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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 내 인생 꼬이게 만드는 그 사람 대처법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5년 8월
평점 :
제목 그대로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그 사람한테 휘둘리지?
외모부터 동그랗게 생겨서 성격이 순하다는 오해(?)를 이십년이 훌쩍 넘게 받고 살다보니 어릴 때 순둥했던 성격이 이제는 말 그대로 '개'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남들한테 아예 안 휘둘리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아직 화내는 법을 익히지 못하다보니 한 번에 폭발하듯 화를 내서 상대를 놀래키고 나는 나대로 마음 정리가 끝난 상태니 이미 감정의 골은 무한히 깊어진 상태.
물론 모든 사람들과 이런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 관계를 풀어가는 법이 서툰 나도 문제는 문제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내 마음에 똬리튼 늑대를 깨우는 사람들도 문제라면 문제다. 나도 미성숙한 인간이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굳이 타인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감정 조종자'가 실은 더 나쁜놈이었던 것이다. 괴로워하며 원인을 자꾸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걸 반성한다.
책은 사람을 이용하는 심리 조종자를 미성숙한 인간을 가끔은 의도적으로 '악마'로 묘사하면서 가해자에게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철저히 피해자의 편에 서서 말을 해줘서 위로가 된다. 항상 그렇듯 실천이 가장 중요한 거지만.
나의 기를 다 빨아먹는 연인이나 배우자, 일에 사사건건 괴롭히는 직장 상사,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이들 때문에 항상 괴롭고 무기력, 심각하게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괴롭다면 당신은 이미 '감정 조종자'의 희생양인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너무나 미성숙한 못된 인격인 것이다. (미성숙하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몸만 큰 어린 아이로 스스로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생존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옆에 사람을 이용해서 정신적인 기와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내 감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 얼굴을 마다 않는 사람이라 헷갈리긴 해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가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 그 때문에 내가 비이성적인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내 에너지를 고갈하고 갉아먹어서 일상에 지장이 온다면 이미 나는 조종당하고 있다. 그는 불행하게도 직장에서 꼴보기 싫은 또라이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도 해당된다.
"자신의 감정은 자기가 제일 먼저 안다. 심리 조종자를 대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본능적으로 불안하든가 불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는 싹싹하고 단점이 없다. 우리는 그를 경계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내면의 경고를 무시하고 넘어가곤 한다.
심리 조종자를 겪어 본 사람들은 훗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분명히 그가 긍정적으로 보였는데도 머리속에서 '이 사람은 아냐!'라는 경교가 울려 퍼졌다고." (p.113)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이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다만 더 잘 걸리는 유형이 있을 뿐. 너무나 인간관계에 낙관적이거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지옥에서도 환상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잘 걸리고 빠져나가지 못한다.
나도 한 때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고 싶어(사실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고 싶어) "아무리 저 사람이 그래도.. 그래도.. 나는!!" 이란 생각을 가지고 온갖 도리를 다 했었는데 내려놓고 보니 내 심신이 편해졌다. 그걸 깨달은 후로 나는 좀 까칠한 인간이 되었지만 오히려 내 소중한 사람한테 더 잘해주게 되었다. 특히, 내 의지대로 맺고 끊음이 가능한 사교 관계에서 도리에 집착하기 보단 내 감정에 솔직하는 게 맞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 감정 조종자에게 벗어날 해결방법은 하나다. 그들과 떨어지면 된다. 떨어지면 만사가 해결된다. 나를 욺켜쥐는 집에서 나오고 배우자와는 이혼을 하고 회사에서는 사표를 쓰면 된다. 하지만 이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쉽게 놓아주려 하질 않고 오히려 복수하려고 한다. 떠나려는 연인을 살해하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래도, 그래도 인생은 긴 까닭에 그들의 지옥, 정신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자기가 휘둘리는 상황인 것, 그들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에게 사과나 반성 따위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한다고 해도 그건 당신을 다시 붙잡아 두려는 것일 뿐이니. 자신에게 부여한 너무나 정의로운 역할에서 벗어나고 그들이 약속했던 달콤한 말도 지워야 한다. 죄책감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하고 더 공고한 계약을 맺어야 한다.
특히 인생에 기본적인 선택에 대해선 결코 내 뜻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해야 한다.
(1. 결혼을 하거나 살림을 차리는 문제/ 2. 가까운 사람이나 친구와의 관계를 끊는 문제/ 3. 사직 혹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일을 계속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4. 큰돈을 지출하거나 투자하는 문제/ 5. 임신과 인공 유산의 문제) (p.219)
가장 좋은 것은 그들에게 벗어나서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벗어나는 것에 힘을 들이지만 나중되면 몹시 억울할지니. 흑흑
결국 스스로 가해자에게 벗어나서 다시 걸려들지 않을만큼의 인내력과 중심을 기르라는 보통의 심리학 서적과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지만 일상속에서 나를 잡아삼키는 심리 조종자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반복되는 얘기가 좀 있지만 끝 챕터까지 열심히 읽으면 꽤 구체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 내 말에 비꼬는 사람에게 "그건 네 얘기지" 라거나 "부부는 한 몸이야. 잘되면 같이 잘되고 망가지면 같이 망가지는 거야. 한쪽에만 책임이 있을 수는 없어" (p. 253) 등의 아주 구체적인 대사까지 적어주고 있으니 필요하면 달달 외우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나쁠 리 없지." 같은 생각은 별로다. 나쁘지 않으면 나를 그렇게 괴롭힐 일은 없으니까. 내가 휘둘리는 피해자라면 꼭 거기서 빠져나와서 피해복구를 해야한다. 죄책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