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여왕의 기사(완결/전17권)
학산문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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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푹 빠졌던 순정만화. 한때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오래전 일이다. 그치만 이상한 향수는 남아서 가끔 그 때 봤던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다. 이제 취미생활에 돈을 쓸 수 있는 어른이므로. 만화잡지가 그래도 나오던 시기 파티였나? 이슈였나? 아니면 밍크? 잡지 이름도 헷갈리지만 만화잡지를 두근거리면서 보던, 폐간이라는 말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한달에 한두번 큰 즐거움을 주던 날이 있었다. 요즘은 왓챠니 뭐니 해서 만화책 마저 거의 안 읽지만 지금은 사정상 고립된 상황이라 다시, 여왕의 기사를 읽는다. 


웹툰이란 이름으로 한주마다 만화를 손쉽게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아날로그의 매력은 따라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이상하게 만화지에 만년필로 입히고 톤을 붙이고 하는 옛날식 작화를 보면 장인정신에 감탄이 들기도 하고 손으로 그린 펜선의 맛이 있어서 왠지 더 감동스럽기도 하다. 만약 장면을 수정하고 그래야 했다면 그 당시는 너무 힘들었을 듯. 몇 년전 봤던 허영만 작가 전에서 본 원화는 여기저기 화이트 등으로 땜찔이 되어 있어 조금 놀랐다. 그래도 멋있긴 멋있었음.


매주마다 작품내는 게 압박이긴 하겠지만 만화대여점에서 한 푼 못 받는 대신 정산은 확실하게 받을 수 있어서 수익구조 면에서는 확실히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다만 그 시절 흥행도에 비해 돈을 못 번 작가들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최경아 작가도 네이버에서 연재를 했었는데 전에 비해서 아주 매끈해진 선과 컬러풀한 작화를 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아주 매끈해진 그림에 비해 감성은 옛감성 그대로 였는데 사람이 변한건지 내 10대 시절의 감성이 이랬는지 여러가지 생각이 공존했다. 그러나 딱히 그 때의 감성이 그립지는 않았다. 사회생활 하는데 소녀 감성을 가지고 살면 그건 증멜.... 어휴...


순정, 개그만화 아니면 안 보던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살인 1회 이상 없는 작품은 보지 않는 취향으로 바뀌었으나 가끔은 저런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어서 사놓고 보고 있다. 만화책 가득 채워진 책장을 갖고 싶었던 로망이 있었지만 이제 절판된 종이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자리 많이 차지하는 것보다 좋기도 해서 이북 최고를 외치고 있다. 문명 만만세! 

(하지만 이북은 만화까지만 딱 인 듯. 텍스트는 왠지 읽기가 참 힘들다)


다시 여왕의 기사로 돌아와서, 여중생 유나는 오빠 셋이 있는 막내딸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슬프다. 엄마는 독일로 유학갔고 학교에서는 얄미운 연적이 생겨버렸다. 우울해 하고 있는 유나에게 오빠들은 돈을 모아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고 방학을 이용해 독일에 간다. 독일에서 엄마를 만나고 이웃집 훈돌이와 잠시 산책을 갔다가 다리가 삐끗해서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마는데.... 그리고 깨어난 곳은 어디지??


눈이 쌓인 황폐한 성에서 잘생긴 장발 기사가 그녀를 여왕이라고 부르며 보살펴 준다. 잘생겼지만 재수가 없어서 순정 만화의 클리셰답게 서로 잡아먹을 듯 싫어한다. 장발의 기사 리이노와 투닥거리면서 이상하게 기운을 차리면서 '판타스마'엔 봄이 오고 갑자기 생명들이 깨어난다. 그리고 여왕으로 추대된 유나. 이제는 어두침침한 외곽의 군주 리이노는 더 이상 그녀의 기사가 아니고 레온, 쉴러, 에렌이 그녀의 기사가 된다. 순정만화이므로 당연히 아이돌같은 외모와 캐릭터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사들. 무식하지만 순정적인 돈키호테형 기사 레온, 엘프족이라 여자보다 예쁜 외모와 자상한 성격에다 하프같은 것도 켤줄 아는 쉴러, 집안도 머리도 좋고 이성적인데다 섬세한 에렌. 뭐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배경은 판타스마이지만 독일일게 분명해서 예전 중세시대 기사들의 싸움, 여왕의 임무 등의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악의 정령과 싸워야 하고 마음이나 몸의 성숙이 있을 때마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하는 여왕의 모습이 이 이야기의 세계관이다. 기사들의 싸움으로 인한 위기, 로맨스 또, 연적의 존재로 강화되는 사랑 등 클리셰 범벅이긴 하지만 만화란 그림체와 대사의 예술. 파티에서 연재하는 동안 큰 인기를 누린 이유가 분명히 있다. 분명히 인기투표도 하고 그랬던 거 기억난다. 1위가 누구였더라. 기억나는 건 제일 잘생기고 자상하기만한 남자보단 나쁜 남자와 멍멍이 같이 순정적인 남자의 인기가 엄청났다는 것. 아이돌 중에 제일 잘생긴 멤버가 인기가 그냥저냥한 이유와 비슷하달까.


판타스마는 여왕이 있을 때만 모든 나라의 사람이 깨어 있을 수 있는데 만약 여왕이 어둠의 군주와 결혼을 하고 그러면 나라에 또 혹독한 겨울이 오기 때문에 모두 깊이 잠 오는 강력한 약을 먹고 동면을 취해야한다.(그런 약이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군) 그래서 이번에도 여왕이 나쁜(!!) 장발의 기사와 이어진다면 이제 판타스마의 미래는 담보할 수 없으므로 중책을 맡은 사람들은 세 기사 중에 여왕의 남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나쁜 남자의 유혹은 계속 되고... (물론 12세 이상 관람가이기 때문에 남자가 아주 지독한 놈은 아니고 나쁜놈이지만 사랑한다는 전제) 


또한 소녀 만화이므로 유나는 사랑에만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군주가 되려고 학교도 세우고 그런다. 왜냐 이 만화 주인공은 특.별.하.니.까. 그래야 소녀들이 감정이입을 무진장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순정만화의 재미가 없어져버린듯 하다. 어후, 결국 저런 위험한 놈을...ㅉㅉ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이제 순정만화 즐기기는 좀 힘들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작가님들은 보통 20-40대에 순정만화를 쓰는데 어떻게 저런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가 매우 존경스러웠다. 계속 말랑말랑하고 순수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남자는 매력적인 애보다 특별한 사연이 없는 무난하게 잘 자란 남자가 좋다는 얘기. 이거 경험인가?? 


요즘 같으면 #이세계물 #하렘물 등으로 분류가 될 듯... 그 때는 #판타지 #로맨스 #오각관계 쯤으로 표현되었으려나. 요즘 마라맛 표현에 비하면 전에는 표현이 아주 순한맛이었던듯. 또 요즘에는 '처녀성' 같은 걸로 예민해진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결혼한 엄마가 자아를 찾는다고 유학을 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일. 어떻게 보면 진일보한 이야기랄까. 그러니까 김강원 쌤 빨리 만화계로 돌아와요ㅠㅠㅠㅠ BiBi아이리스도 마지막작 I.N.V.U 도 재밌게 읽었단 말예요ㅠㅠ


완전 상관없는 이야기) '처녀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학동기가 사주보러 갔다가 사주쟁이가 네 사주가 아주 남자를 높여주는 사주라고 하면서 아주 탐이 난다며 잘 해보잔 식으로 말했는데, 그 '잘 해보자'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재차 확인했다고. 당황한 동기가 자기 지방에서 와서 집에 돌아가야 된다고 하니 너무 아쉬워하더라면서.... 복비도 하나도 깎아주지도 않고 현금으로 받았다고. 돈내고 성희롱 당하고 뭔짓이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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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의 [pink]를 읽고 나서 산 책이다. 한 권이라 [헬터 스켈터]와 함께 일본어 공부도 할 겸 굳이 원서로 구입했는데 이제는 안 보는 사람의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번역판으로 재구입했다. 원서가 절판되기도 했거니와 2주 넘게 기다려서 받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은 다시 사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알아서 버려 달라고 했지만 절판이 되고 보니 당장 보지 않아도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그래도 자존심 때문에 말 못했다. 우쒸, 뭐 굳이 원서로 볼 필요가 있다고. 그 사람의 성격으로 봤을 때 관계가 끊어지면서 당장 버렸을 것이다. 게다가 ‘겨우’ 책 한 권 달라고 연락하면 내가 너무 미련 뚝뚝에 구질구질 해보이잖아.

하지만 오카자키 쿄코의 작품을 보고 너무 감동했으므로... 몇 장 읽지 않은 [리버스 에지]를 읽어보지 않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국어로 읽기를 잘했다. 속도가 10배는 빠르므로. (부끄럽다)

[pink]의 띠지에 “만화를 문학의 반열에 올려놨다”는 평이 있었는데, 이건 과언이 아니다. 그림이 있는 문학이다. 한때 만화를 미친듯이 읽은 사람으로서 만화를 얕잡아 보는 것도 싫긴 하지만 좋은 만화는 그저그런 문학보다는 늘 좋다. [리버스 에지] 또한 문학이다. 읽을수록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나 장면을 계속 곱씹어 보게 된다.

줄거리는 아래. 의도치 않은 스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책을 먼저 읽어보세요~

뭔가 넉넉하지 않은 동네(공단 아파트인 듯)에서 엄마와 둘이 사는 고등학생 하루나. 하루나에게는 불량한 남자친구인 간논자키가 있는데 학교에서 간논자키는 불량한 무리와 함께 심심하면 예쁘장하게 생긴 동급생 남자애 야마다를 괴롭힌다. 이 새끼 호모잖아-! 교장 할버지랑 그렇고 그런 사이래.

씩씩한 하루나는 적극적으로 이들을 말리면서 공식 연인인 간논자키에게는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부아가 난 이들은 야마다를 더 심하게 괴롭히고, 급기야는 야마다를 묶어 캐비닛에 가두고 하교 해버린다. 하루나는 시체 안치소 같은 밤의 교정을 혼자 야마다를 구하기 위해 가고, 이를 계기로 둘은 친해진다. 이미 둘이서 남 모르게 교정의 새끼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는 사이이기도 했고. 야마다는 목숨을 살려줬다 생각한 탓인지 자신이 가진 비밀을 하루나에게만 털어 놓는다. 나 게이맞아,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애는 위장이고.

그렇게 한껏 떨은 야마다는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하루나는 심심하면 양호실에서 잠을 잤고 거기서 모델활동을 하는 고즈에를 본다. 예쁘고 마른 고즈에의 비밀은 ‘먹토’다. 고즈에는 구석진 자리에서 몰래 많은 것을 꾸역꾸역 먹고 다 토한다. 공기처럼 숨어 있던 고즈에는 간논자키가 하루나에게 억지부리는 것을 다 듣게 된다. 작년 가을, 간논자키와 함께간 여행에서 하루나는 첫경험을 했고 생각보다 이상함을 느꼈으며 이제는 간논자키가 싫어졌다. 하지만 간논자키는 더 소유욕을 느꼈는지 하루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하루나가 감싸는 야마다를 더이상 가만히 놔둘 수 없다. 야마다는 눈이 돌아버린 간논자키에게 심각한 린치를 당했고 그로 인해 둘은 학교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된다. 또 하루나는 야마다를 구해준 것이다.

그래서 야마다는 비밀을 모두 하루나에게 털어 놓는다. 내 보물 보여줄까? 저녁에 잠깐 나와. 같이 풀숲으로 뒤덮힌 강변의 공터로 가자. 하필 따로 만나는 장면을 학교 아이들에게 들킨다. 그 날 저녁, 하루나는 백골의 시신을 보게 된다. 신원미상.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지. 야마다는 시체를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얻어터지고 울면서 절망했을 때 찾았던 시체는 평소 살았는지 죽었는지 헷갈리는 야마다에게 용기를 준다. 그리고 이 시체를 아는 사람이 또 한명 있다고 했다. 바로 고즈에. 고즈에도 시체를 보러 가끔씩 온다고 했다.

엄청난 비밀을 공유하게 된 세 사람. 그렇다고 해도 일상은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학교 애들이 이상한 괴소문을 듣고 공터를 뒤집으러 몰려오기 전까진. 금괴가 묻어 있다나 뭐라나. 학교 아이들이 공터로 몰려와서 땅을 헤집으려 하자 이들 셋은 시체를 깊숙히 묻기로 한다. 이제 모든 걸 공유한 이들은 시체를 보며 느꼈던 첫 감상을 이야기한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하는 고즈에는 처음에 ‘꼴좋다’고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왠갖 멋진 척 다 하는데 어차피 니들도 도망칠 곳은 없어, 꼴좋다고. 한살 어리면서도, 먹은 것을 다 토하면서도 가정을 부양하는 고즈에의 감상은 이렇게 냉소적이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들. 이제 주변인들이 문제다. 하루나의 친구, 인기쟁이 루미는 실은 간논자키와 그렇고 그런 사이다. 엔조이라 생각해서인지 원래도 개차반인 간논자키는 루미에게는 조금도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간논자키의 집 안에서 불었던 폭풍을 알고 있는 사람도 루미고 간논자키의 비밀스런 사업, 형한테 있는 열등감, 그리고 하루나에게는 좀 더 조심하는 것 까지 알고 있는 것도 루미다. 공식적인 연인은 아니지만 뒤에서 할 거는 다 하고 있는 그들은 공터에서 싸움이 나고, 간논자키는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혹시 자기의 아이를 가졌을 수도 있는 루미의 목을 조른다.

새 시체가 나왔다고 흥분한 고즈에는 하루나에게 루미가 죽었다고 말하고 그들은 시체유기를 하러 공터에 간다. 하지만 시체는 사라져 있었다. 혼란스러운 간논자키는 불안한 마음과 야마다와 특별한 사이였다는 질투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을 육체관계로 해소하고자 한다. 불안과 떨림이 섞인 혼란스러운 섹스는 그 밤 몇 번이고 계속된다. 그리고 그 밤, 하루나의 방은 누군가에 의해 불타고, 남의 방에 불을 지른 그 아이는 스스로도 불태운다. 그리고 또 그 시각, 살아 걸어간 시체 루미는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 나쁜 히키코모리 언니의 역린을 건드리고 울분에 쌓여 있던 언니는 커터칼을 든다.

“참극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참극은 천천히 서서히 준비된다. 진행된다. 시시한 일상, 지루한 매일 가운데. 그것은- 그러다 그것은 풍선이 펑 터지듯 일어난다. 펑 터지듯.(p.196)”

이들에게는 여러 곳에서 참극이 펑펑 터지는 밤이었다. 간논자키와 하루나에게는 속 안에서 무언가가 끊긴 느낌이었을 것이고, 루미에게는 어쨌든 아이를 잃고 본인이 소중한 사람 취급을 못 받았던 것을 확인했던 밤일 것이고, 야마다의 위장 애인은 살인미수와 살인(자살)이 같이 자행된 밤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간논자키니까. 나한텐 간논자키가 가장 소중해. 미안해. 지금까지 말을 못해서. 응? 응?

거짓말이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거짓말을 해왔지만 이건 심하다. 가장 심하다.(p. 204)”

참극이 터져버린 밤 이후, 하루나의 방은 불타고 모녀는 공단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루미는 아이를 잃었다. 그리고 곧 학년이 바뀐다. 고즈에는 연예계 활동으로 학교를 그만둘 것이고 하루나는 전학을 갈 것이고, 야마다의 짝사랑 선배는 학교를 졸업한다. 참극이 일어난 이후, 간논자키는 어쩐지 어른스러워졌다.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이사를 도와준다. 그리고 야마다는 이별 선물로 음악 CD를 선물하면서 이 둘은 마지막으로 같이 다리를 걷는다.

“...야마다는 까맣게 타지 않으면 사람을 좋아할 수 없어?
그렇진 않아. 나는 살아있는 와카쿠사가 좋아. 정말이야. 와카쿠사가 떠나서 정말 슬퍼.

눈물이 뚝뚝 강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숙였다. 야마다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를 죽였다. 야마다에게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새끼고양이가 죽었을 때, 큰소리를 내며 토할 듯이 울었더랬다. 그때는 너무 슬펐지만 기분은 시원했다. 지금은 괴롭다. 가슴이 그저 먹먹하다.(p.233-234)”

자의식 과잉일 수밖에 없는 10대 시절은 홀로 격정적이여서 이런 식의 드라마를 꿈꾸곤 했다. 하지만 저런 참극없이도 조금 마음줬던 사람하고 헤어지기만 해도 흔들리는 유리멘탈 소유자라서 하루나처럼 저렇게 씩씩하게 눈물을 삼킬 수도 없고 외부의 풍파에도 우정을 지킬 수도 없을 것 같다.

오카자키 쿄코의 주인공들은 겉보기엔 여리지만 속은 단단한, 어떤 불행이 와도 자신만은 꼭 지키는 캐릭터라 비극적인 결말 와중에도 늘 어떤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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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1-02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나요.
뽈쥐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21-01-02 16:56   좋아요 1 | URL
어머.. 이렇게 오랜만에 왔는데..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서니데이 님도 올해 더 알차게 보내셔요~*^^*

scott 2021-01-02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2021년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로 가득채우시길 바랍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21-01-02 16:57   좋아요 2 | URL
앗 정말 넘나.. 반갑네요. 이제 다시 독서일기를 써볼까 하는데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콧님도 올 한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보다 좋은 날 보내시길...*^^*

scott 2021-01-02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얼마나 돌아오시길 기다렸는데 깜찍한 사진에 재능 많으신 뽈쥐님 아프신데 없죠 반갑 !
 
굿즈 만들기 요럴 땐 요렇게 -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로 손쉽게 따라 하는
김진하 지음 / 영진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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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을 뽑으라면 멋지게 마가렛 애트우드, 밀란 쿤데라같은 걸출한 작가 이름을 대야하지만 요즘 내 인생을 바꿔준 건 실용서에 가깝다.

물론 이 책을 보고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아니고 만들고 싶어서 책을 샀다는 게 맞지만. 나같은 초보는 책만 보고는 힘들고 저자의 유투브와 블로그도 참고했다. 역시 정보화의 시대!

비록 시작은 스티커지만 끝은 떡 메모지와 키링과 그립톡과 뱃지와 까께오톡 이모티콘과 그리고 이 모두를 거느린 사장이 되리라ㅋㅋㅋ

벗, 생산적인 활동은 열심히하지만 긴 글을 점점 못 읽는 어른이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책 한줄도 안 읽고 그림책만 읽는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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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성수선 지음 / 오픈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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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토요일 3개월만에 뿌리 염색과 커트를 하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예전에는 누가 머리 만져주는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좀이 쑤시고 특히 근황 토크가 고역이다.

미용사가 머리만 잘 하면 된다지만 커트 한끝이 다른 짧은 머리 스타일도 아니고 어차피 ‘머완얼‘(머리 스타일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한 때 실력은 있지만 너무 사생활을 캐내려하는 분에서 지금 선생님으로 바꾼 전력이 있다.

그만큼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과의 근황 토크가 힘들다.

아무리 내가 돈을 내는 쪽이라지만 상대편은 가위를 들고 있으니... 미용실 가는 게 은근한 스트레스다.

지금 선생님은 크게 뭘 묻지 않는 담백한 스타일이여서 부담없이 내가 가져간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이번에 고른 책이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다.

에세이의 미덕은 머리를 식히면서 가만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루한 염색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이번에는 잡지 대신에 맛있는 에세이집을 골랐다.

먹는 이야기를 머리를 자르면서 읽으려니 몇년 전에 갔던 미용실에서의 일화가 생각났다.

경기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친구 추천을 받은 미용실에 갔다.

그 미용실로 말할 것 같으면 장사가 너무 잘 되서 다른 일을 하던 딸도 미용 기술을 배워 2대째 가업을 이으며 업계에서는 드문, 일한만큼 가져간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후진 양성까지 한다는 훌륭한 미용실이었다.

소문에 비해 커트 값은 합리적이었고 주인 모녀가 타는 차도 외제차로 바뀌었다는 소문에 백 퍼센트 믿고 간 미용실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예술적인 가위질보다 주인의 금가락지에 가게의 문전성시를 판별하는 나는 속물이라네.)

2세로 보이는 분이 내 머리를 잘라주며 크게 불쾌한 것 없이(이 기술이야 말로 서비스업의 꽃이아닐까) 내 신상을 조금 늘어놓게 됐는데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닭갈비를 먹으러 춘천까지도 가면서 왜 머리 자르러 경기도까지 오는 게 이상해요?˝

그 말에 나는 천 안에서 손뼉을 짝 치며 그렇네요!라고 눈썹을 움직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그만큼 맛집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닌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게 참 이상하면서도 당연했다.

닭갈비 먹으러 춘천이야 갈 수도 있지. 그건 너무 당연한 게 아닌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작가가 ‘겨우‘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러 목포에 가고 쫄면 한 그릇을 먹으러 태백에 가고 순대를 먹으러 제주도까지 내려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한테 손에 꼽을 맛집 하나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 나는 여태까지 뭐하고 살았나.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메뉴를 바로 말하지 못하다니 삼시세끼 먹고 살면서 대체 나는 뭘 했다는 말인지.

올해 여름 운동 대회를 나간다고 약간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하면서 한번 입맛을 잃었더니 이상하게 요즘은 뭘 먹어도 시큰둥하다. 건강해지자고 한 운동을 무리하게 했더니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져 버렸다.

그랬더니 디자이너 선생님이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말한다.

˝머리가 많이 빠지셨어요. 저번에 오실 때보다. 저번이랑 약도 똑같이 탔는데 약이 남았어요...˝

충격. 머리숱 만큼은 적지 않다고 자부해왔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지금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며 비오틴을 먹니 비타민을 먹니 검은콩을 먹니 비상상황에 빠져있는데...

˝몸이나 마음이 허할 때 우리에겐 가끔 진한 고깃국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깃국물을 처방해 주거나 사줄 친구가 필요하다. 힘없는 손에 수저를 쥐여 주며 어서 먹으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식당의 매출고가 객당 단가와 좌석 회전율로 결정된다면 행복한 인생은 좋은 친구들과 좋은 만남의 선순환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요즘 부쩍 지치고 힘없는 친구에게 고깃국물을 사주자. 당신도 누군가의 명의가 될 수 있다.˝ p.208

머리숱이 줄었다고 비관했던 게 시합 끝났다고 소고기 사주고 그간 금주 때문에 괴로웠겠다며 열심히 소맥을 말아주던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니 무척 낯 뜨거웠다. 머리숱 줄었다고 징징거리니 빈말이라도 잘 먹고 다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겠다.

확실히 행복한 돼지였을 때가 주변 사람들에게 훨씬 유들유들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시 건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스스로에게도.

책에는 작가가 애정하는 음식점에 대한 찬사에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300페이지가 빼곡히 차 있다.

이쯤되면 음식 이야기는 약간 핑계인 것 같다.

제목처럼 먼저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로 밑밥(?)을 깔고 회사원으로서 사회생활의 꿀팁을 전수해주기도 하고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먹으면서 얘기하다 보면 어떤 얘기도 다 할 수 있으니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이 말은 자기계발서에 단골로 등장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간절함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간단한 산수‘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명 모델의 사진을 붙여 놓고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5킬로 그램 감량을 원한다면 일주일에 0.5킬로그램씩 10주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책을 내고 싶으면 책상 위에 ‘베스트셀러 1위‘, ‘100만부 돌파‘ 같은 거창한 목표를 써놓고 간절히 원하는 대신 매일매일 일정한 분량르 써야 한다. 무엇을 하든, 간단한 산수가 먼저다.˝ p.81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처럼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하나 분명한 건, 우울할 때 먹는 음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후회와 죄책감만 남을 뿐. 자꾸 싸구려 위로를 찾아 헤매지 말고, 감기처럼 우울한 감정도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면서.˝ p.191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며 낯선 여행지의 스타벅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나는 순간 마음이 놓이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난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어던 경우라도 최소한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 감정적으로 쉽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쁜 남자‘ 따위 아무리 잘생기고 돈 많고 매력적이라고 해도 싫다. 앞에서는 까칠하게 굴지만 뒤에서는 챙겨주고 위해주는 ‘츤데레‘도 싫다. 피곤하다. 밀당같은 소모적인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p.229-230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어서 먹으라고 먼저 숟가락을 쥐여주는 사람이고 싶다.

사족 1. 결국 친구따라 간 그 미용실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부담스럽지 않는 미용사 님의 입담도 좋았고 확신에 찬 시원스런 가위질도 다 좋았는데... 층 많이 내지 말아달라는 내 주문에 레이어드 컷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덕분에 머리는 가벼웠어요...

사족 2. ‘이름을 불러주세요‘ 꼭지에 나오는 마파두부 이름의 뜻을 읽고 너무 속상했다. 누구나 사랑하는 메뉴를 만든 대단한 사람이 죽어서까지 곰보로 불려야 하다니.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시기(90년대생 아님) 무려 학습 만화에서 나름 배려 있다고 생각한 아이가 빵집에 가서 곰보인 종업원에게 소보루 빵을 달라고 머뭇거리며 ˝소보루 누나, 곰보빵 주세요.˝ 라는 말이 버젓이 실려 있었다. 당시에도 좀 충격을 받았는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이게 무려 30년이 안 된 일이라니. 그런데 좀 발전하고 있는 건 맞나? 의문스럽다.

사족 3. 지금은 아마 종영했을텐데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진행했던 ‘캄브리아 궁전‘이라는 방송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경제인들이 나와 그 분야의 동향이나 식견 등을 보여주는 매우 알찬 프로그램이었다. ([무취미의 권유]라는 책이 이 프로그램의 결과물인지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류의 비즈니스 잠언집‘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읽어보시길)

이상하게도 부동산 분야나 IT 분야의 고수들의 표정은 우리 본부장님보다도 근엄해서 신뢰는 갔다. 반면 빵공장 사장님과 프랑스 요리 쉐프의 표정은 너무 밝고 귀여워서 저 사람들이 비즈니스 전선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던 사람들일까 의심되기까지 했다. 요리에 이상한 마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주방일이 굉장히 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책에 나오는 유명 쉐프 왕육성 쉐프와 여경래 쉐프도 그 분들의 삶의 역경을 알기 전까지 너무나 인자한 인상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놀라웠다. 다시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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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않고 돌아온 각설이, 뽈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민음사에 감사인사를 올리러 왔사옵니다.

아래 2권 부들부들 떨면서 읽고 문학상은 합당한 결과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축하메시지를 남겼나?

그리고... ㅜㅜㅜㅜ

민음사, 황금가지 고맙습니다. 갑작스런 서프라이즈! 너무 좋아요. 좋은 책 내주시고 선물도 주시니 알라디너로서 어깨가 으슥으슥.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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