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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 세대 -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올리버 예게스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반전이 없는 게 반전' 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결정장애 세대는 '개성이 없는 게 개성'인 세대다. 결정장애라는 말은 처음에는 '우유부단'을 바꿔 말한 것 같았으나 너무 많은 선택지 때문에 결정을 미루거나 결정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느낌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내면에 흐르는 것은 '회의주의'나 '미온(?)주의' 정도가 공통점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봐도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한 애들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쾌락주의, 개인주의로 비판을 받고 있는 나지만 생각보다 그런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에 은근한 안도감이 든다.
"인생은 실전이야 X만아~" 라는 유행어가 한 때 인터넷을 떠돌았었다. 알아두면 유용한 표현이다. 그건 실제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어떤 세대에게나 그렇겠지만 물건이나 애인(?) 문화생활이든 즐기고 살 수 있는 자유는 넘쳐나는 젊은 세대이지만 시간, 일자리, 방향의 자유가 없는 지금의 세대에게는 인생은 진짜 실전이 되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언니들의 대학생활을 보고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땡보같은 대학시절을 보내서 빌빌 대고 있지만.. 엄청 열심히 살았던 친구들도 매일 우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인생은 실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결정장애 세대인 나에 대해 말하자면 페이스북 유저로 SNS를 사용해서 내 사생활을 떠 벌리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페타(PETA) 페이지를 팔로잉 하고 있으며 몸 생각을 끔찍히 하는 편이다. 한 때는 유기농 주의자이기도 했고 화장품이나 제조식품의 성분을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다. 채식주의자가 되고는 싶지만 언제나 박약한 의지 앞에서 좌절하는 중이다. 한 살 많은 같은 결정장애 세대인 우리 언니는 서른이 넘으면 채식주의자가 되겠노라는 말도 안 되는 선언을 하는 고기러버이고 왠갖 종류의 다이어트를 온 몸으로 체험하는 다이어터이기도 하다.
미션스쿨을 졸업하고 힘들 때마다 교회를 가보는 등 자매님이 되기 위해 시도를 했지만 끝끝내 신을 믿지 못하는 불쌍한 어린양이고 틈틈히 스님들이 쓴 힐링 서적으로 마음을 달래는 비신자다. 종교는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꼭 애정을 가져야만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여자도 아니다. 공식석상에서 모피를 입고 나오는 연예인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몸에 피트되는 예쁜 운동복을 몇 벌 갖고 있고 언제나 요가같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몸에 대한 생각은 끔찍 하지만 여전히 술을 좋아해서 과음하는 습관을 못 버리고 버릴 생각도 크게 없다. 언젠가 요리로 유명한 블로거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가족들이 음식에 손대기 전에 '잠깐!'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도 취미 중 하나이다.
내 소망은 누구나 그렇듯이 내 소유의 방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안정을 추구하는 결정장애 세대는 다 그렇다고 하니 어떤 면에서는 안심이 된다.
작가는 젊은 세대가 이렇게 개성없이 된 이유를 '신자유주의'와 68운동의 부작용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은행의 비도덕성이나. 책은 우리 세대가 왜 이렇게 됐는지, 우리 세대가 정확히 어떤지 면면히 분석하지는 않는다.(못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근 300페이지를 이어가고 있다. 엄청난 재능이다.
작가의 묘사는 꽤 예리하다. 주절주절 읊은 것 같은 부분도 꽤 있지만 몰개성한 세대를 묘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지 않나. 시니컬한 사람이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을 왜 이리 풀어 놓은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모순된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음식(채식주의)에 대한 인식, 성에 쿨하게 되면서 오히려 '진짜 관계'에 들어서지 못하는 세태나 몸 관리를 징글징글하게 하는 지금 세대에 대한 묘사는 공감의 끄덕임을 유도한다. 작가도 결정장애 세대답게 자기 어필을 참 열심히도 한다. 주제에 대한 쓰면서도 주기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손을 번쩍 번쩍 드는 발표에 재미들린 아이가 생각나는 패턴이라 웃음이 비식비식 나오기도 한다.
* 결정 장애가 거의 다 읽었다고 하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을 아직도 읽지 못 했다. 꼭 읽어봐야지.
근데 나 예전에 영화 [치킨런]을 보고 펑펑 울며 그 날 저녁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을 국물에 밥까지 싹싹 비벼 먹는 나를 어이 없는 표정으로 보았던 언니는 그 사건을 아직도 놀리는데... 조용히 읽어야 겠다.
* 서양인에 대한 생각이 너무 획일적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그들은 부당함에 싸우고 내키지 않으면 일을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들도 부당함을 겪으면서 일을 덥석덥석 하는구나. 이 경우에는 독일인이라고 해야하나? 독일의 실업률이 낮은 것은 그들이 낮은 임금과 대우에도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돈은 누가 버는 거지? (+ 그들도 부모가 교수실까지 전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너무나 나약한 세대라는 건 인정하는 바다.)
* 책 서술 방식도 '결정장애 세대' 그 자체다. 키워드로 풀어내기는 하지만 항상 극단적인 반대 상황이 있기 때문에 확정적인 답은 없다. 객관적인 숫자 자료같은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꽤 정확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미로 보는 혈액형 성격 같은 느낌이긴한데 한편으론 아주 씁쓸하다.
청년기가 이제 더 이상 일종의 유예기간, 그러니까 실험기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p.41)
외면적으로는 털갈이를 했지만 내면은 그대로다. 우리는 지금도 늘 돋보이고 싶어 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다른 사람도 중요하게 여겨주길 바란다. 그 결과는 질투심이다! (p.66)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은 예수님이 배달하는 것도 산타클로스가 몰래 갖다 놓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계몽이고,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주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계몽이다. 한 사회가 교회의 예속이나 독단적 교리 혹은 아편과도 같은 미신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계몽이다.(p.123)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경직되어 있어요. 사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죠. 금기시되는 분야가 달라졌을 뿐. 예컨대 요즘은 우물쭈물하는 게 금기 사항에 속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성적으로 호탕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행에 뒤쳐지지요. 모든 게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가 뭔가를 거부하는 건 금기에 속합니다." (p.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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