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짜리 위조지폐 석 장이 손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지폐라 그걸 사용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리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조지폐이므로 사용하지 않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아닌가? 내가 너무 순진한가? 그렇다면 나의 경우로만 한정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내 손에 들어온 5만 원 권 석장이 위조지폐인 걸 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모른다. 두 눈 딱 감고 빨리 다 써버려?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신고조차 귀찮아서 폐기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신고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신고하는 선에서 끝낼 것 같다.
톨스토이의 <위조 쿠폰>이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시작은 평범하다. 어느 저녁.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자신의 방에서 귀찮은 서류를 정리 중이다. 그때 아들이 노크하며 들어온다. 아들의 이름은 ‘미티아’로 김나지움 5학년이자 열다섯 살 소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인 소년. 아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이 1일입니다.” 말한다. 용돈을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달 1일, 3루블의 용돈을 주고 있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언짢은 얼굴로 지폐용 지갑에서 2루블 50코페이카짜리 쿠폰을 찾아서 꺼내고, 동전용 지갑에서 은화 50코페이카를 세어서 건네준다. 그런데 소년은 말이 없다. 건넨 돈도 받지 않는다. 다음 달 용돈까지 미리 달라는 말만 할 뿐이다.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묻는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오늘까지 갚아야 한다는 아들. 갚지 않으면 자기의 명예가 떨어진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한심한 작태에 화를 내며 채찍으로 때리기 전에 당장 방에서 나가라면서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
3루블을 받고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채 방에서 쫓겨난 미티아는 분노가 치솟는다. 그깟 3루블 좀 미리 주면 안 되나? 다른 친구들은 용돈을 더 많이 받는데! 그런 와중에 돈을 빌린 친구로부터 편지가 온다. 내게 빌려간 6루블을 갚으라고 벌써 세 번이나 부탁했건만 너는 여태 어물쩍어물쩍 넘어가기만 한다. 네가 그 돈을 갚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친구가 너를 경멸하느냐 존대하느냐가 정해질 것이다. 정직한 이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지..... 미티아는 다급한 마음에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엄마도 오늘은 돈이 없다면서 내일이면 생길 테니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티아는 오늘 당장 돈이 필요한데 내일이면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내고 집을 나선다. 전당포에 시계를 맡길까? 아버지로부터 받은 3루블과 시계를 갖고 친구 마힌을 찾아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힌은 미티아와 마찬가지로 중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인데도 콧수염을 길렀고 이미 카드 도박을 했고, 여자들도 경험해보았으며, 언제나 돈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약간 불량한 학생이다. 미티아가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으니 마힌은 그게 무슨 고민거리나 되느냐며 쿠폰을 위조할 것을 종용한다.
“더 나은 방법이 뭔데?”
마힌이 쿠폰을 손에 들고 말했다.
“아주 간단해. 2루블 50코페이카 앞에 1을 덧붙이는 거야. 그럼 12루블 50코페이카가 되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1000루블 표에다가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처리한 적이 있지.”
“믿기지 않는데?”
마힌은 펜을 쥐고 왼손가락 하나로 쿠폰을 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나쁜 짓이잖아.”
“무슨 어리석은 말이야.”
그렇게 위조 쿠폰을 완성한 마힌은 미티아와 함께 사진 용품을 파는 상점으로 향한다. 때마침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넣을 사진액자가 필요하다나. 상점에 가니 선량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액자 하나를 고르고는 위조 쿠폰을 내밀고 잔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이 여주인은 지독한 근시이다. 액자 가격은 1루블 20코페이카인데 아이들이 12루블이나 되는 큰돈을 주니 여주인은 잔돈은 없느냐며 묻는다. 그러나 마힌과 미티아는 없다면서 빨리 거스름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결국 여주인은 액자를 포장한 후 10루블짜리 지폐 한 장, 20코페이카 동전 여섯 개와 5코페이카 동전 두 개를 꺼내준다. 상점을 나온 마힌은 미티아에게 10루블짜리 지폐를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진다. 미티아는 엉겁결에 생긴 10루블로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날까? 그렇다면 톨스토이가 아닐 것이다. 잠시 아내에게 가게를 맡겼던 상점주인이 돌아와 판매 대금을 파악하기 시작하는데, 상점주인은 쿠폰을 보자마자 위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바보! 멍청한 여편네! 욕을 퍼부으며 험담을 멈추지 못한다. 아내의 마음에는 그동안 남편에게 당해온 일들이 떠올라 분노가 치민다. 저놈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떠오르자 그런 마음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이 손해를 상점주인은 어떻게 처리할까? 간단했다. 손쉬웠다. 땔감을 가지고 온 농부에게 그 위조 쿠폰으로 값을 치른 것이다. 마힌과 미티아가 만든 12루블짜리 위조 쿠폰은 이렇게 상점주인의 아내 손에서 남편 손을 거쳐 땔감을 팔러 온 농부의 손으로 옮겨간다.
땔감을 팔러 다니는 농부 이반은 처음에는 쿠폰을 받기가 꺼려져 주저하면서 돈으로 달라고 부탁하지만 상점주인은 돈이 없다면서 한사코 쿠폰으로 값을 지불한다. 망설이던 이반도 상점주인이 “명망가처럼” 보이기 때문에 쿠폰을 받는 데 동의한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상점의 여주인도 남편에게 항의할 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날 감쪽같이 속여서 난 미처 몰랐어요. 중학생들이었어요. 한 아이는 잘생겼고 정말 품위 있게 보였다니까요.” 그 말을 듣자 남편은 더 욕을 퍼부었다. “난 쿠폰을 받을 때는 거기에 적힌 액수를 보고 확인해. 그런데 당신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주제에 꽃미남처럼 생긴 그놈들의 얼굴만 보고 있었던 거야.”
인간은 그럴듯한 외모에 잘 속는다. 사기꾼은 그래서 번드르르하게 차려입고 위장한다. 좋은 시계, 명품 가방, 브랜드 옷, 구두, 자동차, 번듯한 직업, 신분증…. 지금도 대다수 사기꾼들은 그렇게 자기를 위장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혹해서 투자를 하고 돈을 갖다 바치며 더 큰 재산을 노리다가 패가망신한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저 시대에도 역시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혹해 쉽게 속는다. 아주 잘생긴 소년, 품위 있게 보이는 그 소년은 위조 쿠폰을 만들었고, 명망가처럼 보이는 신사는 위조 쿠폰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어리숙한 농부를 속인다..... 농부 이반은 땔감을 다 팔고 집으로 가던 중, 너무나 추워 몸이나 녹이고자 들어간 선술집에서 이 쿠폰으로 계산을 하는데, 아뿔싸! 선술집 주인은 위조 쿠폰이라며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그때도 이반은 이렇게 항변한다. “그 쿠폰은 진짜예요. 신사분이 준 거예요.” 오, 이런 어쩌면 좋은가. 그 상점 주인은 정말 신사인가?!
좋은 방법이 있다. 대질심문을 하면 된다. 이반은 경찰들과 함께 상점을 찾아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한다. 상점주인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가 정말 신사였다면 이때라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자신도 위조쿠폰인 줄 몰랐다고, 착각했노라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그는 신사가 아니었다. 신사였다면 애초에 위조 쿠폰을 어리숙한 농부에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상점을 찾아온 경찰과 이반에게 딱 잡아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아주 놀란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당신 미쳤나 보군. 이 사람 처음 봐요.” 이반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입니다. 당신의 임종 때를 생각하십시오.” 한 술 더 떠 예브게니는 상점 일꾼 바실리를 앞세운다.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땔감은 늘 상점에서 산다고 증언하도록 미리 손을 써둔 터였다. 그 대가로 그에게 5루블이란 돈까지 주면서..... 바실리는 상점 주인이 일러준 대로 땔감을 농부에게 산 적도 없을뿐더러 농부 이반은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한다.
이 억울한 남자 이반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반은 분노를 참지 못해 없는 돈에 변호사까지 써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애쓴다. 그러나 법은 이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선량한 신사분인 예브게니와 그의 충실한 일꾼이자 하수인 바실리의 증언에 더 무게를 실어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추악한 짓을 해서 괴로웠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진술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법정에서도 위증을 하고, 바실리에게도 위증을 하도록 또 종용한다. 이때도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위증의 대가로 10루블을 건넨다. 그나마 양심이 있었는지 예브게니는 이반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소송취하 비용 5루블을 자신이 내준다. 덕분에(?) 이반은 비방혐의로 3개월간 감옥에 갇힐 처지였다가 풀려난다. 중학생들이 시작한 위조쿠폰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이후 바실리와 이반에게 일어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조 쿠폰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바실리도 가진 자들이 도덕률을 어기며 산다고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그들만의 법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더 엄밀히 말해 그 사건에 관련된 거짓 증언을 하고서도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또다시 10루블을 벌어들이게 되자, 바실리는 자신이 모르는 어떤 도덕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살았고, 그런 삶을 지속해 나갔다.
위조 쿠폰으로 인해 불행을 당하면서부터 이반 미로노프는 오랫동안 술을 마구 퍼마셨는데 전 재산을 술로 탕진할 지경이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술 마시는 데 써버릴지도 모를 옷가지, 말의 멍에 등 모든 것을 감추어버렸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이반 미로노프는 그를 능욕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형제들의 소유를 빼앗아가는, 그곳에 사는 부자들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
단지 바실리와 이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위조 쿠폰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자들의 마음속에는 속았다는 분노와 함께 이 세계는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는, 정의롭게 살아봤자 손해만 본다는 그릇된 생각이 싹트면서 거대한 악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톨스토이는 위조된 쿠폰이 저마다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끝까지 파고든다. 정의가, 윤리가, 도덕이, 양심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분개하면서 마음이 영혼이 무너지면 인간은 얼마나 한없이 망가지는지, 시궁창으로 떨어지는지 끝까지 보여준다.

내가 톨스토이의 <위조 쿠폰>을 읽은 까닭은 지난 금요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돈 L'Argent>(1983)을 보기 위해서였다. <돈>은 <위조 쿠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브레송의 <돈>은 시작부터 톨스토이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 김나지움 중학생들이 파리의 고등학생 소년들로 바뀌었고 장작을 팔던 이반은 중유를 배달하는 이봉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 얼개는 비슷하다. 브레송은 “출발점이 된 작품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p.413) 브레송은 톨스토이의 아름다운 단편들 중 하나인 <위조 쿠폰>은 그에게 단순한 출발점 이상의 것을 주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악, 마지막에 솟아오르는 선이라는 개념”(같은 책, p.416)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액수의 가짜 돈으로 인해 악이 거대한 눈사태처럼 미친 듯이 밀려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은 톨스토이나 브레송이나 마찬가지이다. 단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브레송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먼저 선(善)이 솟아오른다. 소설은 3분의 2가 종교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톨스토이 원작을 감탄하면서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등등 종교적으로 결론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톨스토이구나, 에이... 잘 나가다가, 하고 좀 김이 빠졌는데 브레송의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달라진다. 브레송의 영화에선 속죄나 구원 같은 생각은 작품 끝에 가서야 등장하는데 그 마저도 정말 그것이 속죄이며 구원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비정하게 더없이 비참하게 끝난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톨스토이보다는 브레송의 시선에 더 동의한달까.
“사회가 그를 버린 거죠. 이봉이 그렇게 여러 사람을 죽인 건 절망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돈은 가증스런 가짜 신입니다.” -로베르 브레송, <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p.415
“아,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거예요. 대체 어쩌시려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면, 당신의 영혼은 더욱더 파멸로 치닫게 될 거예요… 아, 아!” -레프 톨스토이, <위조쿠폰>

위조된 지폐를 들여다 보고 있는 상점의 여주인.........

이 지폐는 위조지폐입니다! 이봉(이반)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간다......

마힌과 미티아(브레송의 영화 속에서는 물론 다른 이름) 이 못된 놈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