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에 너의 일상을 더해 - 일하며, 깨달으며 적어 내려간 삶의 지혜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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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을 하나의 '우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아마 김형경인가.. 심리 에세이에서 쓴 표현이었는데 맘에 쏙 들었다. 어떤 사람을 알고 어떤 사람의 우주를 안다는 것. 사는 데 그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을 할 때 제일 재밌는 것이 사람 구경,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 풍경이다. 어떤 이들의 당당하고 여유있는 모습에서 세상에 이다지도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니 나는 지금껏 왜 이렇게 달달 볶고 살았나 억울하다! 라는 기분만 들면 세상은 정말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이들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거나 미움을 이유없이 표출하거나 해서 보고 있는 사람도 슬프게 만든다.


뭐 이런 게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너무나 흔한 일상다반사, 흔한 인생이다.


여행에서 다른 이의 삶을 잠시 훔쳐보는 경험을 강렬해서 더 지워지지 않고 인상에 박히지만 사실, 한 사람의 파편을 겨우 겉핥기로 본 것으로 저 사람은 행복한 사람, 저 사람은 불행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도 편협적인 자세일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제단하고 판단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도, 인생을 낭비하는 짓도 없다. 결국의 그런 일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싼 콘서트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국내에서 논란이 많았던 머라이어 캐리가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 쇼비지니스에 종사하는 미국인 특유의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던 말이 떠오른다. "I don't judge person."


이건 흔히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데려다 놓고 "누가 더 잘 생겼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선택 못 받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는 우문에 대한 현답으로 내 뇌리에 깊히 박혀 있다. (관전 포인트는 외국인들은 왜 웃는지 어리둥절한 상태.)


내가 몇 번의 연애와 실패를 겪으면서 남들에게 절대 "헤어져라"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듯이,(물론 거부할 수 없는 쓰레기는 논외로 친다.)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일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뼈와 살과 물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은 역시 매일, 일상이다. 일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료하고 쳇바퀴 같은 삶이겠지만 쳇바퀴는 모두에게 다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우주를 공유한다는 것은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일상은 따지고 보면, 항상 무료하고 지루하지만은 않다. 가끔, 한 순간의,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있고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도 있고 이불을 뻥뻥차는 순간도 (아주 많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자신의 일상에 대해 깔끔 똑 떨어지게 말하기 힘든 것 처럼 일상은 쭉- 이어져 있지만 단편적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만 생각 나는 경우가 많기에.


책은 일상에 대한 짧은 단상으로 이어져있다. 회사원으로 일하는 사회인인 동시에 에세이를 쓰고 소중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는 저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특별하지는 않지만 돌이켜 보면 특별한 짧은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머리에 한번씩은 스쳤었던 것 같은 깨달음이 기록되어 있다.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약간 손해보며 사는 게, 약간 지면서 사는 게 결국엔 이득이고 이기는 거라는 것. 엄마 말이 맞았다.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에
서슴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나
(p.35)

<늘 자기방어부터 하고 있지 않은지>
그러고 보면 누가 묻지 않아도 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원래 안 이런데, 어제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부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다크서클이 내려앉았어요!" (p.59)

별똥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진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p. 74)

우리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공격적인 말이나 비난보다
주변 사람들의 `위해서 한 말`,`걱정돼서 한 말`에 상처 받는다.(p.185)

<인간관계의 방정식>
무능하고 강퍅해도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
반대로 능력 있고 인품 좋은 사람이어도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게임오버. (p.193)

세상에는 어지르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있다.
어린아이와 엄마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그 역할은 수시로 바뀐다.
어지르는 역할을 맡았을 때,
우리는 치우는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p. 229)

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이여!
지긋지긋한 일상의 도돌이표가 면제된 꿈과 낭만의 섬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제주에도 먼지가 쌓인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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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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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SBS스페셜에서 [슬픈 천륜-감옥밖의 아이들] 편을 보고 있자니 얼마전 읽은 노자와 히사시의 [심홍]이 생각났다. 아니다. [심홍]을 읽었기 때문에 이 편을 골랐다. 사실 범죄자의 얼굴을 꽁꽁 감춰주고 범인을 잡은 형사들의 수염 덥수룩한 얼굴은 잡아주는 이상한 보도형태에 큰 불만은 있지만, 사실상 연좌제 비스무리한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 범인의 가족들도 고통받는 일은 안봐도 뻔한 일이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은 당연히 동정받아야 하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에게는 욕을 하거나 대체로 얽히지 않으려는 게 사실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는 것도 싫고 괜히 기분이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흔히 피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가해자의 유가족도 피해자인 것은 맞다.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는 수없이 많다. 억울하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들의 인터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거지를 자주 옮겨 거처를 모르거나 싸늘하게 인터뷰를 거부하는 일은 많다. 


[슬픈 천륜]다큐멘터리에서는 세계 사형수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가 서두로 나왔다. 아직 가난한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사형수의 아이들은 더 가난의 늪으로 빠지고 거리에서 죽어가거나 나쁜 길로 빠진다. 허름한 집 마당에서 돼지들까지 같이 자라는 이들 가정의 영상을 보니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많은 것에 그저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전직 교도관이었던 분이 이런 아이들에게 빛을 보고 살라고 '태양촌' 이라는 보호시설을 열었고, 아이들의 사례는 하나같이 비극적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여 사형을 당하게 된 경우 자녀들은 한꺼번에 양부모를 잃게 된다. 사형 당하기 전에 너희는 법을 지키고 살라며 유언을 남기며 우는 영상은 남인 나도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치는데 하물며 남은 당사자들은 어떨지.남은 아이들은 그 장면을 곱씹고 곱씹게 될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도 정확한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필터'라는 것이 있어서 "범죄자의 아이들에게까지 낙인을 찍지 말자"는 명확한 메세지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범죄자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보는 것도 화나고 괴로웠다. 당신이 죽였던 사람은 이제 그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데! 


아무리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지만 이런 감정 때문에 가해자의 가족들도 2차 피해를 겪게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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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히사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자다. 말캉말캉한 연애소설을 잘 써서 좋아하는 작가인데 아쉽게도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우울증으로 약한 정신에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평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정설이긴 한데 한 사람이 죽은 이유가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닐 것 같다. 특히 감성이 예민한 작가라면.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서 그의 죽음이 언제나 안타깝게 생각이 된다.


달달한 이야기만 잘 쓰는 줄 알았던 노자와 히사시를 다시 보게 되었다. 훌륭하다. 아직 로맨틱한 이야기를 더 사랑하긴 하지만.


뉴스에서 날마다 살인 뉴스가 나오고 보니 이제 왠만한 사연에는 무감각하다. 가끔 이러다가 살아남는 사람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하지만 가끔 사연이 있는 뉴스는 사건 전 사정이나 뒷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라서 그저 작은 관심이 있는 것이겠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런 세간의 관심이 아주 힘들 것이다. 피해자 측도 가해자 측도.


대체로 가해자 측에는 분노가 일지만 가끔, 가아끔.. 납득이 가는 살인도 있다. 폭력이나 살인이 어떤 경우에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가해자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 피해자에게 분노가 일어나는 사건도 있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원한에 의한 살인. 이런 경우는 가해자에게 동정이 일기까지 한다. 죽은 피해자는 죽인 가해자에게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들고 인생을 완전 무너뜨렸으니까.


원한에 의한 살인이란 것이 밝혀지면 갑자기 여론이 바뀐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악인에게 당한 경험이 다 조금씩은 있어 오히려 피해자를 욕하는 경우도 많다. 약했던 사람이 당하다 당하다 어느 순간 악인이 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이라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완전한 악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 캐릭터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딱히 스펙이 좋지 않고 선량하고 약간 순진한 사람이 뼛속까지 멋있고 약간 나쁜 사람에게 크게 이용을 당하고 분노심에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도 모두 죽이는.. 피해 당사자와 관련있는 사람들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생각보다 흔하고 있을 법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건의 원인은 원한에 의한 살인. 정황은 갑인 거래처 관계의 사람에게 부인의 사망보험금을 투자했다가 알고보니 부실한 기업에 돈을 투자하고 비리를 어쩔 수 없이 돕게 된 선량하고 살짝 아둔한 한 가정의 가장이 사기를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당사자를 죽이러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부부를 포함한 어린 아이들까지 살해하게 된 것. 하지만 여기엔 생존자가 있었는데 마침 수학여행을 가서 참사를 피하게 된 피해자 가정을 딸이었다. 그 딸은 가해자의 딸과 같은 나이. 


사랑하는 부인까지 잃고 충동적으로 일가족을 살해하게 된 불행한 남자는 여러 사람의 피가 뒤섞인 사건 현장에서 자신의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열한다. "내가 너의 인생을 망쳤구나. 너는 살인자의 딸로 살아야 하는구나..." 


나쁜 사람들에게 크고 작게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이런 류의 비극적인 사건에는 세간의 관심과 공감, 분노가 쉽게 일어난다. 비릿한 피와 배신이 섞인 이 사건에 기자들이 꼬이고 세상에 남은 피해자의 딸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가해자에 대한 판결과 남은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만 (다행이도) 가해자의 남은 가족에게는 큰 관심이 쏠리지는 않는다.


살인자이긴 하지만 지독하게 운이 나쁜 이 남자의 탄원서는 너무나 생생해서 가슴이 아프다. 시골에서 태어나 세상에 약삭빠르지 못한 부모들은 악덕 부동산 업자 때문에 집과 땅을 잃었고 그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고생하게 된 한 남자는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가 한 초등학교의 교사에게 마음을 뺐기게 된다. 적극적으로 대시한 그는 결국 그 교사랑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몸이 약한 아내는 그와 결혼을 하면서 딸 하나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그를 더 성실한 가장으로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게 된 사랑하는 아내는 딸의 생일날 딸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서두르다 쓰러져 죽고, 사랑하는 딸의 생일은 또 어머니의 기일과 같이 되어 딸이 불쌍한 아버지이자 부인과 사별한 남자는 부인의 사망보험금이 찍힌 통장을 망연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평소 동경하던 거래처 사장에게 아내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을 털어놓게 되는데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이야. 원체 그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에게 자신의 불행까지 이용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뭔가 투자의 명목으로 차용증을 쓰게 하고 결국 그것은 자신의 장인의 부실 경영과 비리로 넘어가게 된 사업의 투자자로,그걸 방임한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다. 평소 규범을 지켜서 살아온 그. 그는 악의를 품고 거래서 사장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해 버리기로 결심한다. 바람을 피고 있는 호스티스가 있다고 부인에게 찌를까? 아니 그것은 자신이 한 짓이란 게 틀켜버릴 것도 뻔하다. 그럼 그의 스윗홈을 부수자.


집만 부수고자 한 그의 계획은 그의 부인이 집에 있으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또 그게 부인의 아버지, 즉 사장의 장인 때문에 생긴 일이란 걸 알게 된 그는 분노로 눈이 돌아간다. 차례차례 아이들이 들어오고, 마침내 거래처 사장까지 들어온다. 그는 그 일가족을 살해하고 시체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집을 톱으로 마구 부수다가 신참내기 경찰에게 잡힌다.


사건은 이렇게 끝이다. 사건만 보고 가해자에게 흥분했던 사람들은 이제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게 분노를 표현한다. 어린 아이 두명에 대해서는 빼고. 사실 악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는 피해자이지만 악마이기도 했다. 가해자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시민단체는 법에 항의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 이렇게 엄청난 사건도 몇 년 후면 잊혀진다. 피해자의 남의 딸 아이 하나도 많은 관심과 걱정을 받다 금방 잊혀졌다. 문제는 그들은 가족을 잃었어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자기 파괴의 충동을 억누르고 살아가던 피해자의 딸 아키바 가나코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든 삶, 속에 검은 심지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표면적으로 자신은 피해자의 딸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가해자의 가족에게 한 짓이 못지 않기에, 그 때문에 자신의 엄마와 어린 동생들까지도 죽게 만들었다는 증오감과 그리움을 품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녀를 뒤흔들었던 건 열의 있는 저널리스트 시이나. 여론과 같이 무작정 자신의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와 자기 파괴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자와 인터뷰에 응하면서 가해자의 딸 쓰즈키 미호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스무살이 넘어서의 일이다.


너무나 깊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몹시 사랑해주는 연인에게도 몸과 마음을 열지 못하던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미호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다. 지워지는 가짜문신을 하고 몸이 깡마른 미호는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관계를 맺긴 하지만 그녀가 바텐더로 일하는 바로 계속 출입을 하면서 친근감을 쌓고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다. 그녀는 나와 닮았다!


미호는 겉으로도 공격적이고 친구가 되기 전에 자신의 아빠가 살인자임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는 등의 방어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겉으로 문제 없는 가나코 또한 방어적이고 자기 파괴의 충동으로 늘 괴로워 하는 것과 똑닮아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집이 살만하고 받아들여줄 친척이 있는 가나코는 대학생활까지 하며 주류 사회에 끼어 있지만 미호는 가해자, 살인자의 딸인 죄로 임대 아파트, 물장사, 그리고 이상한 비디오 스카우트 맨인..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남자와 동거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리 당찬 미호라도 그런 위험한 남자와의 동거는 평탄할 리 없다.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행복을 찾기 위해 그와 결혼까지 하지만 폭력적이고 바람끼까지 있는 그는 심지어 임신한 그녀를 폭력으로 유산까지 시키고 만다. 늘 분노가 내제된 미호와 미호에게 애증의 감정까지 품게 된 가나코(물론 가짜 신분으로 속이고)는 그를 살해하자는 계획까지 세우고, 은근 미호를 살인자로 만드려고 종요하고 만다. 그려면서 더더욱 자기 혐오에 시달리는 가나코.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이 만나서 또 다시 그들 부모와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플롯은 긴장감과 분노, 알 수 없는 슬픔을 품게한다.


살해 계획은 다행히 성공적이지 않았고 다행히 법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헤어진다. 미호는 가나코의 존재를 끝내 모른 체로. 키스를 하면서 아름답게도.  

    

가나코와 미호의 시간은 죽은 가족과는 달리, 아니면 곧 죽을 가족과는 달리 흘러가지만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고 시체를 마주하게 되는 동안의 시간과 자신의 아버지가 남의 일가족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고 기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그 시간에 대한 기억으로 잡힌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때의 기억에 잡혀 사실은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사고로 가족을 잃어도 유가족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사건으로 얽힌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가 쉬운 일일까. 


결국 둘은 살해계획까지 짜서 실패를 하고 키스까지 하면서 헤어지게 되지만 이걸 '화해'라는 것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까. 살아 남은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서 뱉는 극단적이고 강한 대사를 보면 당사자가 아닌 나도 가슴이 푹푹 파이는 느낌이라 어떤 감상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란 말이 맴돌 뿐.



 




도시에서 자라고 일류대학을 나와 늘 해가 비치는 양지를 걸어 온 사람은 이렇듯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구나 하는 마음에, 하프라운드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호쾌하게 맥주를 들이키는 아키바 씨의 얼굴을 저도 모르게 빤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p. 60

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니 시체도 그저 단순한 물체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치요코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치요코 그대로 느껴졌으니 놀란 만한 차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키바 씨 일가에게 그 어떤 가학 행위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P.97

"(중략) 저와 마찬가지로 열두 살 나이에 사건을 겪은 쓰즈키 미호라는 딸은, 자기 아버지의 사형이 결정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살고 싶지 않아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는지, 저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중략) "시이나 씨도 말했을 겁니다. 당신과 그녀의 아픔은 달라요. 결코 그녀의 아픔에 당신의 아픔을 겹쳐 볼 수는 없는 겁니다. 만약 당신들이 정체를 드러내버린다면, 결국은 서로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헤집는 일밖에 되지 않아요."p.200-201

순간 가나코는 자석 같은 감각을 느꼈다. 미호가 N극, 가나코도 N극.다가가도 마주 당기지 못하고, 서로 저항하는 자기장 때문에 안타깝게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그런 감각. p 232

"왜, 사람이 죽으면 유산이라는 게 남잖아. 그것처럼 죄도 벌도 남아 자식이 짊어지게 되는 거 아닐까." p.280

"그래도 난 악당이 될 거야. 내 자식에게도 미움 받을 정도의 악당이 되어야 비로소 내게 걸맞은 벌을 받게 되는 거 아닐까."p.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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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제목. スキマスキ. 스키마스키. 직역하면 '틈새 좋아' 정도. 책 날개에 작가 약력에 보면 '틈새 사랑'이라고 적힌 걸 보아 전에 출판이 되었거나 아니면 출판 전에 제목이 더 임팩트 있게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언어유희를 잘 살린 것 보면 괜찮은 제목. 틈새 사랑도 나쁘진 않지만 뭔가 풀잎 사랑처럼 순수한 느낌이 드는데 내용상으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커플이기 때문이다.


틈새를 엿보기가 취미인 남자와 또 그 위를 나는 여자의 이야기가 한 권에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주간엔 알바를 하면서 야간 학부 건축과를 다니는 남자 주인공. 스스로 똥통 대학을 다닌다고 느끼고 있는 남자 주인공은 비슷한 패배감을 지닌 개성 강한 친구 두 명과 늘 같이 다닌다. 안 예쁜 여자 몇 명과 남자들만 드글거리는 공대 야간 학부 생활은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


틉새를 좋아하는 은밀한 취미는 항상 요~맨큼만 커튼을 열어 놓는 맞은 편 집 여자애의 방에 꽂힌다. 밤에 불을 켜놓고 예쁜 속옷만 위아래로 입는 여자애를 보는 남자의 마음은 설렌다. 하지만 이런 취미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엿보는 취미는 범죄로 연결짓기 쉽고 사실.. 지가 하는 짓은 범죄이기도 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단순한 남자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가 있다. 요만큼의 틈을 보여준 상대는 커튼도 하나 치지 않은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상대편은 자신을 관찰하고 사진도 찍는다는 사실을. 


이런 범죄적인 상황이라도 이야기는 허술한 남자 주인공과 발랄하고 통통튀는 특이한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으로, 혹은 쌍방범죄라는 설정으로 안전망을 확보한다. 왜냐 이것은 한 권으로 끝내야 하는 밝디 밝은 개그만화기 때문에! 


개그 만화이지만 주인공들의 고충도 빼놓지는 않는다. 야간 학부라는 콤플렉스를 지닌 남자 주인공과 친구들. 인기가 많지만 은근히 남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자기가 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는 여자 주인공. 그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인, 말라깽이 몸매와 귀염성 없는 성격이 콤플렉스인 친구...


하지만 이런 인간사의 고충은 개그 만화답게 유머로 밝게 버무려지고 눈 알이 유두모양으로 튀어 나가거나 혓바닥이 하트 보양으로 꼬여 나가는 등의 만화적인 장치는 정말 빵 터지기도 한다.


딱히 관음증같은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만화 한 편이다. 연애 만화에 몰입하려면 특히 여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하기에, 여자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대사를 넣어 주었는데... 바로 "바나나 피시가 어쩌고..." 예쁜 여자는 뭘 해도 예쁜 법인데 상스럽지 않는 4차원적인 말을 하면 더 매력적여지는 법이다. 이래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거겠지?


우리가 완벽한 사람에게는 별 매력을 못 느낀다고 하는 것 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빈'틈'을 사랑한다. 모두다 틈을 비집고 나왔기도 하고. 예전에 임경선이 완벽한 여자들에게 좀 "귀여워지라!"는 충고를 한 것을 읽고 머리에 뭘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말인 즉슨, 틈을 좀 보여주고 비집고 들어갈 사람이 돼라는 말이겠지.


물론 질질 흘리면서(!) 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틈은 정말 필요하다. 틈틈이 틈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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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만화의 여자 주인공은 바나나 칩을 배가 더부룩할 때까지 먹는다. 이유는 중간에 멈추는 걸 못해서. 특히 우유라도 같이 먹을 때면. 항상 자신의 바나나 칩 먹는 습관에 의문을 품던 그녀는 술을 마시다가 그런 고민을 줄줄 풀어놓는다. "바나나 칩을 위한 완변한 우유야" 라는 대사를 쳐가면서.


샐린저의 작품[호밀밭의 파수꾼]을 감탄해가면서 두 번이나 읽었는데 바나나 피시에 대한 단편 소설이 있는 줄을 몰랐다. 제목은 [바나나 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 단편집 [아홉가지 이야기]에 실린 아주 유명한 단편이다. 요 이야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니.. 과연.. 읽어보니... 감탄이 나왔다. 대신 [호밀밭의 파수꾼]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작품인만큼 그 소설이 불호인 사람은 진저리칠만한 내용. 샐린저를 좋아한다고 해서 꼭 중2병이라든지 염세주의자로 취급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나나 피쉬]에도 영감을 준 작품이니 샐린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얼마 전에 책을 시켜서 너무 궁금했던 [바나나 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만 읽어보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리뷰를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이 짤막한 이야기 한 편에 대해서도 리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치만 왠지 카뮈의 [이방인]도 생각나고 뭔가 스콧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 글에서도 느꼈던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근거도 이유도 없지만 여튼 느낌은 그랬다. 


샐린저는 베일에 쌓인 작가이지만 아이의 솔직함?에 대한 어떤 집착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궁금증을 계속 유발하는 작가이다. 절대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았던 그는 역설적으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원작이 워낙 좋겠지만 번역자는 최승자 시인이라 그런지 문장이 꽤 생생하고 세련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최승자 시인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시를 한 편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찾아봤다. 역시 시집의 제목은 멋지다. [아홉가지 이야기] 외에도 번역한 작품도 여러 권 된다.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듯. 


이해력이 조금 떨어지는 나는 역자 후기를 참 꼼꼼히 보는 편인데 아쉽게도 [아홉가지 이야기]에는 역자 후기가 없다. 번역자가 시인이라 얼마나 멋진 문장으로 해석을 해줄 것인지 기대가 엄청 컸는데 조금 아쉽다. 아마 너무도 바빴거나 시인으로서도 너무 감명을 받아 오히려 후기를 못 쓰는 일이 있었을 수도. 날이 쌀랑해지면 시집 한 편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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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B형 2015.8
코스모폴리탄 편집부 엮음 / 허스트중앙(Hearst-Joongang)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저번에 칼럼이 약해졌다고 조금 깠(?)었는데.. 이번호는 아주 훌륭하다. 음하하하.


약간 창피함을 무릅쓰고 리뷰를 쓴다. 못한다고만 하면 진상 투덜이가 되는 것이라 당근도 투척하고 싶다.


Girls On Top인 표제에 맞게 화끈한 특집 칼럼이 마음에 쏙 든다.

폭염이 지속되는 화끈한 여름이라 특집 페이지까지 마련한 노력에 감사한다. 특히 밀봉해 놓은 페이지를 뜯을 땐 약간 두근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좋다. 저번에는 부록으로 따로 얇은 책을 만들어서 주기도 했는데... 잡지를 못 버리게하려는 똑똑한 계략인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사고 바로 사귀던 사람과 헤어져서 당장 써 먹을 수는 없지만 참고하겠습니다.*-_-*


샤이니 태민의 정말 샤이니한 화보도 실려 있고 좋은 기사도 많았지만.. 저 24페이지 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그리고 별책부록. 당신의 커리어엔 플랜 B가 있나요? 는 또 다른 의미로 자극적이었다.


잡지라 원체 커리어가 빵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얼굴을 걸고 실제 경험을 말하는 선배(?)의 이야기는 도움도 자극도 많이 되었다. 누구나 플랜 B는 있어야 한다.


플랜 B를 짜야할 때를 체크해 볼 수 있는 체크 시트는 꼭 커리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도 대입이 가능할 듯. 원체 고용이 불안정하고 점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시기에 자기개발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 일, 자신의 균형을 맞춰야 하므로... 정말 여러 의미로 자.극.적. 이었던 이번 달 코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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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루어 Allure 2015.8
얼루어 편집부 엮음 / 두산매거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속이 붸붸 꼬여서 나 스스로도 참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지만 툴툴거리기 전에 칭찬을 한다면.. 수향에서 나온 서울의 초는 향기가 매우 좋다. 풀향기가 향긋하면서도 진한 향이 맘에 쏙 든다. 대만족!


부록을 위주로 잡지를 사는 사람이라 부록은 중요하다.


좋은 비누나 향초는 쓸 때는 기분이 좋지만 왠지 스스로 사기는 좀 그렇고 선물받으면 기분이 훨훨 날아가는 아이템이라 딸기 우유빛의 작은 향초를 받았을 땐 기분이 야호-! 했다. 물론 스스로 있는 시간을 아주 소중히 해서 초를 몹는 사람도 있지만.. 난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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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루어는 화장품을 위주로 다루는 여성지. 바자나 보그가 조금 어깨에 힘이 빠졌나 했더니 나름 친근했던 요 잡지에는 어느새 힘이 팍 들어가있다. 그도 그럴 것이 K뷰티가 급 승승장구하면서 갑자기 이들의 프라이드에도 힘을 팍 실어주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 10년 전만해도 확실히 불란서제나 미제 화장품과 국내 화장품과의 차이는 어마어마 했으므로.


전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서 읽었던 얼루어에는 K뷰티에 대한 냉정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화장품 질은 괜찮고 비비크림, 에어쿠션을 위시한 눈길을 끌만한 아이템은 있지만 막상 제품력은 덜하다는 것. 뮤즈나 신기한 아이템 개발하는 것 보다는 스테디 셀러가 될 만한 제품력과 브랜드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박수칠 때도 겸손한 것을 보니 뷰티 시장의 미래는 밝..겠지? K 뷰티에 종사하는 자랑스러운 내 친구가 주말까지 불려가서 일하는 것을 보면 부디 밝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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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8월호로 돌아와서, 나는 '서울에서 여고를 나온' 말 그대로 '서울여자'다. 실제로 이들이 정의하는 '서울 여자'답게 화장도 곧잘 한다. 주위 사람들은 제발 정도를 지키라고는 하지만. 


당연 에어쿠션도 있고, 진동 파운데이션이니 버블 클렌져니 도화살 화장법이니 윤광이니 물광이니 피부를 모찌모찌하게 표현하는 것이니.. 하는 왠만한 뷰티 용어나 제품을 거의 알고 남들하는 거 열심히 따라 써보았다. 국내 최대의 화장품 커뮤니티에는 당연히 가입되어 있는 상태.


피부는 밝은 편이고 결도 좋은 편이다. 왜? 나는 피부에 시간과 돈을 많이 쓰니까. 실제로 아픈 시술도 받아보았고 직구는 기본이다. 서울에 인구가 몇인데 이 정도면 그들이 정의하는 '서울 여자'에 손쉽게 들어간다.


게다가 나는 남들 꾸미는 정도를 성의라고 판단하는 영혼의 얄팍함, 혹은 속물 근성도 갖고 있어 화장품 회사를 먹여살리는 콘크리트 화장품 족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화장품 광이지만.. 왠지 화장품 브랜드 간부(?)들의 '서울여자론'을 읽고 있으니 처음에는 코가 마구 높아지지만 끝에는 발끈하게 된다.


톰 포드의 교육 디렉터인 패트릭 아이슐러는 "서울 여자들은 유독 자신의 얼굴에 관심이 많아요. 드러내야 할 부분과 감춰야할 부분을 영리하게 간파하고 있죠. 자신의 얼굴 구조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의미예요. (중략)서울 여자가 얼마나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중략) --컬러의 립스틱은 서울 여자들의 얼굴을 구조학적으로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죠.'


그리고 옆 페이지에는 톰 포드의 셰이드 앤 일루미네이터 광고가 있겠습니다.


슈에무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 1990년대에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그 후 한국 여성과 한국 셀러브리티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한국 여성에 관한 제 인상은 그들이 '아름다움'에 관해 끝없는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미묘한 부분까지 매우 세련된 메이크업을 추구해요. 몸매를 가꾸는 것에서부터 헤어 스타일, 메이크업까지, 종합적인 미를 추구하죠. 그만큼 아름다움에 민감해요. 촉촉한 피부에 매트한 입술 등 얼굴 위에서 질감을 과감하게 믹스매치하는 능력도 뛰어나고요. 가장 큰 특징이 아름다운 광 피부. 이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죠. 건강하면서도 자연스러움 두툼한 눈썹 그리고 본연의 입술에 생기간 약간 더해주는 코랄 핑크 립까지. 아무것도 안 바른 것 같지만 완벽한 아름다움. 이것이 바로 서울 여자들의 뷰티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완벽함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가 아닐까요? 슈에무라에서도 내년에 한국을 겨냥한 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있는 제품이라면 전 세계 여성을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내년에 한국을 겨냥한 빅 프로젝트를 꾸미고 있는 슈에무라는 <강남핑크>라는 립스틱을 출시했다. 


맥의 글로벌 부사장인 고든 에스피넷의 서울여자 평도 들어보자. 


"서울 여자를 떠올리면 강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어도 잘 꾸민 것처럼 보이는 세련된 여자가 생각납니다. 한마디로 공들이지 않은 듯 시크한 룩이죠. 아름다운 피부와 밝은 컬러로 물들인 입술, 눈에는 하이라이트가 가장 중요한 특징이에요. 이 모든 걸 망라하는 것은 바로 '글로우'이고요. (중략) 색조 화장 전 12단계나 스킨 케어를 한다는 사실은 분명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전 정말이지,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이 좋아요. 저에게 서울이 너무도 매력적인 이유죠. 특히 피부에 공을 들이는데, 이 모든 것이 어려 보이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되어요. 덕분에 서울 여자는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죠. 맥은 이미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컬렉션을 내놓았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올 어바웃 오렌지 컬렉션이에요. 올가을에도 서울 여자의 취향을 반영한 크림쉰 라인의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미묘한 색감의 차이, 질감의 차이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서울 여자는 분명 가장 훌륭한 뷰티 인사이더예요."


어반 디케이의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웬디 좀니르는 이렇게 평했다. 


"서울 여자 하면 개성 넘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요. 또 한편으로는 메이크업을 즐기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뷰티 정키이기도 하죠. 유행에 민감하고 늘 새로운 메이크업, 새로운 제품에 열광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스럽고 대범하며 재미있는 메이크업을 추구하는 어반 디케이의 브랜드 철학과 서울 여자는 서로 닮은 부분이 많아요. (중략) 발칙한 보라색 입술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은 서울 여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피부는 언제나 완벽하게 촉촉하고 탄탄하게 유지해요. 정교하고 단아한 서울 여자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중략) 대담하면서도 잘 정돈된 룩을 고집하는 서울 여자는 저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존재예요. 머지 않아 서울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을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아직 서울에서 영감받은 제품은 없지만 약간 영감받을 생각이 있는 브랜드의 수석 디렉터 역시 서울 여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쟁쟁한 화장품 그룹들로, 물론 제품력도 뛰어나긴 하지만 마케팅에도 엄청 능한 그들이, 특히 엄청난 위치에 있는 간부들이 이렇게 '서울 여자'론을 펼치는데 당연히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난 약간 화가 났다. 얄밉기도 하고. 그리고 한 편으론.. 이들이 마케팅을 잘 하는 이유를 알겠다. 말이 진짜 청산유수야. 감탄스럽다. 서울 사는 나에게 '서울 여자'의 메이크업에 대한 평을 하라면 저렇게 말을 줄줄 할 수 있을까.


저들의 '서울 여자' 예찬론을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는 발 밑에서 미친 듯이 물장구를 치지만 그건 사실 미운 오리 새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들이 정의하는 '서울 여자'가 되려면 앞으로도 노력을 멈출 수가 없다. 참 서울여자 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다 틀리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화가나는 이유는 분명, 지금도 '서울 여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고 나는 앞으로도 그들이 말하는 '서울 여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당히 '서울 여자'라는 직함을 얻으려면 노력 뿐만 아니라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들의 '호갱님'인 걸 내 스스로도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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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여자들이 예쁘다는 소문, 겨우 일주일 다녀온 파리 여행이라도 소문이 가짜가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원체 이목구비가 이쁘기도 하지만 관리된 날씬한 몸매(혹자는 전형적인 파리 사람의 몸은 '신경질적으로 말라야' 된다고 표현한 것도 있는데!!), 메이크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는 공들여 한 화장, 꼿꼿한 자세를 보고 있자니 예쁘다고 부러워하는 마음도 한편, 뭔가 피곤이 몰려 오기도 했다. 아, 얘들도 진짜 힘들게 사는 구만.


[프랑스 여자처럼]이라는 책도 있고 프랑스 여자들을 예찬하는 그런 류의 책은 무지 않지만(읽지 않았고 읽지 않을 생각), 패션지에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파리지앵 여자들은 사실 엄청나게 부럽지는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되려면 시간과 돈, 노력을 엄청나게 투자해야하므로. 


어떤 여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온전히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화장하고 꾸민다고.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꾸미는 것도 실력으로 평가되는 게 직장이고, 일자리를 얻으려면 외모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게 현실이므로. 클레오 파트라나 주술사들이 요란한 화장으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화장이란 현대사회에서는 생존과 결부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서울 여자처럼 피부는 촉촉하게, 새련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색을 쓰는 화장은 그것만으로 그 여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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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서울이란 도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얼루어답게 '서울 단상'이란 사진 기사는 멋졌다. 통계자료도 재밌고 유익했다. 서울의 평균 연령은 39.7세로 좀 올드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14만 3697명이나 더 많다.(맙소사). 그리고 치킨집은 1만 1000여개나 된다.(타임진가 어디서 치킨집이 한국 경제를 망친다고 했었었는데.. 사실 일지도) 평균 전세가가 3억 2696만원으로 남자가 적은 척박한 현실에서 시집을 어떻게 어떻게 가지 않는 이상 독립할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다. 으휴.


서울여자인 내게 서울은 애증의 도시다. 그렇지만 볼거리도 없고 개성도 없다고 그저 비난하는 것 보다는 뭔가, 보물을 찾듯이 가치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좋아보인다. 서울은 역시 나의 달콤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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