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 세버그>
2019년 작인데 우리나라엔 11월 4일 개봉 예정 영화 <세버그Seberg>
두근두근 기다리는 중. 진 세버그는 마릴린 먼로와 동시대 활동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는 일은 내가 선 자리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고 사람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어떤 페이소스가 솟는 다감한 일이기도 해서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영화 이전에 세버그를 다룬 영화가 한 편 있지만 '현대적인' 세버그를 현대의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거의 싱크로율 100%로 재생했다. 포스터 속 저 줄무늬 원피스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입고 나온 옷을 재현한 것이다. 크리스틴에게 잘 모르고 가지고 있던 약간의 편견이 깨어진 건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였다. 줄리엣 비노쉬와 같이 나오는데 너무나 좋은 영화로 기억한다. <세버그>에서도 연기력 제대로 살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재생산된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 불행한 삶이었을까 행복한 삶이었을까, 이건 두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생각일 듯. 타인의 삶을 타인이 판단하는 건 불필요한 생각이지. 진 세버그가 죽고 일 년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맹 가리는 이제 나를 다 표현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나를 다 쓰고 표현하고 떠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로맹 가리 집필 모습>
젊은 시절 로맹 가리와 어머니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새벽의 약속>도 추천.
아들이 대작을 써내려가도록 헌신하는 강인한 어머니로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나온다.
진은 미래가 그녀의 인생을 위해 마련해 둔 불길한 징조처럼 들리는 제목의 영화 <내 비문을 누구도 쓰지 못하게 하라Let No Man Write My Epitaph>에 출연했다. 흑인 가족의 삶과 마약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이 영화에서 멋진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이해 1960년에는 <네 멋대로 해라>가 파리 극장의 관객을 열광시켰고, <새벽의 약속>은 책방과 독자들을 매혹했다. 모든 것을 원하는 진과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는 레슬리 사이에서 로맹은 사랑하는 여인과 파리의 생루이 섬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은신하면서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다. 세상이 생겨난 이후로 속수무책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흔히 선택해 온 방식, 즉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가리의 그늘 아래에서 진은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과 프랑스 작가들을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번에 두 입씩 삼키듯 성급하게 덤벼들었고, 교양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루브르의 수업을 들었다. 가리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그녀는 이 공백 때문에 괴로워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기를 꺼렸다. 유럽 문화도 그녀에게 낯설었지만 고국에서 끓어오르던 이념들을 접할 때도, 문학을 접할 때도 결코 편치 않았다. (중략)
그녀는 예민한 감수성 덕에 상세한 설명 없이도 잘 느꼈다. 고통과 불의를 그녀는 완벽하게 지각했지만 사태를 따지거나 상대화할, 세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단순화할 도구가 그녀에겐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그녀는 자기 균형을 크게 무너뜨릴 투쟁에 가담하며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삶의 고뇌에는 '타인', 연인, 사상가, 선동가, 극빈자, 약자와(누구인들 어떠리!) 함께 살 필요가 덧붙었다. 채울 수 없는 사랑의 갈증에 양분을 댈 수 있을 무언가와 함께 살 필요 말이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111p-113p)