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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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것은 명제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죽는다. 노년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인도, 노년의 삶도 모두 자기와는 동떨어진 현실,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들인다. 그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젊으면 젊을수록 더 그렇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살아온 나날을 헤아려 보면 어느새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나 싶은 그런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노년의 삶은 아직 좀 먼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아니 지금의 나이보다 열 살만 더 어렸다면 노년의 삶을 다룬 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뜻밖의 우정>이라는, 삼십대 후반의 젊은이와 노인들의 우정의 기록을 담은 책을 읽게 된 것일까.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저런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상실을 경험하기. 그것도 거듭되는 상실을 겪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그런 생각이 요즘 더 강하게 들었던 까닭은 최근에 내 둘째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늙음은 사람의 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여러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만 열 살을 넘긴 녀석들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노라면 고양이의 얼굴에도 몸에도 늙음의 흔적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작이 느려지고 활동량이 줄어들고, 혼자 있기 싫어하는 습성 등은 사람에게서나 내 늙은 고양이에게서나 똑같이 볼 수 있는 노년의 증거이다. 

내 나이 서른 즈음보다는 노년의 과정에 놓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없던 질병이 생기고 그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가 내 둘째 고양이처럼 어느 날 무심히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 그것이 모든 생명이, 동물이 마주하는 생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쓸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쓸쓸함과 허무함을 견디기가 싫어 젊은 날에 생을 접어버릴 수도 없으니, 묵묵히 저 노년으로 가는 과정을 나 또한 걸어갈 수밖에는 없겠지, 그런 생각에 이 책을 읽은 것도 같다.

처음에는 유쾌했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검도를 배운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이제 일흔이다. 30여 년 전, 검도장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여자가 무슨, 검도를? 얼마나 나오겠어? 무시와 경멸의 시선을 받던 그녀는 예순일곱 살에 검도 6단을 취득했고, 여전히 검도를 하는 대단한 ‘할머니’로 늙어, 존경과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 뒤를 잇는 할머니들의 사연도 유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결성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에서 새 멤버를 뽑는단다. ‘수니와 칠공주’의 평균 나이는 85세. 새 멤버를 뽑는 이유는 기존 래퍼의 노환으로 인한 죽음 때문이다.... 오디션은 자기소개에 이어 한글 실력을 검증하는 받아쓰기, 랩 따라 하기, 글짓기, 가창력과 춤 실력을 보는 애창곡 부르기와 막춤 추기 등으로 진행된다. 새 멤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정열 할머니는 과연 래퍼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즐겁게 읽어나가다가 세 번째로 소개된 ‘승기’의 사연에서 아, 내 노년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이자 영화광이다. 승기 할아버지는 저자와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기도 한데, 아마도 그 수많은 책과 영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공감과 소통의 활로를 열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영화로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와 <룸 넥스트 도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꼽는다. 이 작품들은 나 또한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퍼펙트 데이즈>는 좀 더 남다른데, 아마 ‘승기’ 할아버지도 이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에게 깊이 공명하면서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자기만의 정확한 생활 루틴이 있고, 그 루틴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출근해 묵묵히 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깨끗이 청소한 방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삶.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와 <뜻밖의 우정>의 ‘승기’,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잠자냥’의 삶은 그렇게 닮아있을 것이다. 



“들판을 보고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은 가난하게 버스를 타고, 여관을 떠올리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는구나. 이렇게 사는 게 결국 내 인생이었던 거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거야. 다들 자기 삶을 자기대로 사는 것뿐 아니겠냐. 어떤 이는 나보고 청승맞다고 하지. 세상에 남길 거라곤 헌책과 DVD뿐인 내 삶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 삶은 실패한 삶일까...... (p.59)


‘승기’ 할아버지에게는 몇 천 권의 책과 몇백 장의 DVD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자 전 재산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던 이 애서가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은 가난하게 살았노라 말한다. 똑같은 빈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거기에 여관을 지을 생각을 했던 친구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부자 친구가 늙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죽을 맛이라고 한다. 반면 승기는 바쁘다. 영화도 보러 가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하루하루가 알차다. “여전히 읽을 책이 많이 남았다는 게 사는 기쁨”(p.57)이라 말하는 승기 할아버지의 그 심정을, 삶을, 나는 안다. 나 또한 일흔쯤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직도 읽을 책이, 들을 음반이, 영화가 내 앞에 이렇게 쌓였는데 하루가 너무 짧구나. 인생이 너무 휙휙 지나가는구나 한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 역시 지금의 나이에도 전 재산이랄 것이 가득 쌓여있는 책과 음반뿐인데 앞으로라고 얼마나 달라질까 싶어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 회의감에 울적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 성정상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박봉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 직업을 은퇴할 때까지는 할 것 같고, 그 이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나날을 보내지 않을까. 집사2는 은퇴하면, 아니 지금이라도 너만의 출판사를 차려서 만들고 싶은 책을 세상에 내놓으라고 북돋는데 그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나는 그냥 원 없이 읽는 게 좋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내 삶도 존중해준다. 한 15년 후면 고양이들도 우리 곁을 다 떠나서 돌볼 존재가 사라질 텐데 그때쯤엔 정말 나 자신을 더 돌보는 삶을 살게 되려나. 일흔에도 검도를 하는 할머니처럼, 여든에도 래퍼를 꿈꾸는 할머니처럼 그 나이쯤에도 테니스를 치고 좋아하는 밴드 공연장은 찾아가서 즐기고 싶다는 바람은 가져본다. 


선생님은 내게 삶을 긍정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영화를 보며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좋은 이야기는 결국 삶에서 희망을 보게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삶의 고비마다, 슬픔과 좌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울게  했던 좋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면 믿을 수 있었다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은 결국 희미한 빛을 보여주리라. 내가 희망을 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는 내게 당부하듯 말했다. 너도 좋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라. 그런 다음 좋은 이야기를 쓰거라. (p.61)


<뜻밖의 우정>에는 이렇게 저마다 개별적인 생활을 꾸려가는 다양한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을 마주하며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보기도 하고, 늙음이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로구나,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싶어서 오늘의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통화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지? 그들은 왜 그렇게 대중교통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기둥처럼 붙잡는 것일까? 그들은 왜 깔끔하지 못할까? 차가운 시선을 던지던 내게 아프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일들은 생명을 지니고 늙어가는 모든 존재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피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이 책에는 ‘북새’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 또한 할머니들에게 익힌 말이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때, 노을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시간을 북새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서 노년을 북새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간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그 북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뜻밖의 우정>은 가만히 돌아보게 한다. 승기 할아버지의 조언처럼 좋은 이야기 속에 살고, 그리하여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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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9-25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새 처음 듣는 말인데, 저 시간을 북새 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군요.
저는 요즘 수영장 다니면서 20년, 30년 다니셨다는 어르신들을 종종 봐요 70대신데 대회도 나가시고요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독서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한거 같아요😄

잠자냥 2025-09-26 09:5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북새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표준어는 아닌 것 같고 사투리인 것 같아요(‘노을’의 방언이라고 나오네요). 책에서도 북새라는 말을 설명할 때 할머니들이 “여기서는 그걸 북새라고 한다.”하시거든요. 주로 전라-충청 지역에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망고 님은 일흔 넘어서도 수영! (근데 벌써 날 춥다고 안 가시면 어쩌려고... :p)

다락방 2025-09-25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이 글이 좋은 이야기 이네요. 이렇게 좋은 이야기 하나 더 남기셨어요. 저는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읽고 저 역시도 좋은 이야기를 남겨야겠다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5-09-26 09:57   좋아요 1 | URL
다락방의 좋은 이야기는..... 싱가포르에서 한국어 교사가 되고 앤드류와 진한....(?) 사이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9-26 11:40   좋아요 0 | URL
👏🎉🎊🥳😘

독서괭 2025-09-25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허억 둘째가 무지개다리 건넜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아아…. 뒤늦게나마 자냥님 토닥토닥..
북새라는 단어가 있군요. 북새통밖에 몰랐는데.. 뭔가 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페넬로페 2025-09-26 01:22   좋아요 1 | URL
잠사모 회장님
조용히 사퇴하신 건 아니시죠? ㅎㅎ

독서괭 2025-09-26 08:44   좋아요 1 | URL
사임당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ㅎㅎ 심기일전 하겠습니다 🤗

잠자냥 2025-09-26 09:57   좋아요 1 | URL
괭! 사임당하기는 개뿔.... “독서괭 한 번도 잠사모 회장인 적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독서괭 2025-09-26 13:27   좋아요 1 | URL
엥??? 이건 또 무슨 말 😱

잠자냥 2025-09-26 14:05   좋아요 1 | URL
아니 무슨 회장이 최애(엥??)의 둘째 고양이 소식을 2주 가까이 몰라요?!
(이 책에서도 할머니들이 자기 최애(임영웅/장민호 등) 얼마나 지극히 아끼시던지....좀 읽고 배워봐.

독서괭 2025-09-26 14:16   좋아요 0 | URL
용서한다매…. 🥺

구단씨 2025-09-25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작가의 전작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책은 뭐랄까. 현실적으로 더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지금 살아가는, 곧 마주할 어느 시기를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도 책 읽어가면서, 영화 한 편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하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잠자냥 2025-09-26 09:58   좋아요 0 | URL
오! 이 책 읽고 계시는군요. 작가의 전작도 마음에 남았다는 말씀 이해가 가네요.
저 또한 작가의 전작도 궁금해지더라고요.
구단씨 님의 감상도 궁금해집니다.
알라딘 서재에선 책과 함께 늙어가실 분들 많을 것 같아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5-09-2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의 명제는 사실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할 것 같아요.
점점 현실이 되니까요.
승기의 인생 영화 셋
저도 너무 좋게 봐서 반갑고
독서광, 역시 저도 죽을때까지~~
그냥 이대로 살다가
아프지 말고 한 날 웃으며 죽으면 좋겠습니다^^

잠자냥 2025-09-26 09: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첫 문장 명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해요. ㅎㅎ
페넬로페 님도 그 영화들 좋게 보셨군요!
역시 좋은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아요. 좋은 책처럼 말이에요.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건강하게, 아니 덜 아프면서 그렇게 늙어가면 좋겠습니다.

단발머리 2025-09-25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판을 보고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요. 들판을 보고 여관을 떠올렸다 했을 때, 순간 이해가 안 되었던 ㅎㅎ
일흔이 되어도 읽고 싶은 책이 남아있을 거라서 덜 심심하겠지~~ 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는 합니다. 그 때도 잠자냥님의 페이퍼가 나의 ‘읽고 싶어요‘가 될 것이며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9-26 09: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빈 들판에 숙박업소 차릴 생각하는 분들 알라딘에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다...... 다락방은 음식점을 꿈꾸려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흔에도 책을 읽고 알라딘에 페이퍼를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갰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5-09-26 11:27   좋아요 0 | URL
저도 여관하고 무슨 상관이지? 했다거 나중에 글에 언급되어서 아 돈벌이 여관이구나, 했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5-09-26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점점 드니까 뭔가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죽을 때 다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남은 사람이 정리하기도 힘들 것 같고... 그래서 진짜 책정리 못했는데, 책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더디지만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 책도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겠죠? 그리고 정신과 인품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쉽지 않네요. 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듯 합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삶은 한 번뿐이고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이 책을 읽은 잠자냥 님의 글이 너무 좋아서 책도 보고 싶어요. 나에게 올 북새의 시간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여전히 서재에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둘째가 고양이별로 갔나요? 저는 작년에 셋째였던 첫째가 떠나서 엄청 슬펐는데 잠자냥 님도 많이 슬프시겠습니다. 저는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울고 그랬어요ㅠㅠ 이별할 줄 알고 있지만 늘 이별은 슬프네요.ㅠㅠ

잠자냥 2025-09-26 09:59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엔 음반 사는 건 자제하고 있어요. 집에 있는 것만 돌려들어도 죽기 전에 다 듣지 못해! 이러면서요. 그런데도 책 사는 건 자제가 안 되네요. ㅋ 이것도 언젠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책은 꼭 읽어보세요. 운동 좋아하는 꼬마요정 님은 더 공감하면서 읽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ㅎㅎ

아 저런 꼬마요정 님도 작년에 힘든 일이 있었군요. 셋째였던 첫째라니 더 슬펐을 거 같아요. 얼마나 정이 들었겠어요.... ㅠㅠ 전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겠냐 싶었는데 둘째 보내면서 운 것처럼 울었던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울지는 않을 것 같은;;;;; (엄마 미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둘째 보내고 나서 알라딘에서 냥이들 키우는 분들 많이 생각했어요. 꼬마요정님네도 자식이 참 많은데;;; 그 애들 보낼 때 얼마나 슬플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또 겪을 일들이니까, 그럼에도 녀석들이 주는 웃음과 행복의 크기가 너무나 크니까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잘 버텨봅시다!

희선 2025-09-28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한테나 오는 시간인데, 사람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듯합니다 갑자기 누군가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안 좋아지기도 하겠지만...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나라도...

저는 들판 보고 문학 떠올리지 못하고 여관도 떠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들판 보고 저런 곳에 뭔가 짓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한 듯도 합니다 예전엔 논밭이었던 곳이 이젠 거의 건물로 채워졌어요

둘째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여전히 마음이 허전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겪어야 한다니,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오래 아프지 않고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희선

잠자냥 2025-09-29 12:02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저도 빈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지도 여관을 떠올리지도 않을 것 같네요. 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아프지 않고 묘생을 마감한 둘째 녀석, 그것도 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케이 2025-10-01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호선만 20년 넘게 타고 있어서 유독 노인을 많이 보는데요. 할머니들은 대체 왜 그렇게 짐들이 많을까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중 조그마한 가방 매고 다니시는 분 거의 없어요. 보통은 엄청 무거워보이는 백팩+구르마까지.
몸도 저렇게 조그마한데 왜 저렇게 무거운 걸 이고 지고 다니실까... 싶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무거운 거 드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이제 어깨가 아파서 못하거든요.
심지어 마트에서 음료수 사는데 1+1이니 한병 더 가져가라는 걸 저 무거워서 못가져간다고 그냥 온 적도 있는데, 이런 저조차 할머니 되면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려나요.
그 할머니들 세대 생각하면 짠한 맘이 들긴 해요.
하지만 할아버지들은 정말 정 붙이기 어려워요 ㅋㅋㅋㅋ ㅜㅜ 극복해야겠죠.

잠자냥 2025-10-01 12:12   좋아요 1 | URL
저도 짐 없이 다니는 편인데... (회사 올 때 가방 없이 출근한 적도 많아요;;ㅋㅋㅋ) 늙으면 짐이 많아질까요?
구르마는... 걷기 힘들어서 의지해서 밀고 가는 용도인가 싶기도 해요. 근데 거기다가 또 잔뜩 뭘 넣기는 하시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아버지들 정 붙이기 어렵다에서 빵터졌습니다.....저도 그렇긴 해요;;ㅋㅋㅋㅋㅋㅋㅋ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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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람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다. 병원에 있으면 좋든 싫든 인간을 관찰하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연령, 출신,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라면 서로 전혀 관련 없을 사람들이 단지 같은 시기에 이런저런 질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공간에 모이게 된다. 그러고는 며칠씩 숙식을 함께 한다. 아픈 사람이든 보호자든 쉬 그 공간을 떠나기 어려우니 거의 반강제적으로 병실에 머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낯선 타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병자로 입원하든 보호자로 있든 병실에서 오가는 대화가 싫고, 병실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친해지려고 말 거는 것은 더더욱 싫다. 서로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도 병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온갖 질문을 해댄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이, 사는 곳, 직업, 관계, 결혼 유무...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을수록 이 무례한 질문의 개수와 종류는 다양해진다. 커튼을 절대 열지 않을 것.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도 인사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더라도 거절할 것......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수칙이다. 

그 조그만 공간에서도 권력자가 생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권력을 갖기 쉽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권력자에게 빌붙어 알랑방귀를 뀌어댄다. 그게 뭐라고. 이곳에 며칠이나 있는다고. 그러고는 그새 공동의 적을 만들어 쑥덕거린다. 게다가 우습게도 질병에도 계급가 지위가 있는지 서로 자기가 더 중병이라고 우겨댄다. 이 세계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땐 자기 존재의 비루함을 감추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아는데 여럿이 모이면 다 같이 비루해지는 꼬락서니로 폭주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모이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혐오가 깊어질 때쯤,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베른하르트만큼 인간을 혐오하고 조국 오스트리아를 증오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장광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까지 인간을 혐오할 일인가 싶어지다가도,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기에 이럴 수밖에 없지, 싶어지기도 한다. 병실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또 그즈음 친구 몇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정리했기 때문인지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생각났다..... <소멸>은 현재 절판인데 이대로 묻히기는 참 아까운 작품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내가 읽었던 판본과는 출판사를 달리하여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도 조용히 묻히기에 아깝기는 마찬가지라서 예전에 썼던 글을 올려본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소설이지만 그저 픽션은 아니다. <소멸>의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철학자로 유명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과의 12년간의 우정의 기록이다. <소멸>의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느낌도 대충은 감 잡을 수 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혐오하고, 비정신적인 세계에 역겨움을 토로한다. 물질적인 것, 속물적인 것, 인간의 허위의식 등 그에게 역겨운 그 모든 것에 쓴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소멸>에 비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순전히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 때문이다. 아니, 파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우정 때문이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는 내로라하는 가문인 비트겐슈타인가(家) 출신이다. 물론 그의 삼촌인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가문에서는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 명망 있는 가문, 재벌 가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조카와 삼촌 모두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물질적인 세계와는 결별한 삶을 살았고 오로지 정신적인 세계에 줄곧 탐닉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가문에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나 조카인 파울 비트겐슈타인, 이 두 사람을 모두 미친놈 취급을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자로서 그 이름을 떨쳐도 가문에서 돌아오는 소리는 비아냥거림과 멸시뿐이었다고 한다. 철학자로 유명해진 삼촌에게도 이럴진대, 조카인 파울,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우정을 쌓았던 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향한 그들의 경멸은 오죽했을까. 삼촌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녔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안타깝게도 정신병이 발병해 35세 이후로는 늘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했기 때문이다.

파울이 정신병으로 병원을 들락거릴 때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폐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한 사람은 정신병, 한 사람은 폐병- 정신과 몸에 병을 앓으며 더욱 친근한 우정을 나누게 된 두 사람. 미치광이와 폐병환자가 어쩌다 친구가 되었을까? 그들의 우정은 한 음악회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파울은 클래식 음악(특히 오페라)에 엄청난 애정을 지녔고 그로 인해 상당한 식견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의 우정은 꽃을 피운다.

음악, 철학, 정치, 예술 등 온갖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며, 비정신적인 세계에 똑같은 혐오감을 표현하며 그들의 우정은 깊어진다. 조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때도 사람들의 무지와 허영, 물질에 대한 집착을 비판할 때도 그들은 한 목소리였고 뜻을 같이 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12년간의 우정의 기록을 읽다 보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두 사람은 물질적인 것이 최선으로 여겨지는, 비정신적인 이 세계를 살아가기엔, 익숙해지기엔 너무나 예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예민함이 한 사람에게는 정신병으로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폐병으로 드러났으리라. 파울이 먼저 죽고 베른하르트는 끝끝내 그의 무덤을 찾아가지 않는다. 베른하르트에게 파울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염증 나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정신적인 세계를 뜨겁게 추구했던 파울은 미치광이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런 그의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기는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쉬기에, 진정한 죽음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이 세상에서 정말 죽은 사람들, 살아 있지만 무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삶’을 포기한 채 좀비처럼 먹고 싸고 자고 물질의 구축에만 온 생애를 보내는 이들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만나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또 다른 면목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소멸>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작가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은 있었다. 파울에 대한 애정이나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한 또 다른 사람, ‘나의 삶의 사람’이라고 부르던 그녀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진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쓸데없는 만남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그 인간관계가 자신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인맥이 어쩌고 하면서)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관계 맺은 인간들이 과연 자신의 정신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본다면 지금 당장 잘라버려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관계들이 부지기수다. 베른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생애에 정말 어떤 의미를 준 사람을 우리는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다 셀 수 있으며, 우리가 솔직하다면 이런 사람을 셀 때 단 하나의 손가락도 필요하지 않을 텐데도 다섯 손가락을 다 써야 한다고 믿는 우리의 파렴치함에 나는 저항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현암사, 110쪽)

폐병 환자였던 베른하르트와 미치광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결코 길지 않았던 우정의 기록은 이 염증 나는 세상을 견디기 위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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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9-0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계시는가요? 다 잘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병원은 사람도 사람이지만 공간 자체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대학병원이라도 갔다오면 기가 다 빨려서는 어휴... 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른하르트는 <모자> 딱 하나 읽었어요.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더 이상 손이 안 가더라구요. 추천하신 책 찾아봐야겠어요. 또 이렇게 책 한 권 장바구니로 가는가요...

잠자냥 2025-09-04 15:14   좋아요 1 | URL
제가 아픈 건 아니고 보호자로 있었습니다. 며칠 병실에서 잠자고 그럴 땐 정말 괴로웠...; (아픈 사람은 더 괴로웠겠죠.....) 아무튼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곧 퇴원 예정입니다. 😸 감사합니다.

베른하르트는 냉소와 독설을 기반으로 한 독한 유머도 매력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 기회 되면 한 작품 더 읽어보세요! 요정 님 엘레나 페란테에 이어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책 또 발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5-09-04 18:13   좋아요 1 | URL
곧 퇴원이라니 다행이에요!!

손 안 가는 책 넘나 많습니다. ㅋㅋㅋ 그러면서 왜 또 사는지ㅜㅜ

다락방 2025-09-0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베프가 누구인지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면서, 괜찮아 어차피 안긴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니까, 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이 리뷰를 읽다보니 저는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안의 어떤 면은 분명히, 제가 가진 인간관계가 저에 대해 많은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고요.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제 인생에 영향을 준, 제 그 다음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 친구가 생각납니다. 자연스레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친구 덕에 저는 평생 지니고 살았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거든요. 모니터를 앞에 두고 그 친구의 말을 듣고, 그 날 제가 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후로 제가 달라졌고요. 어떤 사람들은 내 인생에 영향을 주기 위해 아주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중요한 일을 하고, 그리고 다시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아 댓글 쓰다가 저 왜 갑자기 감상적이 되어버리죠? 하하핳하ㅏㅅ.
리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5-09-05 10:04   좋아요 0 | URL
전 베프라는 존재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딱히 갖고 싶다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대부분은 사귀는 사람이 베프나 마찬가지여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암튼 어제 다락방 님이 감성 터지는 사람이 된 것은..... ㅋㅋㅋㅋㅋ 사이먼 때문에

바람돌이 2025-09-04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병원에 계셨군요. 보호자든 환자든 병원 자체가 참 힘들죠. 이제 퇴원하신다니 다행입니다. 베른하르트나 파울 모두 서로를 만나서 그나마 다행인 사람들이네요. 서로가 아니면 저 예민하고 폐쇄적인 사람들을 누가 이해해주겠습니까? 저도 염세적인 사람 힘들어요. ㅎㅎ

잠자냥 2025-09-05 10:07   좋아요 1 | URL
휴가를 내는 데 한계가 있어서 병원에서 잔 건 한 4일인가 5일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출퇴근 ㅎ
베른하르트나 파울처럼 서로에게 맞는 사람끼리 잘 만나면 좋죠.
저는 기본적으로 염세적이긴한데...ㅋㅋㅋㅋ 모든 일에 초긍정 사람보단 이게 낫다고 생각도 하는데...
그렇다고 염세염세염세 기운 뿌리면서 다니는 건 또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중2병 같음ㅋㅋㅋㅋ). 걍 겉으론 티 안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5-09-05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호자로도 환자로도 병원에 있는거 참 괴롭죠. 저는... 환자 보다 보호자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환자는 할 일이 있잖아요 (계속 아플 것) 근데 보호자는 계속 대기..... 고생 많으셨어요, 잠자냥님. 곧 퇴원하시게 된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그래도.... 인생에 그런 사람 5명은 된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가끔 8명 될때도 있고요. 잠자냥님의 리뷰 읽다보니 설득되어 버리네요. 서로를 알아보는 이런 우정 흔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사람, 이런 우정, 이런 친밀함이라면 8인분일 수도 있겠네요.

잠자냥 2025-09-05 10:10   좋아요 0 | URL
계속 아플 것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아픈 와중에도 좀 나아야죠! ㅋㅋㅋ
계속 대기는 아니고 ㅋㅋㅋ 암튼 요즘은 출퇴근했습니다.

단발머리 님 주변에 사람 많은 것 같더라니... 와 8명 될 때도 있군요!!! *엄지척*
 
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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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잘 안 읽히는 때가 있다. 문학적 감성이 좀 버거운 시기에 그렇다. 이런 때 소설을 읽으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왠지 심드렁하게 읽히고 별것 아닌 묘사에도 닭살이 돋는 등 역효과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읽어도 완벽하게 빨려 들어가서 읽게 되는 작가들이 (드물지만) 있다. 8월에 읽은 책 목록을 보니 소설은 딱 두 권. 서머싯 몸과 슈테판 츠바이크. 둘뿐이다. 그렇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금세 몰입, 모든 걸 다 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몸(Maugham)보다는 츠바이크 쪽이 좀 더 그런 것 같다. 


최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츠바이크의 중단편 모음집이 나왔다. 표제는 <감정의 혼란>- 녹색광선에서 출간한 <감정의 혼란>과 제목은 같지만 ‘불타는 비밀’ ‘아모크 광인’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이렇게 세 작품이 더 들어있다. ‘불타는 비밀’도 예전에 읽은 작품이라(‘타버린 비밀’ ‘일급비밀’ 등등으로 번역되어 나왔음), 이걸 사? 말아? 고민했지만 결국 ‘광인’과 ‘어느 여인’이 궁금해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광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광인처럼 츠바이크가 촘촘하게 글자로 지어낸 세계에 빠져 들어갔다.  

여행 중인 ‘나’는 인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반복되는 배 위에서의 나날, 같은 배에 오른 사람들의 안면을 다 익힐 정도로 익숙해지고 ‘수평선에서 보이는 돛이며 뛰어오르는 돌고래며 새로 눈에 띈 시시덕거림이며 스쳐가는 농담’ 등 아주 하찮은 화젯거리마저  바닥이 나 지루함에 몸부림 칠 때쯤 ‘나’의 앞에 뜻밖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선박에 숨어 지내고 있던 한 남자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남자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느낀 ‘나’는 그에게 도와주겠노라 다가서지만 남자는 한사코 도움을 거부한다. 도리어 ‘도와주겠다’는 말에 냉소와 함께 분노를 터뜨린다. 오직 하나의 부탁은 자신을 봤다는 말을 이 배를 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는 것뿐이다. ‘나’는 선실로 돌아와서도 이 남자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의 사연을 알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여기에서도 츠바이크의 심리 묘사는 빛을 발한다. 


인간 심리의 수수께끼는 불안할 만큼 나를 사로잡아, 그 관련을 밝혀내고 싶은 충동이 핏속 깊이 들끓게 한다. 기이한 인간은 눈앞에 보이기만 해도 정체를 알고 싶다는 욕구에 불을 붙일 수 있으며, 이러한 열정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욕정 못지않게 뜨거운 법이다.


결국 남자의 입을 열게 하는 데 성공하는 ‘나’-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아모크 광인’의 사연이 펼쳐진다. 남자의 직업은 의사로 7년 전에 인도로 왔다. 유럽에서 잘 나가는 의사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어떤 사연 때문에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남자는 말 그대로 ‘돈도 없고 시계도 없고 환상도 없이’ 유럽에서 출항, 인도의 면급 주재지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은 온통 밀림으로 농장, 덤불, 늪밖에 없는 오지나 다름없다. 그래도 처음에는 의욕적인 꿈에 부풀기도 했다. 현지어를 익히고, 경전도 원문으로 읽고, 풍토병을 연구하고, 학문에 힘쓰고 원주민의 심리도 밝혀내려 애쓰고…. 다리가 부러진 그 지역 부시장을 성공적으로 수술해주기도 하면서 명성도 얻는다. 이렇게 의사로서 그럭저럭 적응해 갔지만 차츰 기력이 빠지면서 이 모든 것들이 시들해지고 만다. 

어느덧 사람들과의 왕래도 끊은 채 혼자 틀어박혀 술 마시고 몽상하는 삶에 남자는 젖어든다. 7년을 대부분 원주민과 동물 사이에서만 살아가면서 점차 무기력해지는 그. 남자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 같은 곳에 있다 보면 누구나 기운이 바닥나고 아무리 키니네를 파먹어도 막을 수 없는 열병이 골수에 파고들어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처지고 물러지게 되지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의사로서 인도에서의 계약 기간이 끝나 연금을 받고 유럽으로 돌아가 새 인생을 살 날만 기다리던 그 남자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 

열대병, 향수병, 노스탤지어… 외로움으로 죽어가는 한 사내에게 한 여인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것도 몇 년 만에 찾아온 첫 번째 백인 여자이다. 그런데 베일을 쓴 이 여자는 수다만 떨면서 말을 빙빙 돌릴 뿐, 왜 남자, 그러니까 이 의사를 찾아왔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남자는 처음엔 백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들떴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여자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교묘히 질문을 던진다. 여자에게 필요한 진료가 무엇일지 추측하면서 진실을 더듬어 나간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그런 과정에서 그녀에게 매혹당한다. 

이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 남자가 여자한테 반한 사연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좀 특이(?)한데 여자들이 도도하고 쌀쌀맞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로, 유럽에 있을 때도 이런 여자와 문제가 있어서 사고를 일으키고 인도로 도망치듯이 떠나온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그런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로 찾아온 여자가 간절히 부탁하거나 눈물짓거나 등등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당당하고 도도하게 ‘강철 같은 꿋꿋함’ ‘남성 같은 꿋꿋함’을 보이면서 자신보다 강하게 굴면서 자기를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매료당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이 여자의 도도함을 꺾어버리고 여자가 자신에게 부탁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충동에 시달린다. 

이제 이 도도한 여자와 그런 여자에게 지배당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 기세를 꺾어버리고 싶은 남자의 기 싸움이 시작된다. 사실 이 여자가 의사를 찾아와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중절 수술이었다. 이런 수술이었기에 이토록 동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의사를 찾아온 것이고,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이 비밀을 이용해 그녀를 협박한다거나 부탁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런 목적으로 의사를 찾는 다른 여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한껏 도도하고 당당하게 구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여자는 수술비로 큰돈을 제시한다. 

헌데 의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여자의 도도함에 반해버려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욕정이 번득이듯이 솟아오른다. 여자가 악마처럼 안하무인으로 굴수록 더 넋이 나가버린다. 부탁하면 들어주겠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크게 비웃으며 말한다. “아니요-부탁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나락에서 떨어지겠어요!” 결국 남자는 분노로 불타올라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고 만다. 이 장면에서는 ‘마조히즘’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모피를 입은 우아한 여인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했던 ‘제베린’, 숭배해 온 여자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더욱 잔인하게 대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냉혹하게 채찍질을 해달라고 부탁하던 ‘제베린’의 모습이 남자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이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될까?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낯선 곳에서 소외와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남자는 자신과 인종이 같은 백인 여자를 만나 동질감을 느끼며 설레던 것도 잠시, 알 수 없는 불안과 타오르는 욕망을 느끼며 넋이 나간 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에 휩싸인다. 외로움이 불러일으킨 광증일까? 아니면 본디 이 남자의 성향, 도도하고 쌀쌀맞은 여자한테 사족을 못 쓰는 그 기질이 이 무자비한 여자 앞에서 폭발하고 만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을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라. 이 작품의 끝에 가면 남자가 ‘나’의 ‘도와주겠다’는 말에 그토록 냉소적으로 분노하게 된 까닭도 밝혀진다. ‘도와주고자 하는 굉장한 의무’에 관한 의사로서의 의무와 한계 등등 그 남자의 고뇌가 한껏 내밀하게 그려진다. 남자는 여자를 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자의 자존심과 도도함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어 읽은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도 ‘광인’ 못지않게 재미나다. 이야기는 한 여관에 모인 일곱 명의 숙박객들이 옆 호텔에서 벌어진 호텔 주인의 아내와 호텔 손님으로 묶던 한 청년의 야반도주를 놓고 벌이는 입씨름에서 시작된다. 서른세 살가량의 몸가짐 단정한 부인이 단 두 시간 동안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 시간 동안 정원에서 커피를 함께 마셨을 뿐인데 하룻밤 새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는 생판 처음 본 청년을 무작정 따라나섰다. 당신이라면 이 여자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호사가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엉터리없는 소리요. 허무맹랑한 환상”이라고 깎아내리면서 대부분은 여자를 비난한다. 유독 화자인 ‘나’만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타고난 연애꾼도 전혀 아니고 열정적 연인은 더욱 아닌, 평범하고 연약한 연인이 용감하게 자기 의지를 따랐다는 데 사뭇 존경심이 든다고. 그러면서도 연민을 감추지 못한다. “오늘은 괜찮을지라도 내일은 분명 깊은 불행에 빠질 테니까요.”

화자의 말을 듣던 한 노부인이 용기를 얻었는지 한때 충동적으로 휘말려든 자신의 옛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마흔에 남편과 사별한 후 인생에서 열정을 잃고 방황하던 그녀는 우연찮게 한 청년이 룰렛 도박에 집중하며 사력을 다하는 걸 보고 그 열정에 반해 딱 하룻밤 동안 그와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휘말린다. 열정으로, 광기로 빛나는 얼굴. 불안과 호기심에 이 청년을 따라간 사십 대의 여자… 예순일곱 해의 세월 가운데 단 스물네 시간 동안 일어났지만 평생을 지배하는 그 추억....... 이 노부인의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츠바이크가 그 심리를 숨 가쁘도록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긴 여자는 말한다. “제가 그 열 시간 동안 인생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이전에 마흔 해를 예의바르게 살아오면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예요.”


당신이라면 오직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리고 낯모르는 사람과 온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츠바이크는 도덕이나 관습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인간의 열정과 광기, 무의식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츠바이크의 작품이 이토록 흡인력 있는 까닭은 그가 그리는 욕망의 지도에 다들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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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08-27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번 반하는 잠자냥 님의 리뷰!

잠자냥 2025-08-27 15:36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25-08-27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정의 혼란 녹색광선으로 읽어서 건너뛰려고 했는데 이 리뷰 읽다가 이 문장에 완전히 꽂혔습니다.

‘헌데 의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여자의 도도함에 반해버려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욕정이 번득이듯이 솟아오른다‘

어머, 이건 사야해! 그런데.. 어떡하죠? ㅋㅋㅋ 전자책으로 살까요? 아님 싱가폴 배송..을 할까요? 돌아버리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궁금하다. 도도함에 반해버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욕정이 솟아오르는 그것... 너무 궁금합니다!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언젠가 한번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욕정이 솟아오르게 되고 그러잖습니까?

잠자냥 2025-08-27 16:15   좋아요 1 | URL
다락방은 꼭 읽어야 합니다... 왜냐면, ㅋㅋㅋㅋㅋ 40대 여자가 20대 남자한테 홀딱 반해서 하룻밤 보내는 저 스토리 읽으면서 내가 다락방하고 앤드류 생각했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자책으로 사~!!

잠자냥 2025-08-27 16:17   좋아요 0 | URL
그리고 그 장면을 츠바이크가 얼마나 찰지게 묘사하는지...... *먼산*

잠자냥 2025-08-27 16:20   좋아요 1 | URL
참 그리고 이 책 번역자가 ˝황종민˝인데요, 이분이... 창비 세계문학에서 나온 <미하엘 콜하스>역자거든요? 이 책 제가 생각하기에 번역 진짜 찰지게 잘한 책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감정의 혼란>도 더 잘 번역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또 읽어보려고요.

다락방 2025-08-27 19:00   좋아요 0 | URL
내가 막 젊은 남자한테 반해서 정신 못차리고 욕정에 휘둘리는 그런 여자로 보입니까? 네?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8-27 20:21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 2025-08-27 21:08   좋아요 0 | URL
딩동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8-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이라면 오직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리고 낯모르는 사람과 온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아니요, 전 못해욬ㅋㅋ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읽는 건 매우 좋아합니다 다음달에 이 책 사야지😆

잠자냥 2025-08-27 17:06   좋아요 1 | URL
에이 츄르 주면 따라갈 거 같은데…🤣

망고 2025-08-27 17:14   좋아요 0 | URL
🚨츄르는 반칙

책읽는나무 2025-08-2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의 장바구니에 담아야 할 것인가?
9월의 장바구니에 담아야 할 것인가?
🙀🤔 또 고민..내 감정도 혼란.ㅋㅋ

잠자냥 2025-08-28 15:33   좋아요 0 | URL
자매품 11월의 장바구니도 있습니다. 🤣

케이 2025-08-28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욕망에 충실해 떠나고 마는 이야기나 결국 떠나지 못하는 이야기나 결국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재밌고 재미없어지는 것같아요. 물론 떠나는 이야기 쪽이 훨씬 더 재밌겠지요?
저는 절대 절대 못 떠납니다. 20대 초반이어도 못 떠났을 거예요. 소심해서.
저는 지금 읽는 책을 대체 몇개월 째 읽는 것인지... 8월까지는 읽을 줄 알았는데 웬걸 마지막 소설이 너무 재미없어서 ㅋㅋㅋ (단편 소설집임)
완전히 다른 결이지만 끝내 못 떠나는 이야기인 미국 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가 갑자기 생각나요.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ㅎㅎ 그 영화 보고 미국 애들도 이런 감성이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제는 애기들이랑 등원하면서 여름이 싫다고 노래를 불러답니다. 저희 둘째는 빨리 눈와서 에디 눈집게 하고 싶다고 난리이고요. 애낳고 살찌고 지구온난화까지 겹쳐 점점 더 여름이 싫어지는 요즘입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잠자냥 2025-08-28 15:37   좋아요 1 | URL
케이 님은 소심보다는 성실쪽이라 못 떠났을 것 같습니다. ㅎㅎ
아니 무슨 단편소설집일까요? 궁금하네요. 여름이라 더 잘 안 읽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저도 오래전에 인상 깊게 본 영화였어요. ㅎㅎㅎ 거기 애들 너드 차림새 떠오르네요.

그래도 여름이 좀 물러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좀 선선(?)해 진 것도 같습니다. 애기들하고 조금만 더 버티세요! ㅎㅎㅎ

케이 2025-08-28 15:42   좋아요 1 | URL
http://aladin.kr/p/AR0nM
나카지마 아츠시 소설 전집
이 책인데 마지막 소설의 주인공이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 입니다. ㅋㅋㅋㅋ 당황스럽지만 하여튼 다 읽어보려고 합니다.

잠자냥 2025-08-28 15:56   좋아요 1 | URL
앗! ˝나카지마 아쓰시˝ 소설전집이군요? ˝나카지마 아츠시˝라고 표기하니까 달랑 저 책만 나오네요?
전 예전에<산월기>(문예출판사, 2016) 좋게 읽었어요. 그리고 그 말씀하신 작품 ㅋㅋㅋㅋㅋㅋㅋ <빛과 바람과 꿈>(미행, 2020)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나왔던 거 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보니 별다섯개나 줬네요?! ㅋㅋㅋ
http://aladin.kr/p/ly64a

끝까지 읽어보세요.

젤소민아 2025-08-29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게 만드는 힘있는 리뷰, 감사합니다. 읽으렵니다~~

잠자냥 2025-08-29 09:11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 님의 독서 내공이라면 더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장미
로베르트 발저 지음, 안미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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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역에서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남루한 차림새로 역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때로는 쭈그린 채 잠들어 있거나 또 때로는 하릴 없이 앉아 있는 태도로 보건대 그는 노숙인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웃고 있다. 이 도시에서 종종, 흔히 마주치는 여느 노숙인과 달리 내가 그를 눈여겨보게 된 까닭은 그 웃는 얼굴 때문이다. 그 얼굴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며 일상에, 삶에,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피곤하고 성마른 얼굴과는 다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가 풍기는 좋지 않은 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간혹 그를 주의 깊게 본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혀를 끌끌 차며 그의 인생 전부를 한심하게 여기며 이내 자리를 뜰 것이다. 

1956년 12월 25일,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에 산책하다 숨진 로베르트 발저를 2025년 이 땅의 한 도시에 데려다 놓는다면 아마도 저 노숙인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산책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노인. 무언가를 끼적거리기는 하지만 쉽사리 알아볼 수 없는 글씨에 글씨보다 더 난해한 내용들… 남루한 차림에 가진 것도 없고, 그를 돌봐주는 사람도 없으니 오늘날의 세상은 그를 정신이 반쯤 나간 노숙인, 부랑자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달리 볼까? 아니다...... 이런 생각은 쓸모없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여기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위대한 작가가 왜, 저토록 형편없이 살아가느냐고 베스트셀러와 인세를 운운하면서 그를 경제적 잣대로 헤아리기 시작할 것이다. “지갑은 관계를 만들고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돈은 서로 갈라진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빨리 봉합”(<장미>, p.64)한다. 발저가 가장 원하지 않는 형태의 관계와 잣대로 그를 평가하리라. 

성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과연 성공이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이 모든 것들? 이 나라에서는 돈이 최고일 것이다. 돈 아래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릴 것이며 그렇기에 돈벌이에 다들 평생의 영혼을 갈아 넣는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가장 하찮은 취급을 받는다. 없을수록 더욱 그렇다. 돈이 없다면 명성이라도 추구한다. 유명해지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유명세를 좇는다. SNS로 누구나 스타 되기를 꿈꾼다. 커다란 얼굴을 화면에 들이대고 목소리를 높이고… 온 세상이 소음이다. “단지 소리가 크기 때문에 성실하다고 간주되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증거”(<장미>, p,117)라고 쓴 로베르트 발저. 이런 세상에서 발저를 읽는 일은 낯선 경험이다. 쓸모없음에 시간을 들이는 또 다른 쓸모없음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이런 세계에서 발저를 읽는 일은 내 영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단, 아직 영혼이 살아있다면…. 

발저의 산문집 <장미>에는 그 자신이 고른 38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요양원에 입원하기 전이었으니 나름 그의 정신이 명민했을 때 쓰고 고른 작품들이라 발저 산문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거의 글 대다수가 독자를 상정하고-그리하여 명성을 얻고 돈을 벌고 등등을 바라고- 썼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혼잣말 같기도 하고 두서없어 써내려간 일기 또는 편지글 같기도 하고 산책 중 머릿속에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을 메모해둔 것 같기도 해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발저 글만의 매력이 아닐까. 게다가 이 38편의 글들은 등장인물도, 화자도 여럿인데 그 인물 모두가 발저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장미>는 로베르트 발저라는 사후에 큰 명성을 얻었으나 살아 있을 때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던, 그렇기에 무해했던 한 인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발저는 잘 알려진 대로 산책을 즐겼다. 종일 이리저리 숲속을 거닐었다. 심지어 눈 속을 거닐다가 숨지지 않았는가. <장미>에서도 그런 그의 모습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산책하는 남자에게 누군가가 묻는다. “당신의 새 책은 대체 언제 나오나요?” 남자는 기다리라고 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자신은 “인간이며, 산책하는 것을 책상에 앉아 있거나 성공적으로 책을 출판하는 것만큼이나 아름답게 생각한다”고. 이윽고 그 산책자는 혼자 말한다. “내게는 아직도 선행이라고 기록할 만한 것이 거의, 아니 하나도 없구나. 그 사실이 내 기분을 언짢게 하는군. 하지만 위인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만큼이나 나는 위인들의 명예를 인정하기를 선호하지. 나는 지금껏 내가 옳다고 믿고 동의하는 대로 살아왔고, 사람들이 내가 길을 잃었다고 주장할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길을 잃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라고 당당하게 믿기 때문이지.”(p.16) 

'아르투어'라는 또 다른 인물, 그러나 발저 자신으로 보이는 그 인물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씨 좋고 관대하게 혹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거부당하지. 나는 후자를 선호한다네.”(p. 143) 그와 대화를 나누던 한 여성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부주의한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본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큰 존재로 여기며, 세상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 세계에서 ‘미미함’을 추구하는 발저와 그의 인물들은 참으로 기이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도리어 그런 자,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늘 위대해지기를 꿈꾸고 실행한 자들, 그리하여 ‘대중을 억압하는 자, 감정이 없는 자’는 ‘인간적인 질서의 방법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치 지진처럼 사람들 위로 지나’(p.83) 다니면서도 자신의 해로움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런 자들은 영원히 그렇게 살다 죽으리라. 

발저는 그런 삶을 음식점 벽에 걸리는 포스터에 비유한다. 포스터로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삶. 하나의 포스터는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그런 등장과 사라짐을 목도하면서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도리어 관찰자인 발저이다. 사람들은 포스터의 한 자리를 크게 차지하는 자기를 꿈꾸며 그렇게 되고자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러나 그 수고로움이 발저에게는 슬픔일 뿐이다. “한때는 어느 남성, 그다음은 어느 여성. 그들은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기꺼이 그 수고를 하는지. 그런 다음 매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사가 따라 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뭔가 맞지 않다.” “몇몇 사람은 여러 차례 등장하고, 그들은 유행하지만 언젠가 시인 목록은 고갈된다. 그러고 나면 뭐가 남나? 우리는 포스터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머릿속이 아이디어로 가득 찬 녀석들은 자신을 아주 저급하게 다룬다.”(p.88) 발저의 탄식처럼 이 얼마나 유쾌하지 않은 운명인가!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나 역시 어느 날 나의 포스터를 가지게 될까? 그것이 나를 압도하게 될까?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나는 한동안 벽에 붙어 있어야 할까?” 같은 생각을 한다. 인간적인 솔직함이다. 벽에 붙어 있다가 떼어진 한 포스터 속의 여성과 산책 하던 어느 날, 그 여인은 발저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포스터는 보이지 않는데 살아갈 수 있나요?” 그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대답한다. “약간의 행복이 내게는 두렵군요.”(p.89) 남자는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답하지도 않는다. 땅,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일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며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 장점이 될 수 있다.”(p,109)는 것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미한 존재이기를 원했으나 그럼에도 그는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스스로가 뭔가에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노라고. 사람들은 그를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위협했으나 발저는 이렇게 반문한다. “어떻게 내가 당신들을 위해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p.104) <고독한 남자>라는 산문에서는 발저의 생각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발저는 사람들과의 교제가 그들을 생각 없게 만든다고 말한다. 유흥이란 귀찮은 것이며. 말하는 것의 매력은 대화에서 쉽게 사라진다. 고독한 사람의 정신적인 자유는 멋진 것이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저는 실제 삶보다 상상 속의 삶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즐겨 꿈을 꾸었는데 거기서 그는 더 커졌다가는 다시 더 작아졌다. “삶은 언덕 모양으로 올라갔다 내려가며 의미심장하게 남아 있다”(p.155)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자신을 확대시켰다.(p.156). 그는 자신에게만 나쁜 사람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영혼이 거칠어지는 것을, 생각이 병들고 경직되는 것을 막고자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항상 뭔가에 몰두하는데 그에 따르면 “몰두는 매력을 배가 한다. 젊게 머무르는 조건 중 하나는 비록 일상적인 것일지라도 항상 뭔가를 즐기는 능력에 있다. 어떤 수위는 신발을 닦을 때 행복하고, 어떤 대가는 피아노를 치면서도 비참해질 수 있다.”(p.109)

사랑에서조차 발저는 나아가기보다는 물러나거나 머물기를 선택한다. 왜일까? 사람들은 사랑에도 실패나 성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공이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저마다 욕망을 채우는 것이리라. 그러나 발저가 생각하기에 “사랑이야말로 사랑의 적”이다. “순전히 진실 때문에 당신에게 진실하지 않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때문에 아름답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발저의 사랑이다. 그는 그것을 의식했기에 이후로는 “더는 당신을 찾지 않으려 했고, 주변을 헤매며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계속 당신에게 진정으로 예속”되기를 선택한다. 그래서 편안해졌노라 고백한다. “당신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었고, 내가 가진 것을 다시 내게서 빼앗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가고 싶지 않습니다.”(p.105) 너무나 큰 행복보다는 “불행할 때 즐겁고 성공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고백”하는 ‘블라디미르’(p,8), 곧 로베르트 발저 그의 고백처럼 들린다. 그리고 발저는 이 모든 사랑의 망설임, 주저함, 물러남은 “모든 소유욕을 통틀어 거부하는” 그 자신의 “욕구 부재에 책임”(p.147)이 있노라 말한다. 

“사랑을 하면 사람들은 사랑스럽지 않게 행동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종종 호응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p.118)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발저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분열되었지만 산처럼 높이 쌓이고, 그런 다음에는 평평해지고, 가벼워지고, 신중함으로 매끄럽게 되는 사랑의 충만함”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노라고 그는 말한다. 평평하고, 가볍고, 신중하고, 매끄럽게 된 상태. 이 또한 높은 곳(것)을 지향하는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이렇게 경고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희망을 품지”(p.69) 말라고. 여기서 말하는 “누구”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피하는 것이 하나의 행운”이다. “자신에게 친밀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무조건 기뻐하지 않는다.”(p.77) 

커다란 낯짝과 큰 목소리로 모두가 자기에게 주목해주기를, 그리하여 내가 제일 잘났다고들 아우성치기 바쁜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 발저의 “누구에게도 희망을 품지” 말라는 주문은 몹시 생소하고 그렇기에 아름답다. 그의 이 말들은 가슴을 울리고 또 울린다. “인간에게는 빈약한 칠십 년이 부여된다. 적은 것도 의미를 지니고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신은 많은 것을 주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심은 사람이 마련해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에게 종종 마음이 끌렸다. (...) 즐거운 사람은 즐거움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어디서나 행운을 만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행복을 우습게 본다.”(p.70) 발저가 바로 행복을 우습게 본 그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는 또 말한다. “작가들이란 대단한 것에 자기를 맞추는 일보다는 사소한 것 속에서 중요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소한 대상을 아름답게 말하도록 배우는 것이 풍부한 사안을 초라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낫다.”(p.82) “모방품도 말할 수는 있지만, 진짜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독특함에서만 나온다.” 발저의 이 말은 바로 그 자신의 독특함, 유니크함을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는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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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7-30 2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은오 2025-07-31 17: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문했읍니다.

잠자냥 2025-08-01 10:04   좋아요 1 | URL
저기요,,, <연필....>부터 읽으시지...... (아 근데 그것보다는 이게 덜 난해합니다~)

은오 2025-08-03 23:2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샀읍니다..

독서괭 2025-08-05 17:50   좋아요 1 | URL
은오다!!!

은오 2025-08-06 14:38   좋아요 1 | URL
괭님 쮸압쮸압🩷

건수하 2025-08-12 19:08   좋아요 1 | URL
은오다 😘😘

은오 2025-08-18 02:04   좋아요 1 | URL
수하니이이이이ㅣㅣ임🥺🥹😍😘쮸압쪽쬬ㅏㅂ

책읽는나무 2025-08-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산책자> 좋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 책도 발저의 남다른 사유가 담겨 있겠군요. 일단 보관함에 담아둡니다.^^

독서괭 2025-08-0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머 놓친 글 발견..

독서괭 2025-08-05 17:52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어디 갔어요? 다락방님도 못 오시고 헛헛하구만요
발저는 이런 사람이군요. 진짜 현 세태와는 역행하는 사람이네요. 진짜 가치 있는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문장들이로군요.
잠자냥님 휴가 갔어요?

잠자냥 2025-08-06 11:52   좋아요 1 | URL
웅 휴가야… 다락방 오늘 만나기로 했었는데 일 생겨서 급취소….;

독서괭 2025-08-06 13:51   좋아요 0 | URL
저런.. ㅜㅜ
휴가에 만나다니 찐친이닷!!

잠자냥 2025-08-11 10:16   좋아요 0 | URL
못 만나고 다락방은 멀리 떠났어.....

건수하 2025-08-12 00:34   좋아요 0 | URL
앗 저런..

잠자냥 2025-08-12 08:54   좋아요 1 | URL
다락방도 짐 풀고 인터넷 설치하고 등등 하고 나서 서재 접속하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네요. 물론 수하 님처럼 비문명 세계로 떠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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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반전의 이야기
<나의 작은 무법자>, 나에겐 반전의 책이었다. 그것도 아주 예상 밖의 반전. 물론 작품 자체로도 반전은 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뜻밖으로 이 작품을 읽다가 막판에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장르소설을 읽다가 울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울컥해져서는 두 눈이 벌겋게 되고 눈물도 맺힌 작품. 여름이니까 가벼운 책 좀 읽어볼까 싶어서 선택했던 책. 처음에는 심드렁했다. 몇 페이지 읽으면서 역시 나는 장르소설에선 큰 재미를 못 느끼는구나, 책장은 슬렁슬렁 넘어갔다. 

<나의 작은 무법자>라는 제목부터 뭐랄까 예상 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는 조금 그렇게 흐른다. 어린 소녀가 사라지고 그 실종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실종 소녀의 이름은 “시시 래들리”- 이윽고 실종된 소녀는 주검으로 나타나고 소녀를 잃어버린 가족의 아픔과 고통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고통은 아주 깊고 오래도록 이어진다,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스스로 무법자라 칭하는 소녀 ‘더치스’는 오래전 죽은 그 소녀의 조카이다. 더치스의 엄마 ‘스타 래들리’는 죽은 ‘시시’의 언니. 래들리 집안에는 이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어서 현재의 가족도 붕괴 직전이다. 술과 약에 빠져서 자신을 방치하듯 사는 엄마 스타. 그런 집에서 엄마뿐만 아니라 동생 로빈까지 돌봐야 하는 더치스, 그리고 이 작은 무법자 곁에는 과거 사건의 목격자이자 스타의 소꿉친구이기도 한 ‘워크’가 있다. 그는 현재 이 마을의 경찰 서장으로 이 무법자 꼬마 집안을 계속 돌봐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등식이 자연스레 성립하게 된다. 작은 무법자는 더치스이고, 이 무법자를 돌봐주는 사람은 워크이겠구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그 기억에 갇혀 줄곧 이 집안을 돌봐주는 워크와 더치스의 이야기려니 싶어진다. 

실제로 그런 면도 없잖아 있다. 저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사는 스타와 워크. 한 사람은 완전히 망가진 삶을 살고 있고 한 사람은 경찰 서장이 되어 마을의 정의를 지키는 일에 자기 생을 갈아 넣고 있다. 거의 집착적으로…. 둘 다 피해자이면서도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이토록 다르다. 한 사건에 연루된 이 두 사람의 삶이 어쩌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삶을 방기하다시피 한 스타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라우마를 감추고자 약에 의존하는 남자 워크. 30년 전의 일이라면 이제 벗어날 만도 한데 이 두 사람은 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어버린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거기에는 ‘빈센트 킹’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 그 시절 소년이었던 남자가 끼어 있다. 그러니까 스타와 시시, 워크와 빈센트는 모두 한 동네 사는,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우연한 사고로 빈센트가 시시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실수 때문에 죽은 시시를 비롯해 워크, 스타, 워크와 헤어진 마사까지 자신의 인생을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고통은 그들 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열세 살의 어린 소녀 더치스와 소녀의 동생 ‘로빈’에게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워크는 정의감 때문에 절친 빈센트를 신고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빈센트는 살인자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단 한 번의 실수가 그토록 많은 것을 앗아가게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으리라. 

그 빈센트가 30년이 흐른 지금 풀려나 살인이 일어났던 이 마을로 돌아온다. 무법자 더치스는 술과 약물에 빠진 엄마도, 동생 로빈도 지켜야 한다. 엄마를 이렇게 만든 세상, 가족을 이토록 절망에 빠뜨린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증오 때문에 미움으로 똘똘 뭉친 이 꼬마 무법자가 과연  그 깡과 독기만으로 엄마와 로빈을 지킬 수 있을까? 어린 소녀 혼자 맞서기에는 이 나약한 가족을 노리는 검은 그림자의 손길은 예상 밖으로 많다. 미모의 스타에게 추근거리는 남자들마다 왠지 다 이 가족을 위협할 것만 같다. 실제로 이런저런 불길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끝끝내 또 한 번의 살인이 일어난다. 이 참혹한 세상에서 더치스와 로빈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태위태한 워크의 보살핌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랑인 이야기
내가 울컥 눈물을 흘린 부분은 결국에는 그 엄청난 사랑 때문이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상황에서도 지켜나갈 수 있었던 사랑.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져서 지금도 숙연해진다. 이 작품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 그 사랑에 견줄만한 또 다른 사랑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친구인 빈센트를 향해 가진 죄책감과 그 죄책감에서 비롯되어 래들리 일가를 내내 돌보아준 워크의 사랑도, 그런 워크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끝내 놓을 수 없었던 마사의 사랑도, 시시의 죽음으로 인해 멀어졌지만 마침내는 더치스와 로빈을 돌보면서 애틋함을 느낀 핼의 사랑도, 나쁜 놈으로만 그려지는 다크의 그 사랑조차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애처롭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세상의 참혹함을 알아버린 더치스, 동생만큼은 이 세상의 비정함에서 떼어놓고자 스스로 강해져야만 한다고 다그치던 더치스, 또래 소녀들처럼 좋아하는 소년과 무도회에 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했을 이 소녀, 더치스의 로빈을 향한 사랑은 가장 안타깝고도 처연하다. 그러나 결국 이 절절한 사랑들, 자신의 생(生) 어느 틈엔가 비뚤어져 버린 그 인생에서도 다른 사람 생각하기를 놓지 못한 이 사랑들에서 죄에 대한 용서와 구원,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향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말한다. “희망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삶은 쉽게 깨지고, 우리는 이따금 너무 꽉 매달린다”고 “부서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p.220). 그 희망은 바로 사랑이었으리라. 어린 로빈은 삶의 의미를 “자기를 보호해줄 만큼 아까는 사람이 있는 거”(p.363)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치스와 로빈, 스타, 워크, 빈센트, 마사, 핼… 그들은 모두 스스로는 잘 몰랐을 테지만 어떤 의미로든 그 한 사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작은, 그렇지만 커다란 구원자를 지녔던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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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7-15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리뷰 글입니까? +_+
간만에 긴 글 반가워요!

잠자냥 2025-07-15 16:13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ㅋㅋㅋㅋ 어디선가 밝힌 적이 있지만...(다락방 서재에 댓글이었나??) 한 달에 한 개만 써도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아주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개만 쓰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5-07-15 16:25   좋아요 1 | URL
와 이 자신감... 100%의 당선율이군요 ㅋㅋㅋ
알라딘은 조금 덜 뽑아서 잠자냥님이 글을 많이 쓰게 해달라!!

잠자냥 2025-07-16 15:41   좋아요 1 | URL
긴 글 또 써써........

건수하 2025-07-16 19:05   좋아요 0 | URL
잘해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