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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유다이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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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 좋아하던 프로그램 [실제상황]을 요즘은 잘 안 본다. 같이 보자고 권유했던 언니가 독립해서 나가서이기도 하지만 에피소드에서 점점 '떡밥'을 전혀 던지지 않는 근본 없는 전개에 싫증이 났다고나 할까. 수 목요일 늦은 시각에 하는 프로라 피곤한 와중에도 내기를 걸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도무지 예상이 가야 말이지. 히치콕이 "관객에게 갑자기 폭탄이 터지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 것도 같은데… 하지만 이 작가가 히치콕이 창안한 맥거핀 기법을 잘 다룬다는 소문이 난 사람이라 더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


하루에 2~3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해야 하는, 가만히 있어도 만족할만한 시청률이 나오는 재연프로그램에 완벽한 플롯을 갖춘 내용을 크게 기대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하지만 에피소드 초반에 시원하게 범인을 고르는데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가 회를 거듭할수록 승률이 떨어진다면 김이 빠진다.


뭐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실제상황]은 소재도 현실에서 뽑아온 이야기라 퀴즈프로처럼 보지 않으면 꽤 볼만한 방송이다. 보험사기나 결혼사기, 꽃뱀이나 제비, 장기 팔이, 도시 괴담 등등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흥미롭기도 하면서 소름이 쫙 끼치는 사례가 많다. 알.고.보.니. 갸갸 나쁜X 이었다는 배신의 역사는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 수많은 에피소드에 변하지 않는 기본 줄기는 처음부터 나쁜 얼굴을 하는 악인은 없다는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때도 있지만 허술한 구성으로도 충분히 무서움을 주는 이유는 다들 이런 경험 하나쯤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실제상황]을 언급하는 이유는 [비포유다이]에서 아주 잘 만든 실제상황의 에피소드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만다 헤이즈 [언틸유아마인]을 이미 읽어서 맥거핀 기법인지 뭔지에 면역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전작도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고 재밌게 읽었다. 주위 사람들한테 추천해보니 바로 범인은 누구누구지! 라고 말을 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이번 작 [비포유다이]가 더 재밌었다. 아카데미형 작가보다 생활밀착형 작가가 좋은 이유는 바로 있을 법한 사건을 쉽고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보통 ‘사회파’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누가 살인마인지 밝혀낼 생각 없이 작가가 그리는 사회에 즐비한 문제점을 음미하며 읽으니까 훌륭한 한 편의 사회학 보고서를 본 것도 같다. 자폐증, 왕따, 교육열로 자식을 괴롭히는 부모, 탈선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어느 사회라도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문제에다 흉흉하게 연쇄 자살 사건이라니!


흥미로운 줄거리로 눈길을 잡아 놓고 막상 다른 이야기로 변죽 울리는 게 살짝 얄밉긴 하지만 여러 명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거나 발설할 수 없는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아주 조금씩 풀어내서 독자를 잡아두는 것은 작가의 특기이다.


집단 따돌림 방식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전과 함께 더 악랄해지고 불륜의 형태도 점점 이상하게 변하는 세태도 잘 드러난다.


거의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술술 넘어가는 것도 지루할 틈에 많은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열심히 단서를 찾게 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스릴러, 추리물의 특성상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면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가벼운 종이로 만든 게 마음에 든다. 책을 가볍게 만드는 추세로 가면 좋겠다고 늘 바란다.


다만, 로레인 경위가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으로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딱히 이 형사부부의 매력을 나는 잘 모르겠다. 정의감에 찬 유능한 형사부부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힘쓰는데 흡사 CSI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달라진 시대 분위기와 다양한 인종, 계층을 의식해서 요원들이 어색한 대사를 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령 매춘부 살해 사건조사 중에 “난 이런 섹스 산업에 반대해.” 라고 말하면서도 바로 뒤에 “물론 그녀들이 하드코어한 직업에 종사한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대사를 재빨리 덧붙인다.


CSI의 형사들보다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형사와 패트릭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며 살며 범죄자라도 도덕적 우위에 서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그들이 훨씬 인간적이고 푸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상처는 작업에 더 방해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사회파 작가이다 보니 앞으로도 또 로레인 형사 부부를 등장시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부디 좀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켜주길... 


*참고로 [실제상황]의 관전 포인트는 범죄자를 연행해갈 때 언제나 흥분하는 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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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 내 인생 꼬이게 만드는 그 사람 대처법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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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그 사람한테 휘둘리지?


외모부터 동그랗게 생겨서 성격이 순하다는 오해(?)를 이십년이 훌쩍 넘게 받고 살다보니 어릴 때 순둥했던 성격이 이제는 말 그대로 '개'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남들한테 아예 안 휘둘리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아직 화내는 법을 익히지 못하다보니 한 번에 폭발하듯 화를 내서 상대를 놀래키고 나는 나대로 마음 정리가 끝난 상태니 이미 감정의 골은 무한히 깊어진 상태.


물론 모든 사람들과 이런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 관계를 풀어가는 법이 서툰 나도 문제는 문제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내 마음에 똬리튼 늑대를 깨우는 사람들도 문제라면 문제다. 나도 미성숙한 인간이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굳이 타인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감정 조종자'가 실은 더 나쁜놈이었던 것이다. 괴로워하며 원인을 자꾸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걸 반성한다. 


책은 사람을 이용하는 심리 조종자를 미성숙한 인간을 가끔은 의도적으로 '악마'로 묘사하면서 가해자에게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철저히 피해자의 편에 서서 말을 해줘서 위로가 된다. 항상 그렇듯 실천이 가장 중요한 거지만.


나의 기를 다 빨아먹는 연인이나 배우자, 일에 사사건건 괴롭히는 직장 상사,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이들 때문에 항상 괴롭고 무기력, 심각하게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괴롭다면 당신은 이미 '감정 조종자'의 희생양인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너무나 미성숙한 못된 인격인 것이다. (미성숙하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몸만 큰 어린 아이로 스스로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생존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옆에 사람을 이용해서 정신적인 기와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내 감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 얼굴을 마다 않는 사람이라 헷갈리긴 해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가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 그 때문에 내가 비이성적인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내 에너지를 고갈하고 갉아먹어서 일상에 지장이 온다면 이미 나는 조종당하고 있다. 그는 불행하게도 직장에서 꼴보기 싫은 또라이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도 해당된다. 


"자신의 감정은 자기가 제일 먼저 안다. 심리 조종자를 대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본능적으로 불안하든가 불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는 싹싹하고 단점이 없다. 우리는 그를 경계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내면의 경고를 무시하고 넘어가곤 한다.

 심리 조종자를 겪어 본 사람들은 훗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분명히 그가 긍정적으로 보였는데도 머리속에서 '이 사람은 아냐!'라는 경교가 울려 퍼졌다고." (p.113)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이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다만 더 잘 걸리는 유형이 있을 뿐. 너무나 인간관계에 낙관적이거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지옥에서도 환상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잘 걸리고 빠져나가지 못한다. 


나도 한 때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고 싶어(사실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고 싶어) "아무리 저 사람이 그래도.. 그래도.. 나는!!" 이란 생각을 가지고 온갖 도리를 다 했었는데 내려놓고 보니 내 심신이 편해졌다. 그걸 깨달은 후로 나는 좀 까칠한 인간이 되었지만 오히려 내 소중한 사람한테 더 잘해주게 되었다. 특히, 내 의지대로 맺고 끊음이 가능한 사교 관계에서 도리에 집착하기 보단 내 감정에 솔직하는 게 맞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 감정 조종자에게 벗어날 해결방법은 하나다. 그들과 떨어지면 된다. 떨어지면 만사가 해결된다. 나를 욺켜쥐는 집에서 나오고 배우자와는 이혼을 하고 회사에서는 사표를 쓰면 된다. 하지만 이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쉽게 놓아주려 하질 않고 오히려 복수하려고 한다. 떠나려는 연인을 살해하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래도, 그래도 인생은 긴 까닭에 그들의 지옥, 정신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자기가 휘둘리는 상황인 것, 그들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에게 사과나 반성 따위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한다고 해도 그건 당신을 다시 붙잡아 두려는 것일 뿐이니. 자신에게 부여한 너무나 정의로운 역할에서 벗어나고 그들이 약속했던 달콤한 말도 지워야 한다. 죄책감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하고 더 공고한 계약을 맺어야 한다.


특히 인생에 기본적인 선택에 대해선 결코 내 뜻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해야 한다. 

(1. 결혼을 하거나 살림을 차리는 문제/ 2. 가까운 사람이나 친구와의 관계를 끊는 문제/ 3. 사직 혹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일을 계속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4. 큰돈을 지출하거나 투자하는 문제/ 5. 임신과 인공 유산의 문제) (p.219) 


가장 좋은 것은 그들에게 벗어나서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벗어나는 것에 힘을 들이지만 나중되면 몹시 억울할지니. 흑흑


결국 스스로 가해자에게 벗어나서 다시 걸려들지 않을만큼의 인내력과 중심을 기르라는 보통의 심리학 서적과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지만 일상속에서 나를 잡아삼키는 심리 조종자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반복되는 얘기가 좀 있지만 끝 챕터까지 열심히 읽으면 꽤 구체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 내 말에 비꼬는 사람에게 "그건 네 얘기지" 라거나 "부부는 한 몸이야. 잘되면 같이 잘되고 망가지면 같이 망가지는 거야. 한쪽에만 책임이 있을 수는 없어" (p. 253) 등의 아주 구체적인 대사까지 적어주고 있으니 필요하면 달달 외우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나쁠 리 없지." 같은 생각은 별로다. 나쁘지 않으면 나를 그렇게 괴롭힐 일은 없으니까. 내가 휘둘리는 피해자라면 꼭 거기서 빠져나와서 피해복구를 해야한다. 죄책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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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2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22 22:25   좋아요 0 | URL
아 오늘 대보름이네요. 부럼은 드셨나요?
날이 좀 풀렸네요. 서니님도 좋은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6-02-25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미식 쇼쇼쇼 -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파헤치기
스티븐 풀 지음, 정서진 옮김 / 따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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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먹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You Aren't what You Eat'


책을 보니 '먹는 대로 된다. You Are What You Eat' 의 책과 동명의 프로그램을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질리언 매키스 저)


쿡방과 먹방을 찬양하는 나로선 매우 뒤를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뭐 최현석 쉐프를 나의 '구루'같은 걸로 삼은 건 아니지만 짬뽕을 하나 사도 이연복 쉐프 얼굴이 붙어 있는 것을 별 고민도 없이 카트에 척척 넣어버린다. 자신을 위해 요리 하나 할 줄 모른다는 남자에게 정이 확 떨어져 버린 일도 있고. 그냥 눈만 점점 높아진다고 하기엔 내 머리속에서 '요리'라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 인생에서 뭔가 중요한, 굉장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내가 꽤 좋아하는 영화 [줄리&줄리아]를 보면서 나도 우리나라에서 어떤 요리 멘토이자 삶의 멘토를 누구로 삼아야하나를 심히 고민한 일도 있었다. 요리를 하는 행위 자체로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할까. 특히 예상치도 못한 재료로 환상의 맛을 낸다고 하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고.


스스로 대단히 강단있고 줏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 이런 것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 거라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진다. 갑자기 어느 날 부턴지 렌틸콩과 커민 가루를 주문하고 아보카도 같은 것을 사서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과카몰리를 집에서 하게 되었고 파스타 면 삶는 냄비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바보상자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특히 식재료를 잘 아는 사람이 참 멋있어 보여서 음식 미시사같은 책도 틈틈이 찾아보았다. 토마토가 한 때는 얼마나 에로틱한 채소였는지 아스텍 문명에서 최면과 주술로 먹었다는 코코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당시 어떤 맛이었는지 상상을 펼쳐보기도 하고 어딜가야 먹을 수 있는지 찾으면서 보낸 시간은 꽤 된다.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 에서 얼굴 주름을 한껏 잡으며 F***를 연발하는 고든 램지의 카리스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월급을 꽤 많이 받는 것 같은 대학 동기 Y가 페이스북에 이태원과 강남 등지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포스팅한 것을 몇 번이고 염탐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친구는 모델처럼 깡 말랐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어떤 음식, 요리를 모르면 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요리책을 하나하나 사다가 결국 엄청 두꺼운 하드커버 요리책까지 구입한 상태다. 원래 살 때 즈음에만 해도 그 요리책을 한 장 한 장 펼치며 거품기를 들고 밀가루 범벅이 된 꼴로 오븐과 식탁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를 상상했으나 결국, 요리책은 비싼 커피 컵 받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나 정도의 사람은 '푸디스트'라고 부르기는 매우 미미한 수준인 걸 안다. 한 때 유기농 재료와 이국적인 재료를 좀 찾았다고 해서, 가정 요리의 달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다고 해서 '음식 미치광이'처럼 비춰지기는 싫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조금씩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먹는 것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 예.. 저도 알아요. 저 좀 병적인 거!


종교는 없지만 7가지 죄악 중에 탐욕, 탐식이 들어간다. 음식을 섹스에 비유하는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로마 도덕주의자들이 섹스에 대한 혐오감과 과식에 대한 혐오감을 하나로 취급해 "매음굴과 기름투성이 요릿집은 당신의 열망을 자극한다."(p.101)했다는데 나도 가끔은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게 스스로 좋지 않게 생각될 때가 있다.


물론 책은 나같은 사람을 비난하기 보단 스스로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이 구는 일부 셰프들과 똥폼 잡는 푸드 블로거, 외식 사업과 방송의 실체를 발가벗기는 데 있겠지만 왠지 뜨끔하긴 했다. 정신차려야지.


밑줄긋기 해본다. 몇 가지 뜨끔한다면 깨달아야 한다. '먹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You Aren't what You Eat' 라고.


그들은 건강식품 환자가 "먹는 행위에서 정체성과 영성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꼭 푸디스트처럼 말이다. "건강식품 강박증 환자는 음식을 생각하며 보내느 시간이 상당이 많다." 이 역시 푸디스트와 마찬가지다. 강박 증세를 보이는 이들의 먹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생활 방식, 식습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도록 한다." 푸디스트의 먹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p.31)

이제부터는 `스프링 램`에 관한 어휘 문제. 스프링 램이 봄에 먹는 어린 양고기를 뜻했던 적이있다. 도세트 혼이라는 오래된 영국 품종인 암양은 가을에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는 겨울 동안 충분히 자라서 부활절 무렵에 딱 먹기 좋게 컷다. 하지만 대다수 품종의 양은 봄에 새끼를 낳아 겨울에 먹어야 했다. 혼란스럽게도 이제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스프링 램을 먹길 원해서 업계에서 말하는 스프링 램은 "풀밭에서 자라다가 한해의 특정 계절이 아니라 적당한 무게가 되었을 때 도살되는" 양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면 `스프링 램`이라는 명칭은 결코 믿을 수 없다. 지구상 어딘가에서 적어도 4월쯤에 초원을 즐겁게 뛰어다니던 양의 고기가 접시 위에 놓여 있다는 기분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려는 이름일 뿐이다. (p.74)

이렇게 메뉴에서 요리 이름은 미각적인 즐거움, 입에 닿는 흥미로운 느낌, 자연과의 교감, 윤리적 책임, 요리에 응용된 과학, 편안한 분위기에서 기꺼이 제물로 마쳐진 고기, 혐오스럽지 않은 이름의 생선을 약속하며 심지어 야유까지 담아낸다. 이런 모든 전략을 펼칠 때 메뉴는 매우 입에 발린 방식으로 손님이 식별력이라는 미묘한 안목을 갖춘 듯 느끼게 한다. 메뉴는 문학적 산물로 실제로 영향력이 있다. (p.81)

푸디즘의 또 다른 면은 이국적인 것에 대한 선호이다. 이국풍 음식에 대한 찬미는 주류의 가스트로포르노가 아니라 일종의 고금 페티시 성애물이라 하겠다. <펫덕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법의 매력이라 할 만한 것은, 누가 봐도 혐오스러운 조합(달걀과 베이컨 아이스크림, 올리브와 가죽 퓌레)으로 이루어진 참신함이 전부이다. (p.99)

유기농 식품에 대한 몰두는 쾌락적 폭식을 겨냥한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현대 푸디스트의 가장 야심찬 방식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다. 먹을 것에 대한 푸디스트의 병적인 집착이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하는 방식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올바른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윤리적인 행위라는 것. 따라서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는 것은 한 개인의 도덕적 우월함을 행사하는 것이다.(p.173)

음식은 상상 속으로의 여행이 아닐지라도 위로를, 특히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기에 위로를 준다. 다른 모든 상황이 예측할 수 없이 돌아갈 때, 음식은 기댈 만한 위안물이다. 리처드 고드윈 기자는 삼십대 친구 중 상당수가 아파트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고, 아이를 가지는 시기도 미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대신 그들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린다.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관대하게 보자면, 음식을 통해 다른 곳에서 부족한 위로를 받으려는 게 아닐까." (p.192)

현대의 푸디즘은 희귀한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다. 엄청난 노력이거나 최소한의 노력. 그 중간이랄 것은 없다.(p.201)

이는 음식 문화의 격이 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노동 문화의 질적 하락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영국과 다른 유럽에서 많은 사람이 매일 저녁 집에 돌아와서 요리를 하고 싶어도 요리할 시간은 물론 정신적 에너지도 내지 못한다. 인스턴트식품을 먹으면서 혐오스럽고 무지하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이러한 존재론적 상처에 모욕까지 끼얹는 셈이다. (p.203)

`딜리아의 클래식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재미 삼아 요리해 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추가로 돈을 내야 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특히, 지적 노동이 증가하는 일반적인 근무 환경에서 무형의 생산물을 다루며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런 기회를 원할 것이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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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16-02-1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쿡방, 먹방의 인기몰이에 `음식관음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하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고 음미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기쁨을 주는 행위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도 자칭 미식가입네 하고 다녔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먹는 것에 집착을 하다보니 맛집 찾는 것도 피곤하고 그냥 가볍에 평가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그냥밥`으로 한끼를 해결하고 싶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행위가 도리어 -맛있는 것을 먹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압박을 주기 때문이랄까요.
어찌되었든 굳이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열망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과도하게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16 01:21   좋아요 1 | URL
그쵸~ 저도 음식을 진짜 좋아하긴 하는데 가끔은 쿡방이니 먹방이니 좀 과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먹방같은 건 영국 잡지에서 `korean food porn`으로 소개된 적도 있다고 해요. 저도 희안한 곤충 먹는 방송은 찾아본 적도 있어서 뜨끔합니다요.ㅎㅎㅎ
어느 순간 궁극의 한끼를 찾아먹는 것도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레스도 받고.. 음식이 단순히 먹은 행위만은 아니라서 그런지 여러모로 의미 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책벌레님 말씀에 힘 입어 이제 죄책감 없이 맛난 음식을 호로록~ 하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2-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연휴에 TV 채널을 돌리는데 쿡방 프로그램만 나오길래 아예 TV를 꺼버렸습니다.  쿡방 프로그램만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가 어렵습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15 17:45   좋아요 0 | URL
그죠 명절에 기름에 목욕한 전에 질리는데다 또 남은 전탕(?)해먹어야 되나 싶은데 쿡방에서는 막 럭셔리 음식에 남은 전으로 막 햄버거 만들어먹으라 그러고...ㅎㅎ
요즘 쉐프들도 연예기획사에 속해 있는 경우도 꽤 있어서 그런지 예능감 넘치는 분 아니면 불편하게 방송하는 게 느껴져서 짠하기도 하더라구요. ㅠㅠ

cyrus 2016-02-15 17:46   좋아요 1 | URL
남은 설 음식... 오늘 점심은 떡국이었습니다. ㅋㅋㅋ

서니데이 2016-02-1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15 20:31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따뜻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나의 일상에 너의 일상을 더해 - 일하며, 깨달으며 적어 내려간 삶의 지혜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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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을 하나의 '우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아마 김형경인가.. 심리 에세이에서 쓴 표현이었는데 맘에 쏙 들었다. 어떤 사람을 알고 어떤 사람의 우주를 안다는 것. 사는 데 그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을 할 때 제일 재밌는 것이 사람 구경,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 풍경이다. 어떤 이들의 당당하고 여유있는 모습에서 세상에 이다지도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니 나는 지금껏 왜 이렇게 달달 볶고 살았나 억울하다! 라는 기분만 들면 세상은 정말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이들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거나 미움을 이유없이 표출하거나 해서 보고 있는 사람도 슬프게 만든다.


뭐 이런 게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너무나 흔한 일상다반사, 흔한 인생이다.


여행에서 다른 이의 삶을 잠시 훔쳐보는 경험을 강렬해서 더 지워지지 않고 인상에 박히지만 사실, 한 사람의 파편을 겨우 겉핥기로 본 것으로 저 사람은 행복한 사람, 저 사람은 불행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도 편협적인 자세일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제단하고 판단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도, 인생을 낭비하는 짓도 없다. 결국의 그런 일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싼 콘서트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국내에서 논란이 많았던 머라이어 캐리가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 쇼비지니스에 종사하는 미국인 특유의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던 말이 떠오른다. "I don't judge person."


이건 흔히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데려다 놓고 "누가 더 잘 생겼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선택 못 받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는 우문에 대한 현답으로 내 뇌리에 깊히 박혀 있다. (관전 포인트는 외국인들은 왜 웃는지 어리둥절한 상태.)


내가 몇 번의 연애와 실패를 겪으면서 남들에게 절대 "헤어져라"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듯이,(물론 거부할 수 없는 쓰레기는 논외로 친다.)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일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뼈와 살과 물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은 역시 매일, 일상이다. 일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료하고 쳇바퀴 같은 삶이겠지만 쳇바퀴는 모두에게 다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우주를 공유한다는 것은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일상은 따지고 보면, 항상 무료하고 지루하지만은 않다. 가끔, 한 순간의,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있고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도 있고 이불을 뻥뻥차는 순간도 (아주 많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자신의 일상에 대해 깔끔 똑 떨어지게 말하기 힘든 것 처럼 일상은 쭉- 이어져 있지만 단편적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만 생각 나는 경우가 많기에.


책은 일상에 대한 짧은 단상으로 이어져있다. 회사원으로 일하는 사회인인 동시에 에세이를 쓰고 소중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는 저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특별하지는 않지만 돌이켜 보면 특별한 짧은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머리에 한번씩은 스쳤었던 것 같은 깨달음이 기록되어 있다.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약간 손해보며 사는 게, 약간 지면서 사는 게 결국엔 이득이고 이기는 거라는 것. 엄마 말이 맞았다.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에
서슴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나
(p.35)

<늘 자기방어부터 하고 있지 않은지>
그러고 보면 누가 묻지 않아도 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원래 안 이런데, 어제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부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다크서클이 내려앉았어요!" (p.59)

별똥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진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p. 74)

우리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공격적인 말이나 비난보다
주변 사람들의 `위해서 한 말`,`걱정돼서 한 말`에 상처 받는다.(p.185)

<인간관계의 방정식>
무능하고 강퍅해도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
반대로 능력 있고 인품 좋은 사람이어도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게임오버. (p.193)

세상에는 어지르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있다.
어린아이와 엄마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그 역할은 수시로 바뀐다.
어지르는 역할을 맡았을 때,
우리는 치우는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p. 229)

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이여!
지긋지긋한 일상의 도돌이표가 면제된 꿈과 낭만의 섬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제주에도 먼지가 쌓인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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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B형 2015.8
코스모폴리탄 편집부 엮음 / 허스트중앙(Hearst-Joongang)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저번에 칼럼이 약해졌다고 조금 깠(?)었는데.. 이번호는 아주 훌륭하다. 음하하하.


약간 창피함을 무릅쓰고 리뷰를 쓴다. 못한다고만 하면 진상 투덜이가 되는 것이라 당근도 투척하고 싶다.


Girls On Top인 표제에 맞게 화끈한 특집 칼럼이 마음에 쏙 든다.

폭염이 지속되는 화끈한 여름이라 특집 페이지까지 마련한 노력에 감사한다. 특히 밀봉해 놓은 페이지를 뜯을 땐 약간 두근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좋다. 저번에는 부록으로 따로 얇은 책을 만들어서 주기도 했는데... 잡지를 못 버리게하려는 똑똑한 계략인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사고 바로 사귀던 사람과 헤어져서 당장 써 먹을 수는 없지만 참고하겠습니다.*-_-*


샤이니 태민의 정말 샤이니한 화보도 실려 있고 좋은 기사도 많았지만.. 저 24페이지 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그리고 별책부록. 당신의 커리어엔 플랜 B가 있나요? 는 또 다른 의미로 자극적이었다.


잡지라 원체 커리어가 빵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얼굴을 걸고 실제 경험을 말하는 선배(?)의 이야기는 도움도 자극도 많이 되었다. 누구나 플랜 B는 있어야 한다.


플랜 B를 짜야할 때를 체크해 볼 수 있는 체크 시트는 꼭 커리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도 대입이 가능할 듯. 원체 고용이 불안정하고 점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시기에 자기개발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 일, 자신의 균형을 맞춰야 하므로... 정말 여러 의미로 자.극.적. 이었던 이번 달 코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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