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잡지의 인격이라는 어떤 칼럼을 봤다. 일본 사람이 쓴 글이라 우리나라와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점도 있었지만 잡지의 선호로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골지의 이야기였다. 혈액형론 만큼이나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잡지는 [코스모폴리탄], [그라치아], [싱글즈].. 가끔은 [마리 끌레르]도 좋다. 쉐프, 레스토랑 중심 말고 가정 요리 중심인 요리 잡지랑 또 가끔은 [페이퍼]도 읽는다.
[코스모폴리탄]이야 그들이 지향하는 3F(Fun, Fearless, Female) 표어에 끌리는 것도 있고 독자 투고란이나 섹스칼럼이 활발하다는 점도 좋았다. 뭣 보다 화끈한 어조가.. 부끄부끄.. 하지만 읽는 순간엔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을 준다.
[그라치아]야 저가격에 한달에 두번 나오는 점도 기대가 되고 일단 무엇보다 가볍다. 그래서 더 알찬 느낌이 든다. 여러 잡지책을 사도 [그라치아] 리뷰를 자주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기사 사이에 틈이 적어서 좋은 기사를 덜 까먹어서다. 두 번 나오는 만큼 최근 이슈에도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도 최대 장점. 운동, 다이어트에 관한 기사가 충실한 것도 맘에 든다. 나도 적지 않은 나이인데 왠지 연령대가 2-3살 나는 느낌은 있다. 뭐.. 곧 해결될 문제지만..ㅠㅠ
[싱글즈]는 옷보다 화장품 중심이라 뭔가 더 친근하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기야 하겠지만 오롯이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하는 싱글을 위해 태어난 잡지라 그런지 제태크같은 실용적인 정보도 더 많은 것 같다. 광고 사이사이에 깨알 같은 정보를 잘 찾아서 스크랩을 해 둘 때가 많다. 가끔 여행 부록도 좋다. 제주도는 도움을 좀 받았다
[마리끌레르]는 예~전에 월드리포트가 멋있는게 정말 많았는데 요즘은 좀 약해진 느낌이다. 오지? 아무튼 여권이 낮은 나라의 결혼 문화를 소개하거나 정말 특이한 직업 여자 투우사 같은... 정말 읽으면서도 약간 독립영화 비스무리한 것을 본 것 같은 느낌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한 방이 아쉽다. 뭐 다시 멋있어지겠지.
다만 아쉬운 건... 우리나라 태생의 잡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잡지 창간이 결코 쉬운 게 아니란 건 알지만 아쉬비.. 그렇다고 쎄씨는 너무 아이돌 중심이라 읽기가 좀 그렇다. 중딩 때 자주 읽었는데. [신디 더 퍼키]가 사라진 건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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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고른 잡지는 [하퍼스 바자]. 왜 다른 잡지 얘기만 줄줄 언급했냐면... 고백하건대... 나는 속물이다. 좋다 좋다 하는 잡지 선택은 언제나 그 달의 '부록'에 무너지고 만다. 사실 얼마전에 독립 잡지를 하나 샀는데 부록도 없으니 왠지 속상한거다. 그래서 다시 패션지 구매자로 복귀. 이제는 그냥 속물이라고 인정하련다.
이번 달 부록은 대림 미술관 전시권 1매와 [하퍼스 바자 아트]. 디자인도 깔끔한 티켓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괜시리 뿌듯한 마음이 든다. 물론 이것 때문에 산 건 아니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린다 맥카트니]전의 입장료는 5,000원 정도를 형성하고 있으니 뭐 크게 이득 본 장사는 아니다. 이번 달 바자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하퍼스 바자 아트] 때문이다.
나는 [하퍼스 바자] [보그] [W]를 동류로 묶는다. 좋게 표현하면 하이패션, 나쁘게 말하면 허세. 좋게 표현한 하이 패션도 나랑 상관은 없는데다 외래어를 남발하는 정체모를 글 때문에, 가볍지 않은 무거운 문체 때문에 피곤할 때가 있어서 거의 안 산다. 내가 수준 낮아서 이해 못하는 패션 화보도 그닥 관심이 없는데다 아무리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이른바 '패피'들의 이야기를 아무 설명도 없이 줄줄 쓰는 데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름도 관계도 잘 모르는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와 편집장과 뮤즈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머리가 멍해진다. 히스토리를 좀 설명해 달라고!
또 말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겨우 굶어 죽지 않게 먹는 깡깡마른 모델만 기용하는 이중성도 되게 얄미웠다.
결국 하이패션과의 관계 개선은 이뤄지지 못하고 얼른 다른 칼럼으로 뜀박질 한다. 그런 날이 올런지는 모르겠지만 샤넬 백을 시원하게 살 수 있는 날이면 화해가 극적으로 이뤄질 지도..
그래도 가끔 이들 잡지를 살 때가 있다. 부록이 괜찮을 때다. 대체로 이들 잡지는 부록이 없고 특히 마케팅 같은 걸하는 화장품을 주는 일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몇 주년 기념으로 화집같은 거 줄 때는 꼭 산다. 이 때는 잡지가 부록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좋은 화집이 온다.
아무튼 이번 달엔 부록을 보려고 잡지를 샀다. 그런데 은근 훌륭타. 여전히 어깨에 힘은 들어갔지만.
H&M, ZARA를 위시한 저가격에 디자인도 훌륭한 (가끔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레이션도 하는!) SPA 브랜드가 일반인에게도 퍼진 영향인지, 스트리트 패션이 주목을 받게 된건지 아님 얼마전 샤넬이 '코리아'에서도 국제적인 가격 정책으로 100만원 이상을 내린 까닭인지.. 럭셔리 브랜드도 매출 때문에 은근 콧대가 낮아져서 그런지 이들 잡지도 거품이 좀 빠진 느낌이 든다.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을 다루는 만큼 아직 어깨에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제 괜히 삐진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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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쉐프의 칼럼도 있고 <킨포크> 스타일의 탄생지인 포틀랜드에 대한 기사도 있었지만.. 젤 기억에 남는 건 '뮤즈'에 대한 기사. 럭셔리 패션 사업은 점점 이미지가 중요해지기도 하니 광고모델, 아니면 그들과 어울리는 셀러브리티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문고판 표지를 싸려고 잡지를 버리기 전에 항상 예쁜 광고 사진을 꼭 스크랩해두는 버릇 때문에 대충 '뮤즈'가 누군지는 알 것 같은데 국내 연예인이 아니라 친근감이 덜 들어서 그랬는지 큰 관심이 없었는데 한 때 지디가 샤넬쇼에 열심히 가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영향이 있겠다 싶다. 일본 유명모델 키코가 샤넬에서 디올로 '뮤즈'의 자리를 옮겼다고 해서 샤넬이 배신감에 치를 떤다는 기사를 보니 '뮤즈'를 너무 아름답게 생각했던 이십대 후반의 내가 넘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뮤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홍보, 광고 모델 정도였구나. 그들도 비즈니스라는 걸 망각할 정도로 마케팅을 잘 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패션이 아무래도 예술과도 관계를 뗄 수 없다보니 정말 예쁜 사람들이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팍팍 주는 건 줄 알았다. 아님 영어가 짧았던 나를 비난해야하나?
기사는 홍보모델을 가장한 '뮤즈'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크게 보면 파트너십, 기업에서 그리 강조하는 충성 혹은 의리에 대한 이야기다. 결론은 당장의 이익을 보고 브랜드를 옮기면 최종적으로는 배신자같은 낙인이 찍히게 될 수 있고 브랜드도 '뮤즈'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것. 상황이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화장품 모델이 너무 한정적이고 몇명이 브랜드를 쉬지 않고 바꾸다 보니 이제는 가끔 헷갈릴 지경이지만.. 계열사가 같아서 그런지 휴지기가 없어도 별 타격은 없지만 말이다.
그냥 타고난 외모나 재능으로만 잘 사는 것 같은 그들이 사는 세상도 사는 법칙은 별 예외는 없어 보인다. 물론 보통 사람들과 생활 수준은 엄청나지만 말이다.
화보 촬영으로는 아나운서 백지연이 나왔다. 워낙 이목구비나 몸매가 시원시원해서 그런지 옷도 잘 어울린다. 인터뷰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하루에 글을 100쪽도 넘게 쓴다는 사실.. 반성해야겠다. 잘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노력도 엄청난 것 같다. 노력이 큰 사람은 질투도 못 하겠다. 저서가 벌써 10권이라고 하는데 부럽기 그지 없다.
근데 아직 한 권도 안 읽어 봤다. 기회가 있으면 몇 권은 읽어보리라.
그리고 유명 모델 코코 로샤의 [STUDY of POSE]라는 책이 나왔다고 하니 관심있는 모델지망생과 아티스트는 읽어보시라. 1000가지 포즈를 취했다고 하는데 조그만 이미지만 봐도 벌써 시원시원하다. 인터뷰를 보니 그 유명하고 유명한 '강남스타일'까지 연구했다고 하니... 이제 외국인 한테 '두유노 괭남 스타일?' 그만 하세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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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스 바자 아트]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장 필립 델 옴므의 루이비통 <트래블 북>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멍청하게도 (그럴리 없는) 그냥 서점에서도 파는 건가하고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권 당 면세점에서 4만원 후반대에 팔고 있다고 한다. 와우. 잡지에는 뉴욕편만 나와있는데 멋지긴 멋지다. 뭐 아무튼 이 정도로 비싼 화집을 조금 맛 볼 수 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리노베이션에 성공한 프랑스 '피카소 박물관'에 대한 기사도 있다. 장장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난 예산을 소비하고 비난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재건했다는데.. 파리에 또 갈 수 있으려나. 몰랐는데 한국 전쟁에 대한 그림도 있었네. 제목은 '한국에서의 암살(Massacre en Coree)'란다. 워낙 다작을 하셔서 그런지 몰랐다. 고야 그림과 구도가 비슷. 게로니카에서 보았던 특유의 슬픈 얼굴이 이 그림의 작가가 피카소란 걸 말해준다.
꽤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 양혜규 작가가 리움에서 전시를 한다는 소식도 있다. 코끼리를 소재로 하지는 않았는데 전시 제목이 <코끼리를 쏘다. 코끼리를 생각하다> 여서 그런지 영감을 받은 책을 두 권 소개했다.
로맹가리의 [하늘의 뿌리]와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설치미술과 추상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여서 그런지 관객이나 전시하는 장소가 꽤 영향을 미친다. 전시회 장소마다 다른 전시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가가 바로 오르한 파묵. 제목은 [순수 박물관]. 갑자기 궁금하다.
양혜균 작가의 전시는 리움에서 5.10까지 전시될 예정.
또 예술의 전당에서 (2015.03.23(월) - 2015.06.28(일))의 일정으로 열리는 '마크 로스코' 전도 꼭 가봐야 겠다. 예전에 수업 들었을 때 꼭 보고 싶은 전시였는데 서울로 오다니. 로스코 채플까지 있을 정도로 명상적인 그림이라니.. 꼭.. 꼭.. 가야겠다. 한 때 큐레이터과 전공 수업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공부하는 게 참 즐거웠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미술관에 통 안간다. 다시 내실을 충만하게 하는 문화 생활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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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 : 얼마 전 멋진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서울 패션 위크를 갔다 왔다. 그것도 VIP 티켓까지 받고. 푸쉬버튼 쇼를 관람 + 사진 찍는 거 도와주면서 끄트머리에서 감상을 했는데 디자이너나 브랜드, 모델에 대한 찬양이 괜히 심한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분히 일반인의 생각이겠지만 가끔 웃긴 스타일도 있기도 했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니 옷감이나 패턴이나 꽤 멋있었다. 게다가 창작이라는 일과 비평을 감수하고 창작물을 남에게 선보이는 건 보통 큰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생각보다 해외에서도 많이 오고 잘 알지 못하지만 넘 멋진 직업 모델을 입만 벌리고 구경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중국에서도 팬이 와서 싸인을 받고 그러는 걸 보니깐 허세부린다고 비난했던 내가 얼굴이 조금 화끈했다. 타인의 노력을 비웃은 댓가 치고는 값이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