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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 SBS스페셜에서 [슬픈 천륜-감옥밖의 아이들] 편을 보고 있자니 얼마전 읽은 노자와 히사시의 [심홍]이 생각났다. 아니다. [심홍]을 읽었기 때문에 이 편을 골랐다. 사실 범죄자의 얼굴을 꽁꽁 감춰주고 범인을 잡은 형사들의 수염 덥수룩한 얼굴은 잡아주는 이상한 보도형태에 큰 불만은 있지만, 사실상 연좌제 비스무리한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 범인의 가족들도 고통받는 일은 안봐도 뻔한 일이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은 당연히 동정받아야 하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에게는 욕을 하거나 대체로 얽히지 않으려는 게 사실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는 것도 싫고 괜히 기분이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흔히 피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가해자의 유가족도 피해자인 것은 맞다.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는 수없이 많다. 억울하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들의 인터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거지를 자주 옮겨 거처를 모르거나 싸늘하게 인터뷰를 거부하는 일은 많다.
[슬픈 천륜]다큐멘터리에서는 세계 사형수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가 서두로 나왔다. 아직 가난한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사형수의 아이들은 더 가난의 늪으로 빠지고 거리에서 죽어가거나 나쁜 길로 빠진다. 허름한 집 마당에서 돼지들까지 같이 자라는 이들 가정의 영상을 보니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많은 것에 그저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전직 교도관이었던 분이 이런 아이들에게 빛을 보고 살라고 '태양촌' 이라는 보호시설을 열었고, 아이들의 사례는 하나같이 비극적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여 사형을 당하게 된 경우 자녀들은 한꺼번에 양부모를 잃게 된다. 사형 당하기 전에 너희는 법을 지키고 살라며 유언을 남기며 우는 영상은 남인 나도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치는데 하물며 남은 당사자들은 어떨지.남은 아이들은 그 장면을 곱씹고 곱씹게 될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도 정확한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필터'라는 것이 있어서 "범죄자의 아이들에게까지 낙인을 찍지 말자"는 명확한 메세지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범죄자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보는 것도 화나고 괴로웠다. 당신이 죽였던 사람은 이제 그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데!
아무리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지만 이런 감정 때문에 가해자의 가족들도 2차 피해를 겪게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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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히사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자다. 말캉말캉한 연애소설을 잘 써서 좋아하는 작가인데 아쉽게도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우울증으로 약한 정신에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평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정설이긴 한데 한 사람이 죽은 이유가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닐 것 같다. 특히 감성이 예민한 작가라면.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서 그의 죽음이 언제나 안타깝게 생각이 된다.
달달한 이야기만 잘 쓰는 줄 알았던 노자와 히사시를 다시 보게 되었다. 훌륭하다. 아직 로맨틱한 이야기를 더 사랑하긴 하지만.
뉴스에서 날마다 살인 뉴스가 나오고 보니 이제 왠만한 사연에는 무감각하다. 가끔 이러다가 살아남는 사람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하지만 가끔 사연이 있는 뉴스는 사건 전 사정이나 뒷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라서 그저 작은 관심이 있는 것이겠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런 세간의 관심이 아주 힘들 것이다. 피해자 측도 가해자 측도.
대체로 가해자 측에는 분노가 일지만 가끔, 가아끔.. 납득이 가는 살인도 있다. 폭력이나 살인이 어떤 경우에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가해자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 피해자에게 분노가 일어나는 사건도 있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원한에 의한 살인. 이런 경우는 가해자에게 동정이 일기까지 한다. 죽은 피해자는 죽인 가해자에게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들고 인생을 완전 무너뜨렸으니까.
원한에 의한 살인이란 것이 밝혀지면 갑자기 여론이 바뀐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악인에게 당한 경험이 다 조금씩은 있어 오히려 피해자를 욕하는 경우도 많다. 약했던 사람이 당하다 당하다 어느 순간 악인이 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이라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완전한 악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 캐릭터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딱히 스펙이 좋지 않고 선량하고 약간 순진한 사람이 뼛속까지 멋있고 약간 나쁜 사람에게 크게 이용을 당하고 분노심에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도 모두 죽이는.. 피해 당사자와 관련있는 사람들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생각보다 흔하고 있을 법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건의 원인은 원한에 의한 살인. 정황은 갑인 거래처 관계의 사람에게 부인의 사망보험금을 투자했다가 알고보니 부실한 기업에 돈을 투자하고 비리를 어쩔 수 없이 돕게 된 선량하고 살짝 아둔한 한 가정의 가장이 사기를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당사자를 죽이러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부부를 포함한 어린 아이들까지 살해하게 된 것. 하지만 여기엔 생존자가 있었는데 마침 수학여행을 가서 참사를 피하게 된 피해자 가정을 딸이었다. 그 딸은 가해자의 딸과 같은 나이.
사랑하는 부인까지 잃고 충동적으로 일가족을 살해하게 된 불행한 남자는 여러 사람의 피가 뒤섞인 사건 현장에서 자신의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열한다. "내가 너의 인생을 망쳤구나. 너는 살인자의 딸로 살아야 하는구나..."
나쁜 사람들에게 크고 작게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이런 류의 비극적인 사건에는 세간의 관심과 공감, 분노가 쉽게 일어난다. 비릿한 피와 배신이 섞인 이 사건에 기자들이 꼬이고 세상에 남은 피해자의 딸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가해자에 대한 판결과 남은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만 (다행이도) 가해자의 남은 가족에게는 큰 관심이 쏠리지는 않는다.
살인자이긴 하지만 지독하게 운이 나쁜 이 남자의 탄원서는 너무나 생생해서 가슴이 아프다. 시골에서 태어나 세상에 약삭빠르지 못한 부모들은 악덕 부동산 업자 때문에 집과 땅을 잃었고 그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고생하게 된 한 남자는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가 한 초등학교의 교사에게 마음을 뺐기게 된다. 적극적으로 대시한 그는 결국 그 교사랑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몸이 약한 아내는 그와 결혼을 하면서 딸 하나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그를 더 성실한 가장으로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게 된 사랑하는 아내는 딸의 생일날 딸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서두르다 쓰러져 죽고, 사랑하는 딸의 생일은 또 어머니의 기일과 같이 되어 딸이 불쌍한 아버지이자 부인과 사별한 남자는 부인의 사망보험금이 찍힌 통장을 망연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평소 동경하던 거래처 사장에게 아내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을 털어놓게 되는데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이야. 원체 그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에게 자신의 불행까지 이용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뭔가 투자의 명목으로 차용증을 쓰게 하고 결국 그것은 자신의 장인의 부실 경영과 비리로 넘어가게 된 사업의 투자자로,그걸 방임한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다. 평소 규범을 지켜서 살아온 그. 그는 악의를 품고 거래서 사장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해 버리기로 결심한다. 바람을 피고 있는 호스티스가 있다고 부인에게 찌를까? 아니 그것은 자신이 한 짓이란 게 틀켜버릴 것도 뻔하다. 그럼 그의 스윗홈을 부수자.
집만 부수고자 한 그의 계획은 그의 부인이 집에 있으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또 그게 부인의 아버지, 즉 사장의 장인 때문에 생긴 일이란 걸 알게 된 그는 분노로 눈이 돌아간다. 차례차례 아이들이 들어오고, 마침내 거래처 사장까지 들어온다. 그는 그 일가족을 살해하고 시체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집을 톱으로 마구 부수다가 신참내기 경찰에게 잡힌다.
사건은 이렇게 끝이다. 사건만 보고 가해자에게 흥분했던 사람들은 이제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게 분노를 표현한다. 어린 아이 두명에 대해서는 빼고. 사실 악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는 피해자이지만 악마이기도 했다. 가해자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시민단체는 법에 항의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 이렇게 엄청난 사건도 몇 년 후면 잊혀진다. 피해자의 남의 딸 아이 하나도 많은 관심과 걱정을 받다 금방 잊혀졌다. 문제는 그들은 가족을 잃었어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자기 파괴의 충동을 억누르고 살아가던 피해자의 딸 아키바 가나코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든 삶, 속에 검은 심지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표면적으로 자신은 피해자의 딸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가해자의 가족에게 한 짓이 못지 않기에, 그 때문에 자신의 엄마와 어린 동생들까지도 죽게 만들었다는 증오감과 그리움을 품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녀를 뒤흔들었던 건 열의 있는 저널리스트 시이나. 여론과 같이 무작정 자신의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와 자기 파괴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자와 인터뷰에 응하면서 가해자의 딸 쓰즈키 미호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스무살이 넘어서의 일이다.
너무나 깊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몹시 사랑해주는 연인에게도 몸과 마음을 열지 못하던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미호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다. 지워지는 가짜문신을 하고 몸이 깡마른 미호는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관계를 맺긴 하지만 그녀가 바텐더로 일하는 바로 계속 출입을 하면서 친근감을 쌓고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다. 그녀는 나와 닮았다!
미호는 겉으로도 공격적이고 친구가 되기 전에 자신의 아빠가 살인자임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는 등의 방어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겉으로 문제 없는 가나코 또한 방어적이고 자기 파괴의 충동으로 늘 괴로워 하는 것과 똑닮아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집이 살만하고 받아들여줄 친척이 있는 가나코는 대학생활까지 하며 주류 사회에 끼어 있지만 미호는 가해자, 살인자의 딸인 죄로 임대 아파트, 물장사, 그리고 이상한 비디오 스카우트 맨인..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남자와 동거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리 당찬 미호라도 그런 위험한 남자와의 동거는 평탄할 리 없다.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행복을 찾기 위해 그와 결혼까지 하지만 폭력적이고 바람끼까지 있는 그는 심지어 임신한 그녀를 폭력으로 유산까지 시키고 만다. 늘 분노가 내제된 미호와 미호에게 애증의 감정까지 품게 된 가나코(물론 가짜 신분으로 속이고)는 그를 살해하자는 계획까지 세우고, 은근 미호를 살인자로 만드려고 종요하고 만다. 그려면서 더더욱 자기 혐오에 시달리는 가나코.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이 만나서 또 다시 그들 부모와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플롯은 긴장감과 분노, 알 수 없는 슬픔을 품게한다.
살해 계획은 다행히 성공적이지 않았고 다행히 법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헤어진다. 미호는 가나코의 존재를 끝내 모른 체로. 키스를 하면서 아름답게도.
가나코와 미호의 시간은 죽은 가족과는 달리, 아니면 곧 죽을 가족과는 달리 흘러가지만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고 시체를 마주하게 되는 동안의 시간과 자신의 아버지가 남의 일가족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고 기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그 시간에 대한 기억으로 잡힌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때의 기억에 잡혀 사실은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사고로 가족을 잃어도 유가족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사건으로 얽힌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가 쉬운 일일까.
결국 둘은 살해계획까지 짜서 실패를 하고 키스까지 하면서 헤어지게 되지만 이걸 '화해'라는 것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까. 살아 남은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서 뱉는 극단적이고 강한 대사를 보면 당사자가 아닌 나도 가슴이 푹푹 파이는 느낌이라 어떤 감상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란 말이 맴돌 뿐.
도시에서 자라고 일류대학을 나와 늘 해가 비치는 양지를 걸어 온 사람은 이렇듯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구나 하는 마음에, 하프라운드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호쾌하게 맥주를 들이키는 아키바 씨의 얼굴을 저도 모르게 빤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p. 60
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니 시체도 그저 단순한 물체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치요코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치요코 그대로 느껴졌으니 놀란 만한 차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키바 씨 일가에게 그 어떤 가학 행위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P.97
"(중략) 저와 마찬가지로 열두 살 나이에 사건을 겪은 쓰즈키 미호라는 딸은, 자기 아버지의 사형이 결정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살고 싶지 않아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는지, 저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중략) "시이나 씨도 말했을 겁니다. 당신과 그녀의 아픔은 달라요. 결코 그녀의 아픔에 당신의 아픔을 겹쳐 볼 수는 없는 겁니다. 만약 당신들이 정체를 드러내버린다면, 결국은 서로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헤집는 일밖에 되지 않아요."p.200-201
순간 가나코는 자석 같은 감각을 느꼈다. 미호가 N극, 가나코도 N극.다가가도 마주 당기지 못하고, 서로 저항하는 자기장 때문에 안타깝게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그런 감각. p 232
"왜, 사람이 죽으면 유산이라는 게 남잖아. 그것처럼 죄도 벌도 남아 자식이 짊어지게 되는 거 아닐까." p.280
"그래도 난 악당이 될 거야. 내 자식에게도 미움 받을 정도의 악당이 되어야 비로소 내게 걸맞은 벌을 받게 되는 거 아닐까."p.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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