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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에 너의 일상을 더해 - 일하며, 깨달으며 적어 내려간 삶의 지혜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5년 9월
평점 :
난 사람을 하나의 '우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아마 김형경인가.. 심리 에세이에서 쓴 표현이었는데 맘에 쏙 들었다. 어떤 사람을 알고 어떤 사람의 우주를 안다는 것. 사는 데 그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을 할 때 제일 재밌는 것이 사람 구경,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 풍경이다. 어떤 이들의 당당하고 여유있는 모습에서 세상에 이다지도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니 나는 지금껏 왜 이렇게 달달 볶고 살았나 억울하다! 라는 기분만 들면 세상은 정말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이들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거나 미움을 이유없이 표출하거나 해서 보고 있는 사람도 슬프게 만든다.
뭐 이런 게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너무나 흔한 일상다반사, 흔한 인생이다.
여행에서 다른 이의 삶을 잠시 훔쳐보는 경험을 강렬해서 더 지워지지 않고 인상에 박히지만 사실, 한 사람의 파편을 겨우 겉핥기로 본 것으로 저 사람은 행복한 사람, 저 사람은 불행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도 편협적인 자세일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제단하고 판단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도, 인생을 낭비하는 짓도 없다. 결국의 그런 일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싼 콘서트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국내에서 논란이 많았던 머라이어 캐리가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 쇼비지니스에 종사하는 미국인 특유의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던 말이 떠오른다. "I don't judge person."
이건 흔히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데려다 놓고 "누가 더 잘 생겼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선택 못 받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는 우문에 대한 현답으로 내 뇌리에 깊히 박혀 있다. (관전 포인트는 외국인들은 왜 웃는지 어리둥절한 상태.)
내가 몇 번의 연애와 실패를 겪으면서 남들에게 절대 "헤어져라"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듯이,(물론 거부할 수 없는 쓰레기는 논외로 친다.)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일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뼈와 살과 물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은 역시 매일, 일상이다. 일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료하고 쳇바퀴 같은 삶이겠지만 쳇바퀴는 모두에게 다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우주를 공유한다는 것은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일상은 따지고 보면, 항상 무료하고 지루하지만은 않다. 가끔, 한 순간의,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있고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도 있고 이불을 뻥뻥차는 순간도 (아주 많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자신의 일상에 대해 깔끔 똑 떨어지게 말하기 힘든 것 처럼 일상은 쭉- 이어져 있지만 단편적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만 생각 나는 경우가 많기에.
책은 일상에 대한 짧은 단상으로 이어져있다. 회사원으로 일하는 사회인인 동시에 에세이를 쓰고 소중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는 저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특별하지는 않지만 돌이켜 보면 특별한 짧은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머리에 한번씩은 스쳤었던 것 같은 깨달음이 기록되어 있다.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약간 손해보며 사는 게, 약간 지면서 사는 게 결국엔 이득이고 이기는 거라는 것. 엄마 말이 맞았다.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에 서슴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나 (p.35)
<늘 자기방어부터 하고 있지 않은지> 그러고 보면 누가 묻지 않아도 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원래 안 이런데, 어제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부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다크서클이 내려앉았어요!" (p.59)
별똥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진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p. 74)
우리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공격적인 말이나 비난보다 주변 사람들의 `위해서 한 말`,`걱정돼서 한 말`에 상처 받는다.(p.185)
<인간관계의 방정식> 무능하고 강퍅해도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 반대로 능력 있고 인품 좋은 사람이어도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게임오버. (p.193)
세상에는 어지르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있다. 어린아이와 엄마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그 역할은 수시로 바뀐다. 어지르는 역할을 맡았을 때, 우리는 치우는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p. 229)
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이여! 지긋지긋한 일상의 도돌이표가 면제된 꿈과 낭만의 섬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제주에도 먼지가 쌓인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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