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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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 않는 말 중에 “당신 딸이 당했어도 그럴 수 있느냐?” 류의 말이 있다. 예컨대 성범죄자들을 감형해주거나 아주 가벼운 형량만 내리는 판사에게 “당신 딸이나 와이프가 당해도 그렇게 할 것이냐?”하고 되묻는 것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딱히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의 가족으로 치환해 생각해 보기를 촉구하는 말들을 나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공감 능력이 그 정도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가장 가까운 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럴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일 텐데, 고통스러운 일에 공감을 도통 못하기에 가족을 입에 올리게 만드는 이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밖에 비유하지 못하는 인간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인간들이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수사법을 종종 쓰는 것이리라.

여기 ‘데이비드 루리’- 이 남자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사람일까? 52세의 이혼 남성이자 대학교수인 그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간다. 이혼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학교수이고, 여자를 만나는 일에도 그다지 어려울 점이 없다. 사실 그는 손쉽게 여자를 사는 편을 택한다.  취향에 맞는 여자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돈을 주고 욕망을 해소한다. 몸을 파는 여자이긴 하지만 자기 취향에 딱 맞는 그 여자만 있다면 딱히 이렇게 혼자 살아가는 삶이 불만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인생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기에, 그 여자는 루리 곁에서 사라진다. 여자가 사라진 후, 루리는 섹스를 하지 않은 채, 여자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그런 남자는 아니다. 욕망이 그의 몸 안에서 분출되지 못하고 남아있을 때 하필이면 그는 다른 여자, 그런데 교수에게는 금기의 대상인 자신의 학생 ‘멜러니’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지성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멜러니에게 끌린다. 그녀의 외모, 젊음 이런 것들에 눈이 간다. 혼자 사는 집으로 그녀를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주고 술잔을 건넨다. 이 술잔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루리는 멜러니와 섹스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까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멜러니는 어땠을까? 멜러니는 자발적으로 루리의 초대에 응했다. 그렇다면 섹스를 허락한 것일까? 루리가 건넨 술잔도 받았고 그가 자신의 몸을 덮쳤을 때도 완강하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 관계를, 이 불균형한 관계를 허락한 것일까? 그녀의 학점은 루리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실제로 루리는 멜러니가 섹스 이후 그를 피하느라 수업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자기 멋대로 점수를 준다. 사적 감정으로. 멜러니는 그 첫 번째 만남 이후 분명히 그를 피한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집까지 찾아온 루리에게 들어오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자기의 의사를 밝힌다. 사실 그들이 섹스를 할 때도 멜러니가 그 행위를 거부하는 태도는 모호하지만 분명히 드러난다. 루리 자신이 그것을 외면할 뿐이다. 보지 못한 척 할 뿐이다. 이 관계가 사랑일까? 루리에게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멜러니에게는 강간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부모에게, 남자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당연히 부모는 학교를 찾아간다. 루리는 하루아침에 성추문에 휩싸이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아니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음으로써 쫓겨나기를 선택한다. 자발적 추락.

<추락>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쫓겨난 루리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의 딸 루시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남아프리카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물론 자기를 낳아준 엄마와도 딱히 닮은 구석이 없어 코뮌의 일원으로 시골에 자리를 잡고 공동체가 와해된 후로도 그곳의 자작농지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루시의 나이는 멜러니보다 조금 많은 정도. 그런데도 루리는 딸이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펑퍼짐해진 몸으로 남자 없이 이 척박한 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게 낯설기만 하다. 아니, 하필이면 못생긴 여자를 파트너로 두고 살아가는 점이 못마땅하다. 그렇다, 루시는 레즈비언으로 연인 헬레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결별 이후 지금은 혼자서 작은 농장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성추문으로 이곳으로 쫓겨 오다시피 한 아버지와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그 동거가 곧 끝날 것이라 생각하던 참에 그 일이 터지고 만다. 흑인 괴한 세 명이 농장에 침입해 루시를 강간한 것이다. 그때 루리도 집에 있었지만 젊은 세 남자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화장실에 감금당한 채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까 바로 그 일, 딸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를 강간한 남자는 자기 딸이 강간당하는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가 강간 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기 된 셈이다. 이제 그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니 하고 싶지 않았던, 용서받기를 거부했던 자로서 강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절절하게 고통스러워할까?
 

그들은 그가 강간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더 목격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들은 강간에 관한 한, 어떤 남자도 여자가 있는 곳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추락>, p.198)


그는 딸에게 일어난 일을, 현장에 같이 있었으면서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들이 어쩐지 딸이 남자 없이 혼자 지낸다는 것을 알고 온 것만 같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거듭 분노한다. 딸이 강간으로 인해 성병이나 임신 등의 부차적인 문제에 시달리게 될까봐 걱정한다. 그러나 강간도 임신도 성병도 모두 딸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고 일어날 일이다. 그는 곁에 있었지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아니 어떤 면에서는 저기 멀리서(대학), 다른 여자(멜러니)에게 강간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구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 추락하기를 선택해 은둔해 버린 인물이다. 그의 분노와 고통은 정당한가?



“증오....... 아버지, 남자들과 섹스의 문제에 관한 한, 이제 어떤 것도 저를 놀라게 하진 못해요. 어쩌면 남자들은, 여자를 증오하면 섹스가 더 자극적이 되나봐요. 남자니까 아시겠죠. 낯선 여자와 섹스를 하고, 여자를 올가미에 넣고, 여자를 짓누르고, 아래에 깔고, 자기 몸을 여자한테 부리는 건, 여자를 죽이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나요? 칼을 쑤셔박고, 나중에는 피가 낭자한 몸을 뒤에 남기고 떠나는 건 살인 같지 않아요? 살인을 하고 달아나는 것과 비슷하지 않아요?” (p.222)


경찰을 찾아가자고, 범인을 찾는 데 혈안이 된 루리와 달리 루시는 그 사건을 그냥 덮으려고만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어 한다. 그런 딸을 루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농장에서 여전히 남자 없이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사람은 루리가 아니라 루시이다. 루리는 떠나면 그만 아닌가. 루리는 “그들이 너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려는 거”라면서 딸에게 이 농장을 떠나 네덜란드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기를 종용하지만 루시는 그에 따르지 않는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들이 바란 것은 노예라기보다는 “굴복이자, 종속”이라며 그들이 강간할 때 자기에게 보인 그 증오심에 크게 충격 받았음을 털어놓는다.

<추락>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백인 정권에서 흑인 정권으로 권력이 이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백인이 저질렀던 죄, 그 죄가 부른 또 다른 죄들, 여러 형태의 복수들을 보여주면서 인종적 화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이상적으로만 존재하는지 그 현실적 어려움을 낱낱이 까발린다. 백인은 흑인의 땅에 침입해 그들의 삶에 끼어들었고, 그들의 삶을, 자원을 강탈해갔다. 이제 흑인들이 백인 여자의 신체에 침입해 그녀의 몸을 유린하고 강탈해간다. 여자의 몸은 식민주의/제국주의 치하의 힘과 권력이 없는 나라에 비견된다. 힘과 권력, 성(性)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인 몸은 올가미에 걸리고, 짓눌리고, 아래에 깔린다. 그러다가 급기야 칼로 쑤셔박힘 당하고, 나중에는 피가 낭자한 몸만 너덜너덜 남겨진다. 백인 남성 루리가 제아무리 “치욕스러운 상태로 떨어졌”다고 “날이면 날마다 그것에 따라 살아가며, 수치를 제 존재의 현상태로 받아들이려고”(p.242) 한다고 고통에 절규한다 한들, 강탈당한 멜러니와 루시의 그 고통만큼 더 아플 수 있을까?



“여러분은 강탈해가다는 끼어들다intrude 혹은 침입하다encroach upon라는 의미인 걸 알았을 겁니다. 강탈하다usurp는 말은 강탈해가다usurp upon의 완료 상태입니다. 강탈한다는 건 강탈하는 행위를 완성하는 겁니다.”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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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2-0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추락이 이런 내용이군요? 꼭 읽어봐야지 다짐하며…
오늘도 잠자냥님 리뷰는 좋았다…

잠자냥 2025-02-04 10:21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스포일러 될까 봐 안 쓴 부분 있는데... 암튼 이거보다 더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단발머리 2025-02-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잠자냥님 리뷰는 좋았다2...

잠자냥 2025-02-04 10:22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식민주의에 관심 많이시잖아요?
이 책 읽으시면 할 말 많을 거라 생각해요. ㅎㅎ
꼭 읽어보세요.

다락방 2025-02-04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이 소설을 읽고 감탄하고 놀랐었는데요, 존 쿳시가 노벨문학상을 탄 뒤에 이 작품 때문에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굉장히 많이 항의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그걸 알고 ‘내가 뭔가 놓친게 있나‘ 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렇다면 지금 다시 읽으면 나 역시 불만을 가지게 될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리뷰를 읽고나니 제가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탄할 작품이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잘 쓰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5-02-04 10:32   좋아요 0 | URL
여기 리뷰에는 쓰지 않았지만(너무 큰 스포일러라),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까였을 법한.... 중요한 내용이 있기는 해요. 다락방 님은 읽은 책이라 기억하실 것 같은데... 전 루시의 그 선택이... 과연 정말 작가가 여성이었어도 그렇게 썼을까 싶더라고요.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건 좀 아닌데 싶더라고요. (여자가 정말 그 상황에서 그럴 거라고?!!! 이런 의문....)
그리고 멜러니가 남친한테 괴롭힘당하다가 제 발로 루리 찾아가는 부분도 좀...
멜러니의 저항도 너무 모호하게 그려서 페미니즘 관점으로 보기엔 오해받을 소지도 많은 것 같고요...
암튼 전 이 리뷰에는 안 썼지만 루시의 1번 선택, 2번 선택 다 동의할 수 없어요... ㅠㅠ 으앙....... 루시야 왜 그러니......

잠자냥 2025-02-04 10:2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아래 <폴란드인>은 도리어 페미니즘적인 작품입니다.
다락방 님 단테 <신곡>도 읽었으니 <폴란드인>도 얼른 읽어보시지요......

다락방 2025-02-04 11:46   좋아요 1 | URL
루시의 선택 때문에 제 친구도 읽고 분노햇었어요. 그래서 저도 다시 읽는다면 다르게 읽힐까, 생각했었고요. 제가 지금 기억하는 분위기와 내용이 다시 읽는다면 다른 식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것 같거든요. 제가 추락 읽었을 때는 좀 꼬꼬마였던 때라.. (페미니즘 그게 머에염?) 그런데 실망하기 싫고.. 그래서 여태 다시읽기를 미뤄온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포함 존 쿳시의 다른 책들도 저는 다 좋더라고요. 저는 [나라의 심장부에서] 와 [슬로우맨]을 읽어봤습니다. 폴란드인 어서 읽어볼게요. 그렇지만 전쟁과 평화가.....

잠자냥 2025-02-04 16:11   좋아요 0 | URL
꼴페미 다락방 과거에는 몰페미 ㅋㅋㅋㅋㅋㅋㅋ

케이 2025-02-0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궁금하여 나중에 읽어보려고요. 그 후에 독후감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무실에 히터를 틀어도 소용이 없네요. 흑흑. 보온에 신경쓰는 한 주 되시길.

잠자냥 2025-02-04 16:11   좋아요 1 | URL
강간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서 꼭 읽어보세요!
오늘내일낼모레 엄청 춥다는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관찰자 2025-02-04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자로 줄이기는 불가능했던 리뷰를 이렇게 멋지게 써 주셔서 감사해요. 잠자냥님. >.< (그런데 이런 이모티콘은 요새 안쓰나??;;)

잠자냥 2025-02-05 10:21   좋아요 0 | URL
100자로 줄이기 불가능했다면 관찰자 님도 리뷰를 쓰시는 겁니다! ㅎㅎㅎ
저 근데 이런 이모티콘 요즘도 써요.... -_-;;

관찰자 2025-02-06 15:19   좋아요 0 | URL
<추락>에 대한 리뷰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어서 최근 리뷰를 하나 쓸 수 밖에 없긴 했지만 쓰면서 잠자냥님이 쓰라고 했다 하면서 쓰긴 했습니다. ^^;;(우린 이런 이모티콘 세대인가 봅니다.)
 
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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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셰리Cheri’- 마흔아홉의 레아가 사랑에 빠져버리는 남자, 스물다섯 그의 애칭은 셰리- 이 작품에서는 ‘소중한 아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애지중지하는 사람’,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잘 어울린다. 레아가 셰리를 셰리라고 달콤하게 부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다른 셰리가 떠오른다. 내 머릿속의 그는 바로 ‘셰리Sherry’ 어처구니없게도 식전주의 대명사 셰리이다. 식사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 셰리- 그런데 묘하게도 그 셰리와 이 셰리가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레아의 소중한 아이 셰리Cheri는 그녀에게 한때는 식전주 셰리Sherry 같은 존재였다. 상쾌하면서도 가벼운,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그런 존재- 그런데 가볍게 입을 댄 그 술에 그렇게 독하게 취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레아도 셰리도 몰랐으리라.

셰리에게도 레아를 부르는 애칭이 있다. ‘누누nounou’- 셰리는 레아를 누누, 그러니까 유모라고 부른다. 유모?! 동공지진해지는 순간이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어린 녀석이 제가 사랑에 빠지는 마흔아홉의 여자를 유모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과연 애칭인지, 조롱인지 아리송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불리는 당사자 레아가 불쾌해하지 않으니,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서로의 애칭이라 인정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유모와 소중한 아이의 이 파격적인 사랑을 콜레트는 대담하게 그려나간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남자 나이 마흔아홉에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라고 해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기보다 욕 처먹기 딱 좋은데 그 반대의 조합이니 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유모가 아이를 키워서 잡아먹는 이야기인가 오해하기도 딱 좋다.

여기서 잠깐 고개를 돌려보자. 내 마음에 드는 여자로 길러서 잡아먹고 마는 이야기들이 일찍부터 존재했다. 저 먼 서구가 아니라 동양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 그러니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인의 사랑>(또는 <미친 사랑>)이 그러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다니자키 준이치로에게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의 ‘히카리 겐지’와 ‘무라사키노 우에’의 관계가 그러하다. <치인의 사랑>에서 ‘조지’는 열다섯 살 소녀 ‘나오미’를 데려다가 키워서(아니 다 키우기도 전에) 잡아먹고, <겐지 이야기>의 ‘히카리 겐지’는 열 살 소녀 ‘무라사키노 우에’를 데려다가 역시 자기 취향대로 키워서(아니 다 키우기도 전에)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유모 ‘레아’도 자신의 소중한 아이, 그러니까 셰리를 미성년 시절부터 제 취향대로 키워서 낼름 잡아먹는가?! 싶어지는데 그나마 그건 아니라서 다행스럽다. 게다가 저 ‘조지’나 ‘겐지’처럼 미성년자인 소녀들을 상대의 동의 없이(동의고 뭐고 판단하기도 어려운 나이에) 낼름 잡아먹는 게 아니라, 레아는 셰리를 어릴 때부터 죽 지켜보긴 했지만 그가 열아홉 살이던 그 어느 밤, 처음으로 키스, 식전주 같은 키스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 짧은 키스가 두 사람의 가슴속에 서로를 향한 고깃덩어리 같은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말았으니, 둘은 식전주는 이제 제하고 본 코스로 들어가 그 이후 6년 동안 서로를 탐하는 사이가 된다.

미성년일 때 시작한 사이도 아니고, 서로의 동의 아래 이뤄진 키스&육체관계이니 둘 사이에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데,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는 동서양 막론하고,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연상일 때는 문제가 되기 쉬운 모양이다. 레아의 친구이자 셰리의 엄마는 자기의 잘난 아들을 그 또래의 귀엽고 발랄한 젊은 여성에게 장가보내고 싶다. 문제는 셰리 이놈인데, 이 철딱서니 없는 망나니 같은 녀석도 엄마의 뜻을 받들어 자기 또래의 젊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6년 동안 이어진 유모와 못된 아기의 사랑은 우쭈쭈쭈 내 소중한 아기 셰리의 결혼과 함께 끝을 봐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차피 서로 쾌락을 위해 맺어졌던 관계였으므로 짐짓 가벼운 척, 별것 아닌 척, 쉽게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쉬운 이별이 어디 존재할까? 심지어 무려 6년이나 이어진 관계이다. 게다가, 못된 아기 셰리 못지않게 레아 또한 못된 유모가 아닌가. 이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 서로 좋아 죽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두 사람만 그걸 모른다), 서로의 앞에서는 질투도 나지 않는 척 못 보면 못 봐서 힘들지 않은 척, 그립지도 않은 척,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사는 척 등등 온갖 척을 다한다. 이 두 사람을 지켜보노라면 서로 누가 안 사랑하는 척, 덜 사랑하는 척 내기라도 하는 듯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다 보인다. 둘 다 서로 없이 못 살 거라는 거. 쿨내 진동하지만 전혀 쿨하지 못한 두 사람.



“하지만 혼자가 아니잖아! 그 여자애도 있잖아....”
“물론, 그 여자도 있지,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있긴 있지.”
“그리고 이제 더는 내가 없고.”
셰리는 대답을 말 대신 얼굴로 내비쳤다. 어쩔 줄 모르며 흔들리는 동공, 순식간에 핏기가 빠져나간 입술, 일그러진 표정, 그는 그녀가 숨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한 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신은 늘 있을 거야, 누누.” (p.73)


그들은 저토록 가볍게(?) 헤어진다. 헤어지는 그 순간 레아는 너무도 능숙하게 자신의 본심을 숨기면서 잘 다스린 것, 한순간 복받친 이별의 격한 감정을 숨긴 것, 절대 해선 안 될 말을 삼킨 것, 진심을 털어놓으며 애원하고 우기고 매달리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이후 둘은 저마다 고통 속을 헤맨다. 레아는 레아대로 이 남자 저 남자 찾으며 가벼운 관계를 지속하지만 공허하다. 자신의 늙어가는 육체가, 시들어가는 육체가 짐짓 야속하기만 하다. 셰리는 셰리대로 젊은 아내와의 생활에 잘 적응하는 척하지만 얼마 못가 집을 나오고 호텔에 살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돈을 주고 사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그는 레아 이야기를 실컷 하고 싶다.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레아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흉을 보는 척, 비판하는 척하면서도 그 본질은 결국 레아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는 ‘계속해서 떠들면서 박해받은 연인의 고충을 암시하는 너절한 말들 뒤에 숨어, 위험없이 레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은밀한 행복을’ 누리고 ‘조금 더 레아의 평판을 해치면서 속으로는 고이 간직한 그녀와의 추억을’ 기린다. ‘여섯 달 동안 불러보지 못했던 그 다정하고 쉬운 이름을 마음껏 발음하면서 레아의 모든 자애로운 모습을’ 떠올린다. 레아는 없지만 지독히도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pp.121~122)

못된 아기 셰리의 이 모습에서는 바보 같은 녀석! 하면서도 쓸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더는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이나 사이가 된 후라면 그런데도 그저 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은,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듯한 느낌인 그 기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셰리가 돈을 주고서라도 레아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어 하는 저 감정에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레아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와의 시간을 되찾은 듯 행복한 셰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레아 앞에서 절규한다. 이제는 덜 사랑하는 척,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척, 위악적인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여자 때문에 고통스러운 게 뭔지 않다고, 당신 이후에 나를 기다리는 관계는 다 하잘것없어졌다고, 당신 때문에 난 망했다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당신이 어디에도 없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늘, 그 6년 전의 첫 입맞춤 이후로 그를, 그녀를 지배해 온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숨긴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진실. 잃어버린 후에나 터져버린 진실 앞에서 셰리와 레아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 두 사람 앞에는 이제 행복이 펼쳐질까? ‘건물 꼭대기 층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추락 중에 느낄 수 있는 어리석은 희망이 그들 사이에 반짝’(p.199)인다. 그러나 그 이후 ‘사라졌다’는 구절이 서늘하게 더 와 닿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 대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가엾은 셰리... 생각하면 재미있어. 너는 쇠락한 늙은 연인을 잃음으로서, 나는 스캔들 급의 젊은 연인을 잃음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소유했던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것을 잃었으니 말이야....’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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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1-08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ㄷㄹㅂ 님과의 취향 차이를 다시한번 확인한 그 책 아닙니까? ㅋㅋㅋ 이따 다시 와서 읽어야징~~

다락방 2025-01-09 08: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ㄷㄹㅂ 입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1-08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아~~ 식전주는 제하고 본 코스로 들어가.. ㅋㅋㅋㅋㅋ 이 찰진 표현 뭡니까! ㅋㅋ
ㄷㄹㅂ 님이 이 책 읽으면서 아이고 답답 외치셨을 이유를 알겠네요 ㅎㅎ 그래도 잠자냥님 리뷰로는 아주 매력적인 소설 같은데, 흠...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나 봅니다.
잠자냥 은근 낭만파야...

잠자냥 2025-01-09 09: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노렸어. 역시 잘 아는 괭 ㅋㅋㅋㅋㅋㅋ
ㄷㄹㅂ 은 일 안 하는/ 돈 안 버는 어린 남자가 사랑 타령만 하는 걸 매우 싫어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초반에 좀 안 읽힌다는 평들이 있습니다~ 저도 초반에는 그랬고요(문장이 좀 매끄럽지 않아서 더 그렇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중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재미납니다.

독서괭 2025-01-09 09:54   좋아요 1 | URL
저 간밤 꿈에 무슨 놀이동산 같은 델 간 것 같은데 거기 잠자냥님이 있었거든요. 제가 은오는요? 하니 저기 왔다고 하기에 봤더니.. 사람 사이에 판다가..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1-09 09:56   좋아요 0 | URL
😸😸😸🐼🐼🐼

단발머리 2025-01-09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읽고 싶네요. 플러스 마이너스 25는 마크롱 부부인데....
완독 불가라는 소문이 횡행하는 가운데.... 잠자냥님 글 읽고 나니.... 아, 읽고 싶네요.

잠자냥 2025-01-09 14:21   좋아요 2 | URL
음 근데 셰리가 마크롱보다는 훨씬 잘생겼을걸요? ㅋㅋㅋㅋ
이 작품 완독 불가는 아니고 초중반에 좀 고비가 있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5-01-09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재미있게 읽었는데 ㅋ 표지가 좀 그래서(?) 북커버하고 읽었습니다 ㅋㅋ 나이차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전 적응이 좀 안되더라는~~~

잠자냥 2025-01-09 17:50   좋아요 2 | URL
셰리 새파랑!! 누누를 찾아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5-01-09 17:59   좋아요 2 | URL
24살 차이면 거의 칠순이십니다.....

잠자냥 2025-01-10 08:00   좋아요 1 | URL
🤣🤣🤣

다락방 2025-01-10 08:07   좋아요 1 | URL
칠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5-01-10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왜 때문에 😜 난 이 리뷰가 넘 관능적이져? ㅎㅎㅎㅎㅎㅎ 읽고 싶은디? ㅋㅋㅋ (검은 속내)

잠자냥 2025-01-10 12:04   좋아요 1 | URL
쟝이 기대하는 야함은 부족한 줄 아뢰오.........

공쟝쟝 2025-01-10 17:35   좋아요 0 | URL
아니 저를 멀로보고 홍홍홍
 
바질 이야기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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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는 내게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이다. 나만의 <괴물들>(<괴물들-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을유문화사, 2024) 목록에 올라가 있는 작가랄까. 아내인 젤다 피츠제럴드에게 그가 결혼 후 저지른 이런저런 만행들(특히 젤다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모두 자기가 쓸 소재라며 글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그녀의 글을 표절한 것 등)을 떠올리면 그의 작품은 읽기 싫어진다. 이제 그만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그럼에도 그의 새 작품이 소개되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특히 그게 단편이라면 더더욱). 왜냐하면 나에게 피츠제럴드는 낭만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또는 영원히 잊기 힘든 노스탤지어 같은....

《바질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그 낭만과 노스탤지어의 세계에 흠뻑 빠져 취한다. 그래 당신은 젤다에게 그렇게 몹쓸 짓을 했던 사람이지만 그토록 나약하고 모순 많고 허점투성인 데다가 불완전한 인간이었기에 이런 작품, 이런 캐릭터를 창조해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이해하게 된다. 《바질 이야기》의 ‘바질 듀크 리’는 피츠제럴드의 분신 같은 존재이다. 그의 십 대 시절의 초상화랄까. 중서부의 소도시를 벗어나 동부의 대학에 진학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크게 성공하기를 꿈꾸는 소년, 자신이 대단한 줄 알지만 주변으로부터는 때로는 냉대와 멸시를 받기도 하는 소년, 이런저런 소녀에게 한눈에 반하기 일쑤이고 그중 몇몇과는 금세 사랑에 빠져 죽을 듯이 열병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금방 잊고 마는 소년. 열한 살에서 열일곱 살에 이르는 소년 바질의 성장담은 피츠제럴드의 이야기이자, 그 시절을 통과한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작 모음집인 《바질 이야기》는 첫 번째 작품인 <그런 파티>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년 바질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 파티>조차도 주인공의 이름만 다를 뿐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열 살 남짓 꼬마의 터질 듯한 첫사랑의 순간이 그려진다. 소년 바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두 번째 단편인 <스캔들 탐정단>부터이다. 바질과 그의 단짝 친구 리플리는 둘 다 열네 살. 바질은 그 무렵의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이모진을 향한 짝사랑으로 앓는 중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모진은 휴버트에게 온 정신이 팔려 있을 뿐. 아니 이 동네 소녀들은 모두 휴버트를 사랑한다. 질투와 시기심에 타오른 바질은 휴버트를 응징하고자 계획을 세우는데 이 계획은 뜻밖의 스캔들로 번지고 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갈색 머리의 열네 살 소년 바질, 아직은 조금 왜소하고 학교에서는 똑똑하고 게으른 소년 바질,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이 괴도 뤼팽인 소년 바질은 그렇게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으로 성장해간다. 아직 반바지를 입기에 어린애 취급을 받는 열다섯의 바질은 긴 바지를 입고 어른이 된 척 우쭐대는 리플리에게 괜히 심통 맞게 군다<(<박람회에서의 하룻밤>). 긴바지냐 반바지냐가 중요한 바질은 아직 사랑의 쓴맛은 알지 못한 채 그저 찬란하고 역동적인 흥분에 휩싸일 뿐이다.



오랜 전통처럼 사내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개념에 집착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제약을 이따금 푸념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소년으로 지내는 것이 마냥 좋은 시절도 오랜 기간 존재하는데, 그 만족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된다. 바질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에게 긴 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박람회에서의 하룻밤>).




열다섯 살의 바질은 드디어 동부의 기숙학교로 이동 중이다(<풋내기>).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들 중 한 명인 바질은 예일대학교에 진학하고 위대한 풋볼 선수가 되리라 꿈꾸지만 그 꿈은 저 멀리에만 있는 것 같다. 소녀들로부터 관심은 받는 것 같은데 또래 소년들로부터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이토록 미움받는 이유가 얼굴에 숨어 있을까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빛이 문제일까, 미소가 잘못됐을까. 아, 나는 자랑을 많이 하는구나! 풋볼 경기에서는 소심한 플레이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대놓고 지적하고, 수업 시간에는 비범한 상식을 과시했지! 깨닫기도 한다.

“걔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알아” 또래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바질. 하지만 어쩌랴 바질은 정말 진심으로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걔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알아>). 심지어 바질은 자신을 무시하는 애들을 보며 그들 모두 언젠가는 뼈저리게 후회하리라 생각한다. ‘스물다섯 살에 미국 대통령이 되다니! 아, 그날 밤 걔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지 말걸.’ 이렇게 후회할 것이라고. 언젠가는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하므로 바질은 제대로 된 인생을 살리라 마음먹기도 한다. “캠프네 베란다에서 미니 비블과 함께 보낸 오후, 블랙 베어 호수에서 차를 타고 돌아올 때 이모진 비슬과 함께 뒷좌석에서 저질렀던 일, 우체국 게임에서 뻗대는 코나 귀에다 억지로 했던 유치한 키스들에서부터 시작된 온갖 잡다한 접촉들. 이제 끝이다. 아내가 될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어떤 여자에게도 키스하지 않으리라.”(<완벽한 인생>) 이렇게 결심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완벽한 인생을 꾸리려는 노력이야.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해. 절대적으로 완벽한 인생을 살려면 열한 살이나 열두 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애늙은이처럼 말하기도 하는 바질. 이런 어린 꼰대를 보며 또래들은 혀를 차며 슬금슬금 멀어진다. 바질이 마음에 두었던 소녀마저도 ‘기분 나쁜 샌님’이라며 조롱하고 멀어져간다. 잘하려고 애쓸수록 번번이 쓰라린 굴욕만 맛보는 바질. 바질은 그렇게 ‘소년기의 한창인 열세 살과 일종의 가짜 청년인 열일곱 살 사이의 언젠가, 두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면서 생소한 경험들로 끊임없이 떠밀리고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려 헛되이 몸부림치는 시기’를 오가면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열일곱의 바질은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고자 좌충우돌한다(<전진하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고학으로 예일대를 졸업하리라 단호하게 외쳤지만 어쩐지 쉽지 않아 보인다. 돈벌이보다 눈앞에 다시 나타난 천사 ‘미니 비블’의 마음을 얻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아니 단 한 번의 키스라도 좋다. 그렇지만 이 깜찍한 소녀는 좀처럼 바질에게만 안주하지 않는다. 비록 바질이 낭만적이고 잘생기고, 속을 헤아릴 수 없고, 조금은 우울한 남자여서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문제는 그가 늘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때도 가끔 있다는 것. 게다가 자신에게 안달 난 남자들도 수두룩한데 굳이 왜 그녀가 바질에게만 마음을 줘야 하는가!



“알아, 하지만 그건 몇 년 전 일이야. 열세 살이나 열네 살 때는 난잡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어. 남의 말에 신경 안 썼으니까. 하지만 1년 전쯤부터는 더 나은 인생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 정말이야, 바질. 그래서 똑바로 처신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영영 천사는 되지 못할 거야.”


바질은 이렇게 무심하게 말하는 미니를 좀처럼 놓을 수가 없다. 예일대 입학까지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흘 후면 미니 비블은 어떤 약속도 확신도 없이, 영원히 떠나버리리라...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바질은 먼 미래를 내다보다가도 어느새 눈앞의 일에 연연한다. 예일대의 영광도 미니와 보내는 그 비길 데 없는 시간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꽁꽁 붙잡고 싶지만 잡힐 듯 말 듯 도무지 잡히지 않는 미니를 보며 바질은 ‘생전 처음으로 나이가 더 많았으면, 감수성이 덜 예민했으면, 쉽게 감명받지 않았으면 하고 절실히 바라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향기와 광경과 곡조에 전율하는 대신, 심드렁하니 냉정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수한 어른들이 인생의 수년을 바쳤을 청춘이 과도하게 넘쳐흘러 바질은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며 한숨을 쉬듯 짧은 숨을 뱉는다.’

그러나 미니 비블 또는 한때 바질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모진 같은 소녀는 결국 한 시기를 거쳐 그의 세계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모진을 잃고 난 후 일주일이 지나자 더는 슬프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를 만나도 예전부터 알았던 익숙한 어린 소녀로 보일 뿐이었던 것처럼. 그날 오후의 황홀했던 순간이 덧없는 봄이 남긴 감정의 찌꺼기, 조산早産 같은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처럼. 미니와의 이 애타는 로맨스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누구에게나 삶은 힘겨운 싸움이며, 멀리서 보면 가끔은 화려해 보일지라도 항상 난해하고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며 조금은 슬프다는” 것을 미숙하게나마 깨달으면서 그렇게 지나가리라. 그 순간에는 상처받지만 바질은 상처를 잊지 않고, 상처를 품은 채 새로운 실패와 새로운 속죄, 미지의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봄날 또는 여름 밤 품었던 막연하고 들뜬 열망이 그럭저럭 충족되고, 확 타올랐다가 폭발하고 재만 남았을 때, 하나의 별이 사라지고 또 다른 별을 기대하면서 삶이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으며 바질은 나아간다.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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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11-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게 될지 모르지만 잠자냥 님의 리뷰를 읽으니 책은 사야겠어요 ㅎ

잠자냥 2024-11-27 14:08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표지도 아름답지만 거기 담긴 단편 하나 하나가 다 너무 아름다워요!

망고 2024-11-27 14:12   좋아요 1 | URL
저도 다음달에 사려고요😁

잠자냥 2024-11-27 14:17   좋아요 1 | URL
꼭 사요... 땡투는.. 여기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4-11-2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와 작품의 괴리감... 참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읽게 되는 건 또 나름의 이유가 있더라구요.
잠자냥님이 그 이유를 추가하시네요. ^^

잠자냥 2024-11-28 11:00   좋아요 1 | URL
네 참 창작자와 그 창작자의 작품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그래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다락방 2024-11-27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바질은 그 바질이 아니었네요!! 하긴, 그 바질 이었다면 표지에 초록색의 통통란 바질잎이 있어줘야 하는게 예의죠..

다락방 2024-11-28 10:33   좋아요 1 | URL
땡투는 잊지 않고 여기에 할게요!!

잠자냥 2024-11-28 10:59   좋아요 1 | URL
아... 다락방 님이 말한 바질이 이 바질 아니었어요? 그럼 이 바질도 한번 읽어보세요. 이 바질도 마음에 드실 듯. ㅋㅋ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24-11-27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미남이네요. 피츠제럴드는 개인적으로 단편왕인 것 같습니다. 표지미남처럼 스토리나 문장이 아련아련..

잠자냥 2024-11-28 11:01   좋아요 1 | URL
맞아요. <위대한 개츠비>만 읽고 피츠제럴드 손절하는 사람들... 너무 안타깝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단편이다!!

다락방 2024-11-28 11:21   좋아요 1 | URL
저는 특히 <컷글라스보울>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감성파괴의 단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1-28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나 장바구니에 담아볼까나~ 룰루~

관찰자 2025-02-06 12: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 보고 바로 <컷글라스보울> 찾아서 읽어봤는데, 이건... 뭐 .... 거의 호러 아닙니까?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건가요? 단편 아니고 장편이었으면 이건 백퍼 호러스릴러였을거에요.ㅜㅜ

다락방 2025-02-06 13:16   좋아요 0 | URL
오오 읽어보셨군요! 저도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감탄햇었어요.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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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그 애는 눈이 아주 크고, 남달리 착했다. 순박하고 착한 아이. 성정 때문에 그 친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실은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 친구 집에는 볕이 잘 드는 다락방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세상에서 그 다락방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는 왜 다락이 없을까,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어른들은 오지 않는 다락방이 갖고 싶다. 이곳이 내 방이면 좋겠다. 여기서 실컷 책 읽다가 자고 또 일어나서 책 읽고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그 애가 없길 바라기도 했는데 친구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나 혼자 책을 들고 다락에 올라가면 자기는 그런 나를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에서 놀고는 했다. 나는 그 애보다 다락방을 더 좋아했다. 유년의 친구는 대개 그렇듯이 특별한 이유 없이 멀어진다. 그러고는 기억에서 잊힌다. 그래서 유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그 다락방과 그 애가 좋은 추억으로 남은 까닭은 자연스레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때를 함께 보낸 사람이나 공간은 그 시절 그대로 사라져야 퇴색하지 않는다. 기억이 빛바래지지 않기 때문에….

<67번째 천산갑>의 두 주인공, 그와 그녀도 그런 아름다운 유년을 함께 보냈다. 이 둘에게도 나의 다락방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침대 매트리스이다. 그- 그러니까 소년은 자신의 아들을 광고 모델로 세워보고자 했던 엄마의 손을 잡고 매트리스 CF 현장에 서게 된다. 잠자는 연기를 하라는 감독의 주문을 받고 그냥 편하게 잠이 들어버리는 소년. 그런 소년의 곁에는 여자 아이가 있어야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 아래 감독은 어린 소녀도 등장시킨다. 소녀 또한 엄마에게 이끌려 이 현장을 찾았다. 잠자는 연기를 하라는데 소녀는 소년 옆에 눕자마자 완전히 잠이 들어버린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녀의 “잠자리 친구”인 셈이다. 그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같이 잤고, 그 잠은 처음 만날 날부터 아주 달콤했다. 두 아이가 깊이 숙면을 취하는 이 광고는 타이완에서 크게 히트를 친다. 소년과 소녀, 두 아역 배우들이 유명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와 그녀, 아역 배우로 그토록 유명했던 두 사람은 이제 중년을 넘어섰다. 배우로 줄곧 활동했다면 부와 명성, 어느 것 하나 남부럽지 않을 것 같은데 현실은 어째 영 이상하다. 그는 프랑스의 몹시 비좁은 아파트에서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한물간 배우 취급을 받으며 어느 정치인의 트로피 아내로서 딱히 행복하지는 않은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이 한 영화제에 초청을 받는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천산갑과 함께 찍었던 신비로운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낭트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된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파리에서 재회하는 그와 그녀. 현재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두 사람이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난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그녀는 오랜만에 그 곁에서 유년의 그때처럼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잠을 잔다. 푹 잔다.

평소의 그녀는 왜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가, 배우로서 성공하고도 남을만한 그는 왜 타이완이 아닌. 이 낯선 파리에서 실어증에 걸린 듯, 모든 걸 잃어버린 듯,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처럼 그저 슬픔에 젖은 채 이 사람 저 사람과 몸을 섞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67번째 천산갑>은 이 두 남녀의 삶의 궤적을 천천히 좇는다. 그들의 삶의 이력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으로 태어나 유년의 달콤한 잠, 어른들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져들던 그 달콤하고도 순수한 잠의 세계를 내내 지켜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 왜 천산갑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그 예민하고 수줍음 많은 천산갑이 하필이면 왜 그를 알아봤던 것인지도 어렴풋이 헤아리게 된다.

이 작품에 따르면 천산갑은 양식이 무척 까다롭고 부끄럼을 많이 타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놀라서 전신을 둥글게 만 채 단번에 죽어 버리기 십상이라고 한다. 부끄럼을 많이 타고, 위협을 느끼면 몸을 고스란히 말아버린다는 것, 그리고 단번에 죽어버린다는 성질이 꼭 ‘그’를 닮았다. 그는 반격이라는 걸 도무지 할 줄 모른다. 매번 사람들에게 포위될 때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몸을 움츠리는 것뿐이다. 언제나 자신의 말과 눈물을 조용한 소리로 눌러두고 고통을 참는 데 뛰어나다. 그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아들, 그녀의 죽은 딸 ‘팡싼’도 이런 천산갑과 닮았다. 반격할 줄 모르고, 그저 몸을 움츠릴 줄만 아는 사람들….

‘그녀’ 또한 그러하긴 마찬가지이다. 유년 시절부터 아역 배우로 너무나 유명해진 소녀. 그렇지만 그 어린 나이에 남자와 한 침대에서 잤다고 음란하다고 손가락질받는 그녀. 대중으로부터 비난, 동경, 열망을 동시에 받으며 그럴 때마다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는 그녀. 그저 침묵하고 몸을 움츠릴 뿐이다. 그녀는 엄마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 ‘그 광고를 찍고 싶지 않았고, 계속 배역을 따내고 싶지 않았고, 얼굴에 레이저를 쬐고 싶지 않았고, 미백주사를 맞고 싶지 않았고, 변태 제작자와 함께 밥을 먹고 싶지 않았고, 하이힐을 신고 싶지 않았고, 다이어트를 위해 사흘 동안 굶고 싶지 않았지만 한 번도 이런 생각들을 입 밖에 내지’(p.208) 못한다.

천산갑과 닮은 존재들이기에, 천산갑이 신기하게도 마음을 열었던 존재인 ‘그’에게 그들 모두가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닐까. 67번째 천산갑인 그와 그녀, 또는 그와 그녀를 닮은 ‘아들’과 ‘팡싼’-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이 천산갑과 같은 존재를 그저 기묘하다고, 신기하다고 때로는 흉측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은 매트리스 광고 포스터를 보고도 “당신을 만났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로 맞아 집으로 데려와 한침대에서 자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고 “사춘기 때 항상 당신 포스터를 보면서 권총을 쏘았”(p.203)노라 말할 수 있을 뿐이리라. 그렇게 말하는 많은 남자들-장이판, 쑤다런, 루홍밍, 장하이타오는 그녀에게 모두 같은 사람들일 뿐이다. 배우인 그녀의 얼굴과 몸을 탐할 뿐인 그들. 그러니 누굴 골라 어떤 삶을 살든 큰 차이가 있었을까. 그렇게 불면의 밤이, 불면의 나날이 깊어간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그런 존재이다. 어머니도 그랬으리라. 아들이 보리-그러니까 게이임을 알게 된 후로 극도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아버지- 시골 마을에서는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은 더 수치일 것이다.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다시피 한 그가 파리에서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그런 그를 온전히 안아준 존재, J가 사라진 이후의 삶은 더 그럴 것이다. 천산갑을 닮은 이들- 그, 그녀, 그녀의 아들, 팡싼 등 이 작품에서는 그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대할 때는 몸을 동그랗게 말지 않는다. 함께 깊고 달콤한 잠을 잘 수 있다. 그런 그들이 비록 그토록 원하던 곳-낭트에 이르지 못한다한들, 낭트라는 꿈을, 천산갑이라는 존재를 품고 살 수 있다면, 서로가 그런 존재임을 알아봐 줄 수 있다면, 그래도 이 스산한 삶을 견딜 수는 있지 않을까. 스크린에 있는 천산갑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천산갑은 아마 그런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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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10-3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글에 다락방이 몇번 나오는거야.. ㅋㅋㅋ 다락방님 좋아하실 듯ㅎㅎ
안타까운 두 사람이네요. 착하고 착한 사람들... 몸을 말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잠자냥 2024-10-30 11:17   좋아요 1 | URL
내가 쓰면서도 흠칫흠칫 ㅋㅋㅋㅋㅋㅋㅋㅋ
몸 대신 소맥을 말아야 합니다~ㅋㅋㅋ

다락방 2024-10-30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잠자냥의 중년 친구 다락방 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저는 이 리뷰 읽다보니 나탈리 포트먼 생각나네요. 레옹 촬영당시 열세살 미성년자였는데 남자들이 그렇게나 성적 대상화 시키는 편지를 보내고 그랬다고요. 이상아도 생각납니다. 미성년자 시절 옷을 벗는 촬영을 하라고 임권택 감독이 시켜서 그거 안하겠다고 했더니 너 위약금 낼거냐고 해서 너무 싫은데 찍어야 했다고... 아 너무 똥같은 세상입니다. 대체 왜 미성년자를 굳이 벗겨야 하며 왜 미성년자의 벗은 모습을 생각해야 하고.. 아 빡쳐..

이 책도 담아갑니다. 에휴..

잠자냥 2024-10-30 14:11   좋아요 0 | URL
잠자냥의 미중년 친구 다락방님! ㅋㅋㅋㅋ

그러게요, 이 책 읽다 보니 정말.. 타이완도 참 보수적인 사회구나 싶어지는 부분이 많았어요. 어린 여자 아이가 매트리스 광고 찍었다고 남자하고 잤다고 손가락질을 하다니요!!! 나원참. 그러면서 성적 대상화 성적 소비는 다함. 아휴......

자목련 2024-10-30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잘 정리된 훌륭한 리뷰 👍

잠자냥 2024-10-30 14:11   좋아요 1 | URL
자목련 님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연기 대산세계문학총서 189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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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바로 이게 내게 닥친 불행입니다” 사랑이 불행일 수도 있음을 아는 이들에게 투르게네프의 이 문장은 치명적이다. 사랑과 연애 또는 결혼….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항목처럼 따라다니는 조항이지만 이것으로 인해 행복이 솟구치기는커녕 불행과 절망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하기도 한다. 물론 행복이 치솟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또는 자신의 사랑이 응답받는 순간 등등. 그렇지만 서로 다른 두 존재의 마음이 늘 같은 크기이거나 같은 깊이일 수는 없으므로 그 마음의 크기가 어긋나는 순간부터 고통과 불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더는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꼭 같지는 않더라도 도무지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달라져 버리면 함께 하던 두 존재는 저마다의 길을 가게 된다. 한때 찬란히 빛나던 사랑은 이제 지옥을 헤맬 것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여기 러시아에도 그런 청년이 있다. ‘그리고리 리트비노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나이. 러시아의 귀족들이 하릴없이 여유로움 또는 잉여로움을 자랑하기 위해 모여든 휴양지 바덴, 리트비노프는 이곳에서 약혼녀 타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어쩐지 이곳 사교계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하는 리트비노프. 그럼에도 그는 귀족과 지식인들이 모여 러시아의 미래에 대해 뜨겁게 토론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는 한다. 왜냐하면 그도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러시아의 새 질서에 적응하며 타냐와 결혼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 앞에 이 바덴에서 갑자기 “길가의 가벼운 먼지를 흩어버리듯” “그 모든 목적과 계획을 날려버린 사건”(p.71)이 일어나고 만다. 인생, 참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바덴의 사교계에서 얼핏 본 한 여자. 그 여자의 뒷모습이 너무나 그 누군가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설마…. 그러나 설마는 빗나가지 않는다. 그 여자는 바로 한때 리트비노프를 열망에 들떠, 환희에 젖어, 사랑에 빠져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던, 행복의 절정에 이르게 해주었던 여자, 리트비노프의 첫사랑 ‘이리나’였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생 시절 너무나 사랑했던 이름 ‘이리나’- 그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 생애에서 되풀이될 수 없고, 또 되풀이되어서도 안 되는 수난”과 같은 첫사랑이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이곳 바덴에서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고, 리트비노프는 다른 여자, 그러니까 타냐라는 이름의 다른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리나도 리트비노프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사랑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리트비노프를 차갑게 대하던 그 여자, 이리나- 타고난 밀당의 재주꾼인 그녀는 거의 두 달 가까이 리트비노프를 쥐락펴락 괴롭히더니 어느 날 마음을 열어 그를 받아들인다. 둘 사이에는 불길이 확 타오르듯, 뇌우가 몰려오듯 사랑이 덮친다. 달콤한 연인이 된 두 사람은 곧 결혼을 약속한다. 이리나는 섬세하면서도 연약한 리트비노프를 쥐락펴락. 자신을 향한 사랑의 노예로 만든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결혼하여 쑥쑥 애도 여럿 낳고 살아가는 게 행복(?)한 결말일 텐데, 어쩌다가 바덴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곁에 둔 채 재회하게 되었을까.

배신- 두 마음이 같은 곳을 바라보다 한 마음이 떨어져 나가는 일이 그들 사이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배신당한 처지였던 리트비노프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이리나를 미워했다. 증오했다. 이제 겨우 그 상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는데 다시 그녀, 자신을 절망으로 추락시켰던 그 여자가 나타나다니, 이를 어쩌면 좋으랴. 정상적인 사고의 회로를 따른다면 리트비노프는 그녀를 외면해야 했다. 이리나도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리트비노프를 외면했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사랑이 하는 일일까? 운명의 장난일까? 이리나가 리트비노프에게 손짓을 한다. 예전처럼 그를 다시 쥐락펴락해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 오래전 배신에 대해 사과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이리나의 이름은 리트비노프에게는 불가항력이다. 그는 이 운명에 저항하고자 했으나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다. 다시 그녀를 만나고는 예전처럼 강렬한, 예전보다 더 강력한 사랑을 느낀다. 헤어졌다 다시 만난 사람이니 어찌 그 사랑이 운명처럼 느껴지지 않으랴. 그렇지만 예전과 다른 점들이 있다. 리트비노프는 전처럼 자유롭게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그를 만나러 저 멀리서 약혼녀가 오고 있는 중이다. 이리나 또한 다른 남자의 아내가 아닌가. 어쩌면 이 장벽들이 그들의 사랑을 더 불타오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심성이 선량하고 연약한 리트비노프는 괴롭기 짝이 없다. 사랑스러운 타냐, 아무것도 모른 채 기쁜 마음으로 약혼자에게 달려오고 있을 타냐를 어이할까!

행복이 아닌 고통과 괴로움이 솟구친다. 그는 자신이 못마땅하다. 룰렛 게임에서 돈을 잃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기분이다. 자신을 달래보기도 한다. 너는 타냐의 약혼자이다, 너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진중한 어른으로서 호기심의 부추김이나 추억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내면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그를 다그친다. 이리나는 예전처럼 교태를 부리는 것일 뿐이야. 일시적인 기분이고 변덕일 뿐이야…. 결혼한 삶이 따분하고 모든 것에 싫증이 나서 날 낚아챈 거야, 미식가가 갑자기 흑빵이 먹고 싶은 거지. 아무리 자신을 달래고 다그쳐보아도 그는 그녀를 향해 달려가기를 멈추지 못한다. 도무지 그녀를 경멸하고 미워할 수가 없다. 한때 자신을 그토록 절망의 구덩이로 몰아넣었던 그 나쁜 여자를. 리트비노프는 머릿속에서 이리나의 형상을 쫓아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이제 그는 타냐의 모습을 떠올릴 수조차 없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그를 설득하는 이도 있다. 그 여자는 악마처럼 교만하다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진실할 수도 있지만 사교계 부인들은 아무리 훌륭하다 칭송받아도 뼛속까지 썩었다고. 물론 이리나에게도 좋은 자질, 이를테면 무척 선하고 선심을 잘 쓰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고, 그렇지만 그녀가 베푸는 선심이란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을 남들에게 줘버리는”(p.145) 수준일 뿐이라고. 그렇지만 당신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자는 강하며 우연은 전능”하기 때문에 “단조로운 삶에 만족하기는 어렵고, 자신을 완전히 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에 아름다움과 공감이 있고 따스함과 빛”이 있으니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느냐고 . 그렇지만 그 빛을 향해 달려가 보았자 “그다음에 냉담, 어둠, 공허가 찾아”올 것이라고. “결국엔 모든 것과 멀어지게 되고,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처음엔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테고, 나중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p.146) 것이라고.

리트비노프는 그렇게 이리나에게 저항하지 못한다. 위로도 희망도 없는 환희가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찢어놓는다. 불면의 밤이 깊어간다. 그는 중얼거린다. “비록 나중에 죽는다 할지라도” ‘필시 사랑을 두 번 할 수는 없다’ 그는 생각한다. ‘다른 삶이 네 안에 들어왔고, 네가 그것을 들여보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이 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끈을 끊을 수 없다.'(p.177)고 생각한다. 스스로 독이라고 칭하는 사랑, 그 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랑. 그도 알고 있었으리라. 타냐에게로 가는 삶과 이리나에게로 가는 삶이 얼마나 다를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옳고 잘 정리된 미래를 스스로 놓아버린 패배자이다. 그는 심연 속으로 자신이 무턱대고 뛰어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절규한다. 자기 자신도, 타냐도 잃어버렸노라 절규한다. 모든 것이 망가졌노라고, 자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노라고, 거기로 당신을 끌고 가고 싶지 않다고, 나를 구해달라고 타냐에게 울부짖기도 한다. 이전의 모든 것, 소중했던 모든 것, 지금껏 그가 의지하고 살아왔던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노라,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끊어졌노라 절망한다. “무섭고 저항할 수 없는 다른 감정이 급류처럼” 자신을  덮쳤노라(p.215) 울먹이는 리트비노프.

그는 이 이 이해할 수 없는 어스름 속에서 그만 헤매고 싶다. 그처럼 순진하거나 적극적인 사람은 열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투르게네프는 말한다. “열정은 그들의 삶의 의미를 파괴하기 때문”이라고(p.217) 그렇지만 리트비노프가 다시 찾은 사랑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리나가 그 앞에 다시 나타난 이유도, 그렇게 운명이 그를 이끈 이유도 무언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불가항력적으로 또 한 번 첫사랑 여인과 사랑에 빠진 리트비노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투르게네프는 말한다. 모든 선택에는 어떤 의미로든 불행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똑같다. 모든 것이 급히 어딘가로 서둘러 가고 있지만, 모든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풍향이 바뀌면 모든 것은 반대쪽으로 몰려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똑같이 지칠 줄 모르는, 요란하고 불필요한 유희가 다시 시작된다.”(p.259) 사랑도 어쩌면 이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덧없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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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10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란하고 불필요한 유희.. 그래서 그토록이나 감정적 육체적 소모가 큰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아니, 연애인가 봅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항해야 하지만 저항하지 못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먼 산)

그럼 이만.

잠자냥 2024-10-10 12:5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해탈한다락방 ㅋㅋㅋㅋㅋ

망고 2024-10-1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또 헤어지던데...ㅋㅋㅋ

잠자냥 2024-10-10 13:52   좋아요 1 | URL
정답!!🤣🤣🤣

다락방 2024-10-10 15:33   좋아요 1 | URL
정답!! (유경험자입니다)

잠자냥 2024-10-10 15:3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자니...?˝에 넘어갔던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10-10 16:05   좋아요 0 | URL
자니? 에 넘어 갔다가 결국 해탈의 길로...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0-10 16:17   좋아요 1 | URL
아프진 않니 많이 걱정돼 행복하겠지만 너를 위해 기도할게 기억해 다른 사람 만나도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 는걸…..

건수하 2024-10-10 16:28   좋아요 2 | URL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결혼한 사람도 있는데… 언젠가 헤어지긴 할 거예요 ㅎㅎ

잠자냥 2024-10-10 17:21   좋아요 0 | URL
건조한 팩트😹

독서괭 2024-10-10 17: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님 댓글 너무 웃겨요.
전 헤어진 사람에겐 미련이 안 남던데.. 흠.. 결과가 안 좋을 게 뻔히 보이는데도 뛰어들게 되는 그 심경은 무엇일까요?

건수하 2024-10-10 18:02   좋아요 1 | URL
글쎄요… 왜 그랬지? 저는 만난 지 얼마 안돼서 헤어졌던지라 서로 잘 몰라서.. 깊이 생각 안하고 다시 만났던거 같아요. 근데 결혼하고 2-3년은 언제 다시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 많이 했었어요.

독서괭 2024-10-10 18:11   좋아요 1 | URL
엉?? 수하님 경험담이었나요! 전 다른사람 얘기하신 줄 알고 ㅜㅜ 그리고 심경 질문은 소설 관련이었어요. 헤어진 뒤 다시 만나는 거 자체야 종종 있죠~ 헤어짐의 이유가 중요한 듯요.

건수하 2024-10-10 18:30   좋아요 1 | URL
대략 봤는데.. 저 비밀댓글은 망고님께 보일겁니다 ^^;;

독서괭 2024-10-10 18:44   좋아요 1 | URL
아 수하님께는 다 안 보이는군요? 어흥 ㅠㅠ

건수하 2024-10-10 19:10   좋아요 2 | URL
어 어쨌든 저는 전혀 기분 안 상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제가 술술 얘기한 것 뿐 ㅎㅎㅎ

독서괭 2024-10-10 19:2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4-10-11 07:0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나도 다 보여!

페넬로페 2024-10-10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한 게 자신에게 닥친 불행~~
사랑이 죄인가요, 가 생각납니다.
근데 투르게네프보다 글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아주 절절합니다^^

잠자냥 2024-10-11 07:11   좋아요 2 | URL
투 선생보다 잘 쓴다니요! ㅋㅋㅋㅋ 넘 과찬입니다!! 한강 언니가 짱이죠. (엥?)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