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
퍼트리샤 그레이홀 지음, 송섬별 옮김 / 물결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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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좋아하거나(이때 좋아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그 또는 그녀의 ‘글’을 뜻한다) 관심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라면 회고록이나 그에 관한 전기라든가 일기 같은 글들을 읽지 않는다. 작가의 사생활을 굳이 알아내서 작품 감상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럼에도 회고록, 전기, 일기 같은 것을 읽은 작가들이 종종 있다, 손택, 치버, 카버, 소세키 등등이 떠오른다. 요즘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일기와 노트 1941-1995>를 사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는 중이다(다음 달에 사자...). 아무튼 그러니까 이 정도 유명세를 지녔거나, 이 정도로 내가 그들의 작품을,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전기, 일기, 회고록 등은 웬만해서는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읽은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는 위와 같은 기준에서 모두 벗어난다. 저자 ‘퍼트리샤 그레이홀’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내게 무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에 관한 소개 글을 읽어보자. ‘의사, 에세이 작가, 소설가. 2022년 출간한 에세이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로 다수의 독립출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23년 배우자와 공동 집필한 <황금빛 노년과 은빛 희망(Golden Years and Silver Lining)>을 선보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25년 <우리가 머물 곳(A Place for Us)>, 2026년 <프레임드(Framed)>를 연달아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사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라고도 덧붙여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 또한 그저 의사가 쓴 병원/환자에 관한 에세이라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뻔해 보이므로. 그런데 이 책에는 다른 키워드가 덧붙여져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던 시대의 미국에서 살아온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청년기 회고록이다. 만일 이 회고록이 그의 노년기까지 이어진다면(저자는 현재 일흔을 넘겼다),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딱 저자의 청년 시절 방황이 일단락되고 또 다른 생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마무리 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에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았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사형선고였다.”(p.19)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사는 이들도 많아졌고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 또한 많아진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동성애자들은 혐오 또는 차별이 일상적인 세계의 벽장 속에 숨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동성애가 금기시 되어 발각되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나라 또한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단지 그 성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청교도 국가, 1960~70년대의 미국 또한 그다지 진보한 사회는 아니었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정신질환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또한 마땅했다. 그런 시대, 그런 세계에 퍼트리샤 그레이홀, 이 책의 저자는 태어난다.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녀의 성정체성을 알고 지지해주느냐(마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그 가정처럼)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몇 년째 깊은 우울증에 빠져 가족을 방치한 채 자기 삶을 지탱해나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어머니 혼자 퍼트리샤와 그의 여동생 두 자매를 돌보다시피 한다. 어머니는 퍼트리샤한테 여자아이다운 꾸밈을 강요하며 여성스러운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혹시라도 조금만 이상해 보이면, 정상적인 소녀다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취향을 드러내면 어머니는 극렬하게 혐오를 드러내며 딸을 야단친다. 이런 호모포비아 가정에서 퍼트리샤는 더 고립감을 느낀다. “내가 애리조나에서는 하나뿐인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그 고립감을 벗어나고자 자신과 같은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곳,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리라 마음먹는다.

초반에 그려지는 퍼트리샤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동성애자로서의 자각, 그럼에도 호모포비아적인 엄마(와 가족), 주변 환경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고 사느라,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애쓰는 삶이 참으로 애처롭게 그려진다.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하고 만 장면이 있다. 그녀가 나이 든 남자에게 섹스를 허락하고 마는 장면이다. 사실 퍼트리샤는 자신에게 다가온 잘생긴 또래 남자와 연애를 해보기도 하지만(결국 그의 여동생에게 반하고 마는 퍼트리샤!) 집요하게 섹스를 원하는 남자 친구를 거부하다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중늙은이랑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 이 남자와의 관계 때문에 임신하고 마는 퍼트리샤.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으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이다. 그런 때 퍼트리샤는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십대 소녀, 미성년자임에도 성인과의 그루밍 관계에서 성착취를 당하고, 결국 임신, 임신중지를 겪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처참한 심정으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연애 상대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이렇다 할 직업도 돈도 거주지도 마련하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겁다. 일상에 이렇게 허덕이는데 연애라고, 사랑이라고 잘 될 리가 있을까. 그럴 때 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인간의 생에는 한두 번 쯤은, 운이 좋으면 몇 번쯤은 꼭 도움이 되는 만남이 있다. 이 무렵의 퍼트리샤에게도 그랬다. 그렇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대학을 가라고 말하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퍼트리샤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가고,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한다. 의대에 진학했으니 성공적인 삶이 펼쳐질까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퍼트리샤가 의대에 진학한 당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의대생 100명 중 여학생은 다섯 명이 전부이다. 보스턴에서 인턴 과정을 수련할 때는 그가 유일한 여성이다. 1970년대 의료계는 남성 중심적 위계로 움직였으며, 기득권 진입의 기회 역시 남성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공고하게 유지된 남성들만의 카르텔에서 여성인 그가, 심지어 동성애자인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일과 사랑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일구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의학 수련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던져져 만성적인 피로와 감정 고갈을 겪으면서 소진된 나날을 보내던 퍼트리샤는 남성 동료들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서 얻는 것과 같은 돌봄과 지지를 바란다. 그런 안정적인 연애를 갈망하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이 책에는 ‘케이트 밀렛’이 찬조 출연하기도 한다. ㅋㅋ) 성해방이 꽃을 피운 시기라 연애에서의 독점적이고 안정적인 관계에 관한 갈망이나 “아내 운운” 발언은 당시의 기조와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퍼트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이나 발언이 문제인 줄은 알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인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퍼트리샤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공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레즈비언은, 게이는, 동성애자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불행한 삶을 살다 혼자 쓸쓸히 죽어갈 것이라는 사회의 저주, 경고, 편견을 모두 깨버리고 싶다. 

그런데 참 재미나다. 인간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라 드디어 그런 관계를 가꿔나갈 수 있는 여자(캐스)를 만났는데 도리어 퍼트리샤는 한눈을 팔기 시작한다. “한때 나는 배려심 있고 잘 챙겨주는 여자를 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커리어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여자, 내 눈에 섹시하고 호감 가는 여자를 원했다. 그 모든 특성을 다 가진 한 여자만 만나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p.266), 캐스를, 또 다른 연인을 속이며 또 때로는 대놓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거나 일시적인 연애 관계에 놓이면서 퍼트리샤는 자신을 폴리아모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기조차 한 존재이다. 그렇게 침대와 침대를 오가던 퍼트리샤에게 제대로 임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다니’- 지금껏 퍼트리샤를 매혹했던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여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녀. 

헌데 ‘다니’는 퍼트리샤와 사귀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동성애자는 니가 처음이야!” 레즈비언이면서도 그간 헤테로 여자만 사귀었다는 다니가 너무나도 신기한 퍼트리샤....는 다니의 그 말이 지닌 의미를 곧 깨닫는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가릴 것 없이 끌어들이는 이 마성의 여자는 정말이지 문젯거리, 위험한 존재는 사실을…. 어느덧 퍼트리샤는 독점적인 관계를 원하던 ‘캐스’의 입장이 되어 ‘다니’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지만 다니는 그럴 생각이 딱히 없어 보인다. 전 여친도 만나고 새 여자도 만나고 커플 상담사도 꼬시고 그러면서도 퍼트리샤 너 없이는 못산다 하고…대환장 파티다. 퍼트리샤는 다니에게서 지나간 시절, 폴리아모리를 외쳤던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퍼트리샤와 다니, 이 커플은 퍼트리샤의 바람처럼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커플을 이룰 수 있을까? 퍼트리샤는 자신이 원하던 바로 그 ‘아내’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인 애정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응?)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자신은 사랑하는 그 대상에게 그런 존재인가? 그렇게 온 마음과 에너지, 시간 등등 정성을 다해 그 상대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퍼트리샤도 그랬을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 따뜻한 돌봄과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하기를 꺼리던 사람, 이기적이고 철없는 사랑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녀. 그리고 때로 그 말은 폴리아모리라는 말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스스로도 “20대 시절의 나는 믿을 만한 사람도, 존중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나 자신에게 주어야 마땅할 사랑과 수용, 돌봄을 연인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p.430)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백이 단지 고백으로만 끝났다면 허무했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 끝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퍼트리샤의 이 다짐은 성공할까? 인간은 사랑에 실패했을 때 관계에 실패했을 때, 상대, 타인으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은 과연 그 또는 그녀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은 물론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한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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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3-09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o 치버 카버 소세키 🎵 ㅋㅋㅋㅋ래퍼인줄ㅋㅋㅋㅋ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저도 읽고 한방 맞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는 안 그러면서 상대방이 그러기를 원했던 이기적인 마음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하지만 행동하긴 어려워요 어려워ㅠㅠ

잠자냥 2026-03-10 09:17   좋아요 1 | URL
yo 치버 카버 소세키 🎵
망고가 말했지~
˝나는 내가 함께하고 수영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

케이 2026-03-1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커플도 둘 중 하나는 전통적 의미의 아내 역할을 해주길 원하는군요? 결국 뒷바라지를 해주고 받는 건 성별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것인가봐요. 서로 도와주면 안되는 것일까요. 너무 이상적인 얘기긴 하지만. 전 동성 연애는 이성 연애보다는 서로 동등한 관계 유지가 되지 않을까 했거든요. 사랑이라 말하지만 그 사랑 역시 갑을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흑흑.
저도 잠자냥님 글로 처음 듣는 작가네요. 전 누구의 전기를 한번도 못 읽은 것 같아요. 대학 시절 무려 레닌의 전기를 읽으려다 중도 포기 했던 일이 있습니다. 전 누군가의 일생 같은 거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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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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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소외되기’를 덧붙이고 싶다. 자본주의를 살며 무언가를 가져서 또는 갖지 못해서 불안한 사람들. 결국 그 물건에 지배당하고 물건을 사려고 애쓰다 노동에서 소외되고 마는 삶이 성찰적으로 그려진다. 계급, 일(노동), 예술 등 다양하게 생각해 볼 화두를 던진다. 다만 글이 일기인지 메모인지 에세이인지 파편적이고 투박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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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3-09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벌써 읽으셨네요. 저는 면역에 관하여 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 읽어보려고 합니다!

다락방 2026-03-09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추천글에 제가 넘나 싫어하는 작가의 이름이.. 🙄

잠자냥 2026-03-09 12:2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그것은 무시하시고... ㅋㅋㅋ

바람돌이 2026-03-09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일기인지 메모인지 에세이인지에서 저는 오히려 끌리는 느낌? ㅎㅎ

잠자냥 2026-03-09 16:22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고고! ㅋㅋㅋ 그래서 이 책의 장점은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좋다는...
 
제2의 성 을유사상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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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기원이자 종결. 읽고 나니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이 책 한 권만 열심히 읽어도 되는 게 아닌가 싶어지기도. 매 구절마다 찬탄하며 읽었다(문학적 텍스트로 읽어도 대단). 아무튼 세상엔 두 부류의 여자가 있다. ‘제2의 성’을 읽은 여자와 안 읽은 여자. 나도 이제 드디어 전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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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3-06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좋죠? 이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잠자냥 2026-03-06 00:05   좋아요 1 | URL
와 진짜 레전드입니다…😻😻

잠자냥 2026-03-06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쳤어 정말…진짜 천재야…😭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지?! 😭🥹 여자 까는 부분조차 후련해….(엥?🤣)

잠자냥 2026-03-06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몬 너는 아느냐
뿌듯해서 잠이 안 오는 소리를…. 🤣

독서괭 2026-03-06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잠자냥님 읽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ㅋㅋ 진짜 명문이죠!!

잠자냥 2026-03-06 09:22   좋아요 2 | URL
이 영광을 잠자냥에게 돌립니다. (엥?) ㅋㅋㅋㅋㅋ
솔직히 1부 역사 부분에서 너무 재미없어서;; 안 읽고 냅뒀다가... 작년 말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2권부터 정말 짜릿짜릿! 으아.......

페넬로페 2026-03-0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멈추었는데 완독은 언제할지~~
그래도 꼭 읽어야겠어요.

잠자냥 2026-03-06 23:27   좋아요 1 | URL
읽고 나면 뿌듯함이 대단하실 거예요!

책읽는나무 2026-03-06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안이 아니셨군요?ㅋㅋㅋ
암튼 완독 축하드리옵니다.^^

잠자냥 2026-03-06 23:28   좋아요 2 | URL
저에겐 안경이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6-03-07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자에 속합니다 ㅋ

잠자냥 2026-03-09 10:19   좋아요 1 | URL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ㅋ

다락방 2026-03-0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
저도 이 책의 모든 부분에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핫.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차마 펼칠 용기는 안생기네요. 그 페이지수와 그 글자들... 하하하하하.
하여간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만세!!

잠자냥 2026-03-09 10:18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왜케 글을 잘 쓰죠?! 결국 그건 생각에서 나온 거겠지만...
여하튼 읽는 내내 문장마다 소름 돋았짢아요.

다락방 2026-03-08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저는 제2의 성 읽은 여자! 엣헴-

잠자냥 2026-03-09 10:17   좋아요 0 | URL
알고 있따.......

잠자냥 2026-03-09 10:33   좋아요 0 | URL
지금은 <성 정치학> 읽고 있어요. 이 여자도 미쳤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헨리 밀러 까는 거 너무 웃겨서 쓰러질 거 같음ㅋㅋㅋㅋㅋ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
퍼트리샤 그레이홀 지음, 송섬별 옮김 / 물결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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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취약했다.” 동성애자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 또는 저주를 깨뜨리고자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삶이 눈부시게 그려진다. 마지막 그 한 문장까지 완벽하게 감동적인, 진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사랑에선 그토록 헤매는 게 더 인간적인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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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읽고 얻은 뜻밖의 수확은 톨스토이다. 이 책에는 손더스가 말하고 내가 격하게 동의하는 바, ‘70년에 걸친 러시아의 믿을 수 없는 예술 르네상스(고골, 투르게네프, 체호프,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오스트롭스키, 튜체프,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다수가 활동하던 시대) 시기’에 쓰인 러시아의 단편 7편 전문이 실려 있다. 거의 읽어본 작품들인데 한 가지, 오잉?! 내가 이걸 안 읽었다고? 읽었는데 잊었나? 이럴 수가!! 했던 작품이 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톨스토이의 <단지 알료샤>라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기 전, 제목만 읽었을 때는 ‘단지’를 ‘오직’, ‘오로지’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단지(但只). ‘Only, Alyosha’와 같은 의미로. 그런데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곧 여기서 말하는 단지란 ‘항아리(Pot)’를 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짧은 단편인데도 전문을 읽다가 울컥했다. 이 작품을 내가 왜 여태 몰랐지? 안 읽었을까 싶은 충격. 이래서 내가 톨스토이를 아예 내려놓지를 못하지 싶었다. 다른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최근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2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항아리 알료샤>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알료샤 고르쇼크 Алёша Горшо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르쇼크горшок’가 러시아어로 단지, 항아리를 뜻한다. 열린책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도 <알료샤 항아리>라는 단편으로 실려 있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내가 왜 이 이야기에 단번에 빠져들었는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글을 쓰기 전 한 번 더 읽어볼 요량으로 민음사판 <항아리 알료샤>를 펼쳤다(<밀리의 서재>에 있기에). 톨스토이의 단편이 대게 그렇듯이 이야기 자체는 참으로 단순하다. 단지 알료샤, 그러니까 항아리 알료샤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바보나 마찬가지로 톨스토이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순박한 바보의 전형이다. 그가 항아리 알료샤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꽤 단순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우유 항아리를 마을의 부제(副祭)에게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알료샤가 넘어지면서 항아리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를 때렸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그를 ‘항아리’라며 놀리기 시작한다. 항아리 알료시카- 

작고 마른 아이로 코가 큰 알료샤는 이때부터 항아리 알료샤라 불리며 마을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된다. 글을 몰랐고 글을 배울 시간도 없는 알료샤. 그럼에도 그의 미덕이라면 묵묵히 일을 잘한다는 것.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여섯 살에 이미 누이와 함께 방목장에서 양과 소를 지켰고, 좀 더 자란 후에는 방목장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말들을 관리한다. 열두 살부터는 밭을 갈고 마차를 몰았다. 힘은 없지만 수완이 좋은 알료샤. 알료샤가 열아홉 살 되던 해에는 그의 형이 병사로 징집되는 바람에 형이 일하던 상인의 집에서 형을 대신해 허드렛일 하는 하인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이 상인의 집에서도 약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알료샤를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료샤의 아버지는 이 녀석은 찍소리도 하지 않고 일을 잘한다고 장담했고, 상인은 떨떠름하지만 그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처음에 상인의 가족은 알료샤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한 티가 나고, 옷도 못 입고, 태도도 정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너’라고 부르는 이 바보 같은 소년, 아니 청년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곧 다들 그에게 익숙해진다. 그는 형보다 훨씬 더 쓸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찍소리 하지 않으면서 소처럼 묵묵히 일한다. 그래서 집에서처럼 상인의 집에서도 모든 일거리가 알료샤에게 주어진다. 그가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일이 그에게 떨어진다. 주인의 아내도, 주인의 어머니도, 주인의 딸도, 주인의 아들도, 점원도, 여자 요리사도 모두가 그를 여기저기로 보내 이런저런 일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알료샤는 찍소리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해낸다.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바보처럼,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은 무엇이나 순종적으로 하는 항아리 알료샤의 생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까? 그저 이렇게 묵묵히 살다가 묵묵히 죽어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인가? 싶은데 그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한다. 이 순간을 톨스토이는 이렇게 덤덤히 쓴다.


“알료샤는 상인의 집에서 일 년 육 개월을 그렇게 산다. 그리고 두 번째 해 하반기에 접어든 그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렇게 알료샤는 1년 반을 살았는데 갑자기 두 번째 해 하반기에 그의 평생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 일어났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사랑이구나....’ 했다. 그의 평생 일어난 적이 없던 일,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 수 있을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열아홉에 상인의 집에 들어와 하인처럼 일하는 청년에게 갑자기 일화천금이 주어질 리도 없고, 그가 갑자기 똑똑해지는 일은 더 불가능할 것이다. 일 년 반이 지났으면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이리라. 그런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사건이란 사랑,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일이 아니고서야 또 무엇이 가능하랴.

이윽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 

그 사건이란 그가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필요 때문에 생기는 관계 외에도 대단히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즉 부츠를 손질하거나 장에서 산 물건을 나르거나 말을 마차에 매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가 아니라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놀라움 속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식모를 통해서 우스치니야를 알게 됐다. 우스츄샤는 고아였고 젊었고 알료샤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했다. 그녀는 알료샤를 동정하게 됐고, 알료샤는 다른 사람이 그를, 그 자신을, 그의 도움이 아닌 그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서로의 필요 때문에 생기는 관계 외에도 대단히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놀라움 속에서 알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그에게 스며든다. 사랑이 스며든다는 표현은 이 우직한 항아리 알료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그가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도 웃음을 터뜨린다.”라고 쓸 뿐이다. 이 감정이 어찌나 새롭고 이상야릇했던지 알료샤는 처음에는 두려울 정도이다. “그래도 그는 기뻤고, 우스치니야가 꿰매 준 바지를 보았을 때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짓는다. 일할 때나 걸어갈 때 종종 우스치니야를 떠올린다. 우스치니야는 그에게 자기 운명을, 자신의 사연을, 온갖 사연을 들려준다. 그녀는 말하기를 좋아했고, 그는 그녀의 말을 듣는 게 즐겁다. 함께 웃고 자기의 숨겨진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듣기를 즐기는 두 사람. 사랑이다. 소박하지만 단순하고 그래서 깨끗한 사랑.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가? 그렇다면 이 소설은 별다른 매력 없이 잊혔을 것이다. 내게 이토록 인상 깊게 다가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료샤와 우스치니야 둘 사이에는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하지만 그건 둘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알료샤의 아버지도, 상인도 이 항아리 단지가, 묵묵하게 일 잘하는 항아리 단지 알료샤가 하녀인 우스치니야와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알료샤의 아버지는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 생각도 안 했다니. 결혼하고 싶어 했잖느냐. 때가 되면 내가 결혼시켜 줄 거다. 도시의 행실 나쁜 여자 말고 참한 여자를 골라 결혼을 시킬 거란 말이다.
 아버지는 많은 말을 했다. 알료샤는 서서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말을 마치자 알료샤는 빙그레 웃었다.
 “좋아, 그만둬도 괜찮아.”
 “아무렴, 그렇고말고.”
  아버지가 떠나고 우스치니야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아버지와 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문 뒤에 서서 듣고 있었다.)
 “우리 일은 글렀어. 뜻대로 안 될 것 같아. 들었지? 아버지가 화가 나서 못 하게 해.”
 그녀는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말없이 흐느꼈다.
 알료샤는 혀를 찼다.
 “어떻게 거역하겠어.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이런 바보! 멍청이! 답답이! 아버지의 단 한마디에 포기하고 마는 알료샤, 심지어 그렇게 쉽게 단념하는 알료샤의 모습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종적으로 따르는 이야기를 문 뒤에서 우스치니야는 다 듣고 있다... 이렇게 가슴 아플 수가!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화가 나서 결혼을 못하게 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알료샤는 혀를 찰뿐이다. “어떻게 거역하겠어.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정말 바보 같은 놈이로군, 쯧, 나조차도 혀를 차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러나......


 저녁에 상인의 아내가 그를 불러 창의 덧문을 닫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때, 아버지의 말을 따를 거지? 바보 같은 생각은 버린 거냐?”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알료샤가 말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중 <단지 알료샤>



<착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이 부분을 읽던 순간, 나는 저 문장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한 문장에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을 수가 있을까. 알료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알료샤, 항아리 알료샤. 누가 하라는 대로 묵묵히 살아가는 알료샤, 그래서 결혼조차 아버지가 하지 말라면 쉽게 포기하고 그러곤 웃지만....... 결국 울지 않을 수 없는 알료샤. 저 눈물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러나 알료샤 자신도 그 눈물의 모든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알료샤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다시 묵묵히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일해주면서 살아갈까? 그 후 알료샤의 인생은 짧게 끝난다. 그는 어느 날 지붕 위에 눈을 치우다가 떨어져 다치고 며칠 앓다가 죽는다. 죽기 전 우스치니야와 나누는 말도 항아리 알료사, 그답다. 그래서 매우 함축적이다.


“어떡해, 정말로 죽는 거야?” 우스치니야가 물었다.
“그러면 어때? 우리가 언제까지나 계속 살겠어? 언젠가는 죽어야 해.” 알료샤는 늘 그랬듯이 빠르게 말했다. “날 가엾게 여겨 줘서 고마워, 우스츄샤. 아버지가 결혼을 막은 게 더 잘된 일이야. 결혼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을 거야. 이제 다 괜찮아.”

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달라고 청했을 뿐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했다
그는 무언가에 놀라더니 몸을 쭉 뻗고 죽었다.


오직 한 번 사랑했으나 함께 살 수 없었던 여인, 결혼할 수 없었던 여인, 그 여인에게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어야 한다며, 자신을 가엾게 여겨 줘서 고맙다고, 결혼해봤자 아무 소용없었을 것이라면서 이제 다 괜찮다고 체념과 단념 속에 죽어가는 알료샤. 그는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한다. 무엇에 놀랐을까? 조지 손더스는 이 작품을 다 말하지 않는 것, 생략의 묘미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작품이라 칭송한다. 그러면서 “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달라고 청했을 뿐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했다. 그는 무언가에 놀라더니 몸을 쭉 뻗고 죽었다.”라는 문장 뒤에 이런저런 가능한 이야기들을 이어서 써본다. 그러나 그 무엇도 저 두 문장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저 위의 문장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이다. 이 문장 후에 알료샤의 심정을, 왜 우는지 구구절절 설명한다면 이 작품의 심오하고도 미묘한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알료샤가 사랑을 포기한 후 웃다 눈물짓는 모습도, 체념 속에 다 죽어가면서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놀랐다가 숨을 거두는 모습도 문장으로 그 까닭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정을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저마다 자기의 사정과 생의 경험에 비추어 헤아리고 반추해보지 않을까? 톨스토이도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으리라. 인생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생에 순종하고 살았다고 해서 그가 어리석기만 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포기했다고 해서 그의 마음속을 비추던 한줄기 빛마저 완전히 잊고 살아갔을까? 그렇게 비천한 자기의 생에도 가끔 빛이 있던 때가 있노라고 그래서 놀라움 속에 죽어간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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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6-03-0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드니 열정에 내 모든 것을 맡기는 이야기보다 이런 이야기...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용기를 내고 행동하고 내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체호프의 <애수> 라는 작품도 내 슬픔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결국 말한테 슬픈 마음을 털어놓잖아요. 러시아 소설은 아무 것도 못하는 이야기가 많네요. 작년에 읽은 <연기>도 그렇고.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결국 아무 것도 못했다를 문학으로 쓰는 게 훨씬 어려울 것 같아요.
전 오늘 아침부터 들어간 회의에서 못난 모습 보여서 좀 우울하게 시작했어요.
잠자냥님은 봄기운 느끼며 무탈한 하루 보내시길.

잠자냥 2026-03-05 12:53   좋아요 0 | URL
케이 님 말씀처럼 러시아 문학 작품에서는 이렇게 결국 세계에 굴복(?)하는, 운명에 순응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애수>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그런데 역시 케이 님 말씀처럼 용기를 내서 행동하고 결국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겠습니까. 해도 안 되는 일도 있고,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죠. 그래도 살아가는 게 인간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걸 다 꿰뚫어 보고 깊이 있게 써 내려가는 러시아문학을 좋아할 수밖에 없고요.

점심때 맛있는 거 드시고 우울함을 날려버리셨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6-03-08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너무 좋습니다. 제가 읽었더라도 정말 좋았을 작품인 것 같습니다. 잠자냥 님의 인상깊은 구절 얘기에는 조용필의 노래 가사도 떠올랐어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ㅠㅠ

잠자냥 2026-03-09 12:26   좋아요 0 | URL
악 조용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3-09 13:17   좋아요 0 | URL
내 나이 어쩔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