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새해가 절반 넘어 지나가고 있다. 모든 게 지나가고 또 다시 오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나는 거자혹반이 아닐까 라고 말했다. 돌아온 경우도 있지만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으니. 사람의 마음이나 관계는 더욱 그렇지 싶다.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서는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 기억도 관계도 함께 사라지는 거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말 그럴까. 함께한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은 그 시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몰려온다. 하잘 것 없는 게 되어 버리는 자신이 싫은 것이다. 그러니 돌아온 경우에는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감격, 감동, 감사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이다. 다 인연이겠거니.

 

새해 들어 이틀째 밤, 서울에 살고 있는 작은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냥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밤 11시였고 추운겨울밤이었다. 4층 원룸에서 내려와 찾아보던 중, 좀전에 담벼락 틈새에서 녀석의 옆모습을 봤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10개월밖에 안 된 녀석이 어디서 떨고 있을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놀라고 상심한 딸아이도 안쓰러웠는데 다행히도아이는 합리적으로 냥이를 찾기 시작했고 포기하지도 당황해 하지도 않았다. 조심하지 않은 상황들에는 화가 좀 났지만 일상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제 할일을 하며 차분히 찾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다. 나는 그동안 딸아이집에 가서 아이마음도 보듬어 주고 냥이가 사라진 방청소도 하고 밤에는 아이가 만들어온 전단지를 함께 붙였다. 그다지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전봇대와 담벼락에 냥이 사진이 붙은 전단지를 단단히 붙였다. 가게 유리창에 붙이라고 선뜻 말씀해주신 성산로 18길 '23시 그린마트' 주인아저씨, 감사하다. 골목을 환히 비추며 우리를 내려다보던 가로등 불빛이 아니어도 밤공기가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먹이와 물과 화장실을 집 밖에 내어놓았고 날마다 기다렸다. 먹이를 먹은 흔적이 있어서 멀리 안 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녀석은 진짜 집주변에서 2주일을 배회했던 것이다. 어젯밤 11경 다시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녀석을 찾았다고. 전화 너머로 냐옹냐옹 소리가 들렸다. 케이지를 놓은 지 한 시간만에 걸려든 것이다. 고 불쌍한 것이 케이지 안에서 덜덜 떨고 있더란다. 케이지덫을 사려고 마음 먹고 있던 차에 그걸 빌려주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고 그 덕분에 냥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가출 2주일만에 돌아온 녀석은 살이 쏙 빠져 있고 흰색 털부분이 회색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사라진 2주일 동안 나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마음이 궁금했다. 열린 문으로 바깥세상이 궁금해 나간 고양이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사람의 이해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모를 일이지만, 모든 짐작은 사람 기준이 아닐까. 길냥이들의 영역 다툼에서 밀려 멀리 갔을 수도 있다는 누군가의 생각을 뒤엎고 역시 집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 줘서 고맙다. 얼마나 춥고 두려웠을까. 집에 데리고 들어와 케이지를 열어주니까 아이발에 머리를 부비로 핥고 가릉거리며 바들바들 떨더란다.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싶어 찡했다.

 

아침에 '평화의 꾹꾹이'라며 동영상을 보내왔다. 냥이가 돌아와 안정되면서 덩달아 딸아이도 순해졌다. 공부하느라 집에도 안 내려온 아이는 그동안 속상해 날카로워져 있었다. 나로선 냥이가 눈앞에 삼삼하면서도 다행히 어디 좋은 데로 갔기를 바랐고, 돌아오지 않아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원룸에서 냥이와 동거하는 아이 마음은 알겠지만 좁은 방이 엉망이었다. 마음껏 사랑을 주고 한번은 떠안아야 할 상실감에  아픔을 겪는 아이를 보며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8월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면 냥이의 거처를 어떻게 해야할지 살짝 고민이다. 어쩌면 내가 데려와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들이 정작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예상과 예감은 어긋나기 일쑤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새해 들어 첫 낭독녹음을 하러 가는 길에, 붕어빵을 사갔다. 점심시간 직후이긴 하지만 따끈하게 간식으로 나눠드시라고 점자도서관의 착한 선생님들에게 드렸다. 나도 두 개 먹고.

 

 

픽업 / 더글라스 케네디 / 밝은세상(총 339쪽)

녹음시작 2019.1.16. (73쪽 3번 파일까지 완료)

 

12개의 단편소설 모음집 중 '픽업'은 첫번째 소설이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편견이 엿보이는 문장이 있지만 그것이 작가의 편견이라기보다 자칭 타칭 인간쓰레기 주인공 찰스의 편견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더글라스 특유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이 재미나게 읽힌다. 결말에서 뒤통수를 때리는 한 방과 함께 생의 통찰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은 얼마나 강한 충격타를 받아야 정신을 차릴까.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중략)

"정직한 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73쪽)

 

더글라스 케네디가 격찬을 받은 여행기로 <Beyond the Pyramids>, <In God's Country> 등이 있다는 건 책날개의 작가소개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고마워 영화 / 배혜경 / 세종출판사 (총 315쪽)

편집 2019. 1. 16. (118쪽 5번 파일까지 완료)

 

작년에 녹음완료, 편집교정 중이다.

며칠 전 영화 <채식주의자> 임우성 감독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제목에 이끌려 책을 고르고 커피샵에서 누굴 기다리며 읽던 중

목차의 영화들과 서문이 마음에 들었고 영화 목록을 보다가 <채식주의자>를 발견했다고.

몇 안 되는 리뷰 중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정확한 글이라고, 인연에 대한 내 문장에 공감하셨다.감독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감상하진 못했지만 다른 작품들도 있다.

앞으로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며, <채식주의자>의 아름답고 슬픈 이미지들이 다시 스쳐간다.

한강의 원작과는 또 다른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올해는 한 가지 중책을 더 맡아 좀더 바빠질 것 같지만 틈틈이 길을 떠날 것이고, 넓고 깊게 아름다움에 좀더 가까이 가보고 싶다.

 

 

 

물구나무를 서듯 거리에 뿌리를 박고 햇살을 받아 타오르는 초록잎들의 불꽃, 활짝 벌린 가랑이 사이로 피어나는 꽃들의 냄새,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이, '누린내 나는 살의 죄'를 먹지 않아도 햇빛과 물만 있으면 생명을 이어가는 순연한 식물의 꿈으로 현실은 환원된다. 재생과 부활의 꿈이다.

   하지만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꿈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꿈에서 깨어나면 그래도..."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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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1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프레이야 2019-01-18 15:07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도 새해 복 많이 짓고 많이 받으세요. 전 조금만 받겠습니다. 이곳 바다쪽 햇살이 포근해요

수퍼남매맘 2019-01-1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2 주만에 돌아오다니 정말 기적이네요 .

프레이야 2019-01-18 20:23   좋아요 0 | URL
그죠^^ 넘 신기하고 반갑고 눈물겨운 거에요.
 
 전출처 : 프레이야 > 입동

이런 기능을 다 하네 북플이.
기억을 다시 불러주어 고맙군. 지금의 심정과 다르지 않아
재포스팅하여 공유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한다기보다 오히려 생을 반복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들, 달라져야할 것들도 있고. 바야흐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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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1-1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새 글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저도 작년의 기록을 보면, 그 때와 지금이 큰 차이가 없는데, 그 사이 일년이 지났다는 것이 조금 낯설어요.
날씨가 차가워지고 있어요. 겨울이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11-18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니데이님 안녕하시죠^^ 겨울이긴 하나 봐요. 갈수록 계절마다 참 애틋해집니다. 열공하시면서 바람도 쐬고 좋은 나날 보내시길.

카스피 2018-11-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오랜만에 뵙는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8-11-20 09:30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시죠^^

서니데이 2018-12-1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12-21 02:0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모르고 있었는데 사니데이 님 소식 전해주신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새해에는 좀 더 자주 뵐 수 있게 할게요.

2018-12-24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12-3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새해인사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글과 인사 나누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입니다.
새해에는 가정과 하시는 일에 건강과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더합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 8. 28 녹음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다시 땡볕이 기세등등하다.

막바지 더위에 과일이 달게 익기를...매미소리도 제법 잦아든 요즘, 모기가 기세등등하다.

지난 주 작은아이가 데리고 있는 냥이를 며칠 봐주러 가 캣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왔다.

어찌나 귀엽게 구는지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녀석 ㅎㅎ

나를 할퀴고 살살 물고 하더니 그래도 내치지 않았더니 나를 아주 신뢰하고 안기는 관계가 되었다.

화장실을 치워 줄 때면 모래에 뒹굴고 먹을 거리를 챙겨줄 때면 어서 달라고 쌀알 같은 이를 드러내고

애기 소리를 내며 빤히 쳐다보고 누워 있기라도 하면 내 귓속에 골골송을 부르며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고 말랑말랑한 발바닥으로 내 얼굴을 더듬고 혀로 핥고, 나는 고 귀여운 입에 뽀뽀도 하였다.

그렇게 냥이와 난 서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더위도 불사하고 낮에 풍납토성을 찾아갔다. 마을 어르신이 허리 굽혀 잡초를 뽑고 계시는 옆에 가서

이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모과나무에요. 저 위에 모과 파랗게 열려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아오리사과 연두빛보다는 좀 진한 모과가 대롱대롱 많이도 열렸다.

그 나무 둥치에는 황금옷을 입은 성자들이 꼼짝않고 매달려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

매미는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태어나고자 침묵의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외피를 벗고 새로 태어나는 날  죽음은 안중에도 없이 열혈생명의 목소리로 울어대겠지.

한세상 제대로 울어재끼다 가겠지.

풍납토성 위로 하늘이 찌를 듯이 높았고 흰구름 두둥실 가벼이 걸려 있었다.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2013년에 출간된 시집이다.

총 세 개의 파일로 한 호흡에 시집 한 권을 녹음완료했다.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 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양팔저울 /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행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 개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이 외도  '이가탄'을 한자로 달리 쓴 '이가탄'이라는 시는 신랄하고 재미있고 슬프다.

 

 

<황무지>는 황동규 옮김, 황동규 해석으로 엮었다. 역시 2013년 발간.

'황무지'뿐 아니라 다른 시까지 T.S. Eloit의 시를 좀더 이해할 수 있다.

주석도 많은 시집이지만 듣을 분들을 위해 적절히 배치하여 빠짐없이 녹음했다.

작년 강의 때 이 시를 녹음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신 시각장애인 한 분의 요청으로

점자도서관에서 시집을 구매하였고 이제사 내가 녹음했다.

그분이 부디 찾아서 잘 들으시길...  그리고 늘 "내 예쁜이"라고 부르시던 아내분과 요즘도

건강하고 밝게 동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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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8-08-30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로 들으면 얼마나 더 좋을지요. 수고가 많으셨네요.

프레이야 2018-09-02 13:34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 시집 낭독은 한 권에 30분 파일 세 개 정도면 되어요.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8-08-31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취미 같습니다.

blueyonder 2018-09-2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정말 멋져요!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네요.

프레이야 2018-09-21 21: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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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살로메는 블랙베리처럼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조곤조곤 말한다. 지금의 일과 관계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그녀는 자그마한 몸피에 소박한 경상북도의 억양이 야무지면서도 친근감을 자아낸다.

 

단편소설 <폭설>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가의 지난한 밥벌이길로 들어선 김살로메는 2016년 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이 세종도서문학나눔 도서에 선정되었다. 포항 포은중앙도서관의 상주작가로 근무하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글쓰기와 독서동아리, 수필 및 소설반 등 여러 모임과 신문칼럼 등의 매체를 통해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표지부터 깔끔한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성실하고 견고한 소설가 김살로메의 첫 에세이집이다. 소설로 다 하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일천(一千) 글자로 쓰며 오랫동안 하루를 열어온 그녀의 사유는 지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따스한 품성이 배어 있다. 예리하면서도 독특한 감성을 그녀만의 맛깔난 언어로 조리해낸다. 냉철하고 간결한 문장을 고수하지만 때로는 봄비처럼 뼛속까지 한없이 스며드는 촉촉한 감성의 소유자다.

 

 

  < 2018년 7월 5일 포항 포은중앙도서관 >

 

   

아침 일찍 포항으로 달려가는 내내 시원한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렸다. 아직 장마철이었던 그날, 혹여나 손님이 덜 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역시 기우였다. 포항 포은중앙도서관에서 마련해준 북토크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오프닝 뮤직으로 시작된 작가 김살로메의 이야기는 특유의 솔직한 언사와 유머에 밴 온기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작가의 말은 저자가, 책 중 몇몇 글은 또 서로 다른 낭독자가 낭독하며 작가의 문장을 맛보았다.

 

일상과 사람, 책과 글쓰기에 대한 그녀만의 가치관과 취향을 읽을 수 있는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저자의 의도대로 하드커버로 만들어졌고, 책에 삽입된 사진들은 모두 저자의 심상이 포착한 프레임으로 손수 담은 것들이다. 사람과 풍경을 대하는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노구(老軀)의 어머니, 그 주름진 손을 담은 사진은 들여다볼수록 뭉클한 감동을 준다.

 

미스 마플이 누구일까? 궁금할 것이다. 책의 서두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책과 일상과 사람, 가족과 사물에서 느낀 저자의 사유는 일천 글자 미니에세이로 묶였지만 각 장마다 그 사유와 감성의 깊이와 넓이가 독자의 손을 오래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사유의 확장, 외연의 확대가 읽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서 무한바람을 일으켜 책장을 넘기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좋은 책을 만날 때면 행복한 부작용은 감수하시길.

 

 

<책 속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 저자의 어머니를 손수 담았다>

 

 

엄마집 마루 창가에는 재봉틀이 놓여 있다. 익숙하게 순서대로 실을 꿴 엄마는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동시에 발로는 장방형의 페달을 밟는다. 마법 같은 엄마의 솜씨에 금세 자투리 천은 화사한 베갯잇으로 재탄생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발판 위의 엄마 발과 바퀴를 돌리는 엄마 손 그리고 꽃무늬 천을 내려다보는 늙은 엄마의 순한 눈빛. - 엄마의 재봉틀,

 

모든 완성은 불완전에서 출발한다. 완벽하게 준비한 사람이 끝낸 일보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도한 사람이 끝낸 일이 더 많다. 완벽한 사람은 시작이 그만큼 늦으니 성공할 확률도 낮다. 완벽주의는 완벽에 이르는 가장 나쁜 포장술이다. - 완벽주의는 완벽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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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8-10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리뷰도 좋고 인용해주신 부분도 좋아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2018-08-10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3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8-08-1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로메님 에세이를 리뷰한 프레이야님 글도 멋진 에세이 한 편이네요!!♥
살로메님 ‘미스마플~‘ 맘에 드는 글들을 두세번씩 읽어도 좋았어요!^^

프레이야 2018-08-13 13:44   좋아요 0 | URL
무더위에 숲에서 잘 보내시는지요?
보람차게 건강하게요^^
 

카페 공곶이 이야기

- 그곳에 길이 있고 꽃이 있네

 

 

 

 

 

 

 

 

 

 

 

 

 

 

 

 

 

   

공곶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몇 가지가 될까.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는 봄이면 노란 얼굴을 내미는 수선화가 계단식 밭을 메우는 공곶이가 있다.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계절 따라 동백나무, 종려나무, 조팝나무 등 50여 종의 나무와 꽃이 손님을 맞이한다. 19세기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의 피난처였기도 하다. 천주교신자들의 묘지도 있는 공곶이에 꽃밭이 조성된 건 노부부의 신념과 수고가 이뤄낸 공(悾)이다. 공곶이는 2007년 거제의 추천명소 8경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매력적인 풍광을 품고 있다.

 

 

 

 

 

험한 언덕을 오르려면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공곶이 언덕을 오르기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눈앞이 툭 트이는 언덕 꼭대기에 이른다. 조붓한 산길을 걷다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면 검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넓게 펼쳐진다. 흰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파도와 그 비명소리를 가슴으로 마주서면 바닷길은 멀리 한려수도로 이어진다. 몽돌 사이 널브러진 바다새의 주검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명랑한 아베크족들과 대조된다. 극명한 생과 사의 풍경에 크게 놀라진 말자. 한숨을 돌리고 오른쪽 숲으로 연결된 데크계단을 올라가 새소리 호젓한 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한 바퀴 걷기에 딱 좋은 힐링코스가 된다. 방향을 바꾸어 걸어도 괜찮은 길이 되겠다.

 

툭 트인 바다도 좋지만 아담한 포구는 마음을 한껏 당긴다.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공곶이길로 들어서서 공곶이 언덕으로 좌회전하지 말고 조금 더 가면 작은 포구, 예구가 나온다. 고양이낮잠처럼 나른하게 시간이  멈춘 예구에 서면 잔잔한 바다도 눈부신 하늘도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마음속에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비좁은 마음자리에 너른 길 하나 내어주게 된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공곶이를 지키는 부부가 있다. 공곶이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이곳에서 뜻밖의 하얀 성모입상을 처음 본 건 오래 전이다. 공곶이 언덕으로 오르는 초입 오른쪽으로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층집 마당에 성모상은 서 있었다. 저 멀리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비 그친 마당엔 사람이 다녀간 흔적마저 희미했다. 호기심에 젖은 흙마당까지 걸어 들어가 집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주인도 없는 집에 별 다른 게 없었다. 그로부터 몇 해 후, 이곳이 공곶이언덕 펜션으로 리모델링되어 탄생하였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이 건물의 주인장이 개인사정으로 한동안 펜션일을 미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목공 손재주가 예사롭지 않은 주인장이 손수 꾸민 펜션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안주인의 세심하고 깔끔한 손맵시다. 공곶이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에 들러도 좋고, 편안한 컨트리풍 펜션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브런치나 티타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은 카페가 있다. 올해 3월 노란 수선화가 한창일 때 부부는 공곶이 이야기라는 이름의 카페를 펜션 한모퉁이에 마련했다. 물론 주인장이 일일이 자재와 소품을 구하여 하나하나 만들고 다듬고 꾸민 공간이다.

 

 

 

 

여름휴가철 정점에 친구들과공곶이 이야기를 찾아갔다. 우드 코티지 풍의 카페 문을 열자, 일본의 젊은 스님 류노스케가 쓴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고 있던 주인장이 책장을 덮으며 반색을 한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에 밝은 분위기의 앙증맞은 소품과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도서들 그리고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낡은 통기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방은 오픈되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안에서 주문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안주인의 맑은 미소만큼이나 정갈하다.

 

주인장이 손수 만들어 판매도 하는 우드 트레이와 우드 쟁반들이 눈길을 끈다. 목재질의 강도와 특성에 따라 트레이의 두께를 조절하고, 손잡이도 만들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게 했다. 창가 한구석에 세워둔 트레이가 눈에 들어와 물어보니 느티나무로 만들었다며 나뭇결이 정말 멋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마을의 수호수, 아낌없이 주는 정령, 수령 높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주인장의 애정이 담긴 우드 트레이 하나로 연상되었다.

 

 

 

 

테라스도 좋지만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실내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섬과 바다와 구름이 그려내는 한폭의 수채화가 테라스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그림자와 함께 그야말로 그림이다. 진한 카페라떼에는 하얀 하트가, 블루베리 스무디에는 깜찍한 꽃이 얹혀 나왔다. 꽃은 먹으라는 말과 함께. 연보라색 스무디 위에 앉은 하얗고 빨간 작은 꽃이 깜찍하다. 나로선 처음 보는 꽃이다. 주인장이 얼른 나가더니 그 꽃을 뜯어서 들고 들어온다.

   

체리세이지! 그가 해보라는 대로 작은 잎을 손으로 만져 코끝에 갖다 댔다. 싱그러운 초록향기가 퍼진다. 허브 종류인 체리세이지는 일조량과 공기의 온도에 따라 꽃잎의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주인장의 설명은 좀 다르다. 원래의 체리세이지는 빨간색이고 변종 체리세이지가 그렇게 하얀 색이 섞이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앙큼하지만 어쩌면 지혜로운 본성이 아닐까.

 

꽃잎의 변색이야 아무렴 어떠냐 싶지만, 고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생명을 애지중지하는 따스한 심성이 엿보인다. 집 잃은 개 몇 마리와 오래 동거하는 걸 보아도 섬기고 보살피는 은사를 베풀고 사는 마음이 순하게 전해진다. 알고 봤더니 눈빛 맑은 안주인이 천주교 신자이다. 성모상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주인장은 어떤가. 한때는 주말이면 미친듯이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지만 아킬레스건을 다친 이후로 반(半)자발적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 자유는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 친구같은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라면 자유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 모른다.

 

 

 

 

 

몇 시간 수다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저 아래 바다 위로 놀이 지고 있다. 붉은 꽃잎이 수평선 위에 엎드린 듯 황홀하게도 수굿해지는 시간이다. 풀도 눕고 태양도 그 기세를 꺾는다. "해거름이면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져요."  놀이 붉게 타는 신선대부두 고가도로를 차로 달리다 울컥해져서 해거름이면 저는 마음이 막 이상해져요, 라는 내 말에 노문우가 단칼에 뱉은 대사가 환청처럼 들린다. 놀을 배경으로 선 안주인과 카페 간판이 역광으로 빛난다.

     

우리도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카페 입구 길섶에 낮달맞이꽃이 연분홍 고운 자태로 낮게 피어 있다. 체리세이지 꽃잎이 온도를 따르듯 열정에도 따라야 할 온도가 있다. 누구의 어떠한 삶이든 삶이 아름답다면 이야기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야기의 온도가 있어서일 것이다. 느긋하고 선한 두 사람이 말없이 전하는 공곶이 이야기를 나와  '바람의 언덕'으로 희미한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차 안에서 길과 꽃, 그 열정의 방향성을 새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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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8-1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초 고등동창들과 큰마음 먹고 1박2일의 여행을 계획중이에요.
아이들 키우느라 늘 친구들과의 여행을 뒤로 미루다 보니 거의 20년만에 떠나게 된 것같습니다.
그 첫장소를 사람들이 덜 붐비면서 풍경좋은 장소로 거제를 선택했죠.
팬션을 잡아야 하는데~~라며 고민중이었는데 마침 프레야님의 ‘공곶이 이야기‘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친구들에게 한 번 의견을 내보야겠습니다.
공곶이 이야기^^

2018-08-11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