웬걸, 여자들의 신체 능력이 대단해서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녀들을 뒤쫓다가 마침내 이 미지의 땅 깊숙한 곳까지 다다른 그들은, 한 무리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 달리, 젊은 세 여성들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을 둘러싼 여성 무리는 젊다고 말할 수 없는 중장년 여성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여성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요하면서 진중하고 현명하고 두려움 없고 확신과 결의에 찬 얼굴’들을 하고 있다. 예쁜 여자들이 바글바글하고 그 안에서 하렘의 술탄처럼 군림하길 꿈꾸던 테리 및 밴과 제프는 당황하는데, 그들 앞에는 더 뜻밖의 일들이 기다린다.

이 작품은 세 남자가 허랜드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여자들만 이루어진 사회를 경험하면서 이 세계, 그러니까 그들이 떠나온 미국으로 대변되는 이 사회의 모순, 가부장제, 성차별, 교육 문제 등등을 꼬집는다. 테리는 놀랍도록 진보한 허랜드를 보면서 줄곧 어딘가에 남자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여자들만 사는 나라가 이토록 질서 잡히고 문명이 발달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성다운 면이 거의 없는 여자들을 보며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처음에 만난 세 여성처럼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하고 줄곧 그 예쁜 여자들, 머리가 길고 늘씬한, 여성스러운 여자를 찾아 ‘허랜드’를 뒤지고 다닌다. 밴과 제프는 테리에 비해 덜하기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런 가운데 허랜드의 여성들은 이 남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가르치고, 그들을 교육한다. 그들은 과연 교육이 될까? 서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질까?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모성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었다. 테리가 허랜드를 일컬어 ‘모성성에 미친 나라’ ‘어머니가 되어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일에 미친 나라’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도 얼마쯤은 이 의견에 동조한다. 시대를 앞선 길먼조차도 여성의 가치는 모성성에 있다고 본 것인가? 나는 여성의 으뜸 가치를 모성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성성 또한 하나의 만들어진 신화이며,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이 사회가 강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허랜드의 가장 숭고한 덕목이자 가치로 ‘모성성’을 내세우는 것에는 반기를 들고 싶었다. 물론 허랜드의 ‘모성’은 전통적인 모성애와 조금 달라서 그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모든 기술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아이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가장 완벽하게 보살피고 교육하는 개념으로서의 모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왜 ‘모성성’에 머물러야만 했을까. 더욱이 좋은 어머니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선별하고, 뛰어난 아이들만을 낳아서 교육하다는 설정에서는 우생학적 편견과 선택도 엿보여서 불편하다.
 
게다가 이 허랜드에는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숭고한 사랑이나 존중과 평등을 기반으로 한 동료애는 존재하지만, 그 밖의 ‘사랑’, 즉 에로스적 사랑은 그 사이에 낄 틈이 없다. 섹슈얼리티에서 출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가 없어서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남자가 없으므로 성적 욕망에서 비롯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오히려 여성의 욕망을 이성애에만 국한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길먼이 살았던 시대에는 동성애를 언급하기가 오늘날보다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는 길먼 자체가 동성애에 관심이 없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섹슈얼리티한 관심이나 성적 기쁨을 누리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설정 또한 이 작품의 빛을 바라게 한다. 하다못해 더 오래전에 사포의 저 레스보스도 존재했는데, 길먼은 왜 여성들만 사는 이 나라에서 에로틱한 사랑과 섹스를 배제한 것일까? 그저 숭고한 모성애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움도 질투와 시기도 없는 플라토닉한 사랑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니 나는 조금 끔찍할 것 같다. 과연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일까. ‘고요한 평화, 넘치는 풍요, 한결같은 건강, 넉넉한 호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매끄러운 운영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극복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사회라 할지라도 나는 이런 사회를 유토피아라고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이 세 남자와 젊은 세 여성을 ‘결혼’이라는 그 낡은 제도 안에 귀착시키는 결론도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물론 양성 사회가 다시 가능한지 실험하는 목적이 강하기는 했지만, 굳이 그런 방법 밖에는 없었을까? 결혼 후 테리가 결국 자기 아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하는 짓을 보라. 강간이 아닌가? 물론 이 서로 다른 사회의 남녀를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냄으로써 이 제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성애와 가부장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결혼’ 밖에는 없었나 싶어서 씁쓸해진다.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는 전복적인 설정을 해놓고 정작 디테일한 면에서는 모성성이니, 결혼이니 구태의연한 것이다.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도 욕망과 사랑, 섹스 그에 따른 질투나 미움도 있게, 그러나 그 모든 인간적 욕망을 극복하고 다스리면서 그들끼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더 유토피아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세 남성이 미지의 땅을 ‘정복’하려고 가는 설정이 아니라, 철저한 가부장제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 여성이 허랜드를 찾아가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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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올리신 허랜드의 목차를 살펴보니 단편 <누런 벽지>는 없네요. 제가 읽은 구판에는 단편 <누런 벽지>가 실려있었거든요. 이게 진짜 좋더라고요. 아마 이 책의 작가소개에도 나와있을테지만 결혼 후에 작가가 정신병 치료를 받게 되는데 닥터는 그녀에게 글을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작가가 그런 자기 자신의 삶을 소재로 삼아 <누런 벽지>를 써서 자신의 닥터에게 보냈다는 일화가 엄청 짜릿했어요.

이 책의 다음이야기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국내에 번역된것 같진 않더라고요. 저는 이 책에서 소젖을 먹는 인간에 대해 의아해하는 허랜드의 여자들을 보는게 좋았습니다. 비단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그린것뿐만이 아니라 (결국 그렇게 되겠지만)폭력에 대한 것도 다뤘다고 생각했거든요.

잠자냥 2020-06-24 14:33   좋아요 0 | URL
넵 이 책에는 딱 <허랜드>만 있어요. 저는 <누런 벽지>는 창비 세계문학단편선 미국편에서 읽었어요. <누런 벽지> 정말 좋죠. 그 작품으로 이 사람 이름 각인했던 것 같아요.

아, 이 책의 다음 이야기도 있군요. 아마 미국으로 간 엘라도어가 미쳐버리는 이야기가 아닐지 ㅋㅋㅋㅋ
저도 그 소젖 먹는 이야기는 좋았습니다. 인간이란 참...

다락방 2020-06-24 14:46   좋아요 1 | URL
저도 <허랜드>읽으려고 사서 읽었다가 <누런 벽지>에 반했었어요. 그건 다 읽어갈 즈음 완전 소름돋더라고요!

저도 다음 이야기는 미국으로 간 부부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제 추측엔 여자가 처음엔 미쳐버릴것 같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길들여지는게 아닐까....... 합니다.
 
컬러 퍼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7
앨리스 워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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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절판된 책이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컬러 퍼플>이 얼마 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명성은 익히 들었으니,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가고도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읽기를 마친 후에는 그래, 당연하지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이런 작품이 고전으로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책이 들어가겠는가.

서간체로 이루어졌는지도, 또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인 줄도 몰랐다. 그렇다. <컬러 퍼플>은 흡인력이 상당해서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뜻밖에도 재미가 있어서 며칠 만에 읽기를 마쳤다. ‘재미’라는 말은 어쩌면 모순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스토리는 흥미진진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읽기에는 고통스럽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첫 시작부터 끔찍하다. 열네 살 셀리는 아픈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강간당한다. 휴.... (책을 읽으면서도 괴로웠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또 한 번 고통의 한숨을 내쉰다). ‘대신한다’는 말도 모순이 있는데, 몸이 아픈 엄마가 부부 관계를 거절하자 아버지가 엄마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열네 살 밖에 안 된 딸을 강간하는 것이다. 엄마가 아프니까 너라도 해야 한다고.

그 후로 아버지의 강간은 습관적으로 일어나고 셀리는 임신하게 되고 아이까지 낳는 지경에 이른다. 자기 자식이자 동생인 아이들을 셀리의 아버지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에게 줘버린다.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자기 죄의 씨앗은 차마 마주보기 힘들었는가 싶기도 하다. 그 사이 아픈 엄마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이 인간 말종은 이제 셀리가 아닌 셀리의 여동생 네티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한다. 셀리는 네티도 그런 일을 겪을까봐 불안하기만 하다. 동생은 지켜주고 싶다. 셀리에 비해 네티는 예쁘고 영리하고 똑똑하다. 그런 동생이 아버지의 손에 유린당할까 셀리는 그저 좌불안석.

네티를 탐내는 사람은 또 있다. 셀리가 이 작품에서 늘 00씨라고 부르는 앨버트가 그러하다. 앨버트는 셀리의 아버지를 찾아와 네티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단칼에 거절한다. 네티는 절대 안 된다고. 자기가 차지할 속셈이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휴....( 여기서 또 한 번 한숨과 온갖 육두문자를 중얼거린다). 대신 저 못생긴 애를 데려가라면서 셀리를 가리킨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일을 잘하고, 애를 잘 돌본다는 것이다. 앨버트는 애들을 잘 돌본다는 말에 이제 스물이 된 셀리를 가축마냥 데리고 간다. 그는 애가 넷이나 딸린 홀아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셀리는 짐승 같은 아버지 손을 벗어나 또 다른 짐승인 남편의 손으로 넘겨진 것이다. 셀리의 지옥과도 같은 삶은 끝날 줄 모른다. 그 사이 네티는 자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아버지와 형부를 피해 달아난다.

이렇게 <컬러 퍼플>은 셀리가 처음에는 하느님에게 보낸 편지로,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헤어진 동생 네티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진다. 셀리와 네티는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이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셀리는 온전히 한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증을 일으키며 이 작품은 자매의 고통스러운 삶을 몇 십 년에 걸쳐 보여준다. 여기에 또 다른 여성들, 셀리의 며느리인 ‘소피아’, 앨버트의 애인이었던, 그리고 아직까지도 앨버트가 사랑하는 ‘슈그’, ‘올리비아’, ‘타시’ 등등 또 다른 흑인 여성들의 삶이 겹쳐지면서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흑인 여성들이 싸우고 연대하고 살아남는 과정을 고통스럽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나간다.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컬러 퍼플>은 ‘색깔’, 그러니까 흑백갈등에, 인종차별에 더 중점을 둔 작품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책은 사실 성차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남편’으로 이루어진 폭력적인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몇몇 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부장제 아래서 신음하며 살아간다. 남자인 앨버트나 그의 아들 하포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 또한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순종적이고 자기 목소리라고는 조금도 낼 수 없었던, 그저 착하기만 한, 어리숙한 주인공 셀리는 그 누구보다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아버지로부터 남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강간과 구타가 그녀의 일상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몹시 고통스럽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순응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셀리가 그토록 사랑한 동생 네티는 언니와 달리 똑똑했고 공부를 멈추지 않아 자기만의 목소리와 생각을 지녔고, 그렇기에 언니에게 늘 “싸워야 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셀리는 하느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저는 싸우는 법을 몰라요. 제가 아는 거라곤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법뿐’이라고 고백할 뿐이다. 그럼에도 자꾸 사람들은, 아니 셀리 주변 여성들은 그녀에게 싸우라고 말한다. “셀리 식구들하고 싸워야 해. 내가 대신해줄 수는 없어. 스스로 싸워야 해.” 심지어 앨버트의 아들 하포가 결혼한 ‘소피아’도 시어머니인 셀리에게 싸우라고 말한다. 매를 맞는 데 익숙해져서 ‘지상이 삶은 금방 끝나고 천국은 영원하다’ 말하는 셀리에게 소피아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님 머리부터 깨버리세요. 천국은 나중에 생각하고요.”(72쪽)


저는 평생 동안 싸워왔어요. 저는 아빠하고 싸워야 했어요. 남자형제들하고도 싸워야 했고요. 사촌들, 삼촌들하고도 싸워야 했어요. 남자들이 많은 집안에서 여자애는 안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 집에서도 싸워야 할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숨을 훅 내쉬웠어요. 저는 하포를 사랑해요. 그녀가 말했어요. 그건 정말이에요. 하지만 하포에게 맞고 사느니 그를 죽여 버리겠어요. (<컬러 퍼플>, 70쪽)


이렇게 주변의 당찬 여성들이 셀리에게 남편과 남편의 자식들에 맞서 싸우라고 요구해도 순종적인 셀리가 쉽사리 변하기는 어렵다. 싸우고 달아났지만 네티가 목숨을 잃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순종적으로 시키는 대로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자신이 차라리 나은 게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보 같은 여자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은 놀랍게도 남편 앨버트가 사랑하는 여자 ‘슈그’이다. 병든 슈그가 앨버트와 함께 셀리의 집으로 오면서 셋이 한 집에 사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런 상황보다도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더 기묘하다. 남편 앨버트처럼 셀리도 슈그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슈그 또한 셀리를 처음에는 무시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셀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저 자연의 위대한 색인 ‘보라빛’으로 물들이는 데 앞장서게 된다.

처음에는 남편의 애인을 사랑하는 셀리의 마음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동경인가 아니면 너무나도 노예 같은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처지에 익숙해졌나 싶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어리숙했고, 나날이 힘겹게 살아가느라 자신의 정체성 같은 것을 조금도 생각해 볼 틈이 없던 한 여인이 직접 부딪히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리고 그런 사랑으로 자신도 저 들판을 물들인 아름다운 자연의 색깔처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은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어쨌건 내가 기도하고  편지를 썼던 신은 남자야. 내가 아는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행동해. 찌질하고 게으르고 비열하지. 그 남자가 불쌍한 흑인 여자의 말에 한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거야.(<컬러 퍼플>, 255쪽)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한 신. 그런 신은 셀리가 아무리 간절히 편지를 써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셀리는 이 끔찍한 삶을 저주하면서 신을 모독했다. 그러나 슈그는 다정히 속삭인다. 신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그것’일 뿐이라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이라고. 좋은 걸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며, 그렇기에 ‘우리가 보랏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260쪽)를 낼 것이라고. 아마 그즈음부터 셀리는 하느님에게 편지 쓰기를 그만두고 동생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남자, 그러니까 신을 신경 쓰느라 신이 만든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 남자 대신 꽃, 바람, 물, 바위를 생각하는 셀리. 그리고 셀리는 이제 남편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 장면은 얼마나 통쾌한가.


나는 가난하고, 흑인이고, 못생겼고, 요리도 못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세상 만물에게 어떤 목소리가 말했어. 하지만 나는 여기 살아 있어. (<컬러 퍼플>, 273쪽)


<컬러 퍼플>은 처음에는 읽기 고통스러운 책이다. 셀리의 삶 자체가 줄곧 그러했기에. 그러나 누군가와 마음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는다. 삶을 바꿀 수 있다. 셀리의 인생이 증명한다. ‘비난에 맞서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소피아의 말은 셀리 뿐만 아니라, 네티, 소피아, 슈그, 애그니스, 올리비아, 타시 등등 이 세상 모든 여성에게 유효하다. 여성이여, 흑인이여, 싸우고, 연대해서 살아남으라. 그리고 더 소리 높여 목소리를 내라.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쓰인 이 책은 그렇게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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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1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의 절반쯤을 어제 읽다 잤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히 인종차별도 다뤘지만 성차별을 진하게 다뤘더라고요. 오래전에 영화로 봐서 성차별에 대한 건 기억하고 있긴했는데 슈그와의 사랑은 제가 기억도, 짐작도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아,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저도 처음에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싶었는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소피아가 남편을 때릴 때, 맞지 않고 맞서 싸울 때 너무 신났어요! 읽기 힘든 책임은 분명하지만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0-06-15 14:58   좋아요 0 | URL
전 오래 전, 영화는 차마 못봤어요. 영화도 좋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슈그와의 동성애는 처음에 모호하게 그려져서 이게 그게 맞나 저도 가물가물했는데, 아마도 셀리 그녀 자신도 몰랐던 거니까 그렇게 그렸던 거 같아요. 그런 목소리의 변화를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앨리스 워커가 글로리아 스타이넘하고 80년대에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 편집인으로 활동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인종차별보다 성차별이 더 두드러진 작품을 쓴 거 같아요. 전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았어요. 소피아가 하포 두들겨 패는 장면도 너무 통쾌하고 ㅋㅋㅋㅋㅋ

다락방 님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하고 이 책을 어떻게 엮어서 읽으셨을지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0-06-15 15:00   좋아요 1 | URL
흑인 페미니즘 사상 때문에 늘 미뤄두기만 했던 이 책을 읽게된 건 사실인데, 저는 컬러 퍼플 책장 넘기자마자 오히려 에코페미니즘 생각이 더 났어요. 컬러 퍼플 다 읽으면 페이퍼 써볼게요.

잠자냥 2020-06-15 15:03   좋아요 0 | URL
오! 기대됩니다! ㅎㅎ

Falstaff 2020-06-15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안정효 번역으로 읽었습지요.
남자도 첫 부분 읽으면 으윽! 이걸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쇼크 먹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제가 보기에 ‘슈그‘더라고요.
어쩄든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모든 인류가, 가해자 인종이든 피해자 인종이든, 여자든 남자든 간을 불문하고 다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0-06-15 15:19   좋아요 1 | URL
안정효 번역본은 셀리의 말에 충실해서 맞춤법 같은 거 원문처럼 엉성하게 번역한 거 같더라고요.
읽기는 좀 힘들어도 그것도 나름 흥미로웠을 거 같아요.
암튼 첫 부분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렇게 센 시작은.... 으으.....
슈그 정말 자유롭고 따뜻한 사람이죠.
모든 인류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eBook] 인생의 베일 - 세계문학전집 137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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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동안 이 책으로 인해 무척 즐거웠다.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싶은 그런 책이다. 서머싯 몸, 정말 얄밉게도 글 잘 쓴다. 모두 80장인 이 작품은 각 장이 단 몇 페이지로 이루어져 짧게 끝난다. 20분짜리 일일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서 아, 한 회만 더, 한 회만 더 이렇게 계속 보게 되는 드라마 같다.

 

시작부터 상당하다. 여자와 남자가 밀회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군가가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그들이 부부이고, 자신들의 집에 있는 거라면 이렇게 놀랄 일이 없다. 하녀나 하인 중 한 사람이겠지, 남자가 다독이자 여자가 말한다. 이 시간에 그들은 여기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월터일지도 모른다면서 공포에 질린다. 남자의 신발을 가리키고, 모자는 대체 어디에 뒀냐고 묻고, 남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숨을 곳을 찾고……. 딱 봐도 불륜이다. 그런데 남편인 월터가 한낮에 갑자기 집에 온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시작 부분 단 몇 쪽에서 펼쳐진다.

 

여자의 이름은 키티, 남자는 찰스. 여자는 유부녀여도, 남자는 총각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그 또한 아내가 있다. 전형적인 잘생기고 능글능글한, 자아도취적인 바람둥이 유형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남자, 뭐가 좋아서 반했을까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유형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렇다고 키티이 여자가 호감 가는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신분 상승 욕구와 허영 많은 엄마 때문에 그렇게 길들여져서 남자들 눈길을 즐기고, 돈 많고 잘생기고 집안 좋고 지위도 좋은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게 유일한 삶의 목표인, 자기의 엄마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그런 여자로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온갖 남자들의 구애를 즐기면서 아무나 상대할 수 없다고 뿌리치면서 도도하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꽉 차서, 아니 그마저도 자칫 지나가 버릴 거 같다. 이제는 구혼자들도 늙은 남자뿐이고 그마저도 드물다. 그런 중에 자기보다 못나고, 그래서 엄마에게 구박만 받아 온 동생이 먼저 결혼하게 될 것 같다. , 이걸 어쩌지! 초초하다. 엄마도 이제는 큰딸 키티를 냉대한다.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월터’- 이 남자는 키티에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얼마나 희미했는지 몇 번이나 춤을 춘 사이이지만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관심 있는 것 같지만, 지루하고 따분하고 음울하다. 그런데 어느 날 월터가 그녀에게 청혼한다. 키티는 엄마의 냉대도, 구혼자 없이 나이 들어가는 처량한 처지도,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도 견딜 수가 없던 차에, 월터의 청혼을 허락하고 만다. 그를 눈곱만치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세균학자인 월터는 예의도 바르고, 생긴 것도 딱히 크게 문제 삼을 것 없고, 남들 평판도 그만하면 괜찮다. 게다가 키티를 거의 숭배하듯이 사랑한다. 그런데, 키티는 그에게 전혀 애정을 느낄 수가 없다. 관심사도 서로 너무나 다르고, 이야기를 나눠도 도무지 즐겁지 않다. 세균학자인 월터를 따라 결혼 후 홍콩으로 오게 된 키티는 그곳에서 찰스를 만나고, 이 능글맞은 바람둥이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 키티에게는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 찰스에게는 그저 욕정 풀이 대상이었을 뿐인 그런 관계.

 

그런데, 키티와 찰스가 밀회를 즐긴 그 오후에 집안에서 문을 돌리던 소리의 주인은 하인이나 하녀가 아닌, 월터가 맞을까? 벌써 들킬 리가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서머싯 몸은 여지없이 찬물을 끼얹는다. 그 생각을 깨뜨려버린다. 그렇다. 그날 문을 열려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 한낮에 집에 돌아왔다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알게 된 사람은 월터였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배신에 크게 고통받은 월터는 아내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찰스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함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 떠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키티는 자신만만하다. 찰스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의 아내와 당장 이혼할 것이고 자신과 곧 결혼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찰스가 결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얼마나 잘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능글맞고, 호색한에, 키티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어떤 여자와도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남자라는 걸 뻔히 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오직 이 세상에 키티 뿐이다. 월터마저도 찰스가 그런 싸구려 인간임을 알기에 그런 제안을 쉽사리 한 것이다. 복수심에 가득차서 냉소 가득한 얼굴로. 실제로 키티가 모든 상황을 찰스에게 털어놓자, 이 능글남은 자신은 절대 이혼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라며, 키티를 설득한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가라고……. 그렇다. 자기만 살자는 거다.

 

찰스의 배신과 월터의 증오, 콜레라가 창궐하는 지역으로 끌고 가 자신을 죽이고야말겠다는 그 무시무시한 미움과 증오에 부르르 떨던 키티는 결국 월터를 따라서 중국 오지로 떠난다. 그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있다. 사랑이나 욕망, 배신, 질투 이런 인간의 감정들이 사치에 가까워 보인다. 월터와 키티는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아니 월터는 그런 중에도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는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이 죽음의 마을에서 형식적인 부부로 함께 지낸다. 그 사이 키티는 수녀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봉사를 시작하고, 워딩턴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허영기 많던 그 철없는 여인에서 조금씩 변모한다. 오직 죽음만이 넘치는 이 공간에서 인간의 세속적 욕망들은 그저 덧없어 보인다.

 

, 그러면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 이렇게 변한 키티가 월터의 참된 면모, 그러니까 이타성과 신의, 지성과 감성 등 위대한 품성을 갖춘 그의 진면목을 깨달아서 두 사람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결말로 가는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서머싯 몸은 얼마나 잔인한지, 아니 얼마나 인간을 잘 아는지,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꿰뚫어본다. 마치 월터가 키티의 그 경박한 속성을 다 알고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듯이, 서머싯 몸 또한 인간은 그렇게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고, 얼마나 얕고 천박하며 이기적이며, 또 비속한 존재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사랑의 속성도.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지 않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 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인생의 베일> 96~97)


월터의 키티를 향한 이 호소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절절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키티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필 수 없으리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사랑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랑은 동정이나 연민아 아니니까. 그가 아무리 세균학자로, 의사로 능력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생각하는 이타성 넘치는 인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고, 고결한 취미에, 똑똑한 지능을 갖추었더라도, 키티에게는 사랑을,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월터가 키티의 경박함과 매력적이지 않은 속성들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듯 키티 또한 잘생겼지만 그것 빼곤 딱히 볼 게 없는 찰스를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는 고마움조차 모를 수도 있어요. 상대방은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루함만 느낄 테니까요.”라고 말했듯이 키티는 월터가 자신을 사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함부로 대한다. , 인간이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베일>사랑은 있으나 진짜 사랑이라고 이를 만한 것은 없는 기묘한 소설이다. 월터는 죽어가는 순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기는 하지만 나도 알고,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한 인간, 그러니까 친구가 죽어갈 때 느낄 법한 연민이나 슬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마음이지 설레고 들뜨고, 안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그를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해지는 그런 사랑이 결코 아님을. 월터 그 자신 또한 알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죽은 것은 개에 물린 사람이 아니고 개였다. 쓸쓸히 말한 것이리라.

 

키티는 영국을 떠나 홍콩에서 지낸 후, 다시 홍콩을 떠나 중국 오지로 가면서 서서히 변화했다. 그 사이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경험한다. 스스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서머싯 몸은 그런 인간의 얄팍한 속성을 또 얼마나 잘 아는지! 키티는 찰스와 재회하고 그토록 혐오스럽다던 그 인간과 또다시 놀아나고 만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한심한 여자야,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키티가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느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혐오는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나 보다. 키티 그녀도 찰스와 다시 육체관계를 맺고는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그래, 그래야 마땅하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저 욕정일 뿐. 그래,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에서, 서로 싸늘한 월터와 육체관계를 맺었을 리는 없고 그랬다면 그처럼 오래 참았으니 욕정에 들끓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해하자……. 그래도 아이고 이 여자야 싶어진다. 못마땅하다. 그럼에도 서머싯 몸이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는 감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마지막에 키티가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나라로 떠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진실로 홀로서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부모, 특히 엄마로 인해 허영심 많은 여자, 그저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워진 키티. 그녀가 자기 딸만큼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거라는 결심을 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오롯이 혼자해쳐나가는 결말이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 서머싯 몸도 불완전한 인간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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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6-1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 진짜 최고의 2류라니까요!
어찌 책마다 그렇게 맛있게 쓰는지....라고 열라 생각했다가, <어센든>까지 가면 글쎄 흑흑... 폭망입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0-06-11 14:43   좋아요 0 | URL
헉! <어센든>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으로 나왔기에 한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꼬마요정 2020-06-11 15:05   좋아요 0 | URL
헉, 저 그저께 샀는데요...ㅠㅠ

Falstaff 2020-06-11 15:07   좋아요 1 | URL
몸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씀입죠. 그래도 이름 값이 있는데요.
작가 자신이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스파이 출신이잖아요. 그래도 세월이 많이 지나고, 헐리우드 스파이 물을 충분히 경험한 요새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 하여튼 그렇습니다. ^^;;

잠자냥 2020-06-11 15:3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는 그래도 한번 직접 읽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몸의 <과자와 맥주> 좀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음....

Falstaff 2020-06-11 15:52   좋아요 1 | URL
흑흑흑... 제가 읽은 <어센덴>도 그 출판사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재미가 덜했을까요? 신상웅이던가, 그 양반이 일본 태생이라 워낙 일본어에 능통해서요. ㅎㅎㅎ

다락방 2020-06-1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리뷰 읽어보니 다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
그리고 어센든..몰랐는데, 뭐라고요? 저도 한 번 검색해보겠습니다. ㅋㅋ

(잠시후) 검색했는데 이 책을 추천마법사가 다락방님께 추천한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6-12 10:48   좋아요 0 | URL
정말 또 오랜만에 재미난 책 읽었어요. 전 전자책으로 읽고도 왠지 종이책 사고 싶어지더라니까요. ㅋㅋㅋㅋ
어센든! 추천 마법사의 추천이 과연 잘 맞아떨어질지! 두둥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0-06-13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독서모임에서 이 책 만나고
나서 영화로도 구해서 본 기억
이 나네요.

정말 재밌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모옴이라는 냥반이 정말 당대
로맨스를 그리는데 있어 대단한
실력가이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잠자냥 2020-06-14 08: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이참에 영화도 한번 버려고요. ㅎㅎ
 
그녀들의 이야기 - 영미 여성 작가 단편 모음집
루이자 메이 올콧 외 지음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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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이야기》 이 단편 모음집에서 케이트 쇼팽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이디스 워튼 <다른 두 사람>은 이미 다른 단편집을 통해 읽은 작품이다. 그밖에도 루이자 메이 올컷이나, 제인 오스틴, 윌라 캐더, 샬럿 퍼킨스 길먼, 캐서린 맨스필드, 버지니아 울프 등의 이름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다른 작품들로 만나본 작가들이다. 그래서 처음 이 단편집을 봤을 때, 꼭 사서 읽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좋은 작가의, 괜찮은 작품들이 있을지 몰라. 그런 작가와 작품을 발굴한다고 생각하고 한번 읽어볼까 싶은 마음. 다행히 그 예상은 기분 좋게 적중했다.

첫 두 편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올컷의 <내가 하녀가 되었던 경위>는 올컷이 ‘말동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어느 집의 하녀 생활을 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독립적이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애를 쓰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바로 올컷 자신이다. 하녀 일을 하겠다고 나선 딸을 말리면서 루이자의 어머니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네 자존심이 너무 세지 않니”라고 말하는데, 거기에 루이자는 “저는 빈둥거리면서 얹혀살기에 자존심이 너무 센 거예요. 차라리 바닥을 닦고 빨래를 하겠어요.” 답한다. 이런 부분이 속시원하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누이의 ‘말동무’가 되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가온 ‘요세푸스 목사’가 루이자가 정작 찾아가자 누이의 말동무는커녕 그 자신이 루이자를 자기 하녀처럼 부리며 온갖 일을 시키는 장면이다. 그렇게 위선적이면서도 말은 얼마나 교묘히 잘하는지 역겨울 정도인데, 거기에  루이자는 당당히 응수한다.

두 번째 작품인 <세 자매>는 제인 오스틴 특유의 결혼과 로맨스에 대한 신랄한 냉소가 넘친다. 나는 제인 오스틴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많이 읽어보지도 않고 이런 소리를 하기는 뭐하지만,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성의 로맨스와 결혼 이야기에는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로맨스나 결혼 아니면 쓸 이야기가 없는가? 하는 반감이 들어 잘 읽게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제인 오스틴 장편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세 자매 중 누구하고 결혼해도 상관없다는 ‘돈만’ 많은 남자의 구애를 두고 세 자매가 고민에 빠지는 내용이 그려진다. 그중 이 결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첫째 메리로, 그녀는 이 결혼으로 자신이 원하는 부와 지위를 얻으리라 기대하지만, 결혼 상대인 남자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존재다. 그런 메리를 보며 “그 사람이 메리 언니를 행복하게 해주진 못하겠지만, 그 사람 돈과 가문과 저택과 마차는 행복하게 해줄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막내의 시선이 꽤 신랄하다. 읽다 보면 오직 돈과 지위, 명예 등 ‘사랑’이 아닌 ‘필요’ 때문에 이루어지는 결혼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씁쓸한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별 감흥 없이 읽어나가다가, 앗! 바로 이거야, 하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가 바로 그렇다. 이 단편을 읽고 작가의 다른 국내 번역작을 찾아봤는데 이렇다 할 작품을 발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평생 서른 권이 넘는 단편집과 소설을 출간했고, 소설 속 여성 인물들에게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여성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고 노력했다는 작가, 심지어 1926년에는 여성 최초로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5년에 한 번 그 시기에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가에게 주는 메달을 받았다는 작가. 그런데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너무나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뉴잉글랜드의 수녀>에는 루이자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잘 가꾸어진 집에서 홀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하루가 저물 때 쯤 그녀의 집에 조 다겟이 찾아온다. 보아하니 둘은 연인 사이인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연인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다정한 대화나 포옹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색한 상태에서 몇 마디 나누다가 다겟이 탁자 위에 놓인 루이자의 책과 잡지를 뒤적이며 살펴본다. 그러다가 다겟은 그걸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바로 그때 루이자는 어색하지만 단호하게 책과 잡지가 원래 놓였던 순서, 그러니까 다겟이 오기 전, 자신이 정갈하게 의도를 갖고 배치해놓았던 순서대로 돌려놓는다. 다겟은 머쓱해져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어떤 책이 위에 있는지가 중요해?” 그러자 루이자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답한다. “항상 이렇게 놓거든.”

아, 난 이 장면을 보고, 루이자와 다겟의 미묘한 사이, 그리고 루이자이 성격까지 단번에 파악했다. 루이자는 무엇보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가 세워놓은 일상의 가지런한 질서와 규율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사랑(?)하는 이가 오더라도 자기 공간에서 자신의 물건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그 배열 순서를 망치는 행동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허락은 하더라도 원래 모습 그대로 돌려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이다. 조 다겟은 루이자의 집을 나서면서 ‘자신이 마치 도자기 가게에서 나온 악의라곤 전혀 없던 순진한 곰처럼’ 느낀다. 반면 루이자는 ‘오랫동안 시달린 친절한 도자기 가게 주인이 곰이 나간 후 느꼈을 법한 기분’을 느낀다. 그가 나가자마자 양탄자에 묻은 흙을 ‘그럴 줄 알았다’면서 털어내기 바쁘다.

조 다겟은 일주일에 두 번 루이자를 찾아왔고, ‘섬세하게 꾸며진 그녀의 예쁜 방에 앉을 때마다 레이스로 만들어진 울타리’에 갇힌 기분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투박한 손과 발이 혹시나 요정의 거미줄에 걸릴까 봐 움직이기 두려웠고, 루이자 역시 똑같은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구절을 읽고, 루이자를 탓할 수도 있으리라. 연인 사이라면서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그런 시간을 즐기면서도 어떻게 연인이 자신의 방을 어질러놓고, 물건을 헤집어 놓는 일에 신경 쓰느라 서로에게 몰두하지 못할 수 있을까?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이렇게 생각하리라. 실제로 두 사람 사이는 미묘하다. 그들은 한 달 안에 결혼할 예정이다. 한때는 서로 사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글쎄.... 약혼 기간이 무려 15년이나 이어졌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느낀 것은 무려 15년 전이다. 15년 중 14년 동안 그들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편지도 주고받지 못했다. 그 긴 세월 내내 다겟은 호주에 있었다. 한몫 잡는다고 호주로 떠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며 자신을 기다린 여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져서 루이자의 어머니와 오빠가 죽었고, 그녀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15년 동안 이어진 약혼, 14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연인 아닌, 연인, 그리고 홀로 남겨져 그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사는 조용하고 정갈한 삶에 익숙해진 여인. 그런 여인 앞에 어느 날 옛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만 남은 약혼자가 돌아온 것이다. 조 다겟이 돌아왔을 때 루이자가 받은 첫 느낌은 곤혹스러움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4년도 아닌 14년이다. 서로 얼굴을 보기는커녕 편지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이 긴 세월 동안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속임수며 기만이 아닐까. 심지어 루이자는 이제 행복한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녀의 지난 세월, 특히 최근 7년간의 삶은 잔잔한 행복으로 그득했고, 그녀는 연인이 곁에 없다고 단 한 번도 불안해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뉴잉글랜드의 수녀>, 111쪽). 그런데 갑자기 결혼해서 남자의 집으로 옮겨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루이자는 혼자 사는 집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에 예술에 가까운 열정을 느꼈다. 그녀는 보석처럼 빛날 때까지 광을 낸 창틀을 보면 진정한 승리감으로 두근거렸고, 말끔한 서랍장 속에 청결히 개켜진 채로 라벤더와 전동싸리와 완벽한 순수의 향을 풍기는 옷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것들을 지킬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녀의 뇌리에 어떤 이미지가 스쳤는데, 너무 놀란 그녀는 거의 천박하다고 여기며 생각을 떨쳐냈다. 그것은 투박한 남편의 물건이 끝없이 널려 있는 광경, 섬세한 조화 속에 거친 남자의 물건이 끼어들며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킬 먼지와 혼돈이었다. (<뉴잉글랜드의 수녀>, 113~114쪽)


루이자는 이 고요한 혼자만의 삶을 뒤로하고 조 다겟과 결혼해 그의 공간으로 옮겨가게 될까? 사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그렇고, 전개되는 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독자가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결말로 나아가기까지 뜻밖의 사건이 일정 역할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루이자가 다겟과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자기만의 독립적인 삶을 계속 꾸려나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요와 평온한 협소함 자체가 그녀의 타고난 권리’가 되고 ‘하루하루가 똑같으며 이렇게 매끈하고 무결하고 순수할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기분. 그래서 ‘수도원에서 해방된 수녀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헤아리는 루이자. 그 결말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인 <뉴잉글랜드의 수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그렸기에 ‘뉴잉글랜드의 수녀’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아니 애초부터 그러한 길을 걷지 않음으로써 ‘수도원에서 해방된 수녀’와 같은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 무척 역설적인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누런 벽지>로 유명한 샬럿 퍼킨스 길먼의 <변심>도 짧지만 강렬하다. 역시! 하고 감탄하게 된다. 크게 놀라운 내용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고 완벽해 보이는 부부. 그들의 집에 젊고 아름다운 하녀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예상 가능한 전개. 알고 보니 남편이 하녀를 겁탈해서 임신하게 만들고 뭐 그런 내용이 펼쳐진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과 하녀의 관계를 알게 되는 장면이 매우 기발하고 절묘하며 스릴(?) 넘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편과 하녀 게르타의 관계를 알게 된 매로너 부인의 태도에, 더불어 그토록 오래 전에 ‘이런’ 작품을 쓴 작가에게 감탄하게 된다.

처음에 매로너 부인은 남편과 하녀의 관계를 알고는 분노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하녀는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는가! 매로너 부인은 불쾌함과 분노에 휩싸여 울며 애원하는 하녀 게르타에게 차갑게 말한다. “방으로 가서 짐을 싸.”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 후 혼자서 차분히 생각에 잠긴 매로너 부인은 곧 자신의 태도를 후회한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 28년 동안 받은 훈련, 학생으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대학에서 보낸 시간과 그녀 스스로 이루어 낸 독립적인 성장 덕분에 그녀의 정신은 게르타의 정신과는 전혀 다르게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있었다. 한 여자는 아내였다. 사랑이 넘치고 신뢰했으며 다정했다. 다른 한 명은 하녀였다. 사랑이 넘치고 신뢰했으며 다정했다. 어린 소녀였다. 낯선 나라에 홀로 와서 이 집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친절도 고마워하는 이 아이는 어떤 훈련도 교육도 받지 못했고 어린애 같았다. 물론 그녀는 유혹을 뿌리쳤어야 했다. 하지만 매로너 부인은 신뢰하는 사람이 우정의 가면을 쓰고 유혹할 때 그것을 알아보기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할 정도로 현명했다. 잡화점의 점원이었다면 게르타가 잘 뿌리쳤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매로너 부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여러 명을 뿌리쳤다. 하지만 존중해야 할 사람을 그녀가 어떻게 비난했겠는가? 복종해야 할 사람을 그녀가 어떻게 거부했겠는가? (<변심>, 155쪽)


그러니까 매로너 부인은 남편과 하녀의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본 것이다. 하녀에게 네가 내 남편을 꼬셨지! 나쁜 년! 운운하며 집을 나가라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주인의 얼굴을 하고서 하녀를 유혹해 자기 욕망을 채운 남편의 비열함을 알아차린다. 그 비열하기 짝이 없는 남편은 이런 짓을 그녀가 사는 집의 지붕 아래에서 저질렀다. 그러고 나서도 떳떳하게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밝힌 다음, 아내와 헤어지고 재혼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그저 순수하고 단순하게 마음이 아팠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남편은 본인의 쾌락을 위해 게르타의 행복들, 그러니까 ‘깨끗하고 젊은 아름다움, 행복한 삶의 희망, 결혼과 모성, 명예로운 독립’ 등등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매로너 부인은 남편의 피해자임이 명백한 게르타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위로 새로운 감정이 밀려오며 말 그대로 그녀를 벌떡 일어나게 한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곧추세우며 걸었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지은 죄야.” 그녀가 말했다. “이것은 여성을 상대로 범한 죄야. 모성을 상대로 범한 죄야. 아기에게 저지른 죄야.”(<변심>, 157쪽)


매로너 부인은 게르타의 방으로 돌아가 그저 울고만 있는 이 어린 소녀를 위로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는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둔다. 아무튼 꽤 통쾌한 결말이다. 게다가 100여 년 전에 남성의 그루밍 성폭력 범죄를 꿰뚫어 보고 힘없는 어린 소녀에 대한 연민과 연대, 그로써 비열한 범죄자인 남편을 단죄하는, 그리고 그런 응징을 위해서는 여성이 깨어있어야 함을, 통찰력 있게 써내려간 샬럿 퍼킨스 길먼에게 그저 찬사를 보낼 뿐이다.   

이렇게 여성 간의 연대를 강조한 작품으로 이 책에 실린 유일한 희곡인 수전 글래스펠 <사소한 것들> 또한 빛난다. 이 작품에는 남편을 살해한 것이 틀림없는 여성을 섣불리 단죄하기보다는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먼저 이해하려는 ‘피터스 부인’과 ‘해일 부인’이 등장한다.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인 보안관과 검사 등은 자기들만의 객관적이라는 관점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면서 부인들이 주목하는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며 그녀들의 그런 태도를 비웃기 바쁘다. 그러나 사실 그 ‘사소한 것들’ 안에는 존 라이트의 아내가 왜 남편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중요한 단서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도-종류가 다를 뿐이지 다 똑같아요. 나라면 그녀에게 병이 다 깨졌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터지지 않았다고 말해요. 전부 말짱하다고요.”라는 해일 부인의 말은 그래서 여성의 이해심과 직관, 연민, 배려가 오롯이 담긴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을 읽고 수전 글레스펠의 작품을 더 찾아보고, 그이의 희곡 <앨리슨의 집>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것은 당연한 순서랄까.

조라 닐 허스턴의 <땀>도 강렬하다. 백인들의 세탁물을 빨래해주며 근근이 살아가는 딜리아. 그런데 그녀의 남편 사이크는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주제에 바람까지 피우고, 게다가 걸핏하면 딜리아를 두들겨 팬다. 15년 전만 해도 딜리아가 자길 떠날까 봐 벌벌 떨었던 인간이 이제는 아내를 향해 온갖 욕설과 구타 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웃에서도 혀를 끌끌 차며 그를 보고는 “곰한테 내장을 내줄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말한다. 딜리아는 뼈 빠지게 일하면서 ‘뜬눈으로 누워서 그들의 지난 결혼생활에 널려 있는 파편들을 응시’한다. ‘멀쩡한 건 하나도 없었다. 꽃 같은 것은 그녀의 가슴에서 새어 나온 짭짤한 물에 오래 전에 가라앉았다. 그녀의 눈물, 그녀의 땀, 그녀의 피. 그녀는 결혼에 사랑을 가져왔지만 그는 성욕만을 가져왔다.’(<땀>, 195쪽). 딜리아는 이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과정이 강렬하게 그려진다.


“인간이 올곧지 않으면 세상 어느 법도 그 사람을 올곧게 만들 수 없어. 아내를 사탕수수처럼 취급하는 놈들이 세상에 숱하다고. 처음에는 영글게 즙이 꽉 차서 달콤하지. 하지만 쥐어짜고 짓이기고, 비틀어서 단물을 쏙 빼먹어. 성이 찰 때까지 빨아먹은 다음에 사탕수수 껍질처럼 그냥 내버리는 거야. 그러는 동안 그놈들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혐오해. 그래도 그놈들은 한 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계속 쥐어짜. 그러고 나서 사탕수수 껍질처럼 말라비틀어진 여자가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다고 싫어하는 거야.” (<땀>, 198쪽)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런 작가와 작품들을 새로 발견한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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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08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잠자냥 님이 극찬하신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네요. 샬롯 퍼킨스 길먼과 메리 월킨스 프리먼의 작품이요. 너무너무 읽어보고 싶어요. 땀은 제목만으로도 뭔가 훅- 오네요.

저도 언젠가 얘기하려고 했는데 제인 오스틴을 딱히 좋아하지 않거든요. 너무나 유명한 작품<오만과 편견>도 저는 딱히 좋지를 않았고요. <엠마>도 별로였어요. 엠마는 읽다가 엠마 성격 마음에 안들어서 대차게 깠던 기억도 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죄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잠자냥 님도 당연히(!)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너무 반가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나름 제인 오스틴 작품을 여러권 읽긴 했네요. 설득, 오만과 편견, 엠마, 노생거 사원까지. 많이 읽었다. ㅎㅎㅎㅎ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보다는 제인 오스틴에 관련된 것들이 더 재미있었어요. <비커밍 제인>이나 <제인 오스틴 북클럽>이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라거나. 후훗. 이런 재미있는 작품들이 만들어진걸 보면 제인 오스틴이 정말 큰 사람이긴 했는가봐요.

이번달 월급날에는 오늘 리뷰쓰신 이 책을 사야겠어요. 후훗. 책 사는 날들의 연속이네요. 하핫. 언제나 그랬듯이..



잠자냥 2020-06-08 15:09   좋아요 0 | URL
와 그래도 제인 오스틴 작품 많이 읽으셨네요. 전 그렇게 많이 읽을 생각조차 들지 않더라고요. 제가 사실 빅토리아시대 여성 작가들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로맨스와 결혼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작품.... 정말 따분하고 재미없............ 남녀가 핑퐁하는 그런 거 노관심.... 사랑하든가 말든가 노관심..... -_-;; 그 시절을 다룬 영화, 특히 제인 오스틴 작품을 영화로 만든 그런 영화들도 지루해서 미쳐버릴 거 같은;;; 그냥 생각만 해도 그 대사들이 막 오그라들어요;;; 휴........ 정신 차려! 사랑과 결혼이 전부냐 싶어서;;; -_-;; 암튼 다락방 님 반가워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08 15:15   좋아요 1 | URL
이렇게나 인기 많은 제인 오스틴인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권 읽었지만 전 제인 오스틴은 아닌걸로..... 그렇지만 새로 나온 민음사의 맨스필드 파크를 읽어보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음..써놓고 보니 읽어보고 싶다기 보다는 사고 싶은 거네요? 민음사 책장에 깔맞춤하기 위함인가...

정말 반가워요 잠자냥 님. 엉엉 ㅠㅠ 문학 좋아하면서 제인 오스틴을 안좋아하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20-06-14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4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5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5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