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펭귄클래식 121
에밀 졸라 지음, 윤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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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베즈, 그녀의 삶은 언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좀 더 세세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본 영화를 또 볼 때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면들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목로주점>을 다시 읽노라니, 아, 제르베즈 이 여자야, 이때 이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지! 옆에 있었다면 뜯어말리고 싶어지는 장면이 여럿 있다.

첫 번째 잘못된 선택- 그 남자 아니야, 아니라고
제르베즈, 그녀가 무려 열네 살에 애를 낳게 만든 그 남자, 랑티에. 작품 초반부터 독자는 이 두 연인(?)의 비참한 생활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여보시오, 제르베즈, 젊은 처자여, 랑티에 그 남자는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니까! 소리를 치고 싶어진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애가 둘이나 딸렸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르베즈 열네 살, 랑티에 열여덟이다. 제르베즈 또한 잘 알고 있다. “랑티에는 아내가 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녀는 걸핏하면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 ‘마카르’를 피해 집밖으로 쏘다니기를 좋아하고 그러던 중에 이 랑티에와 살림까지 차린다. 파리는 정말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랑티에와 함께 이 거친 도시의 허름한 호텔 구석방에서 살림살이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발칙한 모자장이 랑티에는 열심히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다가 결국 그중 한 여자와 달아난다. 랑티에가 잘한(?) 일이라곤 ‘아델’과 달아난 덕분에 졸라가 제르베즈와 아델의 언니 ‘비르지니’ 사이의 그 불멸의 빨래터 싸움 장면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선사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제르베즈가 이 형편없는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한테 의지하고 매달리는 장면을 읽다 보면 그녀의 인생은 첫 단추부터 아주 잘못 꿰어졌음을 알 수 있다. 랑티에가 달아난 뒤 제르베즈 또한 ‘이제부터 자기의 삶이 도축장과 병원 사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만’(1권 45쪽) 같다고 불길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두 번째 잘못된 선택- 그러니까 그 남자도 아니라고!  
랑티에한테 질려버린 제르베즈는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그저 두 아이들을 잘 키우고자 마음을 다잡고 세탁부로 부지런히 일한다. 그런데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이 처자에게 남자가 꼬이지 않을 리가 없다. 함석공 ‘쿠포’는 끈질기게 제르베즈에게 구애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그녀는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연다. 발을 동동 구르며 그녀를 말리고만 싶어진다. 대부분의 독자가 그러할 것이다. 아니야, 이 처자야, 그도 아니라고! 쿠포가 독자를 위해 <목로주점>에서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면 제르베즈에게 청혼하고, 그녀와 결혼식을 치른다는 점이랄까. 졸라는 빨래터 싸움 장면에 이어, 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또 기가 막히게 묘사한다. 가히 불멸의 명장면이다.

이 결혼식은 제르베즈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가 앞으로 모진 비바람에 시달릴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혼식 당일 퍼붓는 소나기를 보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지친 하객들은 우스꽝스러운 차림으로(그러나 그 점을 그들만 모른다), 이렇게 잘 차려 입었으니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며 루브르 박물관 구경에 나선다. 거기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예술 작품을 둘러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지루해 짝이 없어 하면서 박물관 안을 헤매고 또 헤맨다. 결혼식을 다룬 두 그림,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과 루벤스의 <시골 마을 결혼식>을 보고도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음란한 장면을 찾아서 키득거리고, 농담을 주고받을 뿐이다. “여기 좀 봐요. 여기 이놈은 토하고 있고, 이놈들은 민들레에게 물을 주고 있구먼, 그리고 또 이놈은…… 세상에 아주 다들 난리가 났군.” 그들의 눈에는 그저 먹고 마시고, 음란한 것만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은 제르베즈나 쿠포의 일생,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의 일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와 센강의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는 일행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의미심장하다. 강물은 ‘기름에 찌든 쓰레기, 낡은 병마개, 야채 껍질’ 따위를 실어 날랐고, ‘오물 더미는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곳, 다리의 아치가 둥근 지붕처럼 덮고 있는 어두컴컴하고 왠지 불길한 지점’에서 잠시 멈추고는 한다. 이제 막 결혼식을 치른 신부와 신랑, 하객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런 것들이라니 제르베즈와 쿠포의 앞날이 밝을 리가 없다. 심지어 결혼식 당일 제르베즈의 길을 막아선 이는 장의사 일꾼 ‘바주즈’가 아닌가! 게다가 결혼식 당일 밤, 제르베즈에게 ‘자기가 데려다 주러 올라가면 고마워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말까지 한다. 아아, 불길하기 짝이 없다.

세 번째 잘못된 선택- 쿠포를 우쭈쭈하다니!
‘오 분 만에 묶여서 평생을 가야’한다는 결혼을 해버린 제르베즈. 그럼에도 그녀의 인생에 봄이 찾아온다. 한때지만 틀림없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으리라. 제르베즈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세탁소를 차릴 꿈에 부푼다. 쿠포는 오랫동안 구애한 끝에 결혼했기에 제르베즈를 사랑하고, 둘 사이에 귀여운 아이, 그 문제의 딸래미 ‘나나’도 태어난다(<나나>의 주인공). 하지만 이 행복한 나날도 잠시. 쿠포가 일하던 중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크게 다치고, 제르베즈는 그를 치료하느라 가진 돈을 몽땅 날려버린다. 그래도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남몰래 제르베즈를 연모하던 옆집 청년 구제는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가게를 차릴 비용을 빌려준다. 그 덕분에 제르베즈는 드디어 자신만의 가게를 열게 되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가게는 날로 번창한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후로 게을러진 쿠포는 서서히 술독에 빠져서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을 몽땅 술값으로 날리곤 한다. 제르베즈는 이 못난 남편을 초기에 잡았어야 하는데, 쿠포의 몸이 아직 회복이 덜 된 거라 그런 거라면서 늘 우쭈쭈 어르고 달래며 술값을 쥐어준다. 게으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남편을 더 북돋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때도 제르베즈, 그녀의 불길한 운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졸라는 여러 복선으로 암시한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쿠포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던 노파의 눈길이라던가, 성공의 상징인 세탁소 안에서 제르베즈가 술에 취한 쿠포와 키스하는 것을 ‘첫 추락’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추락은 걷잡을 수 없다. 랑티에, 그놈이 돌아온 것이다.

네 번째 잘못된 선택- 서방을 둘이나 두다니!
눈치 빠른 독자라면 다른 여자와 야반도주했던 랑티에가 언젠가는 제르베즈 앞에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랑티에는 제르베즈가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다가 놀랍게도 게으름뱅이 주정꾼 쿠포와 가까워져서 제르베즈와 쿠포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이때 제르베즈는 반쯤은 정신 나간 쿠포를 뜯어말렸어야 했다. 일하지 않고 늘 술에 취해 살고 있는 남편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예의바른 태도 등으로 동네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랑티에. 그러나 제르베즈는 랑티에의 짐 가방에서 ‘담배 냄새를, 겉만 번지르르하게 차리고 다닐 뿐, 사실은 더러운 남자의 냄새’를 느낀다. 랑티에는 <목로주점>에서 가장 혐오스런 인물로, 그가 세탁소에 또 다른 기둥서방으로 눌러 앉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랑티에는 ‘치마들 틈에서 여자들의 가장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게’ 너무나 좋다. 자기는 계속 예의바르게 말하면서도 세탁소 여인들이 주고받는 천박한 얘기들이 좋아서 일부러 여자들이 천박한 말들을 쓰도록 부추긴다. 졸라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세탁소 냄새, 땀에 젖은 맨팔을 드러내고 다림질을 하는 여자들이 있는 곳, 은밀한 규방처럼 동네 여자들의 은밀한 속옷들이 다 까발려 있는 이곳은 바로 그가 꿈꾸던 곳, 오랫동안 찾아 헤맨 나태와 쾌락의 피난처’라고(2권 25쪽). 이런 놈을 또 다시 집안에 들이다니, 제르베즈 오, 이 바보! 이후로 제르베즈의 추락은 끝을 모른다. 그녀의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이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그녀의 ‘불행을 이용해서 다시 자기를 가지려고 혈안이 된 더러운 인간이 막고’ 서 있는 형국으로 흘러간다.

제르베즈는 랑티에가 자신에게 혹시 손이라도 대지 않을까 경계하는데, 그는 의외로 점잖게 군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이 몹쓸 인간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제르베즈도 그와 함께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쿠포가 술에 잔뜩 취해 온 방 안에 토사물을 쏟아놓은 그날, 일은 벌어지고 만다. 이때도 제르베즈, 그녀는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 장면을 졸라는 참으로 또 기막히게 묘사한다. 요맘때부터 싹수가 노란 ‘나나’가 하필이면 그 장면을 보는 것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토사물 위에서 뒹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유리에 얼굴을 대고는 어머니의 속치마가 다른 남자의 방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나는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미 사악한 쾌락에 눈을 뜬 아이의 크게 뜬 두 눈에는 색정의 호기심이 달아오르고 있었다.’(2권 59쪽)

다섯 번째 잘못된 선택-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그래도 제르베즈에게는 다시 정신을 차릴 만한 기회가 있었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없이 선량하게 군 ‘구제’의 친절과 제르베즈보다 더 처참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던 이웃집 어린 소녀 ‘랄리’를 보고 무언가 깨달을 만한 점이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구제의 존중과 배려를 받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며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어린 두 동생을 보살피고 집 안을 늘 깨끗하게 정돈하던 랄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연민과 함께, 저토록 불행한 환경에서도 희망의 한 자락이라도 붙잡으려 애쓰는 아이를 기특하고 안쓰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한때뿐이다. 그녀는 구제와 그의 어머니의 도움의 손길을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당연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빚진 돈에 무감각해진다. 구제의 어머니는 이런 그녀의 타락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구제 또한 그랬을 터이지만 그는 제르베즈에 대한 사랑으로 그녀의 그런 모습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쿠포와 랑티에 두 남자들과 함께 살면서 타락해버린 제르베즈의 도덕성은 이제 되살릴 수가 없다. 그녀 또한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탕진한다. 그녀 또한 술에 입을 대면서 쿠포와 마찬가지로 주정뱅이의 길을 걷는다. 제르베즈에게 얼마쯤 의지하던 랄리는 그녀의 취한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 친다. ‘독주 냄새를 풍기는 숨결, 흐리멍덩한 눈, 일그러진 입,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자신의 주정뱅이 아버지와 다름없이 제르베즈 또한 술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간에 선 랄리는 어두운 눈길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 본다(2권 163쪽). 마치 지붕에서 떨어지던 쿠포를 지켜보던 그 노파처럼.

여섯 번째 잘못된 선택- 그만 좀 먹고 마시라고!

<목로주점>에서는 진탕 먹고 마시는 장면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파리 하층민의 삶에서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인생의 즐거움이란 없어 보일 정도이다. 한때는 ‘올바른 사회에서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던 제르베즈도 이런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혼식 피로연때부터 질리도록 먹고 마시고, 생일파티랍시고 또 진탕 먹어댄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일을 게을리 하고, 세탁소가 기울어갈 때도 두 기둥서방 쿠포와 랑티에는 제르베즈에게 받은 돈으로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면서 이런저런 음식과 술을 먹어댄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감각마저 잃어버린 제르베즈도 서서히 먹고 마시는 일에만 몰두해 간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섹스하고. 일차원적인 만족, 동물적인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무슨 일에든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먹지 않고 지내는 것만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2권 222쪽) 그들은 가난한 시궁창 속에서도 먹고 마시는 일 만큼은 멈추지 못한다.

가세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이제는 먹을 것조차 없다. 어린 나나는 이런 집안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도 주정뱅이, 어머니도 주정뱅이, 거지같은 집구석엔 빵 한 조각 없이 술 냄새만 진동’(2권 188쪽)한다고. 그리고 먹을 것이 없는 더러운 집안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치고 박고 쿠포와 제르베즈 두 사람은 종일 으르렁거린다. 나나는 이런 집구석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고, 집밖이 더 편해진다. 마치 저 옛날 아버지의 손찌검을 피해 집을 달아나고만 싶었던 제르베즈의 삶과 판박이다. 이 거리의 아이들은 대부분 나나와 같다. ‘가난과 악덕을 뒤집어쓴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뒤범벅이 되어 모두 함께 타락해 간다. ‘사과 바구니에 썩은 사과가 들어 있을 때와 같은 이치’(2권 175쪽)이다. 제르베즈는 다시 날품빨래 일을 하게 된다.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세탁해 내던 부지런했던 여자에서 어느덧 ‘더러운 물속에서 더러운 때와 싸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여자로서의 긍지도 사라지고, 그 옛날 지니고 있던 자부심과 상냥한 애교도 잃어버린 제르베즈. 감정을 느끼고 예의를 차리고 존중받는 것들에 대한 욕구도 사라져 버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인생이 참으로 처참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누추한 봉쾨르 호텔 구석에서 시작된 이 지긋지긋한 삶. 과연 잘못은 누구에게, 어디에 있을까? 졸라는 ‘제르베즈는 비참한 가난 때문에, 엉망으로 망쳐버린 삶의 불결함과 고단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로리유 부부의 말을 그대로 쓰자면 그녀는 게으르게 아무렇게나 살았기 때문에’ (2권 284쪽) 그렇게 비참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손찌검을 하던 제르베즈의 아버지 ‘마카르’- 주정뱅이 마카르. 그가 빚어낸 비참한 환경과 유전은 그대로 이렇게 되물림 되어 제르베즈의 삶을 망가뜨린다. 아버지를 피해 파리로 달아났고, 하필이면 또 쓸모없는 두 남자를 만났고, 그중 한 인간은 또 하필이면 주정뱅이가 되고, 그런 그와 살다 보니 마찬가지로 주정뱅이가 되어 삶을 놓아버린다. 제르베즈와 쿠포 이 두 부부는 제르베즈의 아버지 마카르가 그러했듯이 나나를 비참한 환경 속에 방치한다. 나나는 제 엄마 제르베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것이다.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도, 알코올 중독 같은 좋지 않은 유전적 요인도 계속 이어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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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0-21 12: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섯번째 실수가 두번 나와욤!ㅎㅎㅎ 하.. 근데 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 거 같이 콕콕 와닿네요. 특히 그 남자 아니야! 와 그만 좀 먹고 마시라고!(오늘도 먹고 마실 예정에 신난 상태~ 또르르~~ㅠㅠ)

잠자냥 2021-10-21 12:38   좋아요 4 | URL
어머 쌤 고마워요~ ㅋㅋㅋ 역시 쌤은 그런 거 잘 보시는구낭! 수정할게요~
저도 이 책 보니까 먹고 마시는 거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능 ㅋㅋㅋㅋ

프레이야 2021-10-21 13: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리뷰 넘 재미나요 ㅎㅎ

잠자냥 2021-10-21 14:16   좋아요 4 | URL
재미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이 없군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10-21 14: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니까, 햐, 되게 많은 부분을 잊고 있었구먼요. ㅋㅋㅋㅋ
이렇게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시대가 되는 거 아니겄습니까.

잠자냥 2021-10-21 14:18   좋아요 5 | URL
맞아요. 다시 읽어보니 으잉 이랬던가 싶더라고요. 이 책 다시 읽은 덕분에 클로드 랑티에(<작품>)나 에티엔 랑티에(<제르미날>) 등 제르베즈 자식들 이야기는 좀더 생생하게 읽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 정말 대단합니다~~~

새파랑 2021-10-21 14: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지같은 집구석‘은 에밀졸라의 다른 작품인 <집구석>이랑 연결되는 건가요? ㅎㅎ

˝제르베즈˝도 어떻게 보면 좀 나태해지고,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한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하긴 하루하루 사는것 말고는 생긱할 여유가 없었으니~~ 두명의 남편과 같이 사는건 저는 좀 쇼킹 했어요 ㅋ 게다가 두 남펀끼리 더 친하다니 이건 프랑스식 개방적 사고 ? 😅 잠자냥님 리뷰 읽으니 다음책은 에밀졸라로~!!

잠자냥 2021-10-21 15:28   좋아요 4 | URL
쿠포 그 사람도 참 어처구니 없지만, 전 랑티에가 너무너무 싫어요. 세탁소 망하니까, 사탕 가게에 죽치고 앉아서 이젠 사탕 쪽쪽 빨아먹는 그 기생충 같은 인간!!!! 으으..... 랑티에 성을 가진 그 아들들이 랑티에의 이런 면모는 안 닮았는지(유전이 안 됐는지) 저도 곧 <작품>이나 <제르미날>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21-10-21 1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잠자냥 님 리뷰도 또 엄청 재미있네요. 재미있는 책으로부터 재미있는 리뷰는 탄생하는 것인가 봅니다.

저는 쿠포가 처음에 되게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근데 지붕에서 떨어지고 나서 게으름에 익숙해지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사람이 성실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매일 알게 모르게 노력에 의한 것이었나 싶고요. 그렇게 성실했던, 또 제르베즈를 사랑했던, 잘 살아보고자 했던 사람이, 일 안해버릇 하니 거기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부인이 번 돈을 탕진하기만 하다니. 어쩌면 이쪽이 더 가기 쉬운 길이기 때문에 앗차 하는 순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근데 나나 는 왜그렇게 재미없을까요, 잠자냥 님... 왜... 왜... 왜.............

잠자냥 2021-10-21 16:24   좋아요 3 | URL
맞아요. 징글징글 막장드라마! 넘나 재밌는 그것. ㅎㅎㅎ
쿠포 정말 의외로 성실해서 어허 요놈 봐라?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지켜봤더니, 역시나... 지붕에서 떨어지고 난 뒤 끝없는 추락..... 근데 정말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좀 어려운가봐요. 왜 바쁠 때 사람들이 더 바짝 이것저것 하잖아요. 게을러지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인간의 본성! 졸라가 그걸 잘 포착한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게 참 어렵다는 것도 잘 안 것 같기도 해요.

<나나>는 정말 의외죠. <목로주점>에서 그려진 나나의 성격이나 묘사만 보면 <나나>도 엄청 생동감 있게 재미날 거 같은데... 왜 재미없는지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음 달에?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10-21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르베즈라는 여자를 모르지만 이 여자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십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러고 저러고 하다가 어떤 경우와 경계를 넘어가버리면 ‘에라 모르겠다‘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런걸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조만간은 아니고 내년 초쯤 에밀 졸라 만나고 싶어요^^

잠자냥 2021-10-21 16:51   좋아요 4 | URL
맞아요. 정말, 제르베즈 ‘에라 모르겠다‘의 끝판왕.... ㅠㅠ

2021-10-2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1-10-21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이 장문의 제르베즈 지적글은 제가 책을 읽고 읽겠습니다.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

잠자냥 2021-10-21 22:05   좋아요 3 | URL
네~ 이 글은 책 다 읽으신 분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mini74 2021-10-22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여자야 그게 아니라고 ㅎㅎ에서 잠자냥님의 진심이 확 읽혀집니다 ㅎㅎ 마지막 그만 좀 막고 마시라고 ㅠㅠ는 제 이야기인줄 뜨끔했습니다 ㅠㅠ

잠자냥 2021-10-22 10:34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정말 제르베즈 지켜보니 복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 나쁜 남자들을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고... ㅠㅠ
그만 좀 먹고 마시라는 말은 제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ㅋㅋㅋㅋ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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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 엔리케스.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읽고 머리에 각인된 작가. 최근 번역 출간된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를 반가운 마음에 냉큼 사서 읽었다. 여전히 음험하고 서늘하며 위험하다. 유령이 나타나고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전혀 생뚱맞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섬뜩한 공포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서는 느낌이다.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이 책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꼽았다. 나도 이 작품의 서늘한 공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품의 주인공 ‘메치’는 실종 아동들 기록 보관서에서 일하고 있다. 기록 보관소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지만 찾아오는 이들은 드물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면 경찰이나 검찰이 문서를 갖고 간 경우가 많고 이곳에 기록이 보관된 아이들은 실종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단지 종이 더미에 불과하다. 나날이 보고서와 자료가 수북이 쌓여간다. 간혹 가족이나 친지들이 찾아와 잃어버린 아이들의 행방을 찾기도 한다. 놓친 실마리는 없는지 각종 문서와 자료를 훑어본다. 또 때로는 새로운 의혹이나 자료를 들고 오기도 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부모에 의한 납치 피해자들’이라고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 아기를 데리고 잠적해 버린 경우가 가장 필사적인데, 아이와 함께 달아난 쪽은 대부분 어머니이다.

아이들은 왜, 어쩌다 사라졌을까? 메치는 기록 보관소 아이들의 서류를 훑어본다. 아이들은 종종 나이든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거나, 갑자기 아이가 생겨 겁을 먹고 사라진다. ‘술주정 부리는 아버지, 새벽부터 자기를 강간하는 양아버지, 밤에 등 뒤에서 수음하는 남동생을 피해 달아난 아이들. 클럽에서 술에 취해 며칠 동안 정신없이 놀다가 막상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밖을 떠도는 아이들’(224쪽)이 대부분이다. 유괴나 납치를 당한 여자아이들은 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매춘 조직으로 끌려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은 채 발견되거나 납치범들을 살해한 뒤 경찰에 검거된 아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악의 소굴을 벗어났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라진 아이들의 사연을 문장(文章)으로 지켜보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다. 심적으로 힘들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진다.

이렇게 사라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한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에서도 아이들을 향한 이 세계의 폭력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소아 성애 조직이 아이들에게 마수를 뻗치고, 매춘부의 아이들을 방에 가두어 놓고 사진을 찍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가난에 찌든 여인들이 돈 몇 푼 받고 자신의 아이들을 소아성애자에게 팔아넘기고, 광장에서 소아성애자들에게 사냥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를 가는 대신 칼을 든 채 무리 지어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매춘’을 하는 아이들, ‘마약쟁이 엄마가 데려다 놓고 방심한 사이에 발코니에서 떨어진 아이들, 목에 열쇠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서너 살짜리 아이들, 택시 운전사를 죽이고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거리에서 매춘을 하는 아이들’(128~129쪽) 등등.

이런 끔찍한 풍경을 서술, 나열함으로써 뭔가 다른 효과를 노리는 건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다). 단지 독자의 관음증을, 호기심만을 자극하려는 술수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리아니 엔리케스는 영리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자의 관음증을 자극하면서도 그런 인간의 비뚤어진 본성이, 그 이기적인 본성이 바로 이 세계의 비참함을 불러왔음을 폭로한다. <돌아온 아이들>의 주인공 ‘메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기록 보관소에서 무료함을 달래고자 아이들의 문서를 읽어본다. 그러다가 그 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는 소녀 ‘바나디스’의 기록을 읽게 되고, 서류를 덮고 나서도 이 매혹적인 아이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한다. 이 아이는 어쩌다 사라졌을까, 이 예쁜 외모라면 틀림없이 납치되어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으리라. 살아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또 그 나름대로 어른들에게 착취당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단지 서류상에서 존재하는 바나디스를 향한 메치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져간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메치의 친구로 기자인 ‘페드로’는 메치의 기록 보관소를 충실히 이용해 사라진 아이들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고 그로 말미암아 주위의 인정과 함께 명성을 얻는다. 바나디스의 기록을 보고 그 또한 관심을 갖는다. 아이는 이 평범한 두 어른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그토록 매혹적이다. 페드로는 어느 날 동영상을 입수한다. 동영상 속 소녀는 화질이 좋지 않아 또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바나디스일 것 같다. 그 소녀가 틀림없는 것 같다. 메치는 냉큼 그 동영상을 확인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러나 자꾸만 보고 싶다.


그녀도 그 휴대 전화 영상을 보고 싶었다. 아니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병적인 호기심을 선행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256쪽)


그러던 중 놀랍게도 어느 날 그 바나디스가 메치 앞에 실제로 나타난다. 메치는 아이의 사진을, 기록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바다디스를 단번에 알아본다. 사라진 그 소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바나디스의 가족과 친지들은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아이를 다시 만나자 미친 듯이 기뻐하다 기절하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메치는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나디스가 실종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전화 한 통화 하지 않던 인간들이 저 난리를 피우니 말이야. 더구나 그전에 저 아이가 소년원에 들어갔을 때 면회를 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 열네 살 때 거리에서 매춘을 시작했을 때도 저들은 아이를 구하려고 애를 쓰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았으면서…….’

언론도 모순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신기하게도 바나디스가 나타난 이후로 곳곳에서 사라진 아이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돌아온 아이들의 상태가 기묘하다. 아이들은 실종된 지 몇 년이 지나 돌아왔음에도 사라졌을 당시 그 모습 그대로이다. 3년 전에 아버지와 험하게 말싸움을 하다 두드려 맞고 집을 나간 아이는 돌아왔을 때  눈두덩이가 부어올라 있었고, 아랫입술은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24시간 전에 두들겨 맞은 듯한 몰골이다. 메치는 아버지가 그 아이를 구타했다는 사실을 기록 보관소 문서에서 본 적이 있다. 이런 정보라면 기자들도 다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도 아이가 돌아오자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오로지 감동적인 상봉 장면만 부각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기자인 페드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바나디스를 중심으로 한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신매매범들과 뚜쟁이들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바나디스를 비롯해 아이들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나타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돌아온 아이들이 그동안 자신의 노력을 다 망쳐 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취재고 뭐고 아무 쓸모도 없다고 화를 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입수한 ‘바나디스 영상’은 방송국에 큰돈을 받고 팔아버릴 생각이다. 그 돈을 받고 이 끔찍한 나라를 뜰 것이라면서 메치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그때 메치는 페드로에게 묻는다. “왜 여기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다른 데도 똑같을지 어떻게 알아?” “내 말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는 거야.”(280쪽)

그러니까, 아이, 소녀, 가장 여리고 나약한 존재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온갖 폭력을 자행하는 어른들은 아르헨티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 곳곳에 있다. 집안에서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구타하고 성폭력을 자행하며, 그런 집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아이나, 납치되거나 유괴된 아이들이 또 다른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비단 아르헨티나의 어느 어두운, 가난한 뒷골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이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아이들의 영상을 찍고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어른들, 그것으로 한탕 돈벌이를 하려는 어른들, 그것으로 기사를 써 부와 명성을 얻으려는 어른들은 이 세계 곳곳에 있다. ‘돌아온 아이들’은 사라졌을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 어른들 앞에 나타나 자신들을 폭력에 노출되게 한 어른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어떤 것인지, 자신들의 잘못을 쉽사리 깨닫지 못한다.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10대 청소년부터 젊은 여성, 혼자 사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계급별로 다양한 여성의 삶이 그려진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주변의 가까운 이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거나 억압 받고, 상처를 입어 그로 인해 고통스럽게 살아간다(<우물>,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때로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여과 없이 표출하기도 한다(<호숫가의 성모상>, <심장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카르네>). 이들의 삶을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팔다리가 절단된 유령보다도 더 끔찍하게 무서운 것은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살아있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이 세계가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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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0-13 13: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게 배달되고 있는 책입니다.
바로 읽으려고 합니다.

첫번째 스토리부터 유령이 난무하
니, 기대만빵이네요.

잠자냥 2021-10-13 16:14   좋아요 2 | URL
흥미진진해서 냉큼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유부만두 2021-10-13 13: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가 이번에 국제 작가 축제에서 강연 하는(한??) 작가군요. 무서운 이야기라고요? 찜. (아후, 이게 몇 권 째에요. 찜 찌다 늙겠어요)

잠자냥 2021-10-13 16:15   좋아요 2 | URL
네, 이번에 우리나라까지 왔더라고요. 공포/호러 장르이긴한데 무서운 거 잘 못 읽는 제가 소화가능한 정도이긴 합니다. ㅎㅎ

mini74 2021-10-13 16:42   좋아요 3 | URL
너무 찌면 만두는 터질수 있어요 유부만두님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1-10-13 1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님의 리뷰되는 책들은 우선 보관함에 넣고 봅니다!!!
내가 읽어 보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 길잡이가 되는 느낌을 주는 분들 중 한 분이신데....보관함에 일단 담고 보니 내보관함이 언젠간 폭발하지 않을까?걱정 되는군요ㅜㅜ 빨리 읽어서 권 수를 줄여나가야 할텐데..일단 담고만 있으니ㅜㅜ

잠자냥 2021-10-13 16:16   좋아요 2 | URL
저 위에 보관함 달인 유부만두 님이 잘 아실텐데 알라딘 장바구니랑 보관함은 절대 터지지 않아요! ㅋㅋㅋㅋㅋ

mini74 2021-10-13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던 8미리란 영화가 생각나네요. 거기서도 실종된 여자아이들을 찾는 ~~ 궁금하고 읽고 싶어집니다. 저도 찜 *^^*

잠자냥 2021-10-13 17:20   좋아요 2 | URL
오 그렇군요. 이 책도 언제 한 번 읽어보세요~

붕붕툐툐 2021-10-13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로 무서운 건 호시탐탐 나를 놀려 먹으려는 자냥이~😱
원래 담배는 침대에서 피우는게 제 맛(멋?) 아닙니까?ㅎㅎ

잠자냥 2021-10-14 00:09   좋아요 2 | URL
해헤헤헤 쌤 그러다 침대에 빵구난다요~

coolcat329 2021-10-15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도 너무 읽고 싶네요.. 사실 제목만 봤을 땐 별로였거든요.
정말 내용이 심적으로 힘들거 같긴 한데 궁금하긴 합니다.

잠자냥 2021-10-15 18:00   좋아요 0 | URL
사실 표제작은 그렇게까지 인상 깊지 않은데 그 적품을 표제작으로 꼽았더라고요.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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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맥주를 마셨고 오늘도 숙취에 시달린다. 그런 아침에는 오늘만큼은 퇴근 후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지, 하는데 집에 도착할 때쯤엔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 또는 6캔을 주섬주섬 담고 있다. 그러면서 딱 2캔만 마셔야지 다짐하지만 밤 11시를 넘길 즈음에는 빈 맥주 캔이 모조리 찌그러진 채 식탁 위에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시 숙취에 시달리며 생각한다. 아, 이렇게 순간의 쾌락에 지고 마는 한심한 인간이라니! 어쩜 그리 매순간 쾌락에 지고 마는가?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는 바로 이렇게 삶의 쾌락과 즐거움에 몸을 던지는 이들의 이야기로, ‘케이크와 맥주’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 등장한 관용구로 물질적 쾌락, 또는 삶의 유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작품 시작은 처음부터 그런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첫 문장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걸어 찾는 사람이 출타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중요한 용무인 양 들어오는 대로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그 용무란 것은 전화를 받은 사람보다 전화한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 마련이다.’ 작가인 ‘나(어셴든)’는 이 메시지가 그다지 반갑지 않다. 누군가가 뭔가를 부탁하려는 전화이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 이는 어셴든의 동료 작가 ‘로이’인데, 이어서 이어지는 그에 관한 묘사를 읽노라면 로이는 당대 명성을 쌓은 유명 작가이지만, 인간적으로나 작가 개인으로서나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로이에 견주면 그리 유명하지도, 명성을 크게 누리고 있지도 않은 어셴든은 대체 그가 자신을 왜 찾는지 궁금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목적이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유명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된 로이는 어셴든에게 그에 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노년에 이르러 거장으로 칭송받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사실 어셴든은 드리필드가 무명이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이다. 로이의 요청에 어셴든은 자연스레 옛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 작품의 재미는 ‘나’의 회상, 즉 열여섯 소년 시절에 한 마을에 살면서 가깝게 지내게 된 에드워드 드리필드와의 일화를 지켜보는 일에 있다. 특히 드리필드의 부인 ‘로지’는 그 추억을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주는데, 그녀야말로 삶의 유희와 쾌락에 온몸을 던진, ‘케이크와 맥주’의 철학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끝 무렵, 사회 변동이 심하던 이 시기에 신분 이동도 심해, 신흥 부르주아들이 전통 신사 계층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셴든이 사는 ‘블랙스터블’의 상류층(귀족)들은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다. 성직자인 어셴든의 숙부와 귀족 가문 출신인 숙모는 특히 더 그렇다. 이런 마을에 어느 날 드리필드와 그의 아내 로지가 이사를 온다. 그런데 이들은 이 보수적인 마을에서 너무나 튀는 존재이다.  드리필드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데다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명성도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있는, 한마디로 블랙스터블의 고귀한 사람들이 보기엔 형편없는 집안 출신의 형편없는 인물인 것이다. 한 술 더 떠 그의 아내 로지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자자한데, ‘펍’에서 일하던 여성이라느니, 마을의 누구와 내연 관계였다느니 등등 이 보수적인 동네 사람들에게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종자들이다. 숙부와 숙모는 당연히 어셴든이 이 비천한 자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아직까지 계급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던 어셴든 그 자신도 그들과  어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연히 ‘자전거 사건’을 계기로 그들 부부와 인사를 하게 되고, 두 부부는 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다.

십대 소년이었던 어셴든은 처음에는 드리필드 부부를 보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보수적인 세계관에 물들어 있었기에 그들 부부의 기행(?)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그의 눈에 드리필드 부부는,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어 보이며, 모든 일에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거리낌이 없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끊임없이 그를 민망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는 이 자유로운 부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자신이 속한 블랙스터블의 모순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블랙스터블 사람들은 ‘가식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며 ‘체면이라는 가면’(100쪽)을 쓰고 살았던 것이다. 드리필드 부부를 통해 얻은 이런 깨달음은 훗날 작가가 되는 어셴든에게 여러 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는 저 ‘로이’처럼 무분별하게 명성과 성공만 좇는 인물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작가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어셴든은 이제 거장이라 불리는 드리필드에게도 조금은 냉소적인데, 그가 읽기에 그의 소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너무 긴 데다 무딘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려 동원한 멜로드라마적 사건들도 시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는 진실성이 있으며 최고의 작품에는 생동감이 어려 있고, 불가사의한 개성도 느껴진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드리필드가 거장으로 칭송 받게 된 데에는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초창기에 드리필드는 문단에서 겨우 인정받는 정도였다. 일류 비평가들은 그를 칭찬하면서도 미적지근했으며 젊은이들은 그를 마음껏 씹어댔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했지만 그가 영국 문단의 거목 중 하나로 우뚝 설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하자 ‘문단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드리필드가 명성을 얻은 까닭은 ‘단지 오래 살았기 때문’이라는 이 냉소적인 시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서머싯 몸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닐까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케이크와 맥주>, 144쪽)


<케이크와 맥주>는 어셴든과 드리필드 부부의 일화를 지켜보는 재미만큼이나 작가들의 삶과 명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드리필드’의 전기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꿈에 부푼 로이는 있는 그대로의 드리필드를 그리기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윤색된 이미지의 드리필드를 그리고자 한다. 때문에 어셴든이 들려주는 추억 속의 드리필드, 그러니까 서민적이고 평범하고 자유분망한 그의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면서 그런 일화는 과감히 무시한다. 예컨대 싸구려 펍에서 보드빌을 부르는 드리필드,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절의 습관 때문에 ‘고기와 채소를 먹고 나서 빵 조각으로 접시를 싹싹 닦아 먹는 버릇’이 있는 드리필드, 돈 문제에 부도덕했던 드리필드, 아랫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서 이상한 즐거움을 찾는 ‘결점’을 지닌 드리필드, 목욕을 싫어하던 드리필드 등등은 로이가 절대로 그리고 싶지 않은 ‘거장’의 모습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런 드리필드의 모습은 유명 문인, 거장 작가로서 지켜야 할 품위에 어긋나며, 득이 될 일이 없다. 게다가 드리필드의 두 번째 부인인 ‘에이미 드리필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드리필드 전기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첫 번째 부인 로지를 완전히 지워버리거나 드리필드를 망치는 데 일조한 여자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런데 로지는 정말 드리필드를 망친 악녀였을까? 두 번째 아내, 에이미 드리필드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로지는 남편 에드워드 드리필드에게 대단히 해로운 영향을 끼쳤을까? 로이와 에이미의 말처럼 로지는 ‘지적으로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편보다 열등’한 여자였으며 드리필드는 첫 번째 결혼에서 ‘아주 불행’했을까? 그러나 어셴든은 로지에 관한 이런 그들의 평가에 씁쓸하지만 조용히 미소 짓는다. 자신이 보아온, 직접 느꼈던 로지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로지에겐 분명 결점이 많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솔직함과 자유분방함,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활력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훌륭한 작가로, 하층민의 삶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려낸 능력을 지닌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줬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드리필드의 모든 명작이 로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탄생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로지가 떠난 후, 후견인인 트래퍼드 부인을 만나 그녀의 ‘관리’ 아래 명성과 성공을 얻은 드리필드. 그러나 그의 작품은 물론 그 자신도 생기와 개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면, 작가에게 아니, 한 인간 개개인에게 명성과 성공, 그리고 삶의 즐거움과 쾌락은 과연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서머싯 몸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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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10-01 1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멋진 글과 맥주의 관계가 좀 더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을 쓰실 때 어떤 맥주를 드시는지~ 이런거요! (테라만 아니길...ㅋㅋ)

잠자냥 2021-10-01 13:25   좋아요 4 | URL
하하하, 테라는 아닙니다요! 국산 맥주 중에는 서울숲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1-10-01 13: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 4캔이 윤회하는 저녁에 극히 공감하는 1인입니다! 이 책 읽고 나서 어떻게 편맥을 안 할 수 있을까요?ㅎ 만원네캔의 행복이 지속되는 삶도 좋은데요! 즐건 연휴되시구요!ㅎ

잠자냥 2021-10-01 14:15   좋아요 4 | URL
ㅎㅎㅎ 그러게요, 오늘은 심지어 긴 연휴의 첫 시작일! 편맥 필수입니다! ㅎㅎ

Falstaff 2021-10-01 14: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작가 어셴든이 첩보대 R 대령한테 스카웃 되기 전의 이야기군요!
ㅋㅋㅋㅋㅋ 저처럼 배에 내장지방 잔뜩 끼면 4캔은 절대 못 마십니다.
걍 25도 쐬주 한 병에 금성맥주 반 리터면 딱입지요!

잠자냥 2021-10-01 14:48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인간의 굴레>의 그 필립 녀석이 <어섄든>의 첩보원 되는 그 중간 과정? ㅋㅋㅋㅋㅋㅋ 이런 깨알(?) 재미도 재미나네요. ㅋㅋㅋㅋㅋ

오늘도 즐겁게 25도 쐬주 즐기세요~ ㅎㅎ

공쟝쟝 2021-10-02 09:58   좋아요 1 | URL
오 이게 나름의 작가 삶에 빗대어 순서(?)가 있어요? 순서 아시면 알려주세요! 저도 서머셋 몸 가장 유명한 책은 읽은 사람입니다. (크흠흠!)

잠자냥 2021-10-02 13:30   좋아요 1 | URL
쟝쟝/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인간의 굴레>-<케이크와 맥주>-<어셴든> 이렇게 읽으면 더 재미날 거 같긴해요. (근데 전 아직 어셴든 읽기 전이라능)

coolcat329 2021-10-01 14: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글 읽고 많은 분들이 만원 네캔 하실듯 하네요. ㅎㅎ

잠자냥 2021-10-01 15:01   좋아요 3 | URL
아니, 여러분 책을 읽으시라고요! ㅋㅋ 케이크와 맥주만 사먹지 마시고요! ㅋ

vita 2021-10-01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맥주를 마시라는 글로 알아듣고 캔맥주를 사서 집에 들어가는 중인걸요 🙄

잠자냥 2021-10-01 16:28   좋아요 2 | URL
크하하- 좋습니다. 이 글 그냥 맥주 마시라는 글로 하지요! ㅋ

다락방 2021-10-01 16: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도 않지만 그래도 접대용으로 늘 냉장고에 넣어두고 있기는 하거든요. 이 리뷰 읽으니 너무 맥주 마시고 싶네요. 그렇지만 오늘 저녁은 소주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잠자냥 2021-10-01 16:28   좋아요 4 | URL
ㅋㅋㅋ 소맥 말아요. 부장님~ 모름지기 부장님은 소맥이죠.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0-01 16: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낮맥 하고 들어왔어요. 막둥이 옆에서 치킨 먹는 동안 전 맥주에 만화책 읽었고요. 인디언썸머인가요? 여름의 끝자락의 끝자락입니다. 치얼스!

잠자냥 2021-10-01 17:01   좋아요 2 | URL
하, 오늘은 안 마시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10-01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주에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숲 마셔봐야지잉~~😁

잠자냥 2021-10-01 22: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쌤 저랑 건배! ㅋ

mini74 2021-10-01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죠 이 분위기는 ㅎㅎㅎ 맥주를 부르는 글인가요.

잠자냥 2021-10-01 22: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러게 말이에요. 이게 다 몸 때문입니다!

coolcat329 2021-10-01 2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은 관심없고 다들 맥주 얘기만 ㅋㅋ 이번 리뷰는 참 안타깝네요

잠자냥 2021-10-01 22: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금요일이고, 연휴 시작이라 그러려니 합시다! ㅎㅎ

공쟝쟝 2021-10-02 09:5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그럴 줄 알았는데 책과 맥주에 진심인 사람들..ㅋㅋㅋ 그거 아세요? 저 제2의 성 읽는 동안 술 딱 두번 마신거..(심지어 연휴도 껴있었는데..)

잠자냥 2021-10-02 13:31   좋아요 1 | URL
쟝쟝/ 대박… 진심으로 열심히 읽으셨구려! 크게 칭찬하오.

케이 2021-10-12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잠자냥님. 잘 지내시죠? 결혼 전에는 혼자 맥주 마시는 게 낙이었는데 임신 준비하면서 술을 완전히 끊어서 벌써 술 안 마신 지 2년도 넘었네요. 남편도 맥주 한 캔만 마셔도 다음날 못 일어나는 사람이라 자연히 술과 멀어졌어요. 저희 부부는 요즘 수면욕이 모든 욕구를 압도하고 있어서 술도 맛난 음식도 전혀 생각이 안 나고 그저 실컷 자는 게 소원이네요.ㅜㅜ 서머셋 몸 소설은 재미 측면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더라고요. 이 책도 궁금하지만 저의 유일한 독서 가능 시간이었던 아기 재우는 시간에도 독서가 힘들어졌어요. 아기들이 꽤 무거워져서 아기 매고 두 손으로 아기 엉덩이를 받치거든요. 그래야 그나마 허리가 덜 아파서요. 그러다 보니 손을 못쓰게 되어 아기 재우는 중에도 손에 책을 들 수가 없어요. 흑. 그래도 현재는 애 키우는 게 우선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오랜만에 잠들기 전 안부 전하며.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잠자냥 2021-10-13 08:31   좋아요 1 | URL
수면욕! ㅎㅎㅎ 제 동생 둘 다 자고 싶다고 엉엉 운 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그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그 조카들이 어느덧 둘 다 돌을 지나서 요새 한 녀석(제 바로 아래 동생 아이)은 엄마가 가서 자라고 하면 인형 안고 쪽쪽이 빨다가 혼자 잠들고, 또 다른 녀석(막냇동생 아이)는 밤에 재우면 이제 새벽에 깨서 우는 일은 사라진 모양이에요. 케이 님 쌍둥이들도 곧 그런 날이 올 겁니다! 손목 얼른 낫길 바랄게요!
 
의지와 증거
비그디스 요르트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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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석이 끝났다. 연휴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집안에서 가족들끼리 다툼과 화해의 과정을 거듭했을까. 서로 날카로운 말을 내뱉어 상처를 주고, 차마 화해도 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도 있을 테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화목하게 웃고 떠들다 헤어졌어도 마음속으로 서걱서걱한 감정의 골을 되새기고 있는 그런 가족도 있을 것이다. 물론, 드물기는 하겠지만 정말 아무런 문제없이 기쁘게 만나고 헤어진 가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집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 가족 중 한 사람은 남몰래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의지와 증거>의 가족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집안의 문제는 처음에는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섯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상속 문제로 다툼 중이다. 부모가 죽고 나서 형제들끼리 상속 다툼을 벌이는 일이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런데 이 집안은 조금 이상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몇 주 동안 형제자매들은 가족의 재산인 휴가용 오두막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를 놓고 격한 분쟁에 휩싸인 상태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오두막을 네 형제자매 중 셋째와 넷째 딸들, ‘아스트리드’와 ‘오사’에게만 상속하고자 한 것이다. 장남 ‘보드’도, 맏딸 ‘베르기요트’도 유산 상속에서 거의 배제된 상태이다. 이런 불평등한 결정에 반기를 들고 나선 장남과 달리 베르기요트는 유산 상속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알고 보니 거의 20년 전부터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아왔던 그녀. 오빠 보드는 가족과 소원하기는 하지만 아예 인연을 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던 터라 이번 상속 문제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고, 이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베르기요트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것이다.

장남과 맏딸은 어쩌다 가족과 그렇게 멀어졌을까? 형제 넷이 모두 부모와 연을 끊을 만큼 사이가 나쁘다면 부모와 자식들 사이에 깊은 골이 있으리라 짐작할 텐데, 유독 위의 두 남매만 겉도는 이유는 무엇일지, 책을 읽는 이들은 이 집안의 사정을 제 나름대로 헤아려 보게 된다. 나 또한 베르기요트의 일기와도 같은 글을 따라가면서 이 집안의 내막을 추리해 나갔는데, 한없이 이기적인 엄마와 종종 폭력적인 아빠의 모습에서 아마도 이 가족의 문제는 부모가 유독 위의 두 남매에게 큰 자식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한 건 아닐까, 아니면 혹시 아버지가 큰딸이나 장남에게 성폭력을 가한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가 일그러진 가족 모습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큰딸이나 장남에게 그런 일이 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하게 되는데, 실제로 그렇다. 아버지는 큰딸이 어렸을 때 지속적으로 성추행(폭행)을 해왔고, 그걸 알고 있을 거란 이유로 장남에게는 폭력을 행사했다. 사정이 이러니, 성인이 된 두 남매가 가족을 멀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 작품은 독자가 가족의 추악한 비밀을 알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초반부터 누구나 짐작 가능할 만큼 그 어두운 비밀이 남긴 상처와 고통의 흔적은 베르기요트의 일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기만의 일도 있고, 착하고 품위 있는 남편도 있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 셋도 둔 그녀. 이런 평범한 외적 조건과 달리 그 내면은 위태로울 만큼 불안정하다. 그녀는 다른 사람, 그것도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그런 자신에게 ‘난 어디가 잘못됐기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반문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런지 인간관계 맺는 일에도 서투르고 겁부터 집어먹는다. 자기의 상처 때문에 남편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되는데, 유년기의 그 트라우마를 알게 되면 아,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언어도 완전히 결백하지 않다. (98쪽)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 베르기요트의 집안에서는 정말 그렇다. 이 집안의 문제는 아버지의 폭력에만 있지는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베르기요트의 어머니에게도 분노가 치솟는데, 이 어머니는 딸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삶을 즐기느라 자식을 돌보는 일에 아예 무관심했던 여성이다. ‘연약하고 맵시 좋은 여자’였던 엄마는 남편보다 열렬히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모든 애정과 관심은 그를 향해 있었고, 남편은 그런 아내 대신 ‘더 젊고 매력적인 여자’ 심지어 그 아내가 ‘제 몸으로 낳은 그런 여자’(165쪽)인 딸에게 성적으로 집착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둘 다 부모로서는 빵점, 아니 한 인간으로서도 빵점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베르기요트의 엄마는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리라 짐작하면서도 자기를 보호하고자 묵인하고, 남편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유부남에게 빠져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때는, 어떤 정당한 근거를 찾아내려고 딸에게 혹시 네 아빠가 너에게 손을 대지 않았는지 묻기까지 한다. 모든 것이 자기 위주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불안정하게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그런데다가 큰딸이 가족의 이 엄청난 비밀을 폭로하거나, 주위에서 알아차릴만한 이상 행동을 할까봐 부모 둘 다 노심초사 큰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다른 두 여동생들은 박탈감을 느끼며 그들 나름대로 상처 받으며 자란다. 아버지의 끔찍한 비밀을 알지 못하고, 부모에게 사랑받고자 성인이 되어서도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이 두 여동생 또한 어떤 면에서는 또 다른 피해자이다.  

그러나 이 집안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분명 베르기요트이다. 유산 상속 문제로 가족의 위선을 다시 맞닥뜨리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상처를 용기 내어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로 치부된다. 세월이 흘러도 엄마는 여전해서 자기 자신이 피해자인 양, ‘사악한 음모에 휘말린 비극의 주인공인 양 신파극을 쓰고 있다’. 엄마 진짜 속셈은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싶은’(25쪽) 것이다. 베르기요트는 애초에 이상한 아이였고, 지금 하는 말들도 그 이상한 아이가 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인권 운동가인, 아주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동생 아스트리드는 베르기요트에게 섣불리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 이제 상처는 잊고 가족을 위해 화해와 용서를 해야 한다고. 그러나 베르기요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상처를 제대로 꺼내 본 적이 없다. 이제야 드디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는데 오빠 보드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보드도 유산 상속 문제에서 저쪽 편이었다면 베르기요트에게 지지를 보냈을까? 어쩐지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화해는 갈등의 당사자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발칸 분쟁에서 일했으니 그런 이야기는 영원히 낡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겁니다.(214쪽)

철학자 아르네 요한 베틀레센은 전후 진상조사와 화해 과정의 문제는 대체로 피해자에게 가해자만큼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며 그 자체가 내재적인 불평등이라고 했다. 나는 이 명제를 종종 숙고하다가 우리 가정의 화해 과정 역시 엄마와 아빠, 내 동기보다 내게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그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전후 진상조사와 화해위원회가 꾸며 질 때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누구이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그 점에서조차 합의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화해할 수 있나? (254쪽)


화해는 갈등 당사자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고 나서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게다가 이런 일에서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가해자만큼 많은 것을 요구한다.’ 피해자의 상처는 화합을 위해 굳이 다시 꺼내서는 안 될, 덮어두어야 할 이야기로 치부될 때가 더 많다. 게다가 그 진실은 종종 의심받기 일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는 이렇게 처음부터 합의하기 어려운 불공평이 존재한다. <의지와 증거>는 한 집안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불평등 문제를 짚는 한편, 그 사이사이 발칸반도 문제나, 전후 피해자들의 문제를 절묘하게 중첩시키면서 고통받은 사람들, 학대당한 피해자들의 문제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학대는 학대당한 사람을 파괴하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을 어렵게 한다. 고통은 누군가에게, 특히 피해자에게 유용한 뭔가로 변화시키려면 강한 노력이 필요하다.’(268쪽) 베르기요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학대 경험을 이제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그녀에게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에게 ‘유용한 뭔가’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기의 말이 거짓이나 망상, 또는 연극 대본이 아님을 그 고통스러운 삶 그 자체로 증언한다. 누군가는 결코 믿으려 하지 않더라도, 동의하지 않더라도,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고’(173쪽) 입을 열었고,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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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24 10: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의 삶 전체가 그 증거라고 증언하는 딸의 편지가 정말 인상깊었어요. 그러네, 피해자의 삶이 그대로 증거이네, 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더라고요.

잠자냥 2021-09-24 11:08   좋아요 3 | URL
맞아요, 그런 딸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ㅠㅠ 베르기요트, 딸은 잘뒀구나... ㅠㅠ

공쟝쟝 2021-09-24 10: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왜 제2의성도 다 못읽었는 데 추석이 끝나있냔 말입니다. 근데 이 책이 이런 철학적(?)지점을 사색하길 건네는 책이었군요. 계속 읽어보려고 째리는 중인데. 네? 알았어요. 제2의성 다 읽고요.. 그리고 시작할게요.. 뭐라고요? 정신 못차리고 남의 서재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3분만 3분만 더 놀다갈께...

잠자냥 2021-09-24 11:10   좋아요 4 | URL
네, 이 작가 책 처음 읽어보는데, 생각이 많은~ 사색적인 작가 같습니다.

˝공쟝쟝제2의성부터다읽고생각해보자˝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9-28 08: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알라딘 마을 날라리들 여기 있...다고 쓰려니 공쟝쟝님 성실 모범생이시잖아요.
아, 저도 일해야 하는데, 그러면서 컴에 파일 띄워두고 알라딘 책 조금만(!) 사야지 그러다가 (그런데 정작 ‘사실과 증거‘는 이미 내앞에 있지만 안 읽음) 여기 와서 이러고 있.... 하, 일해야 하는데. 그런데 날이 흐리니 일할 기분이 안 나잖아요? 왜냐?! 해가 쨍쨍해야 얼릉 빨래 돌리고 커피 뽑아서 그 시간 내에 일을 하고 막 그려려고 했거들랑요. (재택의 바쁜척하기) 그런데 현실은 딩가딩가 알라딩가.

공쟝쟝 2021-09-28 09:11   좋아요 0 | URL
얽? 저도 모르게 노래 지어서 부르게 되네요? 딩가링가링 알라딩아링가… (알라딘 접속은 제게 출근 루틴…ㅋㅋㅋㅋㅋ 여기에 일할 에너지를 다 쏟아낸다)

coolcat329 2021-09-24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주인공 여자가 받았을 고통이 너무 컸을듯요. 가족이 다 아버지 범죄를 모른척하는 상황에서 그 아픈 비밀을 감추고 살다가 다시 만나는 설정이 참...
저도 이 책 담아둡니다.

잠자냥 2021-09-24 12:28   좋아요 2 | URL
네, 다른 가족조차 자기를 보듬어주지 않으니 그 삶이 어떠했을지 참.... ㅠ

mini74 2021-09-24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의 끝는 싸움이라고 ㅠㅠ 화해와 용서가 정말 가능할까요 ㅠ 저도 담아갑니다. 책하고만 화해와 용서를 하는거 같아요 ㅎㅎ

잠자냥 2021-09-24 17:35   좋아요 2 | URL
책에는 미움도 잘 안 생기지 않나요? ㅎㅎㅎㅎ

mini74 2021-09-24 18:43   좋아요 3 | URL
우리 그만 만나자.
아니야 요번 신간은 만나봐야겠어.
좋다고할땐 언제고 네가 버려둔 저 애들을 봐 !
정신차려.
뭐 이런 식? 의 ㅎㅎㅎㅎ 썰렁해서 죄송해요 ㅠㅠ

독서괭 2021-09-24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상속다툼이라니 참 명절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네요ㅎㅎ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불평등 문제”를 짚는다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언제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9-24 22:53   좋아요 2 | URL
아이고 언제나 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사무라이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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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제목만 봤을 때는 엔도 슈사쿠와 어쩐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엔도 슈사쿠가 사무라이 이야기를?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사무라이 이야기 속에서 종교, 그러니까 예수와 그리스도 신자 이야기를 하겠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예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사무라이>는 기리시탄(에도 시대에 그리스도 신자를 가리키는 말)이 된 ‘사무라이’의 이야기이다. 무사인 사무라이와 그리스도 신자라니 그 조합이 참으로 의아한데, 이 이야기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1600년대 초, 일본 동북부 센다이의 작은 항구 쓰키노우라에서 새로 만든 웅장한 갤리언선 한 척이 출항 준비 중이다. 배에는 일본인 100여 명과 스페인 선원 40여 명이 탈 예정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스페인 식민지인 멕시코.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와 가까운 곳에 새 무역항을 만들어 멕시코와 직접 무역을 바란다. 그런 쇼군의 의향을 읽은 정치인들은 사절을 보내는 데 앞장선다. 때문에 이 배에는 일본인 상인들을 비롯해 사절 임무를 맡은 사무라이들, ‘하세쿠라 로쿠에몬’, ‘니시 규스케’, ‘마쓰키 주사쿠’, ‘다나카 다로자에몬’ 이 네 사람이 탔으며 통역으로 스페인인 신부 ‘벨라스코’가 동행한다.

막중한 임무를 띤 한 나라의 사절이라고 하니 그 신분이 화려할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영주의 명을 받은 하급 사무라이들로 자신들이 왜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이 되었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특히 이중 궁벽한 골짜기에서 농사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지내던 ‘하세쿠라’는 자신이 선발된 이유가 더 의아하기만 하다. 그의 집안은 ‘메시다시슈’라고 불리는 토착 무사에 속하고 영주의 아버지 대부터 봉공을 해왔지만 특별한 일을 해왔던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자신은 달변가이기는커녕 남다른 재능도 없다. 묵묵하게 아버지나 숙부에 순종하면서 살아왔다는 것, 무슨 일이든 거스르지 않고 농민들처럼 인내하는 것만이 유일한 재능이다. 게다가 넓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은커녕 야심도 없어서 이 골짜기를 떠나기가 꺼려지기만 한다. 그러나 숙부의 오랜 꿈(공을 세워 이 궁벽한 땅 대신 기름진 봉토를 받고자 하는)을 실현하고자 주군인 영주의 명령을 받들어 하인을 이끌고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된다.

통역을 자청한 신부 ‘벨라스코’는 어떤 이유로 이 배에 선뜻 올라탄 것일까? 프란치스코회 소속 신부인 그는 일본에서 열정적으로 포교 활동 중인 선교사로 자신들보다 앞서 일본에 선교하러 들어온 예수회 소속 신부들을 제치고 두드러진 공을 세워 일본에서 주교가 되기를 꿈꾸는 대단한 야심가이다. 그는 현세적 이익에 대한 감각이 아주 뛰어난 일본인의 속성을 간파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가 바라는 것-멕시코와의 무역-을 이용해 자신의 공을 세울 기회를 노린다. 포교를 위해 일본인의 탐욕을 이용하는 것이다. ‘포교도 외교처럼 술책을 부리고 흥정하고 위협하고 때로는 타협도 해야 한다.’(176쪽)는 생각을 가진 이 대단한 야심가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은 저 어수룩한 사무라이들을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간다.

힘겨운 바다 여행을 마치고 멕시코에 도착한 그들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리라 기대하지만 정세는 급변한다. 게다가 자신의 야심을 이루고자 다른 이들을 도구로 쓰기 마다하지 않는 벨라스코 신부의 계략으로 이 사무라이들의 여행은 멕시코에서 스페인으로, 로마로 속절없이 길어지기만 한다. 그 여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이들의 임무가 결코 쉽사리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것, 그리고 행여 그렇다한들 일본으로 돌아간 그들 앞에 화려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사무라이를 포함한 그의 종자 ‘요조’ 등 일본인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멕시코에서 무역을 손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리시탄이 된 일본인 상인들은 현세적 이익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무라이의 하인 요조는 조금 특이하다. 그는 이 배에 오른 이들 가운데 가장 낮은 신분 계급에 속한다. 그저 자기의 주인인 ‘하세쿠라’를 묵묵히 따를 뿐, 어떤 주장이나 의견도 내놓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벨라스코의 설교에 감화 받아 그리스도의 삶에 관심을 갖고 마침내 기리시탄이 되는 모습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이다. 아마도 그는 예수가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한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그 평등한 모습에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세쿠라도 인상 깊다. 그는  임무 때문이기는 하지만 기리시탄이 되기를 누구보다 꺼린다. 우연히 손에 넣은 예수의 형상이 그려진 염주를 보면서도 의아하기만 하다. 힘없이 두 팔을 벌리고, 힘없이 고개를 숙인 그 사내를 보면 벨라스코를 비롯하여 남만인 모두가 이런 사람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주(主)라고 부르는 사람은 영주뿐이며, 영주는 이렇게 볼품없지도, 무기력하지도 않다. 그의 눈에 예수는 그저 추하고 비쩍 마른 사내, 위엄도 없고 돋보이지도 않는 초라한 사내일 뿐이다. ‘이용한 후에는 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내’(316쪽)이다. 게다가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우리 생활이 편해진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기리시탄이 되는 일은 조상과 골짜기의 삶 전체를 배신하는 일이다. 죽은 조상들이 사무라이가 기리시탄이 되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다.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기리시탄이 되기를 선뜻 받아들인 젊은 사무라이 ‘니시’도 있다. 그는 사무라이 일행 중 가장 젊고 순수하기에 거리낌 없이 새로운 사상이나 문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가혹하여 그는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일찌감치 그리스도신자가 되었지만, 자기들 손에는 결코 흙을 묻히지 않는, 그저 입으로만 아름다운 소리를 늘어놓는 신부들의 태도에 질려 수도사의 길을 포기한 일본인 수도사도 인상 깊다. 그가 믿는 예수는 금전옥루 같은 교회에 있지 않고, 비참한 인디오 안에 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예수야말로 엔도 슈사쿠가 그의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말해온 예수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요조, 하세쿠라, 니시, 일본인 수도사 등은 저마다의 이유로 기리시탄이 되고, 또 저마다의 이유로 그 안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상처받는다. 믿음의 깊이 또한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과연 기독교 신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믿음의 깊이가 얕다. 그러나 나는 이 네 사람이 벨라스코 신부보다 더 예수 가까이 다가간 이들이 아닐까 싶다. 벨라스코 신부는 이 작품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다. 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는 줄곧 일본인을 폄하하면서 계도와 계몽이 절실한 존재로 본다. 세속적인 이익에 매우 약삭빠른 존재라고 그들을 향한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벨라스코 신부만큼 세속적 욕망에 들끓고, ‘현세적인 이익에 대한 감각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 또 있는가? 그가 다른 곳도 아닌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은 그 스스로 말하듯 일본과 일본인은 그의 ‘포교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며, 다루기 힘든 맹수를 길들이듯이 그런 어려움을 하나하나 ‘정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서슴없이 주님의 가르침으로 일본을 ‘정복’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한다. 때문에 그의 주변 여러 사람이 그에게 신부가 아니라 ‘정치가’나 ‘외교가’가 되는 게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고, 한결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는 끝까지 일본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순교한 그의 삶을 보고 숙연해질지도 모르겠으나 글쎄, 나는 그가 끝까지 예수의 가르침을, 주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삼지 못했다고 본다. 그는 끝까지 자기가 ‘정복’하지 못한 일본 땅에서 순교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자기 방식대로 승리했다고 믿고 죽어간 오만하기 짝이 없는 불쌍한 인간이 아닐까. “산에 오르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동서로도 길이 있고 남북으로도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오르든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도달하는 길도 그와 같겠지요.”(130쪽)라는 그의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어쨌든 그의 방식으로는 결코 하느님에게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벨라스코보다는 ‘신은 존재라기보다는 손길이라던’ 오쓰(<깊은 강>)의 깨달음과 맞닿아 있는 그들, 하세쿠라, 요조, 그리고 일본인 수도사 그들이 더 가까이 신에게 다가간 것은 아닐까. 사무라이, 그가 그토록 헤매다 마침내 만난 진정한 왕은 아마도 예수가 아니었을까.


“나는 형식적으로만 기리시탄이 되었다고 생각해왔네. 지금도 그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하지만 정치가 뭔지를 알고 나서 이따금 그 사내를 생각해 왜 그 나라들에는 어느 집에나 그 사내의 가련한 상이 놓여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평생 함께해줄 사람, 배신하지 않을 사람, 떠나지 않을 사람을-설령 그것이 병들어 쇠약한 개라도 좋아-찾고 싶은 바람이 있는 거겠지. 그 사내는 사람에게 그런 가련한 개가 되어주는 거야.” (4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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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14 09: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리뷰 보고 읽기로 결정했습니다.^^

잠자냥 2021-09-14 10:30   좋아요 2 | URL
네 이 책은 정치와 종교가 적절히 섞여 있어서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레이스 2021-09-14 10:35   좋아요 3 | URL
여러분들의 리뷰를 읽은 결과 읽는 쪽으로 기울고 있던 중이었어요^^
제가 침묵을 3번 넘게 읽고 논제 만들고 하면서 당시 역사도 조금 봤거든요
엔도 슈사쿠의 글은 왠지 변명이 될것같다는 생각때문에 읽고 싶지 않았는데,,, 리뷰보니 제 예단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잠자냥 2021-09-14 10:40   좋아요 3 | URL
우아, 침묵 3번이나! 전 아직 그 작품만큼은 안 읽고 있다능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14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으신 분들의 평점이 다 좋네요. 잠자냥님까지 별 다섯~!! 이러면 안읽을 수 없죠 ^^ 저 표지는 너무 마음에 드네요~!!

잠자냥 2021-09-14 10:30   좋아요 3 | URL
네, 다들 평점이 좋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Falstaff 2021-09-14 10: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안 낚입니다. ㅋㅋㅋㅋ 이제 종교 얘기는 좀 쉬고 싶어요.
게다가 엔도 슈사쿠 덕후께서 격찬을 하셨으니, 디스카운트를 좀 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크하하하하... =3=3=3=3

그레이스 2021-09-14 10:37   좋아요 3 | URL
ㅋㅋㅋ

잠자냥 2021-09-14 10:39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두고 봐야지 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9-14 12:40   좋아요 2 | URL
저는 주문했습니다
알라딘은 너무 빨라서 오늘 보내준대요.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네요. ㅋ

vita 2021-09-14 1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안 낚이시겠다고 하신다니까 갑자기 급궁금해지는 이 심리란 ㅋㅋㅋㅋ 잠자냥님이 읽어봐봐 하면 저 이제 읽어보려구요. 잘 했죠? 하지만 아직 사지 않았다는...... 엔도 슈사쿠는 팬층이 정해져 있는 거 같아요. 저는 곰곰 머리를 굴려보니 한 권도 읽은 작품이 없어요. 이 책으로 시작해도 괜찮겠죠?

잠자냥 2021-09-14 14:29   좋아요 2 | URL
ㅎㅎㅎ 엔도 슈사쿠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어보게 되더라고요. 아주 강렬한 매력이 있다고는 말하기 뭐한데 참 묘한 작가입니다. 처음 시작하신다면 이 책도 괜찮지만 그보다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깊은 강>을 추천합니다!

mini74 2021-09-1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에 이어 사무라이 ~ 침묵이 던지는 물음들이 무겁고 어려웠어요. 쉽게 읽히지만 쉽지 않은 ㅎㅎ 사무라이도 담아갑니다 ~~

잠자냥 2021-09-14 16:12   좋아요 1 | URL
쉽게 선뜻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툭 던지는 게 엔도 슈사쿠 작품의 매력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