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의 책은 두번째. 아직 가장 인기 있는 소설 [고백]을 못 읽어봤다. 도서전할 때 일하다가 교보문고의 파격세일에 져서 구매한 [백설공주 살인사건]을 아주 재밌게 읽어서 구매.

알라딘에서 미안한 말이지만 교보문고에서 앨리스 카드를 주는 바람에 금액 맞추느라 산 책인데 아주 재밌다. (알라딘도 구매금액 제한을 좀 낮춰줬으면... 뻑하면 5만원이래...)이래서 인기작가인가보다. 꼭 [고백]도 읽어봐야지.

개인적 취향으로는 [백설공주 살인사건]이 훨 재밌다. 미인은 죽어서도 팔리는 이 만연한 이치에 공감이 되어서 그런가. 살인사건보다도 더 끔찍한 언론과 세간의 관음증과 미인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지경이다. 왜 내가 괜히 목에 핏대를 세우는지는 모르겠지만서두...

인기 작가에다가 뻑하면 번역이 되는 일본 추리 소설인데 이상하게 번역이 안 된 이유는 아마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이 아닐까한다. 확실히 한자를 모르면 재미가 반감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처럼 한자, 한자 번역할 시간도 많이 주지도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한국식으로 이름을 번안하면 정말 잘 하지못하면 독자에게 욕이나 얻어먹기 딱 좋을 상황이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계약상 문제가 있거나!

두 책 다 등장인물들의 진술로 이뤄져있어 읽기도 쉬운 편이다.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지만 다음 진술하는 인물이 그걸 뒤집거나 진실을 알려주는데 모두 자신의 비밀과 욕망이 있는 점이 재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N을 위하여]는 고층맨션에 사는 그림같은 부부 노구치 부부(노구치 타카히로, 노구치 나오코)의 살인사건 현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용의자 4명 중 한 명이 잡혀가는 걸로 마무리되지만 사건의 이면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6명의 인생이 얽혀 있으니. 공교롭게도 모두의 이름에는 'N' 이 다 들어간다. 어떤 'N'이 어떤 'N'을 위하여 무슨 짓을 했는지 추리하면서 읽으면서 재미를 찾고 있었는데 중간쯤 읽으면 이런 건 다 포기하게 된다.

용의자 3명의 N(스기시타 노조미, 니시자키 마사토, 안도 노조미) 은 들장미장이라는 곧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알게 되고, 무슨 꿍꿍이를 꾸미며 용의자 1명(나루세 신지)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자세한 건 쓸 수 없으니 책으로 확인 하시길 바란다.

끝이 약간 용두사미격으로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긴 하지만 읽다보며 이게 추리소설인지 그냥 소설인지 분간이 안 된다. 사실상 주인공인 두명의 N, 스기시타 노조미와 예쁜 얼굴을 한 불행한 남자 니시자키 마사토의 파란만장한 가정사를 읽고 있으면 속상해서 부아가 난다. 사랑을 받았으면 뭔가를 해줘야 하는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는) 둘의 발버둥이 애처로워서 슬펐다.

이래서 미나토 가나에가 사회파 소설가로 분류되는 건가? 어린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는 한 줄을 이렇게 슬프고 재밌게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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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유다이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한때 좋아하던 프로그램 [실제상황]을 요즘은 잘 안 본다. 같이 보자고 권유했던 언니가 독립해서 나가서이기도 하지만 에피소드에서 점점 '떡밥'을 전혀 던지지 않는 근본 없는 전개에 싫증이 났다고나 할까. 수 목요일 늦은 시각에 하는 프로라 피곤한 와중에도 내기를 걸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도무지 예상이 가야 말이지. 히치콕이 "관객에게 갑자기 폭탄이 터지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 것도 같은데… 하지만 이 작가가 히치콕이 창안한 맥거핀 기법을 잘 다룬다는 소문이 난 사람이라 더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


하루에 2~3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해야 하는, 가만히 있어도 만족할만한 시청률이 나오는 재연프로그램에 완벽한 플롯을 갖춘 내용을 크게 기대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하지만 에피소드 초반에 시원하게 범인을 고르는데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가 회를 거듭할수록 승률이 떨어진다면 김이 빠진다.


뭐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실제상황]은 소재도 현실에서 뽑아온 이야기라 퀴즈프로처럼 보지 않으면 꽤 볼만한 방송이다. 보험사기나 결혼사기, 꽃뱀이나 제비, 장기 팔이, 도시 괴담 등등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흥미롭기도 하면서 소름이 쫙 끼치는 사례가 많다. 알.고.보.니. 갸갸 나쁜X 이었다는 배신의 역사는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 수많은 에피소드에 변하지 않는 기본 줄기는 처음부터 나쁜 얼굴을 하는 악인은 없다는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때도 있지만 허술한 구성으로도 충분히 무서움을 주는 이유는 다들 이런 경험 하나쯤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실제상황]을 언급하는 이유는 [비포유다이]에서 아주 잘 만든 실제상황의 에피소드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만다 헤이즈 [언틸유아마인]을 이미 읽어서 맥거핀 기법인지 뭔지에 면역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전작도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고 재밌게 읽었다. 주위 사람들한테 추천해보니 바로 범인은 누구누구지! 라고 말을 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이번 작 [비포유다이]가 더 재밌었다. 아카데미형 작가보다 생활밀착형 작가가 좋은 이유는 바로 있을 법한 사건을 쉽고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보통 ‘사회파’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누가 살인마인지 밝혀낼 생각 없이 작가가 그리는 사회에 즐비한 문제점을 음미하며 읽으니까 훌륭한 한 편의 사회학 보고서를 본 것도 같다. 자폐증, 왕따, 교육열로 자식을 괴롭히는 부모, 탈선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어느 사회라도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문제에다 흉흉하게 연쇄 자살 사건이라니!


흥미로운 줄거리로 눈길을 잡아 놓고 막상 다른 이야기로 변죽 울리는 게 살짝 얄밉긴 하지만 여러 명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거나 발설할 수 없는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아주 조금씩 풀어내서 독자를 잡아두는 것은 작가의 특기이다.


집단 따돌림 방식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전과 함께 더 악랄해지고 불륜의 형태도 점점 이상하게 변하는 세태도 잘 드러난다.


거의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술술 넘어가는 것도 지루할 틈에 많은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열심히 단서를 찾게 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스릴러, 추리물의 특성상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면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가벼운 종이로 만든 게 마음에 든다. 책을 가볍게 만드는 추세로 가면 좋겠다고 늘 바란다.


다만, 로레인 경위가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으로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딱히 이 형사부부의 매력을 나는 잘 모르겠다. 정의감에 찬 유능한 형사부부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힘쓰는데 흡사 CSI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달라진 시대 분위기와 다양한 인종, 계층을 의식해서 요원들이 어색한 대사를 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령 매춘부 살해 사건조사 중에 “난 이런 섹스 산업에 반대해.” 라고 말하면서도 바로 뒤에 “물론 그녀들이 하드코어한 직업에 종사한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대사를 재빨리 덧붙인다.


CSI의 형사들보다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형사와 패트릭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며 살며 범죄자라도 도덕적 우위에 서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그들이 훨씬 인간적이고 푸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상처는 작업에 더 방해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사회파 작가이다 보니 앞으로도 또 로레인 형사 부부를 등장시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부디 좀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켜주길... 


*참고로 [실제상황]의 관전 포인트는 범죄자를 연행해갈 때 언제나 흥분하는 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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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장의 영향으로 BL 장르에 눈을 뜨게 되었다. 벌써 취향도 나름 확고하다. 나카무라 아스미코는 국내에도 매니아층이 두터운 모양인데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 [동급생]이 영화화되서 지금 프로모션 중인 것같다. 배너를 보고 리뷰를 쓰자고 결심했다.


만화 그림체에는 그렇게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 왜곡이 심한 인체 모형도 적나라한 형태도 다 봐줄만 하다. 가끔은 좀 징그럽긴 하지만. 예쁘장한 여장 남자 J를 구체 관절인형처럼 표현해서 종잡을 수 없는 매력적인 느낌이 나기도 한다. 모든 인물이 길쭉길쭉 다 징그럽게 늘어져 있는데다 눈동자가 텅 비어있다. 신경질을 부리는 장면은 정말 딱 맞을 정도로 노이로제스러운(?) 미학이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자면 팀버튼스럽다고나 할까. 괴기한 느낌으로는 팀버튼보다 위다. 아무튼 그림체에는 징그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문제는 스토리. 3권으로 끝난 작품이라 지구력 부족한 독자인 나는 처음부터 쾌재를 불렀다. 다 읽고는 찜찜한 마음에 10권은 그려서라도 이렇게 끝내선 안 되는 거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용두사미, 찜찜한 해피엔딩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기엔 J에게 지워진 삶의 불행한 사건이 너무나 끔찍했다. 현실에는 분명 존재하기야 하지만 J의 생명력과 삶에 대한 애착이라고 하기엔 너무너무 불쌍하잖아! 그리고 등장인물을 그런 식으로 존경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매력이 없는 이야기다. 아니면 내가 엄청 부아가 나는 이야기거나.


괴기스럽게 아름다운 그림체처럼 처음 1-2권의 이야기는 몹시 섬뜩하면서도 끌린다. 이야기를 하는 현재의 시점은 1980년대. 취재에 응한 J는 마릴린 먼로의 복장을 하고 다리를 꼰채 담배를 시원하게 피고 있다. 1960년대 뉴욕 클럽에서 최고의 가수였던 J의 롤모델은 당연히 50년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마릴린 먼로. 어릴 때부터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 J는 마릴린 먼로가 나오는 영화관에 숨어 들어가거나 엄마의 슬립을 입고 악세서리를 착용해서 남부출신의 카톨릭 신자 엄마한테 혼나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J의 우상. 자동차 공장에 다니며 엄마에게 혼나는 J를 언제나 보호해주고 요상한(?) 짓을 하는 J를 귀여워 해주었다. 행복한 생활은 계속 이어지기 힘들었다. 자동차 공장이 자동화로 바뀌는 혁명으로 아버지는 공장에서 짤리고 매일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술에 빠져사는 생활이 이어졌다. 


비극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술에 빠진 아버지는 자신의 예쁜 아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만다.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가 그 장면을 발견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을 피부로 확인한 J.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린 J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후로 고아원에 가게 되고 최악의 1년을 보낸 J는 예쁜 외모로 명문가에 입양되게 된다.


명문 고등학교를 들어가서 만나게 된 일생일대의 사랑 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지만 아직 1960년대 미국은 아직 인종차별도 심해서 용기를 낼 수 없던 폴은 심한 말을 하게 된다. 상처를 받은 J는 그대로 클럽같은 곳에서 빠져나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예쁜 외모와 끼, 약간 광적인 성격으로 인해 J는 최고의 가수이자 잘 팔리는 엔터테이너가 된다.


J는 겉으로도 예쁜 여자로 보였지만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이기도 했다. 폴을 시작으로 클럽의 매니저인 모건을 흠모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불량배같은 친구에게도 알게 모르게 애정을 품기도 한다. 순정적인 J이지만 모건이 진짜 사랑하는 여자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나서 은근히 이용해 먹기도 하는 독사 같은 면도 있다. 하긴... J는 모건을 위해 모든 더러운 일까지 감해냈으니 그 정도쯤은 눈감아 줄 수 밖에...


의외로 보수적인 동네인 미국에서, 특히 1960년대라는 촌스럽고 폭력적인 시대를 묘사하는 2권의 장면은, 표지그림 못지 않게 끔찍했다. 잘 나가는 여장남자인 J를 혐오하는 정치인이 내뱉던 말 같은 것들. 기름진 미소를 짓는 정치인은 말한다. "나는 말야, 정직하고 강하고 깨끗한 미국을 만들고 싶을 뿐이야."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부랑죄(?)같은 걸로 한달 정도 감옥에 잡혀갔을 때 J는 운명의 상대인 폴과 재회한다. 폴이 변호사로 오게 되어서. 사무적인 이야기를 하는 폴에게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냐는 말을 하는 J. 그리고 돌아가 나가려 하자 폴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J를 사랑했던 여자아이가 J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과 자신의 아이, 갑작스런 폴과의 재회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J는 간수를 꼬아내 사고를 치는 등의 일을 벌여 J와 폴의 운명은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랑을 믿는 순수한 J와 폴은 우여곡절, 격한 사랑 싸움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단단하게 다지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꾸미기 좋아하는 예쁜 J는 아름답게 치장하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폴과, 자신을 닮은 예쁜 아이와 그를 사랑하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에 둘러 쌓여서.

 

나는 BL을 약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유는 성소수자는 어찌되었든 사회에서 약자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약자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BL은 작품성이 좋은 경우가 많아서. 게다가 어두운 사회를 그리는 것도 많아 배경도 독특하기 때문이다. 뭐 약간(?) 에로틱한 장면은 덤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런 설정으로 주인공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은 힘이 든다. 마지막에 당근을 주듯이 해피엔딩을 급 맞이하는 것도 그래서 더 속상했다. 어린 시절을 트라우마를 그런 식으로 보상하지 말라구!!


이 작가의 다른 책 <동급생>이 영화화를 한다는 것 같던데 이 작품이 좀더 대중적(?)이고 팬 양산을 많이 작품인 듯하다. 제목에서 보듯 풋풋한 느낌으로 이끌어 가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동급생> 이 책이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원래 그런 풋풋한 류의 이야기를 하는 작가인 것 같은데 나는 조금 예외적인 작품을 읽은 것 같긴 하지만... 용두사미 식의 결말만 아니었으면 1,2권, 3권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흡입력이나 규모면에서는 독보적이다.


이런 그림체에서 풋풋한 느낌은 생각하긴 어렵지만 앞으로도 가끔 보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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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Signs - 여성을 위한 심리점성학
주디스 베넷 지음, 신성림 옮김 / 이프(if)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중에 소설은 전혀 안 읽는 사람도 많다. 자기계발서, 실용서, 인문 경영학 저서, 외국어 학습서 등등... 처음에는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책만 계속 읽을 수 있단 말인지 놀랐지만 그들도 나에게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곤 역시 세상은 다양한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취향을 무의식적으로 약간 폄하했던 나를 반성했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더 잘(?) 나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협소한 관찰에서 나온 의견입니다.)


나는 사실 영양가 없는 소설만 읽는 게 아니다. 더 영양가 없다는 만화책도 읽고 가끔 한 두 편만 겨우 읽을 수 있는 시도 산다. 내가 사는 책 중에 가장 실용적인 분야는 잡지와 요리서밖에 없다. 그런데 가끔 꽂히면 미친 듯이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책이 있다. 바로 심리학서. 그리고 점성학, 사주같은 책들...

고등학교 3년을 미션 스쿨에서 보내고 졸업 후에도 힘들 때마다 교회를 가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일요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하는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늘 포기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하루에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내게 불행도 슬픔도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해 신께도 의지할 마음을 쉬이 접고 마는 문제가 더 근본적이지만.

종교도 잘 갖지 못하고 숫자 4가 재수가 없다느니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 따위의 미신을 잘 믿지 않지만 나는 희안하게 점성술을 잘 믿는다. 사주도 조금. 혈액형은 진짜 어쩌다 한 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태어날 시간이나 온 몸을 돌아다니는 피 유형이 내 인생을 뭘 결정지어준다는 건지 연관성 따위는 없지만 사람이 그리 팍팍하게 살면 쓰나.

실제로 내 독서 사이클을 보면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이런 희안한 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몇 년이나 전에 절판이 되었지만 요즘은 중고시장의 힘으로 결국 손에 넣은 책. 전에 학교 여성학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보고 몇 달전에 결국 구매했다. 시기적으로 많이 힘들었었고 또 역시나 이런 책에서 자그마한 구원이라도 얻어 볼까해서 열심히 찾았다.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처음에 느꼈던 감동(?)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요 몇 년 사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인간이 되었거나 아니면 좀 더 시니컬한 인간이 되었거나. 애시당초 스스로 찾아야할 자기 정체성을 별자리에 기대보려는 알량한 생각도 문제이긴 하다. 

그래도 점성학 책 중에 가장 애정하는 책이다. 의외로. 의외로! 저자가 심리 상담사를 꽤 오랜기간 하면서 여성들의 고충을 듣고 나름대로의 점성차트를 만들어 분석한 내용이라 꼭 자기의 별자리가 아니더라도 딱 맞는 유형이 있다. 10년 전의 혈액형 심리학보다 오늘의 혈액형 심리학이 더 맞는 것처럼 나름 점성학 같은 것도 오랜 관찰의 결과, 심지어 심층적인 관찰의 통계라 맞는 부분이 많다.

뭐 이런 것들이 무조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믿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사주 시장이 엄청나게 큰 것이 그들이 일종의 정신 상담사 역할까지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점을 보러 가겠다하는 건 위로를 받고 싶다는 희망의 표시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별자리도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위치가 변하듯이 자신의 흐름도 변하고, 태양의 위치를 중심으로 변하기 때문에 꼭 자신의 별자리만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35가지의 특성을 보고 자신과 가장 맞다고 생각되면 지금 자신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제목이 Sex Sign인 만큼 자기의 욕망을 확인하고 사랑을 주고 받는 일, 인간관계를 정립하고 분노를 이해하는 데 이용하면 좋다. 다만 여자에 한해. 그러고 보니 왜 남자를 위한 심리 점성학 책은 없는 것일까... 아마 큰 고객이 되기 힘들어서?

나는 원래 게자리인데, 뭐 아주 틀린 점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게자리에서 제시하는 그리 (남의 평가로)편안한 여성은 아니므로 역시 건너 뛰기로 하고 다른 것을 찾았다. 읽다보면 별자리 중에 서로 비슷한 유형도 있고 읽다보면 다른 쪽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 책을 읽을 때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정확히 지금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그게 맞는 것을 읽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여성이 되고 싶다고 굳이 무리하며 생각을 맞출 필요가 없다.

다 들어 낼 수는 없지만 변덕스러운, 일관성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등등의 키워드에서 나는 쌍둥이자리에 가깝다고 확신했다. 요즘 팟 캐스트에서 애니어그램에 관련한 프로그램을 듣는데 거기서도 7 유형이 나왔다. 7 유형은 재미를 찾아 약간 뭐든 뛰어드는 형이라고 하는데, 여기 쌍둥이자리에서도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이 '뛰어든다'는 말이라고. 

친구들도 새로운 것에 대한 나의 초기에만 바짝 타오르는 열정에 질린 상태이다. 다만 쌍둥이자리 여성은 대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행동에 자신감이 넘친다고 하는데... 과연...  

안 그래도 쌍둥이자리 여성이 배워야 할 점이 '권태'라고 하는데 정말 참고해야겠다. 또 공감하려는 능력을 키우는 법도 번호까지 매겨서 세세하게 알려주는 주디스 언니 짱짱. 하지만 슬프게도 저자는 비극적인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이 책은 주디스 베넷의 사후에 친구, 동료의 헌신으로 이룩한 책이다. 평소 이렇게 사람을 잘 관찰하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느낌을 드는 말투를 구사하는 그녀에게 이런 멋진 친구들이 없을리 없지.

마지막 장에 제시하는 '우주적 여성'은 모든 별자리를 가진 완결된 여성이다. 이 책이 점성학보다는 페미니즘에 가깝다는 것은 바로 이런 궁극적인 따뜻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심리점성학 책을 찾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해주는 따뜻한 위로와 그럼에도 따끔하게 행복해지는 길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일도 받아들어야 한다. 결국에는 우주적 여성이 목표가 되어야겠지.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행복해질 필요만 있을 뿐.  


*사족: 희안하게도 속 시원하게 뭔가 확정적인 답을 듣고 싶다가도 사주가가 즉답을 하면 바로 선무당이라고 확 반감이 생기는 건 왜일까. 역시 한 길 사람 속은 참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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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6-06-2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읽어보고 싶네요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6-20 10:35   좋아요 1 | URL
그리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 어릴 때 혈액형이나 별자리 책 같은 걸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감동을 느끼면서(!)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절판이 되어 몹시 아쉽지만 중고샵에서는 그리 귀한 책은 아니더라구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ㅎㅎ
 
스트리트 페인터 - 초보 화가, 길에서 인생을 배우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수신지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길'하면 자유로움을 떠올리게 된다. 희안하게 잘 볼 수도 없는 미국 서부에나 있을 법한 끝없이 시원한 길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어느 나라 말이나 '길'은 인생이나 방식의 은유로 쓰이는데 대체로 뉘앙스가 아주 다정하지는 않다. 자유를 상징하기는 하지만 자유를 누리기는 힘든 만큼 '길거리'에서 자란다거나 구른다거나(?) 하는 것은 무지 천박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거친 종자들을 상대할 가능성도 많고 모든 걸 혼자해야 하니까.


[스트리트 페인터]는 작가가 한 때 경험한 생활 밀착형 리얼리티 그래픽 노블이다. 국내 작가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닌데 확실히 비슷한 환경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경험할 수 있는 수준높은 울컥함을 선사해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전부터 [3그램]이라는 작품을 알고 있긴 했는데.. 왠지 줄거리만 봐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의 작품을 만나서 감동을 받은 이유로 기분이 조금 나아지면 용감하게 읽어 보기로 했다. 독자의 의리로!


졸업을 앞 둔 대학교 4학년 아랑은 당연히 진로와 생계를 걱정한다. 학교 들어오기 전에도 들어온 후에도 쓴 돈이 있으니 이왕이면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가지고 싶고 미술학원 알바는 이미 신물이 난다. 학자금 대출도 있으니 걱정은 더 커진다. 특히 취업에는 쥐약인 인문보다도 더 힘들다는 순수 예술을 전공한 아랑은 직접 선택 전 돈도 벌고 경험도 쌓을 겸 일종의 직업 체험형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 마침 과 사무실 앞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보고 구청에서 주최하는 '거리의 화가'에 지원해 보기로 한다.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간 자리에 아랑을 포함해서 베테랑인 것 같은 작가 4명이 더 왔다. 작품으로 말하는 그들은 모두 면접을 보고 아랑은 선배의 충고대로 '무조건 예쁘게' 그린다. 면접 결과는 지원자 수가 적어 싱겁게도 지원자 모두로 결정되었다. 어느 기간 동안 합법적인 길거리 화가로 살게 되는 아랑은 똘망하게 생기지 못한 관계로 동료(?)들에게 가벼운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자신을 구해준 떡볶이 아줌마에게도 역시 '인생은 실전이라'는 식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너무 생생해서 짜증이 날 정도다. 


거리의 화가는 일한 만큼 받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손님을 잘 끄는 게 매우 중요한데 요령이 없던 아랑은 기센 손님들과 옆에서 반칙적으로 행하는 호객 행위에 비실거린다. 돈 벌기가 쉽지 않은 만큼 까탈스러운 손님들도 많다. 앞에서 싸우는 커플, 자기가 아주 예쁜 걸 알고 있는 미녀, 애를 맡겨 놓고 한 시간이나 쇼핑하고 오는 밉살스러운 아이 엄마까지!(나도 이거 예전에 당해봐서 정말 열받았다.) 스스로 왕임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에 공임을 깎고 싶어 에누리 시도하는 사람들에 길에서 배우는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다. 나도 읽으면서 콧등이 뜨끈해졌다. 동정이 아니라 감정이입을 많이 해서.    


전공을 살려서 하는 일은 남에게서나 스스로에게나 기대가 많은만큼 실망도 크고 자괴감도 큰 일이다. 나도 졸업 후에 직장을 몇 곳 전전하면서 굳이 전공을 살리는 곳에 들어갔는데 그 때 자괴감과 한계를 느낀 적이 있어 큰 공감이 갔다. 결국 지금도 계속 얇은 끈을 구질구질하게 잡고 놓치 못하고 있지만 아랑이 유치원에 가서 하루에 100명씩 아이들을 그리며 노력하는 것을 보며 힘을 얻었다. 놀이 동산에서 귀엽게 치장하고 그림을 그리는 선배에게 붙어 대목을 노리면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나 일하면서 아주 잠깐의 마약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보니 이건 노블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 중에는 대부분이 진상이지만 그래도 빛 한 줄기와 같은 노래하는 훈남이 와서 아랑의 볼을 빨갛게 물들여주고 상상속에서 결혼에 시집살이까지 하는 젊은 여자의 상상은 깜찍하고 너무 귀여웠다. 게다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살려고 해도 출발선이 다른 금수저 친구를 보며 허탈감에 빠지고 마침 비까지 내려 완전 비참한 기분에 들어갔을 때 무지개 빛으로 아랑의 이름을 써주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우아한 예술가 할머니한테서 치유를 받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맘을 먹어도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면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에 또 그런 자신이 못나보이는, 그런 바닥을 치는 날이 있으니까. 울컥 울컥.  


길거리에서 돈을 버는 것은 힘들다. 자유.. 이름은 좋지만 보험도 안 되고 날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아도 진짜 너무 힘든 일이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상인들의 질투를 사서 구청에 항의를 받게 된다. 구청도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민원을 처리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불행히도 한 명을 짜르기도 한다. 왠지 좀 더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 같은 아저씨 베테랑 4명이지만 아랑도 학자금 대출에 학교 생활 내내 알바까지 햇을 정도로 딱한 사정이 있다. 결국은 잔인한 방법으로 한 명을 떨구기로 한다. 이름하여 실적주의로.


모두 절박한 사정으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아이가 있는 덕용 아저씨는 아이가 아프다는 사정으로 중도 하차를 하고 결국 아저씨는 탈락하게 된다. 모두에게 상처만 남은 승리. 모두 말이 없다. 아랑은 계속 생각한다. 그들과 나눴던 추억을. 그리고 자신이 빠질 것을 선언한다. 자신의 힘든 무게만큼 처자식 딸린 아버지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생각한 것일까. 남은 아저씨들은 착잡한 심정이지만 아랑에게 고마워 하고 아랑의 광고 전단지를 모두 붙이며 아랑에게 일감을 조금씩 나눠주는 따뜻한 결말로 마무리.


돈을 벌어보니 삶이 참 녹록치 않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삶의 질 또한 뚝뚝 떨어지는 걸 느낀다. 그 전에 너무 곱게 자랐다는 걸 느낀다. 평범한 삶이 어렵다는 얘기에 공감하고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것도 대단히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그래픽 노블보다 더 눈물이 찔끔했던 건 현실적이고 생생한 우리 이야기를 신파적이지도 자기 연민을 하지도 않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부제가 더 마음에 든다. 초보 화가, 길에서 인생을 배우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게 삶이고 아무리 인복이고 행운이고 하는 것들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혼자 배워서 걸어가야 하는 게 인생이란 걸 느끼고 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건 없지만 스스로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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