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양장)
아서 밀러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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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다?! 내가 좋아하는 극작가이다?! (단, 사람 말고 그들이 쓴 작품) 둘 다 정답.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 작가는 비극을 그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극작가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한정된 공간과 몇몇 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그로 인해 폭발하는 개인의 비극을 묘사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나다. 

희곡은 무대 위 상연을 목적으로 하기에 공간의 제약이 크다. 때문에 많지 않은 인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첨예한 갈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테네시 윌리엄스를 비롯해 유진 오닐의 극에는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하긴 인간사에서 가족 내 갈등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가 또 어디 있으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아서 밀러 또한 그런 작가 중 하나이다. 다만 테네시 윌리엄스나 유진 오닐에 비해 사회 문제를 살짝 더 첨가한 점이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 아서 밀러는 그 유명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대공황의 불황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한 가장家長의 초상을, <모두가 나의 아들>에서는 어느 군수 업자와 그 일가의 몰락으로 전쟁과 자본의 문제를, <시련>에서는 작가 자신이 피해자였기도 했던 매카시즘 광풍을 고발한 바 있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떤 사회 문제를 건드리면서 개인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대공황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을 보여줌으로써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폭로한 <세일즈맨의 죽음>과 결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단지 이번에는 ‘브루클린 브리지의 바다 쪽에서 만을 바라보고 있는 슬럼가, 세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물류를 삼키고 있는 뉴욕의 목구멍’ 바로 그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면서 그런 일자리조차 탐낼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붕괴되는 꿈(또 다른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그리고 있다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는 고대 비극에서 곧잘 등장하는 코러스 역의 변호사 ‘앨피에리’의 존재가 신선하다. 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이자, 주인공 ‘에디’의 불행을 전조하는 인물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경고를 주는 등 꽤 큰 비중을 맡고 있다. 엘피에리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이 흥미로운데, 그 자신도 말하기를, 변호사는 전적으로 비낭만적인 직업이다. 그가 상대하는 이들은 주로 부두 노동자와 그들의 아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들,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은 보상 건, 퇴거, 가족 간 분쟁 등 가난한 사람들의 소소한 문제들이다.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들은 길에서 우연이라도 이 변호사를 만나는 일을 꺼려한다. 그 동네에서 “변호사나 신부를 길에서 만나는 건 재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재앙과 연관이 되어서만 고려 대상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 이런 엘피에리가 코러스 역을 맡고 있으니 비극은 예견된 셈이라고나 할까.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의 주인공은 ‘에디 카본’- 나이는 마흔, 거칠고 약간 과체중의 부두 노동자이다. 극이 시작하면 에디는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옥신각신하고 있다. 심한 실랑이는 아닌, 애정을 기반으로 한 투덜거림 정도랄까? 에디는 조카 캐서린의 옷차림을 지적 중이다. 너는 요새 너무 살랑살랑 걷는다, 가게에서 사람들이(주로 남자들이) 너를 쳐다보는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캐서린은 그런 에디, 그러니까 이모부의 잔소리가 딱히 싫지는 않은 듯 애교를 부리며 웃어넘긴다. 에디와 그의 아내 비어트리스는 부모를 일찍 잃은 캐서린을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보살펴왔는데 이제 장성한 캐서린은 곧 일자리를 얻어 이 집, 그러니까 에디의 집에서 독립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 중에 비어트리스의 사촌들이 머나먼 곳,  이탈리아로부터 배를 타고 와 에디의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아하, 비어트리스의 사촌인 마르코와 로돌포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불법 입국하는 이민자들인 것이다. 이민단속국에 걸리면 마르코와 로돌포는 물론 에디까지도 위험에 처할 것이 뻔한데도 사람 좋은 비어트리스는 사촌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부탁해 자신들의 집에서 한동안 기거하게 한 것이다. 

마르코와 로돌포가 도착하면서부터 갈등은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어떤 갈등일까? 에디가 이 사촌들에게 불법 입국을 빌미로 협박을 할까? 이민자인 이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깨닫고 좌절할까? 뜻밖에도(?) 문제의 근원은 캐서린, 아니 에디의 마음속에 있다. 캐서린은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전교생 중에 뽑혀 꽤 큰 배관 회사의 비서직(속기사)으로 취직하게 된다. 기뻐하는 비어트리스와 달리 에디는 불만을 쏟아내며 극렬하게 반대한다. 그 동네는 해군 기지 옆이다. 동네가 마음에 안 든다. 배관 회사라니, 그들은 부두 노동자들이나 다름없다. 너는 결국 배관공들 또는 선원들과 쏘다닐 것이다. 그러려고 내가 캐서린 너를 학교에 보낸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사무실, 뉴욕의 빌딩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제발 여기, 브루클린과 똑같은 동네는 가지 말라 등등. 얼핏 보면 조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나머지 걱정이 심한 이모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캐서린에게는 이모부. 그러니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이다. 에디는 마흔, 캐서린은 열일곱. 한집에 사는 이 남자의 마음속을 차지한 것은 아내 비어트리스인가? 캐서린인가? 조금씩 그의 금기와도 같은 욕망이 엿보이기 시작할 무렵 이탈리아에서 마르코와 로돌포, 젊은 남자 둘이 도착해 한 집에서 기거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마르코와 로돌포 두 형제 중 형인 마르코는 이미 결혼해 아내와 자식이 여럿이다. 미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생각밖에 없는 건장하고 성실한 남자로 에디는 그에게는 별 불만이 없다. 일 잘하는 좋은 일꾼을 소개해줬다고 브루클린 노동자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로돌포’이다. 로돌포는 이탈라이인 치고는 드문 금발에 노래도 잘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돈을 버는 족족 음반을 사거나 몸치장하는 데 다 써버린다. 일하는 곳에서는 물론 심지어 집에서도 종종 노래를 크게 부른다. 불법 체류자가 이런 짓을?!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마르코처럼 성실하게 일해서 집으로 돈을 보내거나 모을 생각은 꿈에도 없는 저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에디는 로돌프의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인다. 헌데 저 노래하는 카나리아 같은 놈한테 다들 불만이 없는 게 이상하다. 일하는 곳에서도 로돌포가 입을 열면 다들 웃기 바쁘다고, 녀석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은 톡톡히 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심지어 캐서린조차 녀석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흉허물 없이 지낸다. 점차 둘이서만 하는 외출이 잦아진다. 종종 밤늦게 들어오기까지 한다. 에디는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속 편히 털어놓을 수 없는, 그조차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질투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 분노의 불길이 치솟는다. 이 불길은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캐서린을 달래고 어른다. 그 녀석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와 결혼해서 영주권을 얻을 속셈이야. “이건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법이야.” 이민법이 시행된 이래로 계속 써먹는 수법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캐서린을 비롯해 주변 그 누구도 에디의 말을 듣지 않는다. 믿지 못한다. 아내 비어트리스조차 캐서린을 놓지 못하는 에디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비꼬며 경고를 할 뿐이다. 이제 자기도 참는 데 한계가 있노라고.

요리를 잘한다, 높은 음으로 노래를 한다, 춤을 춘다, 드레스를 만든다, 저놈은 분명 게이가 맞는데! 남자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는 호모 녀석인데 캐서린을 좋아하는 척해서 영주권을 따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속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에디는 마침내 엘피에리를 찾는다. 법적으로 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불법 체류자, 금발 호모 녀석 로돌프를 제지할 방법은 없는지 상담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꺼내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에디 : 이틀 전날 저녁에 조카가 자기한테 너무 작아진 드레스를 꺼내 왔어요. 작년 한 해 동안 키가 부쩍 컸거든요. 그리고 이 친구가 드레스를 들고 가서 식탁에 놓더니 재단을 해요. 척척 자르더니 완전 새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그 모습이 천사처럼 예뻤어요-너무 예뻐서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요. (82~83쪽)



갖고 싶은 여자인 캐서린, 조카라는 이름 아래 영영 곁에 묶어두고 싶은 캐서린, 그런데 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는 호모 같은 놈 로돌포. 그런데 에디는 사실 로돌포에게도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캐서린을 빼앗아갈까 봐 적대적으로 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비정상적인 면, 이른바 남성적이지 않은 속성에 눈길이 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로돌포를 욕망하는 것이다. 에디에게 천사처럼 예쁜, 그래서 너무 예뻐서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사람은 캐서린인가? 로돌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확실한 것은 아내 비어트리스는 아니라는... 이 걷잡을 수 없는 에디의 금기와도 같은 욕망은 마침내 크나큰 비극을 불러온다. 

우리의 코러스 엘피에리는 일찌감치 에디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섞어 놓았어.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해. 아내, 아이들-모든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하지만 가끔은… 사랑이 지나칠 때가 있어. 알지? 너무 지나쳐서 가지 말아야 할 데로 가.”(84~85쪽) 에디의 이 지나친 사랑은, 욕망은 결국 “가지 말아야 할 데”로 가버리고 만다.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엘피에리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모두가 아는데 결국 당사자만 모르는구나. 인간이 제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본인만 모르는 듯. 아니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게 인간인가. 그래서 가련한 존재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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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11-10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에디 욕망이 드글드글하군요. 파국이 안 올 수가 없네..
그나저나 잠자냥의 리뷰는 역시 멋있다고나 할까.

잠자냥 2025-11-10 20:19   좋아요 1 | URL
드글드를 욕망 에디 🤣ㅋㅋㅋㅋ
그나저나 독서괭의 댓글은 왠지 간지럽다고나 할까.

moonnight 2025-11-10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직접 읽는 것보다 잠자냥님 리뷰를 읽는 게 훨씬 재미나고 이해가 잘 되지 싶으면서도ㅎㅎ 일단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크나큰 비극이라니..결말 궁금@_@;;;

잠자냥 2025-11-10 20:2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원작품이 더 흥미진진하겠지요! ㅎㅎ 결말 궁금하죠?! 짧은 작품이니 한번 읽어보세요! 근데 책값이 비싸서….😹

독서괭 2025-11-10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만지는너무비싸 지만지 르고싶어지는게문제 지만지 금까지안산사람나

독서괭 2025-11-10 20:35   좋아요 1 | URL
이러다 쫓겨나지 싶지만..지..

잠자냥 2025-11-11 09:48   좋아요 1 | URL
지만지 너무 비싸다는 괭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지에서만 나오는 작품들이 있어서 아예 안 살 수도 없지만 지는 비싸긴 하지만 지금까지 안 산 사람 나라는 말은 못 믿겠지만 지 .. 괭은 지만지 책 산 적이 있지만 지 구매 내역을 모르는군...ㅋㅋㅋㅋ

그래도 안 쫓겨나지 싶지만...지는 이 댓글을 과연 좋아할까 싶지만...지...

독서괭 2025-11-11 10:04   좋아요 1 | URL
🤣🤣🤣🤣🤣 장단 맞춰주는 잠자냥 ㅋㅋㅋㅋㅋㅋ 쫓겨나지 않아 다행이다 ㅋㅋㅋ
지만지는선물은 했지만지는 산적이 없는데유??

잠자냥 2025-11-11 10:09   좋아요 1 | URL
2024년 8월 7일에 잠자냥한테 요제프 로트, <성스러운 술꾼>(지만지) 선물했지만..지 선물은 산 걸로 안 치는 거지만...지 사긴 한 거잖아유...

독서괭 2025-11-11 10:18   좋아요 1 | URL
그럼 지금까지 안 가진 사람 나라고 수정해야겠지만.. 굳이 수정하진 않을 거지만 지를 잠자냥에게 선물한 걸 잊은 건 당연히 아님을 어필하고 싶지만… 지…

잠자냥 2025-11-11 10:46   좋아요 1 | URL
지만지 선물 어필받고..이제 그만 이 댓글 놀이 끝내고 싶지만 지....고 싶지 않지만 지... 누가 좀 말려주면 좋겠지만 지...🤣🤣🤣🤣🤣

독서괭 2025-11-11 10:5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일해야 하니까 그만 끝내주겠지만 지…금 나도 일을 해야하지만 지… 속적인 댓글놀이 희망하지만..지…그만하지…

잠자냥 2025-11-11 11:12   좋아요 1 | URL
괭&자냥, <다리에서 바라본 댓글>, 지만지

독서괭 2025-11-11 11:19   좋아요 1 | URL
🤣🤣🤣좋은 마무리지만..지…

페넬로페 2025-11-1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책값은 비싼데
끊임없이 희곡집 출간하는 건 대단한 것 같아요.
불행의 폭발이 여기에서 보여요.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라 좀 더 객관적일까요?

잠자냥 2025-11-11 09:50   좋아요 1 | URL
아서 밀러 작품처럼 저작권 살아 있어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책이라면 좀 비쌀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저작권 소멸한 작품들도 왜 그렇게 비싸게 받는지는 좀 불만입니다요. ㅎㅎ
그래도 희곡뿐만이 아니라 조 아래 하인리히 뵐 작품처럼 여기서만 나오는 작품은 울며겨자먹기로 사보는 수밖엔 없지만요... ㅠㅠ

다락방 2025-11-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또 너무 재미있어서 이 책 사고 싶네요. 여기서도 이렇게 책이 막 사고싶어지면 어쩌라는건지.

읽다보니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국내 소설이 생각나네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여동생은 돈이 없어서 맨날 언니한테 돈 빌리면서 자기는 손톱 네일 받고 큐빅 박고 다녀요. 이 글 읽는데 그 장면이 생각났어요. 로돌포.. 부분에서요..
너무너무 싫어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혹은 그 사람의 어떤 면을 지독하게 욕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꼭 그런게 아니라 그런 경우도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내가 그 지점에 딱히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모두 그런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밝힙니다.

-이상 기네스 마시면서 공부하던 다락방 씀

잠자냥 2025-11-12 10:41   좋아요 0 | URL
다락방은 싱가포르에선 잠자냥 서재 접속 금지! ㅋㅋㅋㅋ

말씀하신 것처럼 포비아적 태도에는 왠지 그 대상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거나 신경 쓰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의 에디만 봐도 그래요, 주변 사람들은 로돌포가 노랠 잘 부르든, 드레스를 잘 만들든, 농담을 잘하든, 몸치장을 잘하든, 예쁘장하게 생겼든 그냥 그걸 유쾌하게 로돌포에게 있는 하나의 재주로 받아들이고 마는데 에디만 혼자 로돌포는 게이일거라고 막 집착하잖아요. 그런 특성이 게이들의 특징이라는 건 또 어떻게 그렇게 잘 안대요? ㅋㅋㅋㅋㅋ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에서도 상대적으로 호모포비아적이었던 에니스(히스 레저)가.... 알고 보니 그날 밤 잭한테 넘어가는 거 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1-12 12:59   좋아요 1 | URL
저는 잠자냥 님 댓글 읽으니 영화 <아메리칸 뷰티> 생각나요. 거기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게이인줄 알고 막 화내고 혼내고 미쳐날뛰잖아요. 그런데 알고보니 아들이 게이가 아니라 자기가 게이가 되어버린.. 이거 비슷한 설정의 책도 있었어요. 청소년 대상이었던 것 같은데 [엠 아이 블루?] 라는 책인데요, 혹시 읽어보셨을지 모르지만, 고등학교가 배경인 단편에서 학급에서 힘이 좀 센 아이가 게이를 경멸하고 혐오하거든요. 그런데 게이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 파란색이 나타나는데, 이게 지금 오래 되어서 기억이 희미한데 파란색이 머리 위에 뜨던가, 하여간 그런데, 게이를 가장 혐오하던 학생에게 가장 큰 파랑색이 나타나요. 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어서, 그 점에서 질투와 시기가 나타나 미움으로 변질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오늘은 제가 좀 힘들어서 소고기를 먹어야겠어요. 소고기의 소울메이트는 뭐다? 와! 인!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내일 하루종일 수업인데..)

잠자냥 2025-11-12 13:16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아메리칸뷰티> 그 아버지도 그렇죠! ㅋㅋㅋㅋㅋ 마자마자 ㅋㅋㅋ
다른 건 몰라도 괜히 극렬하게 게이포비아적인 남자들은 좀 자기 욕망이나 성(적취)향을 곰곰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영화나 문학 속에서 극렬 게이포비아들은 결국 보면 게이에게 끌리고 있더라고요. ㅋㅋㅋㅋ

소고기엔 와인! 그러나 낼 종일 수업이라면 반병만....

꼬마요정 2025-11-1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비싼데… 흑흑 근데 생각보다 곧잘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장바구니로… ㅎㅎㅎ 리뷰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요. ㅎㅎㅎ

잠자냥 2025-11-12 10:38   좋아요 1 | URL
맛있어서 어쩔수가없다! ㅋㅋㅋㅋ
전자책으로 구매하시면 좀 더 쌉니다용.
 
보스턴 사람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0
헨리 제임스 지음, 윤조원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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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사람들>은 참 신기한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가 없고 속 시원한 것 같으면서도 읽다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장장 688쪽. 연휴 동안 3일에 걸쳐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쫑낼 때쯤엔 부글부글 끓던 속이 울화통에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아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그러면서도 별 넷? 별 다섯? 생각하다가 별 다섯을 줬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별 넷으로 깎으려다 그래도 다섯으로 준다. 헨리 제임스.

헨리 제임스는 예전에 폴스타프 님이 딱 적절하게 표현하신 적이 있다. “장황하고 끝도 없는 단어와 문장과 문단의 연속. 유장한 언어의 큰 강어귀, 그 속에서 빠져 죽기 일보 전이다. 2백쪽도 안 왔는데 환장하네, 이거. 하긴 이렇지 않으면 헨리 제임스가 아니지. 안 읽는다, 안 읽는다 하면서도 보이면 꼭 읽게 되는 제임스. 내가 밋쵸요, 밋쵸.”라고 2024년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한 <보스턴 사람들> 100자평을 남기셨는데, 여기에 완전 공감한다. 헨리 제임스 작품은 대체로 그렇다. “안 읽는다 하면서도 보이면 꼭 읽게 되는 제임스”- 이런 작가로 현대에는 <아름다움의 선>, <수영장 도서관>의 앨렌 홀링허스트가 있다. 홀링허스트의 작품도 읽을 땐 좀 질리면서도 눈에 보이면 또 읽게 된다. 홀링허스트는 21세기의 헨리 제임스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 두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난........(응? 아니 고통스러운 재미의) 경험이 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보스턴 사람들>의 줄거리는 딱히 별게 없다. 그러면서도 600쪽 넘게 써 내려간 헨리 제임스. 하여간 대단해... 게다가 중간에 딱 덮어도 되는데 뭐랄까 자잘한 소품으로 이어진 드라마를 꾸역꾸역 보게 되는 듯한 심정으로 끝까지 읽게 된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서는 불유쾌한 감정이 들었던 것일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 별 다섯을 줘놓고도 씁쓸&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뭘까 곱씹어 보자.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실눈 뜨고 읽거나 패스하시라-

<보스턴 사람들>의 주요 등장인물은 세 사람, 두 여자와 한 남자이다. 한 여자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00년대 당시로서는 드문 독신의, 귀족 출신의, 부유한 여성 ‘올리브 챈슬러’이다. 문학동네 책 표지에서 왼쪽의 회색 머리 여성이 올리브 챈슬러로 보인다. 오른쪽에 그려진 남성 ‘배질 랜섬’은 올리브의 먼 친척으로 남부의 몰락한 귀족 출신의 변호사이다. 자 가운데 얼굴을 보이지 않은 빨간 머리의 여성은 누구일까? 이 여성은 젊고 아름다운 연설가 ‘버리나 태런트’로 올리브와 랜섬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사랑받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젊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두고 보스턴 출신의 부유한 귀족 여성과 남부 미시시피 출신의 가난뱅이 남성이 경쟁을 벌이는 삼각관계의 로맨스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잉? 1800년대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로맨스도 아니고 남녀가 경쟁한다고? 그것참 파격적이네!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저 부유한 독신 여성 ‘올리브’는 여성운동에 투신한 사람으로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남자를 혐오하는(올리브는 남자를 혐오한다) 페미니스트에 가깝다. 자신의 풍요로운 부를 여성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을 돕거나 후원하는 일에 기꺼이 쓰고 있으며 억압받은 여성들을 위해 그녀 자신 또한 기꺼이 무언가를 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원로 여성운동가의 거처에서 열린 모임에서 버리나 태런트의 연설을 듣고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연설을 들으러 간 사람이 올리브뿐만이 아니었다는 것. 올리브는 남북전쟁 패전 이후 재산과 노예를 모두 잃고 집안이 몰락한 배질에게 친족의 도리를 다하고자 그를 보스턴의 자기 집으로 초대했던 터였고, 첫 만남에서부터 그가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남자임을 알고는 혐오하면서도 여성운동가들의 모임에 굳이 데리고 간 것이었다. 배질 또한 버리나에게 한눈에 반하는데, 버리나의 연설에 깊이 감화받은 올리브에 비해 배질이 반한 것은 버리나의 미모와 목소리였다(왜 안 그렇겠습니까). 근데 여기서 잠깐 궁금해진다. 정말 올리브는 버리나의 연설과 그 연설의 바탕이 된 ‘생각’에 반한 것일까? 올리브는 내내 그렇게 주장하기는 한다. 




도대체 올리브의 성별은 무엇이란 말인가? (474쪽)



<보스턴 사람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배질 랜섬은 버리나를 사이에 두고 올리브와 각축을 벌이던 끝에 울화통이 터져서 저렇게 절규한다. 올리브 챈슬러, 이 노처녀-랜섬은 올리브를 처음 보자마자 ‘전형적인 노처녀’로 규정한다. 심지어 ‘이는 그녀의 특성이자 운명’이라면서 ‘올리브 챈슬러는 그녀의 존재가 함축하는 모든 의미에서 비혼’이라고 ‘셸리가 서정시인인 것처럼, 8월이 무더운 것처럼 그녀는 비혼의 노처녀’라고 생각한다-가 도대체 왜 그렇게 자신과 성별이 똑같은 버리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저렇게 외치는 것이다.

<보스턴 사람들>이 시대를 앞선 점이 있다면 바로 저 문장이 아닐까(헨리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젠더 문제를 건드렸어! 주디스 버틀러가 놀랄 만한 혜안이여!!) 그러니까 올리브는 자신이 여성임을 자각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버리나에게 반한 것이 단지 그 감동스러운 연설과 생각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섹슈얼리티를 깨닫지 못한 상태의 레즈비언인 것이다. 물론 자각은 했으나 적절한 언어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저 오래전의 래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의 주인공 ‘스티븐 고든’이 스스로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정체화했으나 실은(내가 보기엔 평생 남성으로 살기를 소망했고 남장을 했던 점에서) ‘FTM(Female to Male)트랜스젠더’이므로 결국 레즈비언이 아닌 이성애자였음에도 당시에는 이를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결국 레즈비언 문학의 효시가 되고 말았던 그 스티븐 고든처럼 이 올리브는 레즈비언인데도 레즈비언이라는 언어로 표현 갈 길이 없었던 본투비 레즈비언이었던 것이었으니......

암튼 버리나에게 반한 이후 올리브의 행태를 보자. 그는 일단 돈이 많았으므로 가난한 하층민 출신 이 소녀를 돈으로 산다(성매매를 한다는 소리는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예쁜 딸을 이용해 한몫 단단히 벌어보려던 부모에게 뒷돈을 주고 버리나를 자기 집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스턴 매리지의 기원이 된다). 근데 같이 살면 그만일 텐데, 이 인간 좀 보게나. 이 아름다운 버리나 주변에 파리 떼처럼 몰려드는 온갖 젊은 남자들을 다 떨어뜨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ㅋㅋㅋㅋㅋㅋㅋ버리나에게 절대 결혼하지 말라는 둥, 누구와 누가 와서 구애를 하는지 밝히라는 둥 버리나의 사생활(특히 남자관계)에는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며 버리나를 구속한다. 그러면서도 촉은 좋아서 애초부터 이 잘생긴 사촌 배질 랜섬이 버리나에게 위험한 인물이 될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거의 히스테리 부리듯 배질과 버리나 사이를 경계하고 감시하고 구속한다. 근데 이게..... 진정 억압받는 여성의 해방을 외치는 여성의 모습인가? 돈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옆에 구속해두고 사사건건 감시하는 거..... 이건 그녀가 그토록 경멸하는 당시 남자들이 하는 행태와 똑같지 않은가? 그러니까 배질 랜섬처럼 나 또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올리브 챈슬러, 그녀의 성별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배질 랜섬이야 말해무엇하리. 그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의 전형이다. 미소지니(여혐)의 뜻도 몰라서 내가 여성혐오자라고요? 내가 아름다운 여성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난 여성들의 능력을 존중합니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까? 집구석에서 돌봄과 남성의 옆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있는 거 정말 여성들의 뛰어난 능력입니다. 참으로 위대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렇게 여성을 찬양하는데 여성혐오자라니요, 무슨 소리! 이 지랄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자이다. 게다가 대놓고 올리브와 올리브 근처 여성운동가들을 비아냥대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버리나에게도 당신의 생각이나 연설에 감명받았다고....(입 발린 소리하면서 다가오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거짓말하는 대신, 당신의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에 반했다면서 끈덕지게 구애한다. 그러니까 랜섬은 그냥 딱 그대로 남부 출신 전형적 보수주의자 꼰대 남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받는 빨간 머리, 표지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헨리 제임스 왈 너무나 아름답다는 버리나는 어떤 사람일까? 표지에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지만, 뒷모습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버리나라는 캐릭터의 속성을 잘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보스턴 사람들>의 세 인물 모두 비호감인데(이러기도 쉽지 않음) 그중 이 버리나가 가장...은 아니지만 가장 밉상인 인물 랜섬 못지않게 싫었다. 이 여자는 단지 말만 잘하는, 외모만 그럴듯한 앵무새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올리브를 혹하게 했던 연설도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 올리브는 알아채지 못한다. 올리브가 개인적으로 버리나에게 여성운동과 여성의 억압, 해방 등에 관한 생각을 물어봤을 때 버리나는 그 질문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할 뿐인데 이미 첫눈에 그녀에게 반해버린 올리브는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버리나가 지성미도 뿜뿜이라고 착각한다. 게다가 그 훗날의 연설들.... 그 연설 원고를 써주는 사람은 올리브이지 버리나 스스로는 원고를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올리브가 노심초사 걱정하고 경계할 정도로 버리나 주변에는 그녀의 외모에 반해 그녀를 칭송하며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고 이용할 줄 아는 버리나는 그것을 십분 활용하며 즐긴다. 그러니 이 말 잘하는 허영덩이 앵무새가 여성해방 운운하는 자신의 말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비꼬고, 공격하는 랜섬에게 넘어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어차피 그녀 고유의 생각이랄 게 없었으므로 오직 갖고 있는 자신의 미모만 찬양하면, 게다가 잘생긴 남자라면 땡큐인 것이다. 헨리 제임스는 결국 이 앵무새가 잘못된 선택을 했노라고 앵무새의 앞날에 눈물이 끊이지 않음을 암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헨리 제임스가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인가!? 한다면 글쎄.... 헨리 제임스는 랜섬을 곱게 보지도 않지만 그가 여성운동가인 올리브와 버리나를 묘사하는 방식을 보라. 더 고단수로 그들을 비꼬고 있지 않은가. 여성운동이라고? 올리브, 빨간 머리 앵무새, 정작 니들이 하는 짓을 봐! 하고 마음껏 비웃는 느낌. 그게 <보스턴 사람들>을 읽고 나서 똥물 들이켠 듯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이다. 그럼에도 별 다섯? 그래도 19세기에 “도대체 올리브의 성별은 무엇이란 말인가!” 외치며 젠더, 섹슈얼리티, 성역할, 결혼제도, 여성해방 등의 문제를 다채롭게 짚고 있다는 점에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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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10-13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에…스토리 꽤 재밌을 것 같았는데, 왜 기분이 나쁠지 알겠네요. ‘그럼에도 별다섯’ 주면서 부들부들…손이 떨리셨을 듯 ㅋㅋㅋ 헨리 제임스가 그 ‘나사의 회전‘ 쓴 사람이죠? 앞으로 고통의 헨리제임스로 기억해야겠다…엘린 홀링허스트와 쌍두마차로다가.

잠자냥 2025-10-13 15:47   좋아요 2 | URL
스토리는 재밌어요... 헨리 제임스 추임새도 웃기게 넣고 ㅋㅋㅋㅋ 그래도 부들부들 ㅋㅋㅋㅋㅋㅋㅋ
네, 나사의 회전하고.. 워싱턴스퀘어, 데이지밀러 등등 다 재미나긴 합니다.
헨리 제임스가 여성해방이나 여성인권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복잡했을 듯.
헨리 제임스 여동생이 앨리스 제임스(Alice James)인데 이 동생 또한 재능이 넘쳤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재능을 못 펼치고 단명했거든요. 그녀에 관한 희곡이 수잔 손택의 <앨리스 인 베드 Alice in Bed>입니다.
국내에선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으로 소개...기회 되면 이것도 읽어보세요.

다락방 2025-10-13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는데 엄청 재미잇을 것 같아요. 저는 이 리뷰 읽는데 ‘메그 윌리처‘의 [여성의 설득] 생각이 납니다. 저명한 여성주의자와 그녀를 좇는 젊은 여성주의자가 나오고, 그런데 그들도 나름의 모순을 당연히 갖고 있고.. 하여간 헨리 제임스의 이 책은 빡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자기 주변 남자들 다 치워버리려는 이 노처녀가 젊은 여자는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이상 모순된 다락방이 썼습니다.

잠자냥 2025-10-13 16: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재미는 있어요. 이 책 사두지 않았어요? 은행나무 버전으로? 폴스타프 님이 페미니스트들이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다락방 님이 읽으시면 빡치면서도 참 할 말은 많을 것 같아요.

올리브가 젊은 여성들에게 여성해방 운운하면서 설파하고 다니는데 결국 그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는 잘생긴 남자와의 데이트로... 귀결되는 거에 늘 절망하는 묘사도 나오는데 참 웃펐습니다.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0-13 17:24   좋아요 1 | URL
제가 이 책을 사뒀다고요?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다락방 2025-10-13 17:26   좋아요 2 | URL
방금 찾아보았고 제가 이 책을 사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쳐버려.. 투비 에서 후기 보고 샀대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10-13 17:32   좋아요 0 | URL
당신은 폴스타프 님 후기에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했다능….

다락방 2025-10-13 17:42   좋아요 0 | URL
저 이 머리로 어떻게 공부하는거죠? ( ˝)

잠자냥 2025-10-13 17:49   좋아요 0 | URL
늘 일등이 더 신…기🤣🤣🤣🤣

독서괭 2025-10-14 07:25   좋아요 1 | URL
락방님은 잠자냥님 없으면 안 돼.. ㅋㅋㅋ

건수하 2025-10-1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헨리 제임스… 전 나사의 회전도 못 보겠더라고요. 뭔 소리를 하고싶은거야…!!! 하는 느낌?

그래서 그냥 글 다 읽었습니다. 음음… 궁금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요즘엔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그냥 인간이다.. 욕망이 있는가운데 모순되기도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잠자냥 2025-10-14 10:08   좋아요 1 | URL
<나사의 회전> 어느 출판사 버전으로 읽으셨나요? 악명 높은 번역이 하나 있기는 하던데 ㅋㅋㅋㅋ 설마 그 판본으로 읽으신 건 아닌지...?
혹시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디 아더스> 보셨어요? 그 영화가 <나사의 회전>을 재해석해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영화 보고 원작 읽으면 더 잘 이해될 거 같기도 합니다.

건수하 2025-10-14 10:37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로 봤었는데 악명 높은게 그건가요? 별거 아닌걸 과하게 애매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ㅎㅎ 그게 의도한 거긴 하지만요.. 귀신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합니다 =ㅁ=

<디 아더스> 옛날에 본 것 같아요. <식스 센스> 이후에..

잠자냥 2025-10-14 10:43   좋아요 1 | URL
다행입니다. 다른 출판사 판본입니다.

건수하 2025-10-14 13:27   좋아요 0 | URL
음음.. 다행이네요. 역시 저는 헨리 제임스 별로 안 좋아하나봅니다 ^^;;
 
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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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것은 명제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죽는다. 노년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인도, 노년의 삶도 모두 자기와는 동떨어진 현실,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들인다. 그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젊으면 젊을수록 더 그렇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살아온 나날을 헤아려 보면 어느새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나 싶은 그런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노년의 삶은 아직 좀 먼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아니 지금의 나이보다 열 살만 더 어렸다면 노년의 삶을 다룬 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뜻밖의 우정>이라는, 삼십대 후반의 젊은이와 노인들의 우정의 기록을 담은 책을 읽게 된 것일까.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저런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상실을 경험하기. 그것도 거듭되는 상실을 겪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그런 생각이 요즘 더 강하게 들었던 까닭은 최근에 내 둘째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늙음은 사람의 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여러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만 열 살을 넘긴 녀석들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노라면 고양이의 얼굴에도 몸에도 늙음의 흔적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작이 느려지고 활동량이 줄어들고, 혼자 있기 싫어하는 습성 등은 사람에게서나 내 늙은 고양이에게서나 똑같이 볼 수 있는 노년의 증거이다. 

내 나이 서른 즈음보다는 노년의 과정에 놓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없던 질병이 생기고 그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가 내 둘째 고양이처럼 어느 날 무심히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 그것이 모든 생명이, 동물이 마주하는 생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쓸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쓸쓸함과 허무함을 견디기가 싫어 젊은 날에 생을 접어버릴 수도 없으니, 묵묵히 저 노년으로 가는 과정을 나 또한 걸어갈 수밖에는 없겠지, 그런 생각에 이 책을 읽은 것도 같다.

처음에는 유쾌했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검도를 배운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이제 일흔이다. 30여 년 전, 검도장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여자가 무슨, 검도를? 얼마나 나오겠어? 무시와 경멸의 시선을 받던 그녀는 예순일곱 살에 검도 6단을 취득했고, 여전히 검도를 하는 대단한 ‘할머니’로 늙어, 존경과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 뒤를 잇는 할머니들의 사연도 유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결성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에서 새 멤버를 뽑는단다. ‘수니와 칠공주’의 평균 나이는 85세. 새 멤버를 뽑는 이유는 기존 래퍼의 노환으로 인한 죽음 때문이다.... 오디션은 자기소개에 이어 한글 실력을 검증하는 받아쓰기, 랩 따라 하기, 글짓기, 가창력과 춤 실력을 보는 애창곡 부르기와 막춤 추기 등으로 진행된다. 새 멤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정열 할머니는 과연 래퍼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즐겁게 읽어나가다가 세 번째로 소개된 ‘승기’의 사연에서 아, 내 노년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이자 영화광이다. 승기 할아버지는 저자와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기도 한데, 아마도 그 수많은 책과 영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공감과 소통의 활로를 열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영화로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와 <룸 넥스트 도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꼽는다. 이 작품들은 나 또한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퍼펙트 데이즈>는 좀 더 남다른데, 아마 ‘승기’ 할아버지도 이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에게 깊이 공명하면서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자기만의 정확한 생활 루틴이 있고, 그 루틴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출근해 묵묵히 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깨끗이 청소한 방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삶.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와 <뜻밖의 우정>의 ‘승기’,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잠자냥’의 삶은 그렇게 닮아있을 것이다. 



“들판을 보고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은 가난하게 버스를 타고, 여관을 떠올리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는구나. 이렇게 사는 게 결국 내 인생이었던 거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거야. 다들 자기 삶을 자기대로 사는 것뿐 아니겠냐. 어떤 이는 나보고 청승맞다고 하지. 세상에 남길 거라곤 헌책과 DVD뿐인 내 삶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 삶은 실패한 삶일까...... (p.59)


‘승기’ 할아버지에게는 몇 천 권의 책과 몇백 장의 DVD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자 전 재산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던 이 애서가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은 가난하게 살았노라 말한다. 똑같은 빈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거기에 여관을 지을 생각을 했던 친구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부자 친구가 늙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죽을 맛이라고 한다. 반면 승기는 바쁘다. 영화도 보러 가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하루하루가 알차다. “여전히 읽을 책이 많이 남았다는 게 사는 기쁨”(p.57)이라 말하는 승기 할아버지의 그 심정을, 삶을, 나는 안다. 나 또한 일흔쯤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직도 읽을 책이, 들을 음반이, 영화가 내 앞에 이렇게 쌓였는데 하루가 너무 짧구나. 인생이 너무 휙휙 지나가는구나 한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 역시 지금의 나이에도 전 재산이랄 것이 가득 쌓여있는 책과 음반뿐인데 앞으로라고 얼마나 달라질까 싶어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 회의감에 울적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 성정상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박봉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 직업을 은퇴할 때까지는 할 것 같고, 그 이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나날을 보내지 않을까. 집사2는 은퇴하면, 아니 지금이라도 너만의 출판사를 차려서 만들고 싶은 책을 세상에 내놓으라고 북돋는데 그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나는 그냥 원 없이 읽는 게 좋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내 삶도 존중해준다. 한 15년 후면 고양이들도 우리 곁을 다 떠나서 돌볼 존재가 사라질 텐데 그때쯤엔 정말 나 자신을 더 돌보는 삶을 살게 되려나. 일흔에도 검도를 하는 할머니처럼, 여든에도 래퍼를 꿈꾸는 할머니처럼 그 나이쯤에도 테니스를 치고 좋아하는 밴드 공연장은 찾아가서 즐기고 싶다는 바람은 가져본다. 


선생님은 내게 삶을 긍정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영화를 보며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좋은 이야기는 결국 삶에서 희망을 보게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삶의 고비마다, 슬픔과 좌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울게  했던 좋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면 믿을 수 있었다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은 결국 희미한 빛을 보여주리라. 내가 희망을 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는 내게 당부하듯 말했다. 너도 좋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라. 그런 다음 좋은 이야기를 쓰거라. (p.61)


<뜻밖의 우정>에는 이렇게 저마다 개별적인 생활을 꾸려가는 다양한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을 마주하며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보기도 하고, 늙음이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로구나,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싶어서 오늘의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통화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지? 그들은 왜 그렇게 대중교통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기둥처럼 붙잡는 것일까? 그들은 왜 깔끔하지 못할까? 차가운 시선을 던지던 내게 아프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일들은 생명을 지니고 늙어가는 모든 존재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피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이 책에는 ‘북새’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 또한 할머니들에게 익힌 말이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때, 노을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시간을 북새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서 노년을 북새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간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그 북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뜻밖의 우정>은 가만히 돌아보게 한다. 승기 할아버지의 조언처럼 좋은 이야기 속에 살고, 그리하여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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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9-25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새 처음 듣는 말인데, 저 시간을 북새 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군요.
저는 요즘 수영장 다니면서 20년, 30년 다니셨다는 어르신들을 종종 봐요 70대신데 대회도 나가시고요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독서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한거 같아요😄

잠자냥 2025-09-26 09:5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북새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표준어는 아닌 것 같고 사투리인 것 같아요(‘노을’의 방언이라고 나오네요). 책에서도 북새라는 말을 설명할 때 할머니들이 “여기서는 그걸 북새라고 한다.”하시거든요. 주로 전라-충청 지역에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망고 님은 일흔 넘어서도 수영! (근데 벌써 날 춥다고 안 가시면 어쩌려고... :p)

다락방 2025-09-25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이 글이 좋은 이야기 이네요. 이렇게 좋은 이야기 하나 더 남기셨어요. 저는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읽고 저 역시도 좋은 이야기를 남겨야겠다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5-09-26 09:57   좋아요 1 | URL
다락방의 좋은 이야기는..... 싱가포르에서 한국어 교사가 되고 앤드류와 진한....(?) 사이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9-26 11:40   좋아요 0 | URL
👏🎉🎊🥳😘

독서괭 2025-09-25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허억 둘째가 무지개다리 건넜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아아…. 뒤늦게나마 자냥님 토닥토닥..
북새라는 단어가 있군요. 북새통밖에 몰랐는데.. 뭔가 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페넬로페 2025-09-26 01:22   좋아요 1 | URL
잠사모 회장님
조용히 사퇴하신 건 아니시죠? ㅎㅎ

독서괭 2025-09-26 08:44   좋아요 1 | URL
사임당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ㅎㅎ 심기일전 하겠습니다 🤗

잠자냥 2025-09-26 09:57   좋아요 1 | URL
괭! 사임당하기는 개뿔.... “독서괭 한 번도 잠사모 회장인 적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독서괭 2025-09-26 13:27   좋아요 1 | URL
엥??? 이건 또 무슨 말 😱

잠자냥 2025-09-26 14:05   좋아요 1 | URL
아니 무슨 회장이 최애(엥??)의 둘째 고양이 소식을 2주 가까이 몰라요?!
(이 책에서도 할머니들이 자기 최애(임영웅/장민호 등) 얼마나 지극히 아끼시던지....좀 읽고 배워봐.

독서괭 2025-09-26 14:16   좋아요 0 | URL
용서한다매…. 🥺

구단씨 2025-09-25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작가의 전작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책은 뭐랄까. 현실적으로 더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지금 살아가는, 곧 마주할 어느 시기를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도 책 읽어가면서, 영화 한 편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하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잠자냥 2025-09-26 09:58   좋아요 0 | URL
오! 이 책 읽고 계시는군요. 작가의 전작도 마음에 남았다는 말씀 이해가 가네요.
저 또한 작가의 전작도 궁금해지더라고요.
구단씨 님의 감상도 궁금해집니다.
알라딘 서재에선 책과 함께 늙어가실 분들 많을 것 같아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5-09-2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의 명제는 사실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할 것 같아요.
점점 현실이 되니까요.
승기의 인생 영화 셋
저도 너무 좋게 봐서 반갑고
독서광, 역시 저도 죽을때까지~~
그냥 이대로 살다가
아프지 말고 한 날 웃으며 죽으면 좋겠습니다^^

잠자냥 2025-09-26 09: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첫 문장 명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해요. ㅎㅎ
페넬로페 님도 그 영화들 좋게 보셨군요!
역시 좋은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아요. 좋은 책처럼 말이에요.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건강하게, 아니 덜 아프면서 그렇게 늙어가면 좋겠습니다.

단발머리 2025-09-25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판을 보고 문학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요. 들판을 보고 여관을 떠올렸다 했을 때, 순간 이해가 안 되었던 ㅎㅎ
일흔이 되어도 읽고 싶은 책이 남아있을 거라서 덜 심심하겠지~~ 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는 합니다. 그 때도 잠자냥님의 페이퍼가 나의 ‘읽고 싶어요‘가 될 것이며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9-26 09: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빈 들판에 숙박업소 차릴 생각하는 분들 알라딘에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다...... 다락방은 음식점을 꿈꾸려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흔에도 책을 읽고 알라딘에 페이퍼를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갰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5-09-26 11:27   좋아요 0 | URL
저도 여관하고 무슨 상관이지? 했다거 나중에 글에 언급되어서 아 돈벌이 여관이구나, 했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5-09-26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점점 드니까 뭔가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죽을 때 다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남은 사람이 정리하기도 힘들 것 같고... 그래서 진짜 책정리 못했는데, 책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더디지만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 책도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겠죠? 그리고 정신과 인품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쉽지 않네요. 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듯 합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삶은 한 번뿐이고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이 책을 읽은 잠자냥 님의 글이 너무 좋아서 책도 보고 싶어요. 나에게 올 북새의 시간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여전히 서재에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둘째가 고양이별로 갔나요? 저는 작년에 셋째였던 첫째가 떠나서 엄청 슬펐는데 잠자냥 님도 많이 슬프시겠습니다. 저는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울고 그랬어요ㅠㅠ 이별할 줄 알고 있지만 늘 이별은 슬프네요.ㅠㅠ

잠자냥 2025-09-26 09:59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엔 음반 사는 건 자제하고 있어요. 집에 있는 것만 돌려들어도 죽기 전에 다 듣지 못해! 이러면서요. 그런데도 책 사는 건 자제가 안 되네요. ㅋ 이것도 언젠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책은 꼭 읽어보세요. 운동 좋아하는 꼬마요정 님은 더 공감하면서 읽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ㅎㅎ

아 저런 꼬마요정 님도 작년에 힘든 일이 있었군요. 셋째였던 첫째라니 더 슬펐을 거 같아요. 얼마나 정이 들었겠어요.... ㅠㅠ 전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겠냐 싶었는데 둘째 보내면서 운 것처럼 울었던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울지는 않을 것 같은;;;;; (엄마 미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둘째 보내고 나서 알라딘에서 냥이들 키우는 분들 많이 생각했어요. 꼬마요정님네도 자식이 참 많은데;;; 그 애들 보낼 때 얼마나 슬플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또 겪을 일들이니까, 그럼에도 녀석들이 주는 웃음과 행복의 크기가 너무나 크니까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잘 버텨봅시다!

희선 2025-09-28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한테나 오는 시간인데, 사람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듯합니다 갑자기 누군가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안 좋아지기도 하겠지만...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나라도...

저는 들판 보고 문학 떠올리지 못하고 여관도 떠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들판 보고 저런 곳에 뭔가 짓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한 듯도 합니다 예전엔 논밭이었던 곳이 이젠 거의 건물로 채워졌어요

둘째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여전히 마음이 허전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겪어야 한다니,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오래 아프지 않고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희선

잠자냥 2025-09-29 12:02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저도 빈 들판을 바라보면서 문학을 떠올리지도 여관을 떠올리지도 않을 것 같네요. 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아프지 않고 묘생을 마감한 둘째 녀석, 그것도 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케이 2025-10-01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호선만 20년 넘게 타고 있어서 유독 노인을 많이 보는데요. 할머니들은 대체 왜 그렇게 짐들이 많을까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중 조그마한 가방 매고 다니시는 분 거의 없어요. 보통은 엄청 무거워보이는 백팩+구르마까지.
몸도 저렇게 조그마한데 왜 저렇게 무거운 걸 이고 지고 다니실까... 싶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무거운 거 드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이제 어깨가 아파서 못하거든요.
심지어 마트에서 음료수 사는데 1+1이니 한병 더 가져가라는 걸 저 무거워서 못가져간다고 그냥 온 적도 있는데, 이런 저조차 할머니 되면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려나요.
그 할머니들 세대 생각하면 짠한 맘이 들긴 해요.
하지만 할아버지들은 정말 정 붙이기 어려워요 ㅋㅋㅋㅋ ㅜㅜ 극복해야겠죠.

잠자냥 2025-10-01 12:12   좋아요 1 | URL
저도 짐 없이 다니는 편인데... (회사 올 때 가방 없이 출근한 적도 많아요;;ㅋㅋㅋ) 늙으면 짐이 많아질까요?
구르마는... 걷기 힘들어서 의지해서 밀고 가는 용도인가 싶기도 해요. 근데 거기다가 또 잔뜩 뭘 넣기는 하시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아버지들 정 붙이기 어렵다에서 빵터졌습니다.....저도 그렇긴 해요;;ㅋㅋㅋㅋㅋㅋㅋ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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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람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다. 병원에 있으면 좋든 싫든 인간을 관찰하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연령, 출신,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라면 서로 전혀 관련 없을 사람들이 단지 같은 시기에 이런저런 질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공간에 모이게 된다. 그러고는 며칠씩 숙식을 함께 한다. 아픈 사람이든 보호자든 쉬 그 공간을 떠나기 어려우니 거의 반강제적으로 병실에 머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낯선 타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병자로 입원하든 보호자로 있든 병실에서 오가는 대화가 싫고, 병실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친해지려고 말 거는 것은 더더욱 싫다. 서로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도 병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온갖 질문을 해댄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이, 사는 곳, 직업, 관계, 결혼 유무...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을수록 이 무례한 질문의 개수와 종류는 다양해진다. 커튼을 절대 열지 않을 것.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도 인사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더라도 거절할 것......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수칙이다. 

그 조그만 공간에서도 권력자가 생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권력을 갖기 쉽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권력자에게 빌붙어 알랑방귀를 뀌어댄다. 그게 뭐라고. 이곳에 며칠이나 있는다고. 그러고는 그새 공동의 적을 만들어 쑥덕거린다. 게다가 우습게도 질병에도 계급가 지위가 있는지 서로 자기가 더 중병이라고 우겨댄다. 이 세계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땐 자기 존재의 비루함을 감추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아는데 여럿이 모이면 다 같이 비루해지는 꼬락서니로 폭주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모이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혐오가 깊어질 때쯤,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베른하르트만큼 인간을 혐오하고 조국 오스트리아를 증오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장광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까지 인간을 혐오할 일인가 싶어지다가도,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기에 이럴 수밖에 없지, 싶어지기도 한다. 병실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또 그즈음 친구 몇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정리했기 때문인지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생각났다..... <소멸>은 현재 절판인데 이대로 묻히기는 참 아까운 작품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내가 읽었던 판본과는 출판사를 달리하여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도 조용히 묻히기에 아깝기는 마찬가지라서 예전에 썼던 글을 올려본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소설이지만 그저 픽션은 아니다. <소멸>의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철학자로 유명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과의 12년간의 우정의 기록이다. <소멸>의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느낌도 대충은 감 잡을 수 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혐오하고, 비정신적인 세계에 역겨움을 토로한다. 물질적인 것, 속물적인 것, 인간의 허위의식 등 그에게 역겨운 그 모든 것에 쓴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소멸>에 비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순전히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 때문이다. 아니, 파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우정 때문이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는 내로라하는 가문인 비트겐슈타인가(家) 출신이다. 물론 그의 삼촌인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가문에서는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 명망 있는 가문, 재벌 가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조카와 삼촌 모두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물질적인 세계와는 결별한 삶을 살았고 오로지 정신적인 세계에 줄곧 탐닉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가문에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나 조카인 파울 비트겐슈타인, 이 두 사람을 모두 미친놈 취급을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자로서 그 이름을 떨쳐도 가문에서 돌아오는 소리는 비아냥거림과 멸시뿐이었다고 한다. 철학자로 유명해진 삼촌에게도 이럴진대, 조카인 파울,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우정을 쌓았던 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향한 그들의 경멸은 오죽했을까. 삼촌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녔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안타깝게도 정신병이 발병해 35세 이후로는 늘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했기 때문이다.

파울이 정신병으로 병원을 들락거릴 때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폐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한 사람은 정신병, 한 사람은 폐병- 정신과 몸에 병을 앓으며 더욱 친근한 우정을 나누게 된 두 사람. 미치광이와 폐병환자가 어쩌다 친구가 되었을까? 그들의 우정은 한 음악회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파울은 클래식 음악(특히 오페라)에 엄청난 애정을 지녔고 그로 인해 상당한 식견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의 우정은 꽃을 피운다.

음악, 철학, 정치, 예술 등 온갖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며, 비정신적인 세계에 똑같은 혐오감을 표현하며 그들의 우정은 깊어진다. 조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때도 사람들의 무지와 허영, 물질에 대한 집착을 비판할 때도 그들은 한 목소리였고 뜻을 같이 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12년간의 우정의 기록을 읽다 보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두 사람은 물질적인 것이 최선으로 여겨지는, 비정신적인 이 세계를 살아가기엔, 익숙해지기엔 너무나 예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예민함이 한 사람에게는 정신병으로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폐병으로 드러났으리라. 파울이 먼저 죽고 베른하르트는 끝끝내 그의 무덤을 찾아가지 않는다. 베른하르트에게 파울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염증 나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정신적인 세계를 뜨겁게 추구했던 파울은 미치광이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런 그의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기는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쉬기에, 진정한 죽음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이 세상에서 정말 죽은 사람들, 살아 있지만 무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삶’을 포기한 채 좀비처럼 먹고 싸고 자고 물질의 구축에만 온 생애를 보내는 이들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만나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또 다른 면목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소멸>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작가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은 있었다. 파울에 대한 애정이나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한 또 다른 사람, ‘나의 삶의 사람’이라고 부르던 그녀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진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쓸데없는 만남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그 인간관계가 자신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인맥이 어쩌고 하면서)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관계 맺은 인간들이 과연 자신의 정신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본다면 지금 당장 잘라버려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관계들이 부지기수다. 베른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생애에 정말 어떤 의미를 준 사람을 우리는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다 셀 수 있으며, 우리가 솔직하다면 이런 사람을 셀 때 단 하나의 손가락도 필요하지 않을 텐데도 다섯 손가락을 다 써야 한다고 믿는 우리의 파렴치함에 나는 저항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현암사, 110쪽)

폐병 환자였던 베른하르트와 미치광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결코 길지 않았던 우정의 기록은 이 염증 나는 세상을 견디기 위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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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9-0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계시는가요? 다 잘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병원은 사람도 사람이지만 공간 자체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대학병원이라도 갔다오면 기가 다 빨려서는 어휴... 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른하르트는 <모자> 딱 하나 읽었어요.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더 이상 손이 안 가더라구요. 추천하신 책 찾아봐야겠어요. 또 이렇게 책 한 권 장바구니로 가는가요...

잠자냥 2025-09-04 15:14   좋아요 1 | URL
제가 아픈 건 아니고 보호자로 있었습니다. 며칠 병실에서 잠자고 그럴 땐 정말 괴로웠...; (아픈 사람은 더 괴로웠겠죠.....) 아무튼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곧 퇴원 예정입니다. 😸 감사합니다.

베른하르트는 냉소와 독설을 기반으로 한 독한 유머도 매력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 기회 되면 한 작품 더 읽어보세요! 요정 님 엘레나 페란테에 이어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책 또 발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5-09-04 18:13   좋아요 1 | URL
곧 퇴원이라니 다행이에요!!

손 안 가는 책 넘나 많습니다. ㅋㅋㅋ 그러면서 왜 또 사는지ㅜㅜ

다락방 2025-09-0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베프가 누구인지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면서, 괜찮아 어차피 안긴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니까, 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이 리뷰를 읽다보니 저는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안의 어떤 면은 분명히, 제가 가진 인간관계가 저에 대해 많은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고요.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제 인생에 영향을 준, 제 그 다음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 친구가 생각납니다. 자연스레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친구 덕에 저는 평생 지니고 살았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거든요. 모니터를 앞에 두고 그 친구의 말을 듣고, 그 날 제가 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후로 제가 달라졌고요. 어떤 사람들은 내 인생에 영향을 주기 위해 아주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중요한 일을 하고, 그리고 다시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아 댓글 쓰다가 저 왜 갑자기 감상적이 되어버리죠? 하하핳하ㅏㅅ.
리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5-09-05 10:04   좋아요 0 | URL
전 베프라는 존재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딱히 갖고 싶다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대부분은 사귀는 사람이 베프나 마찬가지여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암튼 어제 다락방 님이 감성 터지는 사람이 된 것은..... ㅋㅋㅋㅋㅋ 사이먼 때문에

바람돌이 2025-09-04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병원에 계셨군요. 보호자든 환자든 병원 자체가 참 힘들죠. 이제 퇴원하신다니 다행입니다. 베른하르트나 파울 모두 서로를 만나서 그나마 다행인 사람들이네요. 서로가 아니면 저 예민하고 폐쇄적인 사람들을 누가 이해해주겠습니까? 저도 염세적인 사람 힘들어요. ㅎㅎ

잠자냥 2025-09-05 10:07   좋아요 1 | URL
휴가를 내는 데 한계가 있어서 병원에서 잔 건 한 4일인가 5일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출퇴근 ㅎ
베른하르트나 파울처럼 서로에게 맞는 사람끼리 잘 만나면 좋죠.
저는 기본적으로 염세적이긴한데...ㅋㅋㅋㅋ 모든 일에 초긍정 사람보단 이게 낫다고 생각도 하는데...
그렇다고 염세염세염세 기운 뿌리면서 다니는 건 또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중2병 같음ㅋㅋㅋㅋ). 걍 겉으론 티 안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5-09-05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호자로도 환자로도 병원에 있는거 참 괴롭죠. 저는... 환자 보다 보호자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환자는 할 일이 있잖아요 (계속 아플 것) 근데 보호자는 계속 대기..... 고생 많으셨어요, 잠자냥님. 곧 퇴원하시게 된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그래도.... 인생에 그런 사람 5명은 된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가끔 8명 될때도 있고요. 잠자냥님의 리뷰 읽다보니 설득되어 버리네요. 서로를 알아보는 이런 우정 흔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사람, 이런 우정, 이런 친밀함이라면 8인분일 수도 있겠네요.

잠자냥 2025-09-05 10:10   좋아요 0 | URL
계속 아플 것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아픈 와중에도 좀 나아야죠! ㅋㅋㅋ
계속 대기는 아니고 ㅋㅋㅋ 암튼 요즘은 출퇴근했습니다.

단발머리 님 주변에 사람 많은 것 같더라니... 와 8명 될 때도 있군요!!! *엄지척*
 
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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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잘 안 읽히는 때가 있다. 문학적 감성이 좀 버거운 시기에 그렇다. 이런 때 소설을 읽으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왠지 심드렁하게 읽히고 별것 아닌 묘사에도 닭살이 돋는 등 역효과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읽어도 완벽하게 빨려 들어가서 읽게 되는 작가들이 (드물지만) 있다. 8월에 읽은 책 목록을 보니 소설은 딱 두 권. 서머싯 몸과 슈테판 츠바이크. 둘뿐이다. 그렇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금세 몰입, 모든 걸 다 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몸(Maugham)보다는 츠바이크 쪽이 좀 더 그런 것 같다. 


최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츠바이크의 중단편 모음집이 나왔다. 표제는 <감정의 혼란>- 녹색광선에서 출간한 <감정의 혼란>과 제목은 같지만 ‘불타는 비밀’ ‘아모크 광인’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이렇게 세 작품이 더 들어있다. ‘불타는 비밀’도 예전에 읽은 작품이라(‘타버린 비밀’ ‘일급비밀’ 등등으로 번역되어 나왔음), 이걸 사? 말아? 고민했지만 결국 ‘광인’과 ‘어느 여인’이 궁금해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광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광인처럼 츠바이크가 촘촘하게 글자로 지어낸 세계에 빠져 들어갔다.  

여행 중인 ‘나’는 인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반복되는 배 위에서의 나날, 같은 배에 오른 사람들의 안면을 다 익힐 정도로 익숙해지고 ‘수평선에서 보이는 돛이며 뛰어오르는 돌고래며 새로 눈에 띈 시시덕거림이며 스쳐가는 농담’ 등 아주 하찮은 화젯거리마저  바닥이 나 지루함에 몸부림 칠 때쯤 ‘나’의 앞에 뜻밖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선박에 숨어 지내고 있던 한 남자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남자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느낀 ‘나’는 그에게 도와주겠노라 다가서지만 남자는 한사코 도움을 거부한다. 도리어 ‘도와주겠다’는 말에 냉소와 함께 분노를 터뜨린다. 오직 하나의 부탁은 자신을 봤다는 말을 이 배를 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는 것뿐이다. ‘나’는 선실로 돌아와서도 이 남자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의 사연을 알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여기에서도 츠바이크의 심리 묘사는 빛을 발한다. 


인간 심리의 수수께끼는 불안할 만큼 나를 사로잡아, 그 관련을 밝혀내고 싶은 충동이 핏속 깊이 들끓게 한다. 기이한 인간은 눈앞에 보이기만 해도 정체를 알고 싶다는 욕구에 불을 붙일 수 있으며, 이러한 열정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욕정 못지않게 뜨거운 법이다.


결국 남자의 입을 열게 하는 데 성공하는 ‘나’-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아모크 광인’의 사연이 펼쳐진다. 남자의 직업은 의사로 7년 전에 인도로 왔다. 유럽에서 잘 나가는 의사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어떤 사연 때문에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남자는 말 그대로 ‘돈도 없고 시계도 없고 환상도 없이’ 유럽에서 출항, 인도의 면급 주재지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은 온통 밀림으로 농장, 덤불, 늪밖에 없는 오지나 다름없다. 그래도 처음에는 의욕적인 꿈에 부풀기도 했다. 현지어를 익히고, 경전도 원문으로 읽고, 풍토병을 연구하고, 학문에 힘쓰고 원주민의 심리도 밝혀내려 애쓰고…. 다리가 부러진 그 지역 부시장을 성공적으로 수술해주기도 하면서 명성도 얻는다. 이렇게 의사로서 그럭저럭 적응해 갔지만 차츰 기력이 빠지면서 이 모든 것들이 시들해지고 만다. 

어느덧 사람들과의 왕래도 끊은 채 혼자 틀어박혀 술 마시고 몽상하는 삶에 남자는 젖어든다. 7년을 대부분 원주민과 동물 사이에서만 살아가면서 점차 무기력해지는 그. 남자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 같은 곳에 있다 보면 누구나 기운이 바닥나고 아무리 키니네를 파먹어도 막을 수 없는 열병이 골수에 파고들어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처지고 물러지게 되지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의사로서 인도에서의 계약 기간이 끝나 연금을 받고 유럽으로 돌아가 새 인생을 살 날만 기다리던 그 남자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 

열대병, 향수병, 노스탤지어… 외로움으로 죽어가는 한 사내에게 한 여인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것도 몇 년 만에 찾아온 첫 번째 백인 여자이다. 그런데 베일을 쓴 이 여자는 수다만 떨면서 말을 빙빙 돌릴 뿐, 왜 남자, 그러니까 이 의사를 찾아왔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남자는 처음엔 백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들떴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여자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교묘히 질문을 던진다. 여자에게 필요한 진료가 무엇일지 추측하면서 진실을 더듬어 나간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그런 과정에서 그녀에게 매혹당한다. 

이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 남자가 여자한테 반한 사연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좀 특이(?)한데 여자들이 도도하고 쌀쌀맞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로, 유럽에 있을 때도 이런 여자와 문제가 있어서 사고를 일으키고 인도로 도망치듯이 떠나온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그런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로 찾아온 여자가 간절히 부탁하거나 눈물짓거나 등등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당당하고 도도하게 ‘강철 같은 꿋꿋함’ ‘남성 같은 꿋꿋함’을 보이면서 자신보다 강하게 굴면서 자기를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매료당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이 여자의 도도함을 꺾어버리고 여자가 자신에게 부탁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충동에 시달린다. 

이제 이 도도한 여자와 그런 여자에게 지배당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 기세를 꺾어버리고 싶은 남자의 기 싸움이 시작된다. 사실 이 여자가 의사를 찾아와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중절 수술이었다. 이런 수술이었기에 이토록 동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의사를 찾아온 것이고,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이 비밀을 이용해 그녀를 협박한다거나 부탁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런 목적으로 의사를 찾는 다른 여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한껏 도도하고 당당하게 구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여자는 수술비로 큰돈을 제시한다. 

헌데 의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여자의 도도함에 반해버려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욕정이 번득이듯이 솟아오른다. 여자가 악마처럼 안하무인으로 굴수록 더 넋이 나가버린다. 부탁하면 들어주겠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크게 비웃으며 말한다. “아니요-부탁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나락에서 떨어지겠어요!” 결국 남자는 분노로 불타올라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고 만다. 이 장면에서는 ‘마조히즘’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모피를 입은 우아한 여인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했던 ‘제베린’, 숭배해 온 여자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더욱 잔인하게 대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냉혹하게 채찍질을 해달라고 부탁하던 ‘제베린’의 모습이 남자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이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될까?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낯선 곳에서 소외와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남자는 자신과 인종이 같은 백인 여자를 만나 동질감을 느끼며 설레던 것도 잠시, 알 수 없는 불안과 타오르는 욕망을 느끼며 넋이 나간 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에 휩싸인다. 외로움이 불러일으킨 광증일까? 아니면 본디 이 남자의 성향, 도도하고 쌀쌀맞은 여자한테 사족을 못 쓰는 그 기질이 이 무자비한 여자 앞에서 폭발하고 만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을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라. 이 작품의 끝에 가면 남자가 ‘나’의 ‘도와주겠다’는 말에 그토록 냉소적으로 분노하게 된 까닭도 밝혀진다. ‘도와주고자 하는 굉장한 의무’에 관한 의사로서의 의무와 한계 등등 그 남자의 고뇌가 한껏 내밀하게 그려진다. 남자는 여자를 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자의 자존심과 도도함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어 읽은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도 ‘광인’ 못지않게 재미나다. 이야기는 한 여관에 모인 일곱 명의 숙박객들이 옆 호텔에서 벌어진 호텔 주인의 아내와 호텔 손님으로 묶던 한 청년의 야반도주를 놓고 벌이는 입씨름에서 시작된다. 서른세 살가량의 몸가짐 단정한 부인이 단 두 시간 동안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 시간 동안 정원에서 커피를 함께 마셨을 뿐인데 하룻밤 새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는 생판 처음 본 청년을 무작정 따라나섰다. 당신이라면 이 여자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호사가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엉터리없는 소리요. 허무맹랑한 환상”이라고 깎아내리면서 대부분은 여자를 비난한다. 유독 화자인 ‘나’만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타고난 연애꾼도 전혀 아니고 열정적 연인은 더욱 아닌, 평범하고 연약한 연인이 용감하게 자기 의지를 따랐다는 데 사뭇 존경심이 든다고. 그러면서도 연민을 감추지 못한다. “오늘은 괜찮을지라도 내일은 분명 깊은 불행에 빠질 테니까요.”

화자의 말을 듣던 한 노부인이 용기를 얻었는지 한때 충동적으로 휘말려든 자신의 옛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마흔에 남편과 사별한 후 인생에서 열정을 잃고 방황하던 그녀는 우연찮게 한 청년이 룰렛 도박에 집중하며 사력을 다하는 걸 보고 그 열정에 반해 딱 하룻밤 동안 그와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휘말린다. 열정으로, 광기로 빛나는 얼굴. 불안과 호기심에 이 청년을 따라간 사십 대의 여자… 예순일곱 해의 세월 가운데 단 스물네 시간 동안 일어났지만 평생을 지배하는 그 추억....... 이 노부인의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츠바이크가 그 심리를 숨 가쁘도록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긴 여자는 말한다. “제가 그 열 시간 동안 인생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이전에 마흔 해를 예의바르게 살아오면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예요.”


당신이라면 오직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리고 낯모르는 사람과 온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츠바이크는 도덕이나 관습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인간의 열정과 광기, 무의식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츠바이크의 작품이 이토록 흡인력 있는 까닭은 그가 그리는 욕망의 지도에 다들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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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08-27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번 반하는 잠자냥 님의 리뷰!

잠자냥 2025-08-27 15:36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25-08-27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정의 혼란 녹색광선으로 읽어서 건너뛰려고 했는데 이 리뷰 읽다가 이 문장에 완전히 꽂혔습니다.

‘헌데 의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여자의 도도함에 반해버려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욕정이 번득이듯이 솟아오른다‘

어머, 이건 사야해! 그런데.. 어떡하죠? ㅋㅋㅋ 전자책으로 살까요? 아님 싱가폴 배송..을 할까요? 돌아버리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궁금하다. 도도함에 반해버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욕정이 솟아오르는 그것... 너무 궁금합니다!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언젠가 한번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욕정이 솟아오르게 되고 그러잖습니까?

잠자냥 2025-08-27 16:15   좋아요 1 | URL
다락방은 꼭 읽어야 합니다... 왜냐면, ㅋㅋㅋㅋㅋ 40대 여자가 20대 남자한테 홀딱 반해서 하룻밤 보내는 저 스토리 읽으면서 내가 다락방하고 앤드류 생각했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자책으로 사~!!

잠자냥 2025-08-27 16:17   좋아요 0 | URL
그리고 그 장면을 츠바이크가 얼마나 찰지게 묘사하는지...... *먼산*

잠자냥 2025-08-27 16:20   좋아요 1 | URL
참 그리고 이 책 번역자가 ˝황종민˝인데요, 이분이... 창비 세계문학에서 나온 <미하엘 콜하스>역자거든요? 이 책 제가 생각하기에 번역 진짜 찰지게 잘한 책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감정의 혼란>도 더 잘 번역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또 읽어보려고요.

다락방 2025-08-27 19:00   좋아요 0 | URL
내가 막 젊은 남자한테 반해서 정신 못차리고 욕정에 휘둘리는 그런 여자로 보입니까? 네?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8-27 20:21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 2025-08-27 21:08   좋아요 0 | URL
딩동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8-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이라면 오직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리고 낯모르는 사람과 온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아니요, 전 못해욬ㅋㅋ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읽는 건 매우 좋아합니다 다음달에 이 책 사야지😆

잠자냥 2025-08-27 17:06   좋아요 1 | URL
에이 츄르 주면 따라갈 거 같은데…🤣

망고 2025-08-27 17:14   좋아요 0 | URL
🚨츄르는 반칙

책읽는나무 2025-08-2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의 장바구니에 담아야 할 것인가?
9월의 장바구니에 담아야 할 것인가?
🙀🤔 또 고민..내 감정도 혼란.ㅋㅋ

잠자냥 2025-08-28 15:33   좋아요 0 | URL
자매품 11월의 장바구니도 있습니다. 🤣

케이 2025-08-28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욕망에 충실해 떠나고 마는 이야기나 결국 떠나지 못하는 이야기나 결국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재밌고 재미없어지는 것같아요. 물론 떠나는 이야기 쪽이 훨씬 더 재밌겠지요?
저는 절대 절대 못 떠납니다. 20대 초반이어도 못 떠났을 거예요. 소심해서.
저는 지금 읽는 책을 대체 몇개월 째 읽는 것인지... 8월까지는 읽을 줄 알았는데 웬걸 마지막 소설이 너무 재미없어서 ㅋㅋㅋ (단편 소설집임)
완전히 다른 결이지만 끝내 못 떠나는 이야기인 미국 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가 갑자기 생각나요.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ㅎㅎ 그 영화 보고 미국 애들도 이런 감성이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제는 애기들이랑 등원하면서 여름이 싫다고 노래를 불러답니다. 저희 둘째는 빨리 눈와서 에디 눈집게 하고 싶다고 난리이고요. 애낳고 살찌고 지구온난화까지 겹쳐 점점 더 여름이 싫어지는 요즘입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잠자냥 2025-08-28 15:37   좋아요 1 | URL
케이 님은 소심보다는 성실쪽이라 못 떠났을 것 같습니다. ㅎㅎ
아니 무슨 단편소설집일까요? 궁금하네요. 여름이라 더 잘 안 읽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저도 오래전에 인상 깊게 본 영화였어요. ㅎㅎㅎ 거기 애들 너드 차림새 떠오르네요.

그래도 여름이 좀 물러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좀 선선(?)해 진 것도 같습니다. 애기들하고 조금만 더 버티세요! ㅎㅎㅎ

케이 2025-08-28 15:42   좋아요 1 | URL
http://aladin.kr/p/AR0nM
나카지마 아츠시 소설 전집
이 책인데 마지막 소설의 주인공이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 입니다. ㅋㅋㅋㅋ 당황스럽지만 하여튼 다 읽어보려고 합니다.

잠자냥 2025-08-28 15:56   좋아요 1 | URL
앗! ˝나카지마 아쓰시˝ 소설전집이군요? ˝나카지마 아츠시˝라고 표기하니까 달랑 저 책만 나오네요?
전 예전에<산월기>(문예출판사, 2016) 좋게 읽었어요. 그리고 그 말씀하신 작품 ㅋㅋㅋㅋㅋㅋㅋ <빛과 바람과 꿈>(미행, 2020)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나왔던 거 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보니 별다섯개나 줬네요?! ㅋㅋㅋ
http://aladin.kr/p/ly64a

끝까지 읽어보세요.

젤소민아 2025-08-29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게 만드는 힘있는 리뷰, 감사합니다. 읽으렵니다~~

잠자냥 2025-08-29 09:11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 님의 독서 내공이라면 더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