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 with a Pearl Earring (Paperback)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 Plume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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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 붙은 별명이다. 미술사적 가치는 빼고 그냥 비주얼로만 진짜 모나리자랑 비교하면 어쩌면 이 예쁜 소녀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보기 드문 분위기 미인이다. (사실 얼굴도 예쁘긴 하지만!)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평생 그린 그림은 한 40점 남짓. 그것도 우기고 우겨서 그런 거라는데 무지 디테일한 그의 스타일로 보면 적은 작품수가 이해가 가면서도 그림 크기를 보면 헉- 한다. 크지도 않다. 베르메르의 인생을 보면 장가를 잘 가서 그림을 더 느리게 그려도 됐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아이를 10명이나 키우려면 가장으로서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했을 법도 하고...43세로 일찍 죽어 그의 작품을 조금밖에 감상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소설 원작은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고요한 느낌이다. 섬세한 디테일 묘사와 사람이 들어가도 그의 그림은 어쩐지 정물화처럼 느껴지는데 이게 약간 원근법이 안 맞다나? 하여간 그 만의 독특한 구도와 스타일을 보면 베르메르가 어떻게 거장반열에 들어가는지 미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유머러스한 상황을 그린 작품도 웃기보다는 웬지 모를 이상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웃는건지 무표정인지 모를 오묘한 미소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진주 귀고리를 한 이름 모를 소녀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때문에 더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실은 둘다 관객을 완전 정면으로 맞대고 있어서 눈 돌리기가 민망한 거겠지만..) 특히 등은 돌리고 어깨너머 나를 딱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더 애처롭다고나 할까. 이름도 신분도 모른다는 알쏭달쏭한 점이 더 소녀를 신비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어쨌든 사람은 예쁘고 볼 일이다. 어떤 집요한 소설가가 그녀를 위한 글까지 써낸 걸 보면.



그리트는 이제 열일곱살이 되었다. 꽃다울 나이에 아버지의 타일 공장은 불이났고 아버지는 목숨은 건졌지만 그 대신 눈을 잃었다. 어린 여동생 아그네스만 집에 남고 자신과 오빠 프란은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어느 날 베르메르 화가 부부가 찾아왔다. 신경질적인 부인과 달리 '입에 시나몬을 문 듯' 조용히 말하는 화가는 그리트가 스튜에 넣을 채소를 배열한 방식을 주목한다. 그후로 그리트는 카톨릭인 화가의 집에서 일요일만 빼고 일을 하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카톨릭 신자가 배척되는 분위기였음.)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란 그리트는 예수가 못받혀 죽은 그림부터 젊은 사모, 자신에게 첫날부터 적대적인 어린 여자 애 대문에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시장 푸줏간에 자신에게 농을 거는 잘생긴 피테르와 화가의 작업실의 신기한 풍경만 빼면. 시장이나 광장으로 갈 때 운하를 지날 때면 세남매가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어린 그리트를 힘들게 한다. 일요일마다 집에 돌아오는 그리트는 생기 없는 집안 분위기와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로 고달픔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도 전염병으로 가족이 격리되기 전에 행복한 짧은 순간이었다. 푸줏간 피에터의 도움으로 가족의 소식을 듣고 몇 주뒤에 들른 집은, 이제 부모님 두 명만 남았다. 어린 아그네스가 죽은 것이다.


더 생기가 없어진 집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 아그네스는 프란을 찾아 집에 방문하는 등 노력을 하지만 자신도 이미 화가의 집에 더 익숙해진 걸 느낀다. 화가의 작업실을 언제나 처럼 정리하던 그리트는 옵스큐라같은 신기한 기계를 발견하기도 하고 화가와 대화를 나누고, 결국엔 그의 물감을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집안의 실세인 화가의 장모는 그걸 알고, 딸을 기만하는 행위이긴 하지만, 화가의 작업 속도가 빨라진 걸 눈치채고 묵인한다. 먹여야할 아이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으니.


문제는 누구나 우려했듯이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기류가 흐른다는 것. 허긴 어찌 이렇게 예쁜 여자 애한테 제 아무리 애처가라도 안 반할 수 있겠냐만은. 하필 색에 감각까지 있는 소녀와 화가는 뭔가 통하는 느낌까지 받는다. 원체 말수가 적은 베르메르의 행동만으로 그의 기분까지 아는 그리트는 좋은 어시스트이자 하녀다. 한편, 화가의 후원자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약간 겁에 질린 것 같은 그리트에게 꽂히고 자꾸 자신과 그리트를 그림에 등장시켜달라고 끊임없이 조른다. 


후원자 판 라이벤은- 실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녀들에게 이미 지분거리고 애까지 임신시킨 경력이 있는 호색한이다. 화가와 수완좋은 장모는 그리트를 지켜주겠다 맹세를 하지만 그들도 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결국 그리트만 등장 시키기로 합의를 보고 몰래 몰래 그리트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하녀 복장 대신, 그리트, 그녀 자체를 그려주겠다 한다. 그리트는 매우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근히 기쁜 마음이 든다. 푸줏간 아들 피테르는 그 사이 그리트의 가족과 식사까지 하면서 적극적인 구애를 한다. 피테르는 금발 머리가 곱슬거리는 잘생긴 남자에다 성격도 수더분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지만 그리트는 자꾸만 화가의 깨끗하게 하얀 손과 피테르의 동물의 피로 물든 손톱 때를 비교하게 된다. 열일곱살. 우리나이로 하면 열아홉살이 된 소녀라면 역시 남자의 외면,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나이인 것이다. 아무리 성숙한 그리트라고 해도 예술적인 화가 스승님과 울끈불끈한 푸줏간 남자 사이에서 뭔가 있어보이는 스승님을 사모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리트는 울 것 같은 마음으로 그의 캔버스 앞에 앉는다. 어깨 너머로 그를 보고 때때로 입술에 침을 묻힌다. 그림이 완성되고 그리트와 화가는 모두 그림에서 뭔가가 빠졌다고 느낀다. 그러다 베르메르는 자신의 부인이 하고 있던 큰 진주 귀고리를 본다. 그리트는 불안감을 느낀다. 이 훌륭한 어시스턴트는 그가 요청하기도 전에 자기는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지만 완벽한 그의 방식을 추구하는 베르메르는 그리트를 압박한다. 결국 이틀치의 삯을 치르고 귀까지 뚫는 그리트.


훌륭한 모델이던 그리트는 젊은 안주인의 귀고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앞에 앉는다. 하필 그 날은 그리트의 열여덟살 생일이었고 피테르는 모두의 앞에서 자신과 결혼을 해서 이 집을 나가자고 한다.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다시 올라온 그리트는 마리아 틴트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림을 완성시킨다. 이제 그림만 말려서 후원자를 가져다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임신한 젊은 안주인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거의 미칠지경이 되고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리트를 진주 도둑으로 몰아 세우려 하고 그림을 찢으려고 하지만 화가의 재빠른 대처로 칼은 바닥에 나동군다. 그리트는 그 날, 화가의 집을 나온다.


다행으로 푸줏간 안주인이된 그리트. 곧 화가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그의 장례식 장에서 그녀는 화가의 동명의 남자아이가 이제 말을 하고 못보던 아이가 태어난 걸 본다. 그리고 그의 유언에 따라 젊은 안주인한테서 귀고리 한 쌍을 받아온다. 


  

오랜만에 순수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다. 문학이 이름없는 사람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한다면, 이 소설은 완전한 문학이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이 그림을 수시로 보면서 몇 백년전에 살다간 어느 소녀의 고달픈 삶과 최고로 반짝이는 순간을 공유하면서 설렜다. 


작가는 베르메르를 정말 사랑했던 것 같다. 그의 그림만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짜낸 것을 보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에피소드 중간에 나오는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일 것이다. 하지만 젊은 안주인에게는 너무 박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어느 여자가 이런 플라토닉 러브를 허용할 수 있단 말이냐! 특히 잦은 임신으로 계속 고생했던 여자라면 오히려 난봉질을 하는 것보다 더 용서하지 못 할 수도 있겠다. (베르메르에게는 아이 11명이 있었고 그 중 한명은 금방 죽었다.)


그리트의 심정에 빙의되서 읽는다면 너무나 근사한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봐라봐준다고 생각만해도 가슴떨리는 일이다. 부인이 순간적으로 미쳐서 그림을 찢으려고 했다는 묘사가 심히 이해되는 느낌이다.


특히 블로그를 찾아보면서 베르메르의 생을 알아보면 더 재밌는 책이다. 


* 콜린 퍼스가 주연한 영화 <진주 귀고리 소녀>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라서 이해가 좀 어려웠다. 스칼렛 요한슨은 아직도 어울리는지 아닌지 참 미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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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학생 때 뭣도 모르고 이 영화를 봤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장면만 기억납니다. 그땐 그냥 예쁜 외국 여배우구나 하고 봤는데, 몇 년 지나서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ㅎㅎㅎ

뽈쥐의 독서일기 2016-03-28 19:13   좋아요 0 | URL
부끄럽지만 전 영화 내용 이해도 잘 못했어요..ㅠㅠ 확실히 스칼렛 요한슨은 남자들한테 선호도가 높은 것 같아요. 글래머한 스타일이라서 그런가..ㅎㅎ 전 스칼렛 요한슨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첨 봤는데 참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세계적인 배우가 되더라구요. 어릴 때 은근 성숙함 영화를 보고 대부분응 이해를 못했는데 나중에보니 이 영화도 꽤 훌륭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