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세버그>



2019년 작인데 우리나라엔 11월 4일 개봉 예정 영화 <세버그Seberg> 

두근두근 기다리는 중. 진 세버그는 마릴린 먼로와 동시대 활동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는 일은 내가 선 자리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고 사람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어떤 페이소스가 솟는 다감한 일이기도 해서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영화 이전에 세버그를 다룬 영화가 한 편 있지만 '현대적인' 세버그를 현대의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거의 싱크로율 100%로 재생했다. 포스터 속 저 줄무늬 원피스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입고 나온 옷을 재현한 것이다. 크리스틴에게 잘 모르고 가지고 있던 약간의 편견이 깨어진 건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였다. 줄리엣 비노쉬와 같이 나오는데 너무나 좋은 영화로 기억한다. <세버그>에서도 연기력 제대로 살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재생산된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 불행한 삶이었을까 행복한 삶이었을까, 이건 두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생각일 듯. 타인의 삶을 타인이 판단하는 건 불필요한 생각이지.  진 세버그가 죽고 일 년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맹 가리는  이제 나를 다 표현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나를 다 쓰고 표현하고 떠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로맹 가리 집필 모습>


젊은 시절 로맹 가리와 어머니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새벽의 약속>도 추천.

아들이 대작을 써내려가도록 헌신하는 강인한 어머니로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나온다.  

















진은 미래가 그녀의 인생을 위해 마련해 둔 불길한 징조처럼 들리는 제목의 영화 <내 비문을 누구도 쓰지 못하게 하라Let No Man Write My Epitaph>에 출연했다. 흑인 가족의 삶과 마약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이 영화에서 멋진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이해 1960년에는 <네 멋대로 해라>가 파리 극장의 관객을 열광시켰고, <새벽의 약속>은 책방과 독자들을 매혹했다. 모든 것을 원하는 진과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는 레슬리 사이에서 로맹은 사랑하는 여인과 파리의 생루이 섬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은신하면서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다. 세상이 생겨난 이후로 속수무책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흔히 선택해 온 방식, 즉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가리의 그늘 아래에서 진은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과 프랑스 작가들을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번에 두 입씩 삼키듯 성급하게 덤벼들었고, 교양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루브르의 수업을 들었다. 가리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그녀는 이 공백 때문에 괴로워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기를 꺼렸다. 유럽 문화도 그녀에게 낯설었지만 고국에서 끓어오르던 이념들을 접할 때도, 문학을 접할 때도 결코 편치 않았다. (중략) 


그녀는 예민한 감수성 덕에 상세한 설명 없이도 잘 느꼈다. 고통과 불의를 그녀는 완벽하게 지각했지만 사태를 따지거나 상대화할, 세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단순화할 도구가 그녀에겐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그녀는 자기 균형을 크게 무너뜨릴 투쟁에 가담하며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삶의 고뇌에는 '타인', 연인, 사상가, 선동가, 극빈자, 약자와(누구인들 어떠리!) 함께 살 필요가 덧붙었다. 채울 수 없는 사랑의 갈증에 양분을 댈 수 있을 무언가와 함께 살 필요 말이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111p-1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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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1-01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 진세버그 영화가 나오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책은 읽겠다고 사 놓고 여태 안 읽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한 번 읽어야겠네요.ㅋ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오는군요. 그래도 형만한 아우 없다고 진짜 세버그만 할까요?
방금 확인하고 왔는데 역시 미쿡스럽네요.
진 세버그는 뭔가 약간의 동양적 이미지도 함께 있는데...
전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 멜렉 뭐 나름 연기는 잘 하긴 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강한 인상을 대체하기엔 좀 버겁잖나 싶더군요.
그래서 그냥 한 번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ㅋ
그래도 기대는 되네요.^^

프레이야 2021-11-01 14:13   좋아요 3 | URL
세버그가 미국 배우이니 미국스럽긴 해요^^
세버그는 진짜 왜 그렇게 마음이 가는 애틋한 배우인지ㅠ
라미 멜렉은 진짜 너무 깨더라구요. 뻐드렁니도 너무 강조해가지고 ㅎㅎ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생각보다 괜찮은 배우더라구요.
영화 <세버그>는 기대가 되는데 그만큼 실망도 있을 거 같다는 예감이 스물거리긴 해요.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이 ㅎㅎ 아무튼 11월 첫날입니다^^

stella.K 2021-11-01 14:33   좋아요 3 | URL
아, 진세버그가 미쿡 배우던가요?ㅎㅎㅎ
근데 왜 저는 자꾸 프랑스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게 다 <내 멋대로 해라> 때문인 것 같다능.ㅠ

라미 멜렉은 저만 그러는 게 아니군요.
글쎄 말이어요. 그 뻐드렁니도 프레디가 그 정도로 뻐드렁은 아닌데
넘 도드라져서 거부감이 들더군요.
음악만 좋았어요. 옛날 생각이 유난히 많이나서 극장을 쉽게 떠나질 못하겠더군요.
예전에 커피숍에서 DJ한테 음악 신청 할 수 있었잖아요.
제가 퀸 음악 신청했더니 그 DJ가 음악을 좀 아시는 분 같다고 해서 붕 떴었는데.ㅋㅋ

프레이야 2021-11-01 14:43   좋아요 4 | URL
이렇게 또 연식이 드러납니다 ㅎㅎ
리퀘스트 용지에 제목 적어서 디제이 옵바한테 전하고 뭐 그랬죠.
아~ 옛날이여 ㅎㅎ
세버그는 미국 출생인데 프랑스로 가서 유명해졌어요.
결국 미국이 사람을 그리 만들었으니 참 불행했던 거 같고 안타깝고
미모가 넘 좋잖아요. 마릴린보다 개성있고 지적으로 보이고용

stella.K 2021-11-01 14:55   좋아요 2 | URL
뭐 굳이 연식꺼정...ㅎㅎ
그게 아날로그 갬성이잖아요.
어딘가 지금도 그렇게 하는데가 있지 않을까요?
몇년 전에 종로 어느 찻집에 갔더니 옛 모습 그대로 하는데가
있어 놀랐는데 말입니다.ㅋ

프레이야 2021-11-01 14:57   좋아요 3 | URL
글쵸. 돌고돌아 옛날 갬성이 상품이 되었죠.
우린 좋고 신세대는 더 좋고 ㅎㅎ
디제이다방 가 보고 싶네요 문득!

새파랑 2021-11-01 14: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 영화는 무조건 관람해야 겠네요. 진 세버그와 로맹가리 영화라니~!! 포스터부터가 매력적입니다 ^^

프레이야 2021-11-01 17:20   좋아요 3 | URL
로맹가리는 나올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포스터 멋지죠^^
제가 진 세버그를 좀 좋아하다 보니 기대되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붕붕툐툐 2021-11-01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 세버그 예전에 스콧님이 올려주셨던가? 한 번 보고 완전 반했잖아요~ 저 쇼컷 머리가 어쩜 저리도 잘 어울릴까요? 저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가 재밌다는 얘기 들리면 얼른 영화관으로 달려가야겠어요!!ㅎㅎ

프레이야 2021-11-02 02:47   좋아요 2 | URL
호호 제가 먼저 보고 와서 속닥속닥해드리죠^^ 숏컷과 줄무늬가 저래 잘 어울리다뇨. 우아하기도 하고 스마트하기도 하고.

희선 2021-11-02 0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scott 님이 쓰신 글 보고 진 세버그 조금 알았습니다 영화는 2019년에 만들고 한국에서는 곧 하는군요 scott 님은 꼭 보러 가실 것 같네요 책에 나온 글을 보니 진 세버그도 글, 그냥 일기라도 썼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거 썼는지 안 썼는지 잘 모르지만, 글을 써도 자기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렇죠 두 사람 삶을 남이 뭐라 말할 수 없겠지요


희선

프레이야 2021-11-02 05:38   좋아요 2 | URL
스캇님 쓰신 건 못 봤네요 ㅎ 뒤져봐야겠어요. 언제 쓰신 걸까요 울스캇님. 넘사벽 페이퍼를. 희선 님 말씀대로 진 세버그도 글쓰기로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들어요. 글이나 그림 뭐 그런. 그런데 그거도 재능이나 관심이 좀 있어야 되니 아마 그쪽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니 다른 활동으로 기운 게 아닌가 싶어요. 로맹 가리 덕분에 작가모임이나 그쪽 관심을 많이 가진 거 같은데 잘 어울리지 못하고 패배감을 가진 듯해요. 안타깝게도 불운하게 끝난 삶이라 불쌍하죠.

mini74 2021-11-02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 세버그, 넘 좋아해요. 그 이미지며 세련된 모습. 영화 나온다는 소식이 반갑네요 *^^*

프레이야 2021-11-02 18:59   좋아요 2 | URL
그죠. 우리 영화 같이 봐요 미니님^^
 

지난 토요일 오랜만, 아니 몇 년만인 거 같은데 

글벗들이랑 하동 북천과 평사리를 다녀왔다.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한껏 파란 하늘에  무심히 떠 있는 흰 구름, 마냥 좋았다.

북천역을 먼저 갔는데 예전의 그 간이역이 사라진 거다. 이럴 수가. 너무 아쉬웠다.

그런 건 좀 그대로 두면 안 되나. 코스모스도 예전처럼 그렇게 많이 안 보이고 

라라북천,이라는 카페가 새로 생겨서는 루프탑 공사진행 중이고 이젠 어딜 가나

그렇게 풍경이 변해가고 있다. 



이병주문학관에는 우리 말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008년 개관한 이후 세월이 많이 흘러 동판 지붕이 그동안 더 멋스러워졌다.

정면 양쪽에 펜대와 문학비는 새로 한 거 같은데 펜대은 없는 게 나을 뻔.

건물 자체의 멋스러움이 반감되었다. 아쉽다 ㅠㅠ 

건물 주변의 고즈넉한 정취가 말할 수 없이 좋은 거다.

공기가 참 맑았다.





하동에서 출생한 나림 이병주 소설가는 1921년 태어나 1992년 세상을 떴다. 와세다대학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고 광복 후 귀국했다. 40중반에 등단하여 27년 동안 장편과 작품집만도 60권이 넘게 발간하고 한국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성과를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 '지리산', '산하'를 비롯해 가장 정력적으로 창작하였는데 1965년 등단 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 부터 여러 책이 한길사에 요렇게 때깔좋게 나와 있다. 드라마 '지리산'은 기대보다 흡입력이 별로라 첫 회를 보면서 일단은 접기로 했고(일단 계속 깔리는 음향이 어마무지 거슬렸다) 이병주의 '지리산' 한길사편을 찜하며... 서체도 마음에 드네.


















오래전에 이병주문학관을 다녀와서 쓴 글을 그대로 옮겨둔다.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가 문학수업을 받던 대학시절 책상 앞에 써놓았던 글귀다. 전 생애를 통해 정복해야 할 산()으로 발자크를 세운 점에서 소설가로서 그의 충천한 기대와 야심을 엿볼 수 있다.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19세기 프랑스 문호로 사실주의 소설의 창시자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쟁과 산업혁명, 자본주의가 진행되던 격동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는, 냉혹하고 천박한 욕구로 들끓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인간 내면의 욕구와 시대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작가로도 손꼽힌다. 작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리얼리스트로서의 작가적 내면, 거대한 상상력으로 시대와 문학의 연()을 작품 속에 풀어낸 점에서 발자크는 이병주의 롤모델이었다. 발자크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시며 상당한 량의 원고를 써내려간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에 못지않게 이병주는 하루에 원고지 이백여 장, 한 달 평균 일천여 매의 원고지를 집필한 다작(多作)의 작가다.


하늘도 청명한 구월의 어느 하루, 한적한 고속도로를 타고 남강휴게소를 지나는 동안 가을 풍경이 느리게 이어졌다.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벼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사천천을 지나 서포 위로 달리는 해발 4백 미터의 길에는 노랗게 물든 모과가 정겨운 얼굴로 매달려 있었다. 나지막한 산이 한아름에 안길 듯 덤벼들었다. 오래 전에 북천초등학교를 졸업한 선후배간 시인 두 분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곤양인터체인지로 내렸다. 사천 국도에는 코스모스가 가녀린 몸매로 꽃무리를 짓고 억새가 찬연한 햇살 아래 출렁였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옥수수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강단 있어 보였다. 가을은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 무르익는다.


  다솔사로 가는 길이 보이고 곤양천을 지나 이병주문학관 7km’라는 이정표가 반가웠다. 원전마을 신해사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 허수아비와 장승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산자락 세 개 중, 두 번째 자락의 구곡산 아래에 이병주 작가가 살던 마을이 있다고 한다. 고향 시인이 곁들여준 말씀이다.


  북천초등학교 앞 들판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 대신 코스모스가 흐드러졌다. 코스모스는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하여 조화, 아름다움, 장식을 뜻한다. 학명(Cosmos Bipinnatus)을 풀이하면 날개를 겹치고 있는 꽃이다. 여덟 장의 여린 꽃잎들을 동글게 모으고 춤을 추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는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애정이다. 신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꽃! 순정이 그렇듯,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그래서 더 보듬어줘야 할 것 같은 꽃, 애잔하다. 이병주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문학관에 들르기 전, 북천 코스모스 역을 지나 3회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단지(2009. 9.18~10.4)’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뽀얗게 부푼 메밀꽃밭이 코스모스꽃밭과 어우러져 화사하고 부드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행사장에는 흥겨운 음악이 울리고 여러 군데 천막이 쳐 있고 홍보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 곳에 들어가 메밀묵과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잣나무가 심긴 이명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북천마을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마음도 배도 부른 우리는 꽃단지와 안녕하고 가까운 문학관으로 차를 돌렸다. ‘이병주문학관 2km’ 이정표가 장승처럼 우뚝한 곳에서부터 야트막한 오르막길. 길가에 벚나무 초록 잎이 갈색으로 하나 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잎사귀들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사했던 봄날은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회생의 시간을 꿈꾸며 굳건히 서 있는 나무, 생명력의 진리를 믿고 지난한 생을 견뎌온 사람들이 그 곁에서 함께 살고 있음이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이명마을회관이 수령이 많아 보이는 벚나무를 앞세우고, 그 옆으로는 돌담 위에 황토담을 쌓아올린 시골 옛집 담장에 샛노란 호박꽃이 시들시들 피어 있었다.

 

  억새들이 바람을 조용히 일으키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곤북로 1035, 파란 철대문 옆에 나림정이라는 조금만 쉼터가 있다. 20078월 세워진 것. 이병주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것만 봐도 고향 문학인, 이병주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골길에 자리한 이병주문학관은 20084월에 개관했다. 나림정 맞은편, 문학관 들머리에서 우스꽝스럽게 입혀놓은 허수아비들이 길게 열을 지어 우리를 맞이한다. 시골 아주머니, 수줍은 새댁, 댕기머리 숫처녀, 넥타이를 맨 신사, 군복 입은 사내까지.


  이명산 산기슭에 호젓이 서 있는 문학관은 한눈에 보아도 세련된 젠 스타일이다. (Zen)()’으로 번역되는데 청명함, 여유, 여백의 미를 강조하며 정신적, 명상적, 자연주의적 경향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왼쪽으로 좁지 않은 주차장, 오른쪽으로 2층의 문학관 건물이 앉아 있다. 현판을 중심으로 잿빛 커다란 피라미드형 동판 지붕이 원목 벽의 건물을 아늑하게 덮고 있다. 동판은 빛에 바래면 더 멋들어진다고 한다. 나무 바닥 테라스에는 나무 벤치와 탁자를 내어놓아 환담을 나눌 수 있게 해두었고 그 앞의 빨간 가림막이 악센트로 산뜻하다. 자연 그대로의 재료에 현대미를 가미하여 절제된 건축 미학이 돋보이는 건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1층과 2층에 각각 창작실을 두어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한 문학수업과 다양한 체험학습을 돕고 있다고 한다.

 

  앞마당엔 몇 개의 비석이 낮게 서 있고 작가의 유명한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자 왼편에 전시관이 있고 그 앞에서 주최 측 사람들이 다과와 차를 대접하며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강당, 그 앞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자 벽에 붙어있는 작가의 글귀를 또 만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청춘은 없었다. 청춘엔 광택이 있어야 하는 거다.

    진리에 대한 정열로써, 포부를 가진 사람의 자부로써,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으로써 빛나야 하는 건데,

    우리에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겐 그런 것이 없었어. - 산하

 

  올라오면서 본, 바람에 가벼이 흩날리던 황갈색 벚나무 잎이 떠올랐다. 역설적 의미의 허무주의를 감지하며 어떠한 이데올로기보다 앞서야 하는,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정과 저변에 흐르는 낭만적 상상력의 도저한 강물이 연상되었다.

 

  ‘정치란, 그리고 혁명이란 슬픔을 감소시키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3공화국의 부당성을 비판하며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1982년도 작품 그해 5의 글귀다. 어떠한 주의도 사람의 행복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휴머니즘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말년에 지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효성을 발휘하려는 아들에게 베푼 자상함과 의연함은 그의 부성애가 얼마나 깊고 그윽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는 올해로 3회째다. 2007년 시작한 이래 2008년부터는 이병주국제문학상을 포함하여 시행함으로써 명성 있는 국제문학제로 정착하고자 한다. 문학도시 하동의 자긍심을 고양하고 지역적 특성을 홍보하는 계기도 되는 이 문학제는 이병주 작가의 시대사적 가치를 통해 역사와 문학의 필연에 대해 되짚어보며 지성적 전통과 문학적 가치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개회식 및 문학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강당으로 들어갔다. 삼각형으로 높이 솟은 천정은 나무의 결과 색을 그대로 살려 시원한 느낌을 주고 여러 개의 작은 창들이 자연 채광으로 밝고 온화한 실내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유족대표 경성대 일어일문학과 이권기 교수의 소박한 인사말을 뒤로 문학강연회가 열리는 동안 나눠받은 책자들을 훑어보고 그의 데뷔작 소설ㆍ알렉산드리아를 읽어볼 생각에 부풀었다. (집에 돌아와 단숨에 읽었다.)


  마흔에 데뷔한 박완서보다 더 늦게, 이병주는 마흔넷에 등단한 늦깎이 소설가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는 자칭 저널리즘의 노동으로서 이미 그 이전에 출발하였다. 일찍이 내일 없는 그날(1954)로 부산일보에 최초의 연재소설을 내보였고, 그것이 처녀작이다. 당시 국제신보의 논설주간으로 칼럼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던 그가 소설(小說)로 쓴 이 연재소설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일제강점기 학병의 트라우마를 훗날 스스로 노예사상으로 불렀던 그가 자신의 주인화 과정 중 제3단계를 가능하게 한 숨겨진 무기로 해석된다. 이 작품은 거듭 실패한 저널리즘 노동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 이병주 글쓰기 노동의 원점이자 회귀점이라고 평가 받는다.

 

  어떻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사상엔 구원이 있다.’

 

  등단작소설ㆍ알렉산드리아(1965)는 당시 소설계에서도 그랬지만 내게도 하나의 이변이었다. 이국의 정취와 구원의식, 편지글을 통한 액자 구성, 성격이 치밀하게 묘사되기보다 전형으로 보이는 피상적 인물들, 일인칭 화자의 보조적 존재감, 관념적 서술, 역사와 인간과 이데올로기 자체가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것 같은 작가적 사명감에의 충만함. 이는 이후의 작품들에 원형으로 역할, 주제와 형식면에서 그 특징이 반복하여 제시된다. 나는 작품 속 화자 형의 말을 빌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설명하는 대목에 주목했다.

 

     사실적 수법으로 에센스를 묘사할 수 없지 않아요? 사실 이상의 사실,

    상상 이상의 상징, 게르니카를 비롯한 인간악적 사건 전체에 통하는 심오한

    의미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중략) 이건 게르니카의 의미를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 그것이라고……. - 소설ㆍ알렉산드리아, 바이북스, 71

 

 

  소설 속 화자의 형은 다소 모순에 차 있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그는 비루한 세계에 정신적 황제로서 고고하고자 했던 작가를 대변한다. 1961년 작가의 논설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에 대해 혁명재판소가 그 책임을 물어 10년형을 선고 받지만 다행히도 27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출감하게 된다. 19631216일의 일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정독하고 역사의 올바른 기록자가 되고자 다짐했다. 훗날 정사(正史)의 모범이 된 이 책은 다른 정사와는 달리, 객관적인 역사의 구성보다 오히려 서술하고 있는 역사상의 인물들에게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고 특징에 따라 유형화해 어떤 인물의 본보기가 될 만한 행동을 한 장()에서 기록했다. 그가 역사에서 이끌어낸 교훈은 다양한 것이었는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병주가 출감 후 쓴 이 작품에 소설이라는 전제를 붙인 것은 올바른 기록으로서의 문학을 강조하며 명제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올바른 기록이란 아래와 같은 문학관에 중심을 둔다.

 

    기록이 문학으로서 가능하자면 시심(詩心) 또는 시정(詩情)이 기록의 밑바닥에

    지하수처럼 스며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학이론이다. 그래야만 설득력과

    감정이입이 함께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 겨울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그의 역사관과 문학관을 대변하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역사의 그물로 포획할 수 없는 삶과 인간의 진실을 문학이 표현한다는 확고한 시각은, 1992년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역설적 모순과 생경한 매혹, 범속과 탁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80여 권의 작품을 남기는 초인적인 정열을 태우게 했다. 그의 정열은 좌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적 자유정신과 회색인의 허망함에 속하는 듯하다.

 

 1979년 발표한 지리산에서 그는 정열을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아무튼 불행한 나라야. 민족의 수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허망한 정열에

  불타서 죽고, 죽어가고 있고, 계속 죽어야 하니까 말이다. 아아, 허망한 정열!

  (중략) 분노도 또한 정열이다. 사람은 분노만으로도 역경을 견딜 수 있다.

  - 나는 죽을 수 없으니까 죽는다. -지리산

 

  문학평론가 김종회는  ‘운명... 그 이름 아래서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것이다. - 관부연락선

(1968)’고 한 이병주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역사적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 그때 그는 서슴없이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표면상의 기록으로 나타난 사실과 통계수치로는 시대적 삶의 노정한 질곡과 그 가운데 스며있는 사람들의 뼈아픈 사연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려는 욕망과 세계를 낭만적으로 감각하려는 욕망의 교차가 이병주 문학을 매혹적이게 하는 지점이라면 역사가 생명을 얻자면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 -바람과 구름과 비()(1978)’는 말에 나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서서 재평가되어야 하고 미래를 향해 부활되어야 함이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아포리즘의 백미(白眉). 하동군 북천면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섬진강물을 끼고 굽이굽이 근현대사의 질곡이 아로새겨진 지리산의 품속에 자리한다. 골짜기마다 역사의 마디마디 못이 박인 이 고장은 어쩌면 광활한 이야기의 탄생이 숙명처럼 예정된 곳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퇴색할 수 있어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작가의 혼으로, 이야기의 혼으로 새겨진 역사는 재해석과 재구성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신화가 된다. 비로소 진실이 된다.

 

    아아, 이 산하(山河)! 이 땅에 생을 받은 사람이면 좋거나 나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두 이 산하로 화하는 것이다. - 산하(1985)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일부만 맞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진다는 말이 더욱 맞다. ‘안다이해한다와 동의어다. 이날 행사에서는 방문객이 많아 전시실을 꼼꼼히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소설ㆍ알렉산드리아에 매료된 나는 시월 조용한 때에 홀로 전시실을 다시 찾게 되었다. 고난의 세월을 호활한 문필로 승화한 걸출한 작가, 그에 대한 연민에 발길이 당겼다는 말이 더 옳다. 그새 코스모스는 많이 졌고 벚나무 잎사귀들은 색이 더욱 바랬지만 눈부신 가을 하늘 아래 정겨운 허수아비들이 여전히 반색하며 맞아 주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더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갑다. 마음의 눈을 뜨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밝게 보인다. 전시실 지붕 추녀 끝에 물고기 모양의 작은 풍경(風磬)이 달려있다. 손끝으로 두어 번 튕겨보니 명징한 소리가 난다. 아담한 전시실 안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을 하고 연대순으로 네 구역으로 이어져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를 총체적 시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입구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들어서면 작가의 분신 같은 몽블랑 만년필이 탑처럼 우뚝 서 있다. 한가운데에는 지리산의 한 장면을 디오라마로 만들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 위로는 세로쓰기 한 친필 원고지들이 원을 그리며 붙어 있다.

 

  1구역은 1921년에서 1963년까지로, 고뇌하는 학병시절을 겪은 노예로서의 자유에 대한 절망감을 냉전시대의 자유인, 황제로서의 비자유인으로서 벗고자 한다.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의 기저를 엿볼 수 있었다. 2구역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로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매달린 시기다. 민족적 거대한 좌절의 기록인 관부연락선, 광복 후의 빨치산과 사회주의 운동을 조명한 대하소설 지리산을 비롯하여 매혹적인 초기 단편들 겨울밤, 예낭풍물지, 마술사등도 이때 탄생한다. 3구역은 1979년에서 타계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서재에 이만오천 권의 책을 두고 괴력의 집필을 한 시기다.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한 그해 5산하, 소설로 쓴 세태풍속사 행복어사전이 등장한다. 서재에 앉아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는 디오라마가 제4구역과의 사이에 자리하는데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 중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책이 눈에 띄었다.


  그를 두고 흔히 박학다식박람강기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방대한 독서세계와 함께 동서양의 해박한 지식과 철학, 다양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유려하면서도 중후한 문장력과 더불어 이야기 전반에 녹아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지식과 남성적 역사관이라는 줄기에 낭만적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문장으로 독자층이 두터운 이야기꾼. 최근작도가니로 호평을 받는 공지영 작가는 이미 20대에 이병주 문학에 매료되어 밤을 새워 그의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한길사에서 30권으로 대표작을 모은 이병주문학전집이 새로 나와 있다.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무슨 쓸모인가라고 회의적 질문을 던지는 기막힌 현실인식과 무엇보다 앞서는 절대적 인간애, 노예의 자유보다 황제의 자발적 비()자유를 선택한 진정한 자유정신을 읽고 싶다면, 골짜기마다 스며들어 신화의 역사를 쓴 월광의 펜촉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전집을 새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월이 꼬리를 감추어가던 그날, 문학관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해거름 섬진강가에 앉았다. 사위가 회색으로 물들어갈 때면 세상도 사람도 순해짐을 느낀다. 어둠이 야금야금 빛을 덮더니 정박해 있던 고기잡이 작은 배마저 한순간에 보듬어버렸다. 비로소 세상이 잠들고 이야기가 깨어난다, 상현달빛 아래 강물 위로 스멀스멀.


  회색! 이병주는 역사적 허무주의와 댄디한 망명의식으로 회색이라는 질타를 일부 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색의 고뇌, 강인함과 관대함, 내적 생명력을 아는가. 회색은 평화를 옹호하고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빛보다 어둠이, 드러냄보다 은근한 감춤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일광보다 월광이 미더운 것은 그런 연유일 테다. 불현듯 질박한 고고함을 감추는 듯 드러내는 조선의 투박한 달항아리가 가슴속 거대한 빛으로 떠 올랐다. @

 

 

- 계간 <여기> 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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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0-27 14: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유, 언제 또 이런 글을 쓰셨습니까?
사실 이병주 선생은 정말 대단한 문학인이신데 그동안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선생 보다 덜 알려진 것 같아 좀 아쉬움이 남더군요.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프레이야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느낌입니다.

드라마는 첫회에 확 사로잡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리산>은 좀 그런 게 약하긴 하죠?
주춤하는 사이 시청자로 하여금 잡생각을 하게 만들면 좀 그런데 말입니다.
전 전지현과 주지훈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조금 더 지켜 본 후에 더 볼 건지 말건지 결정하겠슴다.ㅋㅋ

프레이야 2021-10-27 18:21   좋아요 3 | URL
그런 거 같아요 ^^ 이병주 선생도 박완서 선생처럼 늦게 40 중반에 첫 소설을 썼어요.
그리곤 완전 불타는 창작열로 많은 글을 쓰고 가셨더군요. 그 열정을 어찌 쫓아갈까요.
일제징용에다 박정권 시절 감옥에도 갔었고 파란만장한 삶.
하동 안 가보셨지요? 경남이라 좀 멀지요. 깡촌에 사신다구 ㅎㅎ

지현 지훈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지켜보신대서 잔뜩 쫄겠어요.
잘해야 될 건데 모쪼록 ㅎㅎ

서니데이 2021-10-27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파랗고 예쁘네요. 강이 흘러가는 순간도 반짝반짝 빛나서 예쁘고요.
프레이야님, 요즘 날씨가 일교차가 크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프레이야 2021-10-27 21:05   좋아요 2 | URL
저 날 날씨가 어찌 좋은지 섬진강 강물이 반짝반짝했어요. 강물에 손도 담그고 참방참방. 몸 어서 나아지길요 서니님

희선 2021-10-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가 보신 곳이 예전과 달라졌군요 간이역은 빨리 사라지기도 하죠 가끔 그런 곳을 남겨두기도 하지만... 하늘이 참 맑고 빛나는 강물도 예쁩니다

하루에 원고지 이백여장이라니... 대단하네요 저는 잘 몰랐던 분이네요 소설 제목은 들어본 적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프레이야 님 글 보고 아주아주 조금 알았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0-28 15:11   좋아요 2 | URL
풍경이 그렇게 변해가는 게 꼭 좋지만은 않은데 트랜드라
어쩔 수 없나봐요. 간이역은 제가 참 좋아하는 정경인데 아쉽구요.
대단한 작가인데 덜 알려진 거 같은 이병주 작품을 좀 더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날 보내세요 희선님.

hnine 2021-10-28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 날씨 정말 좋았어요.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는 아주 옛날, 신문에 한참 연재되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고, 대학교때 도서관에 가면 장편으로 주욱 꽂혀 있는 <지리산>을 늘 보면서도 한번도 읽어볼 생각을 못했어요. <허상과 장미>라는 소설을 읽었던 것 같고 그 외 다른 작품들은 읽었던가 가물가물하네요.
섬진강 저도 몇년 전에 가본적이 있는데 옆에 끼고 살던 한강과 느낌이 아주 많이 다르더군요.

프레이야 2021-10-28 15:13   좋아요 1 | URL
강도 제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죠. 주변 풍경과 그 풍경이 담는 역사와
함께 가는 것 같아요. 이병주 작가를 일찍 아셨군요 나인 님 역시!!
전 학생 땐 전혀 몰랐어요. 작품은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레이스 2021-10-28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병주 <행복어사전> 재밌게 읽었어요.

프레이야 2021-10-28 15:15   좋아요 2 | URL
오모나 그레이스 님 읽으셨군요.
<행복어사전>부터 좀 여러가지 찾아읽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1-11-03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와 유익함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발자크와 이병주 작가 님의 책들, 다 열독하고 싶네요.
저로 하여금 새로운 학구열이 불타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1-03 12:46   좋아요 1 | URL
꼼꼼히 진지하게 읽는 페크 님의 독서생활 중 이병주와 발자크 추가인가요 ^^ 기대합니다. 오늘 날씨 너무 좋아요
 


 2012년 7월에 읽었던 김영하 에세이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고양이 방울이와 깐돌이와 사는 이야기로 시작해

 의미있고 재미있는 소설가 김영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표지에 고양이발은 방울이 발.^^











2018. 6. 18. . 부산 수영구청 구민홀에서 들었던 특강을 요약한 기록입니다.

'소설' 대신 대입해 볼 단어가 제법 떠오릅니다. 

 


김영하 초청특강 (기록_프레이야)


소설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프롤로그>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 - 밀란 쿤데라

(반면에 현실은 도덕적 판단과 타인의 실수에 냉혹하다)

복잡한 인생사, 복잡한 인간심리를 감안하여 내가 겪었을 수도, 겪을 수도 있을 일들을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간접체험 한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1. 자신의 내부를 이해하는 범위가 증폭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갈등, 고통, 유혹 등등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모호하고 다채로운 감정에 언어가 부여된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강한 자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 능력이 생긴다.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타인의 감정, 타인의 일, 타인의 삶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도의(도리)보다 감정의 공유(공감)가 필요한 일이다.


선은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의로 시작하는 일이 반드시 선의의 결과를 빚는 건 아니다. 선의의 결과를 빚으려면 이해와 공감이 우선 필요하다.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상대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그러므로 간접적 대화(영화나 책 등)로 우선 그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을 알려면 청소년 세계를 소재로 한 책이나 영화로 우회적 접근을 하라. (; 프레이야 생각 -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해 대신 무지가 있겠지요. 완전한 이해는 불가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 작가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2. 소설 속, 실패한 인물들을 보며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다

(마음의 준비, 감정의 준비)


김영하 작가는 삶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한다고 합니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안정감을 얻지요. (극히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옛날 동화의 내용이 잔혹하고 계모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야기(스토리)를 통해 경험하는 감정은 가짜가 아니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배운 것은 잊히지 않는다. 대상(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를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운다.


진짜 성격은 시련을 통해 드러난다. 시련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시련이 닥쳤을 때 스스로 알 수 있다. 이렇게 자기인식과 자기이해가 우선된 소통이어야 바람직하다. 언어(정제된 문학언어)로 표현된 이야기를 통해 무엇보다 를 알게 된다.

 

  

<청중 질의와 작가 답변>

 

1.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이 있나요?


성장의 통과의례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소설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소설을 읽게 된다. 고민이 해결되면 거기서 빠져나온다. 가령 판타지나 무협지를 읽는다고 걱정할 게 아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빠져나와 다른 것으로 옮겨간다. 하나에 빠져있는 게 오히려 유해하다. 내면의 공포, 불안 등의 감정과 문학은 관련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지적인 측면에서 편안히 사는 북유럽 사람들이 범죄소설에 매료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 모든 감정을 체험하여 쓰는 것인가?


꼭 그렇진 않다. 글로 이미 쓴 감정을 실제로 겪으며 그때의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더욱 언어화되는 경험을 했다.(얼마 전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그 장례식장에 앉아서 만감을 머릿속으로 언어화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능숙해질수록 텍스트를 더 잘 읽게 되고, 그러면 더 잘 쓸 수 있게 된다. 순환고리처럼. 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자기인식의 능력과 비례한다. 자기감정을 잘 알자


그러기 위한 훈련으로, 먼저 찢어버려도 좋을 종이에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적어 내려가라. 다 쓴 후 찢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내면에서 자기검열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좋은 노트에 쓰지 말 것. 내 감정을 돌보기에 전념하라. 그렇게 하다보면 언어가 점점 정제되면서 감정을 극복(초월)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3. 소설을 외국어로 번역, 외국에 확장할 계획은?


세계는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세계는 은유나 비유로 존재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소설읽기는 우회적 방식으로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외연 확장보다 우리 사회 안에서 고급언어로의 외연 확산이 더 중요하다. (문학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는 너무 한정되어 있다. 이해하는 폭도 좁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언어화하지 못하는 자들이 폭력을 내세우게 된다. 실재로 범죄자들의 대다수는 언어능력과 공감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능력이 클수록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해능력도 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문학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외국으로 확장하는 일보다 우선이다. ***




그날의 광안리

동시에 소설을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감정이입을 통한 즉자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뀐다. 대중가요의 가사가 다 내 얘기 같다고 느껴질 때 흘리는 눈물도 소중하지만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희롱할 수 있을 때, 나는 그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단계로,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믿는다. 소설에서는 왜 그럴 수 없단 말인가. 소설 역시, 그래 이건 내 얘기야, 라는 단계에서, 이건 내 얘기가 아니지만 새롭고 탁월해, 라는 단계로 전이할 수 있다. 그 단계의 즐거움이 이전 단계의 즐거움에 비해 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대단히 독특한 기쁨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로 전이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P244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런 단계의 소설이다. 어렵지는 않다. 단, 이 소설은 절대로 독자인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중략)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며칠 동안 눈먼 자들이 도시를 배회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햇다. 멀쩡한 얼굴로 화사하게 웃으며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선남선녀들이 다르게 보였다. 저들은 아직 눈이 보이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서울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사라마구가 본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견고해 보여도 아주 단순한 원칙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략) 이 수많은 단순한 원칙들 중 하나만 지켜지지 않아도 도시는 지옥이 된다. 그러니 인간이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이며 그 인간들이 끌고 가는 사회며 국가라는 것도 얼마나 허약한 것이냐.
그렇기에 이 불안한 평화는 역설적으로 달콤하다. 불안한 존재가 읽는 완벽한 소설. 이것만 한 즐거움을 나는 아직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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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21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을때 우리에게 일어난 것들은 완전 공감이 가네요. 이렇게 기록을 잘 해놓으니까 완전 좋네요~!!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니 ㅋ 맞는 말같아요~!

프레이야 2021-10-22 00:11   좋아요 4 | URL
그렇죠 쿤데라.
소설 읽는 분들 위해 공유해요^^.
밑줄긋기 인용문은 랄랄라하우스 안 문장인데 소설이 아니라 그 자리에 음악, 마술, 영화가 들어가도 비숫하지 싶어요.

페넬로페 2021-10-22 0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tv를 통해 만난 김영하작가는 말을 아주 잘하더라고요.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기 어려운데 그 두 개를 다 잘하니 가진것이 많은 것처럼 보였어요~~
김영하작가의 소설론에 공감합니다^^

프레이야 2021-10-22 01:35   좋아요 3 | URL
네, 그렇더라구요^^ 저는 저 때와 그 이전에 비프 영화 상영 후 GV로 두번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영하 단편소설을 옴니버스로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기억이 가물해요. ^^
암튼 말도 잘하지만 태도의 여유가 마음에 들었어요. 자신감에서 오는 여유겠지요.

2021-10-22 0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2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10-2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내부를 돌아보고 마음의 준비, 감정의 준비.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 ㅠㅠ 김영하작가님을 보셨군요 ㅎㅎ부럽습니다 ~ 목소리도 참 좋으신거 같아요. ~~ 광안리사진도 👍

프레이야 2021-10-22 10:36   좋아요 2 | URL
이미 소설을 많이 읽고 계신 분들에겐 딱히 필요없는 강의일 수도 있었지만 한번 돌아본다는 느낌으로다가요 ㅎㅎ 구름은 언제나 좋아요. 바다와 하늘과 구르미^^

페크pek0501 2021-10-22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는 팟캐스트를 통해 목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팬이 될 만큼 좋아해서 반복해 듣곤 했었죠.
목소리가 차분해서 좋아요. 잠이 오게 하는 목소리예요.
요즘은 장영희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한 시간쯤 듣는데 종이책으로 사 두고 싶을 만큼 좋습니다.
오디오북으로 좋았던 책은 꼭 종이책으로 또 사 봐야 해서 이중 지출을 하고 있어요.
비용 감소를 위해서라도 저는 다독보다 정독을 해야 할 듯해요.^^

그레이스 2021-10-22 16:59   좋아요 0 | URL
제게 이작가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아요

프레이야 2021-10-22 19:12   좋아요 1 | URL
장영희 에세이는 진짜 종이책으로 보셔야 마음에 더 들어올 거예요. 모양새가 좋아 책 자체가 위안이 됩니다. 김점선 화가가 그림 그림과 장영희의 솔직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참 이쁘지요. 전 몇 권 갖고 있어요 ^^ 아무래도 종이책 ㅠ

프레이야 2021-10-22 18:3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저도 좀 뒷걸음질을요. 여행의이유도 좋더군요 ^^

- 2021-10-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자기인식의 능력과 비례한다. 자기감정을 잘 알자.˝
우와 김영하님.......... 배우신 분.. 저도 일기쓰고 찢는 걸로 글쓰기 시작했기에... 맙소사 ㅋㅋㅋ 넘 기쁘다!!
작가님이랑 같은 작법의 글쓰기였엌ㅋㅋ! 꼼꼼히 읽었습니다. 좋은 강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1-10-25 12:26   좋아요 1 | URL
글쵸 ㅎㅎ 동감되는 내용이었어요.
알아도 실천하긴 어려운데 그렇게 하셨더랬군요. 자기감정을 정확히 아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시간에도 익숙한 길이 있다. 한 번 지나간 길은 기억의 회로에 내장된다. 그 길로 들어가면 아주 순수한 그림자 하나 만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여섯 해를 오갔던 길로 들어선다. 한낮의 열기가 지하로 기어들고 지상의 물상이 키를 낮추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교문 앞에 서니 오른쪽에 개교 110주년이라는 2017년도 표식이 보인다.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은 초록 인조잔디로 옷을 갈아입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축구부 꿈나무들이 그 위를 뛰어다닌다.


곧바로 본관으로 향한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아이들이 검정 줄무늬 축구복을 입고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다른 학교 축구부 학생들 같다.


안녕하세요?” “, 그래, 안녕!”

얼떨결에 명랑한 인사를 받고 화답한다. 잘린 나무를 보러 온 마음을 알 리 없겠지.


본관 앞에 다급히 선다.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삭막하다. 삭둑 잘린 나무 밑동 가장자리에 거무스름한 진액이 채 마르지 않고 고여 있다. 주변에 새까만 개미 몇 마리가 기어 다닌다. 희미한 나이테와 가로세로 갈라져 터진 틈으로 모래흙이 성글게 박여 있다.


천천히 둥치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손가락을 쫙 펴 지름을 재어 보니 다섯 뺨 반이다. 백 살 하고도 열두 살을 더 먹은 고목이 살았을 적에는 4층 본관 건물보다도 훨씬 컸다. 마른버짐이 꽃처럼 핀 얼굴들이 내다보던 교실 창문도 쭉쭉 뻗은 가지와 짙푸른 잎으로 가릴 정도였다. 고개를 한껏 들어 나뭇가지와 잎이 사라진 허공을 올려다본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네모난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숫자 6을 막 지나는 나이 든 바늘이 숨차 보인다.


오월로 접어든 날 아침, 부고가 날아왔다. 한 그루 히말라야시다가 베였다는 비보였다. 거목의 발목이 꺾여 쿵 넘어지는 광경과 함께 무언가가 내 안에서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의 정체가 궁금했던 계집아이의 생애 첫 학교,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무 한 그루가 그 시간 그 시절을 데리고 와르르 달려왔다.


우리 학교, 다행복학교로 지정된 거 아세요?” 

춘계방학과는 별개로 봄방학 기간이라며 축구부 선생님이라는 남자가 말을 건다. 나무둥치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어떻게 오셨느냐 물으며 졸업생이냐고 덧붙인다.


, 실은 나무를 보러 왔어요. 학교도 와보고 싶었고요.”

나무 때문에 놀라셨죠? 무슨 일 하는 분이세요? 기자신가요?”

“...... 가지치기를 더 하고 지지대를 해 준다든지 뭐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요?”

다소 긴 설명을 듣고 보니, 몇 년 전 태풍으로 크게 한 번 타격을 받았던 터라 안전을 이유로 내린 결정이란 걸 알았다.


히말라야가 고향인 이 아열대성 상록수는 강직하고 푸르른 아름다움을 간직하지만 의외로 잘 부러지고 말라 죽는 수도 많다.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듯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듯이. 그래서 히말라야시다는 가지치기를 자주 해주어야 한다. 사람도 자주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하듯이.


열일곱 해 후배라는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눈치다. 학교장의 권한이 학부모운영위원회의 결정을 내칠 정도로 크지 않다고 말을 잇는다. 젊은 학부모들이나 학교장이나 모교 출신이 아니니 그 나무의 의미를 되새김하지 않은 것 같다. 정작 그분도 잘린 나무에 대해서는 덤덤해 보이고 그저 다행복학교로 지정된 것에만 불만이 있어 보였다. 방학일수가 많아져 아이들은 좋겠지만 맞벌이 부부는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 아래까지 단추가 바투 채워져 있던 검은 교복 시절의 나, 돌아보면 결코 해맑거나 어리지만은 않았던, 호기심이 잉태한 어둠과 예민함이 생산한 상처가 키운 그 시절, 나는 행복한 아이였던가.


본관으로 들어가니 왼쪽 벽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빼곡하다. 오른쪽 벽에는 학교의 역사자료를 전시해 놓고 그 아래 나무의자를 마주 앉게 배열해 놓았다. 신설학교 비품들과 달리 나뭇결에 밴 쿰쿰한 시간의 냄새에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그 시절에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궤적을 들여다본다.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장으로 치른 제1회 졸업생 애국지사 윤현진의 장례식 사진이 눈에 띈다. 1940년 운동장 조례 광경을 담은 흑백사진 속에 본관 옆 히말라야시다가 일장기와 나란히 건재하다.


전교 행사 때면 키다리 히말라야시다는 내리붓는 햇살에 이마를 찡그리고 줄을 맞춰 서 있던 우리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짙푸른 바늘잎을 당당히 내어 달고 양팔을 벌려 하늘 향해 치솟아 있던 늠름한 그 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하얀 블라우스에 하얀 타이즈, 검정 멜빵 주름치마를 입고 그 나무 앞에서 신입생 환영사를 읽고 재학생 대표로 송별사를 읽던 창백한 여자아이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지금의 생을 그때 알 수 있었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운명의 지도를 품고 결국은 갈 수밖에 없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운동회 날이면 본부석이 그 나무 앞에 마련되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나면 결승선이 있는 본부석 앞에서 손목에 도장을 받았다. 1, 2, 3등으로 들어온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다. 백 미터를 이박삼일로 달렸던 여자아이는 늘 꼴찌였는데 한번은 너무 뒤처져 달리다 뒤이어 달려온 조의 아이들에 섞여 겨우 3등을 했다. 내 손목을 잡아채 도장을 쾅 찍어 주신 선생님은 당연히 3등인 줄 알고 그러셨지만 께름칙했던 느림보는 부상副賞으로 받은 공책을 누가 볼 새라 얼른 가방에 넣었다. 그 공책에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얼떨결에 찍힌 도장은 잘 지워지지 않고 며칠 동안 손목 위에서 나를 놀리듯 헤실거렸다.


성석제 단편소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도 초등학교 교정에 히말라야시다가 나온다. 사생대회에서 같은 나무를 그린 남학생과 여학생은 각자의 진실을 침묵하며 각자의 생을 살아와 각자 다른 어른이 되었다. 소녀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는 소년은 칠하지 않은 회색 붓질이 거북등 같은 회갈색 수피의 음영을 한층 잘 그려냈다. 재능이 모자랐던 소년은 이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닌 그림으로 상을 받고도 털어놓지 않았다. 대신 평생 자기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 도약하는 쪽을 택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소녀는 번호를 잘못 기재한 자신의 부주의가 낳은 실수를 받아들이고 진실을 굳이 밝히지 않아 자신과 타인의 이면裏面의 생을 그러안았다. 소년의 수치심과 소녀의 우월감에서 나온 결과였다 해도 히말라야시다는 두 사람의 운명을 어떤길로 가게 했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알게 해 준 무엇이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걸어 둥치로 돌아왔다. 제초제를 뿌려 썩히지 말고 그냥 두면 좋겠다. 넉넉한 나무둥치에 누구라도 털썩 앉아 잠시 쉴 수 있도록. 속말로 묘비명을 새겨 본다

- 여기, , 우뚝했었네! 잠시 앉았다 가게.


멀리 맞은편에 튼실한 벚나무 여섯 그루가 일렬횡대로 연초록 그늘을 드리운다. 그 아래로 길게 돌계단이 보인다. 젊은 엄마들이 돌계단에 앉아 축구부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팔순을 넘긴 젊은 엄마도 거북이 뜀박질하던 솜털 보송한 딸을 그 돌계단에 앉아 지켜보셨다. “애가 타면서도 어찌나 우습던지... 호호호...” 초등학교 28년 대선배의 얼굴이 히말라야시다만큼 푸르다.


운동장 저 건너편으로 뜨겁고도 서늘한 해가 서서히 엎드리고 있다.



정겨운 교정 본관 앞


싹둑 잘린 둥치


흙마당은 어디 가고 인조잔디 위에서 연습하는 축구부 소년들



우산 윤현진(1892.9.16. -1921.9.17.) 



일본 유학시절 조선유학생학우회와 신아동맹당의 핵심인물로서 항일운동에 앞장섰고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위원장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9월 17일부터 우산 윤현진 선생 서거 100주기 추모와 형 윤현태 등 윤 씨 일가의 행적, 양산의 유력자들을 기린 전시가 양산시립박물관에서 특별히 열리고 있다. 12월 12일까지니 아직 날짜 여유가 있다. 인물도 준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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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19 16: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쪽지역이군요! 히말라야시다가 있었던걸 보니...^^ 히말라야시다는 밤에 보면 유령같은 자태로 사람을 놀라게 하죠^^ 유럽에서는 묘지주변에 주로 심는 수종이어서 오싹한 느낌이 더 하죠. ^^
학교에 심었던 이유는 북쪽 지방에서 주목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나무를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향나무나 화백종류는 너무 왜색이고 흔하기도 하고... 아마도 이색적인 모양때문에 심은것 같은데, 건물입구에 심기에는 적당하지 않네요. 너무 크게 자라기도 하구요^^
그래도 추억이 있었던 나무가 잘려나간 것은 마음이 아프네요.
성석제님 이야기도 너무 좋구요~♡

프레이야 2021-10-19 17:13   좋아요 3 | URL
묘지 주변. 그렇군요. 사이프러스나무만 그런 줄 알았네요. ^^ 히말라야시다ㅜ진짜 학교에서 키가 어찌나 컸던지 본관 건물 키만 했으니까요. 아이적엔 더 크게 느껴졌는데 말이죠. 검푸른 침엽이 오싹하기도 하고 힘 있어 보이기도 하고 당시 본관 앞 말고 학교 운동장 둘레따라 다른 곳에도 많이 있었는데 그날 가 보니 많이 베어 놓았더라구요. 가지치기가 필요한가 봐요. ^^

그레이스 2021-10-19 17:37   좋아요 3 | URL
도서관에 예약했습니다~♡^^

새파랑 2021-10-19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히말라야시다에 대한 글 멋지네요~!
오랜만에 학교에 가셔서 뿌듯하면서도 아쉬움이 있으실거 같아요😆

프레이야 2021-10-19 17:10   좋아요 4 | URL
네 새파랑 님 학교 역사가 좀 오래 되었는데 제가 60회 졸업이구요. 엄마는 32회 ㅎ 인조잔디 깔아둔 거 보니 깨끗하긴 한데 암튼 묘한 추억에 잠겼더랬어요. 해거름이라 더 그랬는지.

막시무스 2021-10-19 17: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크기의 그루터기 사진을 보니 뭔가 추억이 베어져 버린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히말라야시다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지는데요!ㅎ. 어머님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셨다니깐 모교에 더 정이 깊으시겠어요! 저도 2년전 쯤인가 모교에 간적이 있는데, 어린시절 그 넓던 운동장이 지금 갑자기 좁아졌는지 아니면 내가 훌쩍 커버렸는지 순간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ㅎ 별로 먹는것도 특별히 하는것도 없이 뛰어만 다녀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는데요!ㅎ 히말리야시다 글 덕분에 여러가지로 그 시절을 즐겁게 추억해 봤습니다. 즐건 저녁시간 되십시요!

프레이야 2021-10-19 17:41   좋아요 4 | URL
히말라야시다가 교목인 학교가 더러 있더군요. 쭉쭉 뻗은 기상이 느껴지는 나무이긴 한데 잘 부러진다니 ㅠ 그땐 몰랐던 걸 세월 지나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학교 운동장은 추억을 불러주지요. 저게 2년 전인데 지금은 어찌 되어 있나 모르겠어요. 한번 가봐야겠어요.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

mini74 2021-10-19 1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소설도 좋았지만 프레이야님이 풀어내는 이야기도 참 따뜻해서 좋아요 *^^*히말라야시다 저희 학교에도 있었던 기억이 나요 *^^*

프레이야 2021-10-19 20:06   좋아요 3 | URL
미니님 학교에두요 ^^ 울학교엔 또 플라타너스가 있었는데 송충이가 그 잎에서 떨어지던 어마무시 징그럽던 기억이 나요. 하교할 때 후문으로 가려면 그 나무 아래를 통과해야 되는데 ㅠ 후문으로 가면 조금 빨랐지만 정문으로 나가는 걸루. ㅎㅎ

붕붕툐툐 2021-10-19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엄마랑 같은 초등학교 졸업이라니~ 어머님은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사신걸까요? 나무 보러 간 마음이 따뜻하네요~ 전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교문을 교체한다고 정문 바로 옆에 있던 소나무를 잘라버려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더 큰 교문을 위해서요~ 전 나무 있는 교문이 훨씬 학교를 빛나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졸업생이 종종 오는 좋은 학교인 거 같아요~~ 윤현진 애국지사님도 졸업하시고~👍👍

프레이야 2021-10-19 21:31   좋아요 1 | URL
소나무 옆 교문 상상해보니 참 멋있구먼요 아쉽네요 잘린 나무라니. 초등 선배 울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행하셨대요. 서울에서 저 낳고 동생 낳고 다시 돌아와서 셋째 낳고요. ㅎㅎ

scott 2021-10-20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나무 이름 이였네요
이름만 으로 추측하면
히말라야가 원산지 인 줄!!
포플러 나무보다 멋진데!


마미랑 동문 ^^ 멋집니다
학교 , 영원 했으면 ^^

그레이스 2021-10-20 05:17   좋아요 1 | URL
히말라야가 원산지 맞을거예요.
학명에 히말라야가 들어가니,,

프레이야 2021-10-20 06:53   좋아요 2 | URL
네. 그레이스 님 말씀대로 원산지는 히말라야에요. 다시 한번 찾아보니 울나라에선 천안 이남에 분포한다고 하네요. 상록수라 교목으로 하는 거 같아요.
엄마 이모 동생 제부 조카까지 ㅎㅎ 학교가 오래 되다보니 … 아마도 영원하겠죠^^
생각난 김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한번 가봐야겠어요. 나를 키웠던 곳.

책읽는나무 2021-10-20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현진 애국지사가 부산쪽 초등학교에서 졸업하셨었군요???
양산쪽 사람으로 알고 있었어요.늘 양산의 인물이라고 써져 있었던 걸 봐서....^^
히말라야시다란 나무가 정확히 어떤 나무인줄 몰랐었는데 덕분에 조금 알고 갑니다.저 책도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결말이 넘 좋았어요.성석제 작가도 이런 소설도 쓰는 구나!! 감탄했었던 기억이 어렴풋 떠오릅니다.
어머님이 선배님이셨던 학교의 오랜 전통은 나무 그루터기만 보아도 찡하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프레이야 2021-10-20 10:29   좋아요 2 | URL
네. 양산 태생이구요. 제가 나온 국민학교는 부산이라도 양산에서 많이 멀지 않은 북구쪽이지요. 국민학교 출신 ㅎㅎ 이 지역에서 그 집안 재력가에 좋은 일 많이 한 걸로 유명하지요. 학생 때 엄마에게 들었던 기억이. 그나저나 양산시립박물관 전시 가보셨나요?
잘려나간 나무 보니 마음이 이상했어요. 나무는 신령스러운 존재인데 말이죠. 성석제 소설가는 진짜 이야기꾼^^

책읽는나무 2021-10-20 10:42   좋아요 2 | URL
박물관은 아직 안가봤어요.코로나 시작된후로 공공장소는 아예....출입을 삼가중이었어요.ㅋㅋㅋ
요즘 조금씩 몰래 활보 중입니다.
안그래도 양산박물관에 전시중이라고 써놓으셔서 응??했네요^^
근데 우리동네는 규모가 작아서 얼마만큼이나 전시 되어 있을까?좀 걱정이 앞섭니다.스콧님 서재에서 하루키옹의 문학관을 보고 와서 눈만 높아져서 일까요????ㅋㅋㅋ
100주년이라니....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저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내가 있는 건데...싶네요^^

프레이야 2021-10-20 10:48   좋아요 2 | URL
나름 알차다는 소문이요 ㅎㅎ 전 마스크 하고 전시장 꽤 다녔어요. 마스크 하고 얼마나 북적북적하던지요. 그래도 전과 다른 거라면 대기순번 나눠주고 인원 제한하면서 한 팀씩 입장시켜서 괜찮았어요. 좀 있다 포스팅 하나 할까봐요 마스크한 프레이야 ㅋ

프레이야 2021-10-20 10:50   좋아요 1 | URL
하루키는 참 마음엔 아직도 청년같이 자리하는데 나이 들어 이제 하루키옹이라니. 대단대단. 우리 하루키옹 서재 보러 한번 갑시다요.

책읽는나무 2021-10-20 10:55   좋아요 2 | URL
일어가 되시나요???ㅋㅋㅋ
하루키옹 서재 구경 가서 하루키옹도 직접 봤음 좋겠네요ㅋㅋㅋ
그럼 지금부터 빠뜨렸던 하루키옹 소설도 다시 읽기 해야겠어요^^
코로나 잠잠해지는 시기를 기다리며 일어공부 합시다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21-10-20 10:58   좋아요 1 | URL
ㅋㅋ 스캇님 앞세워서 가야죠. 혼자 김칫국 마시기. 추진단장에 울책나무님을!

책읽는나무 2021-10-20 11:01   좋아요 2 | URL
스콧님이시면 우린 일어공부 안해도 되겠네요ㅋㅋㅋㅋ
깃발 로고 디자인부터 만들어야 겠어요.
사람 많은 곳에서 길 잃어버림 안되니까요~ㅋㅋㅋ
자꾸 상상하니 웃음이~ㅋㅋ

프레이야 2021-10-20 11:07   좋아요 2 | URL
히히 상상만으로도 즐거워라.
오늘도 기쁜 하루 보내세요 ^^
 

영화 <사울의 아들>, <줄무늬 파자마 입은 소년>, <카운터피트>를 추천하며...


고체가스를 담은 양철통 2015년 12월 촬영.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공노할 기만적인 문구, 그 아래 음산한 철문이 열리는 이곳은 가장 악랄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매년 127일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여기서 열린다. 2021년에는 팬데믹으로 유럽 여러 나라가 온라인 행사를 진행했다는 뉴스를 보았신에게 바쳐진 재물이라는 뜻의 홀로코스트Holocoust보다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말한 히브리어 쇼아shoah가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타자의 입장에서 홀로코스트를 쓴다는 한계를 어쩔 수 없이 또 마주한다.


오시비엥침은 폴란드 구도시 크라쿠프 서쪽에 위치하는 소도시다. 오시비엥침역은 유럽 전역에서 영문도 모르고 잡혀갔던 이들을 실은 기차가 마지막으로 지나는 역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다.’ 단테의 문장을 떠올리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했을지 모른다. 수용소 안으로 이어진 철로를 따라 기차가 들어가고 그들은 짐짝처럼 부려져 분류되었다. 노동 가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후자는 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졌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가져갔던 물건은 모두 빼앗겼다. 안경, 신발, 가방, 의족, 의수에 아이의 인형까지. 이름마저 압수당하고 번호가 주어진 그들에게 소유물은 없었다. 싹둑 잘린 머리카락 더미는 카펫의 재료가 되었다. 어두컴컴한 시체소각실을 보러 가기 전, 유리관 안에 수북이 쌓인 망자들의 분신 위로 퀭한 눈동자들이 경악하는 방문객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연극 <목이 마르다J’ai Soif>는 극단 과 아비뇽 극단 발콩2016년 아비뇽국제연극제 출품을 위해 협연한 작품이다. 당시 프랑스문화원 실장이 티켓을 줘서 출품 전에 이 연극을 2016년 5월 20일 부산의 동래문화회관에서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유월 아비뇽에 발길이 닿았는데 연극제 기간이었다. 연극을 보러 간 건 아니었지만 거리에 우리 연극 포스터들이 보여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예수와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동시에 떠올리며 신을 묻고 인간의 고통과 잔혹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음악극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십자가 위의 일곱 가지 말씀과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토대로 한다. 오월 저녁 줄장미가 혈처럼 붉던 날, 극장 앞줄에 앉아 관람하며 스산한 겨울 수용소 전시실에서 보았던 망령(亡靈)을 떠올렸다. 소름이 돋았다.


소유물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이름이 아니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모노드라마의 배 나온 남자가 던진 질문이다. 강탈된 이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듬해 봄날, 그 이름들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났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박물관의 이름은 1953년 건립 당시 야드 바셈(Yad Vashem)’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멀리 예루살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름의 홀에는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깊은 우물이 자리한다. 기억의 심연을 부르는 아득한 공간에서 이름이 공명하고 원뿔형 천장과 벽에 빙 둘러싸인 수많은 사진 속 얼굴을 소환한다. 얼굴을 서로 갸우뚱 기대고 찍은 젊은 부부, 귀여운 표정을 짓는 소녀, 진지한 노인 랍비, 잘생긴 젊은 장교, 눈 맑은 소박한 처녀... 스무 개 이상의 언어로 적힌 수많은 이름을 올려다보며 기이하도록 가슴이 아렸다. 저 아래에서 어디서 들어본 아우성이 들려왔다.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벌린 검은 물속으로 익사한 이름들의 영혼이 오늘을 연명하는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구조되지 못한 영혼을 생각하며 눈을 감고 귀를 크게 열었다.


녹초가 되어 홀에서 빠져나오며 구조된 자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프리모 레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부정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된다. 폴란드 제3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후 파시즘을 우리 시대 붉은 신호등으로 삼고자 증언록을 남겼다. <목이 마르다>가 이야기의 기반으로 삼은 이 책은 화학자인 그가 남긴 첫 번째 증언문학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로 걸어가는 길을 여행이라 부르며 시작한다. 시종일관 섬세하고 면밀한 눈으로 주변과 인물을 파고들며 인간성의 본질에 천착한다. 절멸의 수용소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생의 값진 소득이라 여기는 힘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 기인하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을 과대평가하지도 인간성의 위대함만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가 목격한 것은 인간성의 허약함이다. 인간성의 연약함, 인간이 열망하는 자유,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증언하며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내린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징후는 우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잔인한 그러나 평범한 악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 얼굴은 모래성처럼 빈약한 실체감에 기반한. 이미지만으로도 괴력을 발휘하는 집단적, 총체적 두려움이 그 얼굴의 민낯이다. 독일군이나 독일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이 책에 왜 표현되지 않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얼굴 없는 대상에 대고 어떻게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가라고 답변했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을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작품 전체에 장치된 단테의 신곡지옥편이것이 인간인가가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는 큰 요인이다.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로 가는 길부터 일 년 남짓의 수용소 생활과 퇴각하는 열흘간의 이야기까지 흘러오면서 내내 지옥을 연상했음이다. ‘오디세우스의 노래에서는 인간이 인간인 까닭과 인간임을 포기할 수 없어 감당해야 했을 자멸감이 절정에 이르러 직설적 어조보다 울림이 깊다. 어떤 생생한 증언이나 기록에서보다 극한의 상황에 다다른 슬픔의 극치를 느꼈다. 문학의 힘일 것이다.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마치 나 역시 생전 처음으로 이 구절을 들은 것 같았다.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 <이것이 인간인가> 중


담백하고 미려한 문장을 따라가며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하려는 극한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안 되어 곳곳에서 멈춰 숨을 고르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책을 펼쳤음을 나는 사죄해야 한다.


생은 언젠가 종결된다. 프리모 레비는 1987411일에 그 일을 스스로 이루었다. 구조된 후 4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꽃봄 낭자한 계절에 스스로 익사하고 말았다. 혹독한 수용소에서도 실행하지 않았던 일이다. 수몰된 이름을 건져 올리고 존재증명을 이룬 세월이 더한 지옥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홀로코스트박물관 앞, 밝게 웃으며 걸어오는 군복 입은 청년들. 2017넌 3월 촬영.




- 빅터 프랭클 박사와 대조되는 삶을 선택한 프리모 레비를 생각하며. 수필미학 2021여름호 게재 원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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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18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내용도 넘 슬퍼요. 죽음의 수용소도 이것이 인간인가도 참 감명깊게 본 책. 그러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다른 의미로 너무 너무 충격을 준 영화얐어요. 책도 영화도 보고나서 한참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ㅠ 좋은 글 잘 읽었어요 프레이야님 *^^*

프레이야 2021-10-18 18:40   좋아요 4 | URL
그렇지요 ㅠ 프랭클 박사의 다른 책, 회상록,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도 있구요.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줄무늬 파자마 그 영화 진짜 너무 ㅠ 베라 파미가가 통곡하는 장면 ㅠ 영화적으론 사울의 아들 강추에요. ^^

붕붕툐툐 2021-10-18 2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프레이야님, 한국에서 만난 연극을 아비뇽에 가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포스터로나마) 너무 인연이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레비와 프랭클 박사는 그렇게 또 다른 삶을 살았군요.. 에효~~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예전에 아이들과도 함께 봤던 기억이 나네요..ㅠㅠ

프레이야 2021-10-18 23:28   좋아요 3 | URL
아이들과 그 영화 보셨으면 아이들 반응이 궁금하네요. 의외로 아이들의 눈은 다르더라구요. 아비뇽에서 그 연극을 본 건 아니구요 다른 우리나라 연극 포스터 홍보를 거리에서 보았어요. 가기 전에 저 연극을 보게 된 건 참 묘한 우연이었구요. ^^

그레이스 2021-10-18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유물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이름이 아니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비참한 존재의 절망적 선언이네요

프레이야 2021-10-18 23:3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그레이스 님 ^^ 우리 존재를 증명하라면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요. 당시 가지고 간 소지품 중 가방을 압수하면서도 전부 가방에 이름을 쓰게 했더군요. 그 의미가 뭘까요. 가스실도 목욕하는 거라 속였듯 가방도 그냥 보관하는 정도로 알게 하려고 이름을 쓰게 했겠지만 그 속뜻을 생각하면 섬칫하죠.

모나리자 2021-10-19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두번 읽었는데 정말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고통을 가하며 살아야 할까..
먹먹한 마음이었고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더군요.
인용해 주신 문장도 살아가면서 새겨야 할 문장 같습니다. 책 제목에서 울림이 느껴지네요.^^

프레이야 2021-10-19 15:24   좋아요 2 | URL
모나리자 님, 두 번 읽으셨군요. ^^
프랭클 박사의 그 책을 저는 한때 마음이 아주 힘들고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할까 나름 고민이 많던 때
읽게 되었어요. 책도 인연이라면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글을 읽으며
주어진 같은 환경에서도 선택은 참 다를 수 있구나 느끼고 힘을 얻었어요.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그의 회상록으로 삶을 또 좀 더 알 수 있게 하더군요. 레비의 삶이 그렇다고 비교하는 건 아니구요.
<이것이 인간인가>는 인식과 서정의 힘이 함께 스민 문장만으로도 감동이 크구요.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문학적인 힘이 고양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점이 참 ^^

모나리자 2021-10-19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맞아요. 힘들때 읽는 책이죠. 저도 그랬어요..ㅎ^^

프레이야 2021-10-19 16:10   좋아요 2 | URL
모나리자 님 매일매일 기쁨 차오르는 날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