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의 책은 두번째. 아직 가장 인기 있는 소설 [고백]을 못 읽어봤다. 도서전할 때 일하다가 교보문고의 파격세일에 져서 구매한 [백설공주 살인사건]을 아주 재밌게 읽어서 구매.

알라딘에서 미안한 말이지만 교보문고에서 앨리스 카드를 주는 바람에 금액 맞추느라 산 책인데 아주 재밌다. (알라딘도 구매금액 제한을 좀 낮춰줬으면... 뻑하면 5만원이래...)이래서 인기작가인가보다. 꼭 [고백]도 읽어봐야지.

개인적 취향으로는 [백설공주 살인사건]이 훨 재밌다. 미인은 죽어서도 팔리는 이 만연한 이치에 공감이 되어서 그런가. 살인사건보다도 더 끔찍한 언론과 세간의 관음증과 미인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지경이다. 왜 내가 괜히 목에 핏대를 세우는지는 모르겠지만서두...

인기 작가에다가 뻑하면 번역이 되는 일본 추리 소설인데 이상하게 번역이 안 된 이유는 아마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이 아닐까한다. 확실히 한자를 모르면 재미가 반감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처럼 한자, 한자 번역할 시간도 많이 주지도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한국식으로 이름을 번안하면 정말 잘 하지못하면 독자에게 욕이나 얻어먹기 딱 좋을 상황이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계약상 문제가 있거나!

두 책 다 등장인물들의 진술로 이뤄져있어 읽기도 쉬운 편이다.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지만 다음 진술하는 인물이 그걸 뒤집거나 진실을 알려주는데 모두 자신의 비밀과 욕망이 있는 점이 재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N을 위하여]는 고층맨션에 사는 그림같은 부부 노구치 부부(노구치 타카히로, 노구치 나오코)의 살인사건 현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용의자 4명 중 한 명이 잡혀가는 걸로 마무리되지만 사건의 이면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6명의 인생이 얽혀 있으니. 공교롭게도 모두의 이름에는 'N' 이 다 들어간다. 어떤 'N'이 어떤 'N'을 위하여 무슨 짓을 했는지 추리하면서 읽으면서 재미를 찾고 있었는데 중간쯤 읽으면 이런 건 다 포기하게 된다.

용의자 3명의 N(스기시타 노조미, 니시자키 마사토, 안도 노조미) 은 들장미장이라는 곧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알게 되고, 무슨 꿍꿍이를 꾸미며 용의자 1명(나루세 신지)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자세한 건 쓸 수 없으니 책으로 확인 하시길 바란다.

끝이 약간 용두사미격으로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긴 하지만 읽다보며 이게 추리소설인지 그냥 소설인지 분간이 안 된다. 사실상 주인공인 두명의 N, 스기시타 노조미와 예쁜 얼굴을 한 불행한 남자 니시자키 마사토의 파란만장한 가정사를 읽고 있으면 속상해서 부아가 난다. 사랑을 받았으면 뭔가를 해줘야 하는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는) 둘의 발버둥이 애처로워서 슬펐다.

이래서 미나토 가나에가 사회파 소설가로 분류되는 건가? 어린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는 한 줄을 이렇게 슬프고 재밌게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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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터문 에디션 D(desire) 4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함유선 옮김 / 그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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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는 내가 애증하는 감독이다. [비터문]을 보고 감독을 열심히 찾아보니 예전 EBS에서 본 주말의 명화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영화 [테스]를 찍은 것도 알았고 앞으로 영원히 미국에 갈 일을 없을 거라는 이유도 알았다. 바로 스스로 일으킨 엄청난 스캔들 때문이다. 미성년 관련 범죄에 극히 엄격한 미국에서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기소됐는데 유럽에서는 자신들의 위대한 감독이라 송환 거부중. 유럽이 더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터라 무진장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렇게 미운 마음으로 본 [차이나타운]도 어머어머하고 감탄을 내지르게 하는 '악마의 재능'을 지닌 감독이니 내주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게 뭐 유럽만의 일인가. 쩝.


내가 베스트로 뽑는 로맨틱 코미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휴 그랜트가 쑥맥 귀염둥이로 나와서 첫눈에 반한 여자와 정사를 치르면서 "허니문은 왜 허니문이라고 할까요? 꿀처럼 달콤해서.. 아니면 처음 본 신부의 하얀 엉덩이가 달같아서...?" 같은 대사를 친다. 하지만 [비터문]에서는 결혼 생활의 권태를 이기려 미지의 땅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부부로 나와서 좀 혼란스러웠다. 영화는 원작보다 오히려 임팩트 있고 깔끔한 결말이지만 원작의 결말은 더 끔찍하다. 영화는 당시 선정적인 장면으로 논란이 되었다는데 흡사 파밀라 앤더슨의 분위기를 풍기는 레베카 역의 배우는 감독의 실제 부인이라니, 역시 감독 이 자식.. 보통 정신 세계를 가진 놈은 아니다. 보통 남자라면 부인한테 그런 수위로 영화를 찍게 하긴 어려울테니.


영화의 끔찍한 선정성을 뒤로하고 내용은 오히려 더 끔찍하다. 허니문의 꿀이 다 떨어지고 난 후, 남은 생을 비터문의 지겨운 생활로 살아간다니. 게다가 이 공포는 꽤 현장감과 현실감이 있다. 결혼한지 일 년도 안 된 친구는 벌써 '내가 미쳐서 결혼했다'라는 말도 할 줄 알고... 나도 항상 권태의 문제로 헤어지니... 단물을 다 빨아먹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몹시 괴로운 일이다. 특히 취미도 계층도 맞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기가 더 빨라질테고.


원작 소설 [비터문]에서 사랑에 빠지는 단계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루주아 계급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프란츠는 이국적인 매력을 가진 댄서 지망생이자 미용사 레베카에게 홀딱 빠지고 완전 사랑꾼인 그들은 세상이 자신들의 중심이 되서 돌아가는 것처럼 밤에 파리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자신의 부루주아 친구들 앞에서 생생한 매력을 뽐내는 레베카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찰나의 순간이라서 둘은 타계책으로 온갖 음란하고 지저분한 행위를 다 해보지만 한 번 틀어진 관계를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둘이 깔끔하게 쿨하게 헤어지면 좋았으련만.


미련이 남은 레베카는 프란츠가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하고 자존감을 짖밟아도 생기를 점점 잃어가면서도 그의 곁을 떠날 줄 모른다.그런 레베카를 프란츠는 미워해 사람들한테서 고립시키고 심지어 낙태까지 한 레베카를 여행을 가자고 하면서 공항에서 몰래 도망치는 만행을 저지른다. 말로만 부루주아인 그는 레베카가 없어진 사이에 전에 없던 자유를 누리며 여자들을 마구 옮겨가며 신나게 놀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러자 갑자기 병실에 나타난 레베카. 태양에 살결을 그을리고 더 예뻐진 레베카를 보고 순간 기대를 했던 그였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그녀에게는 경멸로 대할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레베카도 증오의 칼을 갈았다. 프란츠가 관심을 돌린 사이 침대의 조임을 풀러놓고 손을 잡으러 점점 다가오는 프란츠를 그대로 떨어지게 만들고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할 몸으로 만들어버린다. 프란츠는 병원의 부주의로 고소하고 그 댓가로 연금을 받게 되고 레베카는 그와 결혼하여 평생 그를 돌보게 된다. 한을 품은 레베카는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고 불구가 된 그를 오물로 방치하거나 그의 앞에서 남자들과 심지어 그의 아들과 관계를 갖는 등의 파렴치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인도로 가는 크루즈를 타고 디디에와 베아트리스 부부를 만난다.


불구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남자 프란츠는 레베카를 미끼로 뭔가 불안정해 보이는 디디에를 꾀어 사일밤에 걸쳐 자신들의 위에 나열한 히스토리를 들려준다. 디디에는 처음에는 굉장히 불쾌해하지만 싱싱하고 야성적인 매력을 가진 '처음보는' 관능적인 여자 레베카와 그저 지적인 매력을 가졌을 뿐인 아름다운 편인 베아트리스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하얀 아내의 피부는 그저 배멀미로 허옇게 질린 것처럼 보인다. 관계의 개선을 위해 미지의 땅인 인도로 가서 지루한 생활에 새로운 바람을 맞아보고자 한 그들은 결국 이상한 부부의 꾐에 넘어가 완전히 틀어진다.


영화는 아주 임팩트 있게 한방을 탕- 쏘지만 원작은 오히려 더 끔찍하다. 나름 반전이 될 수 있으므로 쓰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욕망(Desire)의 D를 따서 D에디션 시리즈로 낸 책 중에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가 외설시비에 걸렸던 만큼 원작은 정도가 더 심하다. 어떤 장면은 정말 너무 더티해서 토가 나올뻔 했다. 하지만 성애도 하나의 사랑의 형태이니 마음이 열린 분들이라면 충분히 볼 수 있다. 서로 학대하고 짓밟고 으르릉거리는 장면 묘사도 뛰어나다. 작가 소개를 보니 경제학 에세이로 경제학 도서상도 탔다고 하니 참 특이한 이력이다. 아카데미형(?) 작가 치곤 표현도 생생하고 소위 먹물 냄새라 하는 것도 별로 나진 않는다. 프란츠가 지가 부루주아라고 잘난 척 할 때만 빼고. 


책이 가볍고 작아서 휴대는 용이하지만 넘기는데 좀 불편한 게 단점. 번역은 꽤 좋은 듯.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허니문이든 비터문이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만 남녀의 애정만큼 변하기 쉬운 건 없다는 그의 관점에는 동의한다. 현대 결혼관이라는 '낭만적 사랑'이 어떤 면에서 얼마나 허상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아예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듯도 싶지만. 인생에서 단 맛과 쓴 맛은 있지만 특히 애정하는,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했던 가장 소중한 사람과 애정이 다 떨어졌을 때 지지부진하게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스테레오 타입 중에 서양 사람들은 애정 떨어지면 자녀를 생각하기 보단 이혼을 한다는 식의 이미지가 박혀 있는 것 같은데 얘들도 헤어지는 게 그렇게까지 쉬운 문제는 아닌가 보다. 뭐는 안 그러겠냐마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계속 되는 삶은 없을까. 매순간이 서로에게 의미가 되고 내 주위로 지구가 팽글팽글 도는. 이런 권태를 너무도 두려워한 사랑할 자격없는 두 남녀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를 계속하는 안타까운 어리석은 사랑이야기다.

그러나 설명할 것도 없었소. 내가 그녀와 헤어지고 싶은 이유는 바로 2년 전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 멋대로였으니까.
"말해 봐. 뭘 잘못했는지 말해 봐. 당신을 성가시게 했어? 아프게 했어?"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그래? 그런 것 없어. 단지 내 곁에 있다는 게 잘못이야. 간단해."(p.222)

"레베카, 나는 누구보다 더 나 자신을 증오해."
"아니" 그녀는 딱 잘라 말했소.
"그 점에 관해서라면 착각하지 마. 나는 절대로 당신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의 천 배 만 배 이상으로 당신을 증오하니까. 당신이 품고 있는 반감을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다니 어리석을 정도로 아직 너무나 감상적이군."(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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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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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현대 누리꾼의 질병'에 따르면 나에게는 일명 '홍대병(비주류병)'이 있다. 정의는 본인이 홍대앞 비주류인 척 하는 병, 자유로운 영혼인 줄 아는 병이라고 한다. 자매품으로는 '쿨톤병', '동안병', '남친일심동체병', '도화살병' 등이 있다. 음악엔 문외한이라 역시 쉽고 청승맞은 가사가 좋지만 아무래도 취향이 남들보다 고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요즘 '태양의 후예'에서 완전 뜬 배우 진구도 그런 맥락에서 아까운 남의 남자다. 소위 무명시절이라고 할 때 내가 완전 팬이었는데! 그의 진가를 알았는데!! 영화표 몇 장 사고 그런 우월감을 부렸는데 지금껏 애도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도 몰랐다. 이제 만인의 연인으로 그를 놓아줘야겠다.ㅎㅎ


왜 진구까지 팔면서 내 정신 질환을 고백하느냐 하면... 그간 베스트 셀러를 무시(?)한 벌을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출간 후 말 그대로 빅 히트한 이 책, 지금까지 안 읽었다. 벌써 육년이나 전에 발간되었다. 스릴러 장르에 본능적인 거부감도 있었지만 그저 재밌다는 사람들의 평이 독서에 의욕을 불어주지 못했다. 알라디너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헐리우드 영화같은 재미라면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되지 않는가! 와 같은 무지렁이 마인드로 빅재미를 놓칠 뻔 하다니, 알라디너로서 실격이다.


나는 왜 베스트셀러는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비주류이고 싶어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이 약간 동경하는 선배는 백년전에 나온, 검증받은 책만 읽는다고 하는데 나도 독서에 관해서는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은 느낌이라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재미도 있고 작품성도 훌륭한 책을 읽으려면 무수한 사람이 인정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죽을 때까지 읽을 수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에 이르렀고, 아무리 인정받은 작품이라도 나한테는 생각보다 재미나 감동이 없는 경우도 꽤 있었다.


수많은 알라디너의 의견을 무시하다가 도서관에서 옆에 있던 언니가 "글케 찝찝하면 비닐장갑이라도 끼고 읽던가!"했던 책이 바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쳐]다. (나는 또 왜 이런 '흥미 위주'의 책을 사는 것에 쪼잔하게 구는지!) 인기작치고 귀는 조금 접혀 있었지만 줄도 많이 안 쳐져 있고 손 때의 흔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박진감이 넘치는 내용이어서 그런지 군데 군데 귤과의 과일을 까먹으면서 본 듯한 노란 얼룩을 피하지는 못했다. 한 겨울 뜨뜻한 온돌방에서 귤을 까먹으며 [빅 픽쳐]를 음미했던 구로도서관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 부디 나와같은 즐거운 경험을 했기를!


이틀만에 신나게 읽은 책에 줄거리를 작성하려니 몹시 귀찮다. 그래서 오늘은 생략.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벤이 게리로 살기 시작하면서, 제발 조용히 살고 싶었던 게리(=벤)은 정작 너무나 이루고 싶었던 결정적인 사진을 찍어 유명해지고, 그게 덫이 되어 계속 계속 도망다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정작 지겨웠던 신탁 변호사로 살고 싶어하는 삶의 아이러니가 이해가 되어 가슴이 턱 막혔다. 재밌으면서도 훌륭한 작품이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사진가는 자신의 이름과 신분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이루게 된다는 것도 아주 슬펐다. 당당한 내 신분으로, 내 이름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보통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보다는 타인의 욕망으로 인한 삶을 사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기에. 


영상화된 영화는 은근 악평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시간이 나면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특히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미국판 베르나르 베르베르일까. 40개국에 팔렸다고 해서 우와 저작권료가 얼마야, 하고 생각하는 나도 순수한 나로 사는 방법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 


단순히 재미도 있지만 의외로 교훈도 시원하게 한 방 날려주는 뒷맛이 씁쓸한 소설. 빅 재미는 보장된다. 겨울이라면 귤을 까먹으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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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16-03-29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베스트셀러는 상업적인 재미를 추구한 책일거라는 편견이 있어서 많이 읽지 않는 편이지만, 더러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을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은 책들도 많더라구요^^
빅픽처도 그 중에 하나인데
뽈쥐님의 서평을 보니 새삼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ㅎ

뽈쥐의 독서일기 2016-03-29 13:08   좋아요 1 | URL
의외로 베스트 셀러 중에 물건(?)인 것들도 많지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더 볼까 했는데 다작하는 작가인만큼 작품에 편차가 있긴한가보더라구요.
문체가 세련됐거나 엄청난 개성은 없지만 꽤 두꺼운 책이 하루이틀에 술술 넘어갔어요. 이것 또한 엄청난 재능이겠죠. 책벌레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킬링 타임용으로 한 번 가볍게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킬링 타임용 치곤 여운이 꽤 남는 책이에요.^^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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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과 돈, 죄에 대한 경구(?) 중에 나이가 들면서 동의하게 되는 것과 아닌 게 있다. 아니면 점점 의문을 품게 되는 것도 있고. 신성한 돈'님'에 쉽게 죄를 연관짓는 이유는 돈이 어떤 유혹이든 쉽게 빠지게 만든다는데 있다. 특히 죄의 유혹에는 더더욱.


1. 귀신이 무섭냐 사람이 무섭지!   ▶ (동의)

2. 사람이 나쁘냐 돈이 나쁘지!      (.... 그랴도 그러면 쓰나!) 

3.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의 죄를 미워하라.  (오 지져스...이건 경험상 불가능에 가까움.)


특히 1번인 <귀신이 무섭냐 사람이 무섭지!>를 동의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어린왕자]를 재밌게 읽게 된 일개 '어른이'일 뿐이다. 지금보면 매우 유치한 [전설의 고향]의 레전드 편 '내 다리 내놔'를 보며 부들부들떨던 초딩은 이제 [그것이 알고 싶다]와 [실제상황]을 복습 또 복습하며 인간 불신을 공고히 다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의 죄를 미워하라.>는 3번문은 미션 스쿨 다닐 시절부터 이해가 잘 안 되었던 걸로 현재로서는 정말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당연히 종교 지도자는 저렇게 말을 해야하겠지만 그저 범인인 나에게는 무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죄를 짓고나서 저런 태도를 취하는 범죄자를 보면 분노가 미친듯 상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사람이 나쁘냐 돈이 나쁘지!>라는 문장은 미묘하다. 돈 때문에 비굴해지는 게 사람이고 우쭐해지는 것도 사람이며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게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돈이 아쉬운 사람이 모두 범죄에 길로 빠지거나 추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돈은 모든 이에게 소중하고 아깝다. 죄를 저지르고 나서 "돈이 없어서 그랬어요..."라고 하면 동정심이 팍 이는 것도 다 이런 맥락이다. 어디까지나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훔치거나 불법인 누드 사진을 찍는 등의 경범죄일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라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다 이놈한테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의니 사랑이니 자연이니 이런 아름다운 말도 돈의 유혹 앞에선 힘을 잃고 만다. 내가 맹하기는해도 백치아다다처럼 돈을 경멸하는 사람은 아니니 내숭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저 돈의 힘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뭐 돈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던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테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화차]를 나는 지금 봤다. 원체 추리소설을 무서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재밌게 찾아 보고 있다. 흔히 '사회파'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추리 소설은 대부분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게 제일 무섭기도 하고... 특히 돈을 벌어보니 돈 문제가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돈이 없는 것도 무섭지만 마이너스에, 돈 때문에 쫓겨서 원치 않는 일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몹시 끔찍하다.


연예인의 개인 회생, 파산 뉴스를 듣고 곧 갚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빚 갚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보통 월급쟁이나 자영업자의 이야기는 아주 다르다. 뭐 연예인들도 웃음으로 승화시켜도 그게 아주 밝은 웃음이겠냐마는.


주변에 개인 회생 받은 사람 얘기를 누누히 들었다. 심지어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악명높은 제3금융권에서 근무해서 가끔 일 얘기를 듣기만해도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신용'을 잃는다는 건 너무너무 무서운 일이다. 잘 되는 부자들의 이야기보다 반면교사가 더 효과적일 때도 많으니 소비가 주체가 안 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이 소설을 먼저 읽게 해도 될 것 같다.


소설 [화차]의 제목인 '화차'의 뜻은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몰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불에 타서 추락하고 마는데 한자로 풀어쓰니까 그 때보다 더 무서운 느낌이 든다. 망자, 지옥, 불수레....


불붙은 화차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한순간에 그 주변을 다 화끈하게 만드는 뜨거운 온기와 눈부신 밝음이 떠올라서 소름 끼친다. 정말 악행을 많이 한 사람이 불수레를 타고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 위로 비스무리한 게 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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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떤 예쁜 여자가 있다. 한눈에 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참한 미인. 여자를 남들보다 멋진 외모로 낳아준 부모는 선량한 사람이었으나 그저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융자를 받는다. 큰 경제 지식이 없었던 그들에게는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변제 능력을 잃은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비슷하다. 빚은 빚을 낳고 그들은 언제는 뿔뿔히 흩어졌다, 뭉쳤다하며 채권자에게서 도망을 다닌다. 돈을 받고 싶은 사람은 집요하다. (허긴 왜 안 그렇겠는가.) 어디로 숨어도 찾아내고 또 찾아낸다. 학창 시절부터 이런 일을 겪은 여자는 그들을 피해다니다 나쁜 일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또한 이미 여자는 한 때 결혼까지 하여 한순간의 행복을 맞보기도 했었다. 한번 행복한 생활을 경험했던 여자는 크게 좌절하고 깨닫는다. 자신이 너무 불행하다는 사실을. 나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어. 이대로는 안 돼. 


하지만 여자는 이미 경험했다. 채권자는 아무리 구석으로 도망가도 구석구석 다 찾아냈다. 여자는 그래서 아예 자신이 아닌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다른 이의 신분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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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뿐인 인생을 신나고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도 아름다운 외모로 태어나 남들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상대적 약자인 여자가 빚이라는 '흠'을 가지면 아름다운 외모는 더 큰 독으로 작용될 뿐이다. 교코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나머지 다른 이의 삶을 간과했다. 아마 그들의 신분을 넣고 나서 처리한 것을 볼 때, 몸의 안전성을 찾았다고 해도 이미 마음은 불수레에 실려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긴 하지만 자신이 진 빚도 아닌데 평생 원치 않은 고생을 한 여자의 억울함도 쉽게 비난할 수가 없다.


한 십년전에 '카드대란'이라고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제의 원인에는 쉬운 신용 카드 발급이니 카드 사용자의 무분별한 낭비, 그로 인해 부실해진 카드사들의 폭탄돌리기 등등이 있으나 철저히 내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은 그 때까지 생소했던 플라스틴 자그마한 카드 한 장의 위력을 너무 쉽게 봤던 사람들이 남의 돈의 무서움을 모른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물론 카드사들이 책임감없이 카드 발급을 남발한 것도 더더 나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는 나도 신용카드 회사에서 통장에 뺄 돈이 없다고 한 번 욕먹은 적 있다. 다행히 '안심..'뭐가 걸려 있어서 바로 입금하고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겨우 50만원만 한도를 걸어 놓은 내 첫 신용카드는 역시, 대학생 때 나보다 우리 엄마의 변제 능력을 믿고 은행 창구에서 직접 발급 받은 거였다. 정말 현금이 아니다보니 아무리 안전한 체크카드라도 손쉽게 쓰게 되는 위력이 있다. 한도가 50만원이니 망정이지. 나도 정말 큰 일날 뻔 했다. 특히 대학생이다 보니 '설마 그렇게 큰 돈도 아닌데 잡아가기야 하겠어...?'같이 돈의 힘을 아주 가볍게 생각했었다. (아주 세상을 쉽게 봤던 듯.. 인정도 안 믿는데 그 때는 왜 회사의 정을 믿었던 걸까.)


같은 나라라도 집집마다 문화 차이는 있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집과 달리 사업을 주로 하는 집인 경우에 '빚도 재산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언제나 화려하고 호인인 내 친구 Y의 집은 주로 개인 사업을 해서 빚이 많다고는 하는데 누리고 사는 수준은 아주 높다. 명품백에 구두에 최신 전자기기에 항상 최고 좋은 것만을 해야한다는 Y의 생활을 보고 있자면 월급쟁이인 우리집이 근근히 살고 있는게 웬지 궁상맞게 느껴질 지경이다. '빚은 철저히 넘의 돈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우리집이 당연한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빚도 재산이'라는 생각을 가진 집이 많다고 해서 크게 놀랐다. 부자들은 빚도 잘 굴린다는데 옆에서 본 바로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돈으로 마음 편히 사는 게 낫다고 본다.    


확실히 물질적 풍요가 주는 행복감은 있다. 잡지나 티비에서 봐서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고 싶은 심리도 있다. 아마도 스스로 다들 잘 알거라 생각하지만 '나를 뭘 믿고 돈을 마구 빌려준담...' 이런 생각은 꼭 해야한다. 월급을 받으며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빼는' 게 무지 어렵다는 걸 느껴본 나로서 대출, 사채는 정말 무서운 존재다. 


제3금융권에서 대출을 담당하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 어마어마한 대출 이자도 한 번 써보면 생각보다 가볍게 느끼는 게 사람이더라. 심지어 직업 멀쩡한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그 곳을 이용하기도 한단다. 역설적으로 내 친구는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 집안 빚을 거의 갚고 생활비까지 척척 대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H야, 항상 힘내라.


이래도 끝내면 좀 찜찜하니, 한 말씀 올린다. 그래도,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지켜야 아름다운 겁니다!

돈도, 나쁘긴 한데... 그걸로 죄 지으면 사람이 나빠지는거여!

     


* 작년에 도쿄돔 가까이에 있는 호텔에 묶으면서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화려한 도쿄돔과 호텔의 낭만보다는 경마장 주변에서 눈이 풀려서 경마 신문을 보는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과 서민들이 갈 법한 근처 라멘집에서 손님 상 앞에 꽂혀 있는 '개인회생, 개인파산' 찌라시가 더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 죽거나 남을 죽이기 전에 그래도 법의 도움을 먼저 청하시라. 어찌되었든 살아 있는 게 더 중요할지니.


* 작년 9월에 발행되었던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칼럼 '일본계 대부업체들'이라는 기사를 보기 바란다. 정말 오들오들 떨린다. 이제 이자가 27.9%까지 내려갔지만 이들이 우리나라까지 넘어오기까지한 과정은 실로 무섭다. 예전에는 지들 본토에선 돈 빌리면 '생명보험'에 들게 했다. 한 마디로 빚은 '목숨으로 갚으라'는 거였다. 나름 합법이라는 이들... 27.9%... 진정 최선입니까?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42       

       

마지막 책임을 묻는 곳이 자기 회사만 아니면 됩니다. 사실 은행이나 사채시장이나 신용판매회사도 큰 곳은 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말씀 드린 구조에서 피라미드 우쪽에 있는 업자는 당하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거죠. 그런 굴레 속에서 채무자는 점점 아래로 굴러 떨어져 다중채무자라는 이름으로 결박되어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도록 가라앉는 겁니다. (p.137)

돈도 없고, 학력도 없고, 별다른 능력도 없고, 얼굴도 그걸로 먹고살 만큼 예쁜 것도 아니고 머리도 별로였고 삼류 이하의 회사에서 잡무만 보고 있었죠. 그런 사람이 마음속에서는 텔레비전이나 잡지나 소설에서 보고 들은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냥 꿈만 꾸는 걸로 만족하든지, 그게 싫으면 어떻게 해서든 꿈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해 보든지 했겠지요. 그래서 실제로 출세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나쁜 길로 빠져든 사람도 있을 거예요. 옛날에는 아주 간단했어요. 방법이야 어쨌든 간에 자력으로 꿈을 이루든가 현 상태에서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였잖아요?
(중략)
그렇지만 요샌 달라요. 꿈을 이루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자니 너무 아쉽고, 그래서 꿈이 이뤄졌다는 기분에 그냥 빠져들어 가는 거예요. 그러기 위한 방법이 지금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쇼코의 경우는 그게 우연히 쇼핑이나 여행같이 돈을 쓰는 쪽으로 간 것뿐이에요. 그런 걸 가볍게 도와주었던 게 바로 신용카드와 사채였죠. (p. 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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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2번 동의하고, 3번은 진짜로 실천하는 게 어려워요. 해마다 비 인륜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더 무서운 건 뉴스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무서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을 수 있고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3-24 17:32   좋아요 0 | URL
그쵸.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는 게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요즘은 이미 한번 걸러진 기사만 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어요. 근데 가끔 생각하면 죄인 중엔 별로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는 사람도 많은데 당최 죄를 미워하니, 용서를 해줘야 되니...가 뭔 의미가 있는지 모를 때도 있네요. 차라리 그런 사람들은 죽으면 화차타고 지옥간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에 평화가 생길지도 모르죠.
게다가 뉴스도 자극적인 사건만 보도하니... 아파트 살아서 우리 아랫집도 모르고 사는데... 가끔 성범죄자가 우리 동네에 있다고 공지 붙으면 무섭더라고요. 죄보다 사람이 더 미워요ㅠㅠ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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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마셔요. 절대 절대!!)


요시다 슈이치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아주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감정 '뚝뚝'이 흐르지 않는 문체에 예리하면서도 하드보일드라고 하는 서늘한 느낌도 없다. 하드보일드 문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도 과하면 지겹다. 너무 '가오'잡는 거 아냐? 같은 괜히 삐뚤어진 마음도 들기까지 한다. 일부러 찾아본 건 나지만.


'이 사람이라면 어떤 시선으로 볼까?'라는 질문이 항상 드는 작가다. 특히 감상적이지 않은 '악인'이라는 제목에 요시다 슈이치라면 어떤 사람을 악인이라 정의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어 책을 집었다. 책을 덮고 나는 세상에 찌든 평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쏘시오패스 같은 걸 생각했다. 미드를 끊어야 하나.



---------------스포일러 있는 줄거리


이야기는 263번 국도 미쓰세 고개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이 고개는 예전부터 음침하고 기분 나쁜 소문이 끊이질 않았지만 고속도로에 비하면 요금이 적어 이 루트를 선택하는 사람이 꽤 있다. 고개에는 주로 귀신을 봤다거나 하는 괴이한 소문이 돌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낮이라도 나무에 둘러쌓여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 요금을 생각하면 꾹 참고 갈만한 곳이었다.


여기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이시바시 요시노라는 보험사에 다니는 20대 여성. 시체의 신원이 밝혀지자 경찰은 빨리 조사에 착수한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사택에 거주하면서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요시노는 살해된 밤, 친한 동료 2명에게 클럽에서 만났던 부유한 집 자제인 날라리 마스오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게다가 그 마스오는 하필 행방불명 상태. 강력한 용의자 마스오는 방송에서도 저격당하고 형사에게 쫓기는 처지가 된다.


참고인 진술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된다. 일단 그녀와 친한 동료 2명, 마코와 사리에게 진술을 받는다. 순진한 마코와 적당히 연애를 해본 사리의 기억은 다르다. 인간 관계는 무척 상대적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마코에게는 요시노는 미주알 고주알 거의 모든 걸 말했지만 막상 취조 비스무리한 걸 당하자 마코는 사건 있던 날 있었던 평이한 이야기만 한다. 사실 마코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왜 그런지 요시노한테 그 날 있었던 일 정도만 얘기를 하고 끝을 낸다.


아무리 둔한 여자라도 나쁜 직감은 대체로 잘 맞는다. 요시노는 그 날, 두 동료한테는 날라리를 만나러 간다고 했지만 사실 그 날 그녀가 만나러 간 남자는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유이치였다. 부잣집 날라리는 답장만 꼬박 할 뿐, 먼저 만나자는 얘기가 없어 자존심이 상하던 중에 손쉬운 남자 유이치를 만나 어느 정도 목적(?)을 취하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요시노는 그날 밤 우연히 유이치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마스오를 만나고 바로 눈 앞에서 유이치를 물 먹이고 마스오의 차에 올라탄다. 마스오는 하필 그 날,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았았다. 스스로 '싼티'나는 여자가 취향이라고 했지만 저녁으로 마늘을 먹고 옆에서 계속 종알거리는 요시노가 너무 짜증난 그는 "어디서 마늘 냄새 안나?" 냐며 모욕감을 준다. 하지만 요시노는 껌을 씹으면서도 계속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고 있던, 짜증이 극에 달한 마스오는 왠지 이런 여자가 살인을 당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너무 화가난 나머지 미쓰세 고개에서 요시노의 등을 뻥차면서 떨궈 버린다. 


이게 사건의 정황이었고 당황해서 잠적한 미스오가 다시 잡혀서 수사에 혼선을 빚기까지 사건의 정황이다. 소설의 반 이상은 살해된 그녀가 진짜 만나려고 했던 유이치를 쓰는데 할애한다. 유이치는 묘하게 남자다운 구석은 있지만 말수도 없고 음침한 남자이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밟고 오지 않은 유이치와는 할 말이 더더욱 없다. 이 따분한 남자와의 만남은 결국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다. 평범한 여자인 요시노는 생각보다 깜찍한 모양새로 남자들과 만났고 그녀와 비스무리한 경험을 했던 남자들은 그것이 자신의 삶을 뒤흔들까봐 무서워한다.


가해자는 여전히 잘(?) 살아간다. 조용히 은밀하게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일도 계속 이어간다. 친구도 말수도 아주 적은 이 젊은 남자는 실은 아주 외롭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도 버림 비스무리한 것을 받았을 때도 늙고 병든 조부모의 팔다리 노릇을 할 때도 말없이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뿐이다. 그를 취직도 시켜주고 애정있게 봐주는 외삼촌도 여자도 만나지 않는 그를 안쓰럽게 볼 뿐이다. 거의 세상과 교류없이 사는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방식은 그렇게 타당하지 않다. 인터넷과 매춘 등으로 여자를 만나지만 여자가 생각없이 뱉는 달콤한 말에 쉽게 의지하고, 스치듯 다른 남자를 떠올리는 말에는 크게 분노하는 아주 외로운 남자였다.   


외롭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서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된다해도,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 끌리는 법이다. 따뜻한 곳으로 가기 위해 현실의 일이나 이성 쯤은 쉽게 마비된다. 암울할 일만 더 심해질 그의 삶에 나타난 한 뼘의 따뜻함에 그는 무모한 도주를 결심하게 된다. 

 

--------------------------- 대충 줄거리 끝.



유이치의 외로운 삶은 그를 결과적으로 괴물로, 악인으로 만들었지만 온전히 자신만이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방임된 삶, 그를 같잖게 보는 시선,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성격. 하지만 유이치는 본능적으로 따뜻함을 원했고 온기가 있는 곳에는 무모하게 뛰어드는 면도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유이치이지만 '악인'은 꼭 그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살해된 요시노, 건방진 양아치 마사오 같은 평범한 이들은 쉽게 유혹에 빠지고 순간적으로 쉽게 악해졌다. 또 유이치를 버린 생모나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가버린 직업 여성,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은근히 유이치에게 기대고 마는 할머니도 어느 정도 유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누구한테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 누구에게는 귀엽고 좋은 사람이 된다. 살해된 요시노는 부모에게는 고명딸이지만 만남 사이트에서 만난 다른 사람에게는 굉장히 귀여운 여자, 마스오에게는 천박한 여자애, 마코에게도 만남 사이트같은 데서 남자를 구하는 애라는 최종적인 평판을 얻는다. 또 나중에 그와 도주를 결심하는 여자 미쓰요는 쌍둥이 동생에게는 왠지 섬뜩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겉으로는 성숙한 장녀언니고 유이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한 여자가 된다. 마지막으로 유이치는 친모에게는 돈이나 뜯는 나쁜놈, 할머니에게는 왠지 여성의 본능을 일으키는 사랑하는 손자, 요시노에게는 왠지 기분 나쁜 놈, 미쓰요에게는 눈물 짓게 만드는 아련한 사람.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지만, 약인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빼면 악인이다. 사실 징글징글한 악인만 아니면 대체로 처음에는 약인이었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악인으로 변한다. 점 하나를 빼듯이 자제심을 빼버리고 나면.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약하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도저히 그 남자에 관한 말은 젊은 형사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면 자기도 요시노 같은 부류의 여자로 보일 것 같았다. 만남 사이트 같은 데서 남자를 구하는 여자의 친구. 그렇게 보이기 싫어서 젊은 형사에게 말할 수 없었다. (p.95)

미아는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을까. 아마 그녀는 스스로 의식하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미아 같은 여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나 같은 남자가 20년이나 잊지 못할 말을 건네주는 여자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p.278)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p.439)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p.448)

그런데 그 사람, 제 예상과는 달리 "원치 않는 돈을 뜯어내는 것도 괴로워"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안 뜯어내면 되잖아"라며 웃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지만 양쪽 다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니까" 라고 하더라고요.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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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30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