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
릴리 킹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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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고 있다. 이 여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피었다가 질까. 그 여름 한때에 그칠 사랑도 있겠고, 여러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내는 사랑도 있으리라. 다른 모든 계절에 피었다 지는 사랑도 있겠지만 어쩐지 여름에 더 많은 사랑이 피어날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릴리 킹의 단편 모음집 《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을 읽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겨울’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여름을 떠올리는 것일까. 뜨겁게 타오르는 여름의 속성이 사랑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뜨겁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는 서늘한 가을에 자리를 물려주는 것까지도….

릴리 킹 또한 그런 사랑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지 이 책에는 여름 한때 맹렬히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사랑이 여럿 그려진다. 첫 번째 작품인 <괴물>이 그 뜨거운 여름에 가장 어울린다. 열네 살 소녀 ‘캐럴’은 여름 방학을 맞이해 어느 대저택에서 상주 베이비시터로 근무하게 된다. 부모와 떨어져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캐럴. 이 대저택에는 노부부가 살고 있다. 이 노부부에게 베이비시터가 필요할까 싶은데, 알고 보니 파이크 부부의 장성한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 차 놀러와 있다. 캐럴은 아이들을 돌보는 틈틈이 여가 시간을 내 자기 방에서 <제인 에어>를 읽으며 일기를, 때로는 소설 같은 일기를 써내려 간다. 이런 등장인물들만으로는 아무리 봐도 캐럴에게 여름의 사랑이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럴 리가. 이윽고 파이크 부부의 아들 ‘휴’가 이 집안에 나타난다. 캐럴은 이렇게 쓴다. 그가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캐럴의 일기장에는 휴의 이름이, 휴를 묘사한 문장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뿔싸, 사랑의 감정은 공정하게 흐르지 않는다. 캐럴의 사랑 또한 그렇다. 열네 살 소녀가 마음을 키우기에 휴는 너무 나이가 많다. 이미 이십대를 훌쩍 넘긴 성인이다. 심지어 그는 유부남. 와이프와 트러블이 생기자 집으로 도망치듯 떠나온 터이다. 파이크 집안의 어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으며 이런 사실을 다 알게 되었으면서도 캐럴은 휴를 향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다. 그를 향한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간다. 집안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의 장난기, 유머러스함, 농담, 짓궂음, 웃는 방식, 길고 가느다란 몸…. 그의 모든 면이 이 소녀를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휴는 어떨까? 휴에게 이 꼬마 숙녀는 단지 자기의 조카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에 불과했다. 관심조차 가지 않았던 이 소녀에게 휴가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일기장 때문이다. 아, 저 꼬마가 나를 좋아한단 말이지? 갑자기 다른 눈길로 캐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는 성년이고 유부남인 데다가 고용주의 아들이다. 그러나 캐럴은 미성년에 피고용인. 이 공정하지 못한 사랑은 어떻게 될까. 캐럴은 이 사랑이, 열병이 지나간 뒤, 이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또 다른 여름의 소년도 있다(<도르도뉴에 가면>). 소년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사이 자신을 돌봐주러 온 대학생 ‘에드’, ‘그랜트’와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낸다. 그야말로 꿈같은 나날이다. <괴물>의 캐럴이 베이비시터로 여름 한때 일하면서 어른을 사랑하게 된다면, 이 소년은 베이비시터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어른의 사랑을 엿보게 된다. 엄숙한 부모 아래에서는 해볼 수 없던 것들-냉동식품을 먹으며 일상의 규칙에서 벗어난 생활을 마음껏 즐기는 소년. 이 소년의 눈에 한없이 자유로운 에드와 그랜드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중 ‘에드’가 더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 어찌 아니하랴. 그랜트 또한 에드를 남몰래 마음에 품고 있었으니…. 서로가 서로를 동경하면서 훔쳐보던 여름의 기억은 이들에게 어떤 빛깔로 남게 될까. 확실한 것은 에드와 그랜트의 사랑의 크기, 아니 애정의 크기와 방향은 너무도 달랐기에 그 기억의 빛깔이 똑같은 색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갈색 또는 암적색에 가깝지 않았을까.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에 품고 살다가 더 큰 상처를 얻게 되는 이는 여기 또 있다. <시애틀 호텔>의 ‘나’는 대학 시절 짝사랑을 앓는다. 고백이라도 시원하게 해보고 거절당하면 그나마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고백은커녕 짝사랑의 대상이 다른 사람과 연애하면서 생기는 고민을 일일이 들어주기에 바쁘다. 좋아하지 않는 척, 관심 없는 척, 아무렇지 않는 척척척..... 그럴 수밖에. 하필 그 짝사랑의 대상이 동성 친구 ‘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마음을 숨기고 친구처럼 함께 지내던 ‘나’는 폴이 결혼할 즈음에야 자신이 게이라고 털어놓는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돌아온 싸늘한 반응에 ‘나’는 폴과 그렇게 멀어진다. 이 한 번의 상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폴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여전히 약해지는 ‘나’-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폴의 이름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고, 그런 폴에게서 그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연락이 온다. 시애틀의 한 호텔에서 만나자는 폴의 제안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재회를 기대하며 나가는 ‘나’. 이 만남은 과연 ‘나’의 바람대로 흐를까.

《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에 그려지는 사랑의 모습은 대개가 이렇게 어긋난 형태이다, 때문에 상처와 고통, 씁쓸함을 남기고 사라진다. 어른을 사랑하거나 동경하는 소녀/소년이 등장하기도 하고(<괴물>, <도르도뉴에 가면>), 성정체성이나 성적 기호가 다른 이를 마음에 품고 절망하기도 한다(<시애틀 호텔>, <도르도뉴에 가면>), 이미 짝이 있는 사람을, 그런 줄 알면서도 욕망하게 되어 상처를 한 가득 받기도 하고(<괴물>, <타임라인>), 금기와도 같은 관계이기에 더욱 욕망에 불붙는 사랑도 있다(<망사르드>). 사춘기의 열병 같은 사랑을 그리거나 주인공이 10대인 경우도 많은데(<괴물>, <도르도뉴에 가면>, <북해>), 작가 자신의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을 10대 시절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도저히 이성(理性)으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번번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마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랑의 속성, 그리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상처받고 나락에 떨어질지언정 결국 회복하고 한 뼘쯤은 자라는, 성장통 같은 사랑의 속성을 그리기에는 10대를 화자로 삼는 것이 어울렸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짝사랑하던 대상으로부터 환대와 응답을 받는, 보기 드물게 행복한 경우도 있지만(<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 이 단편집에서 그려진 여러 형태의 사랑을 지켜보고, 또 그런, 그와 비슷한 사랑을 해본 이들은 안다. ‘미첼’에게 그가 그토록 원하던 ‘버섯 수프’를 사다 준 ‘케이트’의 그 다정한 마음조차 언젠가는 식어버릴 것임을….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함께 버섯 수프를 나눠 먹으며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에 도취하는 순간도 있지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따뜻한 수프도 언젠가는 식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 여름을 기다릴 것이고, 누군가를 위한 버섯 수프를 기꺼이 마련할 것이다. 사랑이, 외로운 사람이 또 다른 외로운 마음을 찾아가듯이.

사랑은 한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파멸로 몰아가기도 한다. 잘못된 상대를 선택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어찌할 수 없음, 바로 그 불가항력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랑은 사람에게 어김없이 찾아오고 머물다가 또 그렇게 제자리를 떠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흐르고 다시 또 봄, 여름이 찾아오듯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뜨겁던 여름은 1994년의 여름이다. 그런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세계는 나날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사랑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한 사랑이 저물었을 때 그런 사랑은 또 없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단지 형태만 다를 뿐 그보다 더 깊고 뜨거운 사랑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랑을 잃고, 다른 여름을 기다릴 당신에게도, 당신의 사랑도 부디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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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5-15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도우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보면요, 거기에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이 무사하니까.‘

그 구절이 생각나는 리뷰의 마지막이네요. 이 책 아주 좋을 것 같아서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어제 잠자냥 님께 땡투하고 책 산 사람이었다가 오늘 잠자냥 님께 땡투하고 책 산 사람 될 예정입니다. 이만 총총.

잠자냥 2025-05-15 10:31   좋아요 0 | URL
아니 갑자가 땡투 적립금이 우수수... 늘어났더라니... 이 인간, 못 말려!
그나저나 다락방아... <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이런 책 나왔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5-15 12:05   좋아요 0 | URL
저 요즘에 달리기 너무 하기 싫고 또 너무 못해서 좌절하고 있습니다 ㅋㅋ 그렇지만 책은 어쨌든 담아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만 담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5-15 12:51   좋아요 0 | URL
오 다락방님 이도우 읽으셨군요!
책 정리 하셨다더니, 정리할 게 끝나지 않을 예감 ㅋㅋㅋ

잠자냥 2025-05-15 13:14   좋아요 0 | URL
엥? 안 달리고 있다고...?! 놀라운데...?!

다락방 2025-05-15 14:51   좋아요 1 | URL
아뇨 어제도 달리긴 했는데 영 안달려진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몸이 무거워서겠죠.. (먼 산)

Forgettable. 2025-05-1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4년에 어떤 여름을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사랑이야기라 주저되지만 이 책도 담아 갑니다.

잠자냥 2025-05-15 13: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달랑 선풍기 두 대 달린 교실에서 여름방학 보충 수업받는 중이었습니다.......-_-;;
심지어 교실은 4층이라... 너무 더웠....

독서괭 2025-05-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폴 만나러 가는 “나” 엄청 상처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ㅠㅠ
언젠가 식어버릴 사랑이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겠죠?

잠자냥 2025-05-15 13:16   좋아요 1 | URL
말해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닌 폴 그놈이 그럴 줄이야..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5-15 16:27   좋아요 0 | URL
진짜 말해줄 건가요? ㅋㅋㅋ

잠자냥 2025-05-15 16:29   좋아요 0 | URL
진짜...? 원한다면 비댓으로 알려줌. 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5-15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15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5-05-15 17:06   좋아요 0 | URL
머야 이야기 듣고 기절한 거냥 괭?!ㅋㅋㅋㅋ

2025-05-15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5-05-15 17:09   좋아요 0 | URL
사실 알려달라고 하면 잠자냥님이 “안 알려주지롱 메롱” 직접 읽어보아라 하실 줄 알았는데 진짜 알려줘서 놀라고
내용에 또한번 놀람요 ㅋㅋ

케이 2025-05-1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4년의 여름 맞은편 동에 살던 친구 집에 가서 여름방학 동안 밀린 일기를 쓰던 기억이 나요. 제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땀띠가 났던 여름이었죠. 전 더운 걸 좋아하고 심지어 더위를 즐기는 사람이었는데요. 작년 여름을 겪은 후로 여름을 너무 너무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크흑 다가오는 여름이 두렵군요 ㅜㅜㅜㅜ (아이들은 아무리 더워도 하원 후에 30분 이상 놀이터에서 놀아야만 하거든요.)

이 책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끝을 하나도 말씀해주지 않으시니 궁금해서라도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해피엔딩이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네요. 변해버릴 사랑이라도 제대로 받아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죠...
솔직히 전 이제 그런 사랑을 준다고 해도 싫습니다. ㅋㅋㅋㅋ 닥친 다른 일 하기도 너무 벅참요.

잠자냥 2025-05-15 14:47   좋아요 1 | URL
밀린 일기 ㅋㅋㅋㅋㅋ 최근에 읽은 책에서 독일에서 살다 온 아이가 한국 학교에서 일기 검사하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구절이 생각나네요...(강남순, <질문 빈곤 사회>) ㅋㅋㅋ 그 아이가 한국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숙제니까 하는 거지! 이랬더라는데 ㅋㅋㅋㅋㅋㅋ 암튼 밀린 일기 쓰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그 더운 날;; ㅋㅋ
그해 정말 더웠죠. 좀만 덜 더웠어도.. 제 수능 점수가 10점은 올라갔을 텐데... (라고 주장해봅니다)

ㅋㅋㅋ 닥친 일 버거워서 사랑하기 싫다는 말에 빵 터졌습니다.
이 책 재미나요. 나중에 읽어보세요~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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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우리는 민주주의와 함께 다수결의 원리를 배웠다. 물론 이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고 배웠다. 또 어린 시절에 우리는 승패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또 어린 시절에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자랄수록 이 세계가 이런 가르침들이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니 이 상식이 나날이 무너져가는 것을 목격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노라면 내가 사는 이곳이나 ‘자유’라는 영역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국이나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배워온 이 상식이 무너져 가고 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대한민국과 미국만 그러한가. 정치적으로는 이른바 선진국임을 자부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조차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각국의 정당 및 정치인들은 그 극단 세력을 끊어내기는커녕 교묘히 연합해 자기 잇속을 채우고 세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인권이나 자유, 평등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퇴색하다 못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세계는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이 책을 펼쳤다.

 ‘극단적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처럼 느껴진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시행되는데, 어떻게 소수의 다수 지배가 가능한지 의아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미국, 그것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를 배경으로 쓰였음을 이해한다면 소수의 백인-엘리트 집단이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시민들의 자유 및 인권을 억압하는 형태로 유지되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유권자가 직접 대통령을 뽑는 방식이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런 방식 때문에 표를 행사하는 다수의 의지와는 어긋나는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때문에 민주당 출신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에서 패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게다가 소수의 거부권(필리버스터)을 유지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사의 종신제 또한 권력을 소수의 엘리트들이 차지하고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형태로 흘러가기 쉽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건 우리와는 정치체제가 다른 미국의 상황이지 않은가? 우리는 국민 개개인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완벽하게 다수의 원리가 작동하는 나라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극단적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는,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진단은 이곳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 책에서는 극단 세력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이 처음 몇 쪽부터 그려진다. 그런데 이 모습은 지난해 12월 3일, 이 땅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 이후 벌어진 반민주적인 작태들과 너무나 흡사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저자는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무늬만 민주주의자를 구분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앞서 말했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그러니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존중하며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 또는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전략을 분명하게 거부한다. 그들에게 군사 쿠데타나 폭동, 반란을 조장하고 폭탄 투척 및 암살 등 다양한 테러 행위를 계획하거나 폭력배를 동원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반민주주의 세력과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하지만 무늬만 민주주의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리어 이런 반민주 세력과 손을 잡는다.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를 보호하거나 옹호한다. 나아가 이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면서 마이크를 쥐어주기까지 한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극단 세력이 외면당한다. 이런 세력과 결탁하는 것은 자신들의 평판에 좋지 않기 때문에 언론은 물론 정치인, 기업가, 제도권 인사들이 당연히 이들과의 접촉을 꺼린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이런 세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손을 잡고 이용할 때 극단적인 이념이 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면서 민주주의 지형은 달라진다. 계엄 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 및 그들을 변호해주던 집권 여당, 계엄을 옹호하는 국회의원이 나서서 반공청년단과 백골단을 자처하는 단체를 국회까지 데리고 온 일 등등이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게다가 그들은 부정선거음모론을 펼치며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줄곧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파면당한 전 대통령은 법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 기술적 차원에서 합법적인 형태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다. 이 모든 행태들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답은 없는가? 답답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도리어 소수의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도구는 극단주의자나 반민주적인 몇몇의 손에 들어갈 때 특히 위험해진다. 사회가 이런 위험에 놓였을 때는 정부의 권한과 법률을 적극적으로 활용, 반민주 세력을 축출해서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진보와 보수의 연정으로 반민주세력을 봉쇄하는 정책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봉쇄는 단기적 전략으로 쓰여야 하며 장기적 연합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 봉쇄와 배제는 제한적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며 투표를 더 쉽게 하고 (미국의 경우) 선거인단 제도를 보통 선거로 하거나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더 쉽게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투표- 궁극적으로 유권자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서 내내 민주주의 파괴자로 묘사된 그 트럼프가 유권자의 선택을 통해 다시 돌아왔다. 어떤 시스템도 인간의 선택이 상식을 벗어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건 아닌가 싶어지는 지점이다. 그러나 모든 제도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법이 극단주의자와 엘리트들의 잇속을 차리는 데 이용되듯이, 또 헌법이 독재자나 파시스트 정당에 교묘히 이용되듯이, 유권자 모두에게 동등한 투표권이 주어진 것 같지만 투표 시간이나 장소 등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보통 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듯이. 그렇기에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는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개혁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p.365)이라는,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p.369)이라는, 결국 “민주주의의 병폐를 치료하기 위한 약은 더 많은 민주주의”뿐이라는 제인 애덤스의 말은 지금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상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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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4-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 이 책 안읽어서 리뷰대회 언제까지인가 확인해보니 5월 1일까지더라고요? 아 언제 읽고 언제 쓰죠? 또 모텔 잡고 읽고 써야 하나... 하하하하하

저는 어제 트윗에서 <문재인입니다> 의 부분 영상을 보았는데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전대통령 집 근처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를 욕하더라고요. 왜 정상적으로 퇴임하고 이제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있으려는 사람에게 그런 폭력을 저지르는 걸까요? 왜 시간과 에너지를 그런 식으로 쓸까요? 하여간 저는 이번 대선에서 당연히, 언제나 그랬듯이, 꼭 투표하겠습니다. 저는 유권자입니다!!

잠자냥 2025-04-24 11:58   좋아요 0 | URL
5월 1일 노동절에 모텔 가는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텔 가지 말고;; 깨끗하고 볕 잘드는 호텔로 가자....100만원 받을 건데 그쯤은 투자해! ㅋㅋㅋㅋ

그나저나 아니 아직도 문재인 전 대통령 집 앞 가서 그러고 있어요??
극우들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 장소로 다 몰려가서 안 하는 줄 알았더니.. 밥줄 끊어지니까 또 거기로 갔군요... 그거 보면서 코인 쏘는 사람들이 더 문제 같습니다... 아니다 방송하는 놈들이나 보면서 코인 쏘는 놈들이나 다 문제.. -_-

사전 투표하고 6월 3일은 달리기도 하고 맛난 거 먹으면서 노는 겁니다~!!

잠자냥 2025-04-28 12:24   좋아요 0 | URL
락방아~ 응모기간 5월 6일까지로 늘어났어!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4-28 14:02   좋아요 1 | URL
앗 뭐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4-2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은 정치만해도 불합리한 제도들이 참 많아 보이는데 그걸 또 고치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우리는 이번에 탄핵한게 조금은 나은점이라고 느껴요🙄 이번에 트럼프 반대 시위에 태극기 등장했더라고요ㅋㅋㅋㅋ그건 좀 웃겼어요

잠자냥 2025-04-24 14:35   좋아요 1 | URL
네, 미국은 헌법 고치기가 정말 어려운 구조 같더라고요. 아이고야.... 이 책에서는 우리의 탄핵(박근혜) 사례도 소개되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지킨 사례로요. 근데 이 책 저자도 자기네 나라에서 트럼프가 또 당선될 줄은, 대한민국에서 또 대통령이 탄핵당할 줄은 몰랐을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태극기라니 ㅋㅋㅋㅋ

관찰자 2025-04-24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새 ‘냉장고 파먹기‘를 책읽기에도 실천하고 있어서 책꽂이에 꽂아두고 읽지 않은 책이나 읽었는데도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 책을 다시 읽기 하고 있는데요. 잠자냥님 이 리뷰 보니까 또 이 책, 사서 읽고 싶어지네요.ㅠㅠ. 읽고서 동참하고 싶다~. 근데 이건 딴 얘기인데, 잠자냥님은 읽은 책이 다 기억 나세요?? 저는 어쩔 때, 누워서 책꽂이를 바라보고 보고 있으면, ‘저게 무슨 내용이었더라?‘ 하는 책이 엄청 많아요. 그럼 또 새 책처럼 다시 읽어요~ ㅋㅋ >.<

잠자냥 2025-04-24 15:19   좋아요 0 | URL
저도.... 책꽂이에 읽는 책부터 읽자! 해놓고는 허구한 날 알라딘 접속해서 책 사고 그것도 부족해서;;
동네 도서관 가서 또 잔뜩 가져올 계획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은... 제가 산 책보다 덜 관심 있는 책인데도 반납 기한이 있으니까 또 그걸 먼저 읽고.. 그것참;; 무슨 욕심인지......?

읽은 책... 기억은......... 다 납니다. 안 나세요?!

뻥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어도 기억 희미한 책투성이에요. 아예 새 책 같기도 한 책도 있고..?
그래도 뭐 어딘가에 피와 살이 되었을리라 믿으며 또 읽습니다... ㅋㅋㅋㅋ

독서괭 2025-04-2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울❤️❤️❤️❤️❤️

관찰자 2025-04-2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을 안사려고 했지만...... 샀습니다. 샀어요.ㅜ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는 지 궁금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고, 다른 사람이 읽은 책 이야기를 읽는 것이 또 즐겁고, 그러다보면 또 책을 사게되고.... 아는 순간, 행동과 변화가 뒤따르는 것이 비단 책 사는 일에만 국한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고로, 저는, 읽습니다.!

잠자냥 2025-04-29 10:12   좋아요 1 | URL
아하~! 알라딘에 접속하시는 한 무한반복이 될 것입니다. ㅋㅋㅋㅋ
관찰자 님도 리뷰 대회 응모하세요~!

독서괭 2025-05-01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을 부릅뜨고 투표도 열심히 해야죠.. ㅠㅜ 지금 트럼프는 ACLU인가..? 변호사단체가 열심히 나서서 막는 것 같긴 하던데,, 계엄때 행동력 보면 우리 국민들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제 5월이네요~ 잠자냥 5월도 냥냥해요~~
 
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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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크게 놀란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좀 많이 받았고요.” 법정에서는 듣기 어려운 표현인 데다가 저런 문학적인 표현을 할 법한 사람이 아닌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생경하고 어이없어 K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저런 표현을 저 사람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까. “그대 저어오오 내 마음은 호수요.” 또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런 시 구절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K는 그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더욱 놀란다. “이번 그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뭐 지시했니, 지시를 받았니.” 뻔뻔하기 짝이 없는 궤변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는다.... 이런 말을 믿으란 말인가?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가?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했다. K는 또 한 번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궤변을 믿는 자들이 그토록 많구나!

K는 어느 날 카뮈의 <계엄령>을 읽다가 크게 놀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작품 속 인물들 중 여럿이 실제로 그 말을 믿기에 K의 눈동자는 더 커져갔다. 호수 위의 달그림자를 쫓았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운운은 202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흘러나온 말이요, 혜성이 나타났고 페스트가 창궐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운운은 1948년 에스파냐의 작은 마을 카디스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 두 곳에서는 공교롭게도 계엄령이 선포된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점성술사: 물론, 아가씨, 확실하지! 하지만 조심해! 오늘 아침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거야. 잘 알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내 점괘를 뒤엎을 수도 있어. 나로서는 그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으니까 말이야! (p.40) 


에스파냐의 작은 마을 카디스에 불길한 혜성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카디스에 저주가 내릴 것이라 공포에 휩싸인다. 이윽고 독재자인 ‘페스트’(‘페스트’의 은유이자 실제 독재자의 이름이다)가 비서를 거느리고 나타난다. 그는 계엄령을 내린다. 포고령은 쉽게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쓰였고 카디스 주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당연하다. 그것이 그들이 노리는 바이기 때문이다. “민중이 애매모호한 것에 길들여지도록 하기 위한 거예요. 이해를 못 하면 못 할수록 더 말을 잘 들으니까”(p.63) 카디스의 총독은 마을을 새로 나타난 독재자 ‘페스트’와 비서에게 넘기고 달아난 지 오래. 총독뿐만 아니라, 종교인, 정치인, 법률가 등등 이른바 지도자라고 추앙받던 자들은 저마다 제 살길 찾기에 바쁘다. 판사만 하더라도 제 집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 걱정은 하지 말고 집안일이나 돌보시오. 가능하면 최대한 식량을 비축해 놔. 최대한 긁어모아. 최대한 지금은 긁어모을 때!”(p.53)

독재자의 충실한 비서는 그의 명에 따라 마을 주민들을 선별해 가슴에 표식을 달기 시작한다.  마치 나치가 유대인들에 그러했듯이..... 표식은 페스트 감염을 의미한다. 하나는 페스트 의심자, 둘은 페스트 감염자, 셋은 죽어야 할 자이다. 모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접촉 불가. 이곳에서 사랑은 이제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 되어 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페스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가운데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사랑하는 사이로 페스트 창궐 전에 판사인 빅토리아 아버지로부터 결혼 허락까지 받은 상태이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독재자의 비서에게 말했다가 디에고는 겨드랑이 밑에 표식을 받기까지 한다. 사랑을 말해서도 함께해서도 접촉해서도 안 되는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그들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을까. 



계염렁은 선포되었다. 그러니 명심해, 내가 도착하는 순간 감동적인 것은 더 이상 없다. 그따위 감동은 금지된다. 그 밖의 몇 가지 쓸데없는 것들, 예컨대 행복을 원하는 우습기만 한 초조함, 사랑에 빠진 이들의 얼빠진 얼굴, 풍광에 취하는 이기적인 작태, 불경한 풍자 행위 등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의 빈자리에 나는 조직을 이식한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끝에 가서는 탁월한 조직이 너절한 감동따위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75)


빅토리아는 페스트가 창궐하는 와중에도 디애고에게 ‘사랑’을 말하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런 시국에도 여자는 로맨스 타령만 하는가?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카뮈는 내내 사랑을, 인간 감정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계엄 포고령에서도 독재자가 가장 먼저 금지하는 것은 ‘감동’이다. 행복이라든가, 사랑에 빠진 얼굴이라든가, 풍광처럼 아름다움에 취할 줄 아는 것이라든가 풍자나 조롱 같은 해학의 감정 등등. 왜 그들은 사랑이나 분노, 두려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 해답이 있다. 사랑이나 거기에서 비롯한 연대와 같은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독재를, 페스트를, 파시스트를, 파시즘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넘어설 그 무엇이 된다고. 2025년 한국의 독재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연대’였음을 상기해본다면, 결국 카뮈가 역설한 그 사랑의 힘이 이 땅에서도 빛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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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4-11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ㅑ ~ 리뷰 좋다.
역시 이 책을 사야겠습니다.
독재자는 깨어있는 시민을 싫어하고 남자들은 깨어있는 여자를 싫어하고.. 다들 등신들 같아요.

잠자냥 2025-04-11 12:28   좋아요 0 | URL
다락방의 손글씨가 더욱 빛을 발해.....

다락방 2025-04-11 15:05   좋아요 0 | URL
근데 우매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요? 너무 자기 바보 인증같아요. 으..

독서괭 2025-04-11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ㅑ ~ 리뷰 좋다.
다락방님 손글씨도 참 멋지고요. 글내용도 멋지고요.
어쩜 시국에 딱 맞는 책이네요. K를 크게 놀라게 한 그대여…

잠자냥 2025-04-12 11:51   좋아요 1 | URL
실망이다 괭!! 저 아래 우리 괭들 사진 올렸는데!!!!

독서괭 2025-04-12 12:10   좋아요 0 | URL
엥!? 언제 올렸대?? 역시 사퇴할 때가 되었는가…

잠자냥 2025-04-14 09:40   좋아요 0 | URL
회장 독서괭을 파면한다!

독서괭 2025-04-14 09:57   좋아요 0 | URL
😱😱😱😱😱

독서괭 2025-05-09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다옹
 
우는 나와 우는 우는 - 장애와 사랑, 실패와 후회에 관한 끝말잇기
하은빈 지음 / 동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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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영화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그렇다. 이 영화를 볼 때면 언제는 내가 ‘츠네오’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제’가 되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조제와 그런 조제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 장애가 버거워서 조제를 떠나버리고 마는, 그러고는 시도 때도 없이 조제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만 보면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츠네오. 어떤 이들은 츠네오가 비겁하다고 하지만 글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이 세상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이야기한 그 영화는 비단 장애/비장애뿐만 아니라 정상인과 이른바 비정상인(퀴어)의 사랑으로도 읽힌다. 그렇기에 더 슬프게 다가온다. 몇 번을 봐도.

<우는 나와 우는 우는>, 그래서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장애를 가진 연인을 오랜 시간 만난 후 결국 헤어지게 된 비장애인이 덤덤히 써 내려간 글. 근육병이라는 장애를 가진 연인의 이름은 ‘우’, 그러니까 조제에 견줄만한 그의 이름은 ‘우’이고, 츠네오에 견줄만한 이가 이 책을 쓴 작가 ‘은빈’이다. 말이 통하고, 한없이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되지만, 장애의 문턱은 아무리 그 사랑의 크기가 크다 해도 ‘빈’ 혼자 넘기에는 너무나 높다. 가족들의 비난과 반대,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어쩐지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느낌. 아무리 간절하고 절실해도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둘만의 공간, 섣불리 계획할 수 없는 미래, 근육이 계속 소실되어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어느 날 잠든 채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늘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삶…. 그와 함께 하는 삶에서 문득 문득 느껴지는 버거움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그래서 고개를 쳐드는 죄스러움과 미안함도, 헤어지고 난 후의 자책감도, 내가, 그가, 우리의 사랑이 남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가 결국에는 가늘게 뜨고 쳐다보게 만드는 그런 사랑인가, 그렇게 이상한가? 늘 되묻게 하는 세상의 시선도 그 시선이 힘겨운 나날도, 모두 공감이 간다.


여전히 걷고 싶어?
응.
비장애인이 되는 걸 자주 상상해?
그렇지는 않아.
선택할 수 있으면 근육병이 없는 인생을 선택할 거야?
당연하지.
근육병을 없애면 나를 못 만날지도 몰라.
안 되는데.

근육병에 대한 우의 입장은 늘 복잡하고 알쏭달쏭해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 p.61)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한다. 그 희박한 확률 속에서 만난 ‘은빈’과 ‘우’, ‘우’에게 장애가 있었기에 그들이 만났을까? 그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그들은 만나지 못했을까? 확실한 것은 우는 근육병이 없다면 빈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머뭇거린다는 점이다. “안 되는데.” 자기를 죽이는 근육병과 자기를 살게 하는 사랑…. 장애와 비장애를 선택할 수 있다면, 또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정상적인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장애 없는 삶을 당연히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특수한 환경 때문에 만날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을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만날 수도 없고, 사랑하게 될 수도 없다고 가정한다면 선택의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삶보다 한결 버거운 삶을 살더라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생을 선택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은 언제까지 순탄하고 순조로울 수 있을까. 정상성만을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쉽게 배제된다. 이른바 선남선녀라는 ‘정상/이성애 커플’의 사랑이 아니면 배제와 모욕과 혐오와 차별은 공기처럼 따라다닌다. 차별금지법조차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 세상에서 빈과 우처럼 이른바 정상성을 벗어난 커플은 빈이 말했듯이 “서로를 잃어버릴 예정”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순간들은 우리를 떠날 것이었고 불화와 모욕이 곳곳에 널려 있었으며 기어코 사랑에 실패하게”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일상은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층위에서부터 아주 미묘하고 애매한 층위까지 다른 이들의 일상과 어긋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나날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말하자면 정상(頂上)을 향해 세상의 절벽을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우리는 그들에겐 지극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니까 정상(正常)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더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p.92)


‘빈’과 ‘우’는 지쳐간다. 우는 자신의 병에, 빈은 장애를 지닌 사람을 연인으로 두고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에. 그리고 세상의 차별에. 그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항상 같은 내용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메시지를 받”는다. “세상에 너희를 허하는 자리 같은 것은 없으며 언제나 어디에서나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들은 “그 말에 단련되어 있었고 동시에 지쳐”있다. “그건 끝없이 받아치고 맞서야 하는 말, 이성을, 인내심을, 친밀함을 야금야금 쪼개고 파먹고 약탈해가는 말”이다. 이따금씩 그들은 “그 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때로는 가만히 읽어보기도” 한다. “세상에 우리를 허하는 자리는 없으며 우리는 언제건 어디에서건 아무것도 아니구나.”(p.189)

인상 깊은 구절들이 여럿 있지만 “관계, 종속, 책임”이라는 단어들이 뇌리에 남는다. 나와 너 사이의 관계가 맺어지면 서로 간에 얼마쯤의 종속성이 생기고 책임도 따른다. 그런데 그 종속과 책임이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 같다면 어떨까. 어떤 면에서 우를 돌보는 빈의 모습은 연인의 그것을 넘어서서 부모와 자식의 그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빈은 “연인들은 고통 속에서 서로를 낳기에 연인인 것이 아닌가?”(p.212) 되묻기도 하지만 나의 고통보다 타인의 고통을 늘 우선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나를 좀먹는 일이다. 그렇기에 빈의 친구들이, 가족들이, 지인들이 “일상은 물론 욕망과 상상력, 가능성까지도 근본적으로 제한”(p.158)하는 빈의 삶을 부당하다고 항변해 준 것은 아니었을까. 관계와 종속과 책임이 자신의 어깨에서 떨어져나간 때를 상상하면서 그런 삶이 얼마나 달콤할지, 사랑하는 것도 소중한 것도 가지지 않기에 더 이상 “궁색해질 일도, 옹졸해질 일도 없을” 그 삶을 상상하며 홀가분해하다가도 그런 자신이 죄를 짓는 듯해 우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빈.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 뿐이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조제와 헤어진 후 츠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조제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자꾸만 버거워지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츠네오처럼. 어떤 사랑에선 내가 조제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랑에선 내가 츠네오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게 네가 가버리면 나는 조제처럼 동굴 안에 깊숙이 갇혀버릴 거라고 말하던 사람이 있다. 정말로 그럴 것만 같아서 츠네오처럼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때 그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 결국 조제처럼 혼자 1인분의 생선을 굽고, 혼자 거리로 나서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츠네오를 만날 것이라고…. 그럴 것이다. 동굴 안에 조개처럼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에서 남겨진 조제의 외로움도, 떠난 츠네오의 죄책감과 미안함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희미해지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사랑했던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희미해지기는 하겠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이 세상에는. 그럴 때 사랑을 끝내 지키지 못한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여느 것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랑인데도, 어디에나 굴러다니고 노상 발에 체이곤 하는 그토록 흔해빠진 사랑인데도 왜 이렇게 힘이 들고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없"(p.39)게, 그 사랑을 버겁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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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5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5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5-04-03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감성 촉촉하게 만드는 글이다...
잠자냥님 글 너무 잘쓴다...
이 책 작가님도 글을 잘 쓰시는군요.
조제,호랑이,물고기들 옛날에 봤는데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나네요.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이 문제라는 말에도 공감!

잠자냥 2025-04-03 10:18   좋아요 1 | URL
에엥! ㅋㅋㅋㅋ
괭의 촉촉함을 저 메마른 산자락에 다 뿌려주고 싶네요! 😹😹😹

그레이스 2025-04-0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제가 씽크대 높은 의자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지던(뛰어 내리던) 장면이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다시 높여놓은 싱크대가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오더군요.

잠자냥 2025-04-03 10:56   좋아요 0 | URL
네 그 장면 참 마음 아프죠!
쿵- 떨어지는 장면...

그레이스 2025-04-03 10:36   좋아요 0 | URL
왜 비밀 댓글로 올라갔을까요?
제가 잘못 눌렀나봅니다 ㅎㅎ
 
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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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 않는 말 중에 “당신 딸이 당했어도 그럴 수 있느냐?” 류의 말이 있다. 예컨대 성범죄자들을 감형해주거나 아주 가벼운 형량만 내리는 판사에게 “당신 딸이나 와이프가 당해도 그렇게 할 것이냐?”하고 되묻는 것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딱히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의 가족으로 치환해 생각해 보기를 촉구하는 말들을 나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공감 능력이 그 정도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가장 가까운 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럴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일 텐데, 고통스러운 일에 공감을 도통 못하기에 가족을 입에 올리게 만드는 이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밖에 비유하지 못하는 인간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인간들이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수사법을 종종 쓰는 것이리라.

여기 ‘데이비드 루리’- 이 남자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사람일까? 52세의 이혼 남성이자 대학교수인 그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간다. 이혼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학교수이고, 여자를 만나는 일에도 그다지 어려울 점이 없다. 사실 그는 손쉽게 여자를 사는 편을 택한다.  취향에 맞는 여자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돈을 주고 욕망을 해소한다. 몸을 파는 여자이긴 하지만 자기 취향에 딱 맞는 그 여자만 있다면 딱히 이렇게 혼자 살아가는 삶이 불만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인생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기에, 그 여자는 루리 곁에서 사라진다. 여자가 사라진 후, 루리는 섹스를 하지 않은 채, 여자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그런 남자는 아니다. 욕망이 그의 몸 안에서 분출되지 못하고 남아있을 때 하필이면 그는 다른 여자, 그런데 교수에게는 금기의 대상인 자신의 학생 ‘멜러니’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지성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멜러니에게 끌린다. 그녀의 외모, 젊음 이런 것들에 눈이 간다. 혼자 사는 집으로 그녀를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주고 술잔을 건넨다. 이 술잔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루리는 멜러니와 섹스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까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멜러니는 어땠을까? 멜러니는 자발적으로 루리의 초대에 응했다. 그렇다면 섹스를 허락한 것일까? 루리가 건넨 술잔도 받았고 그가 자신의 몸을 덮쳤을 때도 완강하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 관계를, 이 불균형한 관계를 허락한 것일까? 그녀의 학점은 루리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실제로 루리는 멜러니가 섹스 이후 그를 피하느라 수업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자기 멋대로 점수를 준다. 사적 감정으로. 멜러니는 그 첫 번째 만남 이후 분명히 그를 피한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집까지 찾아온 루리에게 들어오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자기의 의사를 밝힌다. 사실 그들이 섹스를 할 때도 멜러니가 그 행위를 거부하는 태도는 모호하지만 분명히 드러난다. 루리 자신이 그것을 외면할 뿐이다. 보지 못한 척 할 뿐이다. 이 관계가 사랑일까? 루리에게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멜러니에게는 강간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부모에게, 남자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당연히 부모는 학교를 찾아간다. 루리는 하루아침에 성추문에 휩싸이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아니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음으로써 쫓겨나기를 선택한다. 자발적 추락.

<추락>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쫓겨난 루리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의 딸 루시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남아프리카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물론 자기를 낳아준 엄마와도 딱히 닮은 구석이 없어 코뮌의 일원으로 시골에 자리를 잡고 공동체가 와해된 후로도 그곳의 자작농지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루시의 나이는 멜러니보다 조금 많은 정도. 그런데도 루리는 딸이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펑퍼짐해진 몸으로 남자 없이 이 척박한 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게 낯설기만 하다. 아니, 하필이면 못생긴 여자를 파트너로 두고 살아가는 점이 못마땅하다. 그렇다, 루시는 레즈비언으로 연인 헬레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결별 이후 지금은 혼자서 작은 농장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성추문으로 이곳으로 쫓겨 오다시피 한 아버지와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그 동거가 곧 끝날 것이라 생각하던 참에 그 일이 터지고 만다. 흑인 괴한 세 명이 농장에 침입해 루시를 강간한 것이다. 그때 루리도 집에 있었지만 젊은 세 남자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화장실에 감금당한 채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까 바로 그 일, 딸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를 강간한 남자는 자기 딸이 강간당하는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가 강간 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기 된 셈이다. 이제 그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니 하고 싶지 않았던, 용서받기를 거부했던 자로서 강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절절하게 고통스러워할까?
 

그들은 그가 강간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더 목격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들은 강간에 관한 한, 어떤 남자도 여자가 있는 곳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추락>, p.198)


그는 딸에게 일어난 일을, 현장에 같이 있었으면서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들이 어쩐지 딸이 남자 없이 혼자 지낸다는 것을 알고 온 것만 같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거듭 분노한다. 딸이 강간으로 인해 성병이나 임신 등의 부차적인 문제에 시달리게 될까봐 걱정한다. 그러나 강간도 임신도 성병도 모두 딸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고 일어날 일이다. 그는 곁에 있었지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아니 어떤 면에서는 저기 멀리서(대학), 다른 여자(멜러니)에게 강간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구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 추락하기를 선택해 은둔해 버린 인물이다. 그의 분노와 고통은 정당한가?



“증오....... 아버지, 남자들과 섹스의 문제에 관한 한, 이제 어떤 것도 저를 놀라게 하진 못해요. 어쩌면 남자들은, 여자를 증오하면 섹스가 더 자극적이 되나봐요. 남자니까 아시겠죠. 낯선 여자와 섹스를 하고, 여자를 올가미에 넣고, 여자를 짓누르고, 아래에 깔고, 자기 몸을 여자한테 부리는 건, 여자를 죽이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나요? 칼을 쑤셔박고, 나중에는 피가 낭자한 몸을 뒤에 남기고 떠나는 건 살인 같지 않아요? 살인을 하고 달아나는 것과 비슷하지 않아요?” (p.222)


경찰을 찾아가자고, 범인을 찾는 데 혈안이 된 루리와 달리 루시는 그 사건을 그냥 덮으려고만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어 한다. 그런 딸을 루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농장에서 여전히 남자 없이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사람은 루리가 아니라 루시이다. 루리는 떠나면 그만 아닌가. 루리는 “그들이 너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려는 거”라면서 딸에게 이 농장을 떠나 네덜란드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기를 종용하지만 루시는 그에 따르지 않는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들이 바란 것은 노예라기보다는 “굴복이자, 종속”이라며 그들이 강간할 때 자기에게 보인 그 증오심에 크게 충격 받았음을 털어놓는다.

<추락>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백인 정권에서 흑인 정권으로 권력이 이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백인이 저질렀던 죄, 그 죄가 부른 또 다른 죄들, 여러 형태의 복수들을 보여주면서 인종적 화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이상적으로만 존재하는지 그 현실적 어려움을 낱낱이 까발린다. 백인은 흑인의 땅에 침입해 그들의 삶에 끼어들었고, 그들의 삶을, 자원을 강탈해갔다. 이제 흑인들이 백인 여자의 신체에 침입해 그녀의 몸을 유린하고 강탈해간다. 여자의 몸은 식민주의/제국주의 치하의 힘과 권력이 없는 나라에 비견된다. 힘과 권력, 성(性)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인 몸은 올가미에 걸리고, 짓눌리고, 아래에 깔린다. 그러다가 급기야 칼로 쑤셔박힘 당하고, 나중에는 피가 낭자한 몸만 너덜너덜 남겨진다. 백인 남성 루리가 제아무리 “치욕스러운 상태로 떨어졌”다고 “날이면 날마다 그것에 따라 살아가며, 수치를 제 존재의 현상태로 받아들이려고”(p.242) 한다고 고통에 절규한다 한들, 강탈당한 멜러니와 루시의 그 고통만큼 더 아플 수 있을까?



“여러분은 강탈해가다는 끼어들다intrude 혹은 침입하다encroach upon라는 의미인 걸 알았을 겁니다. 강탈하다usurp는 말은 강탈해가다usurp upon의 완료 상태입니다. 강탈한다는 건 강탈하는 행위를 완성하는 겁니다.”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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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2-0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추락이 이런 내용이군요? 꼭 읽어봐야지 다짐하며…
오늘도 잠자냥님 리뷰는 좋았다…

잠자냥 2025-02-04 10:21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스포일러 될까 봐 안 쓴 부분 있는데... 암튼 이거보다 더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단발머리 2025-02-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잠자냥님 리뷰는 좋았다2...

잠자냥 2025-02-04 10:22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식민주의에 관심 많이시잖아요?
이 책 읽으시면 할 말 많을 거라 생각해요. ㅎㅎ
꼭 읽어보세요.

다락방 2025-02-04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이 소설을 읽고 감탄하고 놀랐었는데요, 존 쿳시가 노벨문학상을 탄 뒤에 이 작품 때문에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굉장히 많이 항의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그걸 알고 ‘내가 뭔가 놓친게 있나‘ 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렇다면 지금 다시 읽으면 나 역시 불만을 가지게 될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리뷰를 읽고나니 제가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탄할 작품이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잘 쓰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5-02-04 10:32   좋아요 0 | URL
여기 리뷰에는 쓰지 않았지만(너무 큰 스포일러라),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까였을 법한.... 중요한 내용이 있기는 해요. 다락방 님은 읽은 책이라 기억하실 것 같은데... 전 루시의 그 선택이... 과연 정말 작가가 여성이었어도 그렇게 썼을까 싶더라고요.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건 좀 아닌데 싶더라고요. (여자가 정말 그 상황에서 그럴 거라고?!!! 이런 의문....)
그리고 멜러니가 남친한테 괴롭힘당하다가 제 발로 루리 찾아가는 부분도 좀...
멜러니의 저항도 너무 모호하게 그려서 페미니즘 관점으로 보기엔 오해받을 소지도 많은 것 같고요...
암튼 전 이 리뷰에는 안 썼지만 루시의 1번 선택, 2번 선택 다 동의할 수 없어요... ㅠㅠ 으앙....... 루시야 왜 그러니......

잠자냥 2025-02-04 10:2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아래 <폴란드인>은 도리어 페미니즘적인 작품입니다.
다락방 님 단테 <신곡>도 읽었으니 <폴란드인>도 얼른 읽어보시지요......

다락방 2025-02-04 11:46   좋아요 1 | URL
루시의 선택 때문에 제 친구도 읽고 분노햇었어요. 그래서 저도 다시 읽는다면 다르게 읽힐까, 생각했었고요. 제가 지금 기억하는 분위기와 내용이 다시 읽는다면 다른 식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것 같거든요. 제가 추락 읽었을 때는 좀 꼬꼬마였던 때라.. (페미니즘 그게 머에염?) 그런데 실망하기 싫고.. 그래서 여태 다시읽기를 미뤄온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포함 존 쿳시의 다른 책들도 저는 다 좋더라고요. 저는 [나라의 심장부에서] 와 [슬로우맨]을 읽어봤습니다. 폴란드인 어서 읽어볼게요. 그렇지만 전쟁과 평화가.....

잠자냥 2025-02-04 16:11   좋아요 0 | URL
꼴페미 다락방 과거에는 몰페미 ㅋㅋㅋㅋㅋㅋㅋ

케이 2025-02-0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궁금하여 나중에 읽어보려고요. 그 후에 독후감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무실에 히터를 틀어도 소용이 없네요. 흑흑. 보온에 신경쓰는 한 주 되시길.

잠자냥 2025-02-04 16:11   좋아요 1 | URL
강간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서 꼭 읽어보세요!
오늘내일낼모레 엄청 춥다는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관찰자 2025-02-04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자로 줄이기는 불가능했던 리뷰를 이렇게 멋지게 써 주셔서 감사해요. 잠자냥님. >.< (그런데 이런 이모티콘은 요새 안쓰나??;;)

잠자냥 2025-02-05 10:21   좋아요 0 | URL
100자로 줄이기 불가능했다면 관찰자 님도 리뷰를 쓰시는 겁니다! ㅎㅎㅎ
저 근데 이런 이모티콘 요즘도 써요.... -_-;;

관찰자 2025-02-06 15:19   좋아요 0 | URL
<추락>에 대한 리뷰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어서 최근 리뷰를 하나 쓸 수 밖에 없긴 했지만 쓰면서 잠자냥님이 쓰라고 했다 하면서 쓰긴 했습니다. ^^;;(우린 이런 이모티콘 세대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