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개인사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긴 하지만 모르면 몰라도 알고 나서는 영향을 안 받기는 힘든 일이다. 특히 작가의 인생이 특별히 기구하거나 괴벽이 있는 경우에는 머리에 한 번 박히면 읽는 동안 거기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의외로 작품이 밝거나 엽기적이라면 모르겠는데 대체로 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묘하게 쓴 사람의 인생처럼 음울하거나 슬프게 담담한 경우가 많다.


의외로 많이 회자되는 작가라 오프라인 중고샵에 들른 김에 사온 한 권. 얇아서 운동하고 돌아오는 30분 걸리는 길에 가뿐이 들고 오기에 부담이 없었다. 엣된 얼굴에 담배를 들고 있어서 그런가(나는 왜 이딴 편견을 갖고 있는가)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 나는 표지사진은 구글에 작가 이름을 치면 흔히 떠돌아 다니는 대표 사진인 듯 했다. 담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듯. 


요즘 미드에서 담배를 줄줄이 펴대면 완전 루져 취급을 하는 분위기던데 환갑인 우리 엄마가 고등학교 때 왔던 미국인 원어민 교사가 맞담배를 폈다는 얘기를 골백번 하는 걸 보면 예전에는 담배를 오히려 권하기도 했다는 사회 분위기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참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못 참는 이 나라 문화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담배피는 여자를 왠지 자유로운 성향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 편견쟁이인가 보다.


번역은 생전에 영문번역과 에세이로도 유명했던 장영희 교수가 해서 그런지 거슬리는 문장 하나 없이 깔끔하다. 원문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역자 장영희도 꽤 오랜기간 암 때문에 고생하다가 결국 암으로 작고한 교수로 알려진 사람이라 더욱 절절한 번역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뒤에 딸린 작가 연보에 매컬러스는 어릴 때는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았다가 류머티즘이 생기고 뇌졸중으로 서른살부터 휠체어 생활을 시작해서 결국 뇌졸중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평생 죽음이 곁에 따라다리는 (쉽게 단정하기 미안하지만)암울한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잔인한 사랑의 속성과 정신적인 고립을 하는 외로운 인생을 자주 그린 작가답게 슬픈 개인사를 '인간 승리'로 극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고 작가에 입문한 사건도 지하철에서 아버지가 마련해 준 음대 등록금을 잃어버려서 였다고 한다. 게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난 결혼 생활은 질투, 알코올 중독, 외도, 우울증, 자살기도로 얼룩지기도 했다. 나는 '인간 승리' 스토리에 딱히 공감을 못 하는 터라 힘든 상황에 엄청난 에너지를 내면서 극복하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절망에 빠진 삶을 사는 사람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어 글에서 힘이 느껴진다.


제목부터 슬픈 [슬픈 카페의 노래]는 슬픈 이야기다. 사랑이 떠나가고 가슴에 멍이 드는 이야기. 근데 하필 그게 일생일대의 사랑이라 다음부터는 밥도 잘 못 먹는 이야기. 90년대 노래를 자주 듣는데 실컷 잘 따라 부르다가 가끔 너무 절절한 가사에 '뭐 이리 청승맞지?'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요즘의 신나는 노래와 비교하면 로미오와 줄리엣, 모든 세상을 저주하는 중2병 환자들 아닌지 의심스러운 가사도 있다. 유행가는 현학적인 것보다 청승맞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가끔은 청승모드 뚝뚝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겨울 때가 있다. 타인의 슬픔을 쉽게 생각하는 일은 나쁘지만 '내 사랑은 정말 최고였는데...'같은 류의 착각은 들어주기가 괴롭다. [슬픈 카페의 노래]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전에 살던 아파트에 좀 선하게(?) 미친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엄마가 반상회에서 들은 소문을 듣고 보니 그 언니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살집이 좀 있어도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꾸미면 예쁘장한 얼굴이란 것도 느꼈는데 사실은 이대까지 나온 여자에 직업도 좋은 편이었는데 첫사랑에 크게 데이고 나서 정신을 확 놔버렸다고 한다.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한 얘기도 아니었을테니 소문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예쁘장한 외형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사랑해야 그 사람을 잃으면 미치기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사실 지금도 헤어지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이해가 안 된다.


[슬픈 카페의 노래]의 '미스' 어밀리어는 약간 사시에 기골이 장대한 잘생긴 여자다. 여장부다운 외모와 같이 물건을 잘 만드는 재주도 있었고 사업수완도 좋았다. 꽤 재산을 축적한 그녀였지만 손해보는 걸 참을 수 없어하는 성격에 걸핏하면 소송을 거는 게 취미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을 마을 사람 대부분은 호감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 스스로 사람 다루는 걸 어려워 했지만 몇 선량한 사람들은 그녀의 불우한 가정사를 알고 이해해주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을 '꼬마'라고 불러주던 아버지도 그리 오래 살지 못했던 거였다. 어느 날 라이먼이라는 꼽추가 미스 어밀리어의 가게에 흘러들어 왔고 모두들 미스 어밀리어가 그를 흠씬 두들겨 패서 쫓겨내리라 예상했지만 그는 바로 다음 날 카페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꼽추는 보기에 나이를 가늠할 수도 없었고 호감가는 외모도 아닌데다 별로 공손하거나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아이처럼 즉각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재주라나. 


작은 마을에 생긴 카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기 충분했고 하나의 문화 시설처럼 되었다. 꼽추는 허풍이 심하고 사람을 사정없이 캐고다니면서 싸움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그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스 어밀리어는 여전히 딱딱하고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었어도 카페같은 것을 운영하게 된 걸 보면 그는 보통 사람 이상이었다. 꼽추는 마을에서 미스 어밀리어를 그냥 '어밀리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미스 어밀리어는 그녀가 결혼했던 열흘간의 일만 아니면 그에게 모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면 좋았는데 불행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미스 어밀리어의 전 남편이 마을을 찾아온 것이다. 그를 반기지 않는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그랬다. 심지어 그의 동생과 그를 사랑으로 키워준 부인까지. 마빈 메이시는 악명높은 범죄자였고 미스 어밀리어에게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지독히도 나쁜 놈이었다. 그에게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런 환경이 그의 인생에 나쁘게 발현된 경우였다. 그는 큰 키에 근육질 몸매, 잘생긴 외모로 참한 여자들의 인생을 망쳐 놓기도 했고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질렸다. 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게도 미스 어밀리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후 2년 동안 스스로 착실한 인생을 살면서 변화했다. 그는 돈을 모으고 행실도 바르게 했다. 그리고 미스 어밀리어에게 청혼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미스 어밀리어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했고 절망해서 술을 마셨다. 그럴 때마다 미스 어밀리어는 그를 때렸다. 마빈 메이시는 마지막 자신의 사랑의 징표로 그의 재산을 모두 그녀의 앞으로 돌려놨는데 그게 결국은 그가 한 푼도 없이 마을을 쫓겨나게 되는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 그는 마을을 떠나서 더 범죄를 진화시키게 되어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까지 한다.


그는 돌아오면서 마을에 불운을 몰고 왔다. 꼽추는 잘생긴 그에게 반해서 하루종일 쫓아다녔고 그는 꼽추를 벌레 보듯이 멸시했다. 매사에 정확한 미스 어밀리어는 잠을 못 자면서 판단력이 흐려졌고 꼽추를 쫓아내지도 않고 세 사람이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결전의 날을 기다리면서. 결국 둘은 싸움에 붙는데 아무리해도 결판이 나지 않는 싸움은 결국 미스 어밀리어가 사랑하는 꼽추의 행동으로 인해 완전히 지게 된다. 싸움에 져서 미스 어밀리어가 뻗어 있는 사이에 두 사람은 미스 어밀리어의 재산을 털어가고 미스 어밀리어가 만들어 놓은 음식에 독을 타고, 욕을 써놓고 마을을 떠나버린다.


그 후, 미스 어밀리어는 생기를 잃었고 카페는 쇠락한다. 그녀는 꼽추를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p. 115)








중고샵에서 책을 사다보니 가끔은 전 주인의 흔적을 만날 때가 있다. 정말 지저분하면 문제가 되는데 아래 인용문이 알폰소 꾸에또의 [고래 여인의 속삭임]에서 첫 장에 인용됐다고 하는 정보가 있었다. 


미스 어밀리어는 머리가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었고 머리털은 희끗희끗해져갔다. 그녀의 얼굴은 수척해졌으며 단단했던 온몸의 근육들은 쪼그라들어 노처녀가 히스테리를 부릴 때처럼 날이 갈수록 여위어갔다. 그리고 회색 눈동자는 나날이 조금더 심하게 가운데로 모여서 마치 슬픔과 고독의 눈및을 나누기 위해 서로를 간절해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p.131-132)  


갑자기 소설[밑줄 긋는 남자]가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호사를 누려도 되겠지 싶었는데 슬프게도 여자 글씨였다. 뭐 손이 고운 남자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참에 [고래 여인의 속삭임]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사람이 한 번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간 자리는 유난히 황량한 법이다. 그런데 상대방을 잃고나서 자신을 방치할 정도로의 아픈 사랑은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노래했지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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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쩐지 제목이 들어본 것 같아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17 19:16   좋아요 1 | URL
우울할 때는 읽으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붸붸 꼬인 세 인물의 마성의 매력이 뭔지 도무지 이해가 잘 안가서요.ㅎㅎ 이번 추석에는 너무 많이 먹네요. 서니님도 남은 추석 연휴 잘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