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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세상 - 스물두 명의 화가와 스물두 개의 추억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2년 12월
평점 :
많은 매니아를 양상하고 있는 PAPER란 잡지를 사실 나는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기분에 한번씩 사보곤 하는 잡지다. 보통 매니아층이 있다고 하면 주류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물론 나는 그 잡지를 까려고(?) 쓰는 글을 아니다. 가끔 기분 내키면 사본다니깐요.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 같이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이게 예쁜 사진들, 퀄리티 높은 인터뷰와 기사, 독자 친화적인(?) 코너가 많고, 멋진 일러스트, 감성적이다 못해 뚝뚝 넘치는 글..... 이것이 PAPER가 매니아를 붙잡아두는 힘이 아닐까. 확실히 PAPER란 잡지는 그들만의 색이 있다.
특히, 감성이 뚝뚝 넘치는 10대 소녀스러운 글은 편집장인 황경신의 주특기다.
그치만 나는 그런 문체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하드보일드하거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느낌이 나는 조금 나쁜(?) 문체를 좋아한다. 그래서 황경신의 글은 가끔 너무 감상적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글 좋아하는 친구랑 얘기를 나눴는데.. 넘 비슷하게 느껴서 깜짝 놀랬다.) 좀 과하게 말하면 청승맞다고 할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황경신을 욕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글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글이 아니라 좋다. 가끔 청승맞다고 까지 느껴지긴 해도 계속 읽게 되는 착한 글이다. 수많은 막장드라마 속에 한번씩 나오는 착한드라마가 반갑게 느껴지는 기분과 비슷한 것이다.
[그림 같은 세상]은 그런 점에서 황경신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아님 내가 그 전까지 너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 책으로 인해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아...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또 다른 시각으로도 보게 해주었고, 그림보는 재미를 더 높여주었달까. 역시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다르구나...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책은 그림과 작가, 그에 따른 일화나 느낌 등을 주관적으로 풀어낸다. 이 책의 매력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잘 알려져 있음에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고흐, 로트렉, 이중섭... (예술가가 불행한 삶을 산다는 편견은 다 이들 때문이다!) 화가들이 작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었달까. 나도 가장 좋아하는 화가하면 고흐를 뽑기를 주저했는데, 그것이 단지 고흐가 너무 유명했기 때문이었단 것을 인식하며 속이 뜨끔했다. (대신 프리다 칼로나 로트렉 등을 꼽는다. 머 이들도 유명하긴 하지만....) 나쁜 버릇이니.. 적당히 잘난 척해야겠다는 다짐.
게다가 편집장인 경력 덕분인지 책의 마지막에 설치미술가 홍순명과의 인터뷰의 퀄리티도 매우 훌륭하다. 현대 미술이 관객에게는 항상 난제같은 느낌이지만 아무튼 그들은 공부를 꽤 많이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달까. 나도 원근법과 다빈치의 천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원근법은 정말 '발명'이었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이중섭의 전시회에서 느꼈던 열등감(?) 때문에 그림에 집착 비스무리한 것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정말 사춘기의 문화생활은 중요한거다. 나도 교과서에서 읽은 이중섭의 생애 정도로 그저 가난하고 힘든 삶은 살았던 예술가 중 한명으로 기억했는데, 그는 정말 대가다. 그러니 문화예술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예술가가 외국에서 높은 가격을 받는 걸 보면! (집의 생김보다 집의 가격을 말하는 인간이 된 걸 보면... 나도 어린 왕자가 말하는 어른이 다 됐나보다. 씁쓸..)여기서는 진품이니 모작이니 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에 재능이 없다고 하는 열등감을 이렇게 책 한권으로 승화시켰으니, 그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더불어 주관적으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다. 현실은 언제나시궁창이니까... 세상이 그림같을 때는 잘 없지만, 그래도 그림 같은 세상을 보여주는 화가들한테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little more) 황경신은 글도 쓰고 잡지도 만드는 사람이라 그냥 작가라고 불러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약간 어색하달까...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미친인맥이 참 부럽다. 그녀의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창완 아저씨의 축사(?)가 있고, 더욱이 이 책에는 전인권과 심지어.... 요절한 천재시인 기형도가 그려준 그녀의 초상화까지 있으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little more 2) 사랑은 변하고/ 환상은 깨어지고/ 비밀은 폭로된다./ //그것이 인생의 세 가지 절망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작가가 이중섭의 그림[묶인 새]를 보고 느껴던 충격만큼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